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서 세대론이 싫다니까

가만 보면 ‘86’이라고 통칭되는 어떤 일련의 그룹에 대하여 양가적 감정이 대립하는 듯한 느낌이다. 한 쪽은 그 그룹이 아닌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너거들이 다 해먹는 통에 이 꼴이 되었는데 우째 한 번 반성의 빛이 낯따구에 돌질 않냐고 비난하는 거고. 다른 한 쪽은 그 그룹의 일원이라고 자칭타칭 통칭되는 사람들 중 일부가 졸라 허접하고 비굴하게 자신을 비롯한 그 그룹 자체를 자아비판하는 거고.

난 이 우울한 대립구도의 인정투쟁이 언제나 그 허무한 막을 내리려는지 언제나 궁금했지만, 이젠 그러한 궁금증도 털어버리고자 한다. 그 ‘86’이라고 통칭되는 어떤 그룹의 실체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구성원들을 포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솔까 그게 대충 나이와 대학 학번으로 퉁친 그루핑인데, 내 주변 사돈에 팔촌까지 훑어 봐도 나를 포함해 이 나이 세대에 지금 욕 들어처먹고 있는 그 ‘86’들만큼 그나마 먹고 살만한 인간들 별로 없다.

최근 이철승 교수는 ‘386’들에 의한 사회적 자원의 독식과 이로 인한 불평등 확대, 특히 세대가 불평등의 확대와 고착을 분석해서 반향을 일으켰다. 분석에 대한 내용은 별개로 하고, 어찌되었든 오늘날 이 시대에 사회적 지위의 최고 정점에 ‘86’ 세대가 자리하고 있으니 이 사회의 문제에 이들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음은 전적으로 동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역학에 의하여 사회적 자원의 분배에서 지속적으로 변방에 머물게 되는 현 세대에게 소위 ‘세대의 기회’를 갖게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런데 이번 조국 후보 건에서 보았듯이, 문제는 세대 간의 어떤 격차가 아니라 계급으로 묶이는 일련의 그룹들 간에 벌어지는 격차가 아닌가? 더 중요하게는, 이제는 노동자와 자본가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선명하게 갈리는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의 등급과 자본의 등급에 따라 종횡으로 엮이면서 동류로 묶이거나 별개로 분리되는 다단함 속에서 나타는 계급의 양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가 문제가 됨을 확인하게 되지 않았나?

사적 공적(功績)을 공적(公的) 자산으로 치환하고 그것을 다시 사적 자산으로 전유한 ‘86’들은 그들이 서 있는 지위를 다양한 방식으로 세습한다. 동 세대로 연대책임을 요구받고 있는 같은 또래들 중 상당수는 자식들에게 물려줄 사회적 자산은커녕 “너랑 동갑인 쟤는 저렇게 애들 가르치는데 넌 뭐하냐?”라는 핀잔 속에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 여기서 어떻게 세대로서의 동질성이 나타나는가? 같이 나이 먹어가는 처지 정도? 그 자식세대들은 어떤가? 물려줄 것이 있어 제도를 바꾸고 합법적으로 물려줄 수 있는 부모를 만나 이런 저런 네트워크 속에서 누릴 것을 다 누리는 어떤 이의 자식들은 사회적 자원의 분배 과정에서 배제된 청년 세대의 일원이라고 할 것인가? 

공장 다닐 때, 학출들 보면서 욕하던 선배들이 하던 말이 있다. “쟤네들은 저러다 다시 돌아갈 학교가 있고, 여기서 한 일이 경력이 되어 한 자리 한다.” 그렇게 손가락질 하던 공장 노동자들이 다 그 또래들이었다. 그리고 그때 뒤통수에 손가락질을 받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의 말 대로 되었다.

70년대 학번 가진 50년대 세대가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이 만들어놓은 틀 속에서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고 이제 은퇴를 하거나 은퇴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오늘날 이들 중 누군가가 범한 어떤 사회적 문제에 대해 ‘75세대’ 운운하면서 통으로 따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혹은 무기력한 낀 세대라고 ‘97세대’를 퉁쳐서 비난하거나, 혹은 그 언젠가 어떤 삐리에 의해 “20대 개객끼론”의 대상이 되어버렸던 ‘08 세대’를 통으로 까는 일은 본 적이 없다. 이들은 아직 사회의 정점에 도달하지 않아서인가? ‘08’은 그런지 모르겠는데 이미 ‘97’은 ‘86’의 뒤통수를 후리고 있지 않나?

암튼 뭐 그렇고...
뭐 좀 먹고 살려니 경력증명하라고 난리들인데, 철든 후 한 일의 거의 다가 경력증명을 서류로 만들 수 없는 일들이 되어버리는 통에 경력증명을 못해 어디 취업하긴 다 틀린 듯하다. 게다가 난 80년대에 대학 다닌 일도 없고. 그러니 이젠 좀 잘나가는 ‘86’ 언저리에 날 끼워넣는 이상한 소리는 좀 듣지 않았으면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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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10:26 2019/09/0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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