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정책연합?

기본소득당에서 '개혁정책연합'이면 더민당 위성정당이든 뭐든 다 하겠다고 선언하고, 녹색당에선 위성정당 합류 여부를 당원총투표에 붙인다. 얼핏 보면 더민당류와는 전혀 매칭이 되지 않을 것같은 두 정당이 이렇게 틈만 보이면 끼어들겠다고 하는 모습은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가만 보면, 어차피 이념적으로 다른 방향을 설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합류하는 게 그다지 크게 이상할 건 없을 듯도 하다. 노자대립에 근거한 계급적 노선을 견지하고 있다면 모를까, 또는 자본주의체제 자체에 대한 근본적 적대를 노선으로 하고 있으면 모를까 그렇지 않을 바에야 얼마든지 함께 할 여지가 생기는 거다.

기소당은 좀 편하다. 어차피 더민당 안에서도 이재명이나 박원순이 지속적으로 기본소득에 친화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데다가 최근 코로나 19 사태 와중에 김경수 등 단체장과 몇몇 의원들까지도 재난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상황인지라 일단 기본소득으로 똘똘 뭉치자는 기소당의 입장이 대치될 일이 없다. 그걸 뭐 '개혁정책연합'이니 하면서 포장질하지 않아도 될 터. 그냥 기본소득 하겠다고만 하시면 제가 그 당 비례1번으로 들어갈게요. 이거지 뭐.

녹색당은 좀 생각의 여지가 있는 게, 저 더민당이 전혀 녹색생태지향과는 거리가 먼 태도를 취하고 있는 반면, 녹색당은 당장 뭔가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일이라도 인류가 멸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는 상태라 이 둘이 합치될 가능성이 있는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기소당이나 녹색당이나 내놓고 있는 정책들이나 지향을 보면 이들은 시장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있지 않다. 속도와 방향은 약간 차이가 있을지라도 이들은 더민당과 마찬가지로 성장지향적 사고를 보이고 있다. 또한 그 성장을 시장의 확대를 통해 유지하겠다는 기조, 예컨대 기본소득 같은 통화확대 기조에서는 공통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근본적으로 적대의 이유가 그다지 보이지 않기에 이들은 함께 할 수 있을 거다. 아마도 비례순번 조정하는 것과 총선 이후 서로 입장존중해주는 것만 합의되면 뭐 그리 아웅다웅 할 것도 없을 거다. 

정의당은 해놓은 말이 있으니 뭐 별 도리가 없다. 정의당 역시 기소당이나 녹색당과 그닥 차이가 없어보이지만, 여긴 그래도 노동정치라는 게 코딱지만큼이나마 남아 있어 이게 더민류에 경도되는 것에 겨우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지경이다. 이마저 무너지면 뭐 그땐 저 기소당 뒤따라 가도 어쩔 수 없겠지만.

하긴 이게 무척 어려운 건데,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만 하는 기로에서 '탈성장'을 이야기하기가 쉽지는 않다. 나는 당선되고 싶지 않다거나 우리 당은 의석을 만들지 않겠다면서 총선에 출마할 수는 없잖은가? 그러니 성장담론을 완전 배격하기는 참 어렵겠다. 그러나 여전히 이제 남은 건 탈성장밖에는 없고 어떻게든 그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인데 자꾸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다. 

현존하는 어떤 정치세력도 탈성장을 이념적 지향으로 내걸 수 없다는 건 그냥 인류는 절멸각이라는 걸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싶다. 나도 꽤나 고민을 해봤다만, 탈성장사회의 그림이라는 걸 어떻게 그려야 할지를 아직도 잘 모르겠으니. 뚝배기가 그나마 버텨줄 때 어떻게든 그림을 만들어야 할텐데, 이젠 머리도 안 돌아가고 상상력도 빠지고 도통 힘도 안 난다.

아, 그나저나 요즘 거의 멘붕에 빠져있을지도 모를 한재각에게 다음주에 연락이나 해봐야겠다. 코로나19가 지금 문제가 아니다. 이러다가 다들 혼백이 탈출해버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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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3 18:51 2020/03/13 18: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