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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해결책은 없다. 계급전쟁만이 해결책이다!
우리는 "노동자에게는 국가가 없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오직 국제주의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모든 노동자가 모든 지배계급을 적(敵)으로 삼아 연대해야 한다"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의 국제주의 원칙을 지지하며 이 글을 공유한다. 우리는 국제주의 원칙의 방어와 국제주의자들의 연대를 위해 이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는 하마스 군이 가자 지구 국경을 돌파한 무장 세력과 함께 놀랍고도 예상치 못하게 조직적으로 침공했고, 공습은 이스라엘 중부의 텔아비브까지 이르렀다. 많은 가자 주민들이 국경 철조망을 허물고 야외 감옥 밖으로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며, 이스라엘군도 욤 키푸르 전쟁(Yom Kippur War) 이후 50년 만에 처음으로 후퇴했다.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승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하루 종일 천 명이 넘는 민간인이 무차별로 학살당했다. 한 키부츠(Kibbutz)는 10%의 사람들을 잃었다. 지금은 유명해진 사막 파티의 현장에서 200명에 가까운 이스라엘인이 발견되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4인 가족이 모두 사망한 사진이 공개되었고, 다른 사람들은 뉴스 영상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석방하는 대가로 이스라엘 군인과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약 150명이 가자지구에 인질로 잡혀 있다. 많은 친(親)팔레스타인이 학살을 옹호하는 데 뛰어들었고, 어린이, 난민의 후손, 심지어 점령 반대 운동가까지 포함한 일반 이스라엘인을 정착민-식민주의자로 간주했다. 설사 이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해도 베두인, 네팔 학생, 태국 이주 노동자의 죽음은 정당한 살인이라고 믿기 어렵게 만든다. 이란과 헤즈볼라는 하루가 지나기 전에 하마스와 경쟁자 팔레스타인 이슬람 정파 이슬람 지하드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밝혔다.
이스라엘은 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르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안보 실패는 이스라엘의 주요 정치인과 군 관리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네타냐후와 리쿠드당, 우파의 성공은 일반적으로 국가 안보에 대한 자신감에 의존했다. 이스라엘의 자본주의 좌파가 끊임없이 고갈되고 있는 것은 경제 관리의 실패가 아니라 국경의 안보를 위협하면서까지 영토를 확보하려는 의지에 기인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하마스는 하루아침에 네타냐후가 통치하는 이스라엘은 안전하다는 이스라엘 국민의 신화를 무너뜨렸다. 네타냐후와 그의 장관들은 당연히 민족주의를 부추겼고,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해 복수를 해야 하며, 하마스는 완전히 제거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수만 명의 예비군이 군대에 징집되었고, 정치인들의 대량 학살에 대한 요구가 이어졌다.
국경 마을 주변에서 지상전이 계속되자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공습을 가해 병원과 난민 캠프를 공격하여 19명의 일가족과 45가구의 모든 세대를 살해했으며 마을 전체를 거의 초토화하는 등 매우 가혹한 폭력을 가했다. 또한, 물, 전기, 식량, 연료 공급을 차단하는 봉쇄 조치가 취해졌고, 이는 유엔의 비난을 받았다. 인구 밀도가 높은 가자지구는 일반 시민들의 이동이나 대피가 거의 허용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이집트와 국경을 접하는 라파(Rafah) 국경이 파괴된 후 가자지구는 현재 완전히 포위된 상태이다. 이스라엘 당국이 가자지구 북쪽에 거주하는 110만 명의 주민들에게 이미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는 게토 지역 남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이주가 계속되고 있다. 유엔조차도 이러한 요구를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가자지구의 사상자는 현재 이스라엘의 약 두 배에 달하며, 카타르와 이란의 자금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군사 기반이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의 군사 기반을 압도하면서 팔레스타인 사망자 수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인종 청소는 오랫동안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정확하게 묘사해 왔지만, 이번 전쟁의 규모와 백린탄 사용 보고는 변명의 여지가 없는 대량 학살이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사이의 레바논 국경에서 로켓포 사격이 확대되고 있다. 서안지구의 극우 및 종교적 근본주의 이스라엘인들의 일상적인 폭력 사태는 전쟁이 확산함에 따라 총기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유혈 사태가 누적될수록 가장 비극적인 이야기는 노동계급인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인의 이야기다. 정치 및 군사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성급한 결정을 내린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이스라엘에서 네타냐후 정부, 특히 사법 절차를 약화하려는 그의 이기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시도에 반대하는 지속적인 대규모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의 캠페인과 지원은 국가 안보 문제에 집중적으로 의존해 왔기 때문에 초기 하마스 학살과 이후 인질 사태로 인해 불균형하게 많은 군사 기지가 서안 지구에 집중되어 있어 종교적 극우파가 팔레스타인을 도발하고 공격하고 폭력적인 대응으로부터 팔레스타인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이 심각하게 약화했다. 남부에서는 하마스의 군사력이 과소평가 되어 도시 노동계급, 이민자 커뮤니티, 키부츠인들이 사선에 놓여 있다. 이는 골다 메이르(Golda Meir)의 임기를 끝낸 1973년 욤 키푸르 전쟁과 비교되기도 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이미 수년 동안 극우파를 점점 더 포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서안지구 합병, 미국 대사관을 분쟁 지역인 동예루살렘으로 이전하기로 한 트럼프의 결정, 기본법 통과, 정착민 폭력에 대한 온건한 태도 등은 이스라엘의 우경화를 더욱 확고히 했다. 현재 이스라엘과 미국 모두 공식적으로 테러리스트로 간주할 정도로 극단적인 카하니스트(Kahanist) 출신의 장관들이 있다. 지금까지는 민족주의가 매우 우세하고 가자지구의 전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하마스 근절이라는 미명 아래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러나 텔아비브에서는 인질과 사상자 가족들이 국방부 청사 밖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집회를 열고 있다. 이들은 애국적인 시위 반전, 점령 반대, 경제적 요구가 아니라 군사적 실패와 인질 구출에 충분한 조처를 하지 않은 네타냐후 총리의 전체주의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가장 심각한 범죄는 네타냐후 자신이 최근 하마스에 대한 (냉소적인) 지원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로 대표되는 준(準)국가는 주로 서안 지구에서 활동하며 가자 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하마스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파타(Fatah)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대표한다. 공식적으로 이스라엘과 PLO 사이에는 평화 조약이 존재하며, PLO는 두 국가 해법을 선호하고 테러리즘에 반대하는 반면, 하마스는 두 국가 해법과 이스라엘의 존재를 거부하고 무장 투쟁을 선호한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대체로 세속적이며 정치적 성격을 띠고 있지만, 하마스는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이다. 제국주의의 기괴한 발전 속에서 네타냐후는 하마스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흐무드 압바스가 이끄는 온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서방과 정치 협상에 나서고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약속한 좀 더 현실적인 두 국가 해법을 추구할 가능성이 더 컸기 때문이다. 하마스가 폭력, 이슬람주의, 단일 국가 해법을 고집하는 한 서방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남부에서 거의 효과가 없는 로켓 공격은 IDF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네타냐후 정부는 가자지구 주민들을 달래고 간접적으로 더 많은 자금이 가자지구로 유입하기 위해 가자지구 노동자들에게 점점 더 많은 취업 허가를 내주고 있다. 가자지구로 들어오는 카타르의 현금이 수백만 달러에 달한다는 사실에 눈을 감고 있다. 이스라엘의 극우파 재무장관 베잘렐 스모트리치(Bezalel Smotrich)는 이를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짐이고 하마스는 자산이다 [...] 아무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결의안을 제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두 국가 해법은 이츠차크 라빈 총리(극우 극단주의자에 의해 암살되기 전)가 주장한 온건한 계획이었다. 이제 이스라엘은 두 국가 해법을 위한 정치적 협상의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파멸을 원하는 세력과 동맹을 맺으려 한다.
하마스의 이번 공격은 자신이 팔레스타인 국민의 대표라고 주장하려는 시도이다. 파타(Fatah)는 서안지구에서 증가하는 파괴에 맞서 평화로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시위, 교전, 개별 공격의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다. 이번 대규모 공격을 통해 하마스는 군사 전략과 자금 지원은 물론 저항 세력으로서 주도적 면모를 보여주었다. 올해 7월에는 수천 명이 가자지구 전역에서 하마스에 반대하는 경제 시위를 벌이며 거리로 나섰다. 하마스가 가난한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지원되는 카타르의 기부금에 세금을 부과하자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하마스 깃발을 불태운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마스는 경제 불안의 책임을 이스라엘에 돌리고 시위를 국경의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돌리는 데 성공하는 등 전술적인 면모를 보여 왔다. 가자지구의 또 다른 주요 권력 경쟁자는 하마스보다 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이다. 초기 침공으로 하마스가 다시 인기를 얻었을지 모르지만, 현재 이스라엘의 끔찍한 공격에 직면한 어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1,400명이 넘는 이스라엘 사상자가 새로운 상황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을 품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더 넓은 제국주의 망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전쟁이 고립되지 않으며, 고대의 민족, 국가, 종교적 갈등이 제국주의적 경쟁을 벌이는 강대국에 의해 이용당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연합은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발표하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고, 이란과 헤즈볼라의 하마스 지지도 마찬가지였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복수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행동에 필적하는 인도주의적 비난을 받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은 이란과 미국 간의 대리전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위협하고 있다. 애초에 제국주의 경제 조약이 이번 공격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2020년 아브라함 협정에서 이스라엘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 수단과 정상화 협정을 체결했는데, 주로 경제 무역 관계에 도움이 되는 협정이었다. 이 협정으로 아랍 국가들은 서방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지만, 다른 곳에서는 경쟁이 격화되었다. 보기를 들어, 모로코와 알제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각자의 제국주의 블록에 헌신하면서 관계를 단절했다. 한 해 동안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수교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서방과의 동맹은 더욱 공고해졌지만, 이슬람교도들의 주요 성지 순례지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기 때문에 이슬람교도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전쟁이 계속되고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터키와 쿠르드족, 중국과 대만, 세르비아와 코소보/알바니아 간의 분쟁이 격화되면서 주요 제국주의 열강은 군사 전략과 경제 자원을 위해, 그리고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작은 국가들을 채택하고 있다. 그 경계가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과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이란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이 새로운 전쟁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터키는 평화를 추구하고 양측의 사상자를 애도하는 온건한 노선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강제 이주를 비난하면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와의 불안한 동맹을 당분간 달래려고 시도했다. 국가들은 정중하게 평화를 촉구할지 모르지만, 제국주의 논리에 따라 전쟁이 일반화될 수 있다.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분쟁의 언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제국주의적 세계 분열에서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의 폭력적인 경쟁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 위기와 더 관련이 있다.
시온주의자들에게 이스라엘 유대인의 안전은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에 의해 위협받고 있으며, 국가와 군대는 계속해서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가 안전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부를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군대는 조국의 이름으로 노동자들을 죽임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도록 내몰고, 지배층은 경제적 대외 조약을 체결하고 권력 탐욕에 사로잡혀 조국의 적을 이중으로 돕고 있다. 한 민족을 보호하고 다른 민족을 괴롭히는 정책으로는 건강하고 안전한 삶이 보장되지 않으며, 이러한 정책은 전쟁의 악순환을 심화시킬 뿐이다. 이스라엘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인 라미 레비(Rami Levi)는 예비군이 군 복무를 위해 떠나고 이스라엘 국민들이 비상사태에 대비해 식료품을 비축하는 동안 전쟁을 돕기 위한 소매 보조원으로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고 있다. 수익성 있는 슈퍼마켓 체인에서 일하는 것은 무급 노동이지만, 민족주의 속에서 어떻게든 칭찬받을 만한 일이 된다. 이스라엘 프롤레타리아는 군인을 응원하는 동안에도 계속 착취당할 것이다. 라미 레비의 사례에서 이미 드러났듯이, 예비역, 피난, 사망 등으로 직원을 잃으면 노동은 더욱 힘들어질 것이고, 정부가 전쟁에 모든 재정을 투입하면 임금은 줄어들 것이다. 파업이나 경제 위기에 대항하는 집회는 국가적 대의를 배신한다는 죄목으로 즉시 진압될 것이다. 이스라엘 노동자의 적은 팔레스타인 노동자가 아니라 이스라엘 지배계급이다.
노동자에게는 국가가 없다.
프란츠 파농(Franz Fanon)의 말을 인용하면 팔레스타인 민족주의자들에게 탈식민지화는 필연적으로 폭력적이다. 팔레스타인이 점령을 종식하고 독립 국가를 세우려면 이스라엘인의 목숨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온주의자들과는 달리 영국 자본주의 좌파 내에서 가장 인기 많은 입장이기도 하다. 탈식민지화는 코뮤니스트들의 요구가 아니다. 애초에 식민주의는 이스라엘에는 적용되지 않는 특정 경제 조직 형태이다. 이스라엘은 팽창주의 국가이며 군사적 점령과 폭력을 사용하여 팔레스타인의 집을 파괴하고 이스라엘의 집으로 대체하는 것은 제국을 성장시키려는 시도에 해당하지 않는다. 게다가 알제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중국, 심지어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반(反)식민지 투쟁 중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이어진 것은 하나도 없으며, 단지 새로운 반동 세력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제국주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 그쳤을 뿐이다. 민족 해방을 위해 싸워 알제리 초대 대통령이 된 벤 벨라(Ben Bella)는 훗날 민족 해방 운동은 "모두 실패했다"고 회고했다. 우리가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한 우리는 여전히 상업 생산관계에 의해 착취당한다."1) 팔레스타인 국가가 어떻게든 탄생하더라도, 그것이 이슬람 국가든, 세속적 사회민주주의 국가든, 스탈린주의 정권이든,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코뮤니스트 혁명에 더 가까이 갈 수 없을 것이다. 오직 더 강력한 팔레스타인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여 자신들을 착취하고 다른 사람을 억압할 것이다. 민족주의 운동은 노동자들이 계급투쟁을 제쳐두고 자본가들과 함께 국가를 위해 싸우라고 요구한다. 그것은 코뮤니즘의 전제 조건이 아니다. 이른바 사회주의자들이 모여 국기를 흔들고 최근 경제 위기에 대항하는 반(反)하마스 집회를 진압한 이슬람주의자들의 학살을 옹호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두 국가 해법을 주장하는 소수의 자유주의자는 자본주의 아래의 평화에 대한 순진한 낙관주의가 깔려있다. 두 개의 자본주의 착취 집단이 하나보다 나을 것이 없듯이 두 개의 국가는 하나보다 낫지 않다. 아파르트헤이트의 몰락은 남아공 백인 자본가들을 종식한 것이 아니라 동등한 대표성을 내세우며 노동자 착취를 지속할 수 있는 남아공 흑인 부르주아 계급이 하나 더 생겼을 뿐이다. 두 국가 해법은 상비군, 제국주의 경쟁, 그리고 궁극적으로 유혈 사태를 배가시킨다.
우리의 입장은 예외 없는 국제주의이며, 언제나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추상적 이상주의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그 제국주의적 생존 전략에 대해 일관된 유물론적 반대에서 예외는 없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오직 국제주의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를 위해서는 모든 노동자가 모든 지배계급을 적(敵)으로 삼아 연대해야 한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시대에 어떠한 진정한 국제주의자도 노동 분업의 고유한 적(敵)인 지배계급과 함께 싸우며 다시 한번 강탈당할 수 있는 '자신의' 새로운 국가를 세우기 위해 계급투쟁을 중단할 수 없다. 이제는 다른 지배계급이 아닌 자국의 지배계급에 의해 강탈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가 레닌과 결별한 레닌의 자결권 옹호조차도 식민지의 독립적인 노동계급 운동을 위해서는 민족 독립이 필수적이라는 믿음에 기초한 전술적 정책이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우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지 말고 실제 그들의 적(敵)인 지배계급을 향해 총구를 돌리라고 촉구한다. 많은 사람이 이를 헛된 꿈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며, 현재 상황에서는 양쪽 모두에 대한 민족주의가 우세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정치는 기회주의적이 아니라 일관성이 있으며, 우리가 흡수될 때까지 대중운동에 쓸데없이 편승하기보다는 혁명적 노동자의 올바른 선택을 지지한다. 우리는 민족 해방을 우리 자신의 대의에 다시 적용하고 계급투쟁을 포기하기보다는 우리의 문헌을 번역하고 전파한다. 게다가, 그것은 그렇게 헛된 꿈이 아니다. 네타냐후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는 일 년 내내 이어졌으며 줄어들지 않았었다. 이들은 자신의 깃발을 휘두르는 애국적 자유주의자들이었다. 그 깃발은 국수주의자들이 흔들던 것과 똑같은 깃발이었고, 지금 관을 덮는 것과 같은 깃발이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는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하마스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는 하마스의 통제와 경제적 착취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여기에는 민족주의자들도 포함되었지만, 이 역시 팔레스타인 사회 내부의 불만을 보여준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정치 지도자들에 반대한다. 이는 헛된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우리는 진정한 국제주의의 목소리를 내는 보기 드문 존재이지만, 혁명적 전통을 따르고 있다. 1915년 초에 쓴 퍄타코프(Pyatakov), 보쉬(Bosch), 부하린(Bukharin)의 글을 살펴보자.2)
“그러므로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을 통하지 않고서는 민족의 노예화에 맞서 투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국주의에 맞선 투쟁은 곧 금융 자본에 맞선 투쟁이고, 금융자본에 맞선 투쟁은 곧 자본주의 일반에 맞선 투쟁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 길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사회의 한계 안에서 "민족 해방"이라는 "부분적인" 과제를 진전시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세력을 문제의 진정한 해결책에서 멀어지게 하고, 해당 민족 집단의 부르주아지 세력과 단결시키는 것이다. ...
따라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억압받는 민족의 반란이나 저항을 억압하는 강대국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 동시에 우리는 "민족 자결권"이라는 구호 아래 프롤레타리아 세력을 동원하지 않는다. 이 경우 우리의 임무는 사회주의를 위한 내전, 계급전쟁이라는 구호 아래 양국의 프롤레타리아트 세력을 (다른 사람들과 공동으로) 모이게 하고, '민족 자결권'이라는 구호 아래 세력을 동원하는 것을 반대하는 선전을 하는 것이다.”
슈라가(Shraga)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2023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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