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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2]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과 미디어운동의 과제 - 조대희

 

[발제문 2]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과

미디어운동의 과제


조대희 (미디어문화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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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토론 : <2부> 민중미디어, 제3의 대안방송 개요

 

집중토론 : 변혁의 세계화와 대안 미디어

<2부> 민중미디어, 제3의 대안방송


○ 사회 : 이종호 (인터넷언론네트워크, 울산노동뉴스 편집위원장)

○ 발제 : 김이찬 (한독협 운영위원장)

○ 토론 : 하주영(공동체라디오연구모임 ‘씨알’) / 이진행 (미디액트 정책실) / 에반 헨쇼-플라쓰(IMC)



<발제문>

방송영역에 대한 급진적 개입의 필요성과 과제

- 김이찬 (한독협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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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방송영역에 대한 급진적 개입의 필요성과 과제 - 김이찬

 

[발제문]

방송영역에 대한

급진적 개입의 필요성과 과제


                                                     김이찬 (한독협 운영위원장)



1. 급진적 세력은 방송구조의 민중적 재편 혹은 창조의 전망을 세워내야 한다


이 글의 목적은 공통점이 있지만, 이질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세 부류의 주체 즉, △사회운동 각 영역의 급진적 운동가들 △급진적 미디어 운동가들 △대안적 사회를 추구하는 독립영상 활동가들이 현행방송구조에 개입할 필요성과 그 방법을 놓고 치열한 논쟁과 고민을 시작할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세 주체들이 아래의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받아 안고 그에 대한 자기태도와 전략을 점검하길 기대한다.

□ 어떻게 자본제의 악폐를 넘어설 사회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할 것인가?

□ 지금 매스미디어로서의 방송을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첫째, 급진적 운동가들은, 향후 변혁운동에서 미디어가 특히 시청각 미디어와 그 소통의 기제로서의 방송이 매우 중대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라는 문제의식.

둘째, 2000년 대 이후, 미디어 환경의 급변과 함께 등장한 급진적 미디어운동가들은 개별사안에 대한 미디어 운동에 헌신적임에도 불구하고, 총체적인 사회변혁의 전망 속에서 자신의 활동의 의미를 재점검해내고 있는가라는 문제의식.

셋째, 독립영상 활동가(주로 제작자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확산과 신자유주의적 경향의 강화에 따른 ‘영상 콘텐츠의 상품화’ 경향, ‘미디어구조의 은밀하고 집요한 상업주의적 재편 전략’에 맞서기 위한 자기 계획을 갖고 있는가. 특히, 현대한국사회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방송 미디어에 대해서 실천적 개입전략을 세우지 못하고, 자족적인 자기표현 운동에 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문제의식


필자는 10여 년간 독립영상운동을 해 온 한국독립영화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사회의 변혁을 바라는 영상제작자로서 약간은 다른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 주체들이 위와 같은 두 질문을 놓고 활발한 토론과 실천을 벌여나감으로써, 자신과 상대의 활동의 맹점들을 점검하며, 서로의 경험과 상상력을 증폭시키고, 종국적으로 변혁운동의 전망과 방송미디어에 대한 전술이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구체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위의 세 주체를 포함한 ‘급진적 세력이 방송미디어(특히, 주류 방송영역)에 어떻게 개입해나갈 것인가?’에 관 논쟁하고 실천의 방향을 구상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2. 기존의 미디어운동에 대한 반추 


(1)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구조 개편의 중요성에 둔감했던 변혁 운동세력 


1980년대, 아직 콘텐츠의 제작수단이 보편화되지 못하고, 시민사회가 성장하지 못한 시기에 한국의 방송은 군사정권의 나팔수로서 그 기능에 충실했었다. 이 무렵 소위 ‘민주화운동’을 하던 이들에게 “방송 미디어를 사회변혁운동에 복무하도록 재구성하겠다.” 는 상상력은 아직 불가능했다. 차라리 파괴되어야할 대상으로 생각했다. 실제로 광주민중항쟁시기 성난 민중들은 당시 지상파 전국방송이었던 MBC에 불을 질렀다. 86년 무렵에는 KBS 시청료 거부운동을 통해서 국가기구가 장악하고 있는 방송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즉 당시의 개혁운동 혹은 혁명운동의 주체들은 ‘자신을 시청각미디어의 주체’로 정립하고 이를 운동의 기제로서 활용하겠다는 적극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1990년대 초, 한국은 철저한 사상통제의 상황으로서 공산주의가 금기시되던 상태였다. 변혁운동 세력이 이제 막 유통되기 시작한 사회주의 서적 등을 접하며 자본제 이후의 사회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했다. 또 민중운동진영의 부르주아 정치영역에서의 정당운동의 실험 또한 패배로 끝났다. 이후 한국에서는 ‘국가단위 혹은 전 세계적 차원에서 한반도의 공동체를 어떻게 재구성해야하는가?’와 같은 거시적인 담론은 후퇴하였다.

이전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 환경에서 시민사회가 성장하여 소위 시민운동이 활성화되고, 각 부문에서 개혁투쟁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많은 운동들이 ‘자본제-민족-국가’ 라는 삼각동맹의 틀을 넘어서는 전망을 갖지는 못했다. ‘어떻게 자본제의 악폐를 넘어설 사회를 총체적으로 재구성해야하는가?’와 같은 거시적 고민이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꼼꼼히 점검되지 않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주류 방송영역은 한국사회의 IT산업의 기술적 약진과 호응하며, 신속히 상업화의 길로 전환하였다. ‘문화를 산업화 하겠다’는 슬로건, 혹은 욕망은 자본과 관료의 연합에 의해 생산 유포되었고, 최근 들어서는 자본이 뉴미디어 분야에서 이윤창출의 기제로 시청각 미디어를 재빠르게 잠식하여가고 있다. 이를 저지하여야할 개혁운동세력과 공동체 운동세력은 이러한 흐름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주류미디어의 모든 방영물은 ‘상품’이다. 이윤을 위해서 제작되며, 이윤을 위해서 유통된다. (양적으로는 미미하지만 질적으로는 혁신적인 함의를 지닌 ‘퍼블릭 액세스’ 부문만 제외하고 - 퍼블릭 액세스라는 이질적(?) 콘텐츠 수급구조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패러다임에 충실한 관료들에게 매우 낮선 구조다.)

사회의 변혁을 꿈꾸는 각 부문의 활동가들은 자신이 속한 운동영역에서 분투하고 있지만, 미디어, 특히 ‘방송에 대한 태도’는 20여 년 전의 상황으로부터 크게 진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방송구조에의 개입과 재구성’ 문제를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고, ‘자신이 속한 민중운동진영의 일이 아니다.’는 식의 분절적 사고를 하고 있다. 

물리적 조건은, 특히 2000년대 초반 이후, 급속하게 변하고 있으나, 변혁운동의 주체들의 그 에 대한 해석은 지체되고 있다. 이제 방송미디어에 대한  착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변혁운동가들의 슬로건은 바뀌어야한다, 주류방송사들을 향하여 ‘제대로 민중들의 삶을 방송하라!’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민중들)이 직접 말하자!’, ‘민중의 방송을 만들자.’ 로. 나아가 민중을 방송의 주체로 세우고, 그것을 실현시킬 조건을 진지하게 탐색해야한다. 


(2) 체제내의 언론 민주화운동 및 시청자 운동의 한계


90년대 초기부터, 정치권력의 입김을 배제하려는 주류방송사 내부에서의 개혁의 움직임은 있어왔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안착이라는 과제에 머물러 있었을 뿐, ‘자본제의 극복’이라는 전망 속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들은 ‘권위주의적인 방송사 내부관행의 개혁, 혹은 개량, 정치권력의 노골적인 간섭에 대한 저항, 방송사 소속 직원들의 경제적 지위향상, 언론인으로서의 발언권 향상’과 같은 활동에 집중해왔다. ‘민중을 미디어의 주체’로 세운다는 관점은 결여되어 있었고, 군사정권시대에 재조직된 이후로 한번도 그 의미가 점검되지 않은 대의제적 (사실은 특권적이고 독점적인) 방송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발탁된 소수의 견해로만 방송이 이루어지는’ 상황을 혁신하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시청자운동과 모니터링 운동의 담론은 ‘언론의 자유’, ‘알 권리’ ‘시청자의 주권’과 같은 개념이었다. 이러한 전통적인 개념들이 내포하는 의제들은 물론 지금도 방송의 공적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유용한 의제들일 수 있다. 하지만 ‘시민의 자유 / 권리’와 같은 개념은 아직 시민사회의 성장이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방송구조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던 정치권력과 이와 유착된 자본의 개입을 방어하기 위한 맥락에서 제기된 수세적 관념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방송구조의 현상 유지’라는 것 이상의 운동의 지향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와 같은 논리에 따르면, 대다수의 민중은 여전히 ‘수용자’ 혹은 ‘시청자’이지 ‘발언의 주체’는 아니며, ‘소수 독점의 전업적 미디어기업 종사자의 취재의 대상일 뿐’이다.

 

(3) 독립영상운동진영의 상황  

독립영상진영1)의 정치적 가시화는 1995년 무렵이었다고 생각된다.

‘주류미디어의 거짓 선전’, ‘민중의 삶과 운동에 대한 철저한 함구 또는 왜곡’, ‘독립적인 영상 콘텐츠의 생산과 소통에 대한 탄압’ 등이 당시의 활동가들에게 ‘다른 목소리의 자율적 소통’ 이라는 이슈를 외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자유주의적 영상제작자들까지 자극하는 결과가 되었고, 이를 통해 소위 ‘독립영화진영’라고 불리는 세력이 사회 일각에 등장하게 된다. 이들은 주로 학교나 노조사무실 등 공동체들의 비영리적 상영공간에서 소통을 했는데, ‘영상물을 만들고 소통하는 데 국가나 자본 따위의 개입과 검열은 필요 없다’는 (지금으로서는 당연하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생소했던) 관념을 탄생시키고, ‘체제 밖에서 시청각미디어를 소통한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당시로선) 진보적 시도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의식 또한 급진적이었다고 보기 힘들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후 한국에서 자본제가 세련화, 유연화 되어가면서 장차 시청각미디어분야를 상품으로 포섭해나갈 것에 관한 예상을 못했다. 10년이 지난 요즈음, 미디어 콘텐츠가 급속도로 ‘상품화’하고, 미디어 소통구조(극장과 방송사들)들뿐 아니라, 미디어교육체계나 미디어 센터 등과 같이 공공적으로 마련되어야할 분야에까지 기업들이 이윤을 노리고 개입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흐름을 수수방관하는 상황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사회의 성격과 운동의 지형도가 급속히 변해온 지난 10년 동안 변혁운동가들과 독립영상제작자들 공히, 자신의 영역에서의 헌신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급진적 관점에서 ‘방송구조를 어떻게 민중적으로 재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숙성과 실천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서, 독립영상운동의 지형도는 다소 변화를 겪고 있다고 생각된다.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전통적인 독립영상제작자(활동가라기보다는!)들이 주로 제도권과 호흡을 맞추고 있는 반면,  미디어 구조의 혁신을 꿈꾸는 새로운 미디어 활동가들, 전통적인 상영관을 고집하지 않으며 운동의 매개로서 미디어 콘텐츠를 활용하려는 공동체 활동가들, 자본권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신의 가치관을 구현하려는 새로운 독립영화제작자들이 등장하여 활동하고 있다(그러나 시청각 미디어의 감상과 활용에 익숙한 신세대 중 이를 변혁적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활용, 또는 표현하려고 독립영화진영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할 수 있다).


(4) 미디어 분야의 공적영역의 확장에 대한 관심과 개입의 필요


2000년 대 들어서 급진적 세력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관련해서 주목해야할 사실 중의 하나는 미디어분야에서 관료들이 주도하거나 개입하는 ‘공적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지역도시들에 갑작스럽게 미디어센터를 설립한다거나, 공동체라디오의 설립을 지원한다거나, 미디어 교육에 목소리를 높인다거나, 공공적 상영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 일 등이 그것이다.

이는 아마도 두 가지 정도의 계기에 의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첫째, 정부기구들이, 소외된 노동과 계급착취라는 본질적 문제를 은닉하고, 온정적 얼굴을 가진 자본제로 치장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혹은 ‘문화 다양성 지지’등과 같은 가치들을 쉽게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  둘째, 관료들도 전지구적 차원에서 미디어가 상업화, 민영화되는 것을 알고 있고, 한국 사회도 그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향후 ‘공공기관’의 외양을 쓰고 있는 자신의 존재기반이 취약해질 것을 대비한 일종의 보험일 가능성이다. 그래서 이런 일들의 특징은, 소위 사회적 컨센서스 형성 등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생략된 채, 서구국가들의 오래된 모델을 단순 이식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자본제-국가 연합의 일정한 양보 혹은 지배전술 변화에 의해 열려진 이런 공간들이, 이후의 변혁운동의 확장을 위해 중요한 계기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급진적 변혁운동 세력과 독립영상운동가, 미디어 활동가들이 이처럼 ‘미디어 분야에서의 공적영역’이 확산되는 것에 대해 능동적인 대응과 개입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변혁운동에서 어떻게 지렛대로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을 세우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5) 주류방송 영역에서의 독립영상에 대한 출구의 형성


2000년대 중반기에 들어, 대안적 사회에 대한 탐색을 암시하는 콘텐츠들이 종종 방송사 내부구성원들의 자체제작 혹은 하청제작에 의해 소개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양성’이라는 화두 하에 개별 콘텐츠 차원에서 암시되는 것일 뿐, 방송사의 전략적 변화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그것은 방송심의제도라는 검열기제의 관리 하에 있을 뿐 아니라 방송사에 미치는 정치세력과 자본의 영향력에 따라 그 진폭이 크다고 할 수 있다(사장에 누가 선임되는가? 편성국장이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가? 등에 따라, 또는 방송사 내의 보수적인 흐름과 진보적 주체들이 역학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그 진동은 결국, 주류방송미디어가 그 자체로 권력화 되어있는 현재의 구조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이다. 즉 ‘발언은 양심적인(?) 방송사직원이 하고, 대다수의 민중은 듣는’  독점화된 방송구조 안에서이다.

한편 극히 일부분이고 산발적이긴 하지만 외부의 제작주체에게 콘텐츠 방영의 기회를 열어놓는 장도 마련하고 있다. 이 또한 방송사의 태도변화에 기인했다기보다. 부르주아적 민주주의의 확장 속에서 독점적 방송구조라는 비판을 모면하기위한 구색 맞추기 차원의 조치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런 프로그램들 역시 현재의 ‘자본제-민족-국가’시스템에 대항하는  가치관을 담은 독립제작콘텐츠가 방영될 기회를 좀처럼 제공하지는 않는다. 

작년에도 1987년의 대통령선거 당시의 부정투표함 사건을 다룬 독립영상이 KBS의 ‘독립영화관’이란 프로그램에 구두계약까지 했다가 방영 취소되는 사례가 있었다.  EBS의 경우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외부의 독립제작콘텐츠를 방영한다고 했지만, 첫째, 방영물의 선정은 방송사가 하고 외부의 참여를 배제하며, 둘째, 콘텐츠가 방송심의 규정을 벗어나거나 민감한 주제를 다룰 경우 당연히 채택을 할 수 없고, 셋째 수급계약에서 거의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계약서를 강요하고 있어서 국내 독립영상제작자의 참여는 저조한 상황이다. 이러한 계약 관행은 한 방송사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 방송사의 문제이다.

그런데 독립영상진영이 변혁운동의 주체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대안적 사회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이를 통하여 주류방송의 변화에 대해 해석을 해내고, 적절한 개입전술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 주류방송과의 거래관계가 ‘합리적(?)’으로 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방송사가 독립제제작자의 지위를 인정해주고, ‘합리적인’ 금전적 보상을 한다고 하더라도,  방송심의기구와 방송사의 검열을 피할 수 없으며, 동시에 독립컨텐츠가 ‘다양성’으로 치장하고픈 주류미디어의 ‘문화 상품’으로 거래된다는 이상의 함의를 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이는, 양적으로는 미약하지만, ‘변변한 공공상영관 하나 없이, 존재하고, 유지하는 것’으로 대안적 사회체제로의 지향을 암시해왔던 ‘독립영상진영의 자본제적 주류방송 속으로의 투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류방송사에 ‘독립영상’이 방영되는 경우가 생겼다고 해서, 이것이 곧 변혁적 세력의 선전과 활동의 장이 방송사에 마련된 것으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주류미디어는 여전히 ‘독립영화(독립영상)’의 개념을 탈정치화, 탈맥락화 하여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호감을 갖는 ‘문화적 다양성’ 이란 범주 안에서, ‘잠재적인 문화 상품’으로 포섭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독립영상진영과 주류방송의 접촉면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특히 뉴미디어의 등장에 따라, 국가가 아니라 기업이 주도하는 방송미디어가 폭증하고 있다. 현행 주류방송의 제도와 관행에 불합리한 점이 많기 때문에 개입해서 확보해야할(또는 할 수 있는) 영역도 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러한 활동은 좀처럼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  


필자가 이 글을 작성하면서 드는 또 다른 질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변혁운동 내에서나 독립영상진영에서 한번도, 제대로 토론되지 않았던 주제라 생각된다.

미디어의 지배력이 막강한(어쩌면 정치권력이나 경제권력의 영향력에 필적하거나 넘어서는) 현재의 지형도에서, ‘변혁운동진영의 방송미디어 전략이 무엇이냐?’하는 점이다. 만일 별 생각이 없다면, 기존의 ‘주류방송사들이 체제의 한계를 넘나들며 변혁적 세계관을 (때때로 알아서) 설파’해주기를 기대하는가? 아니면 ‘방송미디어 없이도 변혁은 가능하다!’고 확신하는가? ‘자신의 방송을 공세적으로 확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전통적인 언론개혁운동의 몫이기 때문에, 뒷전에서 구경하면 되는 것인가?’

90년대부터 지금까지 현실 부르주아 정치영역에서 자리잡아가고 있는 주류 미디어운동은 체제내의 자유주의적 개혁운동의 성격이 짙다. 그리고 그 결과, 자본의 유연적 지배체제가 마련되어가고,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조응하면서, 주류방송 비평영역의 파트너가 되어가고 있다.

그럼 ‘자본제-민족-국가’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를 꿈꾸는 변혁운동세력은 방송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 필자는 지금부터라도 위의 두 질문을 화두로 안고, 변혁의 구상을 탐색하면서 동시에 ‘매스미디어로서의 방송에 대한 대도를 전략적으로 재구성’ 하고, 실천적 훈련과 개입을 해나갈 것을 제안한다.      

(6) 대안적 미디어구조의 등장에 대한 점검, 그리고 우리 자신의 훈련이 필요하다!


지난 10여 년간 독립영상 해 온 한국독립영화협회 소속 활동가인 필자는, 위와 같은 인식 속에서 우리 조직이 방송구조 개편에 관여해온 세 가지 사안들을 간략히 소개하려고 한다.


a. 퍼블릭 액세스라는 낮선 콘텐츠 수급구조의 등장(특히 공영 지상파에의 설치) 

b. 퍼블릭 액세스 채널의 등장(RTV)

c. 소위 편성전문채널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에의 개입


이 세 가지 사안들은 2000년대 들어 생겨난 것으로 여기에서는 논의의 지점을 형성하기 위해 간략하게 성과와 과제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a. 지상파방송사에의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 설치와 및 이의 변용을 막기 위한 투쟁


한독협 제작자들은 2002년과 2005년 KBS에 설치된 퍼블릭 액세스 프로그램인 [열린채널]에 대한 대응을 조직하고, 많은 연대단체 중 가장 적극적으로 이 싸움에 참여했다. 이 과정에서 확인하고 또한 필자가 가진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 첫째, 제한된 시간이지만, 이 곳에서의 방송이 실정법의 강제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참여하는 주체의 저항이 약할 때,  얼마든지 그 내용이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관한 두 세가지의 가지의 사례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2002년 독립영상제작자 이마리오감독이 만든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라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불방조치를 취했는데,  그 이유는 ‘개발시대의 독재자 박정희의 무덤이 비춰지면 안된다는 것. 제목의 찢어라 라는 표현이 강하니까 파기하라 정도로 바꿀 것’ 등이었다. - 이는 2년 여의 법정공방이 있고, 독립제작자들과 미디어 운동가들의 조직적 항의와 운영구조 개편에 개입한 후에 제작자가 원하는 대로 방영되었다. 


2005년에도, 하이닉스반도체 노동조합에서 만든 [우리는 일하고 싶습니다]가 KBS 심의실 에의해 방영거부되었다가 나중에 방영된 사례가 있었고,  삼성화재와 고 구본주화가측 간의 공방을 다룬 [우리모두가 구본주다]라는 독립영화가 방영되지 못하다가 한독협제작자들과 퍼블릭엑세스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방영된 적이 있었다.  - 이 사건을 통해서 발견하게 된 것은, 재벌기업이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 인식되어온) 지상파 공영방송사인 KBS에 강력한 외압을 행사하고 있고, 방송사 관련자들은 그에 휘둘리거나 순응한다는 것이다. ) 


위의 제작자들은 모두 미디어운동세력과 관계를 맺고 있어서 저항을 조직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판단된다. 그보다 터무니없는 이유로 묻혀버린 사례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 둘째, 관료진영의 힘만큼이나 주류미디어가 자체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관성이 막강하다는 것이다.  (주류미디어 종사자들은 ‘퍼블릭 액세스’가 자신들의 독점적인 지위를 위협한다고 느낀다.) 따라서 방송사내의 개혁적인 단위들도 이에 대해 거리를 두는 경우가 많고, 때대로 이를 ‘콘텐츠 하청제작’ 정도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 셋째, 보다 큰 위협은, 이것이 대중들에게, 혹은 산업적 활동으로만 바라보는 미디어분야 종사자들에게, 시민민주주의 하에서의 자유주의적 문화활동, 혹은 탈정치적 여가 활동의 장쯤으로 여겨져, ‘대안적 상상력의 민중적 소통구조’라는 퍼블릭엑세스의 함의가 변질되고 희석될 가능성이다.


․ 따라서 퍼블릭액세스 구조를 민중진영의 새로운 세계관을 확보하는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차별적인 참여, 혹은 감시보다는 보다 계획적이고 조직적인 접근과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방통 융합이 가속화되고 윈도우들이 폭증하면서 (지상파, 위성, 케이블, 디엠비, 와비브로, 디엠비, 인터넷 tv 등등) 소위 ‘다양하고 차별화된 콘텐CM’를 확보하려는 주류미디어 기업들의 경쟁도 가속화될 것이다. 이들은 퍼블릭액세스의 함의을 읽지 못하지만, 자신들의 기업활동의 연장으로 ‘민간에 제작한 콘텐츠’ 에 관심을 보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공동체 미디어운동이 확장된다면, 이들 또한 ‘지상파/케이블’이라는 전통적인 방송 영역에 제한되지 않고, 공동체운동과 다양한 매체를 넘나드는 활동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주류방송 안에 ‘퍼블릭 엑세스 구조(혹은 이를 흉내낸 구조)’는 앞으로 계속 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b. 시민방송 RTV - 명실상부한 ‘퍼블릭 액세스 채널’ 로 만들어내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위성채널’로 출발했다가 최근 ‘케이블 채널’이 된 RTV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개입할 것이 필요하다. 이는 주류방송영역과 공공영역의 중간쯤에 설치되어 지금 위상 다시잡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까지는 RTV는 ‘공공영역으로서의’ 역할, ‘퍼블릭엑세스’ 채널로서의 위상을 민중진영과 시민사회에 보여주지 못했다.   

2006년 초, 설립 후 2년 이상 그 방향과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던 시민방송은 혁신의 계기를 맞고 있다. 여전히 풀어가야 할 문제들은 산적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지점은 다음과 같다.

내부주체들이 이를 ‘자본제 체제내의 기업 활동’으로 사고하는 것을 넘어서, ‘공공영역의 개척활동’ 이라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그에 따라 활동 방향 및 방식을 혁신하는 것,  외부의 민중운동진영과의 연대에 주도적으로 나설 것, 관료기구들과 미디어기업들이 ‘미디어 상품화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는 현재의 상황 속에서, 변혁적 사고를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공공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관료기구들로부터 적절한 협력을 획득해내는 것. RTV를 ‘상품’으로서의 콘텐츠 수급창구가 아니라,  대안적 콘텐츠를 통한 민중들의 소통의 장으로서 위치지우는 것, 나아가 다른 분야의 주체들에게 상업적 활동이 아니고도 그런 건강한 소통행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등이 중요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모든 과정은 (아직 아무도 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력을 동반한 실험, 그리고 이를 감행할 비전과 의지를 필요로 한다.  콘텐츠의 제작방법, 수급방식, 제작주체와 관계 맺기, 평가 시스템 구축 등 전 분야에 걸쳐 자본제의 기업활동으로만 사고하는 전통적 방송시스템과의 차별화를 위한 실험과 밑그림 그리기가 지속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일은 방송사 내부주체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과정을 방송사 내부의 문제로 치부하고 방관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될 경우, 혁신적 시도는 기피되고, 지난 시기와 같이,  체제 안의 ‘기업조직’으로 전락해버릴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이 방송미디어분야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우연적으로나 계획적으로) 가속화될 것이기 때문에,  변혁운동진영도 이에 대한 훈련과 실험, 준비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즉 변혁운동진영은 이와 같은 공적영역에 개입하여,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해내는 활동에 훈련되어 있는가?’를 냉정히 성찰할 필요가 있다. 

불과 10년 전, ‘등록하지 않고. 영상물을 상영한다’는 이유로, 독립영상제작자가 구속되고, 인권운동가가 수배되며, 공권력에 의해 상영장이 폐쇄되곤 했었다. 지금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고, 혁신이 필요하지만, 변혁의 관점과 상상력을 배양할 방송국이 있다. 그런데 실험은 불가피하다. 그것이 ‘그들만의 리그’로 끝나지 않게 유도하는 것이 필요하며, 참여를 통해   우리 자신을 훈련하며,  나아가 ‘민중방송국’을 구상해낼 단초를 얻어야한다.  


c. 소위 문화관광부의 '편성전문채널‘의 건설을 둘러싼 해프닝과 그 교훈


2004년 문화관광부는 전국 지상파 방송사를 목표로 하는 ‘편성전문외주채널'(가칭)이란 것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독립영상진영을 포함한 진보운동진영이 전혀 대비나 예측을 못했던 일이었으므로), 혁신적이지만 돌발적인 상황전개였다. 한독협 방송 TF는 이 연구작업에 6개월 여 동안 관여한 바가 있다.  그러나 2006년 현재, 이 계획은, 문광부와 방송위원회 등 관료기구들간의 패권 다툼, 지상파 방송기업들과 독립제작사(방송콘텐츠 외주제작기업들)간의 경제적 손익을 둘러싼 신경전속에서, 그 진보적 함의는 충분히 논의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   


한독협 방송 TF는 당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으로 이 연구작업에 참가했었다.


“ 한국사회에서 방송기업 혹은 방송국의 건립이 민중의 요구와 필요에 의해 기획되고 준비된 적은 없었다. (군사정권시대에 만들어진 지상파 방송국들이 개혁되지 못한 채 독점이 유지되고 있고 90년대 중반 케이블TV의 등장과 함께, 미디어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자본의 개입이 활발하게 되었다.) 그 어떤 과정에도 민중진영의 개입은 없었고, 무관심했으며, 불가능했다.'  문광부의 초안은 여러 가지의 근본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또 그 채널의 성사여부와 관계없이, 독립영상제작자들이 참여하여, ‘시민(민중)의 필요와 참여에 의해 방송국을 만들어라 !’ 라는 주장을 늦었지만 펼칠 수 있는 장으로 여겨졌다.


이때, 우리는 [참여와 다양성 강화를 위한 독립채널 설립제안]이라는 문건을 작성하였다.2) 이러한 실천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독립영상제작자들의 미디어환경에 대한 생각을 정돈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주장이 주로 동원한 관념들은 다음과 같다.


‘영리활동의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의 소통기제로서 방송을 사고하고 기획할 것’

‘방송의 공공성의 내용을 점검하고, 이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규제 혹은 진흥을 목표로 하는 관련(공공)기구들의 역할이라는 것’

‘민주주의시대 공공성의 핵심은 시민사회(다수대중)의 참여와 다양성의 보장이라는 것’

‘새 채널을 만들려면, 콘텐츠의 기획/생산/편성/소통구조/ 평가구조등 전 과정에 노조/사회운동단체/지역공동체 등 시민사회의 각 주체들을 (대상 혹은 구경꾼으로서가 아니라) 채널의 주요 추진 주체로 끌어들일 것’ 등이다.    


이러한 관념들은, 자본의 탐욕적 운동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지는 못하겠지만, 공적기구로서의 공적영역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하는 관료집단(문광부/방송위 등)에 담론의 영역에서나마 (무시하면 안 될)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사례 (‘독립영화진영이 관주도의 방송사 설립을 위한 정책토론과정에 참여하여, 공공성을 유도하고, 민중진영의 개입공간을 마련하려고 노력한 사례’ ) 가 변혁운동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또는 그래야하는지) 필자도 명확하게 상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몇 가지 상상은 가능하다.


‘ 관이 아니라 변혁운동 세력이 방송국을 기획할 수는 없겠는가?

‘ 자본제-민족-국가라는 틀을 넘어서기 위해 각 부문운동에서 꼬뮌적 실천을 하는 공동체 운동세력들의 소통과 연대, 토론과 모색의 장으로서 방송국을 기획할 수는 없는가 ?’, ‘ 개혁투쟁과 꼬뮨적 실천의 지속적이고 유기적 선순환 연결망 혹은 다중적 꼬뮌적 실천의 장으로서3) 방송국을 기획하는 것은 어떤가? ’

‘이런 류의 방송국의 건설하는데, 그렇게 많이 시간이 걸릴까?’  


지금 수준에서 필자가 확신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이는 기술과 미학의 실험을 해왔지만, 제작자집단의 정체성이 강한 한독협, 혹은 일부 영상운동가들의 연대만으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맹아들은 있고, 이를 추진할 계기는 분명히 온다.’ 

‘ 이는 변혁적 사회운동세력을 아우를 수 있는 전망의 공유와 연대 없이는 불가능할 것’  



3.  통합적 사고와 실천의 관점을 갖자


앞서 말한 사례들은 분명 역동적인 사회운동에 따른 국가기구들의 태도변화를 변화를 시사한다. 하지만 다시 한번 짚고 싶은 것은 이와 같은 변화가 사회변혁운동주체들과 미디어운동 주체들의  민중적 미디어 구조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투쟁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권위주의적이던 국가기구들을 유연한 형태로 변화시키려는 자본과 자유주의 세력들의 필요에 의해 우연적으로 이루어진 면이 크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준비된 역량을 가지고 위의 사안들에 능동적이고 계획적으로 대응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보다는 ‘퍼블릭 액세스’의 진보적 함의를 무력화시키고, 이를 지금의 체제 안으로 순화시키려는, 관료-자본제 연합의 시도가 가시화된 다음에, (그것도 각 사안들에 대한 유기적 연관을 채 해독하지 못한 채) 약간 뒤늦게 저항을 조직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사회의 변혁을 꿈꾸는 세 주체들, 변혁운동가들/ 미디어 활동가들/ 대안적 독립영상 제작자들에게 다시 다음과 같은 사안을 고민할 것을 제안한다. 


○ 미디어 특히 방송에 대하여, 그 구조자체를 (하나의 프로그램, 혹은 하나의 사안, 하나의 방송사에 대해서가 아니라 구조 그 자체를)  변혁적 사고로  분석하기.

○ 방송영역에서 어떻게 민중적 소통구조를 만들어낼 것인가  고민하기.

  (무엇을 개혁하고 어디에 개입하며, 무엇을 확보할 것인가)

○ 체제하에서의 지위 개선운동의 일환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운동의 구상 속에서 현재의 조건들을 감안하여 판단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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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토론 : <3부> 인터넷과 대안언론 개요

 

집중토론 : 변혁의 세계화와 대안 미디어

<3부> 인터넷과 대안언론 


 


○ 사회 : 이종호 (인터넷언론네트워크, 울산노동뉴스 편집위원장)

○ 발제 : 까를로스 마르티네스(Rebelion 편집장), 오이완 람(Inmedia 공동편집자), 유영주 (참세상 편집장)

○ 토론 : 마이클 앨버트 (Znet) / 김정우 (진보네트워크센터)


<발제문>

대륙과 국경을 넘은 스페인어권 인터넷 진보언론

- 까를로스 마르티네스(Rebelion 편집장)

아시아 진보매체 형성의 중요성

- 오이완 람(Inmedia 공동편집자)

뉴미디어 시대, 인터넷 진보언론의 역할

- 유영주 (참세상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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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1]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정보 독점에 저항하며 - 까를로스 마르티네스

 

[발제문 1]


디지털 미디어를 통한 정보 독점에 저항하며

                            

                                       까를로스 마르티네스 (Rebelion)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리주의에 의하면 권력은 입법권, 행정권 그리고 사법권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현대 국가들은 여전히 입헌군주제에 근거한 이러한 교리 하에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삼권 이외에 경제력과 미디어의 힘과 같은 권력의 존재는 부정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경제적 권력은 이미 오래 전 매체를 접수하였다. 집결된 이 두 개의 권력 앞에서는 정치권력은 꼭두각시 인형들처럼 휘둘리거나, 아니면 이러한 과정의 자연스러운 단계의 현상으로서 경제적 권력은 직접적으로 다른 권력들을 그의 지위 하에 둔다. 이탈리아의 베글루스코니의 선출은 경제 ․ 미디어 ․ 정치권력의 결합의 가장 명백한 사례이다.


매스미디어의 경우를 분석해보면, 권력과 시장 또는 청중들을 얻기 위한 경쟁으로 인해 분열되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스미디어는 자본주의 경제의 지령을 헌신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것 관찰할 수 있다. 이러한 종속은 거시경제적인 안정성 과 성장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쉽게 적용될 수 있겠지만, 경제적 신자유주의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는 1944년 브래튼 우즈의 협약의 지령이 실패한 곳에서는 그다지 쉽게 응용될 수 없다.


미디어 사이에는 단일사상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극화’된 세상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이라는 유일한 세계적 강대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워싱턴에 본거를 둔 유일한 정치 ․ 군사적 정부와 금융시장에 정착한 실질적이자 경제적인 권력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에트 연방이 사라진 이후 세계체계의 결함의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또 다른 국제적 권력은 없다고 볼 수 있다.  

세계화된 체제 아래 굶주림, 질병, 억압 등은 소멸되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의 증대는 계속되고 있다. 국제연합개발계획의 2005년 인간개발보고서1)에 따르면 “조사된 73개국들 중 53개국(전 세계 인구의 80%의 이상)은 불평등의 증가를 겪었고, 그리고 단 9개국(전 세계 인국의 4%)만이 불평등의 감소를 누렸다. 이러한 평가는 높은 성장률이나 낮은 성장률의 상황에 해당된다.”


객관적인 자료나 확실한 정보 등이 경제체제의 미덕을 변호할 수 없다. 대중 매체는 정보의 조작과 이데올로기적 프로파간다와 같은 수법을 통해 사회통제의 수단으로 변질되고 만다.

2003년 1월 브라질 도시인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의 토론의 주제는 허위정보의 현 위치이었다.  이 자리에서 “Le Monde Diplomatic"의 이사장인 이그나시오 라모네(Ignacio Ramonet)은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강연에서 보편적 성향을 지닌 미디어 집단들이 구성한  거대한 구조의 대중 매체들을 집중으로 비난했다. 라모네는 “디지털 혁명”이 문자, 음향과 영상을 구별시키는 국경을 제거함으로써 이들 미디어집단들은 신기술이 제공하는 해택덕분에 확장을 위한 새로운 기회들을 얻을 수 있다고 발언했다. 또한 라모네는 이러한 초거대 기업들은 경제적 지위와 이데올로기적 중요성으로 인해 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주요 시행자가 된다고 지적하였다2)      

단일사상의 선전 미디어는 TV, 라디오, 인쇄 매체, 잡지 등과 같은 아날로그 세계에서의 정보독점을 차지하고 있다. 남미의 “뗄레수르(Telesur)”, 스페인의 “끌라라라디오(Radio Klara)”와 “디아고날(Diagonal)”지 같은 예외적인 사례들도 존재하지만, 이들 모두 경제적 ․ 기술적인 제약이 갖고 있어 앞서 본 거대 미디어 업체들의 수준의 전파성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정보의 중요성은 상승세 보이고 있으며 단기적으로 한계에 이를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제이콥 닐슨(Jacob Nielsen)에 의하면 세계인구의 15%이상에 해당되는 약 10억명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3). “2005년 스페인의 정보 사회”라는 텔레포니까(Telefonica)사의 연구 보고서는 스페인 국민 중 1,500만명이 인터넷을 사용한다고 전한다. 또한 인터넷에 가입된 가정 중 85%는 광대역 (broadband) 접속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 역시 금년 말경 5백만 가구를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스페인의 인터넷의 보급률은 14세 이상의 인구의 41.4%에 도달했다고 말하고 있다4). 이와 같은 인터넷의 보급률은 인쇄 매체의 무료 배부 현상으로 인한 구독자의 증대로 인해 가능했던 보급률 40%를 약간의 차이로 능가하고 있다.5)

진보적 인터넷 미디어의 중요 문제는 그 영향력이 서민층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 경제체제의 혜택에서 제외된 지역에서는 이러한 한계점은 보다 높게 나타난다. 다음 통계는 제일 높은 수치가 14%밖에 안 되는 남미의 인터넷 보급률을 나타내고 있다6).

<표 1> 인터넷과 인구에 대한 세계적 통계7)

지역

인구 (2006)

세계인구 %

사용자

(최근 데이타)

인구% (보급률)

세계적 사용%

성장률 (2000-2005)

아프리카

915,210,928

14.1 %

22,737,500

2.5 %

2.2 %

403.7 %

아시아

3,667,774,066

56.4 %

364,270,713

9.9 %

35.7 %

218.7 %

유럽

807,289,020

12.4 %

290,121,957

35.9 %

28.5 %

176.1 %

중동

190,084,161

2.9 %

18,203,500

9.6 %

1.8 %

454.2 %

북미

331,473,276

5.1 %

225,801,428

68.1 %

22.2 %

108.9 %

남미/카리브

553,908,632

8.5 %

79,033,597

14.3 %

7.8 %

337.4 %

오세아니아/호주

33,956,977

0.5 %

17,690,762

52.9 %

1.8 %

132.2 %

합계

6,499,697,060

100.0 %

1,018,057,389

15.7 %

100.0 %

182.0 %


하지만 현재 일반화되고 있는 현상은 인터넷이 사용자를 계속 확보함으로써 인쇄 매체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통 언론의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그나시오 라모넷은 그 이유 중 하나는 인쇄 매체에 대한 불신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인쇄 매체가 경제력을 좌우하는 기업집단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과 종종 정치권력과 결탁되어있음으로 설명되며, 또한 편파성, 객관성의 결핍, 거짓, 조작, 그리고 더 나가서 허위 등이 계속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8).

디지털 세계 또한 거대 기업들로 인해 지배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들은 인터넷의 도구들을 통해 정보중독 작업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사실은 인터넷의 가상 세계는 단일사상에 대응할 수 있는 반대세력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공간이라는 점이다. 거대한 투자가 없이 자발적인 의지력만으로 정보 수단을 창설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자 발간, “블로그”, 메일링 리스트 등을 통해 대중 매체의 지속적인 많은 허위사실들을 고발할 수 있게 됐다.

한편 남미의 노동자 계급에 디지털 미디어의 보급률의 증대를 보여주는 자료가 있다. 첫째,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시민들이 적다하더라도 실제적으로는 거의 모든 사회 ․ 서민 단체들은 상호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있다. 한편으로 전자우편이나 웹페이지를 통해 이들 단체들의 공지사항을 알리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집단들은 유사한 방식으로 받은 정보들은 내부 게시판이나 구두로 재분배된다. 이러한 다단계식 정보는 사회운동 내에서 산출되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형태로도 생산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인터넷 액세스의 결핍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바로잡는 사실이다. 즉 진보세력 안에서 중요한 입지를 차지하는 소위 “지식인”들(대학 교수, 전문가 등)은 인터넷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얻어 본인들의 지위를 이용하여 많은 계층의 주민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저항을 위한 대안 매체: Rebelion.org


Rebelion.org는 1996년 9월에 설립되었다9). 당시 창시자들이 실천하고자하는 프로젝트는 인터넷으로만 가능하였다. 이는 금전적 투자가 필요하지 않았고 전 세계 어느 곳에서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주요 목적은 스페인어라는 주요 공통 언어의 존재의 장점을 이용해 전 남미를 위한 대안 매체를 창설하는 것이었다.

그해 전자우편사용은 보편화되기 시작했고 국제 사회단체들은 특히 시급한 인권 유린 사건들을 고발하기 위해 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사빠띠스따(Zapatista)들의 사례가 바로 이 경우이다. 싸빠띠스따들은 정보적 도구를 소유하고 있는 몇몇 단체들에게 보고서를 보내고, 이런 단체들은 인터넷을 보유하지 않은 군중들의 모임에 싸빠띠스따들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수행했다. 그 시절에는 웹페이지를 갖고있거나 제대로 운영하는 단체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Rebelion의 핵심 창시자들은 공개 라디오(radios libres), 지역 소식지와 공동체 ․ 대안 매체에게 정보를 공급하는 중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미디어의 설립의 필요성을 공유했다. 이러한 매체들은 현지 정보를 취급하는데 문제점이 없었으나 국제 소식을 다루기에는 기술적 ․ 인적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초기의 의도와는 달리 충실한 독자들의 요구에 따라 정보를 매일 편집하게 되었다. 시민권은 대규모 미디어들이 제공하는 것과 다른 정보를 큰소리로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 명백했다. Rebelion의 수완은 대부분의 미디어가 침묵하는 소식들을 전하고 싶은 욕구를 공유하는 언론인들과 기자들의 시너지였다고 볼 수 있다. Rebelion의 계획 지원 배경에는 독자들의 지속적인 증가와 이와 맞물려 사심 없이 무상으로 글을 보내준 작가, 기자, 이외의 지식인들의 있다. 


레벨리온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 수행한 집단 중에 하나는 번역가이다. 이들은 여러 기사들을 영어, 아랍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그리고 포르투갈어로부터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한다. 현재 이들은 “뜰락스깔라(Tlaxcala)"10)라는 언어의 다양성을 위한 번역가들의 네트워크를 조성했다. 기사들을 영어에서 스페인어로 번역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기에 스페인어, 프랑스어, 아랍어로 된 글들을 영어로 번역하기 시작함으로써 뜰락스깔라는 대안의 정보를 양 방향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미국이 제공하고 영어로 쓰인  정보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점은 비판할 만하다. 그리고 이 포럼에서 서로 다른 언어 간의 정보교환을 위해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재 레벨리온에서는 섹션별로 뉴스들을 구분하고 있다. 지역별 섹션도 있으며 공통된 다양한 섹션들, 즉 자유지식, 문화, 사회환경, 거짓과 미디어, 여성, 논평과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등이 있다. 지역별 섹션에는 아프리카,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쿠바, 미국, 스펜인, 이라크, 세계, 팔레스티나, 유럽연합, 우루과이와 베네수엘라 등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하인즈 디에테리흐(Heinz Dieterich), 제임스 페트라스(James Petras), 마르타 하네커(Marta Harnecker) 와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같은 공저자들을 위한 중요한 섹션 또한 있다. 마지막으로 “자유로운 책들” 섹션에서는 “Creative Commons" 라이센스가 존재하기이전에 이 제도로부터 벗어난 Copyleft의 혼을 문화에 심어주고자 한다.  

레벨리온의 작업은 소위 섹션 책임자 위주 방식으로 실행된다. 각 섹션의 담당자는 해당 섹션과 이를 통해 받게 되는 글들을 매일 정규적으로 보존하고 정비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차별화 된 섹션의 담당자들의 상호 협력은 각자가 맡지 않은 부문에 대한 추가 내용물의 공급과 여러 의견과 제안의 교류를 가능케 한다. 텍스트들의 간행 여부, 신청 및 회수 등의 안건들은 자발적인 성격을 띤 일반 투표의 방식으로  제시된다. 여컨대 특별 섹션이나 새로운 섹션의 조성은 일반 투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인스턴트 메시지를 통해 실질적인 시간에서 시급한 사항들을 토론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의 우리 정보의 중요성.


2003년 10월 멕시코시(市)에서 열렸던 “인류 보호를 위한 모임”에 Rebelion을 대표하여 빠스꾸알 쎄르라노(Pascual Serrano) 기자11)가 참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대규모 주요 언론들은 신용을 잃었다. 이제 아무도 그들을 믿지 않으며 전 세계의 시민들이 주요 언론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사실이 아니라고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달 전 컬럼비아 대학에서 이러한 의견이 뒷받침해주었다. ‘언론의 우수성을 위한 계획’이 발표한 ‘The state of the news media 2004’란 제목의 500장 분량의 학술보고서에 의하면 21세기의 미국언론은 참담한 상황에 놓여있으며 "인터넷을 통하거나 히스페닉계와 같은 지역 사회를 대상으로 한 대체 언론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12).

이렇게 자칭 ‘진지한 언론’들의 공백을 디저털화 되어 보다 신속하고 민주적이며 무료로 제공되는 정보가 차지하고 있다. 단순히 대체 언론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정보는 인터넷을 구성하고 있는 가상 커뮤니티13)에서 포럼, 메일링, 블로그, 쳇팅, 메신저 등을 통해 계속 흐르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재 전달되는 정보의 특성으로 일반 대중 언론보다 월등히 높은 인터넷 대체 언론의 비중을 꼽을 수 있으며 이는 엄청난 경제적 효율성을 의미한다.

인터넷 검색의 거의 60%가 ‘구글’을 통해 이뤄진다. ‘구글’의 발표에 의하면 매일 2억 건이 넘는 검색을 기록하고 있다14). 정보 입수가 주로 이러한 사이트를 통해 성사되는 것을 고려했을 때에 검색엔진의 검색결과의 배열은 매우 중요하다.

인터넷의 대형 커뮤니티들은 수많은 웹 페이지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다른 웹페이지와 많은 연결이 되면 될수록 PageRank15) 또한 높아진다. 이러한 방법을 통해 구글은 웹페이지의 비중을 판단하며 이를 참고로 검색결과 배열을 정하기 때문에 중요한 요소이다. 다른 검색사이트도 비슷한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구글에서 ‘대안 정보’를 입력하면 배열되는 첫 결과는 Rebelion.org이다. ‘노암 촘스키’나 ‘반세계화’를 입력해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특별한 지위는 자체적인 노력 때문이 아니라 이와 같은 개념들을 중개로 연결된 다른 인터넷 언론들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어떤 부류의 독자들이 즐겨 찾는지를 알 수 있다. 만약 구글에 ‘환경’이나 ‘정보’를 입력한다면 Rebelion.org는 5위에 나타날 것이다. 이유는 Rebelion.org이 PageRank 부분에서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다는 것이며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구글의 도구상자(Toolbar)를 내려 설치하면 된다16). 이리하여 주요 보수 혹은 중도 경향의 언론들과 Rebelion.org을 비교했을 때 다음과 같은 결과를 살펴볼 수 있다:



언론사

PageRank

http://www.rebelion.org

7

http://www.elpais.es

8

http://www.elmundo.es

8

http://www.abc.es/

7

http://www.terra.es/

7

http://www.libertaddigital.com/

6

http://www.cope.es/paginas/home21.as

3


이러한 통계를 봤을 때에 놀라운 사실은 바로 금전적 투자 하나 없이 단순히 자발적인 노력만을 통해 만들어진 매체가 Terra나 ABC같이 수많은 직원들과 막강한 투자를 확보하고 있는 굴지의 언론사들과 같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글의 통계는 비록 아날로그 영역에서는 불가능하지만 인터넷 안에서는 대안 미디어들도 동등한 입장에서 대중 미디어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반영한다.

한편, 두 종류의 매체들을 비교 분석하려면 양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질적인 면을 참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El Mundo’나 ‘El Pais’지의 인터넷 판을 유심히 살펴보면 대안 미디어에 비해 월등히 많은 섹션들과 분량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많은 페이지 중 상당한 부분이 소식제공에 할애되는 것이 아니며 (예를 들어 두 일간지 사이트 모두 인터넷 쇼핑몰을 가지고 있다), 다른 섹션들은 스포츠, 운수, 심심풀이 등 오락/레저에 관한 정보로 채워져 있다. 이와 같은 정보들은 독자들의 수요를 누리고 있지만 대안 미디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다.

많지 않은 페이지 수로 만들어진 대안 매체들이 인터넷 영역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비교했을 때, 중요 시사에 대한 입장에 관해서는 대안 매체들의 의견이 일반 매체들에 비해 보다 높은 수용률을 나타낸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와 관련 빠스꾸알 세르라노는 “El Pais와 Rebelion.org의 대면”17)이라는 글에서 중도보수 계열이자 스페인어권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와 영향력을 자랑하는 El Pais지와 Rebelion.org의 기고된 논평 방문수를 비교하면서 비슷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글에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을 찾아 볼 수 있다. 2005년 6월 7일자에 실린 로사 몬떼로(Rosa Montero)의 논평 ‘동성애자혐오증’은 620명이 방문했고, 같은 달 15일자에 실릴 El Pais지의 주요논평위원 하비에르 쁘라데라(Javier Pradera)의 ‘거리와 법원’은 427명만 방문하였다. 반면 지면(El mundo지)으로 실리기도 한 Rebelion.org의 하비에르 오르띠스(Javier Ortiz)의 사례를 보면 다른 상황이 전개된다. 예를 들어 같은 해 6월 1일자에 실린 ‘프랑스 투표를 위한 변호’라는 논평은 1,111명이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La voz de Galicia’지를 통해 지면에 실리기도 했던 논평위원 이그나시오 라모넷(Ignacio Ramonet)의 ‘한국이라는 위험’ (6월 12일자)이라는 논평은 2,080명에 이르는 방문자를 기록했다. 이히니오 뽈로(Higinio Polo) 비슷한 경우다. 5월 25일자에 실린 그의 논평 ‘민주주의를 향한 진혼곡’은 1,540명이 방문하였다. 이 글은 ‘El Pais’지 보다 10배 이상 비싼 시사 메거진 ‘El viejo topo(늙은 두더지 – 역자 주)’에 기재된 바 있었다. 이러한 통계들을 이해하는데 있어 참고해야 할 부분은 El Pais나 El Mundo 같은 언론에 실린 논평들을 구독을 통해서만 가능하지만 Rebelion.org에 실리는 모든 컨텐츠는 무료로 제공되며, 자체 저작권이 있는 경우 내용의 변동 없이 저자와 출저를 밝히면 Creative Common 라이센스18)에 의거하여 재 배포될 수 있다.



레벨리온의 정보적 지위


레벨리온과 같은 대안 매체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대중 언론이 침묵하고 있는 부분을 다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일사상의 ‘신화’를 혁파하는 것이다. 정보조작에 대한 신고의 증가는 2002년 6월 소개의 글에 실린 대로 ‘다국적 기업 소유의 일반 언론의 끊임없는 거짓과 가식을 고발’하기 위해 ‘거짓말과 언론’이라는 섹션이 생기는데 기여하였다19). 같은 글에는 2002년 4월 11일 베네수엘라에 있었던 쿠데타 시도와 (소위 ‘진보’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포함한) 대중 언론의 역할을 상기시키기도 하였다.

민주주의의 가장 아름다운 교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건은 일반 대중 언론의 속내를 드러내었다. 당일 밤 Rebelión.org은 ‘베네수엘라 쿠데타’라는 제목으로 현지 상황 전개를 다루는 특별판을 만들었지만 El Pais지는 다음날 아침 쿠데타 주동자를 ‘민주주의자’로 칭하는 환영의 기사를 보내며 민주주의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을 ‘독재자’로 비하시키기도 하였다. 이 경우에 대안 매체들은 단지 세계인들에게  베네수엘라 현지 거리의 현실을 알리는데 ‘그쳤지만’ 다행히 베네수엘라 노동자들은 유럽과 같은 전자통신 매체의 부재와 소수만 사용하는 문자 메시지 서비스에 불구하고 단합하여 쿠데타를 저지할 수 있었다.

디지털 대안 매체의 역할은 독자들과의 (아직은 미약한) 상호교류를 통해 강화되고 다운로드 되는 페이지를 파악함으로써 편집인의 입장에서 독자들의 요구사항을 알게 된다. 방문자수 통계는 절대로 우리가 언론을 형성하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많이 읽혀지는 소식들은 당시 TV와 라디오 같은 대중 매체들을 다루고 있는 뉴스들과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2006년 2월 13일 Rebelión이 이라크 ‘자살 특공대’의 존재에 대한 특보를 다루자 많은 독자들이 이 뉴스페이지를 다녀갔고 같은 뉴스가 삼일 후 대중 매체에 실렸다. 뉴스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후자의 경우 같은 소식이 마호메트 풍자만화에 관한 사소한 논평보다 적은 방문자수를 기록하였다 (같은 기간에 마호메트 풍자만화는 6000명 이상이 방문하였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수의 독자들이 먼저 일반 대중 매체(라디오, TV, 인쇄 매체 등)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이후에 인터넷을 통해 다른 견해를 참고하여 자체적인 의견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은 위기상황에 더욱 표면화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는 보도에 대한 수요가 현저히 증가함으로, 독자층 가운데 매일 대안 매체를 접할 의사가 없는 층이 있지만 대중 매체가 다루지 않는 소식에 관한 추가정보를 얻기 위해 이를 찾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산띠아고 알바 리꼬(Santiago Alba Rico)가 지적한 바와 같이 대안 매체를 찾는 독자들은 사건들을 접하고 취해야할 입장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보도의 자유, 사생활 그리고 법적 책임.


인터넷 매체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 기술적이거나 경제적인 방법들이 동원될 수 있다. 하지만 비교적 관찰되지 않는 다른 제한방법들이 있고, 개인적인 의견에는 이런 방법들이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의 주요 장애물이다. 다시 말해 소송을 통해 저자나 편집자에게 가해질 수 있는 법적 책임이며, 이런 현상은 스페인 정부의 정보 관리법, 유럽의회의 정보보유에 관한 지시20), 미국의 애국 조례(Patriot Act) 등을 통해 심화되고 있다.

기업이나 기관의 경제적 지원 아래 만들어지는 보도 매체의 여러 장점 중 독립성을 최고로 꼽을 수 있으나, 반면에 여러 단점들과 굴복도 존재한다. 의무적으로 실행되는 인터넷 서비스 공급업체 측의 자료 보류는 보도에 따른 그 어떤 침해에 관한 법적 소송을 돕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가설이 아니다. 매일 여러 소송을 원인으로 인터넷 사이트들이 문을 닫고 있다. 인터넷 독립 매체들이 생존을 위한 최소한을 제외한 다른 수입이 없는 이들의 희생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만들어 지고 유지되는데, 만약 민간/형사 소송이 닥칠 경우 그 비용을 감당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인터넷에 대한 법적 압력이 늘어간다. ‘표현의 자유’의 뜻을 모호하게 해석하여 인터넷에서는 제한이 가해지고 대중 언론들의 거짓과 논란유발 앞에선 절대적으로 사수된다 (여기서 우리는 극우파 덴마크 신문이 게재한 선정적인 마호메트 풍자 만화21)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현재 새롭고 대안적인 디지털 영역의 매체들이 점차 대기업 ‘언론제국’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지만, 이들이 열악한 조건 가운데 놓여있으며 많은 ‘다모클레스의 칼’(한 올의 말총으로 매단 칼 아래에 놓여 있는 듯한 위기와 불안 – 역자 주) 아래 생존과 독립성을 위협받고 있다.

다행히 Rebelión.org와 같은 대안 매체의 앞날은 언급된 ‘외부 위협’이나 편집자의 수고에 달려 있지 않고, 글의 저자들과 번역가들의 다양한 협조, IT 기술자들의 자문, 서버 내에 공간을 제공해 주는 여러 NGO 등의 자발적이고 무상적이고 사심 없는 도움에 달려있으며,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하루하루의 지원에 달려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Atacando el monopolio de la información desde los medios digitales.
 
Según la tradicional distinción de Montesquieu deberían existir tres poderes: el legislativo, ejecutivo y judicial. Los estados contemporáneos siguen organizándose bajo esta doctrina basada el la monarquía constitucional. Sin embargo, nadie puede negar de la existencia de otros poderes: el económico y el mediático. El poder económico hace mucho que inició su asalto al poder mediático, y concentrados ambos poderes, los poderes políticos son meras marionetas en sus manos, o directamente el poder económico asume todos los poderes como siguiente fase natural de este proceso, la elección de Bersluconi en Italia es el ejemplo más diáfano de este proceso de unión del poder económico, mediático y político.
 
Si analizamos los medios de comunicaciones de masas, a pesar de sus diferencias, cuyo origen suele estar provocado por la lucha por el poder, el mercado y las audiencias, observaremos que son fieles cumplidores de los mandamientos de la economía capitalista. Esta sujeción, en ocasiones puede ser de fácil aplicación, en donde hay crecimiento y estabilidad macro-económica, pero no lo es tanto allí donde fracasan los mandatos del acuerdo Bretton-Woods de 1944 que fueron el germen del neo-liberalismo económico.
 
No sólo existe un pensamiento único en los medios de comunicación, sino que vivimos en un mundo que se ha llamado “unipolar”, pues por primera vez en la historia sólo existe un estado con la categoría de potencia internacional: EE.UU. De modo, que existiendo sólo un gobierno político– militar radicado en Washington y un poder económico–real radicado en los mercados financieros, no existe otro poder al que poder imputar las fallas del sistema, una vez desaparecido el bloque soviético.
 
El hambre, las enfermedades, la opresión, no solo no ha desparecido bajo este régimen globalizado, sino que continúan aumentado las desigualdades, según el Informe sobre Desarrollo Humano 2005 del Programa de las Naciones Unidas para el Desarrollo[1] “de los 73 países sobre los cuales se dispone información, 53 (que en conjunto reúnen a más del 80% de la población mundial) han visto crecer la desigualdad, mientras sólo 9 (que suman 4% de la población) la han visto disminuir. Lo anterior es válido tanto en situaciones de crecimiento alto como bajo”.
 
La bondad del sistema económico no se puede defender mediante datos objetivos o, lo que es lo mismo, con información veraz. Los medios de comunicación se convierten en medios de control social, utilizando como instrumentos la manipulación informativa y la propaganda ideológica.
 
La situación actual de desinformación fue objeto de debate en el Foro Social Mundial de enero de 2003, celebrado en la ciudad brasileña de Porto Alegre. En dicho foro, Ignacio Ramonet pronunció una conferencia sobre el papel de los medios de comunicación en el que denunciaba la concentración de los medios de comunicación en inmensas estructuras que conforman grupos mediáticos con vocación universal. En su discurso se anunció   que estos grupos, gracias a las nuevas tecnologías, tienen nuevas posibilidades de expansión, ya que la “ revolución digital” ha eliminado la fronteras que separaban la escritura, el sonido y la imagen. En conclusión, el director del “Le Monde Diplomatique” entiende que, estas megaempresas, por su peso económico y su importancia ideológica, pasan a ser los principales actores de la globalización liberal[2]
 
Los medios propagandísticos del pensamiento único tienen el monopolio informativo en el mundo analógico: Televisión, radio, prensa escrita, revistas... Con algunas excepciones, como puede ser el caso de “Tele Sur” en Latino américa,   o en el Estado Español “Radio Klara”, o el periódico “Diagonal”, pero todos ellos con muchas limitaciones económicas y técnicas para llegar a tener la difusión de las corporaciones de comunicación que, como hemos visto, cuentan con medios de todo tipo analógico y digital.
 
La importancia de la información en Internet es creciente sin que se vislumbre freno a su crecimiento en corto plazo. una estimación A nivel mundial, según Jakob Nielsen, 1.000 millones de personas tienen ya acceso a la Red; más del 15% de la humanidad[3]. En el Estado Español, un estudio de Telefónica llamado "La Sociedad de la Información en España 2005", informa que nuestro país cuenta con 15 millones de usuarios de la Red. Además, el 85 por ciento de los hogares que están conectados utiliza la banda ancha, que superará los 5 millones de accesos a final de ese año y que la penetración de Internet en España ha alcanzado el 41,4 por ciento de la población mayor de 14 años.[4] Este nivel de penetración es ligeramente superior al de la prensa escrita (40%) a pesar de un aumento de lectores de este medio gracias al fenómeno de la prensa gratuita[5]
 
El principal problema de un medio progresista de Internet es que su cobertura no alcanza a las clases populares, y mayor es esta limitación en regiones desfavorecidas por el actual sistema económico, en el siguiente cuadro se aprecia la baja penetración de Internet en Latinoamérica, donde las mejores estadísticas solo llega al 14.3 %[6]:
 
ESTADÍSTICAS MUNDIALES DEL INTERNET Y DE POBLACIÓN[7]
 
 
Regiones
Población
( 2006 Est.)
% Población
Mundial
Usuarios,dato
más reciente
% Población
(Penetración)
% Uso
Mundial
Crecimiento
( 2000-2005 )
 
 
915,210,928
14.1 %
22,737,500
2.5 %
2.2 %
403.7 %
 
 
3,667,774,066
56.4 %
364,270,713
9.9 %
35.7 %
218.7 %
 
 
807,289,020
12.4 %
290,121,957
35.9 %
28.5 %
176.1 %
 
 
190,084,161
2.9 %
18,203,500
9.6 %
1.8 %
454.2 %
 
 
331,473,276
5.1 %
225,801,428
68.1 %
22.2 %
108.9 %
 
 
553,908,632
8.5 %
79,033,597
14.3 %
7.8 %
337.4 %
 
 
33,956,977
0.5 %
17,690,762
52.9 %
1.8 %
132.2 %
 
 
TOTAL MUNDIAL
6,499,697,060
100.0 %
1,018,057,389
15.7 %
100.0 %
182.0 %
 
 
 
Lo que si es un fenómeno generalizado es que Internet está ganando adeptos y restándoselos a la prensa escrita (e incluso a la televisión) lo que esta causando una crisis en la prensa tradicional, siendo una de sus causas, según Ignacio Ramonet, la pérdida de credibilidad de la prensa escrita. Lo que explica, porque, en primer lugar, cada vez con mayor frecuencia, esta pertenece a grupos industriales que controlan el poder económico y están, a menudo, en connivencia con el poder político. Y también porque la parcialidad, la falta de objetividad, las mentiras, la manipulación e incluso simplemente las falacias van en continuo aumento[8].
 
Es cierto, que el mundo digital también está dominado por las grandes corporaciones de comunicación, las cuales tienen perfectamente aprendido el oficio de la intoxicación informativa utilizado las herramientas de Internet. Pero, también es verdad, que en el mundo virtual de Internet es donde se ha podido desarrollar una oposición mediática más fuerte al pensamiento único. La posibilidad de crear un medio de información sólo con trabajo voluntario y sin necesidad de grandes inversiones económicas, ha permitido que, desde publicaciones electrónicas, “blogs” o lista de correos, se denuncien las continuas falsedades que inundan los medios de comunicación.
 
Hay otros datos que corrigen a la alza el nivel de penetración de los medios digitales en los las clases sociales trabajadoras en Latinoamérica. En primer lugar, aunque sean pocos los ciudadanos que tenga acceso directo a la Red, prácticamente todas las organizaciones sociales y populares sí que tienen ese acceso. el cual es bi-direccional, de manera que mediante el correo electrónico o páginas web difunden sus comunicados, y por otra parte, de la misma forma, los colectivos sociales reciben información que luego redistribuyen en sus boletines internos o simplemente mediante la comunicación oral. Esta información en cascada, no sólo se produce dentro de movimientos sociales sino que también se produce de otras diferentes formas, y este es el segundo dato que corrige esta falta de acceso a Internet, pues dentro de la izquierda muchas de las voces más influyentes, los llamados “intelectuales”, los profesores universitarios, los profesionales.... sí que reciben continuamente información a través de Internet y tienen la posibilidad de transmitirla, valiéndose de su prestigio personal, a capas amplias de la población.
 
Un medio alternativo de oposición: Rebelión.org.
 
Rebelión.org nació en septiembre de 1996[9], en ese momento el proyecto informativo que pretendían sus fundadores era imposible realizar por otro medio que no fuera Internet. No era precisa una inversión económica previa y podría leerse desde cualquier parte del mundo, pero su objetivo principal era crear un medio alternativo para toda América Latina, aprovechando el español como lengua común a casi todos ellos.
 
En aquel año el correo electrónico ya empieza a ser habitual y los colectivos sociales internacionalistas ya lo utilizan sobre todo para denuncias urgentes de derechos humanos. Es el caso de los zapatistas, mandan sus informes a algunas organizaciones que cuentan con recursos informáticos y éstos se llevan a las reuniones, el público en general todavía no dispone mayoritariamente de Internet y correo electrónico. Por otro lado, apenas ningún colectivo dispone de página web y mucho menos la actualiza con seriedad. El núcleo fundador de Rebelión comparte la necesidad de crear un medio con funciones de agencia que nutra de informaciones a radios libres, boletines locales y otros medios alternativos y comunitarios. Estos medios manejan muy buena información local pero no tienen capacidad técnica ni humana para cubrir la información internacional.
 
Aunque al principio la idea no era editar informaciones con una frecuencia diaria, vimos que los lectores nos empujaban a ello, eran lectores fieles cuyos accesos se disparaban cuando actualizábamos con frecuencia y que bajaba cuando no lo hacíamos. Era evidente que la ciudadanía estaba pidiendo a gritos otra información diferente de la que proporcionaban los grandes medios. Sin duda, el acierto de Rebelión era la sinergia entre informáticos y periodistas que compartían una misma inquietud por informar sobre lo que los demás callaban. Además del aumento de lectores cada vez han sido más los escritores, periodistas y otros intelectuales los que han apoyado este proyecto enviando sus textos de forma gratuita y desinteresada.
 
Otro colectivo muy importante en el desarrollo de rebelión han sido los traductores los cuales traducen al castellano multitud de artículos, del inglés principalmente, pero también del árabe, francés, alemán, italiano y portugués. En la actualidad de estos traductores han fundado “Tlaxcala[10]” la red de traductores por la diversidad lingüística, para que la información alternativa se realice en los dos sentidos, de manera que no es suficiente traducir del ingles al castellano, sino también se han empezado a traducir textos del castellano, francés o árabe al ingles. Es criticable que el hecho que la información alternativa dependa excesivamente de las informaciones escritas en inglés y recibidas desde EE.UU. Y esperamos que en este congreso podamos dar un paso adelante en el intercambio de información entre las distintas lenguas del mundo.
 
En la actualidad en Rebelión dividimos las noticias por secciones, unas de carácter territorial y otras transversales, estas últimas son Conocimiento Libre, Cultura, Ecología social, Economía, Mentiras y medios, Mujer, Opinión y Otro mundo es posible. Las secciones territoriales son África, Argentina, Bolivia, Brasil, Chile, Colombia, Cuba, EE.UU., España, Iraq, Mundo, Palestina, Unión Europea, Uruguay y Venezuela. Además tenemos secciones dedicadas a colaboradores con especial importancia: Heinz Dieterich, James Petras, Marta Harnecker y Noam Chomsky. Y, por último, una sección llamada “libros libres” en el que quisimos llevar el espíritu del Copyleft a la cultura, antes de que existieran las licencias “creative commons”.
 
El método de trabajo en Rebelión se fundamenta en lo que denominamos responsables de sección, estos son los encargados del mantenimiento regular y diario de su sección y de atender los textos que se envían para ella. La colaboración mutua entre los diferentes responsables de sección se fundamenta en cooperar solidariamente en nutrir con contenidos a las secciones de las que no se es responsable en la medida de las posibilidad de cada uno y, al mismo tiempo, aceptar los comentarios y propuestas del resto de compañeros dirigidos a la sección que uno dirige. Las dudas sobre la publicación o no de un texto, incluso la solicitud de retirada, se plantea a todos a modo de referéndum para pronunciamiento voluntario y con carácter vinculante. La creación de un especial informativo o una nueva sección requiere referéndum. Mediante mensajería instantánea se pueden debatir cuestiones de urgencia en tiempo real.
 
La relevancia de nuestra información en Internet.
 
 
En el Encuentro en Defensa de la Humanidad celebrado en la ciudad de México en octubre de 2003, participó el periodista Pascual Serrano[11] en representación de Rebelión.org y   declaró que “los grandes medios habían perdido la batalla de la credibilidad. Nadie les cree, estamos asistiendo a la sensación y confirmación generalizada de los ciudadanos del mundo de que la información que les dan los grandes no es la verdadera. Hace dos meses la Universidad de Columbia confirmó esa tesis. El informe académico "The state of the news media 2004", emitido por el "Proyecto para la Excelencia del Periodismo", a lo largo de 500 páginas, afirma que el periodismo estadounidense del siglo XXI se encuentra en un estado lamentable "del que solo parecen salvarse los medios alternativos, aquellos que operan en Internet y las cabeceras en comunidades como la hispana[12]"”.
 
Este espacio que está dejando vacante la autoproclamada “prensa seria” lo esta ocupando la información libre distribuida digitalmente, más democrática e inmediata, no sólo ya por la existencia de medios alternativos, sino por que la información se redistribuye por las comunidades virtuales[13] que se forman en la Red, mediante las múltiples herramientas que nos pone a su disposición: foros, listas de correo, blogs, chats, mensajería instantánea...   A su vez esta redistribución de la información mediante los anteriores medios tiene otra consecuencia añadida, los medios de comunicación alternativos en Internet tienen una relevancia muchas veces superior a los medios digitales de masas, y en todos casos presentan una eficiencia económica infinitamente mayor.
 
El buscador “Google” capitaliza  casi el 60% de las búsquedas de Internet, Según la compañía, actualmente Google responde a más de 200 millones de consultas al día[14]. El acceso a la información se realiza con mucha frecuencia a través de este u otros buscadores, por lo que el orden en que nos muestra los resultados los buscadores tiene suma importancia.
 
La existencia de grandes comunidades virtuales generan multitud de enlaces, cuanto una página sea más enlazada,   tendrá mayor   popularidad o PageRank[15]. Mediante este sistema Google decide la importancia de una página. Es un dato valioso, porque es uno de los factores que determinan la posición que va a tener una página dentro de los resultados de la búsqueda. No es el único factor que Google utiliza para clasificar las páginas, pero sí es uno de los más importantes. Este funcionamiento es muy similar en el resto de buscadores. 
 
Por ejemplo, si buscamos en Google el término “información alternativa” el primer resultado será Rebelión.org. Lo mismo ocurrirá si buscamos “Noam Chomsky” o “antiglobalización” , este posicionamiento privilegiado de Rebelión no ha sido mérito propio de este medio, sino de los múltiples medios en Internet que nos enlazan con esos términos y nos indica que tipo de lectores nos siguen. En el quinto lugar de resultados aparecerá rebelión si lo que buscamos en Google es “ecología” o simplemente “información”. Este posicionamiento es debido a que Rebelión tiene un alto “PageRank”, este valor se puede conocer descargándose la barra de navegación de Google[16]. De esta forma podemos obtener los siguientes datos, comparando Rebelión con los más influyentes medios digitales de la derecha más o menos moderada:
 
Medio
PageRank
7
http://www.elpais.es
8
8
http://www.abc.es/
7
http://www.terra.es/
7
http://www.libertaddigital.com/
6
http://www.cope.es/paginas/home21.asp[17]
3
 
Resulta sorprendente, a la vez que alentador, que un medio realizado sin ningún tipo de inversión económica y realizado solo con el trabajo voluntario tenga la misma relevancia en Internet   (según estos parámetros) que grandes medios como son Terra y Abc con cientos de empleados y poderosos inversionistas. Esta clasificación de Google indica que en la Red digital los medios alternativos pueden tener una mínima oportunidad para competir con los medios de mansas, algo que ha sido imposible en el el mundo analógico.
 
También, para estudiar comparativamente ambos tipos de medios, tendríamos que tener en en cuenta el elemento cualitativo, además del cuantitativo. De una somera observación de medios electrónicos como “El Mundo” o “El País” podemos concluir que tienen muchas más secciones y/o páginas que los medios alternativos. Muchas de ellas no están dedicadas a la información (por ejemplo, ambos diarios disponen de tiendas donde realizar comercio electrónico), otras secciones están dedicadas a la información de ocio, como deportes, sociedad, horóscopos, pasatiempos... Estos contenidos no están disponibles en ningún medio alternativo digital y tienen un peso importante en la demanda de información por parte de los lectores.
 
Al comparar el alto nivel de incidencia en Internet de los medios alternativos, con la escasa producción de páginas, la conclusión es que cuando se trata de las cuestiones de actualidad más importantes, la opinión publicada en estos medios independientes tienen una mayor difusión, en Internet, que la de los medios de masas. Un pequeño estudio sobre este tema lo realizó Pascual Serrano en un artículo llamado “El País.es y Rebelión.org frente a frente”[18], en el que llega a la misma conclusión estudiando las visitas de las noticias de opinión de los columnistas de Rebelión y los de El País, que es el diario de más difusión en España y más influyente, seguramente, en el mundo hispano hablante y cuya línea editorial es de derecha moderada. En este trabajo se citan los siguientes ejemplos,: “a Rosa Montero, vemos que su texto Homofobia, el 7 de junio de 2005, fue leído por 620 personas. Y que el artículo del ideólogo orgánico de El País Javier Pradera sólo sumó 427 accesos en su artículo del 15 de junio del mismo año La calle y las Cortes. Si ahora vamos a Rebelión, podemos contrastar con algún texto de Javier Ortiz de los que ya se publicaron en papel, concretamente en el diario El Mundo. Por ejemplo En defensa del voto francés del 1 de junio, que fue leído por 1.111 personas. O con alguno de Ignacio Ramonet, también difundido previamente por La Voz de Galicia, como El peligro Corea, publicado el 12 de junio y leído por 2.080 personas. Podemos compararlo con otra firma de Rebelión, por ejemplo Higinio Polo. Su último texto La marcha (fúnebre) hacia la democracia , publicado el 25 de mayo, lo leyeron 1.540 personas. Y se trata de un texto procedente de la revista El Viejo Topo, de la que se editan quince mil ejemplares y cuesta diez veces más que el diario El País”. Una de los elementos   a valorar para la adecuada comprensión de las anteriores cifras es que los artículos de opinión en El País o en El Mundo son accesibles sólo mediante suscripción de pago, mientras que todos los contenidos de Rebelión son gratuitos y, los que son de fuente propia, se permite la redistribución de los textos mediante una licencia Creative Commons[19] siempre que se reconozca al autor, a la fuente y no se altere o transforme la obra.
 
El estatus informativo de Rebelión
 
El papel de Rebelión, y otros tantos medios alternativos, ha sido doble, informar donde los medios de masas guardan silencio y desmontar los “mitos” del pensamiento único. El aumento de colaboraciones denunciando las manipulaciones informativas desembocó en el nacimiento de la sección llamada "Mentiras y Medios" en junio de 2002, para “la denuncia de las falsedades y mentiras que continuamente están presentes en los medios de difusión de la información diaria pertenecientes a grupos multinacionales” tal y como se enunciaba en su presentación[20]. En el mismo texto se recuerda el papel de los medios de masas (incluidos los que se invisten de un halo progresista) en el fallido golpe de estado de Venezuela la noche del 11 de abril de 2002.
 
Ese acontecimiento que ha sido una de las más hermosas lecciones de   democracia reveló la auténtica alma de los medios de comunicación de masas. Mientras que esa misma noche Rebelión.org abrió un especial para seguir la secuencia de los hechos en Venezuela que se denominó “Golpe de estado en Venezuela”, a la mañana siguiente el diario “El País” saludaba al golpista calificándolo de demócrata y tildando de dictador al gobernante elegido democráticamente. En este caso la información alternativa “sólo” sirvió para que los ciudadanos de todo el mundo conocieran la realidad que se vivía en las calles de Venezuela, pero hay que recordar que los trabajadores venezolanos consiguieron movilizarse y vencer al golpe de estado sin los medios técnicos digitales que se disponen en Europa, sólo algunos disponen de móviles para difundir mensajes SMS.
 
La función de control de los medios alternativos digitales se ve reforzada por la interacción (todavía muy débil) con los lectores, la posibilidad de conocer las descargas de páginas posibilita conocer por parte de los editores lo que se demanda de ellos. Y las estadísticas de visitas nos indica que nosotros no marcamos, en ningún caso, la agenda informativa, sino que las noticias más leídas son aquellas relativas a los hechos que están teniendo cobertura masiva por la Televisión o la radio. Por ejemplo, con fecha 13 de febrero de 2006 Rebelión publico una primicia sobre la existencia de “escuadrones de la muerte” en Irak, la noticia tuvo muchos lectores (3.070 en una semana), esta misma noticia se recogió por los medios de masas tres días después que lo hiciera Rebelión. A pesar de la importancia de la noticia, tuvo muchos menos lectores que un artículo de opinión mucho más intrascendente sobre las viñetas de Mahoma (más de 6.000 lecturas en el mismo lapso de tiempo). La conclusión que podemos obtener es que la mayoría de lectores se informan primera y principalmente por otros medios (radio, tv, prensa escrita...) y posteriormente acuden a Internet para informarse desde otro prisma y poder así formarse su propia opinión. Esto se advierte, aún   más evidentemente, en las situaciones de crisis, en esos momentos aumentan significativamente tanto las lecturas de noticias, como los usuarios, lo que indicaría que existe un sector de público que no está interesado en seguir diariamente los medios alternativos, pero sí que acude a ellos cuando necesita una información adicional que no se la brindan los medios de masas. En conclusión, como señala Santiago Alba Rico, el lector de los medios alternativos quiere saber qué tiene que pensar acerca de los acontecimientos.
 
Libertad informativa, privacidad y responsabilidad legal.
 
Los controles para limitar la libertad de expresión en la Red, pueden ser técnicos o económicos, pero existe otros límites menos estudiados y, a mi entender, son   los principales frenos a la libre información en la red, y me estoy refiriendo a las responsabilidades legales que se pueden exigir a los autores y editores en la red vía judicial, algo que se reforzó con la promulgación y entrada en vigor de la Ley de Servicios de la Información en el Estado Español, la directiva de Retención de Datos en el Parlamento Europeo[21] y la Patriot Act en Estados Unidos.
 
Realizar un medio de comunicación sin que exista un conglomerado empresarial o una entidad pública que apoye económicamente el proyecto tiene muchas ventajas, la más importante de ellas es su independencia. Pero también conlleva inconvenientes y servidumbres. La obligación de retención de datos a los proveedores de servicios de Internet se está extendiendo universalmente para facilitar, precisamente, el inicio de cualquier reclamación judicial al que se considere responsable de cualquier perjuicio por la publicación en Internet.
 
Esto no es una mera hipótesis, todos los días se cierran sitios de Internet por demandas, más o menos fundadas. Si los medios independientes de Internet se crean y desarrollan por personas concretas sin otros medios económicos que los necesarios para subsistir y que no se los facilita su trabajo en la Web, es impensable que puedan soportar los gastos que conlleva cualquier tipo de proceso judicial, sea civil o penal. 
 
Se esta aumentando la presión legal y judicial sobre Internet, usándose de forma ambivalente el término “libertad de expresión”, atacada cuando hablamos de Internet y defendida hasta la saciedad cuando se refiere a la facultad de los grandes medios de mentir o hasta provocar conflictos (recordemos el conflicto causado por la publicación de unas incendiarias viñetas de Mahoma [22] en un ultra derechista diario danés) .
 
En conclusión, nos encontramos con unos medios nuevos y alternativos que en el ámbito digital empiezan a socavar el imperio mediático de las grandes corporaciones, pero creciendo en situaciones muy precarias, con múltiples “espadas de Damocles” pendiendo sobre su supervivencia e independencia. 
 
En todo caso, el futuro de Rebelión.org u otros medios alternativos, no depende tanto de estas “amenazas externas”, ni del trabajo diario de sus editores, sino de las múltiples colaboraciones que nos hacen llegar   tanto autores como traductores, de la asistencia técnica de informáticos, de   la Organización No Gubernamental que nos presta el alojamiento para su web, todos ellos de forma solidaria, desinteresada y gratuita, y, principalmente, el apoyo diario de sus lectores.
 
Gracias por su atención.


[2]    Ramonet, I, Abecedario (subjetivo) de la globalización, Seix Barrral 2004.
[6]       Según otras estadísticas la tasa baja hasta el 13%, véase: http://www.ciberamerica.org/NR/rdonlyres/e6l55ipmfrbfssb7rfil2duanrhw3xrh2fz6jo5wpsv54jc5wwzjzdcda54ahidycjnf7i2k2zarvh/DesarrollodelaSociedaddelaInformacinypenetracindeI.pdf y http://www.n-economia.com/pdfhome/Panorama_TIC_lat.pdf
[7]    Las estadísticas de Usuarios Mundiales del Internet fueron actualizadas en Enero 31, 2006. Los datos de población se basan en las cifras actuales de world gazetteer. Los datos de usuarios provienen de información publicada por Nielsen//NetRatings , ITU , NICs, ISPs y www.exitoexportador.com .
[9]    Rebelión.org, historia de una lucha - La honda de David. http://www.rebelion.org/noticia.php?id=10881
[10] http://www.tlaxcala.es/
[11] Pascual Serrano. "Llegó la hora de sustituir a los grandes medios de comunicación". www.pascualserrano.net 30-10-03
[12] Ernesto Carmona. La gente está dejando de creer en los medios. Adital. www.rebelion.org/medios/040409ec.htm
[17] Es la página de inicio de esta cadena, no permite medir en el ranking del dominio.
[22] En febrero de 2006 estalló revueltas en muchos países con población mayoritaria musulmana por la publicación de un diario danés de unas caricaturas que asimilaban Mahoma a un terrorista, para saber más se puede leer el artículo “Lo que es sagrado para el otro” de Sami Naïr, http://www.rebelion.org/noticia.php?id=27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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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2] 인터넷과 미디어 : 지역간 협동 프로젝트 - 오이완 람

  

영문 발제문은 다음 싸이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ahoi.pbwiki.com/internetmedia

 

[발제문 2]


인터넷과 미디어 - 지역간 협동 프로젝트1)


오이완 람 (Inmeda)


3관계가 없는 연결 : 기술의 비약적 발전과 네트워킹이라는 상투성을 넘어서


사람들을 국경과 사회적 구조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인터넷 세계의 비약적인 기술 발전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J.P. 바로우는 1996년에 사이버스페이스의 독립 선언을 제창했으며, 최근에는 이토 조이치가 새로운 민주주의로서 블로그의 네트워크 효과를 설명했다. 반면에 클레이 셔키는 웹블로그가 현실에 대한 변함없는 권력 원칙 - 세계인구의 20%가 전체 자원(인터넷 트래픽)의 80%를 소유한다는 확실한 불균형 -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디어 프론티어’에서, 댄 길모어는 모든 개인이 “미디어”가 될 수 있는 풀뿌리 미디어에 대한 구상을 제안했다. 그렇지만, 개개인의 집합은 풀뿌리라는 “정체성”을 구성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와 같은 영웅들의 확장이고, “실제 인생”의 혁명은 실제를 통해 인간의 궁극적 확장이 될 것인가? 더욱 안 좋은 것은, 심지어 개개인의 해방조차 쉬워 보이지 않고, 네오의 해방은 개별적인 노동력을 실제 사회-정치 제도의 욕망 기관에 바치는 신화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네오가 자기 자신은 해방되었다는 꿈을 꾸면서 생체-에너지 배터리에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그가 진짜로 자유롭게 기계를 왔다갔다 하는 것인지 구분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다.

맥루한은 텔레비전 시대의 등장 이후에 인간의 확장이 단절 효과를 가지고 있다고 일깨워 주었다 : 인간 시각의 확장으로서의 텔레비전이 인간 자신의 눈으로 본다는 능력을 제거했다. 인터넷 - 사람들 사이의 연결 / 관계의 확장으로서의 - 은 어떠한가?

인터넷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더 쉽게 네트워크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네트워크는 그 자체의 가치로부터 해방되어 순수한 형식이 되었으며, 사람들은 접속되어 있으나 연결은 없다.

예를 한번 보도록 하자 : 팜바죽 뉴스2)에 대해 들어본 이가 있는가? 팜바죽 뉴스는 아프리카의 사회적 정치적 정의에 대해 다루는 영문 웹사이트이다. 이것은 인터넷 세계에서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존재한다. 우리가 검색 엔진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검색해 보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떠한 관계도 없거니와 관계를 만들어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와 아프리카 사이에는 많은 관계가 존재한다 : 굶주리고 죽어가는 아이들, 비탄에 빠진 여성의 이미지는 개발활동을 하는 NGO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 또는 우리가 여행하기를 꿈꾸는 아프리카에서의 야생 생활은 ‘내셔널 지오그래피’와 여행사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런 관계들은 결코 우리를 팜바죽 뉴스로 인도하지 않는다. 한국의 웹사이트인 ‘BASE21'3)은 먼지와도 같은 사이트이다.



세계적 제국 대 지역화된 운동


최근 들어 소련과 동구에서 공산주의 정권의 몰락 이후 특히 세계화에 대한 논의들이 많아졌다. 세계적 자본 흐름과 노동의 분할은 세계은행, IMF, WTO와 UN, 인권과 환경문제를 다루는 세계적 NGO 협의회, 그리고 NATO와 미군 같은 지구적 제도 내에 새로운 정부적 패러다임을 만들어 냈다. 안토니오 네그리는 이것을 “제국”이라 불렀다.

그러나 지난 몇 십년간, 더욱 더 많은 지역 NGO와 민중의 조직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운동은 실존하는 정치적 국경에 제한되었다. 우리의 현대사, 그중에서 60년대를 반추해 보면 중국의 문화혁명, 프랑스에서의 68혁명, 미국의 반베트남전 운동, 동구의 프라하의 봄 등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 이렇게 정치적인 감성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민중들은 세계의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정치적인 사건에서 자극을 받았다.(그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현재는, 독일 고양이의 조류독감 감염 의혹 사건이 지난 몇주동안 프랑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집회라던가 혁명적 분위기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의 국제 운동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작년 12월 반WTO 운동의 평가 회의에서, 한국 측 참가자인 이대업은 왜 국제연대에 대한 강령이 없는가에 대한 질문을 했다. 홍콩민중연대(Hong Kong People's Alliance)라는 조정 주체가 있었지만, 조직들 사이에서 투쟁 전략을 위한 어떠한 조정이나 소통은 없었다. 질문은 굉장히 신랄했는데, 왜냐하면 홍콩에는 여러 다국적 기업, 거대 NGO들, 국제적이고 지역적인 NGO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국제운동에 대한 연대를 보여주곤 했었지만, 홍콩에서는 어떠한 국제연대운동도 없었다. 예를 들어, 홍콩보다 대만에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이라크 반전 운동에 참여하였다 ; 그리고 필리핀에서의 최근의 정치적 표현은 아무리 홍콩 내 필리핀인이 많다 하더라도 우리 사회 내에 어떠한 논의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 지역에서의 냉전 정치학과 관계가 있다. 홍콩은 NGO 운동에서 국제 (미국이나 유럽) 펀딩을 위한 전략적인 지점이었다. 많은 펀딩이 중국 본토와 관련되어있으며, NGO는 주로 인권, 노동 상황 등에 대한 보고서를 (영어로) 펀딩 기관에 정리하여 제출하는 일을 맡았다. 자신들의 도시는 그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일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2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많은 지역 조직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역 간 그리고 외국과 지역 운동을 연결하는 조직은 없다.

우리의 운동은 더욱 더 자기중심적이 되어가고 있다. 양쪽 모두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농민의 이해는 한국 농민의 이해와 충돌하고 있다. 지역의 노동자들은 불법으로 외국에서 온 값싼 노동자들을 싫어하고 있다. 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 관계가 끊겨 있으며, 운동 진영에서 더 넓은 맥락으로 상황을 이야기하는 노력은 아주 한정적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민중들이 가져야 할 타자와의 감정적 연결이나 연민, 이해력을 발전시킬 문학 작품이나 문화적 생산물들이 없다.

우리는 사실 (oxfam과 같은) 개발기관이나 문화 산업을 통해서 다른 나라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아프리카는 굶주린 아이들이나 동물들이 많은 곳이다. 우리는 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기부금을 내거나 야생을 경험하기 위해 그곳으로 여행을 간다 ; 우리는 타이페이에서 가장 좋은 카페나 태국에서 가장 좋은 SPA가 어딘지를 안다 ; 마카오는 도박이나 매춘을 위한 도시이다 ; ‘대장금’을 통해 우리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운다.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오직 문화 산업을 통해서이다. 이런 지식은 정말로 왜곡되어 있지만, 우리에게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일깨워준다.

12월의 반 WTO 동원에서, 많은 홍콩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은 WTO와 미국에 대항하는 농민들에 대한 연민과 한국적인 의사표현방법에 대한 이해, 홍콩 정부와 주류 미디어에 대한 불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한 감정은 반 WTO 운동 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문화 산업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 아이러닉하게도 반 WTO 집회는 18일의 한국 지원 시위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유지되지 못했으며 실제 지역 운동의 자원으로 변화되지도 못했다.

우리의 운동이 다른 나라들의 민중운동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또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일깨우고 그런 지식을 지역운동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탈식민주의와 국제 뉴스


학계에서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체계화시킨, 이론과 연구 의제가 서구의 틀에 맞춰져 있으며 그러한 서구의 지식 체계에 동양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이런 효과는 국제 뉴스의 운영에서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류 국제 뉴스는 로이터나 AP같은 서구 지향적인 통신사에게 지배되어 있다. 민중의 세계관은 국내 뉴스나 서구에 한정되어 있으며, 그들의 이웃 국가들은 무시되고 있다. 그리고 이 국제 통신사들이 서구 기준으로 타자들에 대한 기사를 쓸 때, 이 뉴스들은 지역의 이해관계로부터 완전히 탈맥락화(decontexualized)되거나 주류 국제 정치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

여기서, 나는 나를 interlocals.net 프로젝트로 이끈 몇가지 경험을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다.

지난 10월, 가디언지 기자가 중국 남부의 (홍콩 근처) 타이시라 불리는 마을에서의 풀뿌리 민주주의 투쟁에 대한 기사를 썼다. 기사4)는 죽임을 당한 활동가의 죽은 모습을 상세히 기록했다 : 목이 돌아가고 눈알이 뽑힌 모습. 이 독점 기사는 24시간 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러나 마을의 민주 투쟁은 몇 달간 계속되었다) 이틀동안, 이 활동가의 모습은 불의로 고생하는 다른 지역에 보여졌다. 기사는 우리가 영어권 세계에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실패한 방법으로 분노를 일으켰다. 그리고 오직 영어 기사를 통해서만 세계의 나머지 사람들은 타이시 사건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중국에 대한 서구의 표현방식은 모두 중국의 위협, 탄압, 폭동, 환경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국제 뉴스의 주제는 국가의 상태이다. 우리는 그 나라 사람들의 진정한 삶을 알 수 없으며, 그들의 이해관계나 사회적 의제에 대한 언급도 없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각자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 없이는 어떠한 관계도 만들 수 없다.

개인 블로그인 EastSouthWestNorth5)는 중국 본토와 대만, 홍콩의 지역 뉴스와 블로거 의견을 영어로 번역하는 큰일을 하고 있다. 이 블로그는 국제 뉴스의 서구 저널리스트들에게 “중국 원주민”의 의견을 알려주는 대안적 뉴스 출처가 되었다. 대안적 뉴스 출처로서의 EastSouthWestNorth는 성공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블로거의 정치적 입장의 모호함으로 인해 - 아무리 그의 취향이 깨끗하다 할지라도 -  그렇게 대화적이지는 않다.

더 교훈적인 경험은 지난 5월 중국 본토에서 반일 시위가 일어났을 때 있었다. 두 나라간의 감정은 국수주의적 주류 미디어에 의해서 조정되었다. 그러나 블로그 영역에서, 블로거 안드레아 륭은 중국 블로거 사이의 논의들을 그의 블로그에 번역해서 실었다. 그리고 다른 일본인 블로거 조이 이토는 번역된 논의들을 읽고 자신의 위치를 설명하는 글을 올린 후 두 나라의 사람들 사이의 더 많은 대화를 주문했다. 비록 블로거 써클 사이에서의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에게는 국경을 초월한 공간이었다. 이런 종류의 대화는 주류 미디어에서는 불가능하다.



지역 상호 프로젝트(inter-locals project)


블로거들의 개별 독창성과는 별도로, 글로벌 보이스 온라인6)과 같은 하나로 조직된 주체들이 있다. 이 사이트는 처음에는 중국과 아시아 문제에 초점을 맞추는 웹사이트였으며, 주로 정보 위주로 다루었다. 그리고 이 정보의 출처는 주류 국제 뉴스와는 달랐다. 그렇지만 세계의 블로그 영역의 (영어로 쓰여진) 모든 것을 다루는 사이트로 확대되어 비영어권의 블로그 영역에서 벌어지는 논의들을 정리해주는 많은 자원봉사자 풀들이 가세한 이후에는, 자신들이 제기하는 아이템들이 보통 아주 제한된 컨텍스트화를 거치기 때문에 그 사이트는 자신들의 가치을 잃게 되었다. 이 사이트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 “세계는 이야기 한다. 우리는 듣고 있는가?” 물론, 세계는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목소리를 단지 목소리들의 집합이 아니라 정보나 소통, 그리고 대화로 바꾸어야할 필요가 있다.

사회 운동 부문에서, 우리는 또한 갖가지의 정보교환 그룹들을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아시아-사회-운동의 인터넷 그룹7)들이 있다. (조동원씨가 나에게 소개해주었다.) 이 사이트는 굉장히 정보가 많은 사이트이지만 무엇이 운동에 관련되어 있고 무엇이 관련되어 있지 않은가하는 정의를 내리는 운동 단체에 의해 운영된다. 이 사이트는 보다 한정된 논의를 하는 활동가들의 메시지 게시판이 되었다. (에코 체임버 효과, echo chamber effect)

우리는 무엇이 운동에 관계되며 / 관계되어야 하는가를 정의할 수 있는가? 왜 운동 미디어는 대중화되지 못하는가? 이것은 위선적인 질문이 아니다. 2년 전에, 우리가 대안적인 인터넷 미디어 프로젝트를 공식화할 때, 입장 차이는 우리를 갈라놓았으며(친숙한 이해의 분열) 우리는 두 가지 다른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 글로벌네트워크8)와 인미디어홍콩,9)

나는 한국의 TV 드라마 ‘대장금’으로 돌아가고 싶다. ‘대장금’은 홍콩에서 가장 인기있는 드라마의 하나이며 많은 의미있는 논의점들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중국-일본의 지역적인 역사를 읽기 시작했다 : 어떤 이는 대장금과 비슷한 지역의 대중 드라마를 비교하고 정치에 대해 논의했다 : 자유주의와 궁중 음모 등. 이는 하루의 6분의 1의 시간을 TV앞에서 보내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의식적인 과정이다.

“뮌헨”이나 “브로크백 마운틴”, “JSA”같은 영화들은 어떠한가? 그리고 학교와 사회에서의 청소년 정책은 어떠한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대를 구축해야한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들이 무엇에 관계하고 있는가부터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가? 그리고 사회변혁의제와의 연결고리는? 성실한 사람들의 미디어는 그 믿음의 메아리(echo chamber)가 되지 않는다.

뉴스, TV, 영화 등과 같은 주류미디어와 문화 산업은 인간 존재 상태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TV를 보지 말라는 요청을 할 수 없다. 사실, 이런 모든 미디어는 현재 상태를 위해 사람들의 관심과 욕망을 왜곡하면서 그것들을 모으는 힘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반WTO 시위대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에 대한 해석은 시위대를 “폭도”라고 꾸며냄으로써 야기된 공신력 위기로부터 주류 뉴스 산업과 정부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이 전장으로부터 벗어나 우리들의 말만 메아리치는 자신 만의 방으로 들어갈 것인가?

물론 나는 에코 체임버 미디어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강한 운동의 주관성을 건설하는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국제적인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대중적인 수준에서도 기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 상호 웹사이트를 디자인하는 데에 있어서, 나는 관심 이상, 미디어의 한계의 강조, 국경을 넘는 대화적인 편지들, 번역과 대안적 미디어와 블로거들 간의 실제적 내용 교환 네트워크 등을 가지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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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3] 뉴미디어 시대, 인터넷 진보언론의 역할 - 유영주

 

 

 

 [발제문 3]


뉴미디어 시대, 인터넷 진보언론의 역할


유영주 (민중언론 참세상 편집국장)


1. 뉴미디어 시대


최근 나우콤의 발표에 따르면 한 인터넷방송에서 방영한 ‘괴물’ 예고편에 무려 3만여 명이 몰렸고, 3월 14일 낮에 열린 WBC 미국 전에는 2만여 명이 몰렸다고 한다. 야후코리아에 따르면 13일 열린 WBS 한국 대 멕시코 전의 총 접속회수는 165만 건, 동시접속자수도 17만 명에 달해 인터넷을 통한 스포츠 생중계 사상 최고 동시접속자수를 기록했다. 일부 언론은 인터넷이 뉴미디어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올해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의 등장은 방송과 통신 영역에 많은 화제를 뿌리고 있다. IPTV는 초고속통신망을 이용한 양방향 티비 서비스로, 말 그대로 티비를 통해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IPTV는 실시간 방송 뿐만 아니라 VOD서비스, 인터넷을 통한 검색, 메일, 홈뱅킹 등 인터넷 서비스 이용, 무제한의 채널 편성도 가능하다. IPTV는 KT가 지난 해 발표한 ‘미래전략2010’의 신성장 5대사업의 하나로 설정되었는데, 알려진 바로는 광가입자망 구축 등에 2500억 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통신업체들은 IPTV가 기존 케이블티비와 차별된 서비스임을 강조하는데, 따라서 IPTV에 대한 규제는 방송통신 융합미디어에 적합한 새로운 규제 정책과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유선통신, 지상파방송, 케이블티비 등에 적용되는 전통적인 규제 모델을 IPTV에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이 주장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통신업체의 개입이 자유로워지게 되고, 따라서 기존 방송이 갖고 있던 공공성, 공영성의 영역이 일거에 무너질 수 있다. IPTV를 둘러싼 소유 구조, 공공 채널 편성, 프로그램 제작에서의 규제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뉴미디어로는 이미 상용화되어 있는 디엠비(DMB. 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를 비롯, 와이브로(Wibro. Wireless Broadband), 브이오아이피(VoIP. Voice over IP), 티피에스(TPS. Triple Play Service) 서비스 등을 포괄한다. 

문제는 자본의 침투. 전통적인 방송 영역이 공공성과 공영성이 일정하게 유지되고 법제도적인 규제를 받았지만, 뉴미디어는 국가의 지원 아래 통신자본이 주도하고 있어 미디어에 대한 수용자의 권리가 크게 침해받게 된다. 자본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윤을 얻을 것인가에 골몰하는데 방송과 통신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자본이 방송 통신 영역을 장악하기 위해 갖가지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동안 국가는 관련 부처의 정책을 통해 유비쿼터스라는 장밋빛 환상을 유포하며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더군다나 최근 한미FTA 협상이 추진되면서 방송 미디어 영역에 대한 개방도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미무역대표부(USTR)는 의회에 통보한 ‘협상 통보문’ 등을 통해, 탈규제와 신자유주의, 방통융합의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기간통신사업자의 외국인지분제한율(49%)을 풀게 한다는 내용을 밝힌 바 있다. 국내 통신회사를 통해 방송사를 장악하겠다는 일종의 우회 전술인 셈이다. 이는 방송통신 융합이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실의 일이라는 점에서 사실상 방송 미디어의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 무역대표부의 무역장벽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방송광고공사의 해체를 포함하고 있다. 지금 당장 광고공사가 없어지면 KBS MBC SBS 정도만 살아남고, 라디오와 지역방송은 전멸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전망이다. 무역장벽보고서는 100분 중 80분 이상 국산물을 방영하고, 영화는 총상영시간 100분 중 25분, 애니메이션은 100분 중 45분, 국내대중음악은 100분 중 60분 이상으로 정한 방송법도 풀라는 요구내용을 담고 있다. 케이블과 위성방송 역시 안전한 영역이 아니다.

한미FTA 협상과 관계없이 한국에서 뉴미디어는 자본에 의해 장악되고 있으며, 최소한의 공공성 영역도 보장받지 못할 처지에 놓여 있다. 뉴미디어는 현란한 기술발전을 기반으로 하지만 뉴미디어를 관통하는 정신은 시장주의이며, 뉴미디어를 장악하는 컨텐츠는 상업주의 내용으로 채워지고 있다. 뉴미디어가 환상인가 아닌가, 이로운가 아니가 한가롭게 이야기할 겨를이 없다. 뉴미디어가 속도를 내고, 거기에 한미FTA라는 폭탄이 터지면 미디어, 뉴미디어 구분할 것 없이 초토화된다. 그러므로 뉴미디어에 눈꼽만큼도 환호할 이유가 없고,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2. 인터넷 환경


미디어 환경 또는 인터넷 환경의 변화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진보적 사회운동의 맥락에서 볼 때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터넷 환경은 좋지 않다. 일찍이 표현의 자유, 정보 공유, 쌍방향 소통, 대안 네트워크 형성 등을 위한 공간이자 수단으로 거론되었던 인터넷은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아주 없어졌다고 할 수도 없겠지만.  

달군, 지음 두 진보넷 활동가가 이번 한국사회포럼에서 발표한 ‘웹 2.0? 정보운동 2.0!’ 글에서 “그 후로 10년이 지났다. 지금의 웹은 어떠한 모습인가? 웹은 더 이상 새로운 공간이 아니다. 신선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웹은 익숙한 질서가 지배하는 실망스런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사회운동은 웹에서도 소수의 위치에 유폐되어왔다. 이제는 웹을 통한 사회운동, 웹상에서의 사회운동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라는 회의도 낯설지 않다”고 썼다.

아닌게 아니라 지금 인터넷 환경은 표현의 자유는 국가의 감시 검열 기능에 따라 제약되고, 정보 공유는 상업 서비스망에 의해 구속된다. 이메일은 소통의 도구에서 마케팅의 수단으로 바뀌었고, 커뮤니티 역시 포탈이 제공하는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무엇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쌍방향 소통과 대안적 네트워크의 모든 기대를 포탈이 앗아가 버렸다는 점이다. 

달군, 지음 두 활동가는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인터넷 환경의 기형성을 고발했다. “진보진영의 진지들, 그것도 전 진보진영의 통일된 진지를 구축하려는 시도는 실패했다. 폐쇄된 BBS 환경에서 열린 인터넷 환경으로 이동하자마자 커뮤니티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 독립네트워크에는 아군만이 존재했을 뿐 대중이 없었다. ... 어떻게 효과적인 서비스를 할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을 불러모을 것인가, 효율적인 소통을 일으킬 것인가, 어떻게 사람들을 교육할 것인가, 어떻게 정보를 공유할 것인가, 어떻게 자료를 축적할 것인가에 관한 모든 정책들이 상실되었다.”

참세상이 뉴스컨텐츠를 네이버에 제공할 것인가를 두고 많은 논란을 벌인 바 있다. 말하자면 독립 컨텐츠를 포탈자본에 넘겨줄 수 없다는 명분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더 많은 독자들, 네티즌에게 노출해야 한다는 유혹을 끝내 떨치지 못했다. 결국 지난 2월부터 네이버 뉴스컨텐츠 서비스를 하게 되었다. ‘노출’의 위력은 대단했다. 가령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기사가 네이버 뉴스 페이지 중간에 편집된 적 있었는데, 참세상 페이지에서 200회 정도의 조회수가 되는 시점에 네이버에 걸린 같은 기사에 덧글만 150여 개가 달려 있었다. 모르긴 해도 참세상으로서도 당분간, 어쩌면 영원히 포탈의 저 ‘노출의 위력’을 무시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진보적 컨텐츠 생산자로서 갖는 고민은 동일하다. 어렵게 힘들게 생산한 컨텐츠가 유통, 배급, 재생산되지 않았을 때 참으로 절망스럽다. 인터넷언론 주체들이 스스로 생산한 컨텐츠를 매개로 해서 독자와 교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터넷언론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는 미디어 영상활동가들의 고민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항하는 다양한 컨텐츠 기획과 생산 활동을 벌이고도, 유통 배급 기회를 갖지 못할 경우, 거기서 오는 절망감은 극한 피로감으로 연결된다.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진보적이고 독립적인 컨텐츠 유통의 허브로 작동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세계화반대미디어문화행동 같은 페이지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참세상 같은 언론페이지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곤란하고 불투명하다’가 답이다. 한편으로는 웹2.0을 보면서, 다음 수단을 내다보는 논의를 붙일 수는 있다. 그러나 웹2.0 역시 인터넷 사용자들의 활동 경향의 측면과 자본의 기획이 결합되어 재구성되는 또 다른 ‘기형적인’ 인터넷 환경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말하자면 미디어 환경, 인터넷 환경에 있어 자본이 장악한 영토는 거의 절대적이고, 반전시킬 계기란 사회주의혁명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실마리는 없는가. 논리적으로만 보면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본이 영토를 장악했다고 한다면 자본의 영토 안에서 반란을 꾀하면 된다.  황규만 진보넷 활동가는 “별게 아니다. 진보진영의 활동가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영달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성실한 운동과 정보공유를 통한 집단지성의 발전. 그리고 서로간의 운동에 대한 자발적이고 일상적인 연대를 지향하는 것에서 출발하면 된다. 방법은 많다. 포털의 대자본이 투여된 검색 서비스가 아니더라도, 애써 우리 내용을 저들에게 갖다 바치지 않더라도, RSS 또는 TAG등의 기술만으로도 우리가 생산할 컨텐츠를 충분히 네트워크화 시킬 수 있다. 소스는 많다. 인터넷이니까”라고 주장했다.

결국 반란을 꾀하고 저항하는 사회구성원들간 네트워크와 소통, 그리고 연대 전략을 갖는 문제다. 인터넷 환경은 우울하지만, 네트워크와 소통, 기획과 실행 경로를 가질 수 있다면 포기할 일은 아니다.



3. 네트워크와 소통, 기획과 실행경로 


네트워크와 소통은 어떻게 가능한가. 오늘날 저항의 조직 주체가 어떻게 재구성될 수 있는가.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열어놓고 살펴보자. 수직적 수평적을 나누어 절대시할 필요도 없고, 특정 조직모델을 적용하자 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 필요도 없다. 기존 질서에 저항하는 모든 부문 지역 주체들이 미디어(정치)전략을 열어놓고 토론해가면 된다. 이로부터 네트워크와 소통을 위한 모든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수단과 방법에 있어 미디어 컨텐츠의 생산과 유통은 유력한 것이며, 네트워크와 소통을 위한 특정한 인터넷 허브 구축 문제만큼은 전향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문제는 기획과 실행경로다. 오늘날처럼 자본이 세상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조건에서, 즉 기존 질서에 반발하거나 저항하는 세력을 주도면밀하게 관리하는 세상에서 ‘반란’을 꾀하는 일이란 결코 만만치 않다. 사회구성원의 자발성이 상식과 보편의 가치를 내포한다 하더라도 자본에 의해 그 가치가 왜곡되거나 의지가 교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웹2.0에서 회자되는 집단지성의 구성도 그러하거니와 사회구성원간 연대와 소통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지고 발전하는 데는 상당한 어려움이 작용한다. 

지난 시기 오마이뉴스가 뉴스게릴라를 동원해서 종이신문을 물리치던 장면은 통쾌한 기억으로 남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 후 오마이뉴스와 첫 언론 인터뷰를 한 것도 그 자체로 낯설고 흥분되는 장면이었다. 오마이뉴스는 인터넷언론의 모양을 띠었지만 개혁세력이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장악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가령 2004년 총선에서 오마이뉴스나 서프라이즈 같은 언론과 노사모와 국민의힘이 의제연대 또는 의사연대를 이루었던 과정을 단순하게 보고 넘어갈 문제는 아닌 듯 하다. 

가령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주어진 인터넷 환경의 특성이 있었고, 인터넷 공간을 움직인 의제와 담론이 있었고, 의제와 담론을 생산하는 메카니즘과 조직이 있었다. 조중동에 대한 반발과 정서가 뉴스게릴라들의 자발적인 활동과 연결되었고, 반세기 동안 한국 사회 주류였던 개발냉전세력(보수세력)의 정책과 선동에 맞서는 개혁과 민주화 의제가 작동했고, 서프라이즈와 같은 논쟁 싸이트의 흥행과 노사모와 국민의힘과 같은 네트워크가 작동했다.

이 시기 한국사회를 강타했던 개혁세력의 기획, 그것은 안티 보수세력과 개혁의제의 적극적인 옹립으로 이루어졌다. 대중은 환호했다. 효순, 미선 사건을 겪으면서, 오노의 금메달 낚아채기를 보면서, 월드컵 4강을 거치면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시위을 거치면서 광장의 동원정치는 절정을 향했다.

그런데 분명한 건 2005-6을 거치면서 개혁과 민주화 의제는 더 이상 세상을 움직이는 의미있는 이슈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광장의 정치를 연출했던 그 많던 대중들은 과거와 같은 광장을 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2000-2004년처럼 열광했던 광장은 쉽사리 연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혁세력이 동원할 수 있는 의제와 기획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최근 열린 한국사회포럼의 주제가 ‘한국 사회운동의 위기’였는데 이 주제가 의미하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개혁의제를 동원한 개혁세력의 핵심이나 그들을 지지하고 따랐던 대중 할 것 없이 모두가 불안정해 보인다. 민주주의와 개혁을 위한 전위적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파병과 황우석 사태와 농민의 죽음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을 접하면서 스스로 정치적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한미FTA 강행이라는 뒤통수를 맞자 분열증에 가까운 혼동을 겪는 듯 하다.

이렇게 보수-개혁 전선이 붕괴되고 있다. 5.31 지자체 선거를 거치면 인물과 계파에 따라 분열과 결집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전반적인 보수화 경향속에 변별점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최근 노무현정부가 추진하는 한미FTA 협상은 전반적인 보수화 경향이 시작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한편으로 노무현정부와 시민사회운동이 맺어왔던 정치적 가버넌스의 붕괴를 의미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보수-개혁의 대립을 넘는 커다란 모순에 휩싸여 있다. 그것은 노무현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행한 데 연유하는데 노동유연화 강화, 사회양극화 심화, 사회적 빈곤의 확대, 개방화 시장화에 따른 생태 파괴와 공공성 위협,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착취 고착화, 남북 시장화의 가속과 같은 것들이다.

이렇게 개혁의제의 시효가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개혁의제를 뛰어넘는 대안의제, 대안 담론의 목소리가 그것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신자유주의 문제를 넘는 대안 의제, 대안 담론이 부재한 가운데,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가 개혁세력의 숨통을 연장해주는 기능을 한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이런 점을 주시하면서 사회구성원들의 저항에 직접적인 관심을 갖고 진보적 미디어 컨텐츠를 생산하는 주체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주체들이 신자유주의세계화반대미디어문화행동과 같은 미디어활동가네트워크, 진보넷 커뮤니티와 진보블로그, 참세상과 같은 진보적 인터넷언론 등이다. 이들은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는 직접적이고 다양한 컨텐츠 생산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미디어와 인터넷 매체의 맥락에서만 보면 생산과 유통과 대중적 영향력의 측면에서 작은 규모에 불과하다. 이것이 말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네트워크는 되어 있되 전략 설정이 미비하고, 소통은 하되 전술에 메말라 있다. 다루는 의제는 거시적이지만 기획이 따라가지 못하고, 미디어(정치)전략의 경로 마련에 애를 먹고 있다. 

한편 네트워크의 방식은 매우 입체적이다. 필요와 요구에 따라 다양한 수준의 횡적 네트워크가 생성 소멸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네트워크의 필요와 요구는 대체로 사안에 대한 공동대응이라는 당위적 수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의제의 경우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한다는 선동은 강하게 던져지지만, 구체적인 사안과 쟁점에 대한 계급적 해석과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데 곤혹스러운 모습이다.

개혁세력이 미디어를 어떻게 동원했는가, 의제를 어떻게 생산하고 퍼뜨렸는가와 비교한다면, 안타깝게도 진보적이고 독립적인 네트워크 주체들이 갖는 의제는 좀처럼 대중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거나 그런 기회나 계기를 포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은 미디어(정치)전략과 경로 설정의 부재로 이어진다.

뉴미디어 환경, 거듭 변화하는 인터넷 환경 속에서 진보네트워크센터가 이 미디어전략을 구사할 하나의 허브가 될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문제가, 대안 의제와 대안 담론 마련이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BASE21의 재편을 통한 국제적 네트워크와 소통, 기획과 실행경로를 포함한다.



4. 진보적 인터넷언론


한국에서 인터넷언론의 유형은 고만고만하다. 고만고만하다 함은 웹1.0에 기반한 선동 기능, 정치적 활용 수단, 의제와 담론의 생산 거점 등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는 이야기다. 보수나 개혁이나 진보나 인터넷언론에의 선동은 대체로 감동이 없고, 특정 정치세력의 무미건조한 기관지적 성격으로 자리잡기도 하며, 의제와 담론이래야 과거의 것을 우려먹는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사태가 이러다보니 논쟁도 죽고, 토론도 죽고, 발언도 죽는 우울한 경향이 뚜렷해 보인다. 사태가 좀더 발전한다면 아마 미디어로서의 인터넷언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의문이 던져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인터넷언론은 특정 도메인과 제호, 페이지의 권위를 기반으로 자신의 독자를 확대하는 전략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조중동 종이신문의 영향력은 30%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고, 포탈의 저널리즘의 기능이 극단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인터넷언론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인터넷언론의 정치적 경향성을 보수, 개혁, 진보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최근 인터넷언론의 지형이 보수적 경향의 확대, 개혁적 경향의 유지, 진보적 경향의 상대적 축소 흐름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만큼 인터넷공간은 더 이상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이야기이고, 정치적 경향과 관계없이 어떤 컨텐츠를 담는가에 의해 페이지의 권위와 지명도가 결정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인터넷언론 지형에 있소 보수-개혁-진보의 경계가 사안과 쟁점에 따라 급격하게 무너지거나 혼재되는 양상도 나타난다는 점이다. 가령 황우석 사태 때 다수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언론의 대부분은 강력한 선동을 통해서건 침묵으로건 황우석을 지지하는 태도를 보였는데, 여기에는 개혁언론이나 진보언론의 일부도 가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딴지일보나 서프라이즈 등 일부 개혁언론은 내놓고 황우석을 찬양하는 작태를 연출했다. 선과 악이 뚜렷이 구분되었던 시기에는 조중동을 비판하고 대안언론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한국 사회 발전과 직결되는 효과를 가졌으나, 오늘날 신자유주의 미디어전략이 관철되는 가운데 정보가 왜곡되는 경향이 복잡해지자 개혁, 진보언론조차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하고 휘둘리는 모습이 곧잘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거꾸로 진보적 인터넷언론의 역할을 뚜렷이 해야 한다는 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언론지형에 있어 개혁언론과 진보언론으로 뭉둥그려진 지금까지의 흐름이 일단락될 시점을 맞고 있다. 조중동에 맞서 오마이뉴스가 개혁과 민주화 의제를 대중화시켰듯이, 조중동과 개혁언론에 맞서 진보적 대안 의제와 담론을 대중화시키기 위한 진보언론의 출현을 요구받는다는 이야기다. 이는 반자본(주의), 반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명시적으로 표명하는 가운데, 한국 사회 대안 의제와 담론을 생산 유통하는 주체로 진보언론이 우뚝 서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 이 전략적인 표현을 명시하는 것은 한 차례면 충분하다. 계급투쟁은 역동적이고 현실적이다. 따라서 무엇보다 역동하는 현장에서 사회구성원의 저항의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고, 저항 주체와 저항 주체를 연결하고, 소통의 계기를 마련하는 ‘기획’이 따라가야 한다. 더욱이 추상적인 진보 의제와 담론이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다음으로 진보적 인터넷언론의 컨텐츠의 유통(배급)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특정한 인터넷언론 하나를 제대로 만드는 것이 좋은지, 진보적 독립적 컨텐츠 유통의 허브를 구축하는 것이 좋은지, 또 다른 방안은 없는지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놓고 살펴봐야 한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특정 도메인과 특정 제호의 권위에 의존한 컨텐츠 유통은 변화하는 인터넷환경에서 자리잡기 어려운 상황이 곧 도래할 지도 모른다.

한편 현실 운동과 밀착하는 컨텐츠 생산을 이루어가야 한다. 주류 지배 미디어가 다루지 않는 저항의 컨텐츠, 노동자 농민 빈민 등 사회구성원 다수의 삶, 저항을 담은 컨텐츠 생산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당장 노동유연화의 맥락에서 주도면밀하게 펼쳐지는 비정규법 개악에서부터, 새만금, 평택, 제주 등 지역 차원의 신자유주의 정책, 교육, 의료, 물, 에너지, 방송, 법률, 지적재산권 등 부분 분야에서의 세계화 공세에 직접 대항하는 미디어컨텐츠 생산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내용을 포괄하는 정세 사안이 한미FTA인데, 한미FTA는 군사적으로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정치적으로 한미동맹 문제와 맞물려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계급투쟁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문제는 한국이라는 국가에 제한되지 않는다.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미국의 대북정책은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한미FTA 협상은 남북시장화 추진의 경제적 배경을 이룬다. 이는곧 동북아 지역, 아시아 지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인터넷언론이 변혁의 세계화를 선언하고, 대안미디어로서 국제적인 자기역할을 한다는 것이 의무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5. 뉴미디어 시대, 인터넷 진보언론의 역할


뉴미디어는 사람에게 해롭다. 생태적이고 자연적이고 보편타당한 생각을 갖고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인터넷 환경도 그리 좋지 않다. 거대 포탈의 독점 구조가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편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본의 영토 안에서 반란을 꿈꾸는 주체간 네트워크와 소통을 이루고, 미디어(정치)전략 기획과 실행경로를 만들어가야 한다. 지금은 자본(주의) 자체와 싸우는 (독립)미디어의 출현을 부른다.

인터넷 진보언론은 자본(주의) 자체와 싸우는 (독립)미디어의 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우선 진보 담론과 의제를 발굴하고 여론화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또 민중의 삶과 저항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가급적 빠르게 가급적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 실천이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와 평등주의 등 진보적 가치와 괴리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국가의 인터넷 검열 감시 기능을 폭로하고 그로부터 자유로운 활동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민족주의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창궐을 경계하며 그 폐해로부터 사회구성원들을 지켜내는 임무도 도맡아야 한다. 이러한 힘을 기초로 보수와 개혁 모두를 넘는 새로운 대안 사회, 다른 세상의 길을 여는 홍보대사의 역할을 해야 한다. 동시에 동북아시아, 아시아 지역의 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네트워크와 소통 체계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것이 인터넷 진보언론한테 부여된 정세적 임무인 듯 이다. 

자 그렇다면 지금 인터넷 진보언론과 미디어활동가들의 가장 중대한 역할은 무엇일까. 두말 할 것 없다. 한미FTA를 저지하는 미디어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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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및 일정

<<프로그램>>


□ 개막식 Opening Ceremony

○ 사회 : 홍석만 (참세상 사무처장)

○ 참가자 소개 및 인사

○ 기조연설 : 김세균 (참세상 이사장)

 


□ 개막토론 :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변혁의 세계화

 

○ 개요 :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현재를 점검해 보고 대안세계화를 넘어 변혁의 세계화의 필요성을 살펴본다. 또한 자유무역체제 속에서 각국의 문화와 미디어의 왜곡, 자본의 종속에 대항한 미디어 운동진영의 과제를 점검해 본다.

 

○ 사회 : 이강택 (피디연합회)

 

○ 발제 

-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의 현재, 그리고 미래 (마이클 앨버트, Znet)

- 자유무역체제에서 문화, 미디어 영역의 변화와 대응방향 (전규찬, 영상원교수)

 

○ 토론 : 카를로스(Rebelion) / 원영수(노동자의힘) / IMC

 


□ 집중토론 : 변혁의 세계화와 대안 미디어

 

○ 개요 :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를 넘어 사회변혁을 촉진하는 세계화운동으로서의 대안미디어의 역할과 과제를 점검한다. 영역별로 나누어 집중토론을 진행하는데 첫째, 신자유주의 세계화반대투쟁 속에서의 대안미디어의 과제 둘째, 제국주의 자본 종속에 맞선 대안 방송 셋째, 인터넷과 뉴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대안언론의 과제를 주제별로 나누어 접근해 본다. 이 속에서 각 영역별/과제별 매체가 지향하고 있는 바와 상호 연대의 과제를 짚어 본다.

 

○ 사회 : 이종호 (인터넷언론네트워크, 울산노동뉴스 대표)

 

○ 1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과 독립미디어

-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의 역사와 독립미디어운동의 과제 (IMC)

-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과 미디어운동의 과제 (미디어문화행동)

- 토론 : 전국여성농민회 / 부안tv / Inmedia

 

○ 2부> 민중미디어, 제3의 대안방송

- 중남미 위성방송, 텔레수르 설립 의의와 과제 (Telesur)

- 방송영역에 대한 급진적 개입의 필요성과 과제 (한독협)


○ 3부> 인터넷과 대안언론

- 대륙과 국경을 넘은 스페인어권 인터넷 진보언론 (까를로스, Rebelion 편집장)

- 아시아 진보매체 형성의 중요성 (오이완, Inmedia 대표)

- 뉴미디어 시대, 인터넷 진보언론의 역할 (유영주, 참세상 편집장)

- 토론 : 마이클앨버트(Znet) / 진보네트워크센터

 


□ 종합토론  대안미디어와 국제 연대 ; 전진을 위하여

 

○ 개요 : 앞선 토론에서의 토론 내용과 실천 계획들에 관한 공유, 대륙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대안미디어의 국제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속에서 인터넷 뉴미디어 매체간 공동활동과 콘텐츠 생산의 가능성을 논의해본다.

 

○ 사회 : 주경복(참세상 편집위원장, 민교협 공동의장)

 

○ 참세상, Znet, Rebelion, Inmedia , IMC, Telesur, (+각 토론 사회자 : 이강택, 이종호)

 

 

<<프로그램 세부 일정>>

 

 

3월31일(금)  

14:00-15:30     개막식

15:30-18:30     [개막토론]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변혁의 세계화 

 


4월 1일 (토)

[집중토론] 변혁의 세계화와 대안미디어

09:30-11:00     제 1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투쟁과 독립미디어

11:10-12:30     제 2부  민중미디어, 제 3의 대안방송

13:30-15:00     제 3부 인터넷과 대안언론

15:30-18:00     [종합토론]  대안 미디어와 국제 연대 ; 전진을 위하여

18:00                 폐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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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 국제포럼 개요 및 취지

○ 행사명 : [참세상 국제포럼] “변혁의 세계화와 대안 미디어”

○ 일시 : 3월 31일(금) - 4월 1일(토)

○ 주최 : 참세상

○ 후원 : 인터넷언론네트워크

○ 장소 :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

 

 

<<참세상 국제포럼 취지>>

 


○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의 세계적 확산과 사회변혁의 촉진

- 1994년 멕시코 사파티스타 농민군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발효에 따른 봉기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국제적인 반대운동이 본격화 되었다. 이후 1999년 시애틀에서 WTO 각료회의에 맞서 전 세계 민중들의 집단적인 저항이 발생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은 국제인 명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은 세계사회포럼의 형성, 국제적인 반전운동, 지구적인 금융통제를 넘어서 사회변혁을 촉진하는 대안적 운동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구적, 일국적, 지역적 수준에서 대안적 사회운동이 활성화되고 있으며, 중남미에서는 국가단위의 새로운 사회변혁들을 이끌어 내고 있다.

- 한편, 한국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은 꾸준히 성장해 왔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을 지속시켜 왔다. 이에 따라 광범위한 시장개방정책이 촉진되고 있으며, 최근 한미FTA 협상 개시에 따라 사회적 갈등과 출동이 예상되고 있다.  

 


○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의 동력, 대안 미디어의 성장

- 이러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 사회변혁적 운동의 성장과 발전에는 주류 언론에 맞서 풀뿌리 중심의 자생적이고 독립적인 대안 미디어의 역할이 매우 컸다. 시애틀에서는 독립미디어센터가 자발적으로 구성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운동을 전 세계에 알렸으며, 국가별, 대륙별로 주류언론과는 다른 생생한 삶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있는 많은 대안 매체들이 발생하였다.

-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정치 군사적인 문제로 나아가면서 코소보, 이라크전 등 전쟁 국면으로 나아감에 따라 종교, 언어권별로 미국과 서방언론과는 다른 제 3세계의 대안 방송과 언론들이 발달하게 되었다.

 


○ 뉴미디어의 발달과 대안 언론의 확장

- 인터넷 및 뉴미디어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양식의 대안 매체들이 발생하고 있다. 신문, 방송 등 올드미디어 영역은 물론 인터넷과 뉴미디어 영역에서도 대안적 영역과 공간이 확장되고 있다.

- 세계사회포럼의 형성, 전쟁과 빈곤에 맞선 지구인들의 평화호소에 힘입어 세계 민중의 국제연대의 가능성이 어느 때 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대안 언론도 국제적인 연대 속에서 대안의 세계화, 변혁의 세계화로 나아가기 위한 언론의 과제를 모색하고 각 대륙별 진보언론의 현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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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참가자(단체) 소개

□ 마이클 앨버트, Znet 편집장 (www.zmag.org)

Znet은 영어를 기반으로 한 가장 대표적인 진보언론이다. 미국내외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매주 30만명의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또한 Zmagazine 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다. 마이클 앨버트 씨는 Znet의 공동 설립자이자 현재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번역 출판된 『ParEcon: Life after Capitalism (파레콘: 자본주의 이후, 인류의 삶)』의 저자이며, 참여경제학 (Participatory Economics; ParEcon) 개념을 발전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 카를로스 마르티네스, Rebelion 편집장 (www.rebelion.org)

리벨리온은 1996년 9월에 생긴 인터넷 신문이며, 스페인어로 된 첫 대안언론이다. 리벨리온은 남아메리카 및 스페인 좌파를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다. 두 지역을 주 대상으로 하지만, 최근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쪽으로도 기고자 및 기사를 확대해가고 있다. 스페인어권의 진보적 지식인들을 물론 노엄 촘스키, 제임스 페트라스 등 영어권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고정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매달 평균 65만명이 방문하고 있으며, 히팅수는 매달 평균350만 가량이다. 카를로스 마르티네스(Carlos Martinez)는 변호사이자 리벨리온 공동편집장 중 한 명이다. 현재 문화 및 정보공유(free information) 분야를 맡고 있으며, 이 분야에 종종 기고하기도 한다.

 


□ 오이완, Inmedia 공동편집자 (www.inmediahk.net, 홍콩)

Inmedia는 주류언론에 의해 주변화 되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홍콩의 민주주의 확산을 위해 시민기자를 지원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시민기자들이 참여하는 인터넷 신문을 운영하고, 방송 영역의 퍼블릭 액세스의 확장과 정보공유 운동 및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정보접근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320명의 칼럼리스트와 등록된 이용자가 2200명이고 하루 5000여명이 방문하고 있으며, 영문뉴스도 제공하고 있다. 오이완(Oiwan Lam) 씨는 홍콩에서 언론운동을 하고 있다.

 


□ IndyMedia Center(www.indymedia.org, IMC)

1999년 시애틀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 반대투쟁 과정에서 형성된 독립미디어운동진영이 제작한 홈페이지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반대 및 전쟁반대 국제 공동 행동의 발전과 맞물려서 현재 60여 개국 130개 이상으로 확산된 IMC는, 컨텐츠의 제작과 배급과 공유를 초점에 맞춘 미디어 운동 국제 네트워크의 연대틀을 형성해 가고 있다.

 




□ teleSUR
(www.telesurtv.net, 중남미 위성방송)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중남미) 국가들이 해당지역 뉴스를 독점해 온 미국과 유럽의 국제뉴스 방송에 맞서, 자체 시각으로 중남미의 뉴스를 보도할 목적으로 2005년 7월 24일 첫 방송을 시작하였다. 텔레수르는 '남쪽의 텔레비전'이라는 뜻이다. 중남미 국가들이 뉴스정보의 주권을 되찾을 목적으로 설립한 방송국이라는 점에서 '중남미의 알자지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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