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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 쟁점과 코뮤니스트 대안

부르주아 선거 쟁점과 코뮤니스트 대안
 
 
이번 선거에서(선거 때마다) 쟁점이 된 “부동산·자산 투표”, “정의·공정”에 대한 코뮤니스트 대안

"선거에 진 것은 노동계급이 아니라 부르주아 분파(여, 야)이며, 이긴 것은 자본주의 체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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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
 
한국의 주택보급률은 이미 100%를 넘었고, 수도권도 100%에 가까운 상황이다. 주거 문제는 공급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자본이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토지와 건물, 주택을 사적으로 소유하고 매매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렇기에 아무리 주택을 많이 공급해도 무주택자가 아닌 자본으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이런 현실을 감추기 위해서 더 현실성 없는 고위정책 관료층과 국회의원에게 1가구 1주택의 퍼포먼스까지 진행하겠는가?
 
자본주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서 부르주아 정부의 저금리정책은 필연적으로 유동성을 증가시켰고, 그 대부분은 대자본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다. 자본에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 투자는 관심 밖이다. 이윤이든 지대든 자본에는 부가가치 증가만이 목적이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배경은 부동산 같은 자산 가격을 폭등시켰다. 이처럼 부동산 가격 폭등의 배후에 작동하는 힘은 자본주의 경제 위기와 이것이 유발하는 초저금리와 천문학적인 유동성 증가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은 그 결과 중 하나일 뿐이다.
 
부르주아 정부는 집값을 억제할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인한 정권의 몰락도 피하고 싶을 것이다. 겉으로는 ‘갈지(之)’자 행보처럼 보이지만, 일관되게 자본의 이익을 추구한 부르주아 정부는 심화하는 위기 때문에 더욱 노골적으로 노동자의 목을 죄어 올 것이다. 이윤율 하락,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생산체제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경제 위기라는 배경에서 부르주아의 계급적 선택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착취와 고통을 요구하는 것 외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부동산 대책은 집값 안정을 결코 해결할 수 없지만, 집값 안정이라는 문제는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를 전제로 하고 그 바탕 위에 있다. 자본주의 소유 관계를 그대로 둔 채로는 어떠한 정책을 내놓아도 주거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자본주의 소유 관계는 토지와 주택에 대한 사적 소유와 매매와 임대를 통해 소유주가 이득을 취하는 것을 보장한다. 또한, 부동산 가공을 통해 증가한 부가가치까지도 보장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동산 관련 세금을 올리고 공급을 확대해도 더 비싼 집값의 형태로, 열악한 주거환경으로 노동자에게 전가될 뿐이다. 결국, 노동계급은 주택 가격 안정이 아니라 토지와 주택에 대한 자본주의 소유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토지와 주택에 대한 자본주의 소유 관계를 그대로 둔 채 어떠한 정책을 내놓더라도 노동자인민에게는 1가구 1주택과 주거환경 개선은 현실화할 수 없다. 자본주의 소유 관계를 그냥 둔 채 주택 투기와 개발 이익에 대한 사적 취득을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자가 환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가가 이를 환수하여 양과 질을 담보로 한 공공임대주택을 마련하는 것 또한, 공상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자본의 총체로서 전자본의 이익을 보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자인민에게 양질의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토지와 주택에 대한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가 폐지된 사회, 즉 인민의 필요에 따라 생산하는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토지와 주택을 비롯하여 사유재산과 착취, 계급 분열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산은 가치법칙 및 시장과 화폐를 통한 분배와 소비에 종속됨으로써 경쟁과 무정부성을 벗어날 수 없었다.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는 가치법칙이 사라지며, 생산은 평의회 체제에 의해 사회화된다. 모든 토지와 (거주 목적 이외의) 주택도 생산수단과 마찬가지로 몰수하여 평의회의 통제 아래 사회화시킨다. 이때 비로소 모든 사람에게 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제공된다. 코뮤니스트 사회는 노동자인민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자본주의적 복지사회가 아니라 모두가 인간답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주거 공간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평등한 사회이다. 주택뿐 아니라 의료와 건강권, 교육권을 무상으로 제공하여 개인의 행복 추구권이 처음으로 실현되는 사회이다. 코뮤니스트는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 폐지와 무상 주거권 쟁취를 내걸고 근본적으로 투쟁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 폐지만이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코뮤니스트 혁명만이 주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모두에게 거주 장소를 선택할 권리와 주택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전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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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공정
 
 
한국 사회는 선거 때마다 공정 담론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공정에 대한 논의의 핵심은 능력주의를 전제로 진행되고 있다. 공정한? 경쟁을 통해 능력을 갖춘 사람을 사회의 모든 요소에 선발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능력은 자본주의 물적 토대인 생산관계를 반영하지 못한다. 개인의 능력은 사회·경제·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 게다가 가족을 경제단위로 하는 자본주의에서는 가족 배경이 능력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다. 또한, 노동력이 상품으로 되는 자본주의에서는 어떤 능력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자본의 이해관계와 관점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순수한 개인의 능력은 환상에 불과하고, 이러한 능력주의를 전제로 한 공정은 계급지배의 통치 수단이다.
 
공정의 핵심 전제인 능력주의는 봉건귀족에 대항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였다. 또한, 무산자계급에 대한 차별과 배제, 통치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원시적 자본 축적기부터 자본주의가 세계적 지배 질서가 된 이후에도 자본은 능력주의를 통해 노동계급의 연대와 단결을 막고 분열을 획책했다. 이에 포섭된 노동계급 일부는 능력주의 신분 상승 대열에 개별적으로 합류하는 데서 전망을 찾으면서 불평등 사회를 인정했다. 한국의 주류 노동조합운동도 능력주의에 편승하면서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다. 그러면서 노노 갈등은 증가하였다. 그 흐름은 노동운동의 역할을 계급의 해방이 아니라 당면 생존권에 대한 협소한 방어로 제한했다.
 
노동계급 일부의 능력주의로의 편승은 노동자 자기해방에 대한 전망 부재를 스스로 폭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은 미래 노동계급에 능력 중심의 불평등 사회를 지양하기보다는 더욱더 능력과 공정에 집착하도록 하였다. 전망의 부재는 한편으로는 불평등 완화를 부르주아 정부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기도 했고, 한편에서는 공정성 시비로 적법한 노동권마저도 빼앗고 있다. 이렇게 능력주의에 갇히는 순간 노동운동의 전망을 잃어버리고 체제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과 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하게 된다. 즉, 노동운동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는 사라지고 형식적 공정성과 실질적 불평등을 인정하고 노동계급의 투쟁을 탄압하는 자본주의 신봉자가 되는 것이다.
 
현실에서 능력주의는 노동계급에 초등학교부터 취업 이후까지 학업/취업/임금인상/승진 경쟁을 요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본이 요구하는 능력에 부합하도록 노동자를 재창조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한다. 능력주의에서 패자에게는 결과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사회 부적응자로서 온갖 차별에 노출되고 적법한 요구마저도 무시된다. 그래서 능력주의는 인종주의, 엘리트주의, 평가주의, 성과주의 등 차별의 여러 형태와 같은 패러다임을 가진다. 하지만 부르주아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란 부와 권력에 대한 세습이 가장 중요할 뿐, 실수로 거액을 날려도 그들의 태생적인 능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능력주의는 계급마다 다르게 적용되며 계급적 성격을 갖는다. 자본가계급에는 공정을 초월한 정의이지만, 노동계급에는 억압적이고 차별적이다.
 
지금까지 능력주의에 대한 대부분의 비판은 공정에 기준을 두고 조건, 과정에 대한 평가였다. 또한 능력주의가 차별과 불평등을 정당화하며, 능력이 세습되는 시대에는 능력주의 자체가 불공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등장한다. 하지만 차별과 불평등의 원인을 공정의 기준, 능력주의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공정 담론과 능력주의의 사회경제적 배경을 무시한 결과이다. 그래서 비판의 결론은 불평등과 차별의 원인인 능력주의를 다시 계급 상승의 수단으로 기능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계급사회에서 정의, 공정, 능력주의는 언제나 정의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자본이 요구하는 능력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의 단결과 연대의 힘이다. 계급 단결로 노동력이 상품이 되지 않는 사회, 생산수단이 사회화된 사회, 가치법칙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 코뮤니즘 사회로 나아가야 비로소 노동계급의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즉, 정의, 공정, 능력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더는 필요 없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의 사유화는 자원 희소성, 자원의 불평등 분배의 원인이었다. 자본주의 고유의 모순을 감추고 노동계급의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서 공정 담론,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유포시켰다. 하지만 노동계급에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는 결코 자본주의에서는 불가능하다. 오로지 계급의 단결과 연대로 불평등과 차별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코뮤니스트 사회를 건설해야 억압과 모순을 뿌리 뽑을 수 있다.
 
노동계급의 가장 큰 능력은 야만과 착취의 낡은 사회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집단으로 자기 권력을 행사하며 스스로 해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반대로 지배계급의 능력주의와 공정 담론은 노동계급의 삶을 피폐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단결과 연대라는 진정한 능력을 빼앗아가는 반동 이데올로기이다. 
 
<전문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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