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에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정치개혁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승수 변호사다. 이번 경북 예천 지방의회 해외연수 빙자 난장판 사건에 대해서 하승수 변호사가 적절한 비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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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변이 우선 제시한 대안은 공무국외여행 개선방안을 행안부령으로 강화하고, 그 핵심 내용은 주민참여의 확대, 즉 주민중심으로 지방의원들을 감시 견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다음으로 주민소송제도와 주민소환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거. 

더불어 제시되는 대안. "근본적인 지방의회 개혁을 위해서는 지방의회 선거제도도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1~2개 정당과 비슷한 성향의 무소속 의원들로 지방의회가 채워지면 이런 일이 발생하기 쉽다. 다양한 정치세력이 지방의회에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지방의회 안에서도 견제와 감시가 가능해진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는 비례성이 보장되는 선거제도가 지방의회에도 도입되고, 지역주민들이 만든 정치결사체(지역정당)도 지방선거 때 후보를 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즉 (i) 지방의회의 비례성 강화 (ii) 지역정당제도 도입이 지방의회 개혁을 위한 근본적인 대안이라는 거다. 이 두 가지 대안은 반드시 도입되고 시행되어야 한다. 그건 동의.

하지만, 지방의회에 이 두 가지 제도를 도입하여 시행한다는 것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오히려 지금 문제제기를 해볼 수 있는 건, 왜 기초지방의회와 기초지자체가 중앙정부모델을 그대로 적용하여 구성되어야 하는 거다. 이 문제제기는 (i) 분권강화된 지역의 자치를 위한 새로운 형식의 필요성 (ii) 지역정치의 특수성을 최대화하는 고유한 정치제도의 구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고려해볼만 하다.

지방자치가 중요한 건 단지 그게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원론적인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학교라는 추상적인 목적의식때문이 아니다. 지역적으로 좁은 곳에서 일어나고 해결되는 온갖 사안들은 중앙정부가 직접 해결하는 것보다도 훨씬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이러한 실질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을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게 바로 지방자치다. 이게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핵심적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은 지역마다 다를 수 있다. 지역 구성원들의 특징이나 공간적 분포, 경제수준, 학력수준, 성비, 연령비, 역사, 전통 등등에 따라 지역은 각양각색으로 자신들의 삶을 구성할 수 있고 그에 맞는 자체적인 제도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지방의회나 지자체, 특히 기초단위에서는 중앙정부나 국회의 구성과는 다른 형태의 결정단위와 집행단위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방법은 무수히 많다.

예를 들어, 기초의회를 전면 비례대표로 구성하고 지자체장은 기초의회의 다수당이 담당하는 이른바 내각제 형태의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꾸릴 수도 있다. 혹은 국회와 같은 형태의 의회가 아니라 주민의 다수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는 민회를 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시(군 또는 구)는 통장들 이장들이 모여서 기초단위의 의사결정구조를 만들겠다고 할 수도 있고, 이걸 반장단위까지 포함할 수도 있다. 아예 우리 기초단위는 동장도 투표로 뽑겠다고 할 수도 있겠다.

구성 방식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주민투표를 통해 대의기구를 구성할 수도 있지만 추첨을 통해 구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국 동시지방선거를 실시할 때에 맞춰 현 의회에서 차기 의회의 구성원들을 주민 중 추첨으로 선출하는 거다. 아니면 동별 대표자들을 선출하거나 직역별 전문가들을 포함한 대표자군을 구성하여 의회를 구성할 수도 있겠다.

기초단위에서 의회나 정부 구성은 이처럼 중앙정부나 광역단위와는 다른 형식으로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현행 헌법은 지방정부와 의회를 설치하라고 규정하고 있을 뿐 그 형식에 대해서는 법률에 위임하고 있다.

제117조 ① 지방자치단체는 주민의 복리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고 재산을 관리하며 법령의 범위 안에서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다.
② 지방자치단체의 종류는 법률로 정한다.
제118조 ① 지방자치단체에 의회를 둔다
② 지방의회의 조직 권한 의원선거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임방법 기타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헌법의 규정은 이게 다다. 구체적인 내용은 법률로 정하면 된다. 기초단위의 단체나 의원의 구성에 대해서는 법률이 정하면 되고 그 법률이 기초단위의 조례로 위임해주면 된다. 현행 헌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다양한 기초정부와 기초의회의 구성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주민이 더 넓게 참여하고, 주민의 감시와 견제가 강화되고, 주민이 직접 자기 지역의 삶의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면 현재와 같은 문제점이 상당히 개선되지 않을까? 여담이지만, 난 당내 주요 결정단위의 구성을 추첨제로 하고 있으며, 국회 등의 구성방식으로 추첨제를 논할 정도로 자유분방한 녹색당에서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지 의문이다.

주먹으로 탁자를 두들기는 거 외에 가이드의 콧잔등을 후려 팰 수도 있음을 보여준 한 기초의회 의원의 저렴한 행태는 분명히 장식 외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그의 머리 속에서 나왔을 거다. 그런데 이 덜떨어진 사람이 물러나면 그 자리에 제대로 된 사람이 들어설까? 이걸 현실로 만들려면 기초의회는 지금과는 아예 다른 형식으로 구성되도록 고려할 필요가 있다.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고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만 자꾸 확인하게 되면, 아쌀하게 기초의회 그까이꺼 없애버리자고 하는 목소리만 힘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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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11:22 2019/01/15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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