회사의 권한 남용과 억압적 태도에 우려를 표하며 시정을 요구합니다

 

 

그린비출판사에는 노동조합이 있습니다. 회사에 어떤 '문제'가 있음을 느낀 사람들이 서로 터놓고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터져 나온 얘기들을 회사에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함께했습니다. 그렇게 뜻을 모은 사람들이 작년 여름, 노동조합을 결성했습니다. 노동자들이 필요에 의해 노동조합을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회사는 이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듯했습니다. 물론 많은 회사들이 노동조합을 반기지 않는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앎과 삶의 일치'를 지향하고 '나를 바꾸는 책, 세상을 바꾸는 책'을 만들자는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가 노동조합을 대하는 태도는 기대 그 이상이었습니다.

 

회사는 과거에 있었던 '문제'들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는커녕 "이제, 회사는 회사다"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독단적으로 회사를 경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체 회의가 사라졌고, 인트라넷에 자유로운 댓글 및 게시글을 쓰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출퇴근 기록기가 설치되었고, 분 단위 임금 삭감 통보에 이어 징계가 논의되었습니다. 사전 설명 없는 갑작스러운 인사 발령이 이어지는가 하면, 노동통제가 강화되고 이전에 비해 급격하게 달라진 새로운 편집프로세스도 직원들의 충분한 동의를 얻지 못한 채 도입되었습니다. 사무실 이전에 따른 환경 변화, 명절 선물 폐지, 생일 선물 폐지 등 지면상 다 나열하지 못한 무수한 근무 조건이 한꺼번에 후퇴했습니다.

 

회사의 근무 환경 또는 정체성에 커다란 변화가 있을 때는, 응당 직원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함께 나아가자는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회사는 회사가 일방적으로 통보하면 직원들은 그에 따르기만 해야 한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충분히 숙고할 시간 없이 강행되려 하는 취업규칙(징계조항) 수정 찬반투표를 앞두고, 직원들이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민주적인 절차를 마련하라는 의견을 제시했을 때, 회사에서 돌아오는 답변은 "여기는 모의국회가 아니며 회사다"라는 식의 당혹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거듭된 회의 요청도 묵살되었습니다. 심지어 지난 4월 17일 수요일에는 인트라넷에 편집프로세스 점검 회의를 요청하는 글을 올린 한 팀장(조합원)에게,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편집장이 '상사의 권위'와 '위계'를 운운하며 고압적인 태도를 보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메일로 요청했을 때 편집장님이 답변을 주지 않았다"는 그 팀장의 정황 설명에, 편집장은 "내가 답을 하지 않으면 다시 와서 묻고 또 물어라"라고 말해 당시 자리에 있던 직원들을 모두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또 옆에 있던 직원이 일어나서 문제를 제기하자 편집장은 "지금 덤비는 것이냐"라는 말에 이어 "이것은 일종의 쟁의다"라는 근거 없는 발언을 함으로써, 회사가 노동조합에 대해 얼마나 크나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편집장이 보여 준 이러한 권위적인 언행은 지금 회사가 직원을, 노동자를, 노동조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동자는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력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사용자의 부당한 지시에 무조건 복종할 의무는 없습니다. 노동자는 노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난 수요일에 있었던 편집장의 언행은 함께 일하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모욕한 것으로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회사는 노동조합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불필요한 것으로 폄하하고 있으며, 심지어 회사의 요구에 따라 공문이라는 정당한 절차를 통해 문제를 제기한 점들에 대해서도 '기업질서 위반', '심각한 근로계약 위반'이라며 수차례 위협해 오고 있습니다.

 

또한 회사의 위협은 단지 협박성 문구나, 조합원에 대한 적대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조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변경된 편집프로세스와 촉박한 일정 내에 작업을 하다 책에 불량 사고가 발생한 직원에게 회사는 4월 26일 징계위원회를 열겠다고 출석을 요구하는 문건을 지난 22일에 발송했습니다. 지금까지 편집상의 실수로 표지와 본문을 다시 인쇄하고, 스티커를 붙여야 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회사에서 징계위원회가 꾸려진 적은 없습니다. 또한, 회사는 당면한 편집 오류 외에도, 당사자가 이전에 작업했던 책의 문제점(이 문제점이 무엇인지는 사전에 고지된 바 없습니다), 불손한 태도, 미미한 수준의 지각 등 합당하지 않은 징계 사유들을 덧붙여 당사자를 가중처벌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징계 당사자는 이러한 내용을 담아 징계사유 재검토 요청을 하였으나, "절차대로 진행했기에 답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는 무책임하고 노동자와 분회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현재 당사자 및 분회의 출석거부 의사에도 불구하고 징계위는 강행되었으며, 부당한 징계사유로 인한 부당한 징계결과가 나올 시 분회는 이후 강력하게 대응할 것임을 미리 경고하는 바입니다.

 

당면한 편집 오류에 관한 징계라 하더라도, 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당사자에게 부과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작년부터 직원들은 회사가 변경하여 제시한 편집프로세스에서는 치명적인 편집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우려를 지속적으로 표명했습니다. 그럼에도 회사는 이를 강력히 추진했고, 새로운 편집프로세스 체제에서 발생하는 편집 오류에 대한 '책임'은 회사에서 지겠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회사에서 어느 정도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건지, 그 발언이 정말 책임감 있게 지켜질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직원들은 '우선은 진행해 보겠다'고 한 것입니다. 직원들이 프로세스 중간 점검 회의를 요구했음에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 회사는, 사고가 나자 이 책임을 오롯이 편집담당자 개인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이번 징계 건이 단순히 편집 오류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조합원인 당사자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한 보복적 성격을 띤다고 유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처럼 회사의 권한을 남용하여 조합원을 대상으로 가해지는 다양한 수위의 '폭력'들은 회사에서 거듭 말하는 것처럼 전혀 "합리적"이지 않으며, 부당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그린비출판사분회는 앞으로도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문제'라고 느끼는 것들을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시정을 요구할 것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노동조합은 회사를 망하게 하고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되는 야근과 주말 근무까지 감내하며 회사의 요구에 부응하여 헌신적으로 일한 사람들이며, 그동안 그린비출판사의 이름으로 출간된 많은 좋은 책들을 만들어 낸 사람들입니다. 노동조합은 우리가 보다 나은 노동 환경과 민주적인 노사관계에서 서로 도와가며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함께 만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1년여에 걸친 준비 기간 끝에 마침내 그린비분회는 회사와의 첫번째 단체 협상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린비출판사뿐만 아니라 보리, 사계절, 창비, 돌베개, 한겨레출판 등에서 일하는 많은 출판노동자들이 서로 응원하며 함께하고 있습니다. 부디 회사에서도 노동조합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민주적으로 대화하고, 노동자들과 함께 회사를 이끌어 나가려는 자세를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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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9 11:20 2013/04/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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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꽃개 2013/05/01 23:40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지치지 말고 가세요. 천천히 가도 되니까 지치지 마세요. 근대는 이제서야 오는 모양입니다.

  2. 길동무 2013/07/26 13:25 고유주소 고치기 답하기

    진보적인 사상을 담은 책들을 활발하게 출판했던 출판사가
    '말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진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관계를 재정립 하는 시간은 통증을 수반하지만,
    그것은 반드시 '성장통'이 될 거예요...

    노동자가 사는 길이 회사가 성장하는 길임을
    깨닫는 인식의 변화가 번져가기를 응원할게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