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아직 전세금을 못 받고 있다. 임대차등기 쩌구쩌구를 해놓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뒤져도 계약서가 보이질 않았다. 작년 쯤, 계약서를 책갈피로 사용했던 기억만 어렴풋이.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 작년에 읽었을 책을 한권한권 빼서 넘겨보는데, 계약서를 책갈피로 사용한 것도 한심스럽고(넌 계약서가 넘쳐나냐, 버럭, 생각좀하고살자), 나도 돈 문제로 골머리 썩을 일이 생긴다는 것도 짜증스러웠다.

 

희극적인건, 한참 이책, 저책 뒤지다가, 지쳐서 반포기하고, 책이나 훑어보자는 생각에 한권을 뽑아 펼쳐들고 한장한장 넘기니, 맨 마지막 장에서 노란 종이가 흴끔 보인다. 탄성과 환성과 감사의 기도가..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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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에게 오해 받는 게 견디기 힘들었고, 오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무던히 끄달리며 애썼었는데, 엊그제 보니 그런 마음이 가벼워졌다. 오해를 해도, 나에 대해 잘 몰라도, 뭐, 그러라지, 라는 편한 마음이 드는 게 신기하다. 조금의 평정심을 찾고 나니, 코끝이 잔잔하다. 이런 마음 상태가 오래가면 좋겠다. 누구에게도. 혹여나, 앙금이 남아있지 않을까 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던 것 같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또 편해졌다. 상대방의 마음을 보지 말고, 내 마음을 봐야할 것인데, 계속 상대방의 마음에 내 마음을 맞추려 한다. 내 마음을 잘 돌보면, 오해 받는 걸 애닳아하지도 않고, 깊이를 재기 위해 애닳아하지도 않겠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흘러다닌 것일 뿐이라는 걸 깨달으니, 조금은 허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