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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려서 죽게 했으니 미안하다. 근데 개네들 맞을짓 했다.

1. 전용철, 홍덕표 두 농민을 때려죽인 정권의 수뇌인 노무현이 어제 과잉진압에 대해 '사죄' 했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사태였기는 하지만 권한이 없기 때문에 경찰청장은 파면 못 하고, 알아서 물러나면 좋겠단다. 참으로 탈 권위주의적이고 민주적인 대통령의 모습 되겠다. 이제 경찰청장이 못 물러나겠다고 뻗대면 자동적으로 노무현은 '힘없는 착한놈' 이 되고, 노동자 농민을 죽이는 주체는 정권의 수뇌가 아니라 그 밑의 '한나라당 스러운' 부하직원들 되시겠다. 그걸 핑계로 어떤 이들은 노무현 정권에게 직접 책임을 물어왔던 운동의 방향을 엉뚱한대로 돌리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궁금하다, 경찰청장 하나 파면시키지 못할만큼 민주적이고 탈권위적인 대통령이 도대체 쌀시장개방 강행으로 농민들을 죽음으로 내 모는 '권한' 은 어디서 생겼나? 게다가 사죄하러 나왔으면 사죄나 하고 들어갈 것이지, 그 와중에 뭐 잘났다고 폭력시위 운운하나? 12.27 의 '사죄' 를 쉬운 말로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내가 때려서 죽게 했으니 미안하다. 근데 개네들 맞을짓 했다." 참, 방패로 쪼개보고 싶은 정신구조다. 그래서, 일반 전의경은 물론이고 '1000 조폭단' 도 끝내 해체 못하겠지? 이번에 두분을 돌아가시게 만들고 사죄했으니, 다음에 당신이 사죄하려면 몇명을 더 죽인 뒤가 되려나? 그 자랑스러운 조폭단으로.

 

2. 말난김에 폭력시위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볼까나. 사실 온라인 게시판상의 토론 중에서 가장 비생산적인 논쟁 가운데 하나가 '집회 중 누가 폭력을 먼저 사용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누가 먼저' 라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 할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인 이유도 있지만 사실 그날의 그 집회방향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것은 숱한 악선동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우 '시위대 폭력에 직면한 일선 전투경찰의 격앙된 감정' 으로 결정되는것이 아니라 경찰 지휘부의 정치적 결정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실례를 들어볼까. '효순이 미선이' 라는 이름 한번쯤 들어보셨을 것이다. 온나라가 월드컵으로 떠들석하던 그해 겨울부터 광화문에는 촛불을 켜들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처음에 경찰은 그 집회에 대해서 용인 내지는 방관의 입장이었다가 뒤에 방패와 곤봉을 사용해서 무자비하게 탄압하기 시작했다. 왜? 저들이 흔히 떠들듯이 집회가 폭력성향을 띄었기 때문에 강제진압이 이뤄졌다고? 아니 촛불시위에 쇠파이프나 화염병이라도 등장했단 말인가?

정권과 기존언론 들이야 시위가 폭력적이어서 과잉진압이 이뤄진다고 떠들고 싶겠지만, 그 유명한 '1000 시리즈' 기동대가 그 현란한 방패술과 곤봉술을 선보인 집회중 당신들이 고장난 녹음기 틀듯 떠들어대는 '화염병과 쇠파이프' 가 등장한 시위가 얼마나 되나?

하여간 왜 촛불시위때 경찰의 대응방식이 변했을까? 정확히 변한 시점은 그해 겨울의 대통령 선거가 끝난 다음이었음을 상기한다면 그 의문은 쉽게 풀린다. 혹시 강제진압 했다가 당시까지만 해도 민주당의 대권후보였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표심' 이 돌아설것을 걱정한 김대중 정권의 판단이 경찰들로 하여금 그렇게 대응하도록 만든 것이다.

대선이 끝나고 노무현의 승리가 발표되자마자 촛불시위는 불법 폭력시위로 새롭게 규정되었고, '1000 조폭단' 은 미대사관 앞에서 또 난동을 부렸다.

어찌 그 사례 뿐이랴, 현장에서 마이크 잡고 '저것들 때려죽여, 밀어붙이란 말이야 개새끼들아' 하고 전경들을 충동질하는 현장 지휘관들이 많지만 그들이 그렇게 말할수 있는 것도 경찰 지휘부의 '정치적' 결정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서 '집회가 시민들에게 얼마나 불편함을 끼치는가' 하는 부분은, 미안하지만 전혀 고려사항이 아니다. 주된 고려사항은 강제진압시 여론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그리고 설사 여론이 불리하게 작용하더라도 지배계급에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어떤것인가 아닌가 하는 부분들이다. 

 

그랬거나 어쨌거나 '무조건 폭력시위가 문제','외국까지 가서 폭력시위로 나라망신 시키는 놈들','시위는 이해할수 있지만 너무 심하게 나서는건 문제' 라고 말하고 싶은 당신께는 권해주고 싶은 영화가 있다. '장 프랑소와 리셰' 라는 젊은 감독이 1997 년에 만든 '크랙시티' 는 놀랍게도 2005 년 올해 있었던 프랑스 파리 교외 (방리에) 에서 온갖 차별과 억압과 가난에 지친 이주노동자들의 저항을 거의 그대로 예견하고 있는 영화다.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까닭에 구해보려면 비디오 대여점의 먼지속을 좀 헤집어야 하겠지만 좌우지당간 이것을 권하는 이유는 영화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오기 때문이다.
“정부가 국민의 권리를 유린할 때 사회의 각 구성원에게 폭동이란 가장 신성한 권리이며 필요불가결한 의무이다” 이는 영화감독이 지어낸 말도, 어디 '빨갱이들' 이 지껄여댄 농담도 아니다. 단지 인권선언 35 장에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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