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만에 아니, 거의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밤을 새며 소설을 읽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마치 쥐새끼가 문지방을 갉아 먹듯이 읽어 나간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급하게 쉼 없이. 이렇게 열정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다.
그저 책을 읽는데도 체력이 요구된다. 특히 소설은 더 그렇다. 문장을 읽어가면서 일정하게 호흡을 유지하며 리듬을 맞추고 그 리듬에 따라 문장을 천천히, 또는 빨리 읽으며 문장들 사이의 연결점과 단락의 맥락을 내 심장의 호흡과 일치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매번 소설을 찾아 읽으면서 이런 식으로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발견하는 것은 아주 드물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책을 읽을 때 이런 식으로 리듬을 맞추며 읽는 게 점점 어려워진다.
지난여름인가, 이 책을 도서관에 신청해 놓고 빌려 읽지 않다가 체념하듯이 스피노자를 덮고 이 책을 빌려 왔다. 어제 서울에 올라가는 기차에서, 회의 중 휴식시간에, 그리고 내려오는 기차에서, 늦은 밤에 들른 술집의 바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며 읽었다. 술이 엉망으로 취해 집에 도착해서 또 읽었다. 덕분에 하루 종일 잠을 잤다.
늦은 시간 학교에 올라와 다시 책을 끄집어냈다. 읽을까 말까를 잠시 망설였다. 점점 읽기가 버겁고 책을 덮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제프와 파멜라가 자신들의 비밀을 폭로하고 정부가 국가안보를 핑계로 두 사람을 구금하여 정보를 캐내기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한 페이지를 읽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이제 두 사람은 이전처럼 사랑하며 지낼 수 없을 것이다.
그리움에는 그 애틋함만큼이나 잔인함이 묻어 있다. 그리워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리운 것이다. 그리운 마음의 끝에는 분노만 남기 마련이다. 슬픈 감정은 행위 능력의 감소를 의미한다. 존재의 불완전성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말처럼 “감정이 자신의 근원이 되는 관념으로 되돌아올 때, 기쁨은 사랑이 되고, 슬픔은 증오가 된다.” 사랑은, 잃어버린 사랑은 그래서 잔인하다. 이별은 서로에게 복수인 셈이다.
때로 그렇다. 어떤 책은 읽기를 중단하고 덮어 둔다. 그러다 한주 또는 그 이상 읽지 않다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책을 펴기도 한다. 그러면 완전히 새롭게, 이전과 같은 몰입과 열정을 버리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읽을 수 있다. 겨우 100 페이지 정도가 남았는데, 책을 덮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렇게 힘들구나. 삶이. 사랑이.
슬픔은 기쁨처럼 원인이 있죠. 그리움은 깊은 슬픔때문이 아니라 그리움때문에 슬픈거겠죠. 생각할때 순서를 지키세요.
세번째 daydream은 제가 쓴게 아녜요. 어차피 로그인해도 댓글에서는 비로그인과 차이가 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