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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불가능의 예술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5272053005&code=960205

불가능의 예술 / 바츨라프 하벨 지음·이택광 옮김

Paul Wilson이라는 사람의 영역을 번역했을 텐데, 체코어 전공자가 번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책과 삶]벨벳혁명 지도자 하벨이 토해 낸 ‘양심의 소리’

문학수 선임기자 sachimo@kyunghyang.com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인민들은 봉기했다. 이른바 ‘프라하의 봄’이었다. 잠시 체제의 개혁이 진행되는 듯했으나 소비에트 탱크의 침공을 받으면서 자유의 꿈은 사라졌다. 소비에트는 ‘정상화’라는 기치를 내걸고 다시금 전체주의를 복원했다. 이 과정에서 극작가 바츨라프 하벨은 반체제 작가로 낙인찍혀 요시찰 명단에 올랐다. 그의 작품은 국내에서 금지됐고 오히려 나라 밖에서 주목받으며 공연됐다. 그러자 하벨은 극작을 뛰어넘는 정치적 저항에 뛰어든다. 인권 존중을 외치며 1977년 일어났던 ‘77헌장 운동’의 중심에는 하벨이 서 있었다. 물론 그는 투옥됐다. 하지만 저항 의지는 꺾이지 않았으니, 감옥에서 쓴 그의 글들은 지하 출판물의 형태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1989년, 동유럽 공산체제가 무너지던 그 해에 프라하 광장에서 인민들의 시위를 이끌었던 지도자는 하벨이었다. 11월19일 프라하 광장에는 약 20만명의 시위대가 집결했고 이튿날에는 두 배가 넘는 인원이 모였다. 이 대대적 시위는 거의 12월 말까지 이어졌다. 당시 하벨이 보여준 카리스마의 뿌리는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았던 지식인으로서의 양심, 아울러 그의 글에 언제나 담겨 있던 인도주의 정신이었다. 시위대는 하벨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따랐다. 결국 12월28일 당은 일당제 포기를 선언하면서 권력을 내려놨다. 약 40일간 이어진 무혈의 혁명은 그렇게 인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아무도 피를 흘리지 않았기에 이른바 ‘벨벳혁명’으로 불린다.

 

이 책은 벨벳혁명의 지도자 하벨, 탈공산화 이후 체코슬로바키아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으며, 1993년 슬로바키아와 분리된 이후 체코의 첫 대통령으로 재신임된 그의 연설문집이다. 대통령 선출 이틀 뒤인 1990년 1월1일의 ‘신년사’부터 1996년 프라하 공연예술 아카데미에서 행한 연설까지 모두 35차례의 연설 원고를 실었다. 한마디로 요약해 그의 정치철학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육성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연설문들은 다른 정치 지도자들처럼 참모들이 대신 써준 것이 아니라, 하벨 스스로 펜으로 꾹꾹 눌러 쓴 육필이다. 정치에 대한 철학적 통찰은 물론이거니와 빼어난 문장에서도 그의 남다른 ‘깊이’를 느끼게 한다.

 

책에 수록된 글들은 자신의 생각을 치장하거나 에둘러 말하지 않는 까닭에 쉽고 곡진하다. 때로는 ‘인간 하벨’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글도 있다. 예컨대 그는 대통령이 된 지 6개월쯤 뒤에 한 연설에서 이렇게 털어놓는다. “마침내 (내가 대통령이 됐다는) 이 모든 일들이 현실감으로 다가오면서 제게 뜻밖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집무실로 들어서자마자 기분이 급격히 우울해졌습니다. 깊은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를 지탱했던 모든 생각과 목표, 기술, 희망, 결의를 한순간에 잃어버린 것 같았습니다. 자신감을 잃고 맥이 빠진 것은 물론이고 상상력이 고갈됐다고 느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맡겨진 과업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한번도 제대로 숙고해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감정의 심연 어딘가에 두려움이 놓여 있었습니다.”

 

물론 책의 핵심은 ‘실천도덕’으로 불리는 하벨의 정치철학이다. 그에게 정치란 ‘통치의 기술’이 아니라 ‘도덕의 실천’이었다. 그는 이 답답한 현실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역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적 책임감, 현존하는 것 위의 어떤 것에 대한 더욱 높은 책임감을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치란 권력의 기술이 아닙니다. 저에게 정치란 주어진 이데올로기나 이념도 아닙니다. 정치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행위도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정치는 세계를 책임지고자 하는 개인의 도덕에 근거합니다.”

 

혹자는 그의 정치론을 예술가적 이상주의로 일축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신의 도덕적 정치철학을 끝까지 실천하며 살았던 하벨에게 정치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심원한 지점을 내다보지 않는 정치는 기득권 나눠먹기, 회유와 협박, 조작과 기만에 물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벨에게 정치란 도덕적 양심에 기반한 “불가능의 예술”이다. “양심은 인간 존재에 잠들어 있는 신이며, 우리는 이 신을 믿어야 합니다. 다가오는 시대에 필요한 것은 달라야 합니다. 양심이 이성을 능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리는 어느새 길을 잃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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