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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12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해방누리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이번설에 시골내려가서 할머니에게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됐다.

우리 할아버지도 1942년 정도에 일본 북해도로 징병으로 끌려가셨다.
그리고는 해방이 되고도 1년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돌아오셨다.

그러나 얼마후에 625가 터졌다.
그런데 놀라운건 우리 할아버지가 625때 인공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태백산맥에 나오던 이름모를 수많은 빨치산들속에
우리 할아버지도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왜 인공에 가담했는지, 어떤일을 했는지 알수는 없지만
인공에 가담했다는 것만으로도 왠지모를 흥분을 가져왔다.

그러나 1.4후퇴 이후 경찰과 국군의 인공 색출작전으로
할아버지는 산속으로 몸을 피해야 했다.
그러자 경찰들이 집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당시에 5~6살 먹은 아버지는 경찰들이 무서워서
항상 대문밖에서 경찰이 오는지 않오는지 동구밖을 지켜봤다고 한다.
그리고 밥먹을때도 항상 할아버지 밥을 남겨서
밤에 몰래 할아버지가 집에 오면 먹고가라고 내놓았다고 한다.

며칠후 경찰들은 결국 할머니를 잡아가서 3일동안이나
채찍을 휘두르며 숨은곳을 데라고 고문하셨단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죽을 각오로 끝내 얘기를 하지 않았다.
등쪽에 살점이 뜯겨나가서 1주일동안은 바닥에 등도 대지 못하고
옆으로 누워서 잠을 자야했다고 하셨다.

그러자 이번에는 경찰들이 우리 할아버지의 형(큰아들)을
잡아가려고 한것이다.
이에 놀란 상할아버지가 결국 할아버지가 숨은곳을 알려주었고,
할아버지를 비롯한 동네 사람 3명도 같이 잡혀갔다.

그길로 우리 할아버지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총살당하셨다.
할머니는 시신이라도 찾으려고 한달동안이나 남몰래
주변을 찾아나셨지만 결국 시신을 찾진 못했다.
할머니 말로는 그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고 한다.

그런데 더욱 억울한 것은 이일을 계기로
상할아버지가 할머니와 어린 우리 아버지를 집에서 쫓아내신 것이다.
참고로 우리 상할아버지네는 그당시에도 먹고살만했으며
큰아들과 그 아들도 모두 학교를 나와서 지금은 출세해서 잘살고 있다.

그렇게 맨몸으로 쫓겨난 할머니는 곧 재혼을 하게 되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평생 일만 하시며 살아야 했다.
아버지 또한 초등학교 근처도 못가본채 평생 농사를 지으며
죽도록 고생만 하셔야 했다.

세월이 지나서 몇년전에 큰아버지가 할아버지의 일제 징용에 대해
보상신청을 했으나, 인공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탈락됐다고 한다.

여기까지가 이번에 듣게된 놀라운 할아버지 얘기였다.
할머니는 의외로 담담하셨다.
하도 오래전의 일이기도 하지만, 그동안의 모진 고생으로
가슴에 맺힌 한들이 응어리진 탓이기도 할것이다.

한동안 머리와 가슴속이 멍했다.
일본에 끌려가 갖은 고생끝에 귀국하게된 할아버지
부조리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의 길로 함께한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를 지키고자 고문도 마다않던 할머니
어린나이에도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밥한그릇 남길줄 알았던
우리 아버지,
자랑스런 할아버지를 두고서도 떳떳하게 드런내지 못하고
오히려 평생 가난에 찌들려 고생해야 했던 우리 아버지...
그리고 이제야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나....

갑자기 태백산맥이 생각난다.
수없이 죽어간 이름모를 빨치산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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