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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민주당의 위기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회민주당의 위기
[책 소개] 일명 유니우스 팸플릿

국제공산주의흐름

 

 

 

로자 룩셈부르크가 유니우스라는 가명으로 출판했기 때문에  「유니우스 팸플릿」이라고도 불리게 된 이 글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쓰인 혁명가들의 가장 중요한 문헌 중의 하나이다. 이를 통해 그녀는 세계대전이 일대 전환점을 나타내게 된, 자본주의의 질적으로 새로운 단계를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이론적 틀을 제공한다.

 

세계대전의 시대 –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1차 세계대전으로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그 같은 규모의 전쟁을 경험하게 되었다. 더불어 전대미문의 파괴기계가 작동되어 무수한 사람이 살육 당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총 2천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1차 대전 직후, 스페인 독감이라는 전염병이 다시 2천만 명의 이미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사람들의 목숨을 더 앗아갔다.


1914년 8월 그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사회민주당의 노동자계급과 국제주의에 대한 완전한 배신에 직면하여, 여전히 국제주의자로 남은 혁명가들은 신속히 스위스의 찜머발트에 함께 모였다. 그리고 그 전쟁의 원인과 귀결에 대한 규명을 모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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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룩셈부르크의 이글, “사회민주당의 위기(일명 유니우스 팸플릿)” 그리고 그녀가 또한 작성한 “국제 사회민주당의 임무에 관한 원칙들”은 인류에게 있어서 새로운 그 상황을 파악하고 혁명가들의 활동에 전망을 제시하려는 혁명가들의 그러한 국제적인 노력의 일부분이었다.


그 새로운 세계사적 상황 앞에서 그녀의 믿음은 무엇보다도, 스스로 오류로부터 배우는 것, 즉 철저한 자기비판이었다. 그리고 파악한다, 모든 것을 뿌리깊이 분석한다는 그 원칙을 통해서 그녀는 이 재앙의 엄청난 규모를 인식하게 되었다.

 

“이 세계대전- 이것은 야만으로의 퇴행이다. 제국주의의 승리는 문화의 절멸을 초래한다. 하나의 현대전이 진행되는 동안은 간헐적으로, 하지만 이제 시작된 세계대전들의 시대가 계속된다면 결정적으로. 우리는 지금, 한 세대 이전, 즉 40년 전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제국주의의 승리와 문화의 몰락이냐…. 아니면 사회주의의 승리, 즉 제국주의와 그것의 수단인 전쟁에 대항한 의식적인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행동의 승리냐는 선택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 민족국가와 프롤레타리아트  

 

유니우스 팸플릿에서 그녀는 여러 장에 걸쳐 자본주의의 역사적 발전을, 어떻게 자본주의가 세계 전역으로 확장되면서 늘 새로운 지대를 영입해야만 하는지를 그리고 어떻게 해서 “뒤늦게 도착한 자들”이 “먼저 도착한 자들”의 정복물들을 무력으로, 즉 전쟁을 통해서 빼앗는 것 외에는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는지를 묘사한다. 제국주의의 출현에 관한 이장들은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전쟁의 역할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이때 모든 국가의 제국주의적 야망을 폭로한다.

 

“제국주의 정책은 어느 한 나라 또는 몇몇 나라들의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자본주의발전에서 특정 성숙도의 산물이다, 국내에서부터 이미 하나의 국제적인 현상으로서 오직 그 모든 상호관계 속에서만 인식될 수 있으며 그 어떤 개별 국가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어떤 국가의 방어전쟁도 더는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그녀는 민족국가방어전쟁들에 대해 어떤 종류의 지지도 일관되게 거부했던 혁명가들의 진영에 속한 최초의 사람 중의 하나였다. 이때 민족자결이라는 민족의 이해와 국제연대라는 계급이해 사이의 충돌이라는 견해에 대하여, 룩셈부르크는 “국제사회주의는 자유롭고 독립적이며 동등한 민족국가들의 권리를 인정하지만, 오직 국제사회주의만이 그러한 민족국가를 창조할 수 있고 민족들의 그러한 자결권을 실현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전쟁이 채 몇 달도 진행되지 않아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지배계급과 사회민주당 지도부가 한목소리로 독일의 민족방어전쟁이라 주장한 그 전쟁의 새로운 성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전쟁은 “전체로 놓고 볼 때, 이미 완전히 꽃핀 자본주의가 세계지배를 놓고 벌이는, 자본주의화 되지 않은 세계지대의 마지막 나머지의 착취를 놓고 벌이는 경쟁투쟁”임을. 그리고 예상되는 결과로 그 이전의 어떤 전쟁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던 현상, 즉 “전쟁의 지속과 더불어 점점 더 많은 나라가 관련되고 점점 더 전쟁기간이 길어져서 군사적 승패 그 이전에 모든 관련국의 완전한 경제적 황폐화, 심지어는 공식적으로 비 관련국들의 점점 더 심해지는 경제적 폐허, 그에 뒤이어 모든 나라에서 열띤 군비경쟁, 군사주의와 반동세력의 득세, 그리하여 다시 새로운 세계대전 발발이 초래”될 수밖에 없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보았다.


 그녀는 그러한 상황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가 끌어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교전국의 그 어느 하나의 승패를 무비판적으로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종결을 위해 총력을 다하는 것”이라 결론짓는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자체의 법칙성과 모순들로부터 생겨나는 객관적 역사적 조건들과 질적으로 새로운 발전단계를 다루는 동시에 로자 룩셈부르크는 1차 세계대전 발발과 관련된 주관적 조건들을 강조했다. 그녀는 상황분석 끝에, 사회민주당의 배반이 없었다면, 노동조합들이 자본가들과 맺은 작업장에서의 당쟁중지(파업금지)가 없었다면,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들이 노동자계급을 전쟁으로 동원하지 않았다면 그 전쟁은 결코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당쟁중지와 계엄 상태를 받아들이고 조국의 방어를 호소하고, 그렇게 해서 국제주의에 대한 배신을 자행했던 사회민주당과는 그녀는 사회주의의 측면에서 볼 때 그 세계대전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그 종결을 위한 노동자계급의 결정적 역할을 지적했다. 그리고 자본주의가 전쟁을 없앨 수 있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제국주의는 인류에게 있어서 그 모든 재앙적인 모습에도 현 자본주의 세계의 지배계급에는 역사적 필요성이고 따라서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의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발전 가능성에 대한 조금의 환상과 희망을 품어서는 안 된다.”라고 경고했다.


또한, 그녀는 자본주의가 존속하고 계속 학살을 자행할 수 있게 되면 노동자계급뿐만 아니라 인류 자체의 생존 가능성도 의문시될 수 있는 위험성을 전쟁 발발 후 얼마지 않아 즉시 인식했다. 인류가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양자택일” 앞에 서 있다는 점을.

 

혁명가들의 임무와 유니우스 팸플릿

 

1차 대전발발 당시 혁명가들은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부가 1914년 8월 그 전쟁을 지지했을 때, 그 때문에 제2인터내셔널이 사실상 붕괴하였을 때 처음으로 국제주의에 대한 그 정도의 배신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그네히트 등을 중심으로 뜻을 같이한 결연한 국제주의자들은 당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지 않았던 배신적인 사회민주당 지도부가 당 전체를 장악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그래서 당내에서 국제주의 역량들을 결집하고 새로운 기초 위에 새로운 인터내셔널 창립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당시 막 창립된 스파르타쿠스동맹은 이 유니우스 팜플릿을 몇 가지 수정을 거쳐 그 지침으로서 받아들였다.


그 속에 혁명가들의 활동에서 우선순위들이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강조되었다.

 

“10. 이러한 목적에 비추어 사회주의의 주요과제는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를 하나의 살아있는 혁명 권력으로 모아내고, 이를 이해관계와 과제에서 통일된 견해를 가지며 평화 시에도 전쟁 시에도 통일된 전술 및 정치 행동능력을 갖는 하나의 강력한 국제조직을 통해서 정치생활의 결정적 요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로부터 소명 받은 역할이다.”    

   

“12. 선도적 국가들의 사회주의당들의 공식 대표들이 노동자계급의 목표와 이해관계를 배반한 점을 놓고 볼 때, 그들이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로부터 부르주아-제국주의 정치로 전향한 것을 놓고 볼 때, 모든 나라에서 제국주의에 대항한 혁명적 계급투쟁을 이끌고 한데 모아내는 일을 떠맡을 새로운 노동자인터내셔널을 창립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유니우스 팸플릿은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의 이해에 역사적 이론적 틀을 제공함과 동시에 혁명가들의 활동을 위한 정치적 틀을 제공했다. 이 저작의 주요 축들, 즉 제국주의의 역사적 발전, 몰락상황에 처한 자본주의 사회의 전망,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양자택일, 노동자계급운동에서 국제주의의 문제 그리고 혁명가들의 임무, 이 모두는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유효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여전히 의미를 가지는 참조점들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 팸플릿의 이론적-역사적 기초에서 그녀 자신이 전쟁발발 직전 썼던 다른 저작, 자본축적론을 그 토대로 삼았다. 그 속에서 그녀는 자본주의의 추동력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기본모순들을 묘사하고 왜 자본의 축적이 특정 발전지점부터는 불가피하게 전쟁과 파괴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했다.

 

유니우스 팸플릿의 출간은 전쟁 전 그녀의 책 “자본축적론”의 출간이 격렬한 논쟁을 유발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또다시 일련의 국제주의자들 사이에서 거센 항의를 받게 된다. 주로 로자 룩셈부르크의 결론, 즉, 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제국주의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모든 국가의 악성종양으로 되어버렸고 그렇게 해서 “민족자결주의”를 향한 요구의 기초가 사라져버렸다는 결론은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전쟁 진행 중이던 때 국제주의자들 사이에서 이점에 대해 심각한 논쟁이 불붙었는데, 여기서 레닌은 룩셈부르크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때, 그 혁명가들은 공동의 국제주의적 입장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전망을 공동으로 옹호하면서 조직적으로 그 당시 가능한 한 국제적으로 한 목소리를 내었고, 다른 그룹들의 주저함에 대한 그 모든 비판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새로운 인터내셔널 창립이라는 전망을 추구했음을 강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로자 룩셈부르크는 인류에 대한 이 역사적 재앙에 직면하여,  한때 선도적 노동자당이었던 사회민주당의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에 대한 배신에 직면하여 상황을 그 뿌리까지 예리하게 분석하고 또 그러한 사건들로부터 교훈을 끌어내는 그녀의 능력을 통해서 혁명적 정신의 한 예를 제공했다. 이 정신은 불굴의 투쟁력, 결연함 그리고 광범위한 시각의 이론적-정치적 분석능력을 특징으로 했다.


세계대전동안의 로자 룩셈부르크

 

1차 세계대전 당시 모든 혁명가는 전대미문의 규모의 이러한 야만 그리고 선도적인 노동자당의 배신이 발생함으로 인해 처음에 진정충격과 패배감에 휩싸였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은 전쟁기간 동안 갇혀 있거나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로자 룩셈부르크 자신도 전쟁기간 동안 대부분 시간을 감옥에서 보내야만 했다.


인류에게 있어서 그러한 재앙과 사회민주당의 배신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대응은 학살의 한복판에서 공포에 대항해 그리고 그녀를 감금함으로써 그녀의 국제주의적 활동을 막으려는 시도에 대항해 그 무엇보다도 이론이라는 무기로 “반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영문전기 저자 네틀이 쓴 내용에 따르면, 로자 룩셈부르크는 잠깐의 “자유” 이후 1916년 7월 다시 갇혀있을 때 전쟁기간 동안 그녀 자신의 문학적 계획을 다음과 같이 윤곽 지었다: “1. 자본축적론이라는 제목으로 경제학에 관한 완전한 글 – 원래의 저작과 부록, 비판에 대한 대답으로서의 반비판-으로 구성.” 그리고 2. “국민경제학 입문”(정치경제학에 대한 개요)이라는 집합적 제목으로 전적으로 대중적 일련의 에세이들. 그리고 3. “나는 코로렌코가 쓴 러시아 책, 내 동시대인의 이야기'를 독일어로 번역하고 있다” (감옥에서 로자 룩셈부르크가 J. 디에츠에게 쓴 1916년 7월 28일자 편지에서).

 

그녀는 비록 감옥에 감금된 상태로 당연히 고통당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의지가 꺾이지는 않았다. 그녀가 수감기간 동안 쓴 글과 편지들은 매우 많은 영감을 불러일으킨다. 감옥 속에서 그녀가 관심을 두었던 주제들의 다양함, 감옥 속에서 그녀가 작업했던 책 3권(저서 2권과 번역서 1권), 예술과 문학에 관한 수많은 편지는 불굴의 창조적 정신을 증언한다. “나는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읽고 때로는 쓰기만 해요.” (로자 룩셈부르크가 클라라 제트킨에게 쓴 1916년 7월 1일자 편지)

 

자본주의의 도덕적 파산과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는 전망을 앞에 놓고, 그녀는 동지들과 함께 결연한 투쟁에 나섰을 뿐만 아니라, 매우 절친한 사람들을 잃은 후에도 스스로의 힘을 추스리고 기상을 유지했다.


그녀는 이론적인 노력들을 통해, 좋아하는 일을 즐기는 능력(그림을 그리고 식물학에 열광함)과 특히 외부로부터의 큰 지원망을 통해서 힘을 얻었다. 부분적으로 사식을 외부로부터 공급받았을 뿐만 아니라(위에 문제가 있어서 특별한 식이요법이 필요했음), 그녀의 글들은 항상 다시(교도관들의 묵인하에) 감옥으로부터 밖으로 유출될 수 있었다.


감옥 속에서도 그녀는 밖의 많은 동지들 및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들에게 조언을 해주었으며 수감상태의 그녀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지원했다. 그 어떤 두꺼운 벽으로 둘러 쌓인 감방도 그녀를 침묵하게 만들 수는 없었고, 개별적으로는 자신의 동지들을 그리고 전체로서 계급을 그녀가 지원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외부를 향한 그녀의 정치적이고 인간적인 목소리는 언제나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출옥하던 날은 천여 명의 노동자들이 감옥 문밖에서 기다렸다가 그녀를 집까지 동행했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20세기의 발전, 특히 아시아에서의 발전도 로자 룩셈부르크가 유니우스 팸플릿에서 행한 분석을 확인시켜 준다. 이 저서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그녀의 경고, 즉 사회주의냐 야만이냐의 양자택일, 전쟁이 전개하는 파괴기계와 잔혹화, 그리고 이는 다시 노동자계급을 물리적으로 축소시킬 뿐만 아니라 계급의 정치적 기상적인 약화를 야기하게 된다는 점까지.


그녀는 시계의 째깍거림을 느꼈다, 시간과의 경쟁이 시작될 것임을, 자본주의체계가 길게 생존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인류에게, 지구에 파괴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고, 그래서 노동자계급에게 그만큼 더 커다란 위험임을 느꼈다.          
 
제국주의 역사속의 한국

 

1차 세계대전동안 아시아대륙은 전반적으로 전투행위의 영향권에 있지 않았던 반면, 그 직후에는 군사주의 암종양이 아시아에서도 자라났다.


이 현상은 먼저 중국에서 나타났는데, 여기에서는 민족 부르주아지가 충분한 통일을 이뤄낼 수 없었고 무수한 군웅의 충돌로 그 나라는 항상 다시 황폐해졌다. 1930년대에 이미 일본과 중국 사이의 전쟁으로, 그런 다음 2차 세계대전 동안에 극동은 유럽 다음으로 두 번째 큰 전쟁무대가 되었다. 전쟁결과 중공과 타이완으로 나뉘게 된 중국의 분할과 더불어 새롭고 지속적인 충돌 중심지가 생겨나서 지금까지도 전쟁의 긴장을 초래하고 있다.


제국주의적 탐욕을 일련의 군사적 정복을 통해 충족시키려 시도했던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의 무수한 화염폭격으로 초토화가 되었다. 동시에, 일본에 대한 통제권을 놓고 벌어진 싸움은 야만의 새로운 단계를 열었는데, 히로시마 나가사키에의 원자탄투하가 새로이 출현한 경쟁자 러시아가 일본에 관여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미국의 결연한 의지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양대 세계대전에서 직접적으로 전쟁의 무대가 되지는 않았고 오히려 주로 원자재와 폭탄 받이로서 인력자원을 주로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면, 2차 세계대전이후에는 새로이 출현한, 미국이 주도하는 블록과 중국 및 러시아 사이에 최초의 거대한 힘의“과시”에서 그 중심에 서있게 된다. 그 전쟁의 강도와 규모 및 지속기간, 서울과 평양이 거의 초토화되어버릴 만큼 엄청나게 심한 파괴 이 모두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경고를 잘 보여주었다. 한 동안 미국은 한국이 러시아(소련)-중국에 의해 장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중국에 대한 핵공격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다.


그 한국전쟁이 종전이 아닌 휴전상태로 정리된 지 반백 년 그 이상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남북한 사이의 충돌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이 지역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이 군무장된 지역들에 속한다.


이제 동서블록들의 붕괴 이래 새로운 차원이 덧붙여졌다. 새로이 부상하려는 중국, 그 숙적인 일본과 약화되어가는 미국 모두는 이 지역에서 특히 남북한에 대해서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야망들을 추구하고 있다. 제국주의적 긴장의 첨예화가 여기서도 놓여있다.


동시에, 신속한 경제성장을 통해 세계시장에서 연결점과 새로운 지위를 차지하려는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의 광적 노력들은 전대미문의 환경파괴를 초래했고 장기적으로는 이일대의 삶의 토대들을 위협하고 있다. 생산력의 향상, 백 년 전만 해도 경제적으로 난쟁이에 불과했던 새로운 경제적 경쟁자들의 출현이 평화로운 발전으로 끝나기는커녕 오히려 경제적 그리고 결국 제국주의적 긴장을 더 불붙이게 됨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묘사했던 이론적-정치적 틀을 분명하게 확인해준다.


이 책이 독일어로 처음 출판된 지 거의 100년이 흘렀다. 이 책의 한국어판 출판과 더불어, 한국의 독자들이 노동자운동의 세기적 저작들인 「자본축적론」과 「유니우스 팸플릿」 책을 곧 접하게 된다. 이 저작들은 또한 좌익공산주의 조직들이 근거하고 있는 제 2 및 제 3인터내셔널 내 좌파적 흐름의 전통에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관지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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