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와 이라크

중국의 동북공정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극동아시아의 상고사를 다시 써야하는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중국은 고구려가 자신들의 역사라고 하고, 한국은 한국의 고대사를 중국이 가져갔다고 항의하고 있다. 국가적 차원의 항의가 진행되자 중국은 자국 홈페이지에서 아예 아시아 고대사부분을 삭제해버렸고, 한국정부에 역사문제를 과도하게 다루는 언론을 자제시켜달라는 요청까지 하였다.

 

한때 행인의 꿈은 만주땅을 말타고 누비며 개를 파는 것이었다. 고조선 시대에는 장강 이북에서부터 내몽고와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가 우리 땅이었다는 소위 민족주의사학자들의 각종 논문을 집어삼켜가면서, 그래 내가 할 일은 이 땅들을 되찾아 "조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그 땅 한 가운데서 말타고 돌아다니며 개를 파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의 고대 영토라는데...]

 

그러나 마빡에 철이 들기 시자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별로 영양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만주벌에서 말타고 개팔고자했던 꿈을 접어버렸던 이유는 팔레스타인의 아픔을 알고 난 후였다. 이스라엘이 2차대전 후에 과거의 팔레스타인 땅을 점령하면서 기존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개처럼 쫓겨나야 했다. 이스라엘은 영토고권의 근거를 성경으로 들었다. 그 땅은 야훼가 주신 땅이고, 성경에 이미 2000년간의 방랑생활이 끝난 후 이스라엘인들을 그 땅에 살도록 해주겠다고 약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고토에 대한 집착, 그리고 그 집착의 실현이 가져온 결과는 중동땅을 피로 물들이는 일이었다. 행인이 중학교 다닐 때로 기억하는데, 그 때 이스라엘 전폭기가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폭격하면서 수많은 여인들과 어린이들이 졸지에 알라의 품으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야훼의 성스러운 예언의 완성을 위해 알라의 자식들은 영문도 모른채 자신의 살덩어리를 산지사방으로 흐트러 놓아야 했던 거다.

 

팔레스타인 부상자와 그 가족(네이버 이미지)

 

파괴된 팔레스타인 난민촌(네이버 이미지)

 

 

끝내 이스라엘 병사들에게 살해된 팔레스타인 아버지와 아들(AFP)

 

이스라엘 전차에 돌을 던지는 팔레스타인 소년(AFP)

 

 


 

이스라엘 군인에게 끌려가는 팔레스타인 소년





세상물정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과정에서 이건 뭔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만주땅에서 개팔고자 했던 꿈은 접었다. 고조선의 역사, 고구려의 역사가 실제 그러하였든 어떻든지 간에 그건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그러고도 더 많이 그 아버지의 아버지들의 역사,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의 ... 그러고도 더 많이 그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역사 안에서 실제였을 뿐 지금의 현실은 아닌 것이다. 그러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이 핏속에 흐르는 자랑이나 또는 자위가 될 수는 있을 지언정, 그 역사의 회복이 가져올 피비린내나는 참상을 외면한 채 옛날의 영광을 오늘에 되살리고자 할 경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인간에 대한 신뢰감의 상실로까지 귀착되어버린다.

 

그렇다. 땅따먹기가 장난이 아닌 것이다. 태평양의 끝에서 대서양의 끝까지 영토를 확장했던 징기스칸의 업적 뒤편에는 말타고 활쏘며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숨통을 끊어놓았던 살육의 역사가 있었다. 광개토호태열제의 영토확장은 고토회복의 기치로 치장되어 있었지만 그 멋있는 구호 뒤편에는 뺏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들간의 핏국물 줄줄 흐르는 카니발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이를 막으려는 한반도의 몸부림 뒤편에는 언제든지 흘러내릴 준비를 하고 있는 피들이 엉켜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언론은 고구려사가 남의 역사가 된다는 이 중차대한 상황에 직면한 나머지 역사에 관한 논쟁 이외의 중요한 사안들이 전부 후미로 밀리거나 또는 사라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라크 침략이다. 근 며칠 사이, 이라크에 대한 이야기는 가십정도의 크기로 나타나거나 아예 삭제되고 있다. 그곳으로 쥐새끼들처럼 빠져나간 올리브입사귀들에 대한 이야기는 아예 눈을 씻고 찾아볼래도 찾아볼 수가 없고, 앞으로 또 그렇게 빠져나갈 다른 자이툰들에 대한 이야기 역시 나오고 있지 않다.

 

시가전이 치열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고, 모든 이슬람들이 성전을 선포하며 미국과의 휴전이 종식되었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라크의 전황과 자이툰의 현황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다. 휴가에서 돌아온 대통령은 뜬금없이 새삼스레 조중동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있고, 국가차원에서 중국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겠다는 발표가 정부로부터 나오고 있으며, 돌연 남북관계기본법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법률안이 제출되고 있다.

 

정부와 언론이 짜고 맞추는 듯한 이 환상적 콤비플레이 속에서 정작 현실에 발딛고 사는 우리 자신들이 진실로 관심을 가지고 대응해야할 문제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전 찬란한 역사를 핏속에 다시 각인시키면서 퇴색되어가던 민족주의의 새로운 동력원을 장만하고 온 겨레의 눈을 만주벌판 우뚝 선 태왕비에 촛점을 맞추도록 하면서 뒤로는 또다시 쥐새끼들처럼 우리의 군대를 이라크 침략전쟁터로 내몰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전의 역사가 소중한 것임을 달리 말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그러나 그 역사가 소중한 만큼 현실의 상황 역시 소중한 것임을 왜 깨닫지 못할까?

 

중국의 패권적 민족주의의 발흥은 아시아에 새로운 위협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민족 안에서 발생하는 배타적 민족주의의 열기는 곧장 주변 민족들을 똑같은 형태로 강화단결시킨다는 사실을 말이다. 중국은 57개에 달하는 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다. 각각의 민족들이 한족의 문화에 거의 동화된 것은 사실이나 꼭 그렇지 않은 민족도 있다. 중국 서부의 신장 위구르, 티벳과 내몽고, 중국 남부의 소수민족들. 강성해지는 중국민족주의는 그 내부에서 민족간 분리와 투쟁을 배태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중국의 민족주의 경향은 자신의 발등을 찍는 도끼가 될 것이다.

 

그 반면에 이라크 전쟁은 국제적 문제이며 어느 일개 민족에 국한된 사항이 아니다. 국제적인 대응이 필요한 것이고, 특히 한국처럼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일을 국익으로 포장하는 정부가 있는 나라에서는 다른 어떤 무엇보다도 심각하게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국제적 정의의 원칙을 세우고, 침략전쟁이 다시는 재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지구적 차원의 공조와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라크 포로들...]

 

 

이라크에 대한 세계인류의 공동대응은 고구려사를 자기 것으로 하려는 중국의 파렴치함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민족을 넘어, 국경을 넘어 진정으로 인류를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서로가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석유를 비롯한 자원이나 영토나 기타 다른 이기적 목적을 위해 남의 목숨을 함부로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당위가 공유될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는 다시 전쟁의 참화를 딛고 일어나 서로에게 사랑을, 서로에게 이해와 용서를 구하는 새로운 국제관계의 형성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게 될 것이다.

 

공포와 파괴가 예견되는 중국의 민족주의와 평화와 사랑이 싹틀 수 있는 국제적 평화연대를 서로 비교할 때 과연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할 것이 무엇인지가 너무나 명백해지지 않는가? 정권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리면서 새로운 대결적 민족주의의 발흥을 통해 공동의 적을 만듦으로서 자신들의 치부를 그 뒤로 감추려고 하는 시도를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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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09 20:34 2004/08/09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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