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사진

묘한 대조다.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데, 무척 상관도가 높은 그런 일이 며칠 간격으로 발생했다.

하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의 결혼.

다른 하나는 민족일보 사장 고 조용수의 기일.

 

 




박지만의 결혼식 장면(서울신문)

 

일단 경사엔 축하를.

어찌되었건 새로운 삶을 시작한 박지만씨에게 늦었지만 축하를 보낸다. 부모세대의 악행으로 인해 개인적 경사가 폄훼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되면 그게 바로 연좌제니까. 그저 그 자체로 축하한다.

 

2300명이 넘는 하객이 결혼식장으로 몰려들었고, 대형 스크린으로 결혼식 장면을 생중계 했단다. 근래 들어 가장 큰 규모의 웨딩뉴스가 아니었나 싶다. 참석자들의 면면도 뉴스거리가 되기에 충분했다. 한나라당 대표인 누나는 당연히 와야했겠지만, 박태준, 김종필을 비롯한 공화당 인력풀의 노 정객들, 현직 국회의원들, 경제계의 내로라 하는 실력자들 줄줄이 몰려 들어와 있었다.

 

분명 축하를 할 일인데, 허허로움이 드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렇게 속이 더부룩한 이유는 박지만이 나이 46에 늦장가를 가게 된 것에 대한 부러움이나, 16살 차이나는 '어린 신부'를 맞이했다는데 대한 시기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의 면면, 그리고 그 자리에서 보여졌던 묘한 과거회기의 추억나누기. 그런 것들이 왠지 모를 석연치 않음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그 석연찮은 더부룩함의 원인이 될 만한 기사 하나를 보게 되었다.

민족일보 사장 조용수 추도식 장면(오마이뉴스)


1961년 12월 21일, 31세의 나이로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졌던 조용수. "민족일보"를 창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과 혁신의 참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나섰던 젊은 언론인은 졸지에 간첩이 되어 항변의 기회조차 변변하게 제공받지 못한 채 죽어가야 했다.

 

그리고 43년이 흐른 지금, 그 악몽같은 사법살인의 회한을 가슴에 품은 몇몇 사람들이 그의 무덤 앞에 서있다. 고난의 세월을 지켜왔던 머리카락은 어느덧 세월의 무게로 하얗게 변했고, 그들의 얼굴에는 설움처럼 얽힌 주름살들이 깊게 패어 있다.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가 가지는 특성때문일까?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다. 그러나 단지 죽은 자에 대한 회고의 자리이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이 굳어져 있는 것은 아니리라. 반세기가 지날 동안, 터무니 없는 모함으로 사형당한 한 논객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고 있고, 그 폭압적이었던 박정희 쿠데타 정권의 군화발이 21세기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에 이들의 얼굴은 결코 밝아질 수가 없는 것이다.

 

박지만의 결혼식을 마냥 축하만 하고 있기 어려운 이유다. 웃음짓는 하객들 중 과연 몇이나 저 무덤 앞에 서있는 사람들의 면전에서 당당할 수 있을까? 왜 지금까지 그들은 다른 이들의 웃음을 가져다가 자신들의 웃음으로 만들어야만 했는가? 어째서 이 보통 사람들이 결혼식을 보며 축하만 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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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0 17:05 2004/12/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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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화요일 오전 몇 가지 일 때문에 진보네트워크에 찾아가려고 하는데 혹시 그 때 계신지요?

  2. 앗... 저는 진보넷에는 있지 않구요, 민주노동당 당사에 있습니다. 혹시 무슨 필요하신 일이 있으시면 finger@kdlp.org로 메일 주세여~~!!

  3. 학교에 지문인식시스템이 도입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서 그것에 대해서 대응을 해야 하는데 여러가지로 역량에 한계가 있는 문제로 조언을 부탁하려고 진보넷에 찾아가려는거였습니다.(이번에 정보인권 관련 논문을 쓰는 것 때문에 협조(?)를 요청하려는 것도 있습니다. 허허)

  4. 앗... 일단 진보넷의 지음을 찾으세요. 정보인권활동가모임에서 조언을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언제든지 연락 주시구요, 혹여 필요하신 사항이 있으면 메일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