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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전교조 "아펙 바로알기" 수업

출처 : 터널 끝에 빛이 보인다
 

전교조 부산지부의 “아펙 바로알기” 수업은 정당하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이 전교조 부산지부 교사들의 “아펙 바로알기” 수업에 대해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

 

우리는 부시와 아펙의 진실을 학생들에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산지역 전교조 교사들의 용기에 지지와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정부와 부산시가 아펙 미화만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펙 반대 목소리도 같이 들려주는 수업을 진행”했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문에 “나도 아펙지킴이가 될래요”라는 펼침막이 걸려있을 정도로 아펙 찬양 일색인 부산에서 이런 수업을 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한나라당 대변인 전여옥은 “전교조의 아펙 동영상 상영은 교육을 앞세운 폭력”이라며 원색적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부시의 야만적인 이라크 침략과 점령을 앞장서서 지지해 왔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폭력이다.

아펙은 부시의 전쟁을 지지해 왔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구이다. 전교조 부산지부의 “아펙 바로알기” 수업은 아펙의 이런 면을 학생들에게 제대로 알려주고 학생들이 나름의 비판적 의식을 갖도록 돕는 정당하고 옳은 일이다.

한나라당 원내 대표 강재섭은 전교조를 비난하며 ‘우리 아이 올바르고 반듯하게 키우기 특위’를 구성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완전히 수퍼 코미디이다. 이들은 입시경쟁과 교육 불평등을 강화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공헌’한 자들이다.

 

한나라당과 조선일보 등의 마녀사냥은 부시와 아펙에 대한 비판 주장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다. 이런 시도는 정의와 평화를 위해 부시와 아펙에 반대하는 항의운동을 겨냥하고 있다.

 

전교조 부산지부의 “아펙 바로알기” 수업에 대한 마녀사냥을 중단하라!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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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노무현 취임 2주년, 국회 연설을 보고 나서 생각나는 시

출처 : 역전다방

 

고기반찬을 밥상(식탁)에서 낼름 가져가다 먹어치우는 사람들은,
'만족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남들에게 가르친다.

 

떡고물(선물)이 알아서 생기는 사람들은,

'자기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자기 배가 넉넉하게 부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곧 좋은 시절이 올 것이다'고 말한다.

 

이 독일제국을 망쳐놓은 인간들이,
'아, 정치란 보통사람이 이해하기는 너무 어려워'라고 말한다.

 

시인: 베르톨트 브레힛트 Brecht

 

Die das Fleisch wegnehmen vom Tisch
Lehnen Zufriedenheit.

Die, fuer die die Gabe bestimmt ist
Verlangen Opfermut.

Die Sattgefressenen sprechen zu den Hungernden
Von den grossen Zeit, die kommen werden.

Die das Reich in den Abgrund fuehren
Nennen das Regieren zu schwer
Fuer den einfachen 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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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반부시반아펙] '대테러 조처 강화'에 관하여

출처 : 터널 끝에 빛이 보인다


 

‘대테러 조처 강화’는 실제로 무엇을 겨냥하는가? 

 

11월 18∼19일 부시 방한과 아펙 정상회의 기간에 노무현 정부는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사실상 ‘준 전시상태’에 돌입한다.” 이를 위해 “육해공에 걸친 입체적인 경호 작전을 펼칠 예정”이고, “다음달[11월] 초순부터 장산과 금정산, 황령산, 백양산 등 부산 시내 주요 산에는 군 병력을 투입해 부분적으로 입산 통제가 이뤄질 예정”이다.


특히 미국은 부시를 경호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공중조기경보기(AWACS)가 떠 24시간 동북아를 감시하며 해역에는 미국의 항공모함들이 배치되고 대잠함과 대잠초계기도 동원”된다. CIA와 FBI로 구성된 부시 경호 선발대가 서울과 부산에서 업무를 시작했고, 11월 초에는 본진 1백여 명이 합류할 계획이다.


한편, 전국의 주요 지하철역과 기차역에는 곤봉을 휴대하고 ‘아펙’이 새겨진 빨간 모자와 유니폼을 착용한 군요원들을 볼 수 있다.


서울지하철노조의 한 활동가에 따르면 “이미 서울·부산·인천·대구·광주의 지하철 및 도시철도에 약 2천여 명이 배치돼” 있다.

노무현 정부와 국정원은 한국이 세계 3위 규모의 파병국이기 때문에 테러 위험이 높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결론과 대책은 테러 위험을 없애는 것과 전혀 상관 없다.


7·7 런던 폭탄 공격 이후 영국의 대테러 정책 강화는 브라질 청년 메네제스가 지하철 안에서 경찰에게 7발의 총을 맞고 살해당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다.


반전 운동이 누누이 강조해 온 것처럼 테러 위험을 없애는 근본적 대안은 부시의 전쟁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의 ‘대테러 조처’ 강화는 테러를 막을 수도 없을 뿐더러 실제로는 부시와 아펙 정상회의에 반대하는 운동을 겨냥하고 있다.


정부는 정상회의가 열리는 해운대구를 포함해 각국 지배자들의 숙소를 포함한 5개소를 “치안 강화 구역”으로 지정해 시위를 억압하려 한다.


웃지 못할 ≪테러범 식별 요령≫ 


국정원이 펴낸 소책자 ≪테러범 식별 요령≫이 묘사하는 테러범은 다음과 같다. 이 항목중에 한 가지라도 적용되면 당신은 테러리스트로 몰릴 수 있다.

“마스크나 수염 등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모자 또는 짙은 색깔의 안경을 착용”, “신체의 다른 부위에 비해 지나치게 배가 나왔거나”, “땀을 많이 흘리며 눈초리가 불안한 사람”, “20∼40대 남성”.

모두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수염을 기르고 있고, 땀이 많은 30대 남성인 나는 3개 항목이 해당된다. 웃지 못할 블랙 코미디다.

더 황당한 것은 “부산 경찰청이 테러범을 신고할 경우 최고 5천만 원까지 신고보상금을 지급키로 하고 시민들을 상대로 홍보에 나섰다”는 것이다(<부산일보> 10월 12일치). 이는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테러 불안감을 증폭시켜 정부의 ‘대테러정책’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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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카트리나 대재앙- 진정한 약탈자는 누구인가?

출처 : 맨발로 함께 춤추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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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리나 대재앙 - 진정한 약탈자는 누구인가?

 

 

카트리나 대재앙으로 많은 미국인들이 고통 받고 있다. 특히 카트리나 피해로 죽음의 도시가 된  뉴올리언스에서는 최소 수백명, 최대 수 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많은 사람들이 올해 초에 전세계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쓰나미 해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질문을 던진다. "그렇지만, 적어도 미국이잖아."  최대강국 미국이 자연재해에 저렇게 처참히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피해지에서 약탈과 방화가 난무한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그러나 '쓰나미 해일'에 관한 타이의 사회주의자 자일스 웅파콘의 글을 우리는 미국을 강타한 카트리나 대재앙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태풍 카트리나로 인한 "자연재앙의 원인은  자연적이지만 그 결과는 그렇지 않다 ."

 

 '아랫돌 괴어 윗돌 얹는 식으로' 부시는 이라크 전쟁에 어마어마한 전비를 쏟아 붓느라 가난한 사람들의 안전망을 없애 버렸다. 연금, 의료보험 등 복지 기금에 이미 여러차례 손을 대려고 시도했던 부시는 "미 연방비상관리청이 뉴욕 테러 등과 함께 허리케인의 내습을 '발생가능성 높은 3대 재앙'이라고 경고"했음에도 이라크 전을 위해 홍수 통제 기금을 줄여버렸다. 뉴올리언스의 경우 홍수 기금이 2001년보다 44%나 깎였다". 부시는 “폰차트레인 호수 물을 80% 이상 빼기 위해 육군 공병대가 신청한 자금도 삭감됐으며, 공병대가 1년 전 건의한 뉴올리언스 수해 방지책 연구도 무시됐다.”  루이지애나 주정부가 둑 보호 시스템 개선을 위해 요청한 예산 지원도 대폭 삭감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소위 '예방전쟁'이라는 명목의 이라크 전쟁은 정작 자연재해를 예방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만약 부시 행정부가 대피경고에도 불구하고 대피하지 않은 사람들을 비난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방어해야 한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가난한 흑인과 히스패닉계 주민, 한인들, 가난한  백인들은 차마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끔찍한 재앙을 겪어야 했다. 당연히 그들은 생필품을 '충분히' 비축해둘 여력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약탈'이 시작되었다. 한겨레와 인터뷰한 한인 유학생은 "꼭 약탈이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생필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상점 문을 부수고 물건을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 과정- 목숨인가, 재산권인가 의 고민할 것도 없는 고민 사이에서 역겹게도 부시 행정부는 재산권 보호에 먼저 치중하고 있다. 부시는 약탈자들을 사살하라고 명령했고 그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법과 폭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주정부도 초강력 대응에 나섰다. 루이지애나 주의 캐슬린 블랑코 주지사는 난무하는 폭력을 끝내기 위해 약탈자와 폭도들에 대해서 사살하라는 지시를 주 방위군에 하달했다고 강력 경고했다. 

 

 

 하루 아침에 과거와 미래를 잃은 사람들이 절망감에서 폭력과 약탈을 저지르고 있다. 이들의 절망감은 이제 더이상 희망이 없다는 데에서 온다. 애초에 가난했으나 그들은 이제 그보다 더 밑바닥으로 내려 앉았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여온 부시 정부가 애초에 그들을 무정부 상태로 내몰았다.

 

군인이 아니라 삶을.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군인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보장이다. 깨끗한 물, 전기, 당장의 생필품, 미래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집,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충분한 지원이다.

 블랙코메디처럼 약탈범들에 대응하기 위해 뉴올리언스에 투입된 300명의 아칸서스 주 방위군은 이라크에서 돌아온 군대다. 주지사의 말처럼 "이들은 전투 경험이 있고, 탄환이 장전된 M - 16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주 방위군은 사살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그렇다. 그들은 이라크에서 충분히 무고한 사람들을 사살해 본 경험이 있다.

 

  부시가 벌인 전쟁의 희생양은 이제 더 늘어날 것이다. 이라크에서만 아니라 미국에서 이미 시작되고있다. 부시가 벌인 이라크 전쟁 때문에 이런 대가를 치르고 있는 무고한 사람들이 이라크 전쟁에서 경험을 쌓은 군대에 의해 단죄되는 것에 우리는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이라크를 '약탏한' 부시와 미국의 지배자들에게는 뉴올리언즈의 ' 약탈자'를 사살할 권리가 없다. 애초에 '약탈'은 부시와 지배자들이 한 것이 아닌가! 이라크에서, 미국에서, 전세계에서 약탈을 벌인 것은 누구인가.

 

  부시가 군대가 아니라 생필품을, 주택을 뉴올리언즈의 사람들에게 더욱 신속하게 보급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더 빨리 뉴올리언즈의 평범한 사람들이 삶을 복구하고 미래를 살아갈 희망을 찾는데 물질적 지원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 당장 물과, 전기와, 식품을 뉴올리언즈의 사람들에게 보내야 한다. 지금 당장 그들에게 약속해야 한다. 당신들이 잃은 것을, 그동안 잃어야 했던 것을 국가가 돌려주겠다고. 집과 병원, 일자리, 당신들이 미래를 다시 찾는데 필요한 것은 아낌없이 지원하겠다고. 

 

 그리고 미국 정부는 이라크 점령 중단을 이제 약속해야 한다.  이 점령이 전세계를 더욱 위험으로 내몰았던 것을 인정한다고. 이라크 전쟁 때문에 전세계의 사람들이 지하철이, 버스가 , 일하고 있는 건물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두려움에 살아야 했다고 . 더욱이 이라크 전쟁이 부추긴 군비경쟁 때문에 미국과 이라크 만이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의 복지와 삶의 안전망들이 느슨해졌다고. 그러나 미국정부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미국정부가 약탈해 간 것 때문에 대가를 치뤄야 하는 미국의 평범한 사람들과 그 정부를 도와 이라크 전쟁을 수행한 각국의 정부들, 군비를 증강하느라 복지예산을 써버린 각국의 정부들에게 우리는 경고해야 한다.  

 조지부시와 이라크 점령과 그것으로 지키려고 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질서는 전세계 사람들의 삶을 충분히 약탈했다. 카트리나 피해를 입은 미국의 민중들에 위로와 연대를 보내는 또다른 행동이 있다. 지금 당장 이라크 점령을 끝장내기 위한 행동들이다. 그리고 미국 정부의 약탈에 도전해온  이라크 인들의 저항을 지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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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봉쇄·공항마비, 볼리비아 민중 저항 날로 격화

물 사유화를 비롯한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강행하던 볼리비아의 로사다 전 대통령을 몰아낸 강력한 민중봉기가 있었던것이 2003 년 이었습니다. 당시 로사다 대통령을 대신해서 부통령이었던 카를로스 메사가 정권을 이어 받았지요.

 

운동이 이전 정권의 권력자중 한명을 다시 정부의 수장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그쳤던것은 정치적 지도력의 부제에서 비롯된 아쉬웠던 부분입니다. 하지만 로사다의 뒤를 이어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하려하는 메사는 그로부터 채 2 년도 지나지 않아서 다시금 강력한 민중들의 저항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볼리비아 민중들의 봉기를 대하는 브라질의 룰라 정권이나,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정권의 태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중의 힘을 빌어 권력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무늬만 좌파' 노릇을 하며 중요한 순간마다 자본가의 정권임을 감추려 하지 않는 이러한 모습들이 그들의 본 모습입니다. 반면에 베네주엘라 민중들의 강력한 투쟁의 경험과 차베스의 존재는 라틴아메리카 민중들이 보다 역동적으로 투쟁에 나설수 있도록 하는 강력한 자신감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비록 차베스의 개혁이 '위로부터의 개혁' 이며, 그 자신 자본가들과 분명한 선을 긋기를 주저하고 있기는 하지만 민중들이 지지하는 차베스 역활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받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한마디 덧 붙이자면, 키르치네르 의 존재는 사파티스타 해방군이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치아파스로 쫓겨 들어간것처럼, 아르헨티나의 공장점거 운동이 정권에 애원하고 자본가와 타협하면서 그 본래의 취지가 빛을 잃어가는것 처럼,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자율주의 운동들이 강력한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국가권력에 도전하기를 거부하고 회피함으로 인해서 오히려 모순되게도 국가와 타협할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는 단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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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봉쇄·공항마비, 볼리비아 민중 저항 날로

 

격화

 

에너지 주권 요구하는 볼리비아 민중, 사보타지로 맞서는 초국적 자본

윤태곤 기자 peyo@jinbo.net
전민중적 투쟁으로 볼리비아는 마비 상태

라파즈에서 6월 2일 벌어진 집회에서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
 REUTER 통신

가스 산업에 대한 초국적자본의 전횡에 맞서 에너지 주권을 요구하고 나선 볼리비아 민중들이 시위가 날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농민들의 도로 봉쇄, 48시간 운수 노동자 파업으로 인해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는 고립되다 시피 했고 2일(현지시간)에는 공항기능도 정지됐다. 지난 2주간의 투쟁으로 볼리비아 고속도로의 60% 정도가 봉쇄됐고 수도 라파즈를 포함한 6개 주요도시가 고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까를로스 메사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과 통제력이 거의 상실된 가운데 지난 달 31일에 소집되 3일째 회의를 벌이고 있는 볼리비아 의회 역시 핵심 현안에 대한 의견접근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볼리비아 민중들은 제헌의회 소집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반정부 시위의 주도적 인물로 떠오른 ‘사회주의운동당’(MAS- Movement to Socialism)의 지도자 에보 모랄레스는 “이제 싸움은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2년 전에도 가스 산업을 둘러싸고 민중항쟁이 벌어져 대통령이 쫓겨나기도 했던 볼리비아에서 가스 산업이라는 뇌관이 다시 터진 이 번 사태가 어떤 식으로 귀결될지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03년 사태의 재판, 어이없는 국회와 한술 더 뜨는 대통령

총파업으로 라파즈 시내에는 자동차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다
 REUTER 통신
 
지난 2003년 당시 대통령이던 곤살로 산체스 로사다는 볼리비아 천연 가스를 미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볼리비아-칠레-캘리포니아를 연결하는 가스관 설치 계획을 발표했고 볼리비아 민중들은 ‘초국적 자본과 부패 정치인들의 배만 불리는 조치’라고 격렬하게 저항하고 나선 바 있다. 당시 경찰의 발포로 수십명이 사망했고 가스관 설치 계획이 철회되며 로사다 대통령 까지 물러나는 결과를 낳았다.

 
로사다가 물러난 이후 ‘개혁’을 내세우며 집권한 까를로스 메사 대통령은 지난해 가스및 석유 산업 국유화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당시 국민투표에서 무려 92%의 볼리비아 국민이 에너지 산업 국유화에 찬성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에너지 산업 국유화의 구체적 로드맵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고 지난 6일 볼리비아 의회는 에너지 산업 국유화를 유보하고 에너지 개발에 참여한 외국 기업들에 물리는 세율을 인상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탄화수소 법’을 통과시켰다.

 
까를로스 메사 대통령은 탄화수소법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메사는 에너지 산업 국유화 조치를 내놓은 것이 아니라 "세금인상은 외국기업의 투자 축소를 가져온다“며 의회가 다시 논의 할 것을 요구했다.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사무실 공격으로 시작된 저항

 
의회의 조치에 당황한 볼리비아 민중들은 대통령의 어이없는 발언에 격분했고 결국 지난 달 13일 가스산업 중심지인 산타 크루스에 위치한 브라질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 건물에 대한 다이너마이트 공격을 시작으로 에너지 주권을 요구하는 시위가 볼리비아 전역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수도 라파즈에서는 에너지 산업 국유화, 의회 해산, 메사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시위가 수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연일 벌어졌고 지난 달 24일에는 총파업이 시작됐다. 광부 조합의 주도로 시작된 총파업에 교수, 교사, 운수노동자, 학생, 보건산업 노동자등이 속속 합류했고 원주민 단체들도 힘을 보탰다. 이미 두차례나 사의를 표명했다가 말을 뒤집은 바 있는 메사 대통령은 통제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훌리오 세사르 갈린도 중령을 비롯한 중견 군인들까지 티비에 나와 “대통령과 내각은 사임하고 국민의 정부를 구성하라”며 “우리의 행동은 쿠테타가 아니라 국민의 선언”이라고 가세하기도 했다.

 
반정부 투쟁이 거세지면서 문제는 전방위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에너지 주권 투쟁의 주요한 참여 단체인 전국 코카 경작인 연맹의 깔멘 뻬레도는 “외국 기업들이 볼리비아의 석유를 헐값으로 가져간다”며 “70년대 중반 이미 석유와 가스 산업을 국유화한 베네주엘라를 주목해야 할 것”이라 강조했다.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투쟁

5월 31일 시위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사람들이 고통스러워 하고 있다
 REUTER 통신

가스 산업의 중심지로 많은 초국적 기업을 유치하고 있는 산타크루스 시가 자치를 추진하고 나서자 볼리비아 민중들은 산타크루스 시 당국을 맹비난하며 “그 문제는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카 재배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볼리비아 농민들과 원주민들은 인종차별적 정책을 철폐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고 논의는 확장되기 시작했다. 사회주의 운동당의 에보 모랄레스는 “천연가스를 비롯한 에너지 자원은 볼리비아 뿐 아니라 전체 라틴 아메리카를 위한 것"이라며 "쿠바와 베네주엘라 처럼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이나 IMF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위엄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독립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을 딴 볼리비아 라는 이름에 걸 맞는 나라를 만들자“는 구호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달 31일 의회가 다시 열려 정국 현안을 논의하기 시작했으나 채 절반도 되지 않는 의원들이 등원했고 의사당 주변에서는 연일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볼리비아 민중에 맞선 초국적 자본들의 공동행보

1일에는 원주민 시위대의 규모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REUTER 통신
 
한편 초국적 자본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영국의 BP, 스페인의 렙솔등 볼리비아 에너지 산업에 손을 대고 있는 12개 초국적 기업들은 볼리비아 의회가 결정한 세율이 너무 높다며 석유, 가스 생산 시설을 폐쇄하고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엄포를 놓기 시작했다.

 
퍼시픽 LNG는 5억달러 규모의 천연가스 생산시설 건립을 중단하겠다고 공표했고 여러 초국적 기업들은 곤살로 산체스 로사다 대통령이 재임할 때 맺은 석유, 가스 개발 계약을 이행하지 못하면 볼리비아 정부를 상대로 국제 소송을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자국 이익 챙기기 급급한 브라질, 아르헨티나 ‘좌파 정부’

 
이 밖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같은 역내 ‘좌파’정부가 취하고 있는 행보도 매우 미묘하다. 볼리비아에 막대한 돈을 투자해놓은 브라질 기업들은 지난해 볼리비아 에너지 사업에서 최대 호황을 누렸고 그 중심에는 브라질 국영 석유 회사인 페트로브라스가 있다. 볼리비아에서 외국 기업에 대한 세율 인상이 결정된 후 딜마 호우세피 브라질 에너지장관은 "페트로브라스를 통해 볼리비아에 대해 실시해온 투자를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가 된 것 같다"고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고 산타크루스의 페트로브라스 사무실은 다이너마이트로 공격당했다.

 
시위가 격화된 이후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공동 조사단을 파견했다. 브라질 정부는 “하루빨리 사태가 수숩되기를 바란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놓았지만 키르치네르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발언은 자신들의 속내를 드러냈다.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볼리비아에는 까를로스 메사라는 훌륭한 대통령이 있다”며 “라파스의 시위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며 볼리비아 정부에 힘을 싣고 나섰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지난 2003년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가 축출되고 까를로스 메사가 집권하는 과정에서 중재자로 나서 ‘혼란을 막은 바’가 있다. 이번에도 ‘볼리비아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나서고 있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결국 원하는 것은 자국 이익의 보호인 셈이다.

 

석유매장량 4억5천만배럴, 연간 석유 생산량 1천420만배럴, 가스 매장량 7천272억㎥에도 불구하고 1인당 GDP 900달러, 실업률 9.2%, 빈곤층 비율 60%라는 어이없는 경제수치를 가지고 있는 볼리비아 민중들이 ‘에너지 주권’을 되찾게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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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프랑스에서 유럽 헌법이 부결되다

출처블로그 : MediaNet SUMBOLON
 

No 1954 Socialist Worker(영국) 2005년 6월 4일

프랑스

프랑스가 유럽 헌법을 거부함으로써 신자유주의가 일격을 당했다

지난 일요일의 결과가 유럽의 엘리트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혁명적공산주의동맹(Ligue Communiste Révolutionaire; LCR)이 닉 바렛(Nick Barrett)이 말한다.


지난 일요일 프랑스의 국민투표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투표자의 55%가 유럽연합의 유럽 헌법 제안을 거부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프랑스의 공화당과 블레어주의적 좌파,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유럽은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이 사실과 관련해 우리는 어떤 실수도 해서는 안 된다. 국민투표 결과는 프랑스의 노동 계급과 빈민과 젊은이들과 진정한 좌파와 아래로부터의 프랑스의 승리이다.

  수치로 확인된 사실들은 놀랍기 그지없다. 지난 10년 동안 급진적 대중 운동의 중심지였던 마르세유(Marseille)에서는 투표자의 63%가 신자유주의 헌법을 거부했다.

  공장 폐쇄로 초토화된 북부의 파 드 칼레(Pas de Calais) 지역에서는 69.5%가 반대 투표를 했다.

  프랑스에서 청년 실업이 가장 많은 지역 중의 하나인, 몽펠리에(Montpellier)와 페르피냥(Perpignan)을 중심으로 한 랑그독-루시용(Languedoc-Roussillon) 지역에서는 63%가 유럽 헌법을 거부했다.

  파리 외곽의 노동 계급 지구에서는 무려 73%가 헌법에 반대한 것으로 나왔다.

  이것은 계급 투표였다. 육체 노동자의 약 80%가 반대표를 던졌다. 25세 미만의 60%가 유럽 헌법을 거부했다.

  경영자들의 약 90% 및 파리의 부유한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찬성표를 던졌다.

  20년이 넘는 기간 만에 처음으로 대중의 투표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거부하는 좌파에 다수를 모아주었다.

  이번 사태는 기정사실화된 결론과는 거리가 멀었다. 8개월 전만 해도 찬성 진영이 여론조사에서 한참을 앞서 있었다.

  그때 반자본주의 운동 진영, 금융 투기 반대 그룹인 아탁(Attac), 공산당, 사회당 좌파 그리고 혁명적 좌파가 단결했다.

  이것은 지배 계급의 선전에 대응하기 위한 전대미문의 통일 캠페인이었다.

  끝없는 회합과 논쟁이 조직되었다. 헌법의 내용을 알아보는 것이 전 국민적 소일거리가 되었다. 국민들은 일터로 향하는 파리의 지하철에서 유럽 헌법에 관한 수백 개의 기사를 읽었다.

  공식 선전과 맞서는 데 있어서 인터넷이 강력하고도 효과적인 무기가 되어주었다.

  찬성 진영은 반대 캠페인을 벌이는 세력을 반유럽적이고, 포퓰리스트적이며, 반동적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우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몇 차례 전환점이 있었다.

  1980년대에 시장 자본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악명을 떨쳤던 사회당의 유력 인사 로랑 파비우스(Laurent Fabius)가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불고 있는지를 감지했다. 그가 헌법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면서 사회적 유럽을 지지하고 나선 것이다.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원의 42%가 작년 12월의 내부 투표에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프랑스의 주요 노동조합 연맹인 CGT의 역사적 논쟁에서는 전국 위원회가 지도부의 입장을 번복하고 반대 투표를 호소했다.

  2월과 3월에 대규모 파업이 벌어졌다. 처음으로 반대 의사가 여론조사에서 찬성을 앞질렀다.

  주류 언론, 대통령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 공화당, 사회당의 다수가 일치 단결해 찬성 투표 캠페인을 벌였다.

  야당 세력 가운데에서 오직 한 개 정당, 곧 공산당만이 TV 방송 광고 캠페인을 할 수 있었다. 공산당은 할애받은 방송 시간을 좌파 연합 전체에 개방했다.

  공산당 지도자 마리-게오르주 뷔페(Marie-George Buffet), 사회당 좌파인 멜랑숑(Melenchon)과 앙마뉘엘리(Emmanuelli), 혁명적공산주의동맹 대변인 올리비에 브장스노(Olivier Besancenot), 공무원이자 급진 코페르니쿠스 네트워크(Copernic network)의 창설자인 이브 살레스(Yves Salesse), 급진파 농부 조제 보베(José Bové) 같이 전국적 지명도를 갖춘 인사들이 좌파적 헌법 건부로 모두 단결했다.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찬성 진영은 전 유럽의 동맹자들을 끌어들였다.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의장으로 절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포르투갈인 바로주(Barroso), 독일 수상 슈뢰더(Schroeder), 에스파냐 총리 사파테로(Zapatero)가 그들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소용 없었다. 반대 투표가 반유럽적이라는 주장은 먹히지 않았다.

  이것은 좌파 투표였다. 나치 지도자 장-마리 르펭(Jean-Marie Le Pen)과 공화당의 필리프 드 빌리예(Philippe de Villiers)를 지지하는 인종주의자, 파시스트, 민족주의자들은 이 국가적 논쟁에서 한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투표는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이었지 민족주의를 찬성하는 게 아니었다. 프랑스의 투표 결과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모든 유럽 민중에게 희망의 상징이다.

  자본주의적 유럽을 건설하려는 움직임에 잠시나마 제동이 걸렸고, 사회 운동 세력은 전진의 방법을 모색할 시간을 벌었다.


★ 兪在寅 옮김/sumbol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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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1954 Socialist Worker(영국) 2005년 6월 4일

프랑스

이제는 시라크가 물러나야 할 때

가레스 젠킨스(Gareth Jenkins)


남녀 노소 약 700명이 지난 일요일 밤 역사의 중심지 몽펠리에(Montpellier)를 행진하며 국민투표 결과를 축하했다.

  시위대는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승리했다. 모두가 단결했다.”

  대통령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가 퇴진하고 감옥에 가야 한다는 요구가 터져나왔다.

  공산당, 극좌 조직 혁명적공산주의동맹(Ligue Communiste Révolutionnaire; LCR), 노동조합 Sud의 깃발이 나부꼈다.

  녹색당의 공식 입장이 찬성 투표였지만 녹색당 지지자들도 보였다.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줄기차게 활동했다. 몽펠리에에서 반대 투표를 조직한 위원회는 그 기반이 광범위하다. 우리는 결과에 아주 만족하고 있다.”

  Sud의 지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복지 서비스를 없애버리는 신자유주의의 유럽을 원하지 않는다.”

  젊은 LCR 지지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크 시라크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돌아오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승리가 사회적 성과를 얻기 위한 더 강화된 투쟁의 시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국민투표 결과에 대중은 자신감을 얻고 있다.”


★ 李在嬉 옮김/sumbol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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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최근의 고려대 사태를 바라보며

출처블로그 : MediaNet SUMBOLON

“학급은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룹들로 나뉘었다. 한편에는 시기하는 자들과 밀고자, 다른 한편에는 솔직하고 용기 있는 소년들, 중간에는 중립적이고 동요하는 다수가 있었다. …… 나는 일생 동안 그런 그룹들을 거듭 만나게 되었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최근의 고려대 사태를 지켜보면서 기록을 남겨두어야겠기에 이 글을 쓴다. 나는 지금 무척이나 즐겁고 고무되어 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간단히 적어두려고 한다.

  1998년 12월에 김영사에서 《한반도, 운명에 관한 보고서》라는 책이 한 권 발간되었다. 1997년 여름에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국제안보 과정에 참가했던 대우그룹 전무 서재경이 93~94년의 북·미 핵 협상을 다룬 교재 <당근, 채찍, 그리고 물음표>를 번역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이었다. 이 정책 보고서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당시 미국의 대북 강경 대응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으며, 미국의 대 북한 정책이 걸프전 때 이라크를 대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음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북·미 핵협상은 94년 6월 카터-김일성의 ‘핵 동결 합의’로 돌파구를 찾아 그 해 10월 북·미 기본 합의서 채택으로 마무리됐다.

  서재경은 뒤늦게나마 이 책을 번역해 제목을 바꾸어 소개하는 이유를, “또 다시 남의 손에 의해 전쟁이 결정되더라도, 그냥 죽지는 말고 알고라도 죽기를 바라는 심정에서”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의 1994년 4~6월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내 기억에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고,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사망한 해이기도 했다. 당시에 난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자 연대》 편집부에서 일하면서 ‘군 도바리’를 준비중이었다(그 해 9월에 난 군에 입대했고, 그래서 에피소드로 끝나버리긴 했지만).

  창동의 한 아지트--아지트라고 해봐야 반지하 사글세 방이었다--에서 편집 회의를 하는데, 최일붕 선배가 심각한 태도로 미국의 대북 전쟁 가능성을 언급했다. 편집부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신문의 기사를 작성했고, 그것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사실 나 자신은 상황이 심각하고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했었다(아직 미숙한 혁명가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당시 편집 회의에 대한 기억은 내 머리 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 그룹 편집부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아주 정확히 판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최일붕 선배가 이끌고 있던 팀은 명확한 정치학을 과시했다.

  내가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 자신 부르주아의 일원인 서재경이 고백하고 있는 바 한국의 지배 계급이 자신들의 운명을 전혀 모르는 무능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김영삼이 근래에 발간한 자서전에서 마치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적고 있으나 공적 무대에서 그가 보이는 오락가락하는 태도로 보아 그의 자서전을 신뢰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 자에게는 괴테의 명언, 곧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활동적 무지”라는 말을 돌려주는 것으로 대신하자.

  영변 핵 사찰 문제로 북·미간에 갈등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루어진 백악관 회의에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 앨 고어 부통령, 로버트 갈루치 핵 대사 등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 비밀 회의에서 한국의 지배 계급은 철저히 배제된 듯하다.

  한국의 운동권 좌익도 상황에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노동자 연대》의 정치학은 좌우파를 막론하고 단연 발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나는 이 에피소드가 당사에 기록될 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은 극소수였고, 그래서 정치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1994년은 흘러갔다.

  1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들이 극소수에서 소수로, 다시 대중적 소수로 부상하며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고 있다. 고대 사태의 진행 과정이 이를 입증한다. 학생들의 시위는 정당했다. 지배 계급은 마녀 사냥을 시작했고, 그들은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그들은 단련되고 있으며,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정치 쟁점을 장악할 만큼 약한 고리를 부여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명확한 정치학과 헌신적 활동가들이 그간 분투해 온 결과이다. 나는 그 결과를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여러분들에게 지지를 보낸다.

  앞에 붙인 에피그람은 반동적 생각에 침윤되어 있는 일반 학생들과 부대껴야 하는 고대의 투사들에게 읽히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정서적 반응과 결부되어 있으므로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텐데 힘내시기 바란다. 광장에서의 정치는 독선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법이다. 볼셰비키는 ‘독립적 정치학’을 추구했다. 독립적 정치학이란 대중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대중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작은 사건도 모든 이에게 정치적·도덕적 시험대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고려대 학생들의 영웅적 투쟁과 고등학생들의 용기 있는 시위가 사회에 자유의 공기를 주입해 대중 파업의 논리로 되먹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보자.


政치적 明확성을 爲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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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quot;전쟁에서 사람은 '표적'일 뿐이다&quot;

출처블로그 : 모여라! 꿈동산♣♧♣ - 김문성의 블로그

 

 

"전쟁에서 사람은 '표적'일 뿐이다"

 

울부짖는 이라크 아이의 사진이 다시금 일깨운다

 

유만찬

▲ 두 손이 부모의 피로 흥건하게 젖은, 이라크 여자 아이가 공포에질려 울부짖고 있다. 현장에 있던 'Getty News'의 크리스 온드로스(Chris Hondros)라는 사진작가가 포착한 장면이다. 출처 news.bbc.co.uk  

얼핏 봤을 땐 작품사진인 듯했다.

명암이 뚜렷했고, 사진에 나온 아이의 표정이 생생했다. 조금 더 눈을 가까이 대니 작품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밝은 쪽: 땅바닥에 주저앉은 여자 아이는 입을, 얼굴 반만큼의 크기로 벌린 채 울고 있다. 양 손엔 피가 흥건하게 묻어 있고, 앉은 자리 앞바닥이 핏자국으로 선연하다.
어두운 쪽: 언뜻 드러나는 바지는 군인임을 짐작하게 하는 ‘국방’색이다. 그는 오른 손으로 서치 라이트를 켜고 있다. 서치 라이트는 울부짖는 아이를 향하고 있다.

5~6살 쯤 돼 보이는 이라크 여자 아이였다.

아일랜드 신문 ‘아이리쉬 타임스(The Irish Times)' 인터넷 홈페이지 20일자는 사진과 관련한 기사를 짤막하게 전했다.

“이라크의 한 부부가 승용차로 여행을 하던 중 다섯 명의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미군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어린이들은 목숨을 건졌으나, 온 몸이 피로 젖은 채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면서, 자동차 밖으로 나왔다. 미군들은 어린이들을 병원으로 데려갔다. 미군 당국은 워싱턴 포트 루이스의 제25사단 제5스트라이커(Stryker) 여단 1대대 소속 군인들이 새벽 순찰을 하고 있을 때, 정지하지 않고 군인들 방향으로 다가오는 자동차를 향해 발포했다고 발표했다.
미군 홍보처는 이 사건에 대해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말하면서도, 군인은 (이라크에서)자동차 폭탄 공격이 성행하는 상황에서, 예상 가능한 위험에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크리스 온드로스(Chris Hondros)라는 사진작가가 이 사건을 목격, 당시의 상황을 극적으로 담았다. 이 사진들은 미군이 자동차로 길을 가던 한 부부를 총을 쏘아 죽게 하는 장면을 생생히 포착했다.
자동차 뒷좌석에 타고 있던 어린이들은 살아남았고, 한 어린이는 총탄이 스치는 경상을 입었다. 9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는 자동차에 의한 네 건의 자살폭탄 공격이 일어나, 28명의 사람이 사망한 바 있다...“

사건의 전말은 더 이상 알려지지 않을 것이다.

숨진 부부, 그리고 부모의 죽음을 눈앞에서 바라본 다섯 아이들은 끝내 익명으로 남을 것이다. 으레 전쟁에서는 억울한 죽음도, 애타는 사연도 싸늘한 통계 속에 묻혀버리고, 충격적인 한 컷의 사진도 일상적인 풍경으로 스쳐가니까.

부부에게 총질을 한 미군들도 울부짖는 아이들을 보면서 ‘조금은’ 미안한 감이 들었던 가보다. 사진을 보면, 아이들을 병원에 옮기느라 부산했던 분위기가 느껴진다. 미군 당국에서도 이례적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미군 당국이 덧붙인 한 마디 말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예상 가능한 위험에 적절한 대응을 했다.”

언젠가 미국의 한 언론에 이런 기사가 게재된 적이 있었다. ‘총탄’의 전쟁 이전에, ‘언어’의 전쟁이 도사려있다는 내용이었다.
군 당국은 이라크에 파병되는 병사에게 “이라크 인은 사람(person)이 아니라, 표적(object)이다. 평상시에도 이라크 인을 지칭할 때 사람(person)이 아니라, 표적(object)란 말을 사용해야 한다. ‘표적’을 죽였을 땐 가책이 남지 않는다”며 세뇌시켰다고 한다.

미군 당국의 발표는, 이번 사건이 최근 이라크에서 벌어진 차량 자폭 공격이 잇따른 상황 속에서, 민감해진 병사들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실수’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그러나 자폭 공격의 위험성을 이유로, 아무 자동차에나 총질을 해대는 것이 용납되지는 않을 것이다.

새벽녘에 일가족이 탄 자동차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군인들의 가슴 속에는 무엇이 자리 잡고 있었을까.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표적(object)’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들의 눈에, 죽은 ‘표적’이 남긴 아이들은 무엇이었을까. ‘표적’이었을까, ‘사람’이었을까.

사진 속의 이라크 아이는 부모의 처참한 죽음을 생생히 목격했다. 든든했던 엄마, 아빠는 순식간에 온기를 잃고, 어린 딸의 두 손에 싸늘한 피만 남긴 채 떠나갔다. 아이가 얼마나 놀랐을까. 그리고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밤을 가위눌린 채 지새워야 할까.

전쟁은 그 자체로 인간성을 말살하는 행위임을, 한 컷의 사진이 다시금 일깨운다.









▲ 'Getty News'의 사진 작가 크리스 온드로스(Chris Hondros)가 극적으로 포착한 장면들. 출처 news.bbc.co.uk  

200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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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레바논 사태와 중동 정치 전망--Alex Callinicos

출처블로그 : MediaNet SUMBOLON
No 1942 Socialist Worker(영국) 2005년 3월 12일

레바논 사태와 중동 정치 전망

민주주의의 창백한 그늘

앨릭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

하나의 제국을 와해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방법들이 이제 또 다른 제국을 확장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아이러니이다.

국제 업무를 담당하는 미 국무부 차관 폴라 도브리안스키(Paula Dobriansky)는 지난주에 이렇게 말했다. “그루지야에서는 장미 혁명이 일어났고, 우크라이나에서는 오렌지 혁명이 일어났고, 가장 최근에는 이라크에서 보라색 혁명이 일어났다. 레바논에서 우리는 ‘삼나무 혁명’이 무르익는 순간을 목격하고 있다. 이 나라 국민이 진정한 민주주의와 외세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대의 아래 집결하고 있는 것이다.”

“외세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말에는 잠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조지 부시와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가 한 목소리로 시리아의 레바논 철군을 요구하는 것은 우리 지배자들이 얼마나 뻔뻔스러운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미군 15만 명이 주둔하고 있지만 이라크는 아마도 “외세”로부터 자유로울 것이다. 프랑스 역시 자신의 과거 아프리카 제국으로 계속해서 군대를 파견했고, 가장 최근의 희생자는 코트디부아르였다.

그러나 부시와 시라크의 기호를 다룰 때 우리는 그들의 위선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정작 흥미로운 문제는 워싱턴 신보수주의자들의 꿈이 실현되고 있느냐이다.

전직 수상 라픽 하리리(Rafiq Hariri) 암살에 뒤이어 레바논에서 발생한 사태는 스탈린주의를 일소한 혁명들과 비교해 볼 때 일련의 민주적 혁명 과정의 시작일까?

일부 이라크 전쟁 반대자들이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라크 침공이 중동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압력을 강화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고 《가디언》의 조너선 프리들랜드(Jonathan Freedland)는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레바논의 “삼나무 혁명”은 진정한 민주화 투쟁의 창백한 그늘일 뿐이다.

지난주 토요일자 《파이낸셜 타임스》는, 순교자 광장(Martyrs Square)에서 시리아 철군을 요구하는 항의시위를 조직중인 공동 행동의 책임자 마이클 나프쿠르(Michael Nafkour)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베이루트의 중간 계급이 저녁에 광장을 찾아 암살 사건 이후 벌어지고 있는 소수의 대중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이제 유행이 되었다.”

“민주주의 혁명”이 제국주의자들의 지배 기술로 타락했다. 워싱턴이 자신을 지역 엘리트와 수완가들의 정권 교체와 결부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것이 현 시기 레바논 사태에 대한 정확한 평가이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진정한 성공도 추가로 기록해 두어야 할 것이다.

시리아 대통령 하페즈 알-아사드(Hafez al-Assad)가 레바논에 파병한 것은 1976년 4월이었다. 레바논 좌익과 팔레스타인인들의 내전 승리를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국의 지원과 이스라엘의 묵인 하에서 이 작전을 결행했다.

그러나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를 침략하면서 혼란과 살육이 난무하자 아사드는 이슬람 급진파인 헤즈볼라(Hizbollah)가 이끄는 쉬아파 민병대의 부상을 지원한다. 헤즈볼라는 결국 레바논 남부에서 이스라엘 방위군을 축출했다.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연계를 오랫동안 전략적 위협이라며 비난해 왔다. 결국 하리리 암살 사건이 아리엘 샤론(Ariel Sharon)과 워싱턴에 있는 그의 동맹자들에게 찾고 있던 구실을 제공해 주었다. 정말이지 암살 범행의 하수인들이 시리아 정보 부대의 멍청이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비밀 첩보 부대 모사드(Mossad)의 공작 대가들일 것으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다.

하리리는 사우디아라비아 정권과 밀착되어 있었다. 그는 사우드 왕가와 계약을 맺은 주요 토건업자로 부상하면서 40억불 규모의 기업 제국을 건설했다. 결국 하리리 암살 사건으로 시리아는 아랍 세계에서 고립되고 말았다.

현 시리아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Bashar al-Assad)가 지난주에 리야드(Riyadh)로 날아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지배자인 압둘라(Abdullah) 왕세자를 만났을 때 그는 강경한 어조로 레바논에서 철수하라는 얘기를 들었다. 주말에 아사드는 굴복했고 단계적 철수를 발표했다.

워싱턴이 이 지역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유리한 세력 균형을 가져온 1승을 거두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승리가 정말 필요한 이라크에서 이 사태가 부시 행정부를 어떻게 도와줄지는 완벽한 미지수이다.

“보라색 혁명”과 관련한 그 모든 요란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라크에서 (쿠르드족 지구를 제외한) 전 국민이 압도적으로 점령에 반대하는 상황과 직면해 있다. 지난주에 이라크에서는 1500번째 미군 병사가 사망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사실은 크게 공표되지 않았다.

 

★ 兪在寅 옮김/sumbol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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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생태적 야만주의와 ‘환경제국주의’

출처블로그 : himammo님의 블로그

생태적 야만주의와 ‘환경제국주의’

 


- 과학기술은 밝고 어두운 양면을 지니고있다 -
 

 
 
 

 

생태계 파괴와 자원 고갈을 부추기는 과학기술


현대 물질 문명 사회를 만들어온 주역이 과학과 기술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불행은 과학과 기술이라는 두 개의 개념이 왜곡된 채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되어 사용되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논리상 여기에는 철학적 사고가 비경제적인 불필요한 요소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즉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돈벌이가 된다면 공기나 물 그리고 모래통과 석탄을 가지고 필요한 수많은 원료와 상품을 만들어내면 될 일이지,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만들어야 한다는 사고는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과학(science)’이란 말의 어원은 ‘scienti’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하고 있으며, 이 단어는 ‘안다(scio)’는 뜻을 가진 동사의 추상명사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를 지닌 과학을 일컫는 것이며, 따라서 과학은 철학적 의미가 아닌 단?지식을 의미한 것이라고 본다. ‘기술(technology)’이라는 말은 ‘mechane’라는 그리스어로 ‘방법’ 또는 ‘절차’에 관한 계획을 고안해 내는 일과 이를 실천에 옮기는 방법을 일컫는다.

자본가들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세계 도처에 신속히 침투하여 노동의 분화를 촉진시킴으로써 원주민과 노동자를 돈벌이의 객체로 전락시켰다. 이것은 인간의 동질화를 가져와 토착적인 생산성과 문화적 다양성의 파괴를 증대시켰다. 뿐만 아니라 자연의 분화도 촉진시켰다.

 

예컨대 과학기술을 상업용 목재를 생산하는 데 이용하기 시작했다. 산림은 한 가지 나무로 대체됨으로써 종의 다양성 파괴가 촉진되었다. 생물종의 절반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열대우림이 파괴되었으며, 그곳의 일부는 대규모 인공 조림으로 대체되었다. 때문에 열대우림은 지금 생물학적·유전학적인 사막으로 전락하고 있다. 그것은 생물종과 개미 연구의 독보적인 권위자이고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에드워드 윌슨(1929∼)이 자신의 저서 『생명의 다양성』(1992년)에서 1년에 2만7000종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다고 주장한 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라져가는 지구생물들
 
 
존 포스터 교수는 내가 번역한 『환경혁명 ---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찾아서』(1996년, 동쪽나라)에서 “지난 40여 년 동안 지구 전체의 삼림 가운데 특히 생물종의 보고인 열대림의 벌목량이 해마다 잔존 열대림의 2%로 계속 제한된다고 해도 100년 후에 남아 있는 열대림마저 대부분이 사라질 것”으로 추정하고, “만일 열대 지방에 있는 나라들의 인구 증가율과 똑같은 수준으로 벌목될 경우 30년 이내에 모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 인간은 식품 공급량의 80%를 20종의 생물종에 의지하고 있으나, 현재 식용 가능한 식물만도 7만5000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지금 인간의 능력으로는 멸종되고 있는 종의 효용성을 채 밝혀보지도 못한 채 수많은 생물종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오늘날처럼 계속될 경우 생태계 파괴로 인해 지구는 더 이상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사막으로 돌변할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생태계는 일종의 유기체와 같은 복잡성과 상호 연계성을 띠고 있고, 고무줄에 비유할 수 있다. 그것은 복원력이 있는 반면, 일정 정도를 넘어서는 외압이 가해지면 순식간에 연쇄적이고 장기적인 파급 효과를 미쳐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돌변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1940년대 이후 단 20여 년 동안에 인류 역사상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가장 해로운 물질들이 대부분 만들어졌다. 이러한 물질의 축적은 생태계의 복원력을 크게 손상시키고 있다. 이른바 석유화학산업으로 촉진된 오늘날의 합성 제품 시대는 자연의 순환 작용으로 분해되지 않고 장기간 생태계 전반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유해 물질을 엄청나게 쏟아내고 있다. 그 결과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종이 상실되고 생명체를 학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은 자원의 고갈을 더욱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에너지원이 채취될 경우 앞으로 석유는 50년, 우라늄은 60년, 석탄과 천연가스는 200년이면 바닥이 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불필요한 것마저 자동화를 추진함으로써 에너지 자원의 낭비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그 이유는 오로지 돈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돈보다는 후세를 위하는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사람의 손으로 여닫으면 될 출입문마저 굳이 전기를 이용하는 자동화로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지구적 차원의 불평등과 ‘환경제국주의’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될 역설의 시대에 살고 있다.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눈부시게 발달해 온 근대 과학기술의 힘을 이용하여 오로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자연에 대한 정복과 통제력을 가속화해 왔지만, 지난 200년 동안 이루어진 그러한 힘의 행사는 새로운 차원의 지구적 위기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하느님, 우리를 닥쳐올 위기에서 구원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오존층 파괴, 계속 확대되는 사막화, 산성비, 삼림 벌채, 지구온난화를 포함한 급속한 기후 변화, 전염병의 만연, 생물종의 소멸, 에너지원의 고갈 등 이른바 전 지구적 차원의 환경 위기가 가속화되어 왔다. 역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난 100년 동안 세계 경제는 1300%나 성장했지만 빈부 격차는 계속 확대되어 왔다.

 


 

 

지난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유엔 인간환경회의’가 개최된 이후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유엔 환경개발회의’가 개최되기까지 20년 동안 선진국을 중심으로 한 중심부와 후진국을 중심으로 한 주변부의 빈부 격차는 더욱 벌어졌다. 그래서 주변부의 40여개국 이상은 자연 환경을 포함한 모든 삶의 조건이 과거 20년 전보다 더욱 악화되어 왔다.

어디 이것뿐인가. 1750년 무렵에 선진국과 후진국의 1인당 소득 수준은 거의 같았다. 그런데 1930년 무렵에 선진국 1인당 소득은 780달러(1960년 달러 가격 기준으로)인 반면 후진국은 190달러로 1750년 수준에 머물렀다. 1960년에서 1989년까지 세계 부의 배분에서 가장 부유한 20%와 가장 가난한 20%가 각각 차지하는 비율은 30대 1에서 60대 1로 그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졌다.

앙드레 군더 프랑크가 주장한 것처럼 이들 국가는 지금도 ‘저발전의 성장’이라는 구조적인 경기 침체라는 악순환의 굴레 때문에 해마다 몇백만 명이 순전히 기아로 죽어가고 있지만 손도 못 쓰고 있는 실정이다. 각종 전염병으로 죽어가면서 자기가 무슨 병으로 죽어가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과연 식량이 부족해서 그런가. 그렇지 않다. 유엔식량기구(FAO) 통계에 따르면 지금 세계는 이들을 충분히 먹이고도 남을 식량이 있다. 절대량이 부족하여 해마다 몇천만 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영양 실조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보면, 우리는 이제까지 성장과 발전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마땅히 제기해야 한다. 이와 함께 과학기술의 문제점과 성장의 속도를 조절하는 문제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20세기 중반 경제 개발을 통해 못 사는 나라들을 도와 주겠다는 미국과 구소련 중심의 발전 패러다임은 파산 선고를 받은 지 이미 오래이다. 특히 1990년도를 전후하여 냉전의 종식과 함께 새롭게 형성된 세계 질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1995년도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과 함께 이제 세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열한 ‘경제 전쟁’, ‘무한 경쟁’, ‘생존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따라서 경제적 불균등과 지구 환경 파괴의 심화는 선진국의 특별한 조치가 없는 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점은 불을 보듯 훤하다.


 

 


 

 

 

1992년 6월 브라질 리우에서 세계 정상들이 ‘유엔 환경개발회의’를 열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이른바 ‘리우 선언문’에 서명했지만, 이것의 본질은 이제 선진국이 지구 환경을 위해 오염 저감 방안을 추진할 테니 제3세계 국가들도 이에 동참하고 자기들의 환경 기술을 수입하라는 저의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명목상 좋은 의견을 담고 있음에도, 그 선언문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후진국 간의 경제적 불균등 문제와 환경 파괴의 기여 문제 등 더욱 근본적인 의견 마찰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받고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 하나만 보더라도 현재 미국 한 나라가 세계 총 배출량의 25%를 차지하고, 선진 공업국의 전체 배출량은 71%를 차지하고 있다. 1980년대 말에 동유럽을 포함한 선진 공업국의 원자재 소비량은 전 세계 소비량의 81%에 이르고 있다. 철강은 81%, 자동차는 92%, 전기는 81%를 소비하였다.

 

미국인들은 115배의 종이, 320배의 자동차, 52배의 고기류, 그리고 46배의 전기를 각각 더 많이 소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산업혁명 이후 지구를 지탱 불가능하게 만들어 왔고 지금도 그렇게 만들고 있는 주범이 바로 미국을 비롯한 선진 공업국들이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진국이 ‘환경제국주의’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도 그들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환경재앙에 직면한 지구촌

 

 

 

 

생태적 야만주의의 종식은 사회 체제의 변혁에서부터

사회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없는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학기술은 생태계와 인류 문명의 파멸을 촉진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속성을 띠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은 이런 비극을 막을 수 있는 기간이 앞으로 30∼4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경고한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집단 ─ 대부분 권력가, 행정가, 대기업가, 다국적기업 세력 등 ─ 들은 환경 위기라는 주장에 대해, 과학적 불확실성과 자연의 자정 작용이 무한할 것이라는 이유로 근본적인 조치들을 한없이 미루고 있다. 다만 그들이 하는 일은 자동차의 매연을 줄이는 후처리 장치를 달거나, 기업가에게는 자살이나 다름없는 ‘소비를 줄이자’거나 ‘분리 수거를 잘 하자’는 등의 개인적 질서와 행동에 호소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더욱 충격적인 일은, 대다수 인류가 현대 과학기술이 만들어내고 있는 위기 ─ 환경의 파괴, 빈부 격차, 가공할 파괴력을 지닌 핵무기의 공포 등 ─ 를 과학기술의 발달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막연히 믿고 있다는 점이다.

 

무책임한 기득권 세력들은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석유와 석탄, 천연 가스와 같은 화석 연료가 고갈되면 핵발전으로, 그 다음에는 핵융합 발전을 통해 에너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점을 주입하고 있다. 심지어 콩알만한 인조 식량을 먹으면 현재와 같은 식사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 환경 오염으로 지구에서 살 수 없는 날이 오면 다른 혹성에 가서 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속삭인다.


 

 
지구온난화로 야기된 엄청난 자연재앙을 형상화한 ‘투모로우’
 
 

정치권력가, 행정가, 자본가 세력 가운데 무책임한 세력들은 오늘 당장 자본의 축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런 막연한 기대를 설파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이 누구의 도구가 되어 왔는가를 알고 있다면,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반생태적인가를 알 수 있다.

지금 우리는 불가사의한 과학기술 혁명이 계속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비행기의 개발과 같은 교통 혁명이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 것과 같이, 오늘날 운운하고 있는 정보통신 혁명도 마찬가지 길을 가고 있다. 냉전 시대에 적의 동태를 감시했던 인공위성이 환경 오염을 촬영하는 데 활용될 수는 있다고 해도, 파국적인 위기에 처한 생태계의 파괴를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수단은 되지 못하고 있다.

교통과 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달은 이른바 지구촌 시대를 도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기아로 죽어가는 인류를 신속하게 구하는 순기능보다는, 지구상에 빈곤과 착취를 심화시키는 역기능으로 더 많은 기여를 해 왔다. 역사적으로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식민지 세력들은 앞선 자신들의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지구 반대편의 더 많은 노동력과 자연 자원의 착취를 가속화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과학기술을 돈벌이의 도구로 삼아온 세력들이 보여준 역사의 교만과 생태적 야만주의를 종식시킬 수 있는 힘을 모아야 한다는 점이 더욱 자명해졌다. 침략성과 표한성을 지닌 식민지 시대의 제국주의자들에게 인류와 자연을 계속 맡겨두었던 역설의 시대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의 손으로 끝장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과학기술이 발달하면 미래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역설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를 종식하기 위해 양심있고 의식있는 60억 인류가 네트워크적 사고와 행동 조직체를 결성하여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기 위해 힘을 모아나가야 한다. 더 이상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지금 시작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오늘의 지구적 차원의 생태계 위기는 자연의 위기도 아니고, 헐리우드 영화에서처럼 몇몇 탐욕스러운 인간의 잘못과 실수에서 비롯된 것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현대 과학기술이 만들어낸 모든 역설적인 위기와 마찬가지로 사회 체제의 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 해결의 구체적인 방안은 한 사회 체제를 어떻게 변화시켜 낼 것인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기나긴 고난의 세월 속에서 쌓아올린 현대 문명 사회의 지속가능한 존속과 발전의 여부가 바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한다.

 

조길영 / http://www.ilsangreen.net/green/go20.a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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