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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3/27
    봄날(2)
    heesoo
  2. 2005/03/26
    어떤 투쟁(2)
    heesoo
  3. 2005/01/26
    오늘
    heesoo
  4. 2005/01/16
    잠깐 휴식(3)
    heesoo
  5. 2005/01/09
    울산...다시 서울
    heesoo
  6. 2004/12/23
    그녀들에게
    heesoo
  7. 2004/11/26
    지금, 2시 39분...(1)
    heesoo
  8. 2004/11/23
    해방글터-피티팬들....
    heesoo
  9. 2004/11/23
    미래완료의 시간 속에 산다.(3)
    heesoo

봄날

검은 자켓이 무안할만큼 날이 따듯해졌다. 이런 날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지금 생활의 변화 가능성에 대해 잠시 생각해봤다. '신문사를 나와 현장에 들어가면...운동을 그만두면..." 딱 두가지의 길 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주변환경에 의해 하루에도 수십번씩 뒤바뀌는 기분을 가지고 한가롭게 장난치는 것도 이제는 재미가 없다. 요즘에는 생각이 과거로 과거로 되감기는 것도, 너무 빠르게 앞서가는 것도 둘다 공허할 뿐더러 현재상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마저도 불충분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마치 그네타며 괴성을 지르고 미끄럼틀에서 거꾸로 내려오는 아이들이 순간순간을 즐기고 그 기분에 충실하며 사는 것처럼 그렇게 맘 편하게 지내고 싶다가도,

크게 굴곡 없었던 지난날들을 배신할 무언가가 곧 닥칠 것 같다는 괜한 근심걱정이 머릿속을 하얗게 뒤덮는다. 기회가 찾아오고 그것을 잡고 위기를 피해가고 이 모든 것이 우연처럼 펼쳐진 불과 몇 년전. 이젠 주위의 불안정함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

그러나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

무엇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이

그 필요한 것을 찾은 경우,

그것은 그에게 주어진 우연이 아니라

그 자신이다.

그의 욕망과 필연성이

그를 인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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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투쟁

3.21 서대문에 도착했을 때 지상에서는 소복입은 여성노동자들의 비명이 울리고 허공에는 바람에 펄럭이는 작은 플랑과 세명의 노동자가 매달려 있었다. 집회 중간중간 노동자들은 웅크려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

'여성'에 악센트가 찍힌 여성노동자란 지칭이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우선 '연약한' 등의 불필요한 수사어를 동반시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여성노동자들의 존재와 그들의 투쟁을 특수하게 인식하는 것이 과연 어떤 운동적 의미를 지닐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만 전에는 자본주의에서 여성노동의 성격과 성구별에 따른 노동착취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물음이었다면 지금은 그것이 노동운동에서 특정한 운동전략을 요구하는 것인가의 문제(노힘 기관지에 노동운동에서의 여성주의 전략이란 글이 실렸다)와 그렇다면 여성운동과의 관련성 경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

 

[전국경찰청고용직공무원노동조합]. 투쟁조끼에 쓰여진 조직명칭이 길어서 한참을 보았다. 화장실 갔다 만난 조합원 두명과 얘기를 나눴다.

"노조는 설립된지 얼마안됬나 봐요."

-네 작년에 만들어졌어요

"동지들이 요구하는 특별기능직은 뭔가요, 정규직화인가요?"

-아뇨 지금도 정규직이에요, 사람들이 비정규직의로 오해를 많이해요.

"올라간 동지들은 간부들인가요"

-한명은 부위원장, 지부장들이에요.

"전국공무원노조랑은 별개의 조직인가봐요?"

-네 다른거에요. 경찰청에서 노조만든데는 우리가 첨이예요.

 

올라가는 내내 낙사할 것만 같은 공포를 감수하고 거기에 올라간 이유는?

'똑똑히 잘 보라고, 우리의 투쟁을' 

높은 곳에 오르지 않으면 아무도 쳐다봐 주지 않기 때문에 오른다.

 

수많은 사회 이슈가 날마다 팡팡 터지는 속에서 작은 투쟁들은 대중들에게 쉽게 알려지지 않고 또 결과와 무관하게 잊혀지고 더러는 매장된다. 2,3년 전에 특히 비제조업 분야에서 봇물터지듯 크고 작은 비정규직의 노조결성과 투쟁의 물결이 일었다. 허약한 노조들은 거의 해체됐고 그나마 제대로 싸운 투쟁은 주체 몇명이 활동가로 남았다. 대부분이 계약해지와 부당한 재계약에 맞선 투쟁이었고 거의가 한번쯤은 고공농성같은 이슈투쟁을 전개했다. 싸우는 자본이 크던 취약하던 해결될 기미가 안보이면 이슈화와 사회쟁점화를 위한 전술을 고안하고 본사빌딩에 매달리고 단식을 하는 등  결사적 의지를 보여주는 투쟁으로 사측을 압박했다.  

 

세명의 노동자들은 11시간만에 사다리에서 내려왔다.

옆에 있던 한 동지는 '노조관료들이 계급투쟁의 완충장치로 기능하는지를 똑똑히 보여준 투쟁'이라며 분개했다. 나도 도착해서 투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내려올 시점과 명분을 저울질 하느라 연맹관료들이 벌인 브로커 짓을 같이 보았기에 맞는 말이라고 끄덕였는데 문득 우리에게는 관료들에 의해 접힌 투쟁이지만 한편으로는 어쩌면 막 투쟁하기 시작한 경찰청 고용직 동지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의미일 수도 있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3명의 동지들이 내려왔을때 조합원들의 반응을 놓쳤지만 그리고 연맹관료들의 영향력이 물리적 의식적으로 깊숙히 개입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무튼 그 동지들의 판단과 결정이 아예 배제된 투쟁이 아니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모든 투쟁의 경험이 노동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투쟁이라도 노동자들을 단련시킬수도 패배감에 찌들게 할 수도 있다. 그것은 끝까지 미는가 아닌가, 많이 따냈는가 아닌가라는 문제라기 보다 투쟁을 둘러싼 전반의 조건과 관련된 문제이다. 

또한 실제로 어떤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한 구체적 목적성을 띤 투쟁임에도 결국은 주체들의 기억 속에 그 투쟁이 어떻게 남겨지냐가 더 큰 문제일 수있다. 그래서 그 과정도 중요하지만 평가에 더욱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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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언 도로를 설설 기는 차 안에 갇혀 차가 벼랑으로 굴러떨어졌으면 했다. 그런데 그런 일은 나한테 결코 일어날 것 같지않아 포기했다. 불현듯 나이든 한 동지가 "우리는 이제 빠져야지"라면서 시선을 내쪽으로 두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 저의가 무엇이던간에 나는 그 말이 백 번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무력감이 밀려와서 그게 하루를 넘겨 이튿 날까지 계속되자 잠시 내가 돌았나 했다.

달력을 보니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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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휴식

1/ 주로 술상을 두고 가해지는 정치적 공격은 여전히 소리없는 폭력으로 다가온다.

내자리, 주위사람들을 가장 먼저 의식하게 된다. 나의 흐릿한 태도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변명을 낳고 또하나의 부담이 가슴에 얹힌다.

경험에 의존할 수 없다면 대담해지는 것이 최선이다.

동지의 말대로 운동을 하면서 겪는 모든 것들이 '훈련과 성장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가져와야 한다. 미리 준비할 수 없다면 긴장이 몸에 배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반겨주지 않아도 집요하게 달라붙고 줄기차게 노력하는 것, 그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해야 한다. ~할 수 밖에 없다. 내가 잘 쓰는 서술어

  

반듯한 신문을 받아들고 당장은 감내해야 할 것들에 머리가 무거워진다. 

그것은 현실의 패배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없이 낙관과 무조건 전진을 강변하는 어떤 논리도 무의미하다. 그런데 나아갈 길을 밝혀줄 단초가, 무언가가 부족하다.

 

2/ 자기 손으로 벌어 먹는 것만큼 어려운게 없다고 한다.  

사귀고 싶은 사람 앞에서 마저도 계산에 넣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기에.

오늘 만난 두사람은 음식을 안먹고 휘젓으며 "이제 몇 살?"이라고  묻는다. 뒤이어 "너는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한다. 그 앞에 "자기 손으로 벌어먹고 사는게 자존심의 문제일 때까지만" 이란 말을 나는 억지로 끼어 넣는다. 

가장 도덕적이고 우월한 일이 개인의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 그런걸 당연한 듯이 받아 안고 사는게 새삼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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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다시 서울

뻔하지 않으려면 더 예리해야 한다  

대중의 가슴을 두드리는

'간명'하고 '박력'있는 선동

 

...항상 방문객으로 왔기에 울산이 낯설지 않은 적은 한번도 없다

유심히 차창으로 바라본 굴뚝연기와 하늘도 마치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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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에게

어떤 후배가 작년 겨울에 목에 감고 다녔던 줄무늬 목도리를 지하철에서 발견하고는 검은 매니큐어를 발랐던 다른 한 후배의 얼굴도 동시에 떠올랐다. 답답한 회의를 지켜보다 새벽에 갔던 엠브란스병원 응급실 바닥의 바퀴벌레도 기억났다. 그 병원에서 연희동 쪽으로 가다보면 나오는 고시원 문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포스트잍에 쪽지를 써서 붙이고 나오면서 이미 나는  손을 탁탁 털었다.

만약에 다시  찾아온다면 외면을 할까 또 다시 굳은 얼굴로 마주볼까. 지하철 계단을 오르면서 그녀들의 원망을 상상 해본다.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나름대로 격정적인 4년을 보낸 그 공간이 마음에서 멀어진다

학생이라는 신분이 편한줄 몰랐던 그때는 시선을 바닥에 내리꽂고 다니는 생활이, 도서관 쇼파에서 낮잠 자는 날이 수업듣는 날보다 많은 그 일상이 빨리 끝나기를 바랬다. 

며칠전에 친구 작업실에 갔는데 그 곳의 냉기와 코를 찌르는 기름냄새가 나를 쳐다보는 친구 표정만큼이나 친숙했다. 빨간 종이비행기가 그려진 명함과 그림들은 힘좋게 나를 작업실 문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선후배 동기들 동아리 교수 작업...

되살리려하지 않으면 안 떠오를줄 알았던 기억이 죄다 머리속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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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2시 39분...

회의를 몇시간 앞두고 빈 시간을 땜질하듯이 멍하니 앉아있다가...

운동의 발전이 질곡받는 이유는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종국에 다다르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문제다. 

현재 우리 운동이 요구하는 바에 부합할 수 있는 역량과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음에 괴로워하지만 그것 자체가 능력을 길러주는 것은 아니기에

언제나 중요한 것은 오늘을 어떻게 사는가, 현재 당면한 문제를 무엇으로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로 되돌아오게 된다.

몇년 전부터 지금까지 각각의 항목에 따른 몇가지 그래프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게 필요할 수도 있겠다.

레닌이 러시아 당건투 시기에 수없이 강조했던 "지도자들의 훈련의 결핍". 

하지만 역량의 질적 강화를 위한 파워프로그램이 어디 단시간에 개발될 수 있는 것인가. 매사 운동의 발전이 요구하는 과제에 충실하고, 현실에 용기있게 부딪히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단순하지만 자명한 결론이자 진리이다.

던져진 임무에 대해 심지어 자신이 당당하게 내뱉은 것에 대해서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어떠한 대중적 압박도 존재하지 않는 그러한 어려운 운동의 상황의 상황에서 과연 어느 위치에 서 있는가가 그 사람의 운동의 진정성을 말해주지 않는가. 

 

 

내가 좋아하는 어떤동지가 전에 말하기를

"고립감과 무기력감에 빠져있다는 것은 객관정세를 핑계로 나약함에 물들어 있는 것의 반영인 것 같다.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실패와 패배,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이겨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패배감이다. 그릇된 수치심을 가질 필요도 없고... "

 

그 동지가 보고싶다...



***힘이 들수록 주위 동지들을 살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자. 어려워도 티 안내고 항상 웃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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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글터-피티팬들....

해방글터 피티팬들이 모였다.

조선남...김도수...조현문...신경현...김영철...임채희

 

낭송에 이은 토론과 퇴고와 교열,,,지루한 듯 하지만 하품은 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의 논쟁은 유려한 말발을  세우지 않지만 결코 공허하지 않다. 

 

노점상에서 바라보는 혁명전야의 풍경.

비닐봉지가 새처럼 날아가고 그 뒤를 진짜 새가 따라 날아가는

폭풍.,,,

 

그 상상력만큼 모든 것이 역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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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완료의 시간 속에 산다.

미래완료의 시간 속에 산다.

일루전(Illusion), 모든 것은 환상.
미래까지도 이미 완료된 시칭(時稱) 속에서는 아무것도 중요한 것은 없다. (전혜린의 글을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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