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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토론 :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변혁의 세계화 - 원영수

 

[토론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변혁의 세계화


원영수 (노동자의힘)



2003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제3회 세계사회포럼이 열렸했을 때, 비록 정당과 무장조직의 참여가 헌장의 원칙위배임에도 10만명이 브라질의 새 대통령 룰라의 연설을 듣기 위해 집결했다. 반면, 아무런 예고없이 포르투 알레그레에 나타났던 우고 차베스는 사회포럼 주최측에 의해 참여를 거부당하고, 시내에서 5천여명이 참여한 대중집회를 마치고 베네수엘라로 돌아갔다.

2005년 1월 세계사회포럼이 2004년 뭄바이포럼을 거쳐 포르투 알레그레로 다시 돌아왔을 때, 상황은 변했다. 개막행사에 룰라가 참여했을 때, 룰라에 대해 비판적인 시위대오가 행사장 밖에서 "룰라! 배신자!"란 구호를 외치며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충돌했다. 반면 폐막식에 정식으로 초청받은 우고 차베스는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포럼의 공식구호 대신,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비바 볼리바리안 혁명!"의 구호가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이에 답하여 우고 차베스는 볼리바리안 혁명이 "혁명속의 혁명"의 넘어 "21세기 사회주의혁명"임을 선언하였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저항의 전지구적 확장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패권주의적 침략전쟁으로 21세기를 열었던 제국주의 공세에 제동이 걸렸다. WTO와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 삼두마차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확산됨에 따라, 최소한 '대안은 없다'(TINA)는 패배의식은 일정한 정도 극복되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대안이 세력화되고 조직화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은 반세계화시위가 벌어진 곳만이 아니라, 전지구상의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그 매개고리는 반세계화운동이며, 9.11테러를 계기로 유례없는 국제적 반전운동으로 확장되었다. 그로 인해 미국주도의 제국의 질서는 심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1999년의 시애틀전투, 2001년 제노바전투, 2003년 2.15 국제반전투쟁과 칸쿤대회전, 2005년 마르델플라타와 홍콩전투는 반전·반세계화의 주요한 결절점이었다. 이런 투쟁들을 통해 반전·반세계화운동은 제국주의 지배블록에 정치적 타격을 가했으며, 그들이 원하는 지배구도에 파열구를 냈다.

따라서 현시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된 무저항의 상태로부터 신자유주의 본질에 대한 대중적 각성과 저항의 조직화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 아직은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적 기제들이 붕괴한 것은 아니지만, 폭넓은 대중투쟁에 의해 그 정당성이 부정되고, 다양한 형태의 저항이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반세계화운동과 반전운동, 세계사회포럼

먼저, 반세계화운동은 출생지인 시애틀부터 놀라운 폭발력을 보여주었고, 9.11테러로 조성된 국제공안정국을 돌파하고, 반전운동과 결합하여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반세계화운동의 폭발적 동원을 배경으로 탄생한 세계사회포럼은 다보스포럼을 넘어, 전세계 민중·사회운동의 해방구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대안이 가시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투쟁의 경험이 공유되고 새로운 대안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소통의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비록 구체적 투쟁의 전략과 전망을 도출하기 위한 심도깊은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안과 새로운 해방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하다.

다음으로 반세계화운동의 주요한 특징은 각국 민중·사회운동의 국제연대투쟁이 직접 국제기구들과의 직접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의 경제적 역할이 위축됨에 따라, 국경을 넘는 직접행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공세를 추동하는 국제기구를 목표로 전개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은 반세계화운동의 파동효과이다. 미디어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던 1968년, 저항의 물결이 베트남의 민족해방운동을 제국주의 중심부의 반체제 학생운동, 사회주의진영의 민주화운동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런 파동효과는 반세계화투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반세계화운동은 제국주의 중심부의 주요 도시로 전염되었고, 세계자본주의의 주변부까지 오염(?)시켰다.

더 나아가, 이 투쟁은 세계사회포럼을 매개로 더욱 확장되고 있다. 특히 9.11테러 직후 도하개발어제다를 출범시킨 WTO 도하회의와 아르헨티나 봉기 직후에 열린 제2차 세계사회포럼은 제국주의 전쟁반대의 슬로건 아래 반세계화운동을 반전-반제국주의로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이후 세계사회포럼은 브라질을 떠나 인도 뭄바이(2004년)를 거쳐, 2006년 다중심 분산개최(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말리, 파키스탄 카라치, 그리스 아테네, 방콕)를 거쳐 2007년 아프리카 케냐로의 여정에 있다.

이와 같은 세계사회포럼의 확산과 발전은 각대륙적 수준과 일국적 수준에서 광범한 저항투쟁과 민중·사회운동의 유기적 결합의 기회를 제공해 왔다. 이는 21세기 운동의 지평을 확장함과 동시에, 운동 전반의 질적 심화와 대중적 강화를 통해 반자본주의적 대안을 위한 새로운 차원을 전개할 것이다.


새로운 변화의 동력: 일국운동과 국제운동의 관계

이와 같은 반세계화운동의 발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197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20년간의 일방적 후퇴를 반전시키는 계기를 창출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불가피한 대안이 아니고, 무언가 변화의 가능성을 주체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애틀, 워싱턴, 바르셀로나, 제노바 등으로 이어지는 대중적 투쟁의 물결이 일국의 정치 및 운동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제노바 투쟁은 이탈리아의 지형에서 사민주의로 전향한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영향으로서 사회·민중·좌파운동을 해방시켰다.

2005년 프랑스의 신자유주의적 유럽헌법 부결투쟁은 유럽의 반세계화운동을 주도한 프랑스 좌파와 사회운동의 정치적 승리였고, 최근 CPE반대투쟁의 폭발은 1968년혁명의 기억을 현재화시키면서, 우파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한편 198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거쳐 신자유주의에 의해 유린된 라틴 아메리카는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 아르헨티나 봉기,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원주민투쟁 등을 매개로, 최근의 연이은 제도좌파의 집권으로 제도권 선거정치로까지 확장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는 세계사회포럼의 출생지일 뿐 아니라, 북미자유무역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장한 전미자유무역협정(FTAA/ALCA)를 2005년 11월 아르헨티나의 마르델 플라타에서 최종적으로 좌초시키면서, 현 단계 반신자유주의·반제국주의 국제투쟁전선에서 전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반세계화운동을 매개로 한 국제연대투쟁의 확장과 일국적 투쟁 간의 유기적 상호작용은 한편에서 새로운 운동지형을 창출하고, 다른 한편으로 투쟁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저항주체의 형성과정을 촉진하고 있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소통의 확대와 심화는 운동 자체가 소수에 의해 전유될 수 없는 구조를 창출하고 있다.

권력장악없이 세계를 변혁한다? - 사파티스모 대 볼리바리스모

외견상 아래로부터 분출하는 반세계화운동의 전개과정은 참여주체들 사이에서 다양한 수준의 새로운 논쟁을 촉발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멕시코 사파티스모의 이데올로그인 존 홀로웨이의 도발적 문제제기를 둘러싼 논쟁이다. 홀로웨이는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 세계를 바꾼다"는 전략은 반세계화운동내 수평주의자들(horizontalists)의 정체성과 지향성을 대변한다. 이는 2006년 대선을 겨냥한 사파티스타의 다른 캠페인(the other campaign)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른바 좌파진영은 우고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의 예를 제기하면서, 권력과 사회변혁의 연관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여전히 변혁의 핵심은 국가권력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비록 현단계의 반세계화운동이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궁극적으로 국가의 소멸을 지향하지만, 국가권력을 우회한 전략은 가능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역사적 사회주의의 종언이후, 새로운 계급정치, 변혁정치는 아직 사민주의의 신자유주의로의 포섭으로 발생한 정치적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좌파운동의 오류와 한계에 대한 사회운동 전반의 불신과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고 있지 못하다. 바로 이런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른바 사파티스모(Zapatismo) 대 볼리바리스모(Bolivarismo)/차비스모(Chavisomo) 간의 논쟁이 위치하고 있다.

이 논쟁은 반세계화운동 자체로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우선, 반세계화운동 자체가 초동단계에 있고, 향후의 발전경로는 열려 있다. 그리고 반세계화운동 자체 내에서 다양한 전략이 서로 경쟁적 대안으로 제출되고 있는 만큼, 열린 논쟁을 통해 실천과정에서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권력와 전지구적 변혁전망 등 이른바 전략논쟁은 반세계화운동과 21세기 좌파운동의 미래를 담보할 결정적 열쇠이다.


한국의 반세계화운동와 한미FTA저지투쟁


초기 사회운동의 이슈캠페인에서 출발한 반세계화운동은 한편에서 대중적 의제화를 통해 대중투쟁의 한 영역으로 정착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제연대투쟁으로 확장했다. 이번 한미FTA저지투쟁를 그 동안 반세계화운동의 대중적 성과에 힘입어, 신자유주의 개혁정권에 맞선 전민중적 항쟁으로 확장시켜야 할 과제에 직면해 있다.

1990년대 후반 WTO와 MAI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의제운동에서 출발한 한국의 반세계화운동은 KoPA라는 연대체를 통해 노동·농민·민중·사회운동의 시야를 확대하였고, 그 이후 국내적으로 반아셈투쟁(2001년)과 반아펙투쟁(2005년), 국제원정투쟁으로 칸쿤(2003년)과 홍콩(2005년) 및 세계사회포럼 참여 등의 실천을 통해 발전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중운동을 매개로 한 양적인 발전과 확장은 국내적 계급투쟁과 결합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왔고, 여전히 의제별·부문별 대응 수준에 머물렀다. 이번 한미FTA저지투쟁은 바로 그런 한계를 실천적으로 돌파할 수 있는 계기이자, 반세계화운동을 신자유주의 개혁정권에 맞선 정치투쟁으로 확장시킬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동시에 전지구적 수준에서 WTO, 전미자유무역협정(FTAA/ALCA),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등 지역·대륙적 수준에서 자유무역렵상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이를 돌파·보완하기 위해 추진되는 양국간 FTA에 대한 투쟁이 반세계화운동의 한 영역으로 본격화되는 만큼, 한미FTA저지투쟁을 통해 새로운 투쟁의 전형을 창출해야 할 과제도 주어져 있다.


반전·반세계화운동: 반제국주의에서 반자본주의로!

21세기초 현재 사회주의의 해체와 자본주의의 승리에 도취하여 선언했던 "역사의 종언"(프란시스 후쿠야마)은 현실에 의해 기만임이 입증되었다. 또한 20세기를 지칭했던 "극단의 시대"(에릭 홉스봄)는 21세기에 대한 규정으로서도 유효함 확인되었다. 광포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전쟁과 학살, 빈곤과 기아, 질병은 자본주의가 약속한 유토피아의 실상이다.

오히려 시장의 폭정에 맞선 저항과 투쟁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고 있다. 반세계화운동 및 반전운동의 전지구적 전개, 그리고 이런 아래로부터 세계화의 일국정세에 대한 영향, 특히 라틴 아메리카 제도정치의 좌선회(?) 등의 현상은 미국 제국주의의 일극지배체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신자유주의의 유지불가능성을 확인시키고 있다.

현재 이라크점령의 딜레마, 신자유주의의 모순, 저항의 확산 등 점차 위기 속으로 내몰리는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모색은 더 이상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의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혁명은 아직은 선언적 수준이지만, 국제적 수준의 반전·반세계화운동이 제국주의 체제에 균열을 내는 만큼, 각대륙이나 국가별 수준에서도 기존정치의 변화를 넘어 새로운 변혁으로의 재편가능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일국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반자본주의적 사회변혁은 불가피하게 국제적 차원의 새로운 질서와 이를 둘러싼 투쟁을 강제할 것이며, 신자유주의의 전지구적 체제를 대체할 사회변혁의 세계화를 촉진할 것이다.


변혁의 세계화와 미디어

19-20세기 좌파운동의 무기는 선전선동과 조직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혁명과 그에 따른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선전선동과 조직활동, 운동전체에 새로운 차원을 열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민주적 소통과 상호작용을 배제한 하향식 위계조직이나 일방적 계몽주의적 선동선동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일상을 매개로 전개되는 국가와 자본의 무차별적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선 이데올로기투쟁은 사회변혁운동의 주요한 영역이며, 여기에서 미디어는 그 자체로 투쟁의 공간임과 동시에 투쟁의 수단이다. 바로 이 투쟁을 통해 전선을 구축함과 동시에, 새로운 주체를 발굴·형성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는 투쟁의 무기임과 동시에 대안사회건설의 무기이다. 일상의 소통과 상호작용의 수단임과 동시에, 강력한 대중선동의 무기로서의 미디어는 그 자체로 독자적이지만, 조직이나 투쟁, 일상활동과 다층적·다면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새로운 미디어의 역할을 배제한 대안은 상상하기 힘들다.

혁명적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을 촉발하고, 동시에 미디어의 대중적 전유와 사회화를 추동하는 과제는 변혁을 세계화하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과 미디어의 변증법적 통일을 통한 사회변혁의 전망에 대한 논의와 정식화는 미디어 활동가만이 아니라 변혁운동 전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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