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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 여름이었다.
나는 당시 S선배의 작업을 도와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배의 작업을 도와주는 또 다른, 나보다 12학번이나 높은 대 선배, K가 있었다.
정말 더운 여름이었고,
함께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테스트 촬영 차, 학교로 모여들었다.
나는
단대 앞, 입구에 걸터 앉아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고,
내 옆에는 S선배가 서있었다.
그리고, 곧, 한 손에 음료수, 한 손에 담배를 든 선배 K가 내 앞에 와서 섰다.
우리는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도중,
내 앞에 서있던 선배 K가 내 쪽으로 몸을 붙였는데 - 아주, 지극히 자연스럽게-
그 선배의 '거기'가 내 무릎에 닿았고,
그 선배는 스치듯 그것을 가볍게 문질렀다가 몸을 뺐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그 선배는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몸짓이 실수가 아니라고 직감적으로 느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선배는,
너무나 상냥하고, 사람좋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정말 '좋은' 선배였고,
예쁜 여자친구도 있었다.
그래서 그럴리가 없다고,
믿고 싶었다.
나의 직감을 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그건 너무나 불편했다.
그래서 외면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가끔, 아주 가끔
1년에 한 번 볼까말까한 선배지만,
아주 가끔 우연히라도 마주치면,
그 날 일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실수였을까?
내가 잘못 느낀걸까?
의도적이었을까?
한 번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겨울이었던 것 같다.
동복 교복을 입고 있었으니까.
그 날, 나는 아프다는 핑계로 아침 자율학습을 건너뛰었고,
1교시 수업 시간에 맞춰
학교에 갔다.
여느때처럼,
철도길을 건너, 지름길인 주택가 사이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눈깜짝할 사이였다.
내 앞에서
어떤 남자가 빠르게 뛰어오더니
한 쪽 손을 내 교복 자켓 안으로 집어 넣어
나의 한 쪽 가슴을 굉장히 세게 쥐더니,
곧바로 달려가 버렸다.
나는, 그 남자를 쫓아갈 생각도,
소리를 지를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그 자리에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심장이 쿵쿵쿵쿵 뛰었고,
어쨌든 나는 학교에 갔다.
그리고,
그 날 하루 종일,
그 남자가 쥐었던 나의 한쪽 가슴이 계속 아리고 아팠다.
하지만, 난
아무한테도 그 날 오전 일을 말하지 못했다.
말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처럼 될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불편하기 때문에
외면해버렸던 여러 사건들.
하지만, 그것들은
온전히 내 기억 속에 자리잡고선
어떤 것이든 조그만 계기만 생기면 그 틈을 비집고 나온다.
밤 늦게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머리 속에 떠오르는 수만가지 사건들,
때로는 두려워하고,
때로는 혼자 상황극을 만들어
대처법을 시뮬레이션 해보며 빠르게 걸음을 재촉하곤 한다.
그리고, 대문 앞에 다다르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오늘도 '무사귀환' 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집에 들어간다.
불편한 기억들은,
지금도 언제 어디서나 만들어질 준비를 하고 있다.
그게 참 불편하다.
댓글 목록
az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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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런 기억들이 있어요.. 말한적도 없고,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들...차라리 그때 화내고 풀어버렸으면 좋았을 것을...하고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생각하지요부가 정보
배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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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저도 그런 기억 있답니다. 고등학교 때 어떤 망할놈 하나...지금도 생각날때마다 속으로 세상의 모든 욕과 저주를 퍼부어주고 있어요. 당시에도 그냥 넘어가진 않았지만, 지금도 아주 가끔 생각나는데(지금 댓글을 쓰면서도) 불편한 기억을 더듬으며 내 속이라도 시원하라고 욕을 퍼부어요. 뭐 속이 시원해지진 않지만, 어디 한번 당해봐라 식이지요...!! 불편한 기억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어 의지하고 갑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