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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11/22
    [레디앙 펌] 주대환 씨의 초기회주의적 태도는 우익만 강화할 뿐
    하이에나새끼
  2. 2006/02/02
    [펌] Munich ( 뮌헨 감상기 )(2)
    하이에나새끼
  3. 2005/12/19
    김진숙 동지가 박근혜에게 보내는 편지
    하이에나새끼
  4. 2005/12/07
    IMF 당시보다 조합원수 31.4% 늘어
    하이에나새끼
  5. 2005/12/07
    [펌] 12월 3일 기후변화대응 집회 연설발제문
    하이에나새끼
  6. 2005/12/05
    [펌] 울고 싶은 싱싱한 난자
    하이에나새끼
  7. 2005/12/01
    줄기세포연구, 부자의 과학이 되어선 안된다
    하이에나새끼
  8. 2005/12/01
    쌀값 떨어지는데 노동자가 왜 반대하냐고?
    하이에나새끼
  9. 2005/11/18
    '우리'의 힘.
    하이에나새끼
  10. 2005/11/09
    [펌]교원평가 도입!교원구조조정임이 명백하기에 나는 끝까지 거부할..
    하이에나새끼

[레디앙 펌] 주대환 씨의 초기회주의적 태도는 우익만 강화할 뿐

북한정권에 대한 비판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율과 연대의 정치적 타락이 덮어지는것은 아니다. 자율과 연대가 주장했었고, 지금도 주장하고 있는것은 북한정권의 성격에 대한 규정이 아니라 국가정보원이 별다른 증거도 없이 간첩 운운하며 마녀사냥에 나서는것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대응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정권이 민중을 위한 정권이 아니며 사회주의 정권은 더더욱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율과 연대가 주장하듯이 지배계급에 의한 탄압에 당이 '겸허히 수용' 하고 무릎꿇어 서는 안된다. 그것은 명백히 "마녀사냥에 굴복하자는 것" 에 지나지 않는다.

적의 적은 동지가 아니다. 자율과 연대, 혹은 그와 유사한 어떤 경향의 사람들은 이번 사태를 당내 자주파를 축출하기 위한 기회로 여기는 것 같아서 씁쓸하기 그지 없다. 만약 정말로 그와 같이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들이 하는 짓은 자주파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당 전체를 수렁에 빠트리고 있는 짓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가장 폭압적인 국가기관과 손잡고 당내 사업을 벌인 그룹으로 역사에 그 이름이 오르게 된다 하더라도 전혀 놀라운일이 아니다.

'김정일 북한 정권 반대' 는 그 자체로는 틀린말이 아니지만, 다른 모든 사안에 우선해서, 맥락이나 전망에 대한 고려 없이 주구장창 그 소리만 반복한다고 해서 뭐가 되는것은 아니다. 사안에 대한 근본원인에 대한 고민없이 '양비론이 뭐 어떠냐' 는 식의 정치적 무책임과 스스로의 무식함을 '저새끼들도 주사파랑 똑같아' 한마디로 덮어버리는 놀라울 정도의 지적 게으름이 질질 흐르는 기회주의적 종파들이 당에 존재하는 모양이다. 지긋지긋 하게 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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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초기회주의적 태도 우익만 강화할 뿐

[독자투고-주대환 비판] "민주노동당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북한 핵실험과 ‘일심회’ 사건은 민주노동당 내 정치 경향들을 시험대에 올려놨다. 특히 우파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자율과 연대’는 국정원의 탄압에 대해 두드러지게 기회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정원의 마녀사냥이 한창이던 지난 11월 7일, ‘자율과 연대’의 지도적 회원인 주대환 전 정책위의장은 인터넷 언론 <레디앙>에 “난 김정일 군사독재 정권에 반대한다”는 글을 올려 ‘소신’을 밝혔다. 그의 글이 발표되자, 일부 당원들은 아예 ‘김정일 독재정권 반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주 전 의장과 그 지지자들은 이러한 행위가 ‘구당 운동’이라고 말한다. 민주노동당이 ‘친북좌파’로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을 구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응은 민주노동당을 구하기는커녕 더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다. 그는 국가보안법의 칼날이 여전히 우리 운동의 활동가들을 치고 있는데도, “민주노동당은 대한민국 법질서를 잘 알고 그 안에서 활동하는 공당”으로서 법질서의 “무게를 인정”한다며 그 칼날을 정당화해 주었다.

이것은 지배자들의 마녀사냥에 도전하기를 회피한 채 운동의 일부를 속죄양 삼는 전형적인 기회주의이다. 이런 실천이 효과를 발휘할수록 우익은 자신감이 높아져, ‘친북․연북’을 빌미로 한 정치적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게다가 <조선일보> 등의 우익 언론들은 주체주의자들을 마녀사냥하기 위해 당내 분열을 이용하고 있는데, 기회주의자들은 이런 야비한 이간질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이에 대해 주 전 의장은 “잘못된 노선으로 수백만 인민을 굶겨 죽이고도 물러나지 않는 뻔뻔한 김정일 정권을 비난”해야 한다며 “왜 난 그들을 비난하면 안 되는가?” 하고 항변한다.

주대환 씨 자신은 2002년 2월 ≪이론과 실천≫에서 “‘조선로동당 반대’라는 선정적이고 조야한 방식으로 표현되어서는 안 된다”며 사회당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비판은 현재의 그 자신에게로 향할 필요가 있다.

옛 동유럽 스탈린주의 체제 붕괴 직전인 1989년 봄쯤 주대환 씨는 ‘꼴통’ 스탈린주의자였다. 그가 지도하던 인민노련은 천안문 항쟁을 비난했다(특히, 당시에 간행된 <노동자의 길>에 실린 최윤희(가명)의 글).

그와 인민노련은 북한 체제 자체는 전혀 비판하지 않은 채 주체사상만 비판했다. 마치 사상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문익환과 임수경 등 방북자에 대해서 노태우 정권의 탄압으로부터 방어하기는커녕 그들을 ‘감상적’, ‘쁘띠부르주아적’이라고 비판만 했을 뿐이다.

이제 주대환 씨는 자신의 옛 종파주의는 고스란히 유지한 채 스탈린주의 정치사상만 사회민주주의 정치사상으로 바꾸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안기부에 각서를 쓴 그가 반신자유주의 운동을 충심으로 지지할 리 없으니 그는 영락없는 우파 사회민주주의자이겠다. ‘자율’과 ‘연대’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율이고, 무엇과의 연대일까?

북한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주 전 의장은 북핵 문제나 ‘일심회’ 사건 등에서 미국 등 서방 제국주의와 남한 정권 비판보다 북한 정권 비판에 더 치중해 왔다. 이것은 그가 북한 체제를 서방 자본주의보다 더 열등한 체제라고 보기 때문인 듯하다. 그는 “북한의 김정일 군사독재 정권은 우리가 경험한 70년대 유신체제와 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보다 더 지독하고 적나라한 군사독재 정권”이라고 말한다.

북한이 억압적 체제라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제약돼 있고, 정치범 수용소와 공개처형의 존재는 북한 당국조차 인정하는 바다. 노조 결성권과 파업권 등 노동권도 제약돼 있다.

따라서 우익이나 주체주의자들의 규정과 달리, 북한은 맑스가 말한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다. 정치적․시민적 자유와 기본권도 보장되지 않고, 노동자들의 자주적 행동도 제약되는 체제가 사회주의적일 수는 없다. 북한 체제는 당 관료와 군부가 주민들의 생활과 노동을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체제다.

그럼에도 주 전 의장처럼 서방 자본주의 체제가 북한 체제보다 근본적으로 우월하다고 보는 것도 맞지 않다. 서방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들도 자신의 노동을 통제하지 못하고 착취당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심각한 불평등을 겪고 있다.

또, 오늘날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은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시민적 권리를 제약하고 인종차별을 부추기고 있다. 더구나 남한은 사상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서방 자본주의 나라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구현되고 있는 것은 노동자 대중이 아래로부터의 행동을 통해 쟁취한 것이다.

따라서 서방 시장자본주의와 북한 국가자본주의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으며, 우리가 어느 한 편을 지지해야 할 이유도 없다. 둘 사이에는 외형상의 차이들만이 있을 뿐이다.

다른 한편,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은 북한 국가보다 제국주의 위계 체제의 사다리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다. 그들은 북한, 이란 등의 ‘인권’, ‘대량살상 무기’ 등을 핑계로 제국주의적 압박과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한다. 따라서 주 전 의장처럼 북한 체제의 열등함을 강조하다 보면, 제국주의 위계질서의 논리에 타협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진정한 맑스주의자는 위계 체제에서 더 높은 위치에 있을수록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서 수행하는 억압적 성격이 더 강화된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 관료는 자국민 2천만여 명을 고통에 빠뜨릴지 몰라도 미국과 남한은 전 세계의 수십억 명을 고통에 빠뜨리고 있다.

제국주의에 대한 이러한 맑스주의적 이해가 있어야만 주 전 의장이나 ‘자율과 연대’, NGO, ‘전진’, 사회당 등이 북한 핵실험에 대해 양비론에 빠진 것과 달리, 북한 국가를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미국 같은 제국주의 국가의 대북 압박에 일관되게 반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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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Munich ( 뮌헨 감상기 )

언젠가 네이버 블로그 이웃중에 한분이 퍼오신 글을 재밌게 읽었던 적이 있는데, 최근에 뮌헨 영화 개봉광고가 여기저기 돌아다니길래 기억을 더듬어대다가 진보넷 NeoScrum 님의 블로그 ( http://blog.jinbo.net/neoscrum/ ) 에서 원문을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원문이 궁금하시면 여기 를 클릭해주시면 좋겠다.

 

지난번에 '달리는 열차위에 중립은 없다' 라는 책을 소개하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었지만, 가치판단을 배재한 '중립' 이란것은 존재할수 없으며 그것을 추구하는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것이라 생각한다. 흔히들 '편향된 사고는 위험하다' 고 하지만, 이미 사회의 역학관계가 지배계급의 그것에 기울어져 있고, 모든 사회적 요소와 재원들이 그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는데 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와같은 '중립' 적 시각을 갖고자 한다면 이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지배계급의 관점에 복무하는 결과만을 나을 뿐이다.

 

한때 진보적이라고 불렸던 학자나 지식인들이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사례가 자주 목격되는 것도 어쩌면 그들의 아카데미즘 적인 자세가 가진 태생적 한계일지도 모른다. 중요한것은 중립적으로 사고한답시고 이것저것 고려해 주는 지식인의 태도가 아니라,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정당한 댓가를 찾도록 하는 것이며 그렇다면 철저하게 그들의 관점과 입장에서 사고하며 움직이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자신이 피지배계급의 일원이라면, 그와 같은 관점을 가지는 것이야 말로 곧 자기자신을 위한 관점이라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면서 목이터져라 '대~한민국!!' 외치고, 국가에 긍지를 느끼며 심지어 충성을 다짐하느라 피곤하게 밤을 지새는 바람에 다음날 아침 지각했다 치자. 사장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에 대한 충성심이나 월드컵 국가대표팀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아니라 오직 지각한 사실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와 개인의 관계는 그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덧붙이면, 지배자들이나 그 동조, 지지세력들은 중립 이란 개념을 이용해서 그들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매도하고 탄압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점선아래 퍼온 스티븐 스필버그의 '뮌헨' 역시 그런 사례중에 하나로, 이스라엘의 점령과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강압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한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저항방식중 하나로 선택한 테러와, 그 저항을 억누르기 위한 이스라엘 국가기관의 테러를 동일선상에 놓고 양비론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아래 퍼온글에 잘 나와 있지만, 뮌헨은 '테러에 대한 중립적이고 휴머니즘적인 관점' 으로 접근하고 있는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이스라엘 국가의 관점에 충실하며 결과적으로 그들의 온갖 야만적인 점령정책에 대해서 침묵 하는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헐리웃 오락영화들이 이제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번에도 휴머니즘을 양념으로 지배계급의 관점을 설파하려고 한다. 그러니 '씨바버그' 감독님, 내가 당신의 그 거창한 필름쓰레기를 볼 일이 있겠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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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소개했던 Toronto NOW라는 무가지의 이번주 판을 보다가 영화평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토론토에 개봉중인 영화 중에 NOW로부터 별을 다섯개 받은 영화가 딱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스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 Paradise Now >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스라엘의 테러리스트가 주인공인 스필버그 감독의 < Munich > 였습니다.

 

        
< Munich >는 독일의 도시 '뮌헨'의 영어식 표기입니다. [뮤니크]라고 읽더군요.(실은 영화보기 직전에 사전 찾아봤습니다. 표를 사려면 저 발음을 알아야 하기땀시.. -.-;;;) 이 영화는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일어난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의 테러와 이스라엘의 역테러에 관한 영화입니다.

스필버그는 잘 알려져있다시피 지금까지 미국 주류사회 이데올로그로서의 역할에 극히 충실해왔던 영화감독입니다.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영화 기술로 '미국의 애국주의'와 '군국주의', '가족주의'를 위한 영화를 끊임없이 만들어왔지요.

<쉰들러 리스트>를 통해 이제는 '가해자'로 자리잡은 유태인들이 마치 현재도 '피해자'인 것처럼 이야기해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었고,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미국 우익의 군국주의적 애국심을 자극하고, <마이너리티 리포트>, <우주 전쟁> 등은 원작의 의미를 뒤집어 볶아먹으며 '가족주의'와 '애국주의'로 똥칠을 해서 많은 SF 팬들을 분노하게 했었습니다. 특히 H. G. 웰즈의 <우주 전쟁>은 본래 사회주의자인 웰즈가 제국주의를 비난하기 위해 제국주의의 폭력과 공포를 다룬 소설인데, 이것을 테러리즘에 공포를 느끼는 미국인들의 이야기로 완전히 뒤집어 놓기도 했지요. 게다가 유태인인 스필버그가 이라크전에 대한 세계 여론이 계속 시끄러운 이 마당에 '검은 9월단'에 대한 영화 <뮌헨>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영화는 개봉되기도 전부터 이미 격렬한 논쟁 속에 휘말려 들어가 있었습니다. 

<뮌헨>의 원작인 조지 조너스(George Jonas)의 <복수(Vengeance)>라는 논픽션 책은 모사드의 테러단에 참가했던 사람의 구술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 친 이스라엘 시각이라는 비난이 있고, 그 내용의 진위여부가 논쟁이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는 심각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작가인 조지 조너스가 실제로 그 사건의 모사드 테러단원이 아니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고, 책 속 내용을 작가에게 제공해준 인물이 실제로는 당시 모사드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저는 서점에서 책 껍데기만 구경하고 아직 못 읽어봤음) 

그리고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위해 모사드의 테러단과는 인터뷰를 진행했지만(영화 속의 주인공인 테러단의 리더), 검은 9월단 측과는 인터뷰를 하지 않고 영화를 만들어서 현재 검은 9월단의 마지막 생존자로부터 공평하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사드에서도 스필버그를 비난하고 있는데, '니가 실체적 진실을 알아? 알지도 못 하는 게 왜 주제넘게 나서서 깝죽대고 그러냐'같은 비난이지요.


이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스필버그는 영화를 개봉하기 전에 논쟁을 우려해서 사전 홍보도 전혀 하지 않고, 언론용 시사회조차 하지 않은 채 비밀에 붙여서 만들고 개봉했습니다. 12월말 개봉 후 현재 찬사와 비난이 동시에 쏟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도 현재 소수의 개방관에서만 상영중이고, 전국적인 개봉은 1월 6일경이랍니다) 그런데 이렇듯 논쟁의 한 가운데에 놓인 <뮌헨>이 팔레스타인 폭탄 테러리스트가 주인공인 < Paradise Now >와 나란히 NOW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뽑혔다는 사실이 참 흥미로왔습니다. 



검은 9월단

 

그러다 오늘 1월 1일 새해 아침에 어쩌다보니 아침 일찍 밖에 나가서 한동안 방황해야 할 상황이 되서 거리를 헤메며 걸어다니다가 커피숍도 안 열고(한국보다 훨씬 싼 커피값만 내면 하루종일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든 뭘하든 상관 안 하기 때문에, 시간을 보내거나 책을 읽기에 정말 좋은 장소입니다), 서점도 하나도 안 열고, 거리에 앉아 있을 곳도 없어서 뭘 할까 궁리하다가 결국 <뮌헨>을 보기로 했습니다.

< A.I >의 그 어이없는 뒷 부분에 하두 열받아서 앞으로 절대로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이렇게 또 보게 되었네요(사실 그동안 나온 스필버그의 영화들은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서 뒤로만 봤습니다. ㅎㅎㅎ...)

<뮌헨> 한국 공식 홈페이지 : http://www.munich.co.kr

< Munich > 공식 홈페이지 : http://www.munichmovie.com/



 

 



검은 9월단 협상 대표


영화는 앞서 이야기 했듯이 1972년 뮌헨 올림픽의 비극적인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뮌헨 올림픽의 검은 9월단 사건이란,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인 '검은 9월단'의 단원 8명이 올림픽 선수촌에 들어가 이스라엘 선수 2명을 사살하고, 9명을 인질로 잡은 후 구속된 동지들을 석방시켜 달라고 요구했던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정부가 협상을 거부하자, 검은 9월단은 인질과 함께 공항으로 이동했는데, 공항에서 총격전이 전개되어 이스라엘 선수 전원과 검은 9월단 5명이 죽고 3명이 생포되었습니다. 당시의 실제 보도와 영화를 편집한 장면이 영화의 첫장면으로 펼쳐집니다. (생포된 3명은 추후 검은 9월단이 루푸탄자 비행기를 납치해서 인질과 교환을 통해 전원 석방됩니다)

참고로 검은 9월단은 1970년 9월 요르단 정부군의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토벌로 수천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죽고, PLO가 큰 타격을 입으면서 본부를 레바논으로 옮긴 사건으로부터 유래한 이름입니다. 그 두 달 후 11월 '검은 9월단'이 요르단 총리를 암살하면서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사건 직후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는 '검은 9월단'에 복수를 하기 위해 테러조직(일명 '신의 분노(Wrath of God)')을 파견합니다. 영화에서 5명으로 이루어진 테러단은 검은 9월단의 배후 인물들과 PLO의 지도부를 차례차례 총기 살해, 폭탄 테러 등 갖은 테러 수법을 동원해 살해하는데, 영화는 그 테러단의 리더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갑니다. 사건이 점점 커지면서 KGB, CIA 등 각국 정보기관의 개입, 그리고 이어지는 폭력의 악순환과 이 과정에서 파괴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도 끝부분에 다른 팀도 있다는 것이 살짝 언급되고 지나가는데, 모사드는 당시 'Spring of Youth'라는 두번째 테러 조직도 파견했었습니다)



영화를 본 제 느낌을 아주 간단히 정리하자면 '기계적으로 아주 균형이 잘 잡힌 유태인 영화다'라는 것입니다. 우선 양측에 의해 이루어지는 폭력 그 자체는 아주 중립적으로 다루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폭력장면이 이스라엘 암살단의 테러 장면들이라는 점은 지금까지 테러라고 하면 오로지 아랍인들만 자행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다른 '미국의 영화'들과 큰 차별점을 보여줍니다. 특히, 중간에 이스라엘 테러리스트와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사이에 이루어지는 대화(혹은 논쟁)는 정말 마음을 쏙 빼앗길 정도였습니다.

스필버그가 '폭력'의 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이 영화는 그리 공평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마치 이번 농민의 죽음을 다루며 '농민에게 가해진 초국적 자본과 국가의 폭력'이라는 몸통은 빼먹어 버리고 '농민과 경찰간의 폭력 사태'라는 깃털만 다루는 신문 기사들 같았다고나 할까요? 

'농민들이 왜 싸움의 현장으로 내 몰리게 되었는가'하는 진정한 원인은 사라지고, 경찰과 농민 중 누가 먼저 폭력을 행사했느냐를 따지는 상황. 그래서 농민 위에 짖눌려진 거대한 폭력은 사라진 채, 부상당하고 죽어간 농민과 경찰만이 표면에 올라서 '누가 먼저 때렸다', '폭력은 나빠요', '피는 피를 부른다', '그 속에서 인간은 몰락해간다', '폭력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휴머니즘'의 한계를 보는 느낌입니다. 마치 경찰이나 농민의 한측, 혹은 양측이 폭력을 행사하지 않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 사태의 시작은 경찰과 농민간의 폭력도 아니었고, 시위와 진압 과정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해소가 현재 농민 항쟁의 해결책도 아닙니다. 거리의 시위를 사라지게 하려면, 우선 농민 위에 짖누르는 저 거대한 자본의 폭력부터 치워야 합니다.

이스라엘과 아랍 민중들간의 기나긴 폭력의 역사에 다가가려면, 폭력의 원죄를 안고 있는 이스라엘의 국가적인 폭력에 대해 당연히 먼저 이야기 해야합니다. 세대를 넘는 긴 시간 동안 시오니즘의 이름 아래 너무도 공공연하고, 태연하게 펼쳐진 이스라엘의 역사적 폭력은 사라진 채 '국가를 수립하려는 팔레스타인과 그들의 테러에 맞서는 이스라엘의 역테러'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펼치면 참 곤란하지요. 이스라엘의 폭력을 빼버리고 나니까 사건의 본질도 바뀌어버렸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완전히 현실이 역전되어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마치 팔레스타인인들이 먼저 납치극이라는 도발을 시작했고, 이스라엘이 이에 맞서서 복수하는 형국입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와 검은 9월단이 문제의 원흉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이렇게 놓고 보니 이 영화는 전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그 오랜 시간동안 팔레스타인인들이 투쟁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과연 그들이 당하는 피해를 알기나 했을까요? 현재 팔레스타인인들이 투쟁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에게 조국을 돌려줄까요. 누군가 억눌려있는 현재 상태는 그대로 둔 채 그냥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평화만을 설교하는 것은 '현재의 지배자들'이 원하는 그들의 주장일 뿐입니다. 

힘들게 지켜냈다고 소문난 그 영화 속의 '중립'과, '평화를 위한 영화'라는 스필버그의 주장은 그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결국 '유태인'의 시각으로 그려낸 지배자의 중립이고, 힘 있는 자의 평화였습니다.

<뮌헨>은 액션영화로서는 꽤 완성도가 높았고, 다른 미국의 영화들보다는 그나마 나은 편이고, 또 지금까지 스필버그가 보여준 편향에 비하면 상당히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만, 제가 볼 때 스필버그의 중립은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혹시 제 의견이 스필버그에 대한 평소의 편견 때문에 그렇게 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1월에 전면 개봉을 한다고 하고, 한국에서는 2월에 개봉된다니 혹시 영화를 보시는 분이 계시거든 저와는 다른 느낌을 또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 글을 올리고 나서 여기저기 신문들의 평을 봤더니, 극찬에 가까운 평들도 많았지만, 아주 냉소적으로 평을 올린 신문들도 꽤 많더군요. 저는 영화를 보통 그냥 뭉뚱그려서 전체적으로 보는 편인데, 평들을 보니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하면서 냉소적인 비웃음을 날리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읽다가 '아.. 저런 장면들이 있었지.. 어떻게 저런 장면을 그냥 별 생각 없이 봤을까..' 그러고 있습니다.




얼마전 총기 난사 사건이 있었던 장소에 누군가 붙여놓은 '반전, 평화'의 상징입니다.
올해에는 억눌린 자, 빼앗긴 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평화가 아니라, 억압과 착취가 사라지는 진정한 평화에 한발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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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동지가 박근혜에게 보내는 편지

민지네 게시판에서 퍼왔습니다. ( 원문클릭 ) '편지' 를 쓰신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은 제작년 10 월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의 추모제에서 눈물겨운 추모사로 알려지신 분이죠 ( 김주익 열사 추도사 전문 입니다. )

 

지난 정기국회에서 몸싸움 끝에 통과된 열우당의 사립학교법은 개방형 이사의 비중 축소, 교사 임명권 ― 교원 채용 비리의 핵심 ― 을 학교장이 아닌 재단이사회에 그대로 두어 그 법으로 과연 사학재단의 병폐들이 척결될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수준입니다. 게다가 친족이사의 정수를 4분의 1로, 비리자들의 복귀시한을 5년으로 한 규정은 한나라당 안과 별 다르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 마져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전교조가 교육을 말아먹는다' 며 이른바 장외투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들이 주되게 비난하는 대상이 법안통과를 강행한 열린우리당이 아니라 전교조 라는 점, 지난 APEC 의 참 모습을 알리기 위해 전교조 부산시지부가 제작한 'APEC 기동대' 동영상에 대해서 '위험한 이념교육' 이라며 여론을 부추기고 마녀사냥한 점 등은 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것이 교육의 민주화, 정상화가 아니라 사립재단들을 보호하여 그동안 부당하게 누려온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기지 않는것과 동시에 교육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속셈임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때마침 김진숙 지도위원이 적절하게 발언해주어 속이 시원하네요. 한나라당 의원 여러분들도 시원하게 물대포라도 한번 맞아보시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적어도 살을 에이는 추위가 어떤지는 겪어봐야 하지 않겠' 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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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씨.가관도 길어지면 민폐라 한마디 하오.

 

근혜씨네 패밀리가 생산해 낸 불가사의가 한둘이 아니오만 그 중 대표적인 게,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우스운 일을 그 당시에는 너무나 진지하게 엄수했다는 건데,그건 아마도 나쁜 일도 집단적으로 오래 하다보면 직업이 되기도 하는 그런 이치일거요.

거짓말이나 사기치는 일 같은 걸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거울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거요.

근혜씨 아버지 시절.우리는 이 땅에 역사적 사명을 띠고 아침마다 큰소리로 태어나야 했던 일이나,이불을 뒤집어쓰고 라디오를 듣는 자를 눈 부릅뜨고 색출하러 다녔던 일이나,토요일마다 모의간첩이 되어 배회하던 선생을 생포해서 경찰서에 갖다 바쳤던 일이나,그 일로 표창장을 받았던 일이나..로보트나 컴퓨터 게임이 없던 시절에도 우린 참 기발하게 놀았소.

그 중에서도 위문편지라는 게 있었는데, 걸핏하면 위로를 해야 할 만큼 그 무수한 국군장병 아저씨들을 내가 군대로 보낸 것도 아닌데,그럼에도 어린 내가 추운 날이거나 더운 날이거나 낮이거나 밤이거나 불철주야 나라를 지켜주시는 그들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오늘도 또한 내일도 사시사철 불구하고 용맹하게 북한괴뢰도당으로 부터 나라를 잘 지켜 주십사는 고무와 오늘밤도 우리 국민들은 아저씨들 덕분에 발 뻗고 잔다는 사생활의 보고를 수시로 해야 했는데,숱하게 썼던 위문편지 중에,근혜씨 엄마 돌아가시고 슬픔에 빠진 영식,영애분들을 위로해야 한다고 숙제로 내 준 위문편지를 쓴 건 압권일 듯 하오.

그 이후 두 번째 편지요.

평생을 일만 했던 우리 엄마가 입원도 못하고 돌아가셨을 때는 근혜씨로부터 어떤 위로도 받은 적이 없긴 하오만.

 

박근혜씨.진지하게 묻겠소.

50년도 진즉에 넘어 선 나이를 살면서 선거 때 말고,누군가를 위해 진심으로 눈물을 흘러 본 적이 있으시오?

내가 아는 전교조 선생들은 걸핏하면 우는 못나빠진 사람들이오.

단지 불편한 게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는 가난 탓에 엄마는 집을 나가고 술만 먹으면 매질을 하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가출을 일삼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쥐어주며 배고프면 전화하거라 무력한 당부를 해놓고는 돌아서서는 찔찔 짜는 사람들이오.

너무나 어린 나이에 세상으로 부터 받았던 상처 탓에 아무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는 아이를 집에 데려다가 씻기고 재워놓고는 그 아이의 성마른 이마 위에 눈물을 떨구는 그런 사람들이오.

스승의 날.그 아이가 제 손으로 꼬깃 꼬깃 접어 책상 위에 놓고 간 종이학 천 마리를 품고는 기어이 닭똥같은 눈물을 쏟는 대책없이 여려빠진 사람들이오.

공장에 실습을 나갔다가 손가락이 잘려 돌아 온 아이를 보며 자신의 멀쩡한 손가락이 죄스러워 혼자 술을 마시며 훌쩍거리는 때때로 쓸쓸하기도 한 사람들이오.

이 넓은 세상에 아이에게 남았던 한 점 혈육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빈소에서 문상객 노릇에 상주 노릇에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할머니의 유골을 흩뿌리는 법까지 가르쳐야 하는 그런 전천후의 선생들이오.

 

박근혜씨.다시 진지하게 묻겠소.

지금까지 살면서 나와바리를 지키거나 더 확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누군가를 위해 단 하루라도 바쳐본 적이 있으시오?

여태껏 살면서,앞으로 살아가면서도 제 발로는 서울구경 한 번 못해 볼 장애아이들을 데리고 제 돈들여 홍성에서 서울 나들이를 하는 선생들이 있는 조직이 전교조요.

제빵사가 되는 게 꿈이라는 아이를 위해 일요일 제 시간 흔쾌히 바쳐 제빵 박람회가 열리는 서울까지 물어 물어 기꺼이 발품을 파는 선생들이 만들어가는 조직이 전교조요.

자기 집처럼 편안해야 아이들이 마음 터놓고 얘기를 할 수 있겠다 싶어 제 집에 있는 커텐 뜯고 액자 떼어다 상담실을 꾸미고,난로 하나를 상담실에 놓기 위해 교장실 행정실을 겨울이 다 가도록 드나들며 수십장의 똑같은 공문을 보내다가 결국은 제 돈으로 난로를 들여놓는 선생들이 조합원인 조직이 전교조요.

왜 그런 걸 자기 돈으로 하냐고 묻고 싶소?

근혜씨가 장내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날 세워 투쟁하게 될 예산삭감 대상의 대부분은 그런 힘없는 예산들이기 때문이오.

그래서 근혜씨는 밖에 있으나 안에 있으나 참 근심이오.

 

어떻게 하면 산만한 아이가 학교에 재미를 붙일까 제 돈,제 시간들여 마술을 배우기도 하고,컴퓨터 게임이 놀이의 전부인 줄 아는 아이들에게 우리 놀이와 우리 노래를 가르치기 위해 이런 저런 단체들을 찾아다니고,퇴근 후에는 이런 저런 교과 모임을 일주일에도 두어 차례,쉴 틈 없는 각종 연수에 방학이 짧은 게 전교조 선생들이오.

그래서 전교조는 안 무너져요.

그렇게 사는 게 전부인 줄 아는 선생들을 근혜씨 작은 아버지가 1500명이 넘게 학교에서 쫒아냈어도 전교조는 안 무너졌잖소?

그렇게 사는 게 선생의 삶인 줄 아는 선생들의 머리채를 잡아 패대기를 쳐가며 닭장차 차떼기로 실어 나르고 징역을 살게 했어도 전교조는 안 무너졌잖소?

근혜씨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영남대를 비롯하여 비리의 종합셋트 같은 사학에서 눈 밝은 선생들을 그렇게 짤라 냈는데도 전교조 무너집디까?

그런 선생들에게 빨갱이에 좌경에 용공에 칠갑을해서 17년 째 "계란이 왔어요.계란이 왔습니다~" 만큼이나 똑같이 외쳐도 전교조 무너집디까?

그런 선생들이 아이들에겐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꼽히고,그런 조직에 조합원이 줄지 않는다면 방법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소?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하기야 근혜씨가 참교육을 어찌 알겠소?

빌어먹게 길기도 하던 국민교육헌장을 아침마다 외어서 한 자가 틀릴 때마다 한대 씩 맞아야 했던 기억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육성회비 가져오기 전에는 학교에 오지말라는 선생의 명령에 등 떠밀려 학교를 나서면서 운동장이 얼마나 아득하게 넓은지 눈물로 흔들리던 운동장 구석에 막막히 서 본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엄마를 찾아 큰 고무신에 작은 발이 자꾸 미끄러지던 논둑길을 걸어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가 왜 논둑길을 비칠거리며 저렇게 한참을 걸어오는지 알면서도 모포기만 헤집던 엄마의 보푸레기처럼 살껍질이 일어난 새까만 목덜미에 흙을 집어 던지며 울어본 날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소풍 날.너 때문에 소풍도 못가는 거..우리 같이 죽을래? 눈만 꿈뻑거리던 애꿎은 소를 쥐어박아 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외양간이 텅 비어 있던 날.소가 매어있던 기둥을 쓸고 또 쓸며 미안하다.진짜루 미안하다.소야..울며 불며 소한테 편지를 써본 적이 없는 자가 어찌 참교육을 알겠소?

여름내내 복숭아 밭에서 봉다리 씌우고 절 앞에서 아이스케키 팔아 모은 돈으로 겨울에 엄마 털신을 사들고 신작로를 한 달음에 내달려보지 않은 자가 참교육이 뭔지 어찌 짐작이나 하겠소?

 

근혜씨랑 내가 유일하게 공통점이 있다면 우린 둘 다 참스승을 만날 수가 없었다는거요.

학교마저 병영을 삼았던 근혜씨 아버지 덕에 공주님 앞에선 선생들마저 설설 기었을테고,내가 만난 선생들은 다 근혜씨 아버지 같은 사람들 뿐이었으니까.

그 때는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권력 앞에 굴종하지 않는 전교조 선생님들을 존경하오.

근혜씨 아버지 시절과는 반대의 삶을 사시는,강한 자 앞에서는 더욱 강하고 약한 자와는 함께 할 줄 알며 나눌 줄 아시는 그 분들을 나는 진심으로 존경하오.

...129일을 크레인 위에 매달려 있던 노동자가 크레인 위에서 목을 매는 세상에서도..농민이 전경의 방패에 맞아 죽는 세상에서도..그래도 내가 희망을 말하게 되는 건,아이들에게 길가에 핀 민들레를 허리굽혀 내려다보는 법을 가르치는 그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오.

 

우리 아이 지키기 운동을 하신다 했소?

우리 아이들..부디 진심으로 지켜주시오.

생존권 때문에 목을 매거나..제 몸에 불을 붙이거나..농약을 마시거나..투신을 하거나..맞아 죽거나..그런 기가 막힌 이유들로 어린 아이들이 더 이상은 상주가 되는 일이 없게끔..그 올망 졸망한 상주들과 맞절을 해야 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게끔..

부모가 일하러 나간 빈 집에서 불타 죽는 아이들이 없게끔..

혼자 살던 빈 집에서 굶주린 개에게 물려 죽는 아이가 더 이상은 없게끔..

그 아홉 살 아이의 친구가 영인아.널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편지를 쓰는 일이 없게끔..

먹고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엄마 대신 맡아 키우던 보모의 남편에게 맞아 죽는 아이가 더 이상은 없게끔..

대물림 되는 가난 때문에 실습나간 공장에서 죽어나가는 아이가 없게끔..

알바라는 이름으로 어른들의 먹잇감으로 성적노리개로 너무나 일찍 체념을 배우는 아이들이 없게끔..

 

그리하여 지금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는 그 자리가 아니오.

아무도 없는 비닐 하우스에 개와 함께 어린 제자에게 수시로 라면을 사들고 찾아가야 했던 건 그 가난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었소.

학교에 오지 않는 아이가 걱정이 되어 아이의 집에 갔다가 개에게 물어 뜯겨 죽은 아이를 보고 충격과 자책감에 입원을 해야 했던 건 그 착한 선생이 아니라 당신이었소.

혼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밤에 일해야 했던 엄마 대신 세 살짜리 하나를 맡아 키워야 했던 건 자기 새끼들 키우기도 버거워 피폐해졌던 그 포악한 보모의 가족이 아니라 바로 입만 열면 민생을 외치는 당신들의 한나라당 이었소.

근혜씨가 지닌 힘과 돈과 권력을 제대로만 쓴다면 그토록 목청 높여 외치지 않아도 우리 아이들은 저절로 지켜질거요.

 

내심으로야 이왕 나간 김에 물대포도 맞아보고 방패에도 찍혀보면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늘그막에나마 철이 좀 들려나 싶기도 하지만 무현씨가 연정을 품은 이에게 그럴리는 만무할테니 이제 그만 집에 가시오.

한겨울에도 치마입고 빨각다리로 궁궐을 벗어나 본 적이 없는 공주님한테야 장외에서의 장장 한 시간이 얼마나 길고 지루하오?

대권이 걸린 일이라 사나흘만에 접기 뻘쭘하면 그건 어떻겠소?

눈만 내놓은 채 천원짜리 장갑하나를 팔기 위해 혹은 배추 한 포기를 팔기 위해 또는 신발 한 켤레를 팔기 위해 간절하게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어 보는 건..

근혜씨도 이 나라에서 60번 가까운 겨울을 지내면서 적어도 살을 에이는 추위가 어떤지는 겪어봐야 하지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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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당시보다 조합원수 31.4% 늘어

기존언론들이 일제히 '노동조합 조직율 하락' 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이 조직율 하락을 '우려' 하며 문제시 삼고 있는 의도는 너무나 명백하게도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노동운동의 '대표성' 에 대한 시비와 그를 통해 조직 노동운동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점선아래에 민주노동당 당게시판 ( http://www.kdlp.org/index.php?menu=partici_1&main_act=board&jact=list_view&page=1&category=77 ) 에서 허영구씨가 이에 대해 적절하게 지적하고 반론한글 두개를 퍼왔다. 아래에서도 지적하고 있지만 흔히 사회분위기가 '좌파적' 이고 노동운동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되는 프랑스의 경우 노동조합 조직율은 겨우 8% 를 넘고 있는 수준이다. 노동조합 조직율을 끌어올리는것은 중요한 문제이지만, 조직률이 낮다고 해서 대표성이 떨어지는것은 아니다.

 

대표성이란 전체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그를 쟁취하기 위해 싸울때 자연스럽게 갖춰지게 된다. 간단한 예를들면 기만적인 비정규직 보호법안이 아니라 비정규직 권리입법안 쟁취를 위한 투쟁등이 그에 속한다. 비록 '조직율' 을 들먹이며 사상최저라고 친절하게 걱정해준 기존언론들의 의도는 비정규직 입법안을 둘러싸고 벌이는 투쟁에 시비걸고 여론을 조작하기 위한 것이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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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당시보다 조합원수 31.4% 늘어
-노조조직률 10.6% 사상 최저라고?


12.4일 노동부는 <2004년 전국 노조 조직 현황>을 통해 노조 조직률은 10.6%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989년 19.8%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하여 왔다. 당시 조합원수는 193만 2,415명이었다. 전체 임금노동자 1450만 명 중 조직된 조합원수는 153만 6,843명이라 한다. 한국노총 조합원 780,183명(조합 수 3,714개), 민주노총 조합원 668,136명(조합 수 1,256개), 양 노총 미 가입 조합원 88,524명(조합 수 1,047개) 등이다.

여기서 조직률 통계를 좀 더 세부적으로 분석해 보자. 1989년 정점으로 조합원수는 IMF경제위기 첫 해이자 감소가 지속된 10년째인 1998년에 140만 명까지 감소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8년 동안 조합원수는 꾸준히 증가하여 노동부 통계로도 154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노동부가 합법성을 이유로 제외하고 있는 공무원노조 등 조합원 약 20만 명과 역시 정부가 인정 않고 있는 특수고용직 노동자 6만여 명을 포함하면 184만 명에 달한다. 이렇게 되면 IMF 직후 조합원 수 대비 31.4%가 늘어난 셈이다. 조합원수로는 최고 정점이었던 1989년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조직률은 전체 임금노동자 대비 조합원 비율이기 때문에 현재와 같이 취업자와 임금노동자가 매년 수십 만 명씩 증가하는 상황에서 조직화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는 총인구 4,800만 명 중 77%인 3,700만 명이다. 이 중 취업자가 2,300만 명이다. 생산가능인구중 미취업자 1,400만 명은 학생, 환자, 노인, 임산부, 육아 등 전업주부다. 물론 이 중에 아르바이트나 단시간 노동자로 일하고 있으면서 미취업자로 분류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취업자 2,300만 명 중 노동부는 임금노동자가 1,450만 명이라고 간주한다. 그렇다면 사업자 등록을 가진 고용주 또는 자영업자가 850만 명이라는 얘기다. 과연 그럴까? 물론 공무원 90만 명을 먼저 제외시키더라도 760만 명이다. 이 중 특수고용직 노동조합이 주장하는 대로 특수고용직 노동자 약 200만 명이 포함되어 있다.

이제 이를 종합하여 다시 노조조직률을 추정해 보자. 노동부 통계로 1,450만 임금노동자에다가 90만 공무원, 특수고용직 200만 명을 합하면 임금노동자는 1,740만 명이다. 이 중 184만 명이 조직되어 있으니 조직률은 우연히도 노동부 통계와 같은 10.6%다. 그런데 미취업인구 1400만 명(전업 주부 500만 명 포함) 중 불규칙적이나마 단시간 노동자나 아르바이트가 포함되어 있다면 노조조직률은 10% 이하로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의 아르바이트가 광범위하게 성행하고 주부들의 파트타임 노동이 역시 확대되어 온 상황을 감안할 때 노조조직률은 실질적으로 9%대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노동조합 조직률을 끌어올려야 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중요한 과제다. 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만 스웨덴 90%, 40.7%, 영국 26%, 싱가포르 25%, 독일 22.3%, 일본 19.6%, 미국 12.5%로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노조 조직률이 꼭 투쟁력을 나타내는 것만도 아니다. 최근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노동자 투쟁을 전개하는 프랑스는 노조조직률이 8%대다. 조선일보류(類)처럼 ‘국내 노조의 비타협적 강경투쟁 일변도의 노선에 염증을 느낀 근로자들이 노조를 외면한 데다 전통적인 노조의 근간인 금속업종의 쇠퇴, IT업종 등의 발전 추세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하는 것은 맞지 않다. 노조조직률을 성별로 보면 남자의 경우는 15%대 이나 여성의 경우는 5%에 불과하다. 그 만큼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산으로 노조조직화가 쉽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여성노동자의 경우는 더더욱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다. 비정규직과 여성차별이라는 이중구조다.

노조조직화 속도가 임금노동자수 증가속도에 미치지 못하여 조직률이 하락하는 추세를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IMF 경제위기 이후 지난 8년 동안 조직화되는 조합원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전통적인 산업에서의 조합원 감소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을 비롯한 서비스 부문의 노조조직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비정규직 부문의 조직화는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이제 서서히 폭발적인 조직화의 토대를 마련해 나가고 있다. 노조조직률 통계를 이용하여 노동운동을 폄하하고 대국민적으로 고립시키며 김을 빼려고 하는 어떠한 시도에도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높은 노조조직률에도 불구하고 투쟁하지 않고 노사협조주의 내지 체제내화 된 외국의 사례는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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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대비 총 조합원수 62% 늘어나
- 민주노총 창립 후 현재까지 조합원 112.9% 증가
-사상최저치로 떨어진 노조조직률 아니래도!

한국경제는 사설(12.6)을 통해 사상최저치로 떨어진 노조조직률에 대해 평가했다. 1977년의 조직률 25.4%에 비해 40%선에 불과하다고 했다. 퍼센트(%)만 가지고 통계 장난질치고 있네. 그럼 1980년 통계를 가지고 지금과 비교해 보자.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을 뺀 상시고용 노동자 대비 조합원수 즉, 노조조직률은 21%다. 그런데 조합원수는 100만 명에도 미치지 못한 94만 8천명이다. 물론 민주노총이 없던 시절이니까 모두 한국노총 소속이다. 그러나 이후 민주노총의 맥을 이어 온 곳은 여성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민주노조 지부들이었다. 그 외에는 대부분 어용조직이었다.

1980년과 비교하면 지금의 조합원수 153만 7천명은 25년 만에 62%가 늘어난 수치다. 조직률이 21%에서 10.6%로 절반으로 떨어졌다는 것과 조합원수가 62% 늘어났다는 것을 놓고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는 엿장수 마음인가? 한국경제가 굳이 비율을 가지고 ‘사상최저로 떨어진 조직률’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자본가 신문답게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노동운동노선을 걸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조직률 하락을 두고 ‘노동계가 조합원들의 근로조건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정치투쟁과 비타협적 강경투쟁 노선만을 고집하면서 국민과 근로자들의 외면을 받게 된 때문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정한다. 거기에 산업구조변화도 곁들였다.

그런데 이런 분석이 얼마나 엉터리인지를 설명해 보자.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노동운동노선은 민주노총의 노선을 말하는 것이다. 최근 비정규직 법안을 둘러싼 투쟁에서도 한국노총은 매우 온건하여 국민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노선이 그들이 말하는 대로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졌다고 치자. 그래서 조직률이 하락했다는 말인가? 천만에 말씀이다. 민주노총은 전노협, 업종회의 현총련 등을 거쳐 1993년 전국노조대표자회의(전노대)로 모아졌다. 당시 조합원수는 30만 명에 미치지 못하였다. 1995.11월 11일 민주노총 창립 당시의 조합원이 정확하게 313,872명(노조 734개)이었으니 2004년 말 현재 668,136명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조합원이 112.9% 증가하였다.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노동운동노선을 견지한 까닭에?

한국노총이야 지난 10년간 150만명에서 120만명, 100만명 그리고 현재 78만명으로 꾸준히 감소해 왔으니까 한국경제신문이 얘기하는 대로 감소한 것이 맞지만 민주노총은 아니다. 30만명에서 70만명으로 늘어났고 앞으로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어쩌나,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노동운동을 하는데도 조직이 늘어나니 말이다. 국민정서와는 동떨어지지만 노동자 정서와는 맞아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오히려 민주노총 내부에서 노동자 정서에 동떨어진 채 부패하거나 관료화하거나 비민주적으로 조직을 운영하거나 투쟁을 회피하려는 것이 조직률 하락의 위험성이라면 모를까? 그런데 국민의 대다수가 노동자라면 국민 정서 운운하는 것도 사기임이 분명할 터.

국민정서를 빙자한 자본언론의 정서, 아니지 자본언론의 국민기만 음모라 할 것이다.

이제 한국경제신문에 정정보도를 요청하건데,
첫째,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노동운동을 한 조직의 조합원수는 증가한다.
둘째, 구체적으로 자본의 정서와 동떨어진 투쟁을 하는 대표적인 조직인 민주노총은 다른 노동조직의 급격한 조합원수 하락에도 불구하고 창립 이후 113%의 조합원수 증가를 실현하였다.
셋째, 투쟁과 조합원수 증가는 비례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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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12월 3일 기후변화대응 집회 연설발제문

점선 아래는 보건의료단체연합 홈페이지 ( http://www.kfhr.org/ ) 에서 가져온 것이다. 지난 12 월 3 일 열렸던 기후변화대응 공동행동 집회에서 아래의 내용으로 보건의료단체연합의 우석균씨가 발언했다고 한다. 기상이변이 이미 심각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다는것, 그 원인과 해결방안이 이윤을 우선하는 자본주의식 생산방식에 달려있다는것을 잘 지적하고 있는 좋은 발제문이라서 퍼왔다.

 

특히 지난해 있었던 LG칼텍스 노동자들의 사례를 들어 발언하신것은 매우 적절했다. 비상식적일 정도의 노조탄압은 LG칼텍스 노동자들에게만 한정된 공격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우리 모두의 삶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야말로 '전쟁으로 인간을 죽이는 자들이 바로 기후변화로 사람들을 죽이고 이들이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탄압하고 환경을 망치는 주범' 이다. 이러한 자들에 맞서지 않으면 우리의 현실도, 미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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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는 2005년 7월 기후변화로 매년 15만명이 더 사망하고 매년 500만 명이 더 질병을 앓게 될 것이라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요즘 많은 한국인들이 싫어하는 네이쳐지 2005년 11월 17일자에 보도되었습니다).

  이 원인은 첫째 기후변화에 의한 직접적인 질병들 때문입니다. 이상 고온이나 이상 저온, 그리고 이로인한 심장병과 호흡기 질환 등이 그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03년 유럽의 이상고온현상의 결과 냉방시설이나 치료시설이 가장 잘 완비되어있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는 유럽에서 그 전해보다 27,000명이 더 사망하였습니다. 또 스모그 현상도 기후변화에 의해 더욱 많이 발생합니다. 공기중의 오염물질이 높은 기온으로 말미암아 스모그현상을 더욱 빈번하게 일으키는 것에 의해 치명적인 질환들이 발생합니다. (뉴욕시를 예를 들면 스모그로 인한 사망률이 1990년대 보다 현재 5%가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후변화가 사람들의 건강과 생명을 진정으로 위협하는 것은, 기후변화로 인해 더욱 자주 더욱 강력하게 일어나는 폭우, 홍수, 허리케인과 같은 기상재해입니다. 1990년대만 이러한 기상재해로 60 만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1999년 10월 인도 오리사 지방에서의 싸이클론으로 150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1만명이 사망했습니다. 1999년 베네주엘라 카라카스에서의 홍수는 3 만명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었습니다. 몇 년전 예를 들것도 없습니다.  올해에 일어난 허리케인만 하더라도 카트리나를 비롯하여 중남미지역에서 수없이 발생하였습니다. 올해는 6월 1일부터 며칠전 11월 30일까지의 허리케인 시즌동안, 허리케인이 25개나 발생하여 21개의 영어이름을 모두 사용하고도 모자라서 처음으로 그리스 알파벳인 알파 베타 감마 델타까지 등장시켜야 할 정도로 최대 최다의 허리케인 시즌이었습니다. 카트리나 월마 등 우리가 기억하는 5등급 짜리(최대 시속 250km)만 해도 4개였습니다. 사망자와 실종자수가 미국에서만 8000여명이고 과테말라에서는 한마을 주민 전체 3000여명이 매몰되어 마을이 공동묘지로 변했습니다. 미국에서만 7만명이 컨테이너에서 겨울을 날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허리케인과 홍수 등으로 가장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기후변화에 대해 가장 책임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아시아와 남미 대서양, 인도해안, 아프리카 같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이 피해를 가장 많이 받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사람들의 생명과 건강의 피해는 기후민감질병의 증가에 의해서도 발생합니다. 기후민감질병(climate sensitive diseases)이라고 불리우는 설사, 말라리아와  이로 인한 영양실조 등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질병들 또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등의 가난한 나라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합니다. 페루의 경우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설사로 입원한 어린이들의 환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폭우가 빈번해져서 사람들이 깨끗한 물을 얻기 어려워져 수인성 전염병이 창궐합니다. 기온상승, 폭우가 농산물생산을 감소시켜 사람들의 영양실조를 불러일으킵니다. 사막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전됩니다. 이러한 세가지 원인으로 사망한 사람만 2002년에 330만 명이며 이중 아프리카의 인구가 30%를 차지합니다.
  길게 말씀드리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외에도 기후변화로 생기는 질병은 많습니다. 영국정부의 보고서는 영국의 경우 기후변화로 매년 5000명이 암의 이환율이 올라가고 2000명의 백내장이 더 생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건강과 생명에 대한 여러가지 위협말고도 기후변화가 사람들의 생명과 삶을 위협하는 재앙적 피해는 바로 해수면의 상승입니다. 앞으로 100년간 9cm-88cm까지 가능하다는 것이 세계 보건기구의 보고이고 영국정부의 공식보고는 해수면 상승이 2m이상이 될 수도 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세계 인구의 절반이 해안가에서 60km이내에 살고 있습니다.
  한반도의 경우 부산대와 기상청이 예상한 바에 의하면 1도가 올라갈 때마다 해수면이 16-30cm가 올라가는데 앞으로 한세기동안 한반도의 온도상승은 약 4.6도로 예상됩니다. 이렇게 될 경우 현재 우리나라의 해안지대의 침수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말레이시아는 지도상에서 없어집니다.
  해안지대의 침수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이집트의 나일강지역이나 방글라데시의 갠지스강 유역, 몰디브나 마샬군도와 같은 나라의 사람들이 살 땅이 사라지는 일은 당장 눈앞에 닥쳐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재앙이 결코 자연현상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이른바 지구온난화는 석유회사와 자동차회사등 환경오염기업과 이를 비호하는 세계 각국의 정부들이 방비책을 세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최소 60-80%까지 온실가스배출을 억제해도 기후변화의 추세는 계속되다가 2050년에야 현재 추세가 꺾이는 것이 현재의 실정입니다. 그런데 현재 교토협약은 5%의 감축량을 배정하고 이 감축량조차 사고 파는 거래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토협약은 그러함에도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출발점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데 이 교토협약에도 들지 않는 것이 바로 미국입니다. 미국은 교토의정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아태기후변화협의회를 만들기 까지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미국과 호주(석탄 제 1위 생산국가), 그리고 부끄럽게도 한국 정부가 일본, 중국 정부등과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국 정부에게 그리고 각국의 기업들에게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 에너지정책을 내놓도록 요구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우리의 아들 딸들과 후손들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예를 하나드는 것으로 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작년 LG 칼텍스 노동자들은 환경보조기금으로 회사가 지역사회에 이윤의 최소한을 돌려달라는 주장을 걸고 파업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작업환경의 개선과 지역사회에 대한 환경부담금을 위해 파업을 벌였습니다. 그들에게 돌아간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파업 참가 조합원 649명 전체에 대한 징계, 구속 7명, 해고 24명, 정직 236명, 감급 142명, 견책 247명 등 GS칼텍스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초유의 강경탄압책을 동원하였고 조중동 등 언론은 귀족파업이라고 이들을 매도하였으며 한국정부는 이를 방관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칼텍스가 어떤 회사입니까? 이 칼텍스는 세브론-텍사코의 아시아지역 이름입니다. (이 회사의 모토는 'Human Energy'입니다. "인류가 1조 배럴까지 사용하는데 125년이 걸렸지만 현대의 우리는 30년안에 1조 배럴을 쓸 것이다"가 이들의 광고입니다.)
  

바로 이 셰브론 회사의 이사가 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입니다. 셰브론이 가지고 있는 유조선 중 하나는 바로 콘돌리자 라이스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습니다. 셰브론의 이사로 있는 토마스 데어(T. Derr)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셰브론의 대표이사였던 데어는 1988년 "이라크는 천연자원의 보고이다. 다라서 우리가 이라크에 접근하는 것에 전략적 이익이 달려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1999년까지 셰브론의 대표이사로 있었던 이 사람은 2001년 부터 핼리버튼의 이사로 자리를 옮겼고 이라크에서의 자기 예언을 실현하였습니다. (핼리버튼이 이라크 재건공사라는 명목으로 이라크에서의 최대이권을 얻은 딕체니의 회사라는 것은 다 아시는 내용일 것입니다)

  전쟁으로 인간을 죽이는 자들이 바로 기후변화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탄압하고 환경을 망치는 주범입니다. 우리의 미래와 우리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일은 바로 이들 이윤을 위해 생명과 지구의 미래를 파괴하는 이들에게 대항하여 싸우는 길입니다.

아래는 시민들에게 나누어준 공동 유인물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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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과 호주는 교토의정서에 가입하라

  2001년 전세계 1백여 개 나라에서 모인 2천여 명의 과학자들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라 유례없는 재앙을 몰고 올 기후 변화가 벌어지고 있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기후 변화에 대한 정부간 패널 3차 보고서)
지난 1백 년 동안 전세계 평균 기온이 0.6도 상승했고 이는 1천년 동안 가장 큰 폭의 기온상승이었습니다. 1990년대의 10년은 가장 더운 10년이었습니다. 그 결과 기상 이변이 빈번해져 가뭄, 태풍, 폭염, 혹한으로 세계적으로 5천 만 명의 기후 난민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난 9월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같은 기상 이변을 흔하게 접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141개 나라들이 이 심각한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국제 협약(교토 협약)에도 가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 세계 배출량의 1/4이나 되는 미국은 이 결정적인 지구 보호 노력에 동참하길 거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온실가스, 특히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면 석유,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 소비를 대폭 줄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석유 기업과 석유를 대량으로 소비하는 자동차 기업의 이윤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조지 부시와 미국 정부는 석유 대기업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대부분 석유 대기업의 이사 출신입니다. 호주도 세계적인 석탄 생산·수출국입니다.
  미국과 호주는 당장 교토의정서에 가입해야 합니다.

2. 온실 가스 감축 의무 부담을 강화하라

교토의정서는 선진국들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도록 하는 의무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교토의정서의 온실 가스 감축 의무 부담을 이행하는 것만으로는 지구 온난화와 거대한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없다고 합니다.
교토의정서는 2012년까지 의무 당사국의 배출량을 1990년을 기준으로 5.2퍼센트 감축하도록 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은 기후를 더 이상 악화시키지 않으려면 최소한 당장 80퍼센트 감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매우 모자란 교토의정서가 쓸모 없는 것이라고 여기거나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교토의정서는 준수되어야 하고 또한 그 감축 목표치를 높이는 쪽으로 강화돼야 합니다.
12월 3일 기후변화대응 국제공동행동의 날은 미국과 호주의 교토의정서 비준과 배출량 감축 기준의 강화를 요구합니다. 이러한 요구는 우리 아이들에게 온전한 지구를 물려 주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이며 인류가 존속하기 위한 너무나도 절실한 요구입니다. 12월 3일 국제공동행동은 이러한 절실한 요구를 전세계인들이 함께 외치는 매우 소중한 날입니다.

3. 한국 정부는 아태기후파트너십에서 탈퇴하라

아태기후파트너십은 미국, 호주, 일본, 인도, 중국, 한국 6개국이 참여하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대응협력 모임입니다. 외교통상부는 지난 7월 28일 이 협약에 공식적으로 참여를 밝히고 “이번 협약은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교토의정서를 보완하는 현실적인 장치”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파트너십은 온실가스 배출을 강제적으로 규제하는 교토의정서와는 달리 핵융합, 탄소포집저장기술, 원자력이나 석탄에 기반한 수소에너지 개발 등 기술개발을 통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핵기술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위험한 방법입니다.  

또한, 아태기후파트너십은 교토의정서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산업계의 이해에 따라 교토의정서의 무력화를 꾀하는 야합입니다.
여기에 참여한 6개국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는 전세계 온실가스의 50%를 넘습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 기구에서 한국정부는 당장 탈퇴해야 하고, 파트너십은 해체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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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울고 싶은 싱싱한 난자

출처 : 산에들에 만발해라

점선 아래는 네이버 블로그 '산에들에 만발해라' 님의 것을 훔쳐온 것이다. pd 수첩 파동으로 황우석 신화는 더욱 견고해 질것이며, 따라서 '난자기증 광풍' 은 더욱 열기를 얻을것이 거의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아래의 글은 그 실체를 밝혀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난자기증 운동은 결과적으로 '국가' 를 위한다는 미명아래, 향후 특허권을 얻어 독점하게 될 모 기업과 노성일 원장 같은 극히 일부의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접근하기도 힘든 가격으로 사람의 목숨을 흥정하게 될 일에 바로 그 흥정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여성들이 고통을 감수하라는 말이다. 다시한번, 일다의 '금모으기 같은 난자기증' (  클릭 : 황우석 사태, 인권의 눈으로 점검하자  ) 이란 표현이 얼마나 적절한 것이었는지 깨닫고 있는 중이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연구가 인류에게 희망의 빛이 될 수 있을까? 인간의 몸이 배아줄기세포로부터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배아줄기세포가 있다고 해서 난치병이 저절로 치유되는것은 아니다. 배아줄기세포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 몸의 일부를 만들어내는지도 모를뿐만 아니라 조절할수 있을지도 의시스럽다. '다함께' 57호 에서 서울대 물리학과 최무영 교수는 "윤리적 문제는 논외라 하더라도 그것이 성공할 가능성은 상당히 희박해 보여요. 문제는 줄기세포를 만들어 내는 것까지는 가능한데 그것이 어떻게 분화할지는 우리가 아직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원하는 세포로 분화할 가능성보다 암세포로 분화할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거든요. 파국이 되겠죠. 현재로선 우리가 그걸 이해도 못하고 있거니와 제어할 방법은 전혀 갖고 있지 못해요. 어쩌면 그건 영원히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보거든요. " 라고 말하고 있다 ( 클릭 : 배아줄기세포 연구, 인류의 희망인가?  )

 

이미 황우석의 줄기세포연구는 벌써부터 고가의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사실 그렇게 취급받을수 있는 체제이기 때문에 황우석의 성공신화가 대단한 것으로 떠받들여지고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배계급에게는 '새로운 돈벌이' 의 출현이 반가운 것이다. 난치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또 장애인들이 경제적으로 매우 곤궁한 처지에 있으며 때문에 '그림의 떡' 에 불과하게 될 줄기세포연구에 희망을 갖도록 조장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주머니로부터 어떻게하면 더 많은 돈을 빼낼수 있을지 연구할 것이다. 노바티스 처럼. 

 

진정으로 난치병환자, 장애인 들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면, 민주노동당이 주장하는 무상의료 정책, 이동과 교육, 취업에대한 장애인들의 권리 등의 사회정책들이 이루어 지도록 추진해야 한다. 그것이 대다수에게 그림의 떡에 불과하고 일부 자본에게만 이익이 될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보다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통제받지 않는 과학의 무한질주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대부분 그것은 지배체제의 이익을 담당하는 한 축으로 기능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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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민주노동당 게시판

 

 

 

..........강연 마무리에서 황 박사는 얼마나 많은 '살아있는'난자가 실험에 사용되었는지, 그 여성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실험에 동참했는지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돌연 화를 참지 못했다. 황 박사는 몹시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전 세계 어디에도 과학자에게 실험재료(난자)를 질문하는 리포터는 없다. 예의에 어긋난다”며 대답을 회피했고 “도대체 어떤 여자들이 그런 걸 궁금해하는가, 이상하다”라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또한 불임 여성의 경우를 보더라도 난자 적출이 무척 고통스러울 것이라는 기자의 지적에 대해서조차 그는 “그 여자들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난자 적출은 마취 후 3분이면 끝난다. 통증은 없다. 거짓말이다”라고 반복했다. 그는 기자에게 리포터는 한 달에 한 번씩 난자를 배출하지 않는가? 그건 살아있나, 죽어 있나, 살아 있는 것이다. 그걸 사용하는 것뿐이다”라고 교육(?)하기까지 했다........

 

'[기자파일] '난자' 질문에 분노하는 황 박사 中' (정명희 기자, 여성신문사  200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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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도 실험재료이고 당신이 주장하는 대로 8주전의 배아도 실험재료라고?  그래 실험재료일지라도 배아는 착상만 하면 세포분열해서 인간이 되는 초기생명이다.  임신 2개월째의 임산부 뱃속의 태아(배아)를 죽이는 것은 살인인가, 재료 손실인가?  여성의 몸과 생명까지 해칠 수 있는 난자적출의 결과물이 어차피 한 달에 한 개씩 생겼다 없어지는 세포덩어리여서 그걸 사용하는 것 뿐이라고?  생명 그 자체를 상품화시키고 재료로 취급하겠다는 의도를 캐묻지 말라고?

 

불임클리닉에서의 무차별적인 난자적출로 한국의 냉동배아 보관갯수는 전세계의 절반 가량이다. (이것도 자랑? 국가경쟁력??)   난자를 두 개 이상만 적출해도 곧바로 의사가 구속된다는 여타 다른 나라의 실정과는 달리 생명윤리며 최소한 그를 뒷바침 해 줄 제도가 바닥을 치는 형편이다 보니, 여성 한 명에게서 한번에 15~18개의 난자를 적출해서 수정시키고, 필요 이상으로 실컷 쓰고도 남아서 쓰레기통에 버리고(유명 불임클리닉 여러 곳에서 남은 배아를 쓰레기통에 버린 게 들켜서 난리가 난 적 있다) 해당 여성에게 잔여배아의 상태에 대해 고지할 의무조차 지키지 않으며 그나마 냉동시켜둔 게 전세계의 절반 가량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형편이니 한 달에 한 개씩 생겼다가 어차피 없어지는건데 좀 쓰면 어때? 라고 공개적으로 떠드는 쉐이들이 어찌 생기지 않겠나?  배아줄기세포 연구 자체를 반대하지만,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위해서라도 새로운 난자는 필요하지 않다.  불임클리닉의 냉동실을 뒤지면 곧바로 실험에 써도 될 냉동배아가 넘치고 넘치는데 왜 난자가 필요하단 걸까?  생명 그 자체를 상품화 시키기 위한 윤리 무너뜨리기 시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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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연구, 부자의 과학이 되어선 안된다

좀 때 늦은 감이 많지만,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 한재각 연구원의 논평을 퍼 왔다.

한재각 연구원은 지속적으로 줄기세포연구 문제에 대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적해왔다.

 

황우석 교수 연구부분에 대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당 게시판에 11 월 29 일 자로 올라온 '자주민보' 는 ( 원문클릭 )  는 '민족의 이익' 을 들먹이며 황우석 박사가 도덕적인 책임이 없으며, 그의 연구는 지지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논쟁은 크게 두가지의 논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국가주의적 관점이 그것이다. '자주민보' 에서 주장하듯이 황우석 교수가 우리나라 사람이고 그 연구도 우리나라에서 이루어 졌고 그래서 민족 (국가) 에 이익이 된다는 관점이다. 이는 '경제효과' 를 내세우며 국익을 외쳐대는 지배계급의 관점과 전혀 다르지 않은것으로, 국가, 혹은 민족 이라는 관념으로 그 안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계급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연구결과에 대해서 향후 특허권을 얻어 독점하게 될 모 기업과 노성일 원장 같은 극히 일부의 기득권 세력을 제외한 평범한 사람들이 '국가' 라는 무더기로 인해서 얻게 될 '경제효과' 는 무엇이며 '국익' 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노무현이 이라크 침략전에 동참하며 떠들어댄 국익론과 대체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대한민국 이라는 무기물에 불과한 '국가' 라는 것이 그 안에 살고 있는 민중, 여성의 인권보다 우선한단 말인가. 

 

여성주의 저널 '일다' 는 11월 29일자 기사 ( 황우석 사태, 인권의 눈으로 점검하자  - 본문을 보고 싶으신 분은 제목을 클릭 하시길 )  에서 "사회적으로 여성의 몸에 대한 지식과 배려가 일천한 데다가, 여성 스스로도 자신의 신체적 권리를 존중 받아온 역사가 없는 상태에서 마치 '금 모으기 운동' 처럼 난자를 모으는 무서운 현상" 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러한 국가주의적 관점을 지적했다. 우리 속담중에 '뭐 두번만 하면 사람 잡겠다' 라는 것이 있는데, 그 놈의 '애국적 연구' 에 대한 칭송은 이미 사람을 잡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그 연구로 인해 불치병 환자, 장애인들이 많은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관점이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 정책논평에서 잘 지적하고 있듯이 이미 연구에 대한 어떠한 결과도 나오기 전부터 '고가의 상품' 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전무하다 시피 한 한국에서 오랫동안 불치병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경제적 사정 악화로 고통받고 있기도 하다. 애시당초 취업전선에서 밀려나있단 장애인들의 경우는 더 말할것도 없다.

 

그와같은 현실에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연구가 무슨 인류에게 희망이 되고 빛이 된단 말인가? 우리에게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해서 장농안에서 굶어죽는 아이가 생기나? 전력생산량이 부족해서 촛불키고 공부하다 잠들어 숨지는 학생이 생긴단 말인가? 이미 에이즈나 백혈병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치료, 예방제가 없어서 고통받고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노바티스 라는 다국적 의약회사가 해당 약품에 대한 특허권을 가지고 평범한 사람들은 접근하기도 힘든 가격으로 약을 판매하고 있는것이 문제이다. 물론 그와 같은 죽음의 댓가로 노바티스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황우석의 줄기세포연구에 대해 특허권을 가지는 기업들은 제2의 노바티스를 꿈꾸며 피 묻은 돈들을 끌어모을 것이다.

 

IMF 당시 국가경제를 살린다며 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을 때에도 진짜 금괴를 가진 사람들, 기득권 세력들은 장농 깊숙히 금을 숨겨두고 평범한 사람들만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IMF 로 인해 타격을 받은 사람들 역시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한 그들이었지, 동참하지 않은 극소수들은 사람들이 죽어갈때 오히려 더 특권층 같이 보이게 되었다며 좋아했었다.

 

난자채취에는 대단한 고통이 수반된다고 하며 때문에 불임치료를 위해 난자채취를 했다가 이혼하는 부부들도 많다고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림의 떡으로만 존재할 연구, 극소수의 지배계급을 위해서만 기능하게 될 연구를 위해 난자를 기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역시 그 연구의 성과를 전혀 누리지 못할 평범한 계급의 여성들이 아닌가. 난자기증운동 운운하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누구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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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정책논평>


줄기세포연구, 부자의 과학이 되어선 안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 해체하라

 


어제 황우석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제기되고 있는 윤리적 의혹의 일부를 시인하고, 모든 공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줄기세포연구가 더 튼튼한 사회적 지지 위에서 차분하게 꾸준히 진행될 수 있기 위한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점검해야 할 일이 많이 있으나 민주노동당은 줄기세포연구가 ‘값비싼 치료제’가 되어서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환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되지 않을까 큰 우려를 가지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황우석 교수, 노성일 원장, 그리고 박기영 보좌관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를 주목하고 있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소위 ‘의료산업 선진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기구인데, 그 핵심은 병원 영리법인화와 민간의료보험 도입 등과 같은 의료시장화 정책이다.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연구도 의료 시장화 방법을 통해서 막대한 부를 약속하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해 있다. 그것이 성공한다면 가난한 희귀난치병 환자와 장애인은 줄기세포 연구성과를 이용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민주노동당이 노성일 원장에게 계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에서 사퇴하라고 촉구한 이유는 그가 의사로서의 비윤리적 행위를 했다는 점만이 아니다. 황우석 교수로부터 40%의 특허 지분을 약속받았다는 노성일 원장은 병원 영리법인화를 강력한 주창자이며 청와대에 전략을 제공하는 브레인이라는 점 때문이다. 또한 박기영 보좌관도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의 공동간사이자, 내부 기획단의 단장이기도 하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를 시장화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추진자이기도 하다. 황우석 교수 역시 이 위원회 위원으로서 모든 난치병 환자를 고칠 연구를 하겠다는 호언장담과 다르게, 줄기세포연구의 시장화의 길을 걷고 있었다.

황우석 교수, 노성일 원장, 박기영 보좌관은 이 위원회에서 하루 빨리 사퇴해야 한다. 아니 의료산업화위원회 자체가 해체되어야 한다. 비윤리적 행위로 사회적 비난을 받고 있는 인사들이 위원회에 대거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최소한의 도덕적 정당성도 잃었다. 대통령은 하루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

2005년 11월 25일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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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떨어지는데 노동자가 왜 반대하냐고?

민주노동당 당게에서 허영구씨가 쓴 글을 퍼왔습니다.

 

쌀수입이 마치 노동자, 도시빈민을 위한 정책인양 선전하는 부분에 대한 효과적인 반론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인다면, 쌀 수입 개방을 강행하는 자들이 바로 노동자 민중의 삶을 더욱 옥죄는 자들이라는 부분을 강조할 필요가 있겠군요.

 

아이들 핸드폰 하나 사주는 정도의 경제효과를 선전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교체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농약을 마시거나 그게 싫어서 집회라도 할라치면 경찰 폭력에 살해당하는 농민들 이야기는 말 할 것도 없겠죠.      

 

원문 : ( http://www.kdlp.org/index.php?main_act=board&board_no=2&art_no=211894&jact=art_rea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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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떨어지는데 노동자가 왜 반대하냐고?
- 쌀값 하락- 노동자 생계비 절감 논리 수긍 어렵다

한국경제신문 11.25일자 다산칼럼란에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가 '헛된 몸부림'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쌀시장 개방을 적극 옹호하였다. 쌀시장이 개방되면 쌀값이 떨어지는데 왜 쌀 소비자인 노동자가 반대하는가 하는 질문이다.

그는 한국농업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8%의 인구가 국내총생산의 4%를 생산하는데 그 중 쌀값이 국제가격의 4배나 더 비싸기 때문에 실질적인 국내총생산 비율은 2% 정도라는 것이다. 국민의 90% 이상이 비농업부문에 종사하는데 이들 대다수 국민의 경제적 후생은 생계비를 낮추는 낮은 쌀값과 정비례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이 왜 노동자의 생계비를 낮추는 쌀시장 개방에 반대하면서 국회의장석을 점거하는 등 소란을 피웠는가 하고 꾸짖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행동은 노동자들의 이익에 배치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먼저 8%의 인구가 국내총생산의 4%를 생산한다는 부분이다. 농업을 단순히 1차 산업으로 보고 논·밭이나 가축우리에서 생산되어 1차 판매되는 것만을 계산해 국내총생산비율을 산정한 수치다. 그러나 오늘날 농업은 농업관련산업(Agribusiness)이라 하여 매우 광범위하다. 1차적인 생산뿐만이 아니라 수송, 가공, 저장, 판매 등 전 분야에 걸쳐 부가가치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현재는 농민을 위한 진정한 협동조합이 부재하고 농민이 부가가치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농업의 역할을 4% 국내총생산에 불과하다는 부르주아적 계산방식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농업이 갖는 진정한 경제적 가치는 부가가치를 제외하고라도 인구의 지역분산과 지역개발, 안전하고 안정된 식량의 생산, 특히 논농사를 중심으로 물의 저장과 환경보호 등을 감안할 때 현재의 농업총생산 수치보다 4배 정도는 더 많이 산정해야 한다는 것이 농업계의 주장이다. 따라서 현재의 국내총생산 수치를 놓고 농업문제를 얘기하는 것은 농업, 농촌, 농민에 대한 무지이거나 모독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차피 김병주씨가 쌀 소비자로서 노동자들을 걱정했으니까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추곡수매가를 폐지하고 쌀시장을 개방하는 바람에 전국의 쌀값은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멀쩡한 농민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끊을 리 없다. 오죽하면 그러하겠는가? 전국적으로 80Kg당 한 가마니에 14만 원대까지 떨어졌고 지역에 따라서는 12만 원까지 폭락하였다.

지금 쌀값의 하락이 소비자인 노동자들의 가계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그들의 후생을 증대시켰는지 살펴보자. 지금 우리나라 국민들의 쌀 소비량은 연간 80Kg에 미치지 못한다. 평균 한 사람이 한 가마니도 먹지 않는다는 결론이다. 하루 평균 한 사람이 고작 밥 두 공기를 먹을 뿐이다. 만약 한가마니에 14만 원 하는 쌀을 구입해 1년간 먹는다면 하루 쌀값은 고작 200원에 불과하다. 한 공기에 100원이다.

노동자 평균임금을 연봉 2500만 원으로 가정하면 가구당 3.6인가족의 쌀 소비량(1인당 80Kg소비) 50만4000원(가마당 14만원)은 노동자 1년소득의 2%에 불과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후생을 더 높이기 위해 1/4에 불과한 외국쌀을 들여오면 1년소득의 0.5%가 될 것이다. 연봉 1500만 원인 비정규직 노동자 가구라 하더라도 쌀값은 1년소득의 3.4%에 불과하다. 만약 맞벌이 하는 노동자가구소득으로 환산하면 쌀값은 생계비에 전혀 영향이 없는 존재일 뿐이다. 아이들 핸드폰 하나 사주는 것에 불과하다.

도대체 쌀값이 얼마나 싸야 노동자들의 생계비를 낮추어 후생을 높일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한 가족이 먹는 1년 쌀값이 한 사람이 하루 한 갑 피우는 담배값도 안 되는 현실을 외면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반(反)농민적 의식과 사고로 노동자를 위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정말이지 당황스러울 뿐이다. 쌀값문제를 놓고 대대적인 국민토론회라도 열어보자.

 

(2005.11.28, 오마이뉴스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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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힘.

출처 : Multiple Personality 님 ( http://blog.jinbo.net/belial/ )
 
'우리'의 힘.

블로그를 여기저기 타고 넘다가, 한 블로그의 글에서 잠시 멈췄다. 글의 내용보다는 덧글들의 내용 때문이었다. 그 블로그에 놀러온 한 남성이 과학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여성 흡연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내세운 것이 시작이었다. 뭐 그리 흙탕물 튀기며 싸우는 논쟁이 된것은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남성의 논쟁에 참여하는 태도였다.

(그를 M이라고 지칭할께요.) M을 제외한 사람들은 M의 입장에 반대하고 있었고, M이 이야기한 근거들을 중심으로 어떤 점에서 그 입장에 대해 반대하는지를 설명하는 글을 달았는데, 그에 대한 M의 덧글은 한결같이, '아무리 당신이 말하는 입장이 옳다고 해도, 대부분의 남성들은 그렇게 생각해주지도 않을겁니다'라는 요지의 내용으로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거 참. 어떤 질문에도 대답할 수 있는 만능 답변인양 똑같은 요지의 덧글이 되풀이해서 달리는 걸 보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일거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일은 종종 벌어지고 있었던것 같다. 합리적, 논리적, 진보적인 '척', 여성에 대해 모든 것들을 이해해준다 하면서도 "담배불 좀 빌리자"는 말에 '임산부의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경고 문구를 들이대며 촉촉한 눈빛으로(-_-;;;;;) "네 건강을 위해서 그러는거야"라는 낮게 깔린 목소리를 몇번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그 사람들이 M과 같은 마음일거다. '이해는 해 주고 싶지만, 다른 녀석들은 나처럼 맘이 넓지 않아..' 얼마나 마음이 넓으신지, 타인이 넓은 맘을 가지지 못한 것 까지도 알려주며 나를 배려해주려 한다. 한마디로 역/겹/다.

M에 대한 덧글 중 한마디가 기억에 남았다. 나는 당신 M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왜 자꾸 다른 '남성들'이야기를 꺼내는가? 다른 남성들이 바뀌기를 원한다고 말하는게 아니라 당신 M이 다르게 생각했으면 하기 때문에 논쟁을 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덧글이었다.

어릴때 친구들 끼리 싸우다가 뭔가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싶을때는 '누구도 그랬고, 누구도 그랬고....선생님도 그랬어!'라며 우기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곤 했다. 딱 그때 그 시절의 상황을 다시 보는 기분이랄까..

나이가 들어서도 스스로의 입장 하나 정리하지 못하고 '나'가 아닌 '우리'를 들먹이며 우기기 신공을 쓰는 사람들이 참 안타깝다. 나도 완전히 예외라 볼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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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교원평가 도입!교원구조조정임이 명백하기에 나는 끝까지 거부할..

출처 :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전교조 블로그 홈의 어떤 선생님글을 퍼왔다.

현상황을 명확하게 해설해 주신것이라 생각되고

다른 선생님들께 이렇게 이야기 나누어보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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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 도입 도대체 왜 · 무엇이 문제인가?


명백하게 ‘교원구조조정’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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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본전제 : 한국의 교육은 OECD국가 중 가장 열악한 교육여건 속에서도, OECD국가들 모두가 놀랄만한 훌륭한 성과를 만들고 있다. 과연 한국의 교육노동자들의 상당수는 ‘무능력하거나 부적한 교원’들인가?



“한국교육의 성과는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  /  (Barry McGaw - OECD 교육담당국장)

- 학력수준 세계 1위: 2003 PISA결과 수학과 문제해결력 모두 1위

- 고등학교 졸업률 세계 1위:

  40년전 OECD국가중 24위에서 10년전부터 1위

- 학업성취와 동시에 교육의 형평성도 달성하고 있다.

- PISA 2003 문제해결능력에서 부모의 사회경제문화적 영향력은 한국은 14.2%, OECD 평균은 20.3%

─ 2005년 6월 13일(월) 한국교육개발원(KEDI) 보도자료, 전체 내용은 10쪽 분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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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원평가 찬성여론의 바탕 : “내 아이를 맡은 교사 중에 혹시라도 다른 교사들보다 학년·학급 석차 향상능력이 떨어지는 교사가 있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내 아이가 서울대 연·고대에 붙을 수 있을 정도는 만들어줘야 만이 공교육이나 교사들의 질에 만족하겠다.” 즉 자녀가 교육을 통해 계급·계층의 유지·상승에 성공해야만 하는 일반 학부모·국민들의 심경이다. 또한 성적조작·성범죄·금품수수 등 징계를 받아야 할 교원들이 부당한 권력구조(교육관료 사학재단)의 비호 속에서 합당한 징계를 피하면서 존립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현행법만으로도 엄정한 징계절차와 행정벌만 있다면 얼마든지 일소될 수 있는 사항들인데도 불구하고, ‘교원평가 실시하여 부적격교사·무능교사 영구퇴출하자!’는 정권과 언론의 교원구조조정을 위한 궤변적인 논리에 많은 국민들이 현혹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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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원평가 찬성여론의 핵심 : 국민 중 상위 5% 이내의 기득권층이 경제양극화와 교육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는 상황을 악용하여 공공의 교육시스템을 시장화·사유화시킴으로써 교육을 통해 그들의 기득권을 대대로 세습하는 명분을 보장받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위 5%의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있는 중앙·조선·동아·문화 등의 신보수언론이 모순된 논리와 확인되지 않는 과장·허위기사로써 ‘전체교사 죽이기’ 및 ‘전교조 죽이기’ 여론 및 이데올로기를 광범위하게 조작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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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육의 문제점 : 학벌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입시위주의 서열화경쟁교육이 진행되고 있음. 교육행정관료의 정책·행정권 독점으로 교사·학생의 자발성에 기초한 자주·창의적 교수-학습활동과 교육공동체의 민주·자치적 운용도 봉쇄되고 있음. 교육의 시장화·사유화를 확대·강화하려고 하는 신보수 정권과 언론이 교육의 공공성과 전교조를 향해 이데올로기적 공격을 집요하게 감행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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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는 현재 운용중인 ‘근무평정’을 왜 외면하려드는가? : 초등·중등·공립·사립을 떠나 교사의 절반이상이 근평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교육부로서도 근평이 교사들을 통제·관리하는 수단으로써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다. 하여 ‘교원평가’를 제도화시킴으로써 교사들 사이를 이간질하고 전교조운동의 운동성을 궤멸시킴으로써 교원구조조정을 이뤄내어 이를 바탕으로 교육의 시장화·사유화를 달성하려 하고 있다. ‘근평’처럼 교장·교감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교사·학생·학부모(다면평가)가 참여하는 ‘교원평가’는 그 비교육적 특성과는 달리 외견상으로는 객관적인 듯이 보이기 때문에 훨씬 쉽게 여론의 조작이 가능하며 따라서 교원구조조정을 추진하기가 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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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미한 수준으로 약화된 것이라 할지라도, 교원평가가 ‘제도화’될 경우에 예상되는 가능성 : 교원평가제의 ‘제도화’ 완성 → 교사들 사이의 불신 분위기 조성 → ‘제도화’가 된 이상 소소한 사항은 눈에 띄지 않게 점진적으로 강화 → 평가 실효성 달성을 내세우며 현행의 형식적 성과급제를 평가결과와 연계하여 ‘실질적인 성과급제’로 만듦 → 제정운영의 효율·합리성 및 지방교육자치를 내세우며 ‘교원지방직화’ 감행(250여개의 지방자치단체 중 제정자립도가 열악한 3/5정도의 지역에서 교원퇴출이 불가피) → ‘10년 주기 교원자격갱신제’나 연봉·계약제 도입 → 자유로운 교원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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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원평가’, 영·미·일에서는 교육공동체와 교사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 : 영국 ― 시장원리의 학교장책임경영제 하에서 교원평가제 실시 교권은 추락하고 교사 이직률이 치솟아 나이지리아 등 외국으로부터 교사 수입. 일본 ― 전일본교직원노조(젠쿄)가 운동성을 상실한 이후 부적격교사 교원평가 등으로 개혁·진보적인 교사들이 징계·보복형 연수로 내몰리고, 인사고과(인사이동·보수· 연수·지도)에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가 수정됨. 미국 ― 교사들 간의 협력·공조가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비교육적 측면 등이 확인되면서 반대하는 주장들이 들끓고 있음.



 

평가주체

평가 종류

평가의 활용

평가의 의도

평가의 방법

현장의 평

학생 학부모


영국

•관리자+

감독관

•직무설명서

•학업성취도

•성과급·보수 차등

•재임용·퇴출 등

•구조조정

•경쟁과 실적을 이용한 노동통제

•기구가 관리

•수업참관

•면담

•노동통제

•정책실패책임을 교사에 전가

•교사 팀워크 파괴

•공교육 왜곡

 


미국

•관리자

•자기평가

•팀평가

•학업성취도

•성과급·보수 차등

•자격갱신제, 재임용,  퇴출 등

•자기평가서

•5단계평가

•평가 참여 논의 중


일본

•관리자

•자기평가

•업적평가

•지도력부족

•승급·연수·전직·면직

•차등 보수

•자격갱신제(추진)

•자기평가서

•교장·감 면접

•5단계평가

•의견을 참고


(추진)

한국

•관리자+

동료+

학생+

학부모

•자기평가

•다면평가

•(사실상 징계형)연수

•이후 성과급·급여 차등화 추진

•이후 승진·퇴출 추진

•이후 자격갱신 추진

•구조조정

•경쟁과 실적을 이용한 노동통제

•자기평가서

•교장·감 면접

•평소관찰·수업참관

•위의 내용

•입시서열화교육 가중. 성적중심 평가 도입예상

•평가 참여인지 의견 참고인지 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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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원구조조정’, 마냥 예상과 추측일 뿐인가? : 교육부 대외비 문건(2005.4.6)에도 “교원평가 제도 정착 이후에는 성과급이나 자격갱신제 등 인사 관리에 활용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교원평가’의  모델로 삼고 있는 영·미·일에서 모두 교원평가는 그 자체로만 시행된 적이 일절 없으며, 모두 실제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교원구조조정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외국에선 퇴출이나 봉급 차별 자료로도 쓰지만 제도가 정착되는 데 걸리는 기간 동안은 그러지 않으려 한다. -2005년 9월 27일(화), 중앙일보 월례 경제포럼, 김진표 교육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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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당한 평가인 ‘근무평정’이나 ‘교원평가’가 아닌, 바람직하면서도 교육적인 평가방법은 : 교사회·학생회·학부모회의 법제화 → 교장선출보직제 실시와 근무평정 폐지 → 학교운영 및 교육활동 전반을 학교공동체의 주체인 교사회·학생회·학부모회와 함께 구상-논의-기획 → 공동으로 기획한 학교운영 및 교육활동을 상호 협력 하에 집행·운용 → 공조 속에서 집행·운용된 학교운영 및 교육활동 전반을 학교공동체의 주체들이 따로 또는 같이 평가 → 평가의 결과를 차기 기획에 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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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원평가 저지의 최소·최후 기준 : 교사 개개인에 대한 多面(다면)평가의 제도화 금지 그 결과가 계량화되거나 또는 수치화되는 평가의 제도화 금지 평가를 위해 별도의 관리·운영 기구를 설치하는 평가의 제도화 금지 교사퇴출 금지는 물론 성과급·연봉제 등의 인사·보수문제와 연계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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