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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전쟁에서 사람은 '표적'일 뿐이다"

출처블로그 : 모여라! 꿈동산♣♧♣ - 김문성의 블로그

 

 

"전쟁에서 사람은 '표적'일 뿐이다"

 

울부짖는 이라크 아이의 사진이 다시금 일깨운다

 

유만찬

▲ 두 손이 부모의 피로 흥건하게 젖은, 이라크 여자 아이가 공포에질려 울부짖고 있다. 현장에 있던 'Getty News'의 크리스 온드로스(Chris Hondros)라는 사진작가가 포착한 장면이다. 출처 news.bbc.co.uk  

얼핏 봤을 땐 작품사진인 듯했다.

명암이 뚜렷했고, 사진에 나온 아이의 표정이 생생했다. 조금 더 눈을 가까이 대니 작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밝은 쪽: 땅바닥에 주저앉은 여자 아이는 입을, 얼굴 반만큼의 크기로 벌린 채 울고 있다. 양 손엔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고, 앉은 자리 앞바닥이 핏자국으로 선연하다.
어두운 쪽: 언뜻 드러나는 바지는 군인임을 짐작하게 하는 ‘국방’색이다. 그는 오른 손으로 서치 라이트를 켜고 있다. 서치 라이트는 울부짖는 아이를 향하고 있다.

5~6살 쯤 돼 보이는 이라크 여자 아이였다.

아일랜드 신문 ‘아이리쉬 타임스(The Irish Times)' 인터넷 홈페이지 20일자는 사진과 관련한 기사를 짤막하게 전했다.

“이라크의 한 부부가 승용차로 여행을 하던 중 다섯 명의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미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어린이들은 목숨을 건졌으나, 온 몸이 피로 젖은 채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면서, 자동차 밖으로 나왔다. 미군들은 어린이들을 병원으로 데려갔다. 미군 당국은 워싱턴 포트 루이스의 제25사단 제5스트라이커(Stryker) 여단 1대대 소속 군인들이 새벽 순찰을 하고 있을 때, 정지하지 않고 군인들 방향으로 다가오는 자동차를 향해 발포했다고 발표했다.
미군 홍보처는 이 사건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하면서도, 군인은 (이라크에서)자동차 폭탄 공격이 성행하는 상황에서, 예상 가능한 위험에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크리스 온드로스(Chris Hondros)라는 사진작가가 이 사건을 목격, 당시의 상황을 극적으로 담았다. 이 사진들은 미군이 자동차로 길을 가던 한 부부를 총을 쏘아 죽게 하는 장면을 생생히 포착했다.
자동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어린이들은 살아남았고, 한 어린이는 총탄이 스치는 경상을 입었다. 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는 자동차에 의한 네 건의 자살폭탄 공격이 일어나, 28명의 사람이 사망한 바 있다...“

사건의 전말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숨진 부부, 그리고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본 다섯 아이들은 끝내 익명으로 남을 것이다. 으레 전쟁에서는 억울한 죽음도, 애타는 사연도 싸늘한 통계 속에 묻혀버리고, 충격적인 한 컷의 사진도 일상적인 풍경으로 스쳐가니까.

부부에게 총질을 한 미군들도 울부짖는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은’ 미안한 감이 들었던 가보다. 사진을 보면, 아이들을 병원에 옮기느라 부산했던 분위기가 느껴진다. 미군 당국에서도 이례적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미군 당국이 덧붙인 한 마디 말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예상 가능한 위험에 적절한 대응을 했다.”

언젠가 미국의 한 언론에 이런 기사가 게재된 적이 있었다. ‘총탄’의 전쟁 이전에, ‘언어’의 전쟁이 도사려있다는 내용이었다.
군 당국은 이라크에 파병되는 병사에게 “이라크 인은 사람(person)이 아니라, 표적(object)이다. 평상시에도 이라크 인을 지칭할 때 사람(person)이 아니라, 표적(object)란 말을 사용해야 한다. ‘표적’을 죽였을 땐 가책이 남지 않는다”며 세뇌시켰다고 한다.

미군 당국의 발표는, 이번 사건이 최근 이라크에서 벌어진 차량 자폭 공격이 잇따른 상황 속에서, 민감해진 병사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실수’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자폭 공격의 위험성을 이유로, 아무 자동차에나 총질을 해대는 것이 용납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벽녘에 일가족이 탄 자동차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군인들의 가슴 속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표적(object)’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눈에, 죽은 ‘표적’이 남긴 아이들은 무엇이었을까. ‘표적’이었을까, ‘사람’이었을까.

사진 속의 이라크 아이는 부모의 처참한 죽음을 생생히 목격했다. 든든했던 엄마, 아빠는 순식간에 온기를 잃고, 어린 딸의 두 손에 싸늘한 피만 남긴 채 떠나갔다.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그리고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밤을 가위눌린 채 지새워야 할까.

전쟁은 그 자체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위임을, 한 컷의 사진이 다시금 일깨운다.









▲ 'Getty News'의 사진 작가 크리스 온드로스(Chris Hondros)가 극적으로 포착한 장면들. 출처 news.bbc.co.uk  

200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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