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일까? 이렇게 가슴이 설레다니.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태풍이건 비가 오건, 구름이 끼건 어떤 경우든 흐린 날을 싫어했는데, 아, 이런 마음이 바로 그 마음이 아닌가! 가슴에서 간질거리는 즐거움이 움찔움찔 솟는다. 참 이상도 하지. 마치 첫 데이트를 앞둔 소년처럼. 웃기지도 않게.

비가 와도 울적하지 않고, 바람이 부는데도, 태풍이 와도 싫지가 않다. 이번 여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뭔가 일어날 듯한.

... >2007-07-14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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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 13:29 2011/10/13 13:29

올해는 부쩍 나이 든다는 생각에 서글픈 마음이 더하다. 언젠가 아버지 말씀이, 나이가 "ㄴ"밭침으로 끝나는 순간 세월이 화살처럼 지나 간다더니 정말 실감난다. 아마 벌써 40 고지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까?

고3을 앞둔 조카에게 종종 잔소리처럼, "니가 뭘 하면 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라." 그러면 조카는 당돌하게 되받아 친다. "삼촌은 그 때 그런 생각해봤나?" 하긴 나는 그 나이에 전혀 그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 좋아하는 걸 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좋아하는 게 바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엄청난 착각.

아다치 미츠루의 청춘만화를 보면서,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 자문해보지만 앞으로 살아 갈 날이나 살아온 날이나 비슷해진 상황에서, 아니 오히려 살아 갈 날이 더 적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문해 본다. 도대체 뭘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이래 저래 위안이 되는 글 하나.


원문 출처 : www.minchu.or.kr

그대들에게 묻노라. 해는 가더라도 반드시 새해가 돌아오고, 밝은 낮은 어두워져 밤이 된다. 그런데 섣달 그믐밤을 지새는 까닭은 무엇인가? 소반에 산초(山椒)를 담고 약주와 안주를 웃어른께 올리고 꽃을 바쳐 새해를 칭송하는 풍습과, 폭죽을 터뜨려 귀신을 쫓아내는 풍습은 그믐밤을 새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침향나무를 산처럼 쌓아 놓고 불을 붙이는 화산(火山)의 풍습은 언제부터 생긴 것인가? 섣달 그믐밤에 마귀를 쫓아내는 대나(大儺)의 의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 함양(咸陽)의 객사에 주사위로 놀이하던 사람은 누구인가? 여관방 쓸쓸한 등불 아래 잠 못 이룬 사람은 왜 그랬는가?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을 시로 탄식한 사람은 왕안석(王安石)이었고, 도소주(屠蘇酒)를 나이 순에 따라 젊은이보다 나중에 마시게 된 서러움을 노래한 사람은 소식(蘇軾)이었다. (…) 사람이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다투어 기뻐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원컨대, 세월이 흘러감을 탄식하는 것에 대한 그대들의 말을 듣고 싶다. [이명한, 백주집 권20, 문대(問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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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 13:25 2011/10/13 13:25

하루 하루 살다보면 내가 왜 사는지 잊어버라곤 한다. 젠장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도대체. 반성없이 산다고 불평하지만, 사실 매일을 반성하며 산다는 건 또 얼마나 고통인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삶을 아쉬움없이 마감할 수 있으리라. 자살하는 사람들의 동기야 알 수 없지만, 나는 아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끔찍한 바램인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자살한다는 건 어린애들보다도 못한 퇴행적 발상이 아닌가? 지금으로선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내 자신에게 위로조차 건넬 수 없을 것 같다. 누구에게라도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위로받을 수 있을까? 아니, 누구라도 그런 말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지금 당장 행동하라.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고 시도하는 행동이 가장 어렵다.

"나는 왜 그 때 가슴아린 기억이 없을까" 어느 날 메모지를 클릭했을 때 내가 사실은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감상적인 인간이라는 걸 알았다. 돌이켜보면 남아있는 건 가슴아린 기억들 뿐인데.

나는 남에게 얻어터지게 맞아본 적이 없다. 나도 누굴 그렇게 때려본 적도 없다. 그래서 육체적으로 고통스럽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살을 째고 서서히 마취가 풀릴 때의 아픔 같은 것일까? 하늘이 빙빙돌고 발이 픽픽 꺽이면서 어두운 아스팔트 위로 내팽개쳐진 것처럼 느꼈을 때 그런 걸까? 도대체 고통스럽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아직도 아오이가 잊혀지지 않는다." 과거를 잊지 못하는 것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쾌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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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3 13:18 2011/10/13 1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