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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3호를 내면서

코뮤니스트23호를 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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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자본주의 체제 삶의 방식이고, 제국주의 전쟁은 일상화되었다. 중동, 유럽,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노동계급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국제 부르주아 사이 경쟁은 자본주의 방식으로는 더는 제어할 수 없다. 자본은 오직 이윤에만 관심을 가질 뿐 전쟁을 멈출 능력도, 의지도, 미래에 대한 어떠한 희망도 제시할 수 없다.

 

자본주의는 미래를 제공할 수 없으며, 잔혹함과 야만성을 점점 더 많은 지역으로 퍼뜨릴 뿐이다. 전쟁광들이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전쟁광들이 제시하는 평화는 전쟁으로 점철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일시적인 휴지기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적 평화 속에서는 오직 미래 전쟁의 불길만이 피어오를 뿐이다.” (중동전쟁에 대한 코뮤니스트좌파 단체 공동성명, 국제코뮤니스트흐름, 국제주의자목소리)

 

이러한 상황에서 평화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잉여노동으로 지탱되는 자본주의의 생명 연장을 위한 또 다른 얼굴에 불과하다.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특히 코뮤니스트좌파의 과제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확고히 수호하고 이러한 전쟁의 제국주의 본질을 일관되게 폭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르주아 진영과 어떠한 연대도 거부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독립성을 강조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본질을 폭로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제도 수호라는 수사를 통해 노동계급에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희생을 요구하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희생이 자본주의 관계의 재생산과 부르주아 계급 지배의 지속을 위해 이용된다는 점을 밝혀야 한다.” (전범들의 일시적 휴전: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막간극, 국제주의자목소리)

 

노동자에게는 지켜야 할 국가가 없기에, 계급투쟁은 국경을 넘어 국제적 규모로 발전되어야 한다. 오직 전 세계 노동계급만이 제국주의-자본주의 전쟁을 자본주의에 맞선 전쟁으로 전환하고, 궁극적으로 전 세계적 차원에서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다. 코뮤니스트23호에서는 이러한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의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분석과 노동계급의 대안을 특집으로 실었다.

 

특집, 중동전쟁에서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전쟁은 더는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며, 노동계급에 더 많은 희생을 강요한다고 분석한다. 그러기에 제국주의 전쟁은 오직 노동계급만이 종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자본주의의 야만성을 드러내며,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적 특성으로 인해 그 여파는 자본주의 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전쟁은 이란과 이스라엘에서든, 유럽과 미국에서든, 모두 노동계급을 겨냥한 것이다. 중동의 노동계급은 이 전쟁의 대가로 목숨을 바치고 있으며, 세계 다른 지역의 노동계급은 전쟁으로 인한 경제난과 그로 인한 긴축 정책으로 대규모 실업과 생활 수준 저하와 같은 결과에 직면하고 있다.” (전범들의 일시적 휴전: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막간극, 국제주의자목소리)

 

오직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 전쟁을 종식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 노동계급의 진지하고 조직적인 계급적 저항에 직면하지 않기 때문에 인류에게 제국주의 전쟁을 강요한다. 그러나 이는 국제주의자들, 특히 코뮤니스트좌파가 이 현실에 맞서야 할 책임을 감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한다. ,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일관되게 옹호하고, 이러한 전쟁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폭로하며, 노동계급 앞에서 전쟁의 물질적·계급적 토대를 명확히 밝혀야 할 책임이 있다.” (중동전쟁에 대한 코뮤니스트좌파 단체 공동성명, 국제코뮤니스트흐름, 국제주의자목소리)

 

특집.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과 노동계급의 대안에서는 평균이윤율 경향적 저하, 과잉생산 경향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자본주의에서 전쟁이 필수적 결과이자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이에 맞서는 노동계급은 다양한 노동조건으로 분열했지만, 이러한 상황일수록 투쟁을 통한 연대, 연대를 통한 투쟁으로 부르주아 평화주의의 허구를 폭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늘날 분열한 계급에 출발점은 어렵겠지만, 새롭게 등장해야 할 계급의식은 독립적이고 노조를 넘어선 투쟁을 통해서만 생겨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투쟁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노동계급은 투쟁과 연대를 통해 우리가 전 세계 노동자들과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결코, 특정 민족이나 국가와 공유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화된 전쟁으로 질주하는 자본주의: 오직 노동계급만이 해결책을 갖고 있다, 콤파스그룹)

 

전쟁에 대한 대응은 결코 평화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전쟁은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우리가 이미 두 차례나 겪은 세계대전은 자본의 모순이 극에 달한 결과에 불과하다. 이는 자본, 생산력, 상품의 전반적인 과잉생산과 자본주의 사회관계의 틀 안에서 이러한 과잉 생산물을 흡수, 즉 판매할 수 없다는 사실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따라서 경제 경쟁을 통한 시장 쟁탈전은 군사력, 제국주의,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일반화된 전쟁을 통한 대량 파괴로 이어진다. 전쟁의 논리에 맞서는 일은 평화라는 이상을 내세워서는 불가능하다. 특히 자본주의 체제에서 평화란 전쟁 준비 과정의 한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질주하는 흐름에 어떻게 저항하고 막을 것인가? 코뮤니스트좌파국제그룹)

 

평화주의라는 이념은 전쟁의 야만성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자유와 평화 수호라는 부드러운 선율로 왜곡한다. 마치 착취와 억압의 체제가 전쟁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역사는 평화주의 이념이 항상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명분을 얻었다. 그것은 반대편’, ‘전쟁광’, ‘야만인이 강요한 전쟁이라는 논리였다.”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국제코뮤니스트흐름)

 

특집. 미 제국주의의 쇠퇴와 국제 정세에서는 미 제국주의의 수레바퀴가 빠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제국주의 갈등 격화”, “트럼프는 그냥 미친 것일까, 아니면 무슨 전략이 있는 것일까?” 등을 실었다. 미국의 국내외적 상황과 트럼프 정권의 본질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내용을 포함하였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역학관계 이면의 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한 분석과 국제 부르주아지의 기만적 전술(‘왕은 없다’)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민주당과 좌파 진영이 주도하는 부르주아적 '왕은 없다’(No Kings) 시위는 자신을 시민으로 생각하는 노동자들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트럼프 왕은 없다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추진하면서 이러한 운동을 더 강화하고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트럼프 민주주의 운동이 노동자들이 대규모 파업과 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경제적 계급 이익을 지키는 데 집중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라는 점이다. 이러한 계급투쟁은 트럼프, 공화당뿐 아니라 민주당까지 포함한 미국 지배계급 전체가 추구하는 전쟁으로 향하는 흐름에 저항할 수 있는 진정하고 효과적인 길을 제시할 수 있다. 시위를 실패라고 부르고 싶은 유혹이 있겠지만, 오히려 시위는 부르주아지의 자유주의 분파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분노를 통제하고 부르주아지가 전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쇼비니즘과 인종주의를 이용하는 데 성공한 것에 가깝다.” (미 제국주의의 수레바퀴가 빠지고 있다. 코뮤니스트좌파국제그룹)

 

부채와 사회경제적 위기는 미국 정부와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을 군국주의로 몰아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세계 무역 갈등,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납치, 그리고 이란, 그린란드, 쿠바, 멕시코 등에 대한 위협은 쇠퇴하고 부패한, 호전적인 자본주의 선두 주자인 미국 제국주의 내부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보여준다. 이러한 호전적인 분위기는 여러 제국주의 국가를 서로 대립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제국주의 갈등 격화, 오노라토데이먼연구소)

 

베네수엘라 공습, 여러 국가에 대한 군사적 위협, 그린란드 영유권 주장, 그리고 이민세관집행국(ICE)의 테러 캠페인 등 최근 몇 가지 사례만 보더라도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정책을 관통하는 가장 명백한 공통점은 모두 공포를 조장하고, 그러한 목적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그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위기가 심화할수록 미국은 경제적 손실을 만회하고 약소국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유인이 커진다. 또한, 위기가 심화할수록 중국은 거대한 생산 설비를 유지할 만큼 충분한 시장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경제 경쟁은 결코 단순히 경제적인 차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지만, 체제 위기의 압력 속에서 점점 더 군사 경쟁으로 변모하는 경향이 있다.

 

트럼프의 행동이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자본주의 세계 정치에서 합리성과 광기는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는 특히 체제가 위기에 처했을 때 더욱 그러하다.” (트럼프는 그냥 미친 것일까, 아니면 무슨 전략이 있는 것일까?, 국제주의자전망)

 

코뮤니스트 정치에서는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단체의 메이데이(노동절) 성명을 실었고, 한국 지방선거와 삼성 노동자 투쟁을 다루었다.

 

현재의 삼성전자 노동자 투쟁은 고액의 성과급이라는 이유로 온갖 공격을 받고 있지만, 삼성전자의 막대한 이윤은 삼성 전체 노동자와 수십만 명의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생과 착취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정부의 세제 지원 및 공공자원 사용 혜택과 세계적인 반도체 업계 AI(인공지능) 인프라 붐으로 인한 메모리 칩의 전례 없는 슈퍼사이클(장기 호황)’ 덕분에 가능했다.

 

이번 투쟁은 본질적으로 세계적인 거대 기업 삼성의 막대한 이윤과 그 분배를 둘러싼 계급 분쟁이자, 수십 년간 정당한 권리와 요구를 무시당했던 노동자들의 반발 성격이 크다. 그리고 노사 모두 호황 이후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전략적 투쟁이다.

 

앞으로의 투쟁은 관료화된 지침에 의한 형식적인 파업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연대를 통한 전면적인 파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계급적 연대에는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를 배제하고 투쟁을 제한하는 정규직 노조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해, 정규직·비정규직, 작업장·부문을 넘어서는 아래로부터의 연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 스스로 결정하고 통제하는 반도체 산업 노동자 파업위원회를 건설해야 한다. 이러한 투쟁만이 자본의 분열 정책과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어 생존권 위기에 맞선 모든 노동자의 투쟁으로 확산할 수 있다.” (삼성 노동자 투쟁 : 아래로부터의 투쟁 건설과 계급적 연대를 위해,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파국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질주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기적으로 벌이는 선거 서커스에 노동자는 결코 초대된 손님이 아니다. 지배계급은 늘 노동자를 잔칫집의 노예로, 제사상의 제물로 여긴다. 하지만 노동자는 자본주의의 파괴적인 악순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하고 진정한 대안임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노동절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코뮤니스트 혁명을 위한 투쟁의 날이었다. 붉은 깃발이 휘날리는 모습은 부르주아지에 공포를 심어주었고, 자본주의의 종말을 자임하는 노동계급의 역사적 힘을 일깨워주었다.

 

그러나 혁명의 물결이 꺾이고 반()혁명이 승리하면서, 노동절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수많은 정치적 성과와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의 손에 넘어갔다. 그 이후로 부르주아지는 51일의 혁명적, 계급적 의미를 제거하고,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오염시키고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시키는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

 

해결책은 오직 하나뿐이다. 인류를 완전한 파멸로 몰아넣기 전에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다. 코뮤니스트들이 오랫동안 제시해 온 대안은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노동절은 부르주아지의 손에 넘어갔다: 코뮤니스트 혁명 만세!, 국제주의자목소리)

 

계급투쟁과 자기조직화 그리고 코뮤니스트 역할에서는 노동계급의 일상적 투쟁과 코뮤니스트의 역할’, ‘투쟁위원회의 필요성’, ‘노동계급의 혁명적 조직화에 관한 글을 실었다. 자본 축적의 위기가 증가할수록 노동계급에 대한 착취의 강도가 증가하는 현재 상황에서 코뮤니스트좌파의 일상 투쟁에 대한 관점과 노동조합을 넘어서 실질적 계급투쟁의 교두보를 확보할 투쟁위원회에 대한 고민을 다루었다. 특히 평의회 운동 평가와 노동계급의 혁명적 조직화에서는 평의회 운동의 평가와 교훈, 혁명당과 평의회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오늘날 전쟁 준비를 명분으로 퍼붓는 부르주아지의 공격과 한편으로는 아래로부터의 대대적인 파업을 조직하기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여, 어떤 이름으로 불리든 투쟁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전체가 일반화된 전쟁으로 향하는 행진에서 발생할 대립에 대비하는 여러 대응책 중 하나이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첫째, 이러한 위원회는 전쟁을 위한 희생을 거부할 것을 촉구해야 한다. 둘째, 파업과 투쟁을 지역적으로 확대, 통일, 전면화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셋째, 러시아/나토에 대한 방어, 민족 해방, 민주주의와 조국 수호, 또는 부르주아지가 노동자들을 자기 계급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으로 이끌기 위해 꾸며낸 그 어떤 허황된 구실이든 간에, 모든 계급 협조를 거부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특정 지역에서 자발적인 선택 과정을 통해 모인 투쟁하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이러한 투쟁위원회는 노동조합이 내세우는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원칙, 즉 전쟁을 위한 희생 거부, 민족주의 거부, 그리고 공동의 요구를 위한 파업의 통일과 전면화를 통해 행동에 나서는 데 신중하거나 주저하는 동료들에게 투쟁의 필요성을 설득하려고 노력할 수 있다.” (오늘날 투쟁위원회의 필요성에 대하여, 코뮤니스트좌파국제그룹)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쟁점에서는 늘 치열한 토론과 흥미로운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해체에 대한 최근의 논의와 혁명적 패전주의라는 구호에 대한 다양한 고찰을 다루었다. 해체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시리즈로 계속 다루었던 내용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바란다.

 

룩셈부르크가 유니우스 팸플릿에서 혁명적 패전주의구호가 아니라 1848코뮤니스트 선언의 훨씬 더 명확한 구호인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로 결론을 내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레닌에게 있어 이러한 입장의 약점은 그의 비타협적인 국제주의에 의문을 제기하게 하지 않았다(오히려 그의 비타협적인 태도가 오류로 이어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 특히 레닌은 (‘자국부르주아지의 패배를 바라는 것이) '적국'의 부르주아를 지지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비록 그것이 그의 소망이 이끄는 논리적 결론일지라도 말이다.

 

사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이 옹호하는 이러한 분석 틀은 낯설거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이는 맑스와 엥겔스(그리고 부분적으로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당대에 발전시킨 고전적분석을 가리키는데, 이 분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투쟁이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경제적 붕괴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가장 일관된 구호는 맑스의 코뮤니스트 선언에 나오는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이다.” (혁명가들은 혁명적 패전주의구호를 내걸어야 하는가?, 국제코뮤니스트흐름)

 

국제에서는 국제 정세와 계급투쟁을 다루었고, 문화에서는 노동 시를 실었다. 계급투쟁의 사례에서도, 투쟁 현장의 시어(詩語)에서도 노동계급의 연대는 노동자 투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다.

 

코뮤니스트23호에서는 제국주의 전쟁, 국제 정세, 계급투쟁, 자기조직화 등 노동계급의 미래에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자본축적의 위기와 일반화된 전쟁으로의 질주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삶을 고통과 야만으로 내몰고 있다. ‘평화주의’, ‘민주주의’, ‘체제 전환과 같은 모호한 부르주아 구호가 아닌 자본주의에 맞선 계급전쟁만이 제국주의 전쟁을 종식하고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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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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