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진 마음에...

처음 래군이형을 봤을 때, 아 참 이렇게 수줍음이 많은(좀 더 적나라하게 표현한다면 낯가림이 심한) 사람이 다 있나 할 정도였다. 초면이라 어색했던지 말도 잘 하지 않고 바로 쳐다보지도 않는 래군이형을 보면서 혹시 내가 뭐 잘못한 것이라도 있나 했다. 사실 래군이형을 처음 맞대면 하게 되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꼭 유명 연예인을 처음 만나는 팬클럽 회원 같은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뭐 그런 거 있잖은가, 이미지에 충실한 환상이라는 그런거...

 

몇 차례 만날 동안 래군이형과 별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다. 그는 항상 바빴고, 회의는 항상 타이트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래군이형은 볼 때마다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의 집중을 유도할 줄 알았고, 투박하게 말하면서도 사람을 즐겁게 할 줄 알았다. 보통 내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이제 아는 척 할 때도 되었는데 항상 좀 시큰둥한 모습을 보면서 쬐끔 실망을 하기도 했다.

 

원래 좀 말수가 적은 사람인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매우 조용조용하게 움직이는 사람인 것 같기도 했다. 가끔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어딘가를 쳐다보고 있는데, 그럴 때는 혹시 이 사람이 도를 닦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자꾸 만나면서 이런 저런 경험을 하면서 내 생각이 반 이상은 틀리고 반 좀 안 되게 맞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매우 유쾌한 사람이었고 매우 시끄러운 사람이었다.

 

형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그게 꾸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나중에 한 것이었다. 최소한 내게는 대놓고 꾸중을 하지 않았다. 어쩔때는 지나가는 듯이 말하기도 했고, 어쩔때는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그래서 형이 이야기할 때는 막상 아무 생각없이 웃고 지나가도 나중에 불현듯 생각이 나면 갑자기 몸살이 날 정도로 가슴 뜨끔한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게 또 래군이형이 가진 장점이기도 하다.

 

래군이형이 좋다. 은근히 간지러운 이 표현은 그러나 딱히 이렇게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사용하여야겠다. 존경? 아니다. 그는 존경할 수 없다. 그가 그런 존경을 원하지 않을 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는 누군가로부터 존경을 받는 거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을 사람이다. 그래서 존경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 래군이형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해야할까나? 그냥 좋을 뿐이다. 그런데 그 좋은 감정이 퍽이나 다양하다. 래군이형은 형으로서, 때론 어버이로서, 또 때론 동지로서, 활동가로서, 가끔은 그저 길거리 흔하디 흔한 장삼이사 중의 하나로서, 그러다가 오늘은 투쟁가로서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게 만든다.

 

래군이형의 사랑스러운 분신들을 본 적이 있다. 너무 귀여운 조카들. 재작년 겨울 국회 앞 노숙투쟁을 할 때 아이들이 아빠 옷을 가져다준다며 엄마와 같이 온 적이 있었다. 만화책을 좋아하는 큰애, 그리고 같이 웃고 놀아주면 좋아라하던 작은 애... 같이 부천 가서 만화방을 가야하는데... 나쁜 아빠는 만화 한 번 같이 보러 가지 않고 그만 유치장이나 들어가고...

 

뒌장... 날씨는 이렇게 좋은데 왜 자꾸 서러워지는 거야... 왜 자꾸 열받는 걸까... 래군이형은 하나도 보고싶질 않다. 오히려 그 조카들이 보고싶다. 만화방에 같이 가서 만화나 실컷 보고 같이 맛있는 거 먹고 놀러다녔으면 좋겠다. 아빠야 뭐 유치장에서 경찰들이 밥먹여주고 지켜주고 그러고 있겠지... 아, 씨 왜 이렇게 답답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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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1 16:02 2006/03/2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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