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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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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10/05/17
    평의회주의 비판
    자유로운 영혼
  3. 2010/05/17
    평의회 공산주의와 볼세비즘 비판
    자유로운 영혼

공산주의 좌파 진영에 호소함

 

공산주의좌파 진영에 호소함 (호주)
 
 
 

 

 
 
 동지들!


오늘날 인류는, 로자 룩셈부르크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말했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시대의, 제 1차 세계대전 전야 직후와 같은 최후 통첩적인 문제 제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세계자본주의 체제는 모든 곳에서 임금 동결, 일자리 삭감 그리고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고 있고, 노동계급에게 강력한 공격을 가하며, 1929년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 위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구 환경 재앙의 위협은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현실화 되었습니다. 피비린내 나는 야만적인 갈등이 지구 곳곳에서 -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말리아에서 수단에서, 콜롬비아에서 멕시코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절멸하고 쇠퇴하는 자본주의 사회가 풍기는 이러한 악취들과 비교해서, 우리는 세계 노동계급의 계급투쟁 속에서 - 착취와 억압이 없는, 빈곤과 결핍이 없는, 전쟁과 국가 경계가 없는 – 또 다른 새로운 세상의 기원을 볼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 좌파는 1920년대 국제 혁명의 물결이 후퇴함에 따라 기회주의자들이 변절하고 퇴행하는 것에 대한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응답으로서 출발한 코민테른 좌파 흐름의 기원을 갖고 있습니다. 공산주의 좌파는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와 러시아 등에 기반을 둔 당시 세계혁명에서 중요하고 대표적이었던 나라들에서 나타났습니다. 1920년대 말에 시작된 반혁명의 시기에, 공산주의 좌파는 혁명적 물결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하면서 가장 비타협적이고 철저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방어를 입증해 왔습니다.


호주에서도 공산주의 좌파의 동조자들이 활동하면서 존재해 왔지만, 지금 이순간에도 공산주의 좌파 경향들은 단지 개별적으로 활동하면서 정치적 고립으로 인해 크게 고통 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계급투쟁에 효과적으로 개입하기 위해, 혁명가들은 공통의 입장과 원칙에 기초해서 자신들을 정치_조직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시기에 이러한 그룹을 즉시 형성하는 것은 아직 호주에서의 의제가 아닙니다. 지금 시기에 당장 필요한 것은 현재의 공산주의자 강령을 분명히 하는 (특별히 지리적으로 고립된) 동지들과 집단적으로 정치적 명확성의 입장을 밝히고 유지-발전 시키는 만남과 토론을 목표로 하는 국제주의자들의 형성에 있습니다.


따라서 호주에 있는 모든 공산주의 좌파의 동조자들 사이에 조직적인 토론의 시작을 호소합니다. 국제주의자 공산주의자 네트워크의 이름으로 토론이 제안 되었습니다.


우리는 참가의 기준을 현재의 좌익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기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것으로 제안했습니다.


-제국주의 전쟁과 민족(주의)운동의 모든 종류들은 노동계급에게 죽음과 파괴 이외에 안겨줄 것이 없습니다. 노동계급은 모든 부르주아 진영에 반대해야 합니다. 노동계급을 부르주아의 분파싸움에 동원하면서, 부르주아지들은 노동자들을 분할시키고 노동계급이 자신의 계급인 형제와 자매들을 대량 학살하는 것으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의회와 부르주아지 선거는 가장 무도회 입니다. 자본가의 ‘민주주의’는 자본가 독재와 어떠한 형태를 취하던 근본적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의회(주의) 서커스에 참여하자는 모든 손짓과, 피착취 계급에게 선거를 통해 권리를 행사하라고 하는 어떠한 선택도 거짓말을 강화할 뿐입니다.


-모든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체제의 기둥이자, 자본의 도구이며, 자본주의 서비스를 위해 행동 합니다. 노동조합의 근본적인 역할은 노동계급을 감시하며, 노동계급의 투쟁을 파괴하는 것에 있습니다. 노동계급의 즉각적인 이해를 방어하기 위해서도, 궁극적인 혁명을 만들기 위해서도, 노동계급은 노동조합에 맞서 노조 밖에서 투쟁해야 합니다.



All who may be interested in taking part are encouraged to write to:
InternationalistWorker@gmail.com
We also welcome any comments, questions and criticisms.

With fraternal communist greetings,

Fabius, Jack, Max, Niccolo, Thomas

 

 
번역 :   left communist group   ( http://cafe.daum.net/leftcommuni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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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의회주의 비판

“평의회주의” 문제


 

1. 평의회주의(Councilism)는 평의회공산주의운동 내에 1930년대에 이론화되기 시작한 오류의 극단적 표현이며 퇴행이다. 평의회주의는 러시아 혁명, PT독재, 당, 집권화에 대해서 수천번 부르주아지에 의해 주장되고, 무정부주의에 의해 반복된 입징에 “맑스주의적” 형식을 입히려는 공개적이고 기회주의적 시도이다.

 

2. 여기서는 러시아 경험에 기초하여, 맑스주의의 기본적인 두 가지 축인 PT혁명의 국제주의적인, 본질적으로 정치적 성격을 평의회주의가 공격하는 것을 살펴본다.

 

3. 세계혁명인가, 일국사회주의인가?

 

1) 평의회주의가 일국사회주의라는 스탈린주의적 입장을 반대하지만 PT가 “세계혁명을 기다리지 않고 임노동과 상품을 폐절시키기 시작했다는 주장은 문밖으로 내버린 입장을 다시 창문으로 불러드리는 것이다. 공산주의의 세계적 건설과 일국사회주의 건설 사이의 중간은 없다.

2) 부르주아혁명과 PT혁명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부르주아혁명은 목적과 수단에서 민족적이지만 PT혁명은 목적에서(공산주의) 그리고 수단에서(혁명과 새로운 사회 건설의 국제적 성격) 역사상 최초의 세계혁명이다.

3) 국제주의적 사고방식에 반대하여 1926~27년에 스탈린주의는 “일국사회주의” 테제를 주장한다. 트로츠키와 좌익공산주의(독일-네덜란드 공산주의자 포함)의 모든 경향은 이러한 입장을 반역으로 보았으며 이태리 좌파 Bilan은 그것을 코민테른의 죽음으로 보았다. 이점에서 무정부주의의 논리는 스탈린주의와 기본적으로 같다. 반집권화가 “일국사회주의”의 정식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자율”과 “자주관리”의 기반위에 “한 마을”과 “한 공장”에서의 사회주의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민주적” 외양과 “대중주도권의 존중”을 갖는 것 같지만 자본주의적 착취와 부르주아국가의 방어라는 스탈린주의와 동일한 방향으로 이끈다.

4) 평의회주의의 상이한 요소들의 진화가 있다. GIK가 채택한 “볼셰비즘에 대한 테제”(러시아 혁명의 부르주아 본질)는 가장 최악의 혼란의 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GIK 세계PT혁명의 본질을 공개적으로 의문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경제적 성격”에 대한 주장과 당의 부정은 암묵적으로 늪으로 빠지게 했다. 그 후 평의회주의 집단(특히 1930년대)은 공개적으로 “지방적 및 민족적” 사회주의 건설의 테제를 이론화했다.

 

4. 경제혁명인가 정치혁명인가

 

1) 평의회주의는 PT혁명의 첫날부터의 추진력은 공산주의적 경제조치의 채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20세기 초 세계시장의 형성을 완성했다. PT기지의 권력 장악은 “해방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은 자본주의 세계의 가치법칙에 완전히 종속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에 여전히 적에게 속해 있다. PT권력은 본질적으로 전체적이고, 승리한 지역의 본질적 역할을 세계혁명의 교두보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2) 평의회주의가 “공산주의적 경제조치”에 매달리는 이유는 PT혁명이 “정치수준에서 가로막혀” 노동계급의 조건에 어떠한 중요한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공산주의를 위한 투쟁의 목적은 착취의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착취를 폐절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권력정복을 진행시킬 수 있는 경제권력을 옛 사회 내에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궤적, 즉 세계 수준에서의 정치권력 획득으로부터 새로운 사회건설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3) 평의회주의는 PT혁명의 경제적 성격을 방어하는데 PT의 착취기반이 경제적이기 때문에 그것을 폐절하기 위하여 공산주의적 경제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적 진화에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지만 독립적인 두 가지 요인, 한편으로는 생산력의 발전과 생산관계의 지형(경제적 요인), 다른 한편으로 계급투쟁(정치적 요인)이 개입한다. 경제적 요인의 비중이 압도하는 부르주아혁명과 달리 PT혁명은 처음부터 높은 수준의 의식과 적극적 참여를 요구하는 PT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계급투쟁의 마지막 결과이다. 주체적 요인(PT 대중의 의식, 통일, 단결, 자신감)의 기본적인 원칙 차원은 역사상 최초의 대중적이고 의식적 혁명인 PT혁명의 정치적 성격의 우선성이다.

 

5. 실천에서의 평의회주의의 “경제적 혁명”

 

1) 평의회주의의 러시아 혁명의 대차대조표는 이렇다 ; 정치의 물신화와 “머나먼 혁명”의 희망 대신에 공장의 노동자통제의 즉각적 조치, 임금노동과 상품교환의 폐지를 채택하여 “관료주의”를 만들지 않고 혁명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평의회공산주의를 유혹하고 평의회주의가 오늘날 속물화시킨 주장이다. 평의회주의가 이러한 교훈을 끌어낼 때 그것은 맑스주의 전통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무정부주의와 경제주의와 연결되게 만든다. 이러한 평의회주의의 정식은 프루동에 이어 아나코생디칼리즘과 혁명적 생디칼리즘으로 이어졌으며 1917~23년 오스트로-맑스주의로, 그람시의 공장평의회 이론으로, 그리고 오토 룰레와 AUUD의 이론가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콜론타이, 1936년 스페인에서의 무정부주의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노동계급을 단순한 경제적, 사회학적 범주로 보고 역사적 계급으로 인식하지 않는 것이다.

2) 공장통제는 생산이 비용과 이윤율에 종속되어있을 때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에 의해 무엇을 가져올 수 있는가? 임노동은 노동시간 인환권으로 철폐되지 않고 상품폐지는 “공장사이의 회계”로 대체되지 않는다.

3) 자본주의 해체의 시기에 부르주아지는 “민주적 통제”, “자주관리”의 이름으로 평의회주의가 주장했던 미시적 개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위험은 계급이 역사적 관점을 상실하고 하나의 공장, 하나의 지역에 갇혀 패배한다는 점이다.


 

「러시아 수수께끼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International Review, 1st Quarter, 2004, 19~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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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의회 공산주의와 볼세비즘 비판

평의회 공산주의와  볼세비즘 비판

- 카요 브렌델  1999



1.


“중앙 지도력이 올바른 방식으로 생산되어진 모든 것들을 분배할 수 있다고 상상해 보자. 이러한 사실이 유지된다할지라도, 생산자는 생산의 기계류를 마음대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기계류는 그들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을 좌절시키는데 사용될 것이다. 불가피한 결론은 현존하는 지도력을 반대하는 그러한 집단들이 힘으로 억눌려지는 것이 될 것이다. 중앙 경제 권력은 동시에 정치적 권력 또한 장악할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된 정치적 문제나 경제적 문제에 대한 어떤 반대의 생각이 어떠한 가능한 수단으로 억압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맑스가 규정했던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의 연합 대신에, 이전에 아무도 본 적이 없는 교정시설(노역장)일 것이다.”


이러한 인용은 70년 전이 지난 오래된 텍스트를 자유롭게 옮겨다 놓은 것으로,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 이후의 생산관계가 맑스와 엥엘스가 이해한 공산주의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그렇게 인용된 팜플렛은 30년대의 테러를 앞에 두고 출판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예언이었다. 소비에트 사회에 대한 비판을 불러온 정치적 사건은 없었다. 이러한 비판은 경제적인 분석에서 제기되었다. 스탈린주의가 발생한 기반은 국가자본주의적 착취에 속하는 경제적 체계의 정치적 표현으로 이해된다. 이것은 단지 스탈린주의만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언급한 집단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그룹들에 속한 저자들의 텍스트이며, 팜플렛의 의미는 옳았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민주주의 뿐 만 아니라 볼세비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특징으로 한다. 노동자계급의 일상의 경험들을 세밀하게 분석한 그룹이 바로 이 집단이었다. 그래서 그 집단은 계급투쟁에 대한 새로운 사고로 나아간다. 그 경향은 사회민주주의와 볼세비즘을 ‘오래된 노동자운동’으로 규정하고, 이와 반대하여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운동’을 주장한다.


가장 초기에 이러한 경향의 대표자들은 독일과 네덜란드 맑스주의자였는데, 그들은 사회민주주의 좌파에 속했다. 그들은 오래 지속되었던 개량주의에 맞선 투쟁의 과정에서, 사회민주주의에 더욱더 비판적이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의 가장 잘 알려진 두 명의 네덜란드인은 안톤 판네쿡(1872-1960)과  헤르만 고터(1864-1927)이며, 두 명의 독일인은 칼 스로더Karl Schroder(1884-1950)과 오토 륄레Otto Ruhle(1874-1943)였다. 최근에는 매우 젊은 폴 매틱Paul Mattick(1904-1980)이 중요한 이론가의 일원이 되었다.


판네쿡의 생각은 철학에 대한 맑스주의적 반성의 세기의 전환기 이후에 잠깐 주의를 끌었다. 1906년부터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그는 독일에서 활동하였다. 처음에는 독일사회민주당 당연수원의 교사로 활동하였다가 독일로부터 추방의 위기에 몰렸다. 그는 브레멘에서 다양한 좌파문건은 썼다. 판네쿡이 브레멘에 있는 동안, 항만 노동자의 아주 중요한 비공인파업(wildcat strike)을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이 그의 계급투쟁에 대한 사상과 맑스주의에 대한 해석에 영향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볼세비키이론과 조직, 전략, 정책을 아주 이른 시기에 거부하게 된다.


오토 륄레는 독일노동운동에서 어떤 경향으로 자신을 정립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노동자계급의 전반적 이해를 망각해 본적이 없다. 판네쿡처럼 그도 1920년대 볼세비즘을 거부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트혁명이 부르주아혁명과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며, 그 결과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은 완전히 다른 조직의 형태를 요구한다고 정립한 최초의 인물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이유로 프롤레타리아트혁명은 당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궤변을 그는 거부한다. 그가 이렇게 말한다.  “혁명은 당의 과업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전체 노동자계급의 과업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더욱 더 세밀하게 되어가고, 그 경향의 성격들은 평의회 공산주의로 알려지게 되었다. 평의회 공산주의는 20세기 초반의 독일과 러시아의 경험에 기반하고 있으며, 평의회민주주의에 대한 방어하고, 당의 권력을 거부한다. 그것은 볼세비키와 볼세비즘으로부터 자신을 구분하였고, 자신을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것의 기원에서 그 의견들로부터 아주 멀리 나갈 만큼 이후에도 발전되었다.


2.


시작할 때는, 평의회공산주의는 레닌주의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륄레는 제 3인터네셔널의 당들을 공산주의자 중의 하나로 간주하지 않았다. 몇 년 이후에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더욱 더 분명히 볼세비즘과 구별하게 되었다. 이른바 10월 혁명은 짜리즘을 붕괴시켰고, 봉건관계를 끝장내고, 자본주의적인 혁명 중에 하나의 방식임이 분명했다.


평의회 공산주의자는 더 나아갔다. 그들은 러시아 경제가 임노동에 기초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그것은 노동력이 상품인 경제로 일컬어질 수 있으며, 잉여가치 생산과 노동자에 대한 착취만을 원하는 경제로 얘기될 수 있었다. 생산수단의 전취자로서 잉여가치가 사적인 자본가에게 나오느냐 국가에게서 나오느냐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은 맑스가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사회주의와 상관없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은 러시아에서의 생산이  계급적 사적 자본주의에서 존재하는 동일한 법칙이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맑스가 말했듯이, 착취는 임노동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종식될 수 있는 것이었다.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은 모스크바를 언급하면서, 공산주의가 더 이상 아닌 것으로 설명했다. 평의회 공산주의와 볼세비즘 사이의 구별은 더욱 더 분명해 졌고, 더 완전해 졌다.


3.    


이제까지 얘기한 것을 평의회 공산주의의 스탈린주의에 대한 독특한 비판이라는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볼세비즘 일반에 대한 비판이다. 평의회 공산주의는 스탈린주의를 10월 혁명의 결실을 제거한 일종의 반혁명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탈린주의는 러시아에서 자본주의의 문을 열게 한 10월 혁명의 결실이었다. 스탈린은 볼세비즘과 볼세비키 혁명의 계승자이다. 이러한 이론의 전개는 사회발전의 경우처럼 매우 천천히 진행되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생각과 자신의 실천을 바꾸어 나갔다. 최초로 독일과 폴란드에서 평의회 공산주의자 당이 설립되었다. 이전에 당들은 노동계급의 과업이 아니라고 언급했던 륄레와 같은 의견과 반대되는 경우이다. 그러나 륄레는 이러한 당들로서 조직을 완전히 새로운 성격으로 보았다. 더 이상 당이 아닌 당으로 말이다.


그러나 1924년 륄레는 다른 말을 연설한다. “하나의 당이 프롤레타리아적 단어 상의 의미로 볼 때, 혁명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불합리하다. 그것의 혁명적 성격은 부르주아적 의미에서만 그러하다. 단지 봉건제가 자본주의로 변할 때 말이다.” 그는 완전히 올바랐으며, 그러한 이유로 이른바 불합리성은 10 년간 프롤레타리아트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거기에는 약간의 예외가 있었으며, 2차 세계대전이후로 곧 그 표현들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았다.


동시에,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은 성장하였다. 그들은 러시아 혁명이 부르주아 혁명에 다름아니다는 것을 배웠으며, 러시아 경제가 국가자본주의에 다름아니다는 것을 배웠다. 그들은 새로운 연구를 충분히 성숙시킬 만큼 과업들에 대한 더 분명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그 외의 것들은 이전에 분명히 분석되지 못했지만, 이제는 더 명확히 올바르게 이해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분석이 판네쿡에 의해 1938년에 완성되었다. 그는 레닌의 철학에 대한 분석의 팜플렛을 출판하였으며, 볼세비즘에 대한 더 심오한 분석을 생산했다. 판네쿡은 레닌의 맑스주의가 하나의 신화에 다름 아니며, 실질적인 맑스주의와 대립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동시에 그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러시아에서 짜르주의에 반대한 투쟁은, 오래전 유럽에서 봉건제에 반대한 투쟁과 닮아 있었다. 러시아의 교회와 종교는 현존권력을 도왔다. 그런 이유로 종교에 반대한 투쟁은 사회적 필연성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레닌은 역사유물론을 18세기 프랑스 부르주아유물론과 거의 구분되지 않게 사고했다. 유물론이란 교회와 종교에 반대한 영혼의 무기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혁명 전 러시아의 사회적 관계와 혁명적 프랑스의 사회적 관계의 유사성도 사고할 수 있다.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은 레닌과 그의 당의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자코벵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것들은 러시아 부르주아혁명에서 그들의 당은 프랑스의 자코벵과 같은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17년 10월에서 5달이 지난 1918년 3월 볼세비즘은 이미 최소화된 권력이었던 소비에트를 야만적으로 공격하는데, 그것은 -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 10월 혁명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소비에트는 국가자본주의적 생산관계의 정치적 상부구조로는 적합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평의회 공산주의가 말하고자 했던 공산주의는 그러한 시스템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당 독재는 임노동의 폐절과 노동착취의 절멸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생산자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는 생산자의 민주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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