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 추억이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니까 2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은 규모가 그다지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떤 동네 한 곳 정도를 다 본 듯한 만족감을 주기에 충분한 내용을 갖추고 있었다. 계속 이어서 구라를 풀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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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하시는 분이 조명때문인지는 몰라도 얼핏 보면 DJ를 닮으신 듯해서 깜짝 놀랐다능... 하긴 뭐 뇌의 착각이니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만, 아무튼 이발소는 딱 우리 고향 역전 밑에 있던 이발소 그 판박이다. 이발소집 아들래미가 친구였는데, 이 집은 이발비를 현금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장부에 달아놨다가 가을걷이 끝나면 쌀이나 다른 품목으로 받는 식이었더랬다. 친구넘은 중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객지로 나갔는데, 나중에 보니 마장동에서 정형사가 되어있었다. 체구도 작은 녀석이었는데 힘이 있고 손재주가 좋아서 20대 초에 이미 기술자로 인정받았었는데, 생각해보면 20대 초라고 해도 10대 중반부터 칼을 잡았을 터이니 짭밥이 벌써 10년차... 그나저나 어떻게 사는지 소식 끊긴지도 벌써 사반세기가 훌쩍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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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뒷골목이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좁은 골목길에 들창 하나 나있고, 다닥다닥 붙은 집들 사이로 사람들이 오고간다. 저 들창으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까? 어릴 때 저런 구조의 집에서 산 적이 있는데, 하루는 친구놈들이 창밑에 와서 "아무개야, 짤짤이 하자~!"고 계속 소리를 지르는 통에 함께 살던 외할머니께 '호잡질'하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괜히 혼줄이 난 적이 있다. 그런 일도 있었고, 저 골목에 지나는 사람들의 발자국소리가 다들 특색이 있던지라 누구 누구 지나가는갑다는 물론이고, 멀리서 들리는 아버지 구두소리에 창문 열고 빼꼼 밖으로 목을 내밀기도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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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부뚜막이다. 여기는 달동네의 풍경이라지만, 울 시골은 죄다 저렇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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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상자 붙이고 있는 모습인데, 하긴 저렇게 식구들이 둘러 앉아 뭘 하던 일이 없이 사는 동네에서는 노상 있는 풍경이었다. 어머니는 공장에 나가시지 않을 땐 항상 부업거리를 들고 왔었는데, 봉제품 실밥 뜯는 거라든가, 인형 눈깔 붙이는 거라든가, 언젠가 구로동 살때는 전자부품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판에 가느다란 핀을 여러 개 박는 부업도 했었다. 먹고 사는 일이 쉬운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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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값 주고 수도물 받아 가는 물장수집. 뚝방에서는 뚝방 아래동네 점방에서 수도물까지 팔았다. 물값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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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지게. 뚝방 위의 집에서 뚝방 아래 점방까지 가는 길은 가파른 계단길이었다. 흙 반 돌 반의 계단길은 겨울만 되면 저 물지게에서 떨어진 물방울로 빙판이 되었다. 그땐 나이가 어려 물지게를 질 정도는 아니라서 아침이면 어른들이 일 나갈 준비를 하는 동안 물통을 대고 줄 서서 기다리는 일을 맡았다. 줄은 줄어드는데 어른들은 오질 않고, 체신없는 사람들이 새치기를 하면서 자꾸 줄이 밀리다보면 서러움이 몰려든다. 그 점방에서 봉지쌀도 간혹 샀었는데, 하루는 쌀을 넣은 종이봉투가 날림공사였던지 밑이 터져 계단 위에 쌀을 죄 쏟게 되었다. 많이 울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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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방 골목 어귀에 있었던 공동변소랑 비슷하다. 그러고보니 왜 공동변소 전구는 저렇게 뻘건 색이었을까나. 아무튼 한참 어린 나이임에도 세상살이가 다 인고라는 걸 알았는데, 그걸 깨닫게 된 계기는 바로 이 공동변소 앞에서였다. 공동변소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의 표정은 이 세계가 절망의 심원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달라진다는 게 변소였건만, 일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라고 한들 그리 밝았던 것같지는 않다.

아, 이거 이 박물관 둘러본 이야기만 해도 너무 길어지네. 어려운 삶의 터널을 지났지만 아직 여전히 터널은 계속된다. 남은 이야기도 계속 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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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 21:37 2019/01/08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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