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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 근동 및 중동에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 분류
    계급투쟁
  • 등록일
    2011/04/16 22:32
  • 수정일
    2011/04/17 11:57
  • 글쓴이
    자유로운 영혼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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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프리카, 근동 및 중동에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북아프리카와 근동 및 중동의 사건에 관한 토론을 위하여 참고할 점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그 결과들은 현재 분명한 예측이 어렵다. 그러나 이 사건들에  관한 토론은 중요하며 이를 통해 혁명가들은 일관성있는 분석틀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음 사항들은 결코 그러한 틀 자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상황의 상세한 서술도 아니며,  단지 논쟁을 고무자극하는 것을 목표로하는 기본적인 참고점들이다.

 

 

1. 1848년이나1917-1919년 이후 우리는 그렇게 광범위하고 동시다발적인 반란의 물결을 보지 못했다. 그 움직임의 진원지는 북아프리카(튀니지, 이집트  및 리비아, 그리고 알제리와 모로코)에 있었는데,  가자지구, 요르단, 이라크 이란 예맨, 바레인 및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한편, 일련의 다른 억압된 아랍국가들, 특히 시리아에서 높은 경보가 울리고 있다. 중국의 스탈린주의적 체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항의의 메아리는 수단, 탄자니아, 짐바브웨, 스와질란드 등과 같이 아프리카의 다른 부분들에서도 울려퍼진다. 이러한 반란들의 반향은 크로아티아에서 경제위기의 영향과 부패한 정부에 대항한 시위에서도, 영국 학생시위의 플랭카드와 슬로건에서도 그리고 위스콘신에서 노동자투쟁에서도 느껴질 수 있으며, 다른 여러나라들에서도 확실히 그러하다. 이것은 그 모든 움직임들이 아랍세계의 그것들과 똑같다라고 말하는 것이이 아니다. 그 내용면에서도 요구사항들의 측면에서도, 지배계급의 반응에 있어서도. 하지만 그 현상 전체를 놓고 이야기할 있는 그러한 일련의 공통점들이 분명 존재한다.

 

 

2.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인 맥락은 다음과 같다:

 

-  깊고 참으로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 이로 인해 아랍국가들의 취약한 경제는  특히 심각하게 타격을 받았고, 이미 수백만이 비참한 가난 속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상황이 더 악화되리라는 전망만이 앞에 놓여 있다. 많은 '노쇠해가는' 중심부 국가들과는 반대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 층은 무수한 젊은 전문 및 비전문인력의 실업과 전망부재로 특히 심하게 타격을 받았다. 모든 경우에서 이러한 운동의 최전선에  젊은 층이 서 있다.

 

-   그 지역의 모든 정부들의 견딜 수 없이 부패하고 억압적인 본질. 비밀경찰과 군대의 잔인한 행동이 오랫동안 국민들을 파편화하고 강압할 수 있었던 반면,  국가의 바로 그러한 무기들, 즉 원자화와 공포는  이제 함께 모여 공동으로 저항하려는 국민들의 의지를 일반화하는데 기여했다. 이는 예를 들어 특히 이집트에서 매우 분명했다. 무바라크가 진압군과 사복경찰들을 타흐리르 광장을 점령한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하도록 보냈을 때,  이러한 도발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결의를 더욱 강화시켜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항의시위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엄청난 사적인 부를 축적한 집권층의 탐욕과 치솟는 부정부패는 국민들이 두려움을 떨쳐버리자마자 반항의 불꽃을 더욱 더 불붙혔다.

 

-   많은 시위참가자들이 언급하는 이러한 갑작스런 공포의 상실은 국지적 지역적인 수준에서 변화들의 산물일뿐만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 증대하는 불만과 명백한 계급투쟁의 기후의 산물이기도 하다.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모든 곳에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강요되는 희생을 제공하는 것을 점점 덜 달갑게 여기고 있다. 여기서 다시, 새로운 세대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2년전 그리스에서 있었던 젊은이들의 반항, 영국과 이태리에서의 학생투쟁, 프랑스에서의 연금개혁 반대투쟁등도 „아랍“세계에 그 영향을 남긴 것이다. 특히, 지배계급으로서는 기존 관계들에 대항한 투쟁들에 대해 지속적인 보도통제를 하기 더 힘든 패이스북과 트위터 시대에.

 

 

3. 이러한 운동들의 계급적 성격은  단일하지 않고 각 나라마다 그리고 각 단계에 따라서 상이하다. 하지만 대체로 비착취계급의 운동들로서, 국가에 대항한 사회반란으로서 규정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은 일반적으로 이 반란들을 이끌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상당한 존재성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는 운동에 의해서 제시된 그리고, 알제리에서의 파업들그리고 특히 이집트에서의 주요 파업물결들과 같은 그런 경우들에서는,  노동자투쟁의 특정한 발전에 의해 제시된  조직화의 방법들과 형태들 모두에 의해서 확인될 수 있다.  한편 이집트에서의 파업들은 무바라크를 폐기한다는 결정에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였다(이점에 대해서는 우리 의 다른 기사들을 참조바람). 이 나라들의 대부분에서는 노동자계급이 유일한 피억압 계급은 아니다. 농민층과  훨씬 더 오래된 생산양식들로부터 유래한 다른 계층들은 비록 매우 파편화되고 또 수십년간의 자본주의의 쇠락을 통해 파괴되었을 지라도 여전히 그 나라에서 큰 무게를 갖고 있다. 반면 반란들의 중심이 되고 있는 도시들에서는 노동자계급화의 길에 들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자체의  특수성을 가진 다수의 중산층 그리고 일부는 노동자 또 일부는 소상인과  더 룸펜화된 인자들로 이뤄진 대다수  슬램거주자들과 나란히 노동자계급이 존재한다. 가장 집중되고 경험많은 노동자계급이 있는 이집트에서조차도, 타흐리르 광장의 목격자들에 따르면, 시위는 그 체제 상위계층을 제외한 '모든 계급들’을 결집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비노동자 계급들의 비중이 중심부 국가들의 주요 투쟁들에서보다 훨씬 더 높았다.

 

4. 이러한 반란들의 계급적 성격을 파악하려는 노력 속에서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칭적인 오류들 두가지를 피해야만 한다. 즉, 한편으로는 운동 속의 모든 대중들을 노동자계급과 무조건 동일시하는 것(국제공산주의그룹 Groupe Communiste Internationaliste의 가장 특징적인 입장)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폭동들에서 긍정적인 점들 중 분명하게 노동자 계급적이 아닌 모든 것을 거부하는 것. 여기서 제기된 문제는 1970년대 말 이란의 사건과 같은 이전의 사건들을 되짚어보게 한다. 그 당시에 우리는 한동안 노동자계급이 선두적인 역할을 가정할 수 있었던 하지만  결국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운동이 전복되는 것을  막기에는 불충분했던 그러한  대중반란을 목격했다. 더 역사적인 수준에서, 노동자계급과  좀 더 일반적인 사회폭동들 사이의 관계 문제는 또한 과도기에서의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문제는 모든 비착취계급들의 운동에서 그렇지만 노동계급이 그 계급자치성을 유지할 필요성에 직면하여 생겨난다.

 

5. 러시아혁명에서 소비에트 형식은 노동자계급에 의해 생겨났지만 모든 피억압자들에게 조직화의 모델을 제공했다. 비례감각을 잃지 않고도 -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노동자계급이 다른 계층들에게 분명한 정치적 지도력을 제공할 수 있는 혁명적인 상황과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기에 -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투쟁방법들이 아랍세계의 사회반란들에 영향을 주었음을 볼 수 있다:

 

-  자기조직화의 경향 속에서, 이는 국민들에 대항해 범죄갱단들을 풀어놓은  이집트정부의 전술에 대응해서 출현한 이웃보호위원회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 타흐리르 광장에서의 몇몇 대중집회들의 '파견위원’ 구조 속에서. 그리고 집단적인 토론과 결정과정 전체에서;

 

-   대규모의 결집와 조직화의 중심점을 제공하기 위해서,  보통이라면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공간을 점거한 점에 있어서;

 

-  정부가 출동시킨 경찰과 깡패들에 대항해 대대적인 자위단의 필요성을 의식했지만 그와 동시에, 폭력과 파괴와 약탈 그 자체는 거부한 점에 있어서;

 

-  기독교도와 회교도사이,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 신앙인과 비신앙인 사이, 그리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분열등, 정부에 의해 냉소적으로 조작된 종파주의와 기타의 분열들을 극복하려는 신중한 노력들 속에서;

 

-  일반 병사들과의 우애를 이뤄내려는 수많은 노력들 속에서.               

 

이러한 경향들이 노동자계급의 오랜 투쟁전통을 지닌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하게 발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데,  이집트의 노동자계급은 운동의 결정적인 단계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출현하여, 2006-7년의 그것과 같이 미래의 대대적 파업의 '맹아들’로서 간주될 수 있는 일련의 투쟁들을 전개했다. 이때 대대적 파업의 가장 중요한 많은 특징들 갖고 있었다. 즉, 한 부문에서 다른 부문들로의 파업과 요구사항들의 자연발생적인 확장, 어용노조에 대한 비타협적인 거부와 자기조직화의 특정 경향들,  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를 함께 제기한 것. 여기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옹호자로 앞에 나서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제시할 노동자 계급의 역량을 대략 볼 수 있다.

 

6. 이 모든 경험들은 진정한 혁명의식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들이다. 그러나 그 방향으로의 길은 여전히 길고 수많은 명백한 환상들과 이념적 취약성들이 걸림돌로 놓여 있다:

 

-  특히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들,  이러한 환상들은 군사독재와 부패한  군주들이 조합되어 지배하는 나라들에서 특히 강력한데, 이곳에서는 비밀경찰이 편재하고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체포, 고문 처형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한 환상들은 민주주의적 ‚반대파’가  국가 관리를 위한 대안적인 팀으로 부상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집트의 엘 바라데이와 무슬림형제들, 튀니지의 과도기정부 '리비아의 국민회의' 등과 같이. 이집트에서는 군대를  '국민의 편’이라고 여기는 환상들이 특히 강하데, 타흐리르 광장의 시위대에 대한 군대의 최근의 진압행동들은 확실히 소수의 일부가 이점에 대해 반추하도록 만들것이다. 이집트에서 민주주의의 신화의 중요한 한 측면은 독립노동조합에 대한 요구인데, 확실히 이러한 조합들은 불신임당한 공식 노조들의 해체를 상당히 정당하게 요구하는 대부분의 전투적 노동자들의 다수를 포함한다;

 

-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환상들, 이는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혁명들’의 상징으로 국기를,  또는 리비아에서처럼, 가다피의 지배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의 상징으로서 옛 왕국 깃발을  채택한 점에서 보여진다. 또한, 이집트에서 무수한 깃발들에서  무바라크를 시오니즘의 앞잡이로 낙인찍는 것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계급투쟁의 주의를 전환시켜  제국주의적 충돌로 향하게 하는 중요한 지렛대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팔레스타인문제를 제기하려는 관심이 그리 느껴지지 않는데, 왜냐하면 지배계급은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그들이 자기 국민들에게 부과한 고통들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방법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국기들이 그 나라의 폭동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흔들어졌던  것에서 확실히 어느 정도의 국제주의적인 요소가  있었다. ‚아랍’ 세계와 그 너머를 가로지르는 폭동의 규모는 국제주의의 물질적인 현실성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애국주의 이데올로기는 매우 적응력있는 것으로서, 이러한 사건들에서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더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형식으로 변모할 수 있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  종교에 대한 환상들, 이는 공개적인 기도를 빈번히 이용한 점과  반란의 조직화 장소로서 회교사원을 사용한 점에서 보여진다. 리비아에서는 훨씬 더 특별하게 이슬람주의 그룹들 (가다피가 주장하듯이 알카이다에 연결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생적인 그룹들)이 반란에서 초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명백하다. 이는 부족적 충성심의 역할과 더불어 리비아 노동자계급의 상대적인 허약성과 그 나라 및 그 국가구조의 후진성을 반영한다. 그런데, 빈 라든 변종의 과격 이슬람주의가 ‚무슬림국가들’에서 대중들의 비참에 대한 해답이라 자처하는 점을 볼 때,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의 반란들과  심지어 리비아 그리고  예맨과 바레인과 같은 걸프 국가들에서의 반란들 조차도, 작은 테러리스트 세포들을 통한  실천과 유해한 종파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지하드 그룹들은  운동들의 대대적인 성격과  종파주의적 분열들을 극복하려는 진정한 노력들에 의해 거의 전적으로 주변화되어버렸음을 보여준다. 

 

 

7.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의 현상황은 여전히 진행중의 상태에 있다.  (중략)

 

가다피 세력이 다시 승세를 보이기 시작하자 비행금지지역을 설정하거나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의 다른 형식들을 사용할 것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데 이 글을 쓰는 시점에는 EU와 NATO사이에 깊은 분열이 존재하는 것같은데, 영국과 프랑스는 매우 강력하게 군사적 행동을 선호하고 미국과 독일은 매우 주저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 군사적 개입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아랍세계에서 벌써 또 다른 골치거리에 빠져들 위험에 노출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 부르조아지의 어떤 부분들은 대량 테러라는 가다피의 ‚저주’가 그 지역 전역에서 더 이상의 다른 소요를 막는 한 방법일지 궁금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비아의 사건들과  진정 그 지역의 전체 상황전개가  세계부르조아지의 기괴한 위선을 폭로했다는 이 사실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가다피의 리비아를 국제 테러리즘의 온상(이는 사실 맞는 말이었다)이라고 수년간 비난했으면서, 2006년 가디파의 심경변화와  대량살상무기폐기 결심은 사담 후세인의 소위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그들의 자세를 정당화하기 위해 씨름하고 있던 미국과 영국같은 나라들의 지도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토니 블레어는 특히 어제의 ‚미친 테러리스트 리더’를 당장 껴안았다. 단지 몇년이 지난 지금 가다피는 다시 미친 테러리스트 리더이고 그를 지지했던 자들은 급히 다투어  자신들과 그 사이의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이야기의 다른 한 판본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최근의 또는 현재의 ‚아랍 독재자들’은 미국과 다른 열강들이라는 든든한 뒷배경을 즐겼고 이 나라들은  지금까지는  튀니지, 이집트, 바레인 또는 사우디 민중들의 ‚민주적 열망’에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격폭등과 생필품의 품귀에 의해 자극된, 그리고 어떤 경우들에서는 폭력적으로 진압된, 이라키 쿠르디스탄의 현지배자들을 포함해 미국이 내세운 이라크정부에 대항한 거리 시위들의 발생은 더욱이‚민주주의적 서방’에 의해 제조된 공허한 약속들을 드러낸다.

 

10. 크로아티아의 어떤 국제주의 아나키스트들 (자그래브와 기타지역에서 진행중인 시위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적어도)은 libcom.org에 개입해서, 아랍세계의 사건들은 마치 1989년 동구에서의 사건들의 재연처럼 보이며, 그 당시에 모든 변화열망은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탈선되었고 이는 노동자계급에게 결코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번의 새로운 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민주주의의 신비화들의 명백한 위력을 놓고 볼때 매우 정당한 걱정이지만 이 두  역사적 순간들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놓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계 규모에서 계급역량의 외형 수준에서. 동구권의 몰락당시 서방의 노동자 계급은 정치적 수준에서 발전할 수 없었던 투쟁기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고, 공산주의의 죽음과 계급투쟁의 종말에 관한 부수적인 켐페인을 거느린 동구블록 붕괴 그리고 자신의 계급 지대 위에서 대응함에 있어 동구지역 노동자계급의 무능력은 그래서 노동자 계급이 국제적으로 장기간 후퇴에 빠지는 것을 도왔다. 그와 동시에, 비록 스탈린주의 체제들 자체가 사실상 세계경제위기의 희생자들일 지라도, 이는 그 당시 분명하지 않았고 서구 경제에게는 세계자본주의에게 밝은 미래가 열리고 있다는 인상을 제공하는 작전을 펴기에 충분한 여유공간이 있었다. 자본주의 위기의 진정으로 총체적인 성격이 지금처럼 명백히 드러난 적이 결코 없었는데, 이것은 모든 곳의 노동자들이  그들 모두가 본질적으로는 실업, 물가등귀, 이 세체하에서의 전망부재라는 동일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지난 7-8년에 걸쳐 우리는 전세계에서 노동자 투쟁의 느리지만 진정한 부활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러한 투쟁들은 80년대와 90년대의 후퇴로 인해 상처를 덜 받은 프롤레타리아의 새세대에 의해 주도되며 이러한 부활로 인해 정치의식화된 증가되는 소수를 다시 전세계적 규모로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심오한 차이들로 볼때, 아랍세계에서의 사건들이 중심부 국가들의 계급투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보다는 오히려 그 미래의 발전을 강화시킬 실질적 가능성이 존재한다.

 

-  대대적이고 불법적인 거리행동의 힘을, 세계 지배자들의 평정을 뒤흔드는 능력을 재확인함으로써;

 

-  획일적이고 생각없는 광신도 무리로서의 ‚아랍인’에 관한 부르조아의 선전을 파괴함으로써 그리고 이지역 대중들의 토론하고 반성하고 스스로 조직하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  아랍세계를 향한  곡절을 통해 그 타산성과 무자비함이 돋보이기게 된 중심국가들의 리더들의 신빙성을 더욱 더 침식함으로써;

 

이들 및 기타의 다른 요소들은 처음에는 중심부 국가들의 노동자들 다수보다는 정치의식화된 소수에게 훨씬 더 명백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와 대륙의 경계를 넘어선 계급투쟁의 진정한 단일화에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이 어떤 것도, ‚민주주의’와 ‚독립노동조합’의 기쁨들을 수년간 경험하고, 그 역사적 정치적 전통들이 넓지는 않을 지언정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세계제국주의체제의 심장부에 집중되어 있는 선진국 노동자계급의 책임을 경감시키지는 않는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의 환상들과 단절하고 무산자 민중을 위해 뚜렷한 길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은 여전히, 중심부 국가 노동자들이 자기조직화되고 정치화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분명한 예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에 근본적으로 달려있다. 

 

 

ICC, 2011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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