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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최근의 고려대 사태를 바라보며

출처블로그 : MediaNet SUMBOLON

“학급은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룹들로 나뉘었다. 한편에는 시기하는 자들과 밀고자, 다른 한편에는 솔직하고 용기 있는 소년들, 중간에는 중립적이고 동요하는 다수가 있었다. …… 나는 일생 동안 그런 그룹들을 거듭 만나게 되었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


최근의 고려대 사태를 지켜보면서 기록을 남겨두어야겠기에 이 글을 쓴다. 나는 지금 무척이나 즐겁고 고무되어 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간단히 적어두려고 한다.

  1998년 12월에 김영사에서 《한반도, 운명에 관한 보고서》라는 책이 한 권 발간되었다. 1997년 여름에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국제안보 과정에 참가했던 대우그룹 전무 서재경이 93~94년의 북·미 핵 협상을 다룬 교재 <당근, 채찍, 그리고 물음표>를 번역하면서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이었다. 이 정책 보고서는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당시 미국의 대북 강경 대응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으며, 미국의 대 북한 정책이 걸프전 때 이라크를 대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음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북·미 핵협상은 94년 6월 카터-김일성의 ‘핵 동결 합의’로 돌파구를 찾아 그 해 10월 북·미 기본 합의서 채택으로 마무리됐다.

  서재경은 뒤늦게나마 이 책을 번역해 제목을 바꾸어 소개하는 이유를, “또 다시 남의 손에 의해 전쟁이 결정되더라도, 그냥 죽지는 말고 알고라도 죽기를 바라는 심정에서”라고 밝히고 있다.

  문제의 1994년 4~6월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내 기억에 그 해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고,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이 사망한 해이기도 했다. 당시에 난 대학을 졸업하고, 《노동자 연대》 편집부에서 일하면서 ‘군 도바리’를 준비중이었다(그 해 9월에 난 군에 입대했고, 그래서 에피소드로 끝나버리긴 했지만).

  창동의 한 아지트--아지트라고 해봐야 반지하 사글세 방이었다--에서 편집 회의를 하는데, 최일붕 선배가 심각한 태도로 미국의 대북 전쟁 가능성을 언급했다. 편집부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신문의 기사를 작성했고, 그것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사실 나 자신은 상황이 심각하고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했었다(아직 미숙한 혁명가였으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당시 편집 회의에 대한 기억은 내 머리 속에 뚜렷이 남아 있다. 그룹 편집부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가능성을 아주 정확히 판단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최일붕 선배가 이끌고 있던 팀은 명확한 정치학을 과시했다.

  내가 이 점을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 자신 부르주아의 일원인 서재경이 고백하고 있는 바 한국의 지배 계급이 자신들의 운명을 전혀 모르는 무능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김영삼이 근래에 발간한 자서전에서 마치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적고 있으나 공적 무대에서 그가 보이는 오락가락하는 태도로 보아 그의 자서전을 신뢰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 자에게는 괴테의 명언, 곧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활동적 무지”라는 말을 돌려주는 것으로 대신하자.

  영변 핵 사찰 문제로 북·미간에 갈등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루어진 백악관 회의에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 앨 고어 부통령, 로버트 갈루치 핵 대사 등이 참여했다.  그러나 이 비밀 회의에서 한국의 지배 계급은 철저히 배제된 듯하다.

  한국의 운동권 좌익도 상황에 무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므로 《노동자 연대》의 정치학은 좌우파를 막론하고 단연 발군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나는 이 에피소드가 당사에 기록될 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그들은 극소수였고, 그래서 정치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1994년은 흘러갔다.

  11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들이 극소수에서 소수로, 다시 대중적 소수로 부상하며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고 있다. 고대 사태의 진행 과정이 이를 입증한다. 학생들의 시위는 정당했다. 지배 계급은 마녀 사냥을 시작했고, 그들은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그들은 단련되고 있으며,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정치 쟁점을 장악할 만큼 약한 고리를 부여잡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명확한 정치학과 헌신적 활동가들이 그간 분투해 온 결과이다. 나는 그 결과를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여러분들에게 지지를 보낸다.

  앞에 붙인 에피그람은 반동적 생각에 침윤되어 있는 일반 학생들과 부대껴야 하는 고대의 투사들에게 읽히기 위해 인용한 것이다. 정서적 반응과 결부되어 있으므로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텐데 힘내시기 바란다. 광장에서의 정치는 독선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법이다. 볼셰비키는 ‘독립적 정치학’을 추구했다. 독립적 정치학이란 대중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대중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론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작은 사건도 모든 이에게 정치적·도덕적 시험대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고려대 학생들의 영웅적 투쟁과 고등학생들의 용기 있는 시위가 사회에 자유의 공기를 주입해 대중 파업의 논리로 되먹임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보자.


政치적 明확성을 爲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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