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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8/20
    '지금'을 설명해줄 수 없는 것
    heesoo
  2. 2005/08/08
    위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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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05/07/22
    복직된 해고자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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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5/07/18
    우울한 거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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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5/07/13
    사무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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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5/07/03
    비가 쏟아지는 집회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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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5/07/01
    어제를 흘려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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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5/05/08
    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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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5/05/06
    핀란드역까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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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5/03/29
    사보 농성장에서
    heesoo

'지금'을 설명해줄 수 없는 것

"일반적으로 역사는, 그 중에서도 특히 혁명의 역사는 항상 가장 우수한 정당과 또 가장 선구적인 계급이, 가장 계급의식이 투철한 전위들이 상상하는 것 보다도 그 내용이 더 풍성하고 더욱 다채로우며 더욱 다면적이고 더욱 활기차고 '미묘한' 법이다. 이런 점을 납득할 수 있는 것은 가장 뛰어난 전위들이 표출시키는 계급의식과 의지, 열정, 환상에 의해 인간의 온갖 역량이 그 절정으로 치솟아 발휘되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레닌, 좌익소아병 中-

 

***

 

지금 누가 혁명사업-혁명을 위한 사업이다-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갈수록 심화되는 박탈의 경험,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지 못하는 주체의 혼란. 

낡은 것에 대한 취급과 그에 대한 비판에서 한 걸음 나아가기가 어.렵.다. 

역설적이게도 다행인 것은 잃어버릴 대중의 지지라는게 없다는 것. 그러한 현상을 핑계삼자고 그 누구도 얘기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인텔리들의 고질적인 '내향화'가 극복되지 않고 있다.    

역사의 기록장에 아주 적은부분, 별 의미없는 페이지를 차지할 '한 시기'의 주인공이 아니려면, 무엇을?    

우리의 사업. 그 시작종을 울리면서 겪게되는 복잡한 갈등.   

 

***

 

실망과 논쟁과 오해를 거듭하는 속에서도 "건강한 아기의 출산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잡지발간을 기대하고 있다며, 나이든 한 동지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해 함께 하고자 하는 의지와 흔들림없는 전망을 공유하자"고 메일을 보내왔다.

그 동지는 일산에서 중단된 현장조직을 복구하기 위한 사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어딘가에서 다들 실천에 착수했다. 공상으로 대체될 수 없는 그 전망이라는 것과 결합되는 것이 문제다.

...그래도 모두가 열정을 갖고, 혁명사업에 매진하고 또 나름대로의 창조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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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바람부는 저녁의 거리, 사방이 트인 노점상 구석에 앉아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 풍경이 그림같다. 한쪽에서는 두 시인이 구소련 사회의 성격에 관하여 논쟁을 벌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다른 한 시인이 족발을 능숙하게 썬다.

바로 이런 것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힘들지는 않지만 어려운 운동의 과정에서 행복이란 건 결코 특별한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발로 뛰고 마음으로 시를 쓰는, 사회주의를 갈구하지만 소시민의 삶을 사는, 나만 한 딸을 둔 한 동지 그리고 사모님의 말 하나하나가 가슴에 와닿는다.

"꽃보다 뿌리가 되자" 지금은 열매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줄기가 충실하게 자랄 수 있도록 부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뻗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중의 언어로 쓸 수 있어야 한다.

새삼스럽지 않지만 늘 망각하는 것들. 그들이 일깨워 준다.

 

/올 여름 먹어본 콩국수 중에서 제일 맛있는 콩국수. 가시가 별 같이 반짝이는 선인장.  미지근한 술을 마시고 일어선 시각은 자정. 용기내어 전화하려다 버스를 타고는 곧 잊는다. 이런 것이다. 건조한 이념에 서정성을 불어넣는 시인같은 재주는 없어도 내 안에서 어느새 감성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것을 가끔씩 느낀다. 또 공평하게도 현실이 그것을 마치 없었던 것처럼 곧 뒤덮어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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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된 해고자를 보면서

9시 뉴스를 귀로 흘려듣고 있는데 "8년 만에 근로사업장으로 돌아가게 된" 이란 아나운서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환하게 웃는 김석진 해고자의 얼굴이 화면을 메우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김석진 동지의 흥분된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나는 "축하드린다"라는 애매한 표현 외에는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 어떤 말이라도 그에게는 상관없었을 것이다. 울산으로 내려오면 꼭 연락달라는 말에 그러겠노라고 하고 전화를 끊는 순간 통신에 올라온 두 따님의 사진-이마에 투쟁머리띠를 두른-과 그 귀여운 얼굴들이 스쳐지나갔다.

 

***

 

박은영의 <거리에서>를 우연히 들으며  '노동을 잃은 손이 허공에서 흔들리며 나와 함께 걷고있는' 풍경을 다소 낭만적인 인상으로 갖고 있었던 부끄럽고, 철 없던 새내기 시절이 있었다. 구로 오트론 투쟁에 결합하고 있을 때였건만 해고를 당해보지 않은 내가 그 참담함을 알 리 없었다.

 

그 이후로 가차없이 자신을 내던지는 외로운 복직투쟁을 지켜보면서...어떻게 해고자 투쟁의 '원칙'과 '방도'가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자본과의 투쟁에서 최전선에 섰던 투사들의 헌신과 희생의 댓가가 왜 피폐하고 곤궁한 삶, 공장 안 대중과 절단 된 경험일 수 밖에 없는지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벤처기업에서 해고된 한 여성노동자의 다리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파스, 마지막으로 전하문 앞에서 본 청산된 현대중공업 해고자들의 덩그란 콘테이너, 건강보험공단 앞 너른 해방광장 중앙에 대열정비하고 선 해고자들의 굳은 어깨, 경찰청 고용직 조합원들의 때 탄 상복...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이 해고자 투쟁의 상징이다. 일상적이고 노골적인 탄압을 마주하고서도 버티고 있는 것은 돌아갈 곳이 일하던 곳 밖에 없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해고자들이 싸움에서 지고 굴복하는 순간 민주노조 운동도 한발짝 뒷걸음친다는 것을 그들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해고자들에게 언제나 싸움에서 최선봉에 설 것을 요구했지만 투쟁이 끝나면 연대책임은 오간데 없었다. 현장 안 조합원들과 함께할 것을 강조하고 그렇지 않으면 해고자 투쟁은 말그대로 '복직'투쟁에 그칠뿐이라고 강조하지만, 현장과 연계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조합원들이 해고자 문제를 자신의 문제와 요구로 받아안을 수 있도록 교육하고 설득하고 작업은 부차화되었고 투쟁 속에서 단련된 해고자들이 운동의 소중한 자원이 될 수 있도록 참여시키고 조직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은 망각되었다.     

 

김석진 해고자는 현장 조합원들의 힘과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법적 투쟁으로 승리했다. 이것을 김석진 해고자는 한편으로는 수치스러워했지만 그러할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현실조건이 존재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장과 결합이 여전히 해고자 투쟁의 '원칙'과 방향이 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부딪히는 현실적 어려움-자본의 회유와 노조의 회피, 대중들의 무관심, 생계적 열악함-은 모든 활동가들이 감당해야할 몫일 밖에 없다.  

 

"적들이 바라는 것은 “물 떠난 물고기”다. 그래서 이 물고기가 숨을 쉬지 못하고 하고 말라 비틀어 죽게 만드는 것이다. 대중들의 고통, 울분, 분노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고된 노동에서 벗어난 상태를 즐기게 하며 또는 잔인한 고통(조합원들과의 분리, 극심한 생활고)을 겪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투쟁전선에서 떨어져 나가게 하거나 조금씩 마모시켜 투쟁정신을 거세하는 것이다. 해고자들은 이런 악조건에서 벗어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모든 활동의 초점을 대중과의 밀착에 맞추는 것이다. 대중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대중의 환희를 자신의 환희로 삼고 아무리 고난한 시기에 처하더라도 대중과 함께 있으며 대중의 선두에 서고 있다는 것을 실천적 행동을 통해서 입증해야 한다. 모든 문제에서 그렇듯이, 해고자 투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기초는 대중과 밀착하고 대중의 다수를 획득하는 데에 있다.  해고자로서 활동해야 하는 시기는 고난의 시기다. 하지만 이 고난의 시기야말로 대중과의 밀착이 수천배나 더 강렬히 요청되는 것이다. “사람은 가장 고난한 때에 진실한 동료를 안다! ” 대중과의 결합을 통해, 그리고 선두에 선 투쟁을 통해 “가장 진실한 동료”로 자신을 입증한다면 대중들은 과감한 반격으로 응답할 것이다! 자본가의 해고를 투쟁의 불화살로 돌려줄 것이다! 그때 우리 해고자들은 이 불화살을 타고 현장에 승리자로 입성하면 된다!"

 

"...다수의 해고자들이 복직하거나 아니면 오랜 인내의 시절을 견디지 못하고 투쟁에서 멀어짐으로써 지금 해고자 투쟁은 과거에 비해 작은 힘만을 발휘하고 있다. 그럼에도 해고자 투쟁의 중요성은 지금도 분명하다. 해고자 투쟁은 우리 노동운동의 전통과 정신을 사수하면서 앞길을 열어나가는 가장 단호한 투쟁으로 항상 기록되어야 한다. 그리고 다음을 명심해야 한다. “운동의 선두에서 가장 가혹하게 탄압당하고 있는 해고자들이 이 난관을 뚫고 더 멀리 전진하고 단호하게 투쟁한다면, 이것이 미칠 효과는 거대하다. 왜냐하면 그 어떤 탄압도 노동운동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점이 바로 이 해고자 투쟁을 통해 적과 우리 모두에게 가장 선명하게 증명되기 때문이다. 조합원대중이 전진하고 노동자의 투쟁 정신을 발전시키며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민주노조에 충실한 투사로 성장하는 것은 오직 이와 같은 선진투사들의 헌신과 삶을 통한 증명을 통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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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거리


 

.....마치 사무직원 같이 앉아있다. 울고싶다.

 

20세기 초 제네바에서 유인물 수송을 맡은 코스타야를 보고 레닌은 그것이 진정한 노동이었다고 되풀이해서 말햇다. 나태한 자판 두드리기와 입놀림이 아니라 진정한 노동으로 기여하며 지칠줄 모르는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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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혁명가인 것만으로는, 사회주의의 당원 혹은 공산주의자인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사슬 전체를 장악하고, 다음 고리로의 이행을 확실히 준비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 붙들어야만 하는 사슬의 특별한 고리를 매순간마다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으면 안된다"

 

***

 

탁월한 한 명이 평범한 열 명보다 낫다는 것은 어느 경우에도 옳다.

'탁월한 한 명의 혁명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새기고 또 새겨도 일시적 좌절 앞에서는 단지 미래지향적 문구로 떨어뜨려버린다....그제께 읽던 책에 실린, 레닌이 스물네살되던 1894년에 최초로 소책자를 저술했다는 연보의 기록이 그냥 기록같지 않다.

한 사람의 연보가 역사의 혁명적 한시기를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서는 안된다.

그러나 연보가 너무 길어서 놀란 것은 사실이다.  

 

일천한 경험이지만 우리의 고민과 실천의 산물, 사업의 성과와 운동의 과정에서 겪은 모든 시행착오와 시도들을 기록하고 전파하는 것 또한 다만 후대의 몫으로 남겨둬서는 안될 우리의 임무이다. 

역사적 현상 속에 때로는 그 바깥에 존재하면서도 역사가, 운동이 자신을 배반한다고 느꼈던 때가 있노라고, 누군가 그런 말을 해던 것이 기억난다. 그 정도로 나는 열심히 살 수 있을까?

 

현실과 무관한 두가지 바램이 있다.

첫째, 시대를 잘 탔으면 싶고  

둘째, 마음같은 건 없었으면 좋겠다.

 

어쩔때는 나에게 요구되는 것들을 감당하기 너무 벅차서 혹시 나에게 인간이 아닐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때가 있다.  

머리가 해야 할 것을 마음이 대신하는 경우도 있다.

 

문득 '혁명적 감수성'에 대해, 그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다. 그걸 삶 속에서 체현해내는 사람이 진짜 탁월한 혁명가다.  

 

 

 

이순화 화백의 그림.....내 두눈이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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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쏟아지는 집회장에서

고 김태환 열사의 영정을 들고 고개숙인 젊은 노동자와

우비와 밀집모자에 떨어지는 빗물은 아랑곳 하지않고 시선을 멀리 던지는 나이든 노동자

"반드시 갚아주자"    

-7.3 국회 앞 특수고용노동자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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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를 흘려 보내며

1/  그저께는 '차라리 솔직하게 실력이 없다고 하지'라는 말에 화가 솟구쳐서 또 목소리가 높아질뻔 했다. 언제부터 실력이 있고없음이 첨예한 정치적 차이를 간단하게 뒤엎는 논리가 되어버렸는가? 동일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왜 그런식으로 논쟁의 폭을 좁혀놓는 건지, 왜 다양한 모색의 길과 가능성을 닫고 '구체적인 대안'에만 집착하는 건지, 의도의 진정성을 먼저 발견하려 하지 않고 왜 혐의부터 두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왜?라는 물음은 던지기 쉽고 지적도 불만을 내뱉는 것도 쉽다.

그러나 나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다.  

  

2/ 어제 사람들과 뒷담화를 나누면서... 활동가들 사이에 존재하는 사소한 감정대립과 정치적 불신, 이런 모든 것들이 현재 운동의 난맥과 기묘하게 얽혀져 있는 것 같아 웃음이 픽픽 나왔다.

       

3/ 자극과 회초리가 없으면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금새 잊어버린다. 머릿속도 일도 엉망인채로. 그리고 사소한 계기를 통해 원위치를 찾는다. 

꽃포장지에 쌓여있는 레닌의 추억을 다시 읽어야겠다. 빈약한 이론에 감성마저 잃는 것은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4/ 몇차례 대면한 사람의 인상에서 오는 부담감과 기대감 반반.

알아 갈수록 신선한 사람이 더러 있다. 나 스스로 또한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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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5월 1일 어수선한 광화문에서 무대 옆에 서있던 땅콩같은 언니를 스쳐지나갔다.

00년, 종로거리에서 새내기인 나의 손을 잡고 대오사이를 비집고 지하도 아래로 뛰어내려갔던 나보다 키가 작은 언니. 그 언니와 동년배 선배들의 걸음은 이미 서른줄 위에 있고 어느새 나는 그때 언니들의 나이가 되었다. 

서른을 지나온 사람들은 만약 그때 개피를 봤더라도 이십대에 그걸 해봤어야 한다고 자신있게 이야기 하곤 한다. 개피를 흘린 경험이 그 이후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심리적 거리상 수킬로 떨어진 곳에서 서른살을 바라보는 한 사람은 고맙게도 나더러 서른이 오기 전에 뭔가를 해놓아야 하지 않겠냐고 점잖게 충고를 했다. 어떤 불가피한 상황과 그 상황 앞에 놓일 자신의 모양새에 대해 미리 걱정하면서. 항상 앞날을 준비하는 자세로 살라는 말로 대충 알아들었다.   

완강한 현실 앞에서 나의 버팀목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대답할 용기가 있다면, 나머지가 한참 부족하더라도 끔찍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지금은 정말 모르겠다.   

아무튼 아래 최승자 시는 다시 읽어도 참으로 가학적이다.   

먹을땐 그저 그런데 잠시 후면 손떨리게 비위가 상하는 각성제 같은 느낌.    

   

 십세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시큰거리는 치통 같은 흰 손수건을 내저으며
놀라 부릅뜬 흰자위로 애원하며.

내 꿈은 말이야, 위장에서 암 세포가 싹트고
장가가는 거야, 간장에서 독이 반짝 눈뜬다.
두 눈구멍에 죽음의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피는 젤리 손톱은 톱밥 머리칼은 철사
끝없는 광물질의 안개를 뚫고
몸뚱어리 없는 그림자가 나아가고
이제 새로 꿀 꿈이 없는 새들은
추억의 골고다로 날아가 뼈를 묻고
흰 손수건이 떨어뜨려지고
부릅뜬 흰자위가 감긴다.

오 행복행복행복한 항복
기쁘다우리 철판깔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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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역까지


 

에드먼드 윌슨/ 1987/ 실천문학사

 

오늘 만난 한 동지가 전에 읽고 싶었다던 책.

마침 <노사과연>창간호에 서평이 실렸다.

프랑스 혁명 이후 미슐레, 르낭, 떼느, 아나톨 프랑스, 바뵈프, 생시몽, 푸리에, 오웬, 마르크스, 엥겔스, 라쌀, 바쿠닌, 레닌, 트로츠키 등 사회주의 혁명가들의 사상과 생애를 담은 책으로 <인물로 본 혁명의 역사>란 제목으로 재출간 되었는데 지금은 절판.

'핀란드 역'은 망명했던 레닌이 1917년 4월, 러시아로 귀환할 때 '4월테제'를 밤새 적으며 타고왔던 페테르스부르크에 있는 핀란드행 열차의 역. 저자가 어떤 의미로 제목을 달았는지는 읽어봐야 알겠다. 

(원제: To the Finland Station: A Study of the Writing and Acting of History)

 

1977년판 원서 표지. (Farrar, Straus & Giroux(Incorpor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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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보 농성장에서

해방광장을 지나 회전문을 들어서니 익숙한 붉은조끼가 공단 로비를 드문드문 메우고 있다.

낮에는 지역에서 올라온 800여명의 조합원이 집회를 마치고 흩어졌다고 한다. 순환파업이 시작되고 공단 로비는 해고자들의 농성장이 되었다.   

 

15층 쟁대위 회의는 쓸데없이 길어지고 사람들은 무리지어 퇴근한다. 높은 천장에 설치된 4개의 CCTV를 통해 로비를 지켜보던 노무관리팀에서 나를 궁금해한다. 신입 조합원이면 표적감시 대상이다. 도청장치가 설치되있다는 것을 복직된 어느 조합원이 비밀스럽게 알려준다. 그 말을 듣고 해고자들은 허공에 대고 소리높여 "이사장 이성재 개새끼!"라고 몇번을 고함치고는 웃는다.

 

상무와 몇몇 임원들은 아직까지도 해고자들에게 반가운척 인사를 한다. 노조에 대한 극랄한 탄압 이면에 조합원에 대한 두려움이 잔존해있다.  그것의 진원은 00년 파업. 이사장실을 점거하고 상무와 임원진을 무릎꿇리던 그 투쟁, 조합원들의 집단적 분노에 호되게 당했던 끔찍한 기억때문이다. 공단은 이전과 다르게 대응력을 갖춰가는데 노조는 갈수록 후퇴한다. 

 

운동을 시작한 이래 '현장권력'이라는 단어를 전국회의 사이트에서 한 번, 이전 사보파업에서 한 번 들었다. 현장권력의 탈환은 허황된 꿈이 되버린 현실, 당장 탄압으로부터 노조를 방어하는 것조차도 힘든 지금, 해고자들의 눈빛은 자신감 반 피로함 반이다. 적어도 요즘 어딜가나 자주 발견할 수 있는 패배감에 찌들어 지도부 비판에만 입놀리는 활동가들에 비하면 믿음직한 모습이다.    

 

얼마전 농성장이 침탈당했다가 오늘 다시 복구하였다. 침탈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이 상급인 구사대들이 물러가고 공단에 의해 억지로 동원된, 대부분이 고령자들이 경비원들과의 몸싸움이 있었다. 그 중 다섯명은 며칠 전 해고자들이 보는 앞에서 사표를 냈다고 한다. 이 짓은 더이상 못하겠다면서.

생존권 앞에서 서로 대립하는 위치에 선 노동자들을 강요받는다. 한쪽이 양심선언하고 물러서던가 혹은 상대를 때려눕히던가, 아니면 하나로 뭉쳐 싸우던가. 

 

철농을 해야하는 6명의 해고자 동지들을 남겨두고 일어섰다.

그리고 내일은 자보풀칠과 스프레이로 로비 대리석벽을 도배하겠다는 해고자들 앞에서 그들의 시선을 외면하던 나이든 경비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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