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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토론 :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변혁의 세계화 - 원영수

 

[토론문]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변혁의 세계화


원영수 (노동자의힘)



2003년 1월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제3회 세계사회포럼이 열렸했을 때, 비록 정당과 무장조직의 참여가 헌장의 원칙위배임에도 10만명이 브라질의 새 대통령 룰라의 연설을 듣기 위해 집결했다. 반면, 아무런 예고없이 포르투 알레그레에 나타났던 우고 차베스는 사회포럼 주최측에 의해 참여를 거부당하고, 시내에서 5천여명이 참여한 대중집회를 마치고 베네수엘라로 돌아갔다.

2005년 1월 세계사회포럼이 2004년 뭄바이포럼을 거쳐 포르투 알레그레로 다시 돌아왔을 때, 상황은 변했다. 개막행사에 룰라가 참여했을 때, 룰라에 대해 비판적인 시위대오가 행사장 밖에서 "룰라! 배신자!"란 구호를 외치며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충돌했다. 반면 폐막식에 정식으로 초청받은 우고 차베스는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라는 포럼의 공식구호 대신, "사회주의는 가능하다!", "비바 볼리바리안 혁명!"의 구호가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이에 답하여 우고 차베스는 볼리바리안 혁명이 "혁명속의 혁명"의 넘어 "21세기 사회주의혁명"임을 선언하였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저항의 전지구적 확장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패권주의적 침략전쟁으로 21세기를 열었던 제국주의 공세에 제동이 걸렸다. WTO와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 삼두마차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확산됨에 따라, 최소한 '대안은 없다'(TINA)는 패배의식은 일정한 정도 극복되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 대안이 세력화되고 조직화된 것은 아니다.
어쨌든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은 반세계화시위가 벌어진 곳만이 아니라, 전지구상의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그 매개고리는 반세계화운동이며, 9.11테러를 계기로 유례없는 국제적 반전운동으로 확장되었다. 그로 인해 미국주도의 제국의 질서는 심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1999년의 시애틀전투, 2001년 제노바전투, 2003년 2.15 국제반전투쟁과 칸쿤대회전, 2005년 마르델플라타와 홍콩전투는 반전·반세계화의 주요한 결절점이었다. 이런 투쟁들을 통해 반전·반세계화운동은 제국주의 지배블록에 정치적 타격을 가했으며, 그들이 원하는 지배구도에 파열구를 냈다.

따라서 현시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된 무저항의 상태로부터 신자유주의 본질에 대한 대중적 각성과 저항의 조직화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 아직은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적 기제들이 붕괴한 것은 아니지만, 폭넓은 대중투쟁에 의해 그 정당성이 부정되고, 다양한 형태의 저항이 지속적으로 확장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반세계화운동과 반전운동, 세계사회포럼

먼저, 반세계화운동은 출생지인 시애틀부터 놀라운 폭발력을 보여주었고, 9.11테러로 조성된 국제공안정국을 돌파하고, 반전운동과 결합하여 그 영역을 확장하였다. 반세계화운동의 폭발적 동원을 배경으로 탄생한 세계사회포럼은 다보스포럼을 넘어, 전세계 민중·사회운동의 해방구로 자리잡고 있다.

물론, 신자유주의를 대체할 대안이 가시적으로 도출되는 것은 아니지만, 투쟁의 경험이 공유되고 새로운 대안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소통의 공간으로서 기능하고 있다. 비록 구체적 투쟁의 전략과 전망을 도출하기 위한 심도깊은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안과 새로운 해방운동의 가능성을 확인하기에는 충분하다.

다음으로 반세계화운동의 주요한 특징은 각국 민중·사회운동의 국제연대투쟁이 직접 국제기구들과의 직접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국가의 경제적 역할이 위축됨에 따라, 국경을 넘는 직접행동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공세를 추동하는 국제기구를 목표로 전개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지점은 반세계화운동의 파동효과이다. 미디어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던 1968년, 저항의 물결이 베트남의 민족해방운동을 제국주의 중심부의 반체제 학생운동, 사회주의진영의 민주화운동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런 파동효과는 반세계화투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반세계화운동은 제국주의 중심부의 주요 도시로 전염되었고, 세계자본주의의 주변부까지 오염(?)시켰다.

더 나아가, 이 투쟁은 세계사회포럼을 매개로 더욱 확장되고 있다. 특히 9.11테러 직후 도하개발어제다를 출범시킨 WTO 도하회의와 아르헨티나 봉기 직후에 열린 제2차 세계사회포럼은 제국주의 전쟁반대의 슬로건 아래 반세계화운동을 반전-반제국주의로 확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이후 세계사회포럼은 브라질을 떠나 인도 뭄바이(2004년)를 거쳐, 2006년 다중심 분산개최(베네수엘라 카라카스, 말리, 파키스탄 카라치, 그리스 아테네, 방콕)를 거쳐 2007년 아프리카 케냐로의 여정에 있다.

이와 같은 세계사회포럼의 확산과 발전은 각대륙적 수준과 일국적 수준에서 광범한 저항투쟁과 민중·사회운동의 유기적 결합의 기회를 제공해 왔다. 이는 21세기 운동의 지평을 확장함과 동시에, 운동 전반의 질적 심화와 대중적 강화를 통해 반자본주의적 대안을 위한 새로운 차원을 전개할 것이다.


새로운 변화의 동력: 일국운동과 국제운동의 관계

이와 같은 반세계화운동의 발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성과는 197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중반까지 20년간의 일방적 후퇴를 반전시키는 계기를 창출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불가피한 대안이 아니고, 무언가 변화의 가능성을 주체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시애틀, 워싱턴, 바르셀로나, 제노바 등으로 이어지는 대중적 투쟁의 물결이 일국의 정치 및 운동지형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제노바 투쟁은 이탈리아의 지형에서 사민주의로 전향한 이탈리아 공산당(PCI)의 영향으로서 사회·민중·좌파운동을 해방시켰다.

2005년 프랑스의 신자유주의적 유럽헌법 부결투쟁은 유럽의 반세계화운동을 주도한 프랑스 좌파와 사회운동의 정치적 승리였고, 최근 CPE반대투쟁의 폭발은 1968년혁명의 기억을 현재화시키면서, 우파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한편 198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거쳐 신자유주의에 의해 유린된 라틴 아메리카는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 아르헨티나 봉기,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원주민투쟁 등을 매개로, 최근의 연이은 제도좌파의 집권으로 제도권 선거정치로까지 확장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는 세계사회포럼의 출생지일 뿐 아니라, 북미자유무역을 아메리카 대륙으로 확장한 전미자유무역협정(FTAA/ALCA)를 2005년 11월 아르헨티나의 마르델 플라타에서 최종적으로 좌초시키면서, 현 단계 반신자유주의·반제국주의 국제투쟁전선에서 전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반세계화운동을 매개로 한 국제연대투쟁의 확장과 일국적 투쟁 간의 유기적 상호작용은 한편에서 새로운 운동지형을 창출하고, 다른 한편으로 투쟁의 영역을 확장함으로써 새로운 저항주체의 형성과정을 촉진하고 있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소통의 확대와 심화는 운동 자체가 소수에 의해 전유될 수 없는 구조를 창출하고 있다.

권력장악없이 세계를 변혁한다? - 사파티스모 대 볼리바리스모

외견상 아래로부터 분출하는 반세계화운동의 전개과정은 참여주체들 사이에서 다양한 수준의 새로운 논쟁을 촉발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멕시코 사파티스모의 이데올로그인 존 홀로웨이의 도발적 문제제기를 둘러싼 논쟁이다. 홀로웨이는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 세계를 바꾼다"는 전략은 반세계화운동내 수평주의자들(horizontalists)의 정체성과 지향성을 대변한다. 이는 2006년 대선을 겨냥한 사파티스타의 다른 캠페인(the other campaign)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른바 좌파진영은 우고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의 예를 제기하면서, 권력과 사회변혁의 연관성을 주장하고 있으며, 여전히 변혁의 핵심은 국가권력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비록 현단계의 반세계화운동이 아래로부터의 대중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궁극적으로 국가의 소멸을 지향하지만, 국가권력을 우회한 전략은 가능하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역사적 사회주의의 종언이후, 새로운 계급정치, 변혁정치는 아직 사민주의의 신자유주의로의 포섭으로 발생한 정치적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20세기 좌파운동의 오류와 한계에 대한 사회운동 전반의 불신과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고 있지 못하다. 바로 이런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른바 사파티스모(Zapatismo) 대 볼리바리스모(Bolivarismo)/차비스모(Chavisomo) 간의 논쟁이 위치하고 있다.

이 논쟁은 반세계화운동 자체로 해소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우선, 반세계화운동 자체가 초동단계에 있고, 향후의 발전경로는 열려 있다. 그리고 반세계화운동 자체 내에서 다양한 전략이 서로 경쟁적 대안으로 제출되고 있는 만큼, 열린 논쟁을 통해 실천과정에서 검증되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국가권력와 전지구적 변혁전망 등 이른바 전략논쟁은 반세계화운동과 21세기 좌파운동의 미래를 담보할 결정적 열쇠이다.


한국의 반세계화운동와 한미FTA저지투쟁


초기 사회운동의 이슈캠페인에서 출발한 반세계화운동은 한편에서 대중적 의제화를 통해 대중투쟁의 한 영역으로 정착하고, 다른 한편으로 국제연대투쟁으로 확장했다. 이번 한미FTA저지투쟁를 그 동안 반세계화운동의 대중적 성과에 힘입어, 신자유주의 개혁정권에 맞선 전민중적 항쟁으로 확장시켜야 할 과제에 직면해 있다.

1990년대 후반 WTO와 MAI를 중심으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맞선 의제운동에서 출발한 한국의 반세계화운동은 KoPA라는 연대체를 통해 노동·농민·민중·사회운동의 시야를 확대하였고, 그 이후 국내적으로 반아셈투쟁(2001년)과 반아펙투쟁(2005년), 국제원정투쟁으로 칸쿤(2003년)과 홍콩(2005년) 및 세계사회포럼 참여 등의 실천을 통해 발전해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중운동을 매개로 한 양적인 발전과 확장은 국내적 계급투쟁과 결합되지 못하는 한계를 보여왔고, 여전히 의제별·부문별 대응 수준에 머물렀다. 이번 한미FTA저지투쟁은 바로 그런 한계를 실천적으로 돌파할 수 있는 계기이자, 반세계화운동을 신자유주의 개혁정권에 맞선 정치투쟁으로 확장시킬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동시에 전지구적 수준에서 WTO, 전미자유무역협정(FTAA/ALCA),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등 지역·대륙적 수준에서 자유무역렵상이 한계에 봉착하면서, 이를 돌파·보완하기 위해 추진되는 양국간 FTA에 대한 투쟁이 반세계화운동의 한 영역으로 본격화되는 만큼, 한미FTA저지투쟁을 통해 새로운 투쟁의 전형을 창출해야 할 과제도 주어져 있다.


반전·반세계화운동: 반제국주의에서 반자본주의로!

21세기초 현재 사회주의의 해체와 자본주의의 승리에 도취하여 선언했던 "역사의 종언"(프란시스 후쿠야마)은 현실에 의해 기만임이 입증되었다. 또한 20세기를 지칭했던 "극단의 시대"(에릭 홉스봄)는 21세기에 대한 규정으로서도 유효함 확인되었다. 광포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전쟁과 학살, 빈곤과 기아, 질병은 자본주의가 약속한 유토피아의 실상이다.

오히려 시장의 폭정에 맞선 저항과 투쟁이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내고 있다. 반세계화운동 및 반전운동의 전지구적 전개, 그리고 이런 아래로부터 세계화의 일국정세에 대한 영향, 특히 라틴 아메리카 제도정치의 좌선회(?) 등의 현상은 미국 제국주의의 일극지배체제의 불안정성을 증폭시키고, 신자유주의의 유지불가능성을 확인시키고 있다.

현재 이라크점령의 딜레마, 신자유주의의 모순, 저항의 확산 등 점차 위기 속으로 내몰리는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모색은 더 이상 유토피아적 상상력의 수준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의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혁명은 아직은 선언적 수준이지만, 국제적 수준의 반전·반세계화운동이 제국주의 체제에 균열을 내는 만큼, 각대륙이나 국가별 수준에서도 기존정치의 변화를 넘어 새로운 변혁으로의 재편가능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일국적 수준에서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반자본주의적 사회변혁은 불가피하게 국제적 차원의 새로운 질서와 이를 둘러싼 투쟁을 강제할 것이며, 신자유주의의 전지구적 체제를 대체할 사회변혁의 세계화를 촉진할 것이다.


변혁의 세계화와 미디어

19-20세기 좌파운동의 무기는 선전선동과 조직이었다. 그러나 과학기술혁명과 그에 따른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선전선동과 조직활동, 운동전체에 새로운 차원을 열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민주적 소통과 상호작용을 배제한 하향식 위계조직이나 일방적 계몽주의적 선동선동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일상을 매개로 전개되는 국가와 자본의 무차별적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선 이데올로기투쟁은 사회변혁운동의 주요한 영역이며, 여기에서 미디어는 그 자체로 투쟁의 공간임과 동시에 투쟁의 수단이다. 바로 이 투쟁을 통해 전선을 구축함과 동시에, 새로운 주체를 발굴·형성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는 투쟁의 무기임과 동시에 대안사회건설의 무기이다. 일상의 소통과 상호작용의 수단임과 동시에, 강력한 대중선동의 무기로서의 미디어는 그 자체로 독자적이지만, 조직이나 투쟁, 일상활동과 다층적·다면적으로 연동되어 있다. 새로운 미디어의 역할을 배제한 대안은 상상하기 힘들다.

혁명적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을 촉발하고, 동시에 미디어의 대중적 전유와 사회화를 추동하는 과제는 변혁을 세계화하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그런 의미에서 운동과 미디어의 변증법적 통일을 통한 사회변혁의 전망에 대한 논의와 정식화는 미디어 활동가만이 아니라 변혁운동 전체의 과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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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토론 : <1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 투쟁과 독립 미디어 - 오이완 람

* 이 글의 영문은 아래 주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ahoi.pbwiki.com/mediastruggle 

 

 

[토론문]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 투쟁과

독립 미디어


오이완 람(Inmedia)


노트 : 이것은 워크숍의 첫 번째 부분이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한 투쟁 동안의 대안 미디어의 활동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기조발제는 IMC의 프리젠테이션 “신자유주의 반대 대중운동의 역사와 독립 미디어의 활동”과 미디어 문화 행동의 “한국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과 대안 미디어의 활동”이다.



패널 회의


회의 지침에 의하면, 이 부분에서는 특정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에서의 대안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다룰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작년 12월의 반WTO 투쟁에 초점을 맞추고 최종적으로 더 나아간 논의를 위해 몇 가지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몇 가지 용어의 배경과 설명


각론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몇 가지 용어에 대해 명확히 하고 넘어갈 것이다. 1. 우리 조직의 정식 이름은 홍콩 인미디어다. 여기서 “IN”은 독립(independent)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적인 IMC 네트워크와 정식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우리가 IMC 네트워크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는 인미디어가 민주운동과 홍콩-중국의 관계에 대한 대응 등의 매우 지역화된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활동이 상업적인 권력은 물론이고 정부와 정당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는 비판적인 공공 영역과 비판적 대중을 창조하기 위해 참여민주주의실천을 보도하는 시민들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또한 두 번째 혼란스러운 개념인 “시민 기자”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나는 시민 기자라는 용어가 남한의 사회운동 영역에서는 너무 자유주의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서울 방문 때에 나는 또 시민 기사가 과학기술 장치의 “최신식의 소비”가 될 것 이라고 언급했다. 형식적인 민주주의와 유사하게 그것은 사람들이 내용과 본질을 무시하도록 한다. 시민 기자에 대한 우리의 번역은 “사람들 사이의 / 사람들 속의” 기자이다. 컨텍스트는 물론 미디어 기술의 해방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과는 별도로, 우리는 시민 기자의 활동이 정치적이고 교육적이며, 소통적이며, 자기반영적이라고 강조한다.

주류 미디어의 정치적 상업적 조작과 형식적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취지 속에 있는 정치성. 우리의 기자들에게 타인의 인생 세계로 들어가 질문을 하고 그들 자신의 가치와 해답을 찾기를 장려하는 취지 속에 있는 교육성. 남성과 여성 버전의 기사가 논의를 위해 열려져야 하고 상호-주관적인(inter-subjective) 공공 영역을 구성해야 한다는 취지 속에 있는 소통성. 남성 / 여성이 표현의 힘을 알아야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의 가치 체계를 발전시켜야 하는 취지 속에 있는 자기반영성.

몇몇 지역 NGO들은 인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의 부재 때문에 인미디어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리고 또 칼럼니스트와 시민기자들에게 최소한의 편집권을 가지기 위해 웹사이트를 더 대중화시켜야할 고려점도 있다. 이는 우호적인 분열로 이어져 글로벌네트워크1)라고 하는 또 다른 운동 사이트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인미디어 커뮤니티는 블로거, 청소년, 학생, 게이와 레즈비언, 문화 활동가, 진보적인 기독교인 등으로 이루졌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이해의 핵심을 건드리는 다양한 시민기자였기 때문이다.



WTO와 독립 미디어 행동


우리가 작년 12월 WTO 회의기간 동안에 아주 한정된 자원(스태프도 사무실도, 자원봉사자들을 구성할 기반도 없었다)을 가지고 했던 일들은 다음과 같다.


▸ 반WTO 주간의 예비 모임2)에 대한 보고

▸ TRIPS, GATTS 그리고 사유화 이슈들과 그것이 제3세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

▸ 미디어 그룹 준비 팀에 참여 (하지만 의견차이로 인해서 매우 한정적인 참여였는데, 그들은 대안미디어를 도우려는 게 아니라 주류 미디어의 허위보도에 초점을 맞추었다.)

▸ 안전구역(security beat)이나 정부선전 전략같은 주류미디어 활동 비평

▸ 경찰의 과잉진압 반대를 위한 시민서명운동 지원

▸ WTO 기간 동안 시민 기사작업에 참여할 시민 기자 설명 워크숍 주최

▸ 공유 자원 문제에 대해 비-지역 대안 미디어 활동가와의 회의 (이는 실패했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공유할 자원이 그리 많지 않았고 언어문제도 있었으며 너무 급했다.)

▸ WTO 주간 동안 지역 상호 웹사이트에 참여하는 독립 미디어와 네트워킹하기 위한 회의 (기대와는 다르게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알지 못했다.)

▸ WTO 보고 : 시위, 물 사유화, 대만 투쟁단, 한국 투쟁단, 경찰의 폭력

▸ WTO에 대한 아티클들의 번역3)

▸ 감사편지와 시민 응원단

▸ “폭도”라는 주류미디어의 묘사에 대한 반박 및 대안 기사 작성, 시민 홍보

▸ 구금자 통역

▸ “홍콩 방문 안하기”운동에서 대만 그룹과의 연대로 이슈를 국제화하기

▸ 경찰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기 위해 주류 잡지사와 함께한 고무 총알 기사 : 경찰의 폭력을 폭로하라

▸ 주류 미디어에 대한 의혹 제기 (싱타오 사건4))

▸ WTO 주간의 시민 홍보물 발간 및 지원단에 참여

▸ 홍콩 법무부에 대한 의혹제기, 재판에 대한 상세한 기사 작성

▸ 경찰의 교황에 보내는 항의 편지에 대항한 젠 주교 지원, 현재 젠 주교는 지구 주교로 승격되었다

▸ WTO 주간에 대해 NGO들 사이의 평가 개시

▸ 보고서 진행

▸ WTO 케이스 스터디 연구 계획



12월 17일에서 18일까지 : 대안 뉴스 대 주류 뉴스


12월 17일 밤, 경찰청은 반WTO 시위대를 폭도로 규정하고 국영, 민영 라디오와 TV 채널을 통해 이를 발표했다. 더 나아가, 그들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SMS 문자를 보내 홍콩 시민들이 완차이로 가거나 WTO 시위대에 참여하지 않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많은 홍콩 사람들이 실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기 위해 완차이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그 지역을 봉쇄하려는 많은 진압 경찰들과 대면했다. 이 모든 사람들이 눈으로 직접 목격한 목격자가 되었으며, 대안적 뉴스의 출처가 되었다. 게다가 인터넷 라디오와 인미디어도 또한 아주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정보제공처가 되었다. 12월 17일부터 20일까지, 우리의 하루 접속율은 평균 8000이 넘었다.


12월 18일, 많은 신문의 머리기사가 “폭도”라던가 “완차이 침공당하다”라는 제목을 올리면서 공식적인 발표와 정보만을 반복했다. 홍콩PA는 경찰들이 완차이에서 떠나라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12월 18일의 시위가 지역적인 동원은 아니라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그곳에는 7000명이 넘는 지역 시민들이(이주노동자를 포함하여) 12월 18일의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12월 11일(또한 일요일이기도 하다)의 지역 집회에서의 지역민 참여자는 약 4000명 정도였다. 주최자나 주류 미디어, 정부는 이 결과에 많이 놀랐다. 거기다 설문 조사는 홍콩 사람들이 폭력적인 행동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한국 농민들의 대의에 연민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의 시위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의 이유에 대해서는 많은 설명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한국 대중 문화, 그들의 주류 미디어 전략이라는 의견들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것이 회의론이라고 생각한다. 대안적 출처에서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이 대안적 출처는 친구들의 p2p e메일, SMS 또는 직접 기술(direct account)이다.

예를 들어, 지나가는 선생이 17일 매우 객관적인 태도로 증언을 했다. 경찰들이 시위대를 몰아냈으며, 완차이의 봉쇄가 아주 어리석다는 말이었다. 그는 몇몇 시위대가 경찰에게 맞았다고 증언했다. 그의 이 메일은 널리 보여졌으며 최종적으로는 인미디어 사이트에 20개가 넘는 아티클 사이에서 증언 어카운트로 분류되어 포스팅되었다.

완차이에 있는 미디어센터에 위치한 인터넷 라디오 또한 중요한 출처였다. 청취자들은 시민 기자들이 경찰이 사용한 최루가스 때문에 기침하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시민 기자들은 완차이에 - 그곳이 실제 위험한 곳이든 아니든 - 있는 친구들과 함께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친구들끼리의 네트워크로부터의 증언과 정부 자료에 의존하는 주류 미디어 기사와의 거대한 차이는 난폭한 사람들이었다.

90년대 초반부터 뉴스는 더욱더 소비적인 아이템이 되어갔다. 심지어 사람들은 뉴스가 과장적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지루한 인생에 흥미진진한 화제들을 제공하는 것으로 뉴스를 소비한다. WTO 농민 문제에서의 윤리적인 측면은 일반 사람들의 기준을 건드렸다. 이는 소비적 아이템으로 여기기엔 심각한 문제였다. 사실에 대한 정부와 주류 미디어의 조작은 사람들의 윤리 의식의 기준선을 넘어섰다. 사람들은 18일 거리로 나아가 그들의 불만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정부와 주류 미디어를 모두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바로 사람들이 한국 농민들에 연민을 느끼지만 폭력을 지지하지는 않는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설문조사와 이의 해석은 틀린 것이다. 이 상황은 사실은 사람들이 “특정한 폭력 표현”을 지지한 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발견은 지역 사회운동에게는 감동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지난 운동은 사회 행동이나 불만의 표현에 있어서 아주 자기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정부, 주최자, 참가자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시위가 진정한 투쟁이나 민중의 힘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단지 보여주기일 뿐이라고 믿거나 행동하기 쉽다.


인미디어에 대한 WTO의 영향


행동 미디어 - 우리는 지금 행동 미디어 - 미디어 활동과 함께 결합된 운동 활동 - 를 개척하는 단계에 있다.

예를 들면 중국 대학 캠퍼스 내의 나무 절단 사건이 있다.


미디어 개혁 지점 - 어떻게 신자유주의화가 주류 미디어 노동자의 복지와 뉴스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가 ; 공익에 대항한 자원의 독점


유사 그룹들을 위한 네트워크 플랫폼 (새로운 사회 운동의 조직적 형성의 출현)


민중 미디어와 NGO 사이의 관계에 대한 반영 (해결이 안된 질문)


대안적 그리고 카운터 공공 영역


대안 미디어의 역할과 국제 연대


<질문>


▸ 대안 미디어에서의 대중성의 문제, 우리는 대중적이 될 수 있을까?

▸ 미디어와 사회운동과의 관계, 미디어는 도구인가?

▸ 지구적 대안 미디어와 지역적 대안 미디어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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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토론 : <3부> 국제연대를 위한 대안미디어 - 김정우

 

[토론문]


국제연대를 위한 대안미디어

: BASE211)의 경험(2001~2004년)


김정우 (진보네트워크센터)


들어가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은 점점 거세어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 등 불평등한 무역협정은 세계경제질서에서 선진국들과 자본의 지배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의 양극화 문제는 더욱 심해지고 있으며, 노동, 농업, 인권, 문화, 의료, 교육, 여성, 환경 등 모든 영역에서 전세계 민중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를 막아내기 위한 민중진영의 투쟁도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 자본의 세계화를 막아내기 위한 민중들의 국제연대 투쟁은 실제로 정부간 협상을 막아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1999년 시애틀 WTO 반대 투쟁, 2001년 제노아 G8반대투쟁, 2003년  칸툰 그리고 2005년 홍콩 WTO 반대 투쟁에서 이미 우리는 이런 투쟁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가운데 인터넷 대안 미디어들은 세계각지의 투쟁소식과 정보들을 전파하고, 국제연대를 조직하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독립미디어센터(IMC)를 비롯한 다양한 인터넷 대안 미디어들은 투쟁현장의 소식들을 사진과 영상 글을 통해서 생생히 제공하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진보진영의 주장들을 사회적으로 의제화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넷 대안미디어는 한국 민중운동진영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IMC와 같이 민중진영의 투쟁소식을 전하는 다양한 진보적 인터넷 대안언론들이 존재해왔다.

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한국 민중운동진영의 국제연대 활동은 언어의 문제와 역량의 한계 등으로 인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가운데 2001년 오픈한 BASE21은 영문 인터넷 미디어로, 민중운동의 국제연대를 위한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이 글은 BASE21의 경험을 소개하고 그 성과와 과제에 대해서 살펴보기 위해 작성되었다.


BASE21 창립 배경


국제연대 투쟁에 있어서 해외 민중들과의 신속한 정보교환과 소통은 매우 중요한 활동의 하나이다. 그러나 한국 민중들은 언어적인 한계로 인해서 국제적인 소통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 다양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적기 때문이다. 국제연대 활동가들도 대부분 한글과 영어에 한정된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다. 한글 사이트의 구축이나 한글을 통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을 잘 이루어지고 있는데 반해, 국제적인 소통을 위한 다양한 언어의 사이트를 구축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소수의 단체들만이 영문사이트를 구축해서 운영하고 있다. 영문자료가 만들어져도 자신들의 웹사이트를 통해서 출판하는 단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언어적인 한계는 한국 민중진영의 국제연대의 가장 큰 장애물 중의 하나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국제연대를 위한 영문 인터페이스와 미디어 플래폼을 구축하는 것은 이 부재한 상황에서, 영문 자료가 생산이 되더라도, 이런 자료들이 특정한 웹사이트를 통해서  사실상 아카이브는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대부분 한국 시민사회 단체들의 실정이다. 영문뉴스레터를 생산하고 있는 단체들 중에서도, 제대로 영문웹사이트와 아카이브를 구축해서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는 단체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2001년 진보네트워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선 한국 진보진영 각 단위의 투쟁 소식을 해외로 전파하고, 국제연대를 조직해 내는 미디어의 중요성을 피력하고, 영문 인터넷 미디어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시 참여연대, 민주노총,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인권운동사랑방, 성공회대학교아시아NGO센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국제연대 활동가들은 이런 제안을 받아들여 BASE21의 활동에 동참하였다. 또한 한국의 진보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국내외 자원활동가들이 BASE21 활동에 참여하였다.

 

 

△BASE21 메인 페이지 (http://base21.jinbo.net)

 

 

 

주요 활동과 성과


BASE21의 주요활동은 크게 기술적인 부분과 내용적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수 있겠다.

첫째 기술적으로 살펴보면, 일단 국내 인권, 문화, 환경, 노동 등 진보진영에서 생산하는 다양한 영문자료를 데이터베이스 할 수 있는 기술적인 아카이브 시스템과 검색서비스를 구축했다. 각 단체들이 생산하는 성명서, 논평, 연구자료 등을 BASE21로 모아내고, 외국인들도 한국 진보진영의 소식들을 영어로 쉽게 검색해서 찾을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했다. 또한 민중진영의 일상적인 투쟁뉴스 뿐만 아니라, 특정 이슈별 섹션을 구성해서 국내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속보뉴스, 성명서, 영상, 사진, 연구자료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해외에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자료들은 주로 메일링리스트를 통해서 정기적인 뉴스레터 형태로 제공되었다. 메일링리스트를 통한 소통은 발전노동자들의 투쟁이나 전쟁반대 투쟁 등 긴급한 투쟁사안에 대해서 국제연대 메시지를 조직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또한 해외의 진보적인 미디어들과 기사를 교류하고 사이트 링크 등을 통해서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갔다. 마지막으로 제도언론이 소외한(에서 찾을 수 없는) 민중진영의 진보적인 소식을 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둘째 내용적으로 살펴보면 크게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 미국의 군사패권주의 반대하는 민중들의 투쟁에 대한 정보를 비롯하여 노동, 인권, 환경, 정보운동 등 다양한 영역의 운동소식을 제공하였다. 2002년 초 42일 동안 멈추지 않고 진행된 발전노동자들의 발전소 민영화 반대투쟁섹션(http://base21.jinbo.net/base21hot/antiprivatisation.html)을 운영하면서, 노동자들의 투쟁 소식뿐만 아니라, 공공기업의 민영화가 불러올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 뉴스들은 각종 메일링리스트를 통해서 외국으로 전파가 되었는데, 해외활동가들로부터 한국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수 백 여개의 연대메시지를 조직해내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또한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한국 정부에 의해 탄압받고 강제로 추방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소식(http://base21.jinbo.net/base21hot/migrant.html)을 가감없이 제공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의 제도언론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그 사실조차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주노동자 투쟁 세션의 많은 내용은 실제 투쟁을 조직했던 평등노조 이주지부에서 보내준 자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전쟁방대/부시반대섹션2)을 통해서 2002년 부시 대통령 방한에 대한 반대투쟁, 미군에 의해 살해된 여중생 사건, 그리고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들을 알려내었다.


종합해보면, BASE21은 한국 민중운동 진영에서 소화해내고 있지 못했던 국제적인 소통을 위한 관문 역할을 했다. 또한 BASE21은 각 부문으로 흩어져 있었던 영문 소식들을 한곳에 모아놓음으로써, 국내 전반적인 투쟁소식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또한 해외의 노동네트워크(Labornet)과 진보통신연합(APC) 등 국제 진보적 네트워크와의 연계 및 독립미디어센터(IMC)를 비롯한 다양한 대안 미디어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였다. 해외 네트워크와의 연계는 BASE21읉 통해서 전파되는 것 이상의 효과를  발휘했다.

 

 

△ BASE21 전쟁방대/부시반대섹션(http://base21.jinbo.net/antibush)

 

BASE21에 올리는 영문자료들은 대부분 BASE21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자원활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가능했다. 이들은 현장에서의 소식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 뿐만 아니라 외국 진보적인 미디어에 한국의 소식을 알려내는 작업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BASE21 활동의 한계점


BASE21은 한국 민중운동의 국제연대의 관문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몇가지 큰 한계에 부딪치며, 결국 2005년 사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가장 큰 이유는 BASE21의 운영을 담당했었던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조직적인 한계였다. 진보네트워크센터는 사회운동정보화 및 정보인권운동의 전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것은 BASE21이 지향하는 국제연대를 위한 대안미디어의 전망과는 다른 성격의 운동이며, 진보네트워크센터로서는 사실상 많은 역량을 BASE21에 투여하기 힘들었다. 또한 앞에서 언급했었던 국내 단체들이 BASE21에 참여하고 있었지만, 대부분 자신들이 생산한 영문 자료들을 제공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BASE21의 영문 콘텐츠 생산과 번역활동에 참여하는 인자들이 초기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했지만, 그 활동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는 못했으며, 관련 업무가 진보네트워크센터로 집중되면서 그 업무를 감당하기가 힘든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네트워크센터는 민중운동진영에서 BASE21을 공동으로 운영할 수 있는 주체를 조직하기 위한 노력을 하였으나, 실제로 책임성 있게 BASE21 활동을 담보할 수 있는 주체를 조직화하기 힘들었다. 결국, 2001년부터 2003년까지의 3년여의 기간동안 BASE21은 상당히 많은 활동을 했고 또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상당히 성장을 하였지만, 진보네트워크센터라는 운영주체의 전망의 차이와 인적 역량의 한계와 BASE21을 책임성 있게 담보할 수 민중진영 역량조직의 실패로, 2004년 말 BASE21은 잠정적으로 중단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BASE21이 담보했었던 국제연대를 위한 미디어의 역할의 의미는 여전히 유효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지속할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의 내적, 외적 조직화에 실패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국제연대를 위한 대안미디어의 건설과 안정적인 운영을 위한 과제


최근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WTO를 앞세운 다자간 무역협정에서 지역간 자유투자협정 및 양자간 자유투자협정 등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자본의 강력한 확장을 위한 또다른 기제로 등장하고 있다. 지역간 경제블럭화에서 핵심은 국제시장에서의 패권을 누가 더 많이 장악할 것인가이며, 여기에서 민중들의 삶이 더욱더 착취당하고 억압당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한중일FTA, 한중일+아세안 FTA 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미 FTA 협상 시작을 공식적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특히 한미 FTA를 통해서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는 남북관계를 악용한 경제의 완전 개방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며, 한미FTA가 체결될 경우 한국뿐만 아니라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적인 패권에 우위를 선점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FTA의 체결은 97년 IMF 이상의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며, 사회적인 안전망 붕괴 및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경제블록화와 FTA 등에 맞선 한국 민중들의 국제적인 연대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중들의 국제적인 소통과 투쟁 소식의 전파는, 국제연대를 조직하기 위한 기본적인 작업이며, 한국의 경우 국제연대를 위한 영문 미디어의 구축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최근 과거 BASE21이 했었던 활동을 다시 살려내자는 논의들이 국내 활동가들에서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것이 BASE21이 될 수도 있고, 또 다른 형식의 미디어가 될 수도 있다. 국제연대 대안미디어 건설을 위한 몇가지 단편적인 과제들을 제시하면서, 이 발제를 마무리하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미디어를 운영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주체를 어떻게 세워낼 것인가이다. 그 주체가 미디어 활동가들이 될 수도 있고, 민중운동진영 내부에서 세울 수도 있다. 내용적으로는 부문운동과의 긴밀한 연대를 구축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한국의 상황을 외국에 알려내고, 나아가 외국의 상황을 한국에 알려낼 수 있는 역할을 알려내는 안정적인 번역활동가들을 조직해 내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각각의 부문운동들이 실제 영문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질 수 있도록 조직해 내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민중들에게 언어적인 한계는 국제연대의 마인드를 키우기 위한 시도 자체를 억압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블로그나 트랙백, RSS 등 다양한 신기술을 우리의 네트워크를 확장하는데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을 세우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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