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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9호] 열정적인 활동가 로렌 골드너(Loren Goldner)를 추모하며

열정적인 활동가 로렌 골드너(Loren Goldner)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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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골드너가 지난 4월 12일 세상을 떠났다그는 한국 노동운동과 사회주의(코뮤니스트운동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고많은 활동가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과 교류했다그는 2006년 한국에서 개최된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에 참여했고코뮤니스트좌파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공개강연회(자본주의좌익공산주의와 계급투쟁)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미국 뉴욕의 한국 영사관 앞에서 한국 노동투사 (사노련탄압 중단과 국가보안법 철폐” 피켓 시위를 벌이는 등 국제연대에도 적극적이었다. 2012년 이후에는 한국의 코뮤니스트좌파와 의미 있는 교류를 하지는 못했지만(그의 관심사와 소통 범위는 너무 넓어서 이른바 자본의 좌파나 맑스주의에서 이탈한 이들과도 자주 교류했다), 우리는 그의 활동과 저술을 계속 주시하고 참고해 왔다.

 

우리는 로렌 골드너를 추모하며국제주의자 전망의 추모글과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그가 작성한 글을 다시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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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 골드너를 추모하며

 

로렌 골드너 동지가 4월 12일에 세상을 떠났다위대한 투쟁가의 상실이며 그의 죽음은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큰 슬픔을 안겨주었다.

 

로렌의 정치 인생은 60년대 버클리 대학 재학 중 연좌 농성과 반전 폭동으로 체포되면서 시작되었다이러한 맥락에서 로렌은 급진주의에 빠져 마오주의스탈린주의신좌파에 대한 비판을 찾아 맑스주의를 받아들였다한동안 그는 독립 사회주의자 클럽에 가입했는데이 클럽은 나중에 트로츠키주의 조직인 국제사회주의자(IS)가 되었다하지만 그 전에 로렌은 버클리와 ISC를 떠나 초좌파의 전통에 매료되어 정기적으로 유럽을 여행하기 시작했다유럽에서 그는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Socialisme o Barbarie),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international), 불변성(Invariance) , 장 바로(Jean Barrot), 프롤레타리아(Le Prolétaire) 및 망명 중인 이탈리아 좌파의 다른 요소들과 친숙해졌다로렌의 정치적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소련이 '타락한 노동자 국가'라는 생각과 결정적으로 단절하고그가 받아들여야 할 국제주의적 지향과 역사적 연결고리를 제공한 앙리 시몽(Henri Simon)과 만남이었다.

 

1970년대에 로렌은 뉴욕에 정착했다뉴욕에서 그는 아르바이트하며 좌파 서점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맑스를 읽으며스스로 정치적 고립을 선언하며 살았다이곳에서 그는 첫 번째 중요한 저서인 미국 노동계급의 재구성을 출간했다.

 

80년대에 로렌은 케임브리지로 이주하여 하버드에서 사서로 일하게 된다그는 코뮤니스트좌파에 동조하는 다른 사람들과 계속 교류하며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기준점이 되었다로렌은 많은 정치 서클에서 활동했지만어떤 조직과도 연계하지 않았으며그 대신 "시류에 반하는 글쓰기"를 선호했다그는 종파를 초월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그는 서로 다른 정치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직접 만나거나 나중에 온라인에서 함께 모이는 것을 좋아했다건강이 악화할 때까지 수년간 운영한 '멜트다운(Meltdown)' 목록과 같은 여러 온라인 토론 목록을 만들었다.

 

로렌의 가장 큰 관심사는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주기를 추적하는 것이었다. 90년대에는 아시아에 관심을 보였다그는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현장 투쟁을 따라 인도중국일본한국을 여행하며 경제 위기와 의제 자본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켰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살았고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노동계급에 관한 중요한 저술을 집필하기도 했다.

 

뉴욕으로 돌아온 로렌은 반란자 노트(Insurgent Notes) 창립에 참여했고노동계급 운동을 추적하고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발전시키며 맑스 읽기 그룹을 이끌고 중국어를 배웠다. 2017년 로렌은 마지막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로렌은 많은 자질을 갖고 있었다뛰어난 언어학자였고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지성과 겸손함을 겸비했으며모든 것에 대해 열정이 있었고 호기심이 많았으며누구에게나 항상 질문이 많았다지식에 대한 끊임없는 갈증과 노동계급 투쟁에 대한 헌신으로 그는 전투적으로 되었고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그는 터키로 여행했고아랍어를 배우기 위해 이집트에서 살았으며스페인 남부에서 로마 공동체와 함께 살았다이탈리아에서는 보르디가를 영어권 세계에 소개한 것으로 유명해졌다... 로렌은 가는 곳마다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많은 사람에게 친절한 친구이자 다정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며다른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계혁명코뮤니즘을 위한 투쟁오만한 권력을 무너뜨리는 데 열정적으로 기여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는 국제주의자 전망의 친구이자 동지였다그가 그리울 것이다.

 

국제주의자 전망(IP)

2024년 4월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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