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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대선평가, 잘못된 당 혁신론

민주노동당은 이번 대선을 거치면서 기대에 못 미치는 3% 의 득표율만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총선 등을 거치면서 2002 년 대선 당시보다 당이 훨씬 더 발전했음을 감안할때 이는 분명 실망스러운 득표율이다. 때문에 대선평가의 주된 방향이 당 내외에서 민주노동당의 문제점을 지목하는 목소리와 함께 당 혁신론으로 흐르고 있는듯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대선은 민주노동당에게는 호기 였다고 말한다. 애시당초에 이명박 후보가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으며 앞서나가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난 대선, 총선 때와 같이 사표론이 파고들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정치공학적 으로 따지자면 그 말도 옳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대중들의 사회적 분위기는 효순이 미선이 사건으로 인한 운동이 큰 지지를 얻었던 지난번 대선의 여건이 오히려 더 좋았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번 대선의 실망스런 성적표를 전적으로 위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때문으로 돌릴수는 없다. 노무현 정권에 실망한 사람들을 결집시키지 못한 민주노동당 자체의 문제가 더 크고, 그렇기 때문에 대선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주로 레디앙을 통해 기사화 되고 있는 '평가' 들이 전혀 냉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평가자 개인이 평소에 특정정파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감정으로 대선을 평가하려 든다면 이는 올바른 평가라고 말할수 없다.

 

대선평가와 관련해 레디앙이나 당 게시판에서 주로 나오는 이야기는 이번 대선의 패배는 '코리아 연방 공화국' 혹은 이와 관련한 민족주의적 구호에 주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평가는 냉정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과 권영길 후보가 주로 주장한것은 통일이나 주한미군철수 등과 같은 민족주의적 정책이 아니었다. '코리아 연방 공화국' 슬로건은 대선 초기에 반짝 등장했을뿐 이후로는 당내 반발에 부딪쳐 대선슬로건에서 멀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묻혀져갔다.
 

크게 부각되지도 못한 정책이나 슬로건이 대선패배의 주요 책임이라고 말한다면 누가 봐도 납득하지 못할것이다. 반면에 무상교육 무상의료, 그와 관련한 부유세, 교육정책, 주택토지정책 등 이른바 '민생' 의제들은 대선 초기부터 끝날때까지 민주노동당이 꾸준히 제기한 문제들이었으며, TV 토론 등에서도 주로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다루어졌다. 당 과 후보의 주요 정책을 대선패배의 주된 원인으로 기준할 것이라면 이런 부분들이 오히려 문제였다고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이중잣대에 기인하지 않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될 수 있다. 물론 본인은 위와 같은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손호철 교수는 대선 직후 '레디앙','프레시안' 등을 통해 '87 년 체제는 가라'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8395 ) 면서 민주노동당 개혁안을 내놓았다. 그는 "정동영으로 대변되는 자유주의 진영이 그나마 선거에서 살아남는 길은 그간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발본적으로 자기비판을 하고 문국현 후보처럼 반신자유주의적 대안을 제시하며 다시 민심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 인데도 불구하고 BBk 등 부패문제만 부각시켰으며 이는 시민사회진영도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민심의 핵심인 민생과 반신자유주의 문제의 경우 진보적 자유주의자인 문국현 전유한컴벌리 사장이 정치에 입문하며 의제를 선점" 한것에 비해 민주노동당은 "낡은 주사파와 민족해방파의 논리" 에 갖혀 있었기 때문에 철지난 전선에 매달린 '수구좌파' 가 되었다는 것이다.

 

우선 위와 같은 평가는 사실관계에서 부터 어긋난다. 문국현 후보는 반신자유주의적 대안을 제시한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 자신의 17 대 공약에 FTA 와 자유경제를 집어넣으면서 대외적으로도 꾸준히 한-미 FTA 에 찬성한다고 밝혀왔다. 손호철 교수가 도대체 문국현 후보의 어느 정책과 행동에서 반신자유주의적 의제를 선점했다고 보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할 뿐더러, 민주노동당이 단순히 민족해방파의 논리에만 갖혀 있었던것이 아니라 대선 기간 내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반대하고 그에 맞서는 정책들을 펼쳐왔었다는 점은 위에서 밝힌바 있다. 손호철 교수의 평가에 의한다면 민주노동당이야 말로 민생의 핵심문제를 제대로 찔러왔다고 말해야 할것이다.

 

그는 "그러나 원로들과 시민사회의 일부 민주화 진영은 이미 사라진 87년 체제의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라는 낡아빠진 동아줄을 붙잡고 반수구, 반부패, 반한나라당 전선에 참여하라고 국민들에게 목소리나 높이고 있었다" 며 '87 년 체제는 가라' 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반한나라당' 전선에 대해서는 본인 역시 적극적으로 반대한다. 다만, 조금 다른 시각에서 문제제기를 하고 싶은것은 과연 87 년 투쟁이후 절차적인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아직도 국가보안법이 활개치고 신고제로 정착 되어있는 집회의 자유조차 갖은 수단을 동원해서 불법화 시키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삼성일반노조 김성한 위원장의 경우처럼 법이 적용되는 잣대가 하늘과 땅의 차이를 보이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구호가 과연 낡은 체제의 유산일 뿐일까? 단순히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지방단체장 등을 선거로 뽑을수 있다고 해서 절차적인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말할수 있을까? 이는 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떠들어대는 '그래도 절차적인 민주주의 제도는 확립했다' 는 주장을 확인시켜주는 역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마음이 든다.

 

게다가, '87 년 체제' 를 곧 반한나라당 전선과 등치시키는 것도 잘못이다. 손호철 교수 본인은 ‘두려움의 동원정치’를 넘어서자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5028 ) 에서 "지나친 대안에 대한 강조는 마치 진보진영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서 위기인 것과 같이 문제를 단순하고 왜곡할 우려가 있다. 사실 많은 경우 문제는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대안도 관철시킬 수 있는 사회적 힘이 없는 것" 이라면서 "소수 지식인들에 의한 지적 기획에 대한 대중의 힘의 우위, 지적 기획에 대한 사회적 힘의 관계의 우위를 믿" 으며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새로운 대안이 아니라 기존의 대안이라도 실현시킬 수 있는, 사회의 급진화에 의한 사회적 힘의 관계의 전복이다." 라고 주장한 바 있다.

 

본인은 손호철 교수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지지한다. 올바른 정치적 대안이 우리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로 나갈수 있도록 하는 방향타의 역활을 한다면, 대중적인 저항과 그에 기인한 사회적 역학관계의 전복은 그 방향으로 추진할수 있는 엔진의 역활을 할 것이다. 양자는 따로 따로 작용하는것이 아니라 이처럼 긴밀한 관계로 구성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87 년 체제는 당시에 비록 제대로 된 '방향타' 가 없었다는것이 한계였다고 하더라도 억압받던 노동자 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일어난 가장 강력했던 '엔진' 의 구실을 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87 년 체제' 를 반한나라당 전선과 등치시켜 '가라' 고 할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본질적인 부분에 무게를 두고 '다시 오라' 고 주장하는것이 맞다.

 

아무튼 대선평가 자체가 이처럼 평가자 개인의 잘못된 사실파악과 민족해방파에 대한 감정적인 거부감에 기인하고 있는 이상, 그 결론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 혁신' 또한 아쉽게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논의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주로 당 개혁안으로 논의되고 있는것은 크게 두가지인데, 그 하나는 '데모당' 의 이미지를 벗자는 것이고 또 한가지는 '당 분리,재창당' 을 주장하는 목소리다.

 

레디앙 의 이재영 기획위원은 '비겁한 자들의 패배'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8410 ) 라는 글에서 "데모대 백만 명을 모아봐야 민주노동당으로는 20만 표쯤밖에 안 온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당을 가두주의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면서 "80년대 운동권식 민중대회로 대통령선거를 모면하려 했다" 고 비판한다. 이미 대선이 한참 진행중일때에도 레디앙 측에서는 "가장 낡은, 꼴통 진보가 돼버린 정당" (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7916 ) 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보수언론 기자들의 입을 빌어 민중대회를 폄하한바 있다. 당 게시판에서도 대중투쟁의 부질없음을 주장하는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오곤 했다.

 

범국민 행동의 날이 FTA 반대 등 그야말로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주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20 만 표 밖에 안된다' 는 둥 대중투쟁을 만드는데 비아냥 거리기나 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보다 강력한 연대가 필요하다' 는 요청에 '동력이 없다' 는 식의 응답을 하는 당 이나 민주노총 지도부가 있다면 그야말로 큰 일 아닌가? 게다가, 만에 하나 이와 같은 정치적 의식으로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더라도 문제가 크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사회적 역학관계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라는 이해 없이 국회에, 청와대에 들어가서 근사한 정책만 생산하면 민중의 현실이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이는 크나큰 오산이다.

 

부유세, 무상의료, 무상교육 정책이 허접해서 그 정책이 실현되지 않는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힘이 없기 때문에 실현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가장 큰 힘을 얻을수 있는 방법을 두고 몇만표나 되겠냐고 이죽거리는 그런 태도로 무슨 민중의 현실을 바꾼다고 하는가?

 

민주노동당이 더 광범한 지지를 얻고 세상을 바꾸는 주체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더욱 '데모당'. '파업당' 이미지에 충실하게 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 개악안이 폐기가 아닌 국회일정상에서 처리가 연기되었다고 해서 금방 투쟁계획을 중지하는 식의 현재의 모양으로는 누구에게서도 공감받기 힘들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서 완전한 신뢰를 얻지 못하는것은 '이랜드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깃발을 내려야 한' 다는 거창한 말과 달리 '깃발을 내릴' 각오로 죽기살기로 덤벼들지 않았기 때문임을 왜 모르는가?

 

이런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당 혁신안 이라면서 '당 분리,재창당' 을 말한다면, 이는 차라리 재앙이라 할 것이다. 당 분리나 재창당 자체가 문제인것은 아니다. 그로 인해 운동이 더욱 발전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면, 혹은 운동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고 보다 올바른 정치적 포지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전망이 있다면 이는 오히려 장려할 만한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중투쟁을 건설하려는 노력을 폄하하고 '민주노총 당' 이미지에서는 벗어나야 하며 이제 우리도 제도권 정당에 들어왔으니 제도권 정당에 알맞게 '점잖은' 이미지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런 운동권내 우파들이 주도하는 정당을 만들기 위한 당 분리 라면 이는 반대로 운동을 저해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당원들이 주장하듯이 '민족해방파' 들만 당에서 제외시키면 만사 O.K 가 아니다. 세력은 더 작아지고 지향하는 방향은 똑 같다면 그게 뭐가 혁신이고 개혁인가?

 

이번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는 3% 의 득표만을 얻는데 그쳤지만,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율은 여전히 10% 가까이 지지를 얻었다. 대선과 동시에 진행된 보궐 지방선거에서는 인천과 고양에서 30% 대의 높은 득표율을 얻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대중들에게 민주노동당은 비록 불안해 보이기는 해도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서는 유일한 대안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것 같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의 '혁신' 은 실제로 세상을 바꿀수 있는 힘을 갖추어 '불안해 보이는' 부분들을 점차 매꾸어 가는데 방점을 찍어야 할 것이다. 대중투쟁을 건설하는일에 비아냥 거리는 대신 보다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동력을 만들어 나가는 것. 그것이 거리에서든 선거에서든 민주노동당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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