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비정규직 개악안' 이야기에 붙이기.

열우, 한나라 이 양대 자본가정당들의 협잡질에 '비정규직 보호입법안' 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다시 한번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도 비정규직 보호입법안이 왜 개 같은 법률안인지 이야기 하고 싶기도 한데, 사실 예전에 한번 토닥거렸던 적도 있고 해서 ( 여기를 눌러주세요 ^^; ) 그냥 연관지어 떠오르는 잡상이나 한번 토닥거려보자. 사실 예전에 어딘가에 한번 토닥거린건데, 그냥 되새김질 해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거다.


지금 짐승은 극히 소규모의 웹사이트 제작업체에서 계약직 웹 프로그래머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계약직이기는 한데, 직원이라고 해봐야 짐승을 포함해서 세명 뿐인데다 전원이 계약직이니 뭐 흔히 말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간의 갈등. 같은 것은 느끼지 못하고 산다. 하여간 지금은 어쩌다보니 컴퓨터 자판 두들기며 먹고 살지만, 전공학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사회에서의 첫 직장도 이쪽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직종이었다. 사실 이 '어쩌다보니' 라는 과정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뤄두기로 하고 지금은 다른 이야기나 토닥거려보자.


군에서 제대한것이 98 년 4 월 이니까, 한참 IMF 라는 놈이 맹위를 떨치고 있을 때였다. 100 만원 월급받던 노동자에게 60만원 받고 일하든지 아니면 나가든지 당신이 선택하라고 욱박지를수 있었던, 그나마 대부분은 그런것도 없이 하루아침에 해고통지서를 받아야 했던, 아기 분유값이 없어 공중전화 박스를 뜯어내서 안에 들었던 동전 다 빼내고는 빈 박스를 다시 제자리에 돌려 놓겠다고 들고 나가다가 경찰서에 잡혀가는 실직가장의 이야기가 신문을 장식하던 그런 시기였다. 제대와 동시에 이런 저런 이유로 대학까지 중단한 나로서는 딱히 일할만한 곳이 없어서 주유소 같은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수밖에 없었는데, 그 아르바이트를 얻어내기 위한 경쟁이 아마 내가 인생에서 겪었던 최고의 경쟁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따금식 들곤한다. 알바 면접본다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주유소 사무실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밖에까지 긴 줄을 섰던 그런 때였다.


하여튼 언제까지 알바만 하고 있을수는 없는 일이라서, 지역정보지를 뒤적이며 직장을 알아보니 자동차 부품 생산하는곳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광고를 냈더라. 별 볼것도 없는 이력서랑 자기소개서를 주섬주섬 챙겨들고 가봤는데, 이상했다. 공장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의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도저히 그 회사의 본사라고 봐줄수 없는 사무실에서 사람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파견직' 이라는 것이었는데, 당시만해도 열나 무식했던 짐승은 '선진국에서 새롭게 부상하는 고용방식' ( 뭐 틀린말은 아니다 -,-; ) 이라는 파견담당의 설명에 '아 그렇구나' 하고는 멍청하게 고개를 끄덕였더랜다.
 

그래 여차저차해서 대구시 진량공단에 위치한 AMP 라는 외국계 기업에서 자동차 퓨즈박스용 기판에 칩을 박아넣게 되었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당시는 너무나도 무식했기 때문에 입사직후 한동안은 짐승은 자신이 꽤나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착각했었었다. 그게아마 4조 4교대 던가 하는 시스템으로, 3 일 동안 하루에 12 시간을 일하고나면 3 일간은 쉬는 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가만 계산해보면 어떻게 적용해도 일주일에 노동시간이 48 시간은 된다. 그렇게 일하고 나면 월급은 수당까지 다 포함해서 60 만원. 물론 그것만으로는 사람이 살 수 없기 때문에 3 일의 비번일자 동안 지원근무 신청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하루 지원근무에 5 만원을 더 줬다.


그런 식으로 계산해보면 만약 한달에 백만원을 받고 싶다, 하면 일주일에 10 만원을 더 벌어야 했으니 결과적으로 5 일동안 하루 12 시간을 일하고 하루를 겨우 쉬는 시스템 이었던 거다. 주당 근무시간 72 시간에 백만원. 그 거지같은 착취구조를 '비교적 좋다' 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무식했던지. -,-;


하지만 그 무식에도 종지부를 찍을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몇달 지나다보니 일일 생산해야할 물량이 자꾸만 늘어갔던것. 근무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거기서 짬을내어 밥도먹고 음료수도 사먹고 담배도 피고 화장실도 가고 하는건데 할당량이 자꾸 늘어가니 점점 식사시간도 짧아지고 휴식시간도 줄어들수 밖에. 문제는 그게 달이 지나갈수록 나아지기는 커녕 더 늘어만 가는거다. 조장들 잔소리와 압박도 비례해서 올라가고.


그 회사에도 노동조합이 있었다. 노동조합 현판에 보면 금속노동조합 산하라고 명시까지 되어있는,  퇴근하려고 옷을 갈아입고 현관을 나서다보면 항상 마주치게 되는 조그마한 사무실이 있었다. 매일 늘어가는 작업량에 모두들 짜증을 내고 있었던지라 퇴근할때마다 '노조나 가입할까' 하는 이야기들도 심심찮게 나왔더랜다. 그래서 하루는 (직접 찾아가기는 좀 어색해서) 조합 사무실 전화번호를 적어뒀다가 집에가서 전화를 했더랬지. 여차저차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전화받는 분이 하는 말이 받은 사번이 임시사번 아니냐는 거였다. 맞다고 하니까 잠시 침묵. 그러더니 임시 사번이면 파견직이신거 같은데, 안타깝지만 '아직' 우리 조합은 파견직을 가입받는것에 대한 결정이 안 나왔다는 거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뭐 꽤나 무안하고, 여러가지 의미로 답답한 전화였던거 같다. 그러고보니 비록 아침 출근이 힘들기는 했지만, 철도노동조합이 핵심 요구사항중 한가지로 KTX 여승무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무척 반갑게 느껴지고, 좀 더 힘차게 지지할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다. 저들의 선전과는 달리 정규직 노동조합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적이 아님을,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을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한가지 사례가 아닐까.   


하여간 그 회사는 그러고도 몇 달인가를 더 다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사실상 파견직으로서의 계약기간인 2 년도 다 되어 가고 있기도 했으니 다른 생존방법을 찾은거기도 하다. 참고로 말하자면 입사당시에 인사부장이 강조한것중에 하나가, 파견직으로 계약기간인 2 년 만기를 다 채우면 근무실적에 따라 정규직으로 채용해 줄 수 있으니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주위의 파견직 동료들은 물론이고 파견직 노동자들중 아무도 정규직으로 올라선 사람은 없다. 그놈의 '근무실적' 은 참 '멀기만 한 당신' 이었나 본데, 지금 노무현정권이 뚫린 입이라고 비정규직을 위한답시고 떠들어 대는 '고용의무' 라는것의 실체는 그 당시 인사부장의 절대로 지켜지지 않는 구두약속, 그 정도 이상을 담보하지 않을것이다.


사실 이번 비정규직 개악안의 환노위 통과는 진보진영이 야4당이 사전에 합의한 내용 ( 비정규직 관련 법안문제를 4 월에 다시 논의하기로 한것 ) 을 믿고 있다가 뒷통수 맞은격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국회내에서의 역활에 보다 치중할 필요가 있다고, 또는 민주노총이 '사회적 합의' 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해온 분들은 그걸 똑똑히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런 종류의 합의 따위가 우리에게 보장해 주는것은 '뒤통수' 뿐이라는것을. 그런 자들과 합의하고 협력해서 얻어낼것은 아무것도 없단것을. 보다 나아가서 그들에게 그런 '뒤통수' 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무엇일까 하는것, 그건 국회내에서의 활동이 부족하거나 합의에 보다 충실히 임하지 못했기 때문이어서가 아닌, 바로 그 '합의' 를 믿고 법안을 단순히 '연기' 한것이 성과라며 비정규직 개안안 철폐를 위한 거리투쟁을 조직하는데 소흘했었기 때문이라는것을 말이다. 교훈은 두번 오지 않는다. 이번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개악안 철폐가 아닌 '연기' 를 이야기하며 여전히 국회내의 협상에 연연한다면, 여전히 미래는 암담할 따름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