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포카라.

카투만두에서 아침7시에 출발해서 1시쯤 포카라에 도착했다.

우선 등산장비를 빌렸다.

포카라 시내에는 등산용품을 팔거나 대여해주는 집들이 즐비하다.

상표는 오로지 노스페이스 뿐이다. 물론 짝퉁.

나는 침낭, 다운자켓, 스틱을 빌렸다. 세가지를 12일동안 빌리는데 1500루삐(2만2천원 가량)에 다 해결이 됐다. 등산장비 대여까지 마치고 나니, 트레킹 준비는 얼추 끝난 듯 하다.

늦은 점심은 한국식당을 찾아서 해결했다. '한국사랑'이란 큰 간판을 내걸고 있길래 들어갔는데, 네팔리가 하는 식당이다.

여행에서 현지 음식을 먹는 것도 큰 재미라는데, 많지 않은 다른 나라 여행때도 그랬고, 네팔은 더더욱,,, 도저히 현지 음식을 먹을 수가 없다. 그 독특하고도 낯선 향기를 수용하기에는 나의 식도와 위장, 무엇보다 나의 후각이 아직은 심히 소심하다.

 

포카라에 있는 페와 호수. 

 

 

 

 

포카라 첫날 숙소인 꾸꾸리호텔.

'꾸꾸리'는 칼('단도'라고 해야 하나?)이란 네팔어다.

네팔에서는 '꾸꾸리'란 단어가 참 널리 쓰인다.

무엇보다, 꾸꾸리라는 술이 있고, 담배 이름도 꾸꾸리가 있다.

 

 

 

탕가(불화)를 그리는 사람들.

상점에서 그림을 파는데, 직접 그리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주로 타망족이 이 쪽에 재능이 있다고 한다.

네팔은 카투만두 분지의 원주민인 네와르족으로 처음 이루어졌는데, 타망족은 티벳에서 이주해 온 티벳족으로 헬렘부, 랑탕에 많이 산다고 한다. 타망은 티벳어로 말을 타는 병사라는 뜻이고, 티벳불교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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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9 08:02 2006/12/29 08:02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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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만두에서 이틀밤을 자고, 셋째날(11월30일) 포카라로 넘어가는 길.

우리는 버스 중에 제일 비싼 골든 트레블러를 탔다. 버스비는 855루삐(한화로 1만3천원 가량).

5시간정도 걸리는데, 도중에 나눠주는 생수 1병, 사탕, 점심 식권 따위가 포함된 값이다.

 

 

 

칸티팟. 포카라로 떠나는 여러 종류의 버스들이 즐비하게 서서 승객을 기다리는 일종의 터미널 격. 주변에 승객들에게 물이나 과일 따위를 파는 네팔리들이 분주하게 오간다.

 

 

 

폐차장에 서 있는 차가 아니다. 승객을 빼곡이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 삼륜차다. 카투만두에는 이런 삼륜차가 무지하게 많이 굴러다니며, 택시도 거의 이런 수준이다. 네팔에 돌아다니는 승용차는 대게 한국에서 넘어온 중고차, 인도에서 온 새차가 많다. 소렌토 정도 타면 갑부급.

 

 

 

카투만두를 빠져나가는 길. 정말 정말 정신없다.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 홍차나 커피 따위를 마시며 쉬는 곳이다.

 

 

 

네팔은 가는 곳마다 이런 상점이 무지하게 많다. 거의 한 집 걸러 한 집이 상점이다. 이 가게는 그나마 깨끗하고 큰 편. 정말 심하게 먼지 자욱히 내려앉고, 천정은 낮고, 좁은 상점들이 대부분인데, 소심한 나는 차마 그런 가게들에는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했다. 

 

 

 

네팔 화장실은 다 요렇게 생겼다. 휴게소 화장실인데, 내가 본 화장실 중 가장 깨끗한 곳. 가끔 레스토랑이나 호텔의 경우 좌변기가 있기도 했는데, 그 경우는 정말 난감했다. 가져간 화장지의 대부분은 좌변기를 닦는데 쓰였다. 차마 엉덩이를 들이밀 수 없는 지경이어서.... 흡...

 

 

 

카투만두를 빠져나오자, 드디어 '자연'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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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9 07:24 2006/12/29 07:24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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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에 네팔로 갔다. 그냥 산에 오르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 흔한 가이드북 한 줄 읽지 않았다.

나에게 여행을 준비할 여유는 없었고, 이렇게 준비없이 여행길에 나선 것도 처음이다.

사실, 난 '네팔'이란 나라에 빠져들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었다.

11월28일, 홍콩을 거쳐 카투만두로 들어갔다.

카투만두를 본 첫 느낌은 '심란하다'라고 해두자.

차선없이 차들이 곡예하듯 돌아다녔고, 사람은 늘상 부딪힐정도로 많았고, 집은 허물어져 내려앉을듯했고, 시끄러웠으며, 공기는 너무 탁해서 목이 금새 칼칼해져왔고, 출처가 불분명한 냄새는 늘상 내 코끝을 따라다녔다. 그러나, 사람! 사람들은 참 좋아보였다.

그 속으로 빠져들지 않는 한, '여행'은 의미가 없다는 걸 며칠 후 깨달았다.

 

카투만두에 있는 한국인 민박집 '네팔짱'. 나도 여기 묵었다. 주인아줌마가 사람을 참 편하게 해주는 곳이다. 한국음식을 싸게 먹을 수 있고, 배낭족들과 정보도 교류하고~ 최근에는 빈 방이 좀체 나지 않을 정도로 성황중인듯 하다.

 

 

 

내가 도착하기 며칠 전, 네팔 마오이스트들과 정부는 평화협정을 체결했단다. 시내 곳곳에 마오이스트들의 포스터가 붙어있다. 포스터 맨 위 오른쪽에는 조그많게 레닌, 마오 등 혁명가 4명의 사진이 붙어있다.

 

 

 

무작정 집을 나섰던 것 같다. 시장, 광광객, 상품점들이 몰려있는 타멜거리에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마스크로 입만 가린 채 사진기 하나 들고. 릭샤(인력거)와 택시와 사람이 부딪힐 듯 오가는 정신사나운 곳. 마음의 준비 없이 제대로 네팔 속에 빠져버린 셈이다.

카투만두는 자동차 매연 때문에 공기가 심각한 수준으로 오염됐다고 한다. 매연 때문에 공장은 주로 국경지역에 짓기 때문에 물류비용이 많이 든다고 한다.

 

 

 

손님을 기다리는 릭샤. 자전거 위에 2인용 좌석을 실어놓은 인력거와 비슷한 것이다. 릭샤값은 그야말로 흥정하기 나름이다. 릭샤는 카투만두에서 포카라로 넘어가던 날 버스타는 곳까지 새벽에 한번 타봤다. 10여분 가는데, 네팔짱 아줌마는 30루삐 주라고 했고, 릭샤기사(?)는 200루삐 달라하고, 실랑이하다 결국 60루삐(한화로 900원 가량)에 흥정을 마쳤다.

안개도 걷히기 전인 이른 새벽, 할아버지가 끄는 릭샤에 올라 타 담배를 피우니, 내가 위아래도 없는 천하에 몹쓸년이 된 기분이었다.

 

 

 

타멜거리에서 좌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향신료들. 처음엔 무슨 곡식인 줄 알았다.

 

 

 

옛 왕궁들이 모여있는 더르바르광장. 수행하는 흰두교도들을 '사두'라고 한다. 사두는 5루삐를 주면 기꺼이 사진 모델이 돼주겠다며 호객행위를 하는데, 인색한 나는 장기를 두고 있는 한 사두를 몰래 찍었다. 5루삐. 70원정도인데... 쩝...

 

 

 

더르바르광장에 몰려있는 옛날 왕궁들

 

 

 

시내를 돌아다니다 혼탁한 공기와 냄새에 질린 뒤 결국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관광객들이 자주 다닌다는 레스토랑이 몰려있는 골목으로 찾아갔다. 역시 그곳엔 현지인은 거의 없고, 깨끗했고, 주로 관광객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씁쓸했다. 네팔 노동자들은 보통 한 달에 5000루삐(7만5천원가량) 번다는데,,, 우린 맥주에 샐러드에 1000루삐 이상을 쳐먹고 나왔다.

 

 

 

내일이면 카투만두를 떠난다는 생각에 우리는 마지막(사실 시작인데,,,)으로 '흥청망청' 쓰자는 결의로 보잔그리어(맞는지 모르겠다)라는 레스토랑에 갔다. 네팔 민속춤 공연을 하며, 네팔 전통 음식(달밧)을 정식으로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당근, 무지 비싼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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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29 07:04 2006/12/29 07:04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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