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와 관련한 몇몇 글들을 보며

우선, '뉴스 민'이 생각과 달리 꽤나 필진 네트워크가 어마어마한 언론사였다는 걸 몰랐다. 아, 난 그냥 우물 안 개구리였던가. 암튼.

먼저, 최근 검찰이 부산대를 비롯하여 조국 후보자 관련 문제가 있는 몇몇 곳을 압색한 일이 생겼다. 이거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검찰이 인지수사하고 그 과정에서 압색영장 받아 들이친 건가? 이 정도 사건에 고소고발 없이 검찰이 먼저 나서 압색까지 들어간 건이 있었는지 찾아봐야겠다만 이건 좀 오바 아닌가 싶다.

뉴스1: 檢 조국 의혹 강제수사 포문 ... 법무부엔 사후보고

기사에 따르면 검찰은 부산의료원, 부산대의전원, 고대 인재발굴처, 단국대, 공주대 등 관련 대학 등에 검사와 수사관을 보내 수사를 하는 한편, 사모펀드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 웅동학원을 압색하였다. "국민적 관심이 큰 공적 사안"이라서 그랬다는데, 글쎄, 이보다 더 큰 다른 사안에 대해서 검찰이 이랬던 적이 있나?

일단 이 건에서, 우선 검찰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신속했다. 우리가 한다면 한다는 것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국민적 관심"은 우리가 다 밝혀준다는 검찰의 쩌는 부심을 보여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정치적으로 어떤 밑밥이 깔려 있는지도 관심사가 되고.

조국을 쉴드치던 사람들 중에는 역력한 불안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검찰이 검찰개혁을 막기 위해 선수친 것이 아니냐는 거다. 반대로 자한당 같은 경우엔, 거 봐라, 이제 조국은 끝났다라며 분위기를 몰아가려는 기색이 보인다. 내가 볼 때는 둘 다 아닌 듯.

뭐 그냥 뇌피셜이지만, 이건 그냥 조국 알리바이 만들어주는 선에서 끝날 수도 있겠다. 청문회 후보자의 위법행위 의심에 대해 이렇게 신속하게 검찰이 들이치는 게 유래가 드물기는 하다만, 지금 상황에서 검찰이 굳이 조국의 목을 쳐서 얻을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바람보다 빨리 눕는 게 검찰인데...

암튼 뭐 그렇고, 뉴스 민에 실린 두 편의 칼럼은 나중에 분석을 하기 위해서라도 킵을 해두어야 겠다.

뉴스민: [월요칼럼] 조국 논란, 솔직히 말하자/이택광

뉴스민: [기고] 스카이캐슬 조(파)국씨의 계급투쟁/김강기명

두 글 모두, 현존하는 기득권 내부의 알력 속에서 계급적 대립을 요청한다는 점에서, 난 오늘날 한국의 식자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혼란을 보게 된다.

이택광은 페북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간추린 듯한 본문을 지루하게 이어가더니, 결론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국민들은 좌파적 대안을 갈망하는데, 정착 정치인들은 좌파적 이념을 거부하는 아이러니... 과연 이 반동의 물결을 역사의 진보로 되돌릴 한국의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언제쯤 등장할 수 있을까"라고 매듭 짓는다. 왜 난데 없는 오카시오-코르테스? 

약칭 AOC로 불리는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Alexandria Ocasio-Cortez)를 호명하는 이택광은 한국 사회에는 현역 정치인으로 그보다 더 급진적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현존하고 있다는 걸 까먹은 건지 외면하는 건지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문제는 오카시오-코르테스 수준의 "좌파적 대안"을 바라는 이택광의 정치적 스탠스다. 조국을 쉴드치면서 "몫 있는 자들끼리 주고 받는 리그를 강력하게 비판하기는 커녕 오히려 강화하는 부흥회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범 진보 진영'의 태도는 역겨움마저 느끼게 한다"고 이택광의 분노를 자아낸 자들과 이택광은 지금 같은 위치에 있다. 그들도 조국 쉴드치는 거 말고는 오카시오-코르테스 수준의 "좌파적 대안"을 이야기하곤 한다.

김강기명의 칼럼은, 너무 많은 이야기를 종횡으로 엮다보니 정작 하고자 하던 이야기가 부각되지 못하는 글이 되고 말았는데, 그건 뭐 그렇다치더라도 객관적 상황에 대한 명확한 기준 없는 주관적 해석으로 인해 논지 자체가 흐려져버리고 말았다. 김강은 ""촛불정신"은 단지 박씨, 최씨 집안의 '불법행위'만이 아니라 그들, 그리고 재벌 가문들로 대표되는 "계급"에 대한 분노"였다고 정의한다. 정말 그런가? 과연 그 시간 그 장소에 "상류계급이 하류계급을 향해 벌인 계급전쟁에 대한 촛불의 분노"가 있었던가?

난 촛불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조차 간혹 이런 황당한 논리를 펼치는 것에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촛불은 결코 계급투쟁의 장이 아니었다. 최순실-정유라에게 퍼부어진 사회적 자산의 집중에 대해 촛불을 들었을 때, 촛불의 향방을 결정지은 것은 김강이 지적했던 것처럼 "계급투쟁은 하위계급이 시작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그 당시 촛불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점치게 해주었던 건 바로 '강남 학부모들'의 분노였다. 박근혜-최순실-정유라는 그들과 다른 계급이었던가?

만일 저 3인 주체가 강남 학부모들과 다른 계급이었다면 "계급투쟁은 하위계급이 시작하지 않는다"는 김강의 전제는 깨진다. 박-최-정은 자신의 하위 계급과 투쟁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조용조용히 지나가길 원했을 뿐. 반면 저들과 '강남 학부모'가 같은 계급이라면 촛불은 계급투쟁의 종류일 수가 없다. 그건 오히려 같은 계급에 속해 있는 자들끼리 왜 네가 나보다 더 처먹냐는 갈등이 벌어진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그 당시 촛불 들고 나간 다른 사람들은 뭔가? 그들 역시 "계급투쟁"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뭔 계급투쟁이 벌어졌던가? 거기선 헌정질서를 회복하자는, 즉 현존하는 계급질서를 다시금 정상화시키자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재벌도 공범이다"라고 외치는 그 목소리는 실제로는 생산수단을 사회하자는 목적의식하고는 전혀 상관도 없었다. "한상균을 석방하라"는 구호는 그 시간에 정권을 장악한 자가 문재인이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구호였다. 아니 나왔으면 제지될 구호였다. 실제로 초기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난 여전히, 이런 사태가 유발하는 어떤 계기들이 계급적 적대를 다시금 분명히 하고 그 지점에서부터 정치과 재작동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학수고대한다. 하지만 현상을 단순히 계급대립으로 환원해버리는 이런 관점들은 너무 가볍다. 그럴 것 같았으면 계급투쟁이 왜 아직 일어나지 않고 있겠는가? 그렇게 쉬운게 계급대립이고 계급투쟁인데.

그런 의미에서, 김강의 칼럼은 좀 다듬어서 계급적 의제로 정리하면 좋을 듯하다. 김강의 칼럼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다. "직업으로 무엇을 택하든 임금격차와 안정성이 지금처럼 심하게 차이나지 않은 세상, 세입자로 살아도 평생 이사다니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사실상의 형벌이 되지 않는 세상을, 그러니까 "결과의 평등" 의제들을 함께 묶어 끈질기게 밀고 나가야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좌파파가 "기회의 평등"을 부르짖었나? 우리가 들고 나갈 구호는 "결과의 평등"이지 "기회의 평등"이 아니다.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이 투쟁하는 세계가 바로 계급투쟁의 세계다. 계급적 각성은 내 현실이 왜 이런지에 대해 회의하는데서 출발하는 것이지 내 처음이 어땠는지를 회고하는데서 출발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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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27 17:49 2019/08/27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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