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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회장님의 혈압을 올렸나

메이데이 행사가 끝난 다음날, 삼성그룹 총수 이건희씨가 고려대에서 무려 '봉변' 을 당하셨다. 400 억이 넘는 돈을 기부한 댓가로 요란한 카메라 플래쉬와 함께 받을 예정이었던 명예 철학박사 학위가, 위아래도 몰라보고 앞뒤 생각도 없는 불순한 학생들의 과격행동 때문에 예정된 강당대신 측근 몇명만을 수행한채 쥐새끼처럼 숨어서 초라하게 수여된 것이다. 덕분에 고려대 당국은 물론이요, 임시국회 종료에 따라 기사거리가 없어 파리나 날리고 있던 각종 언론들은 연일 그 과격분자 학생들을 죽일놈으로 묘사하는데 여념이 없다.


대학당국과 정부관료와 언론이 한 목소리로 떠드는 그대로, 정말 큰일이 난것이다. 이건희가 누구던가?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무려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총수다. 삼성이라하면 일제시대에도,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정권의 집권기에도 정권과의 유착관계를 유지하며 권력을 유지해왔던 초 일류 기업이다. 지금 일개 기업총수가 단지 돈주고 산 '명예'학위를 숨어서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지배계급이 모두 들고 일어나서 고려대 학생들에 대한 마녀사냥을 하는것을 봐도 알수 있듯이, 대한민국의 권력을 실제로 장악하고 움직이고 있는것은 자본의 힘이다. 그리고 삼성은 그 자본의 권력 중에서도 두목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할수 있는 기업이다. 이게 큰일이 아니고 뭐겠는가? 지금 관료들과 언론등 지배자들이 보여주고 있는 소란함은 조폭세계에서 두목이 당했는데 쫄따구들이 가만있을수 없는것과 마찬가지의 의미를 가진다. 더구나 이 조폭들의 '나와바리' 는 남한사회 전체에 달하니, 조용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가 감히 회장님의, 아니 오야붕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나? 위대한 대 삼성은 자본권력의 두목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이날 이때까지 앞만보고 달려온 기업이다. 노동조합 건설의 움직임이 보이면 회유와 협박, 감시는 기본이고 납치 감금도 서슴치 않았다. 99 년 삼성 SDI 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려던 사람들 중 한명은 아직도 행방불명이다. 거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던 사람은 법원에 고소했다. 최근에는 첨단 정보화 시대에 걸맞게 휴대폰을 불법 복제해서 위치추적을 통한 감시활동을 해왔다. 그 건은 비록 고려대에서 항의하던 학생들과 마찬가지의 '불순한 노동자' 에 의해 검찰까지 기소되는 아픔이 있기는 했지만, 조폭의 세계는 의리가 기본이라는것을 보여주듯이 권력의 단맛을 나눠먹는 사이인 검찰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무혐의 처분을 내려준바 있다. 언론에 드러난 이런 굵직굵직한 일들 외에도 일상적으로 노동탄압을 저질러온곳이 삼성이니 너무나 당연하게도 오야붕의 심기를 건드릴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면에서 보면 다름아닌 대학생들이 오야붕의 혈압을 높인것도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특히 요즘같은 경제불황의 시기에는 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진로, 취업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으며 취업을 한다고 해도 자신의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파견, 계약등의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자' 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크다. 이미 대다수의 학생들은 가족이나 친지중에 한명 이상의 비율로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며 일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거기에다가, 삼성같은 그룹에서 몇백억을 기부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비롯한 가족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매년마다 등록금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올라가고 있는것은 도대체 무슨 까닭인가? 누가 이런 세상을 만들고 있는가? 이런 사회가 유지된다면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보장받을수 있겠는가? 그날 대학생들이 인촌기념관 앞에서 했던 이야기는 바로 이건희와 같은 자들이 우리의 목줄을 죄고 있다는 정확하기 짝이 없는 지적이었다. 그런 조폭의 오야붕이 자기 스스로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의 생활을 위협하는 폭력을 행사하는것을 두고 대학당국에서는 잘했다면서 박사학위를 준다는데 가만 있을수 있단 말인가? 그런것은 '교양을 갖춘 지식인으로서' 있을수 없는 일이다. 조직 폭력배에 반대하지 않고 누구에게 반대한단 말인가?


고려대 총장을 비롯한 지배게급들은 삼성이 한국 졍제를 떠받치고 있고, 한국사회의 패러다임을 업그레이드 했다면서 아부를 아끼지 않는다. 만약 정말 그런 이유라면 명예철학박사 학위는 회장님이 아니라 삼성그룹의 노동자들에게 수여되어야 마땅한 일이다. 그들이 진정한 한국 졍제의 수호신이며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핵심 인물들인 까닭이다. 회장님의 그 학위증은 수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그 안에는 현실의, 또 미래의 고려대 학생들의 모습도 포함되어 있다.


아무튼 중요한것은 회장님이 그 사건 때문에 혈압을 많이 받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지 관리의 일환으로 나온 말도 다름 아닌 '젊은이들이 혈기가 왕성해서' 라는 말이 나온거 같다. 그렇지만 뭐 내가 굳이 말씀 드리지 않아도 지배층들은 남의 혈기를 생각해주기 전에 회장님의 혈압부터 걱정해야 하는것은 잘 알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행여나 회장님 눈 밖에 날까 너도나도 앞다투어 마녀사냥에 나서고 있는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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