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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강사법의 본질

일명 강사법으로 불리는 고등교육법 개정은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면서 부분적으로 개정되어 현 강사법에 이르렀다. 내가 강사법을 선한 법이니 어쩌니 하면서 옹호하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개정 강사법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일관된 기조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먼저, 2011년 7월21일 고등교육법은 ‘교수・부교수・조교수 및 전임강사’로 구분하던 기존의 교원 범주에서 전임강사를 제외하고 "‘교수・부교수・조교수”로 규정하는 것으로 개정되었다. 전임강사도 전임교수인데, 강사라는 명칭이 전임교수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리고 5개월후 2011년 12월 대학 시간강사를 없애고 '강사'를 교원 범주에 포함하는 고등교육법 개정 안이 통과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시나 현재 개정된 고등교육법도 시간강사를 강사로 ‘변경'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강사’라는 명칭을 없애고 ‘강사’라는 새로운 직급을 도입했다는 것이다.
 
작년에 다시 개정되어 올해 시행될 예정인 이 개정된 강사법에서도 핵심은 이전 유예된 법과 달라진 것이 없다. 그래서 이 개정 강사법은 긴 시간에도 그 일관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아래에 인용하는 글은 처음 개정안이 발표되었을 때 노조에서 주장했던 것이다. 이 글에 사실 문제의 핵심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왜 현재 우리 노조 위원장과 집행부는 아주 지엽적인 개선에만 눈을 돌리고 그것이 마치 강사법의 본질인 것처럼 호도하고 실제 중요한 핵심적인 측면은 보려고 하지 않을까? 자기모순에 빠져 스스로를 변호하는데 정신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제 지치고 힘들어 모든 것을 포기했기 때문일까?

 


이번 정부 안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것이 바로 ‘교원 외 교원’이란 표현이다. ‘선생 아닌 선생’이란 이 법률상 문구를 어떻게 받아들여 야 하는가.
 
어떤 대우를 받고 어떤 명칭을 갖든 「고등교육법14조2항」의 교원 범주에 들어가야 제대로 된 교원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2006년 이상 민 의원 안부터 2010년 11월 12일 교과부 입법예고 안까지 모두 강사든 연구강의교수든 모두 「고등교육법14조2항」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정부 안에는 그 14조2항에서 빠져서 ‘14조의2’란 별도의 항목에 ‘교원 외 교원’으로 강사가 배치되어 있다. 그것도 「교육공무 원법」, 「사립학교법」, 「공무원연금법」에서 보는 교원이 아니라는 설명까지 달려서 말이다. 결국 임용 절차만 교원처럼 하고 권리와 대우는 1년짜리 시급제 노동자로 하면서 전임교원충원률에만 포함시키려는 꼼수가 이번 정부 안의 본질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불체포 특권이 우리에게 부여되었다고 강조하는데 우린 그런 특권을 누릴 마음이 없다. 임용 기간 중 의사에 반하는 면직 을 당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마치 우리에게 특혜를 준 것처럼 주장하는데 어디 1년짜리 기간제 노동자가 그런 권한을 제대로 쓸 수나 있겠 는가. 징계 또한 「교육공무원법」에서 ‘법에서 정한 것’에 의해서가 아닌 ‘임용 계약에서 정한 것’에 의하도록 되어 있어 학교 측이 마음 만 먹으면 얼마든지 교원을 통제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진정 ‘법적 교원’이라 할 수 있는가.
 
2011년 3월 24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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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제 교원 양산하는 고등교육법 개악 저지 및 임금단체협상 투쟁 선포 기자회견
 
유령이 떠돌고 있다.
 
강사라는 이름의 무늬만 교원, 반쪽짜리 교원, 시간제 교원 제도가 지금 국회를 떠돌고 있다. 2011년 4월 19일 과 20일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이하 교과위) 법안소위에서 논의된 정부 안(전임교원의 범주인 고등교육 법14조2항에 1년 계약 非공무원 시급제 ‘강사’ 제도 도입)이 원안 그대로 통과된다면, 앞으로 이 나라에서 지 식인이 소금의 역할을 다하긴 어려워질 것이다. 1년짜리 시급제 교원이 무슨 힘으로 비리재단의 횡포를 막겠 는가? 중장기적 전망을 갖고 제대로 된 연구를 수행하겠는가? 교육자적 자긍심으로 학생을 대하겠는가? 시급 제 교원들로 기존의 정규 교수를 대체한다면 앞으로 교수는 교육자?학자?노동자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하는 어중간한 존재가 될 것이다. 실체를 인정받기 힘든 떠돌이 유령 신세로 전락할 것이다.
 
대학 시간강사를 보라. 6개월짜리 시급제 비전임 교원인 시간강사들은 수십 년 째 실체를 부정당한 채 방치된 대학의 유령들이다. 대학에서의 결정권도, 생활 가능한 임금도, 머물 공간도 보장받지 못하고 언제 제거될지 몰라 불안해하는 존재이다. 지난 3월 22일 확정된 정부 안은 이제 정규 교수직마저 시간강사직으로 대체하는 역대 최악의 개악 안이다. 이 법안은 대학을 지성과 학문의 전당이 아니라 비정규 노동자 착취의 소굴로 전락 시키는 대학 몰락법이다. 그렇기에 이 법의 통과는 교육계의 원전 폭발 사고이자 교수 사회를 황폐하게 쓸어버 릴 쓰나미가 될 것이다.
 
...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하나. 고등교육재정을 OECD 평균 수준으로 확충하고 전임교원확보율 100%를 달성하라! 
하나. 연구강의교수제 도입으로 비정규 교수에게 내실 있는 교원법적지위 부여하라! 
하나. 사립대 비정규 교수에 대한 직접 지원 제도 도입하라!
하나. 등록금과 교원 임금 국가가 책임져라!
하나. 전임교원 담당시수 축소하고 교육환경 개선하라!
하나. 수강인원 축소하고 폐강기준 완화하여 교육환경 개선하라!
하나. 비정규 교수도 교육자다. 총장선출권과 강좌개설권 보장하라!
하나. 비정규 교수도 연구자다. 연구공간과 연구활동 지원하라!
하나. 비정규 교수도 사람이다. 생활임금 보장하라!
 
2011년 4월 21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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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산

시골 동네치고 뒷산이 없는 마을이 없다. 마을마다 뒷산이 하나씩은 있는 법인데, 우리 동네 뒷산은 필봉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내가 2년 다닌 초등학교 교가의 첫 구절이 “필봉산 정기아래~”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한번도 필봉산 꼭대기에 올라가본 적이 없는데, 이 필봉산 꼭대기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마을에서 올려다 보면 꼭대기는 바위인데 소나무 한 그루가 유일하게 삐죽 솟아 있는 모양이다.

 

어릴 때 들은 전설이 하나 있다. 서양으로 치면 일종의 신화인 셈인데, 마을 처녀들이 봄에 산나물을 캐러 도시락을 싸고 보자기를 매고 필봉산으로 갔다고 한다. 즐겁게 산나물을 캐고 있는데,검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비 피할 곳을 찾다 큰 바위 아래 동굴을 발견하고 들어갔다고 한다.

 

동굴에는 예쁜 고양이 두 마리 놀고 있길래 가져온 점심을 먹으면서 나눠주고 안아주고 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그때 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더란다. 마을 처녀들이 놀라 냅다 뛰어 산을 내려왔는데, 얼마나 정신 없이 내달렸는지 신발도 벗겨져 온데간데없고 도시락이고 산나물 보자기고 할 것 없이 모두 동굴에 두고 왔는지 없더란다. 

 

다음 날 마을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는데, 산에 나물 캐러 갔던 처녀들의 집 문간에 도시락과 나물 보자기와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고 한다. 새끼들에게 먹이도 주고 귀여워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까? 이게 호랑이의 보은이라고 할 만한 그런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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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 친미, 친일, 친북

친박, 친미, 친일, 친북. 이 친(親)에 대 생각좀 해보자.
<친>은 '친하다'는 뜻이다. 친구가 뭔가? 친구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사귄 사람을 말한다.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인데 말이 통해 술 한 잔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고 바로 친구가 되는 건 아니다.

 

이명박은 "친박"도 싫고 한자어 "친"보다 영어가 더 좋았는지 정책 모토를 "친기업", "친자본가"라는 말을 쓰지 않고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라고 불렀는데, 중앙일보는 이걸 "기업 친화적"이라고 해석했다. 기업 친화적이란 말은 모든 정책의 근본이 자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친박"은 "친미"나 "친일", "친북"과 좀 다르다. 친박은 박근혜와 친하다는 거지만 친일이나 친미, 친북은 누구와 친하다는 말일까? 아마 미국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 북한 사람들과 친하다는 말이 아닌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러면 여기서 "친"은 도대체 친한 대상이 누구라는 말인가?

 

당연히 친미와 친일, 친북에서 친한 대상은 모두 미국의 지배자들, 일본의 지배자들, 북한의 지배자들이다. 다른 말로 하면 미국과 일본과 북한의 대, 내외 정책과 친하다는 말이다. 박사모가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저들에게 미국은 곧 부시였고 클린턴이었으며 오바마였고 이제는 트럼프다. 

 

이참에 친북단체나 북한과 친한 사람들도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종북이든 친북이든 신념과 사상의 문젠데 누가 친북이든 종북이든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단지 이들이 친하다고 하는 그 대상이 북한 민중이 아니고 북한의 지배자들이고 그들의 대, 내외 정책이라면 한 번 스스로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를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궁금해서 그렇다.

 

[책과 삶]본심 감춘 인민들의 ‘무대’ 북한을 고발한 그, 누구일까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172045015&code=960205#csidxc378fbcea43ae8b8704a0efd0a57b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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