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7/06/15

[코뮤니스트 5호]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다!

  • 로자 룩셈부르크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혁명가이다!

     

     

     

    “위대한 혁명가들은 살아생전에는 억압계급의 끊임없는 탄압을 받았고, 그들의 이론은 허위와 중상모략에 가득 찬 가장 야만적인 적의와 가장 표독스러운 증오 그리고 가장 파렴치한 구호로 대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죽은 이후에는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변질되어 신성시되거나 결국에는 대부분 그들의 명성이 피억압계급을 회유하는 데 쓰이는 "위안"으로, 또는 후세에 기만하는 수단으로 숭배되는 등, 음모의 대상이 된다. 그와 동시에 그들의 혁명적 이론은 그 혁명적 본질을 빼앗기고, 혁명적 이론이 지니는 무기로서의 예리함은 무디어지고 통속화되고 만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노동운동 내의 기회주의자들은 위와 같은 마르크스주의의 변조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 (레닌, 국가와 혁명, 1917)

     

    1919년 1월 15일, 로자 룩셈부르크는 자유 군단(Freikorps)에 의해, 투쟁의 동지 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암살되었다. 이 병사들은 "사냥개가 필요하다면 내가 될 것이다"! 라고 선언했던 독일 사회민주당(SPD) 당원 노스케 장관의 명령을 받고 있었다. 베를린에서 봉기한 노동자들의 유혈진압을 진두지휘했던 것도, 국제 노동자 운동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암살한 것도 권력을 잡은 그 사회주의자 당(독일 사회민주당)이었다.

     

    이 끔찍한 살인은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일련의 중상모략을 통해 오랫동안 준비되었다. "붉은 로자", "선동자 로자", "피의 로자", "차리즘의 첩자 로자"... 로자 룩셈부르크에 대한 거짓 비난이 그치지 않았고, 베를린에서 "피의 주간" 이었던 1918년 말 / 1919년 초에는 학살에 대한 요구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로자 룩셈부르크를 살해하고 나서 불과 몇 달 후, 부르주아지와 노동자 운동의 기회주의자들은 그를 신성시하고, 그의 혁명적인 내용을 제거하고, 비하하고, 그리고 이 날카로운 혁명가를 무디게 하려고 그를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그들을 위해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원래 모습이었던 전투적이고 모범적인 혁명가로 남아있어서는 안 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일종의 평화주의자 그리고 페미니스트 민주주의자로 잘못 전해져, 두 번 살해되어야만 했다. 이것이 혁명을 위해 이 위대한 투사를 “명예 회복시키는”(즉, 다시 회복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최근 몇 십 년간의 “기억”이라는 작업의 진정한 목적이다.

     

    룩셈부르크와 레닌의 투쟁을 왜곡시키기 위한 꾸준한 캠페인

     

    1930년대 프랑스의 예를 들면, 루시앙 라우렛(Lucien Laurat) 주변에서 발전한 모든 흐름은 민주주의의 유혹에 점점 더 양보했고, 이윽고 “볼셰비키 혁명” 처음부터 혁명 계획의 “과실” 안에 “벌레” 레닌이 있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1936-39년의 스페인 전쟁에서 공화군을 위한 변명이 되었고, 파시즘에 대항하는 싸움이라는 구실로 제2차 세계 학살에 노동 계급을 용기병으로 참가하게 하는 변명이 되었다. 그것은 스페인의 POUM(스페인의 맑스주의 통합 노동자당 : 역주)과 그들, 민족 저항세력의 “영웅주의” 안 트로츠키주의자들을 지지했다. 이 구역질이 나는 민주주의 선전은 스파르타쿠스 기관지 설립자인 르네 르페브레(Rene Lefeuvre)와 같은 인물들을 거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작을 한다. 나중에 그는 로자 룩셈부르크 저작집[1]에서 완전히 이데올로기적인 머리말을 썼는데, 그것의 1946년 제목인 ‘독재에 반대하는 맑시즘’(로자 룩셈부르크는 절대 그 제목을 쓰지 않았다!)은 이 혁명을 위한 투사를 볼셰비즘에 근본적으로 적대적이라고 묘사했는데, 이는 역겨운 거짓말에 불과하다. 저작집 서문에서 르페브르는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 “모든 위대한 맑스주의의 저명한 이론가들: 칼 카우츠키, 에밀 반데벨드, 루돌프 힐퍼딩, 칼 레너, 조지 플레하노프는 – 그리고 말하는 김에 우리 또한 – 로자 룩셈부르크처럼 레닌의 전체주의적 교조가 맑스주의의 원칙에 완전히 반대된다고 비판했다.”

     

    스탈린은 레닌을 박제화했으며 그의 사상을 끔찍한 교리로 왜곡했다. "피의" 로자 룩셈부르크는 일종의 민주주의의 성인이 되었다. 스탈린주의 반혁명은 빠르게 두 개의 새로운 타락하고 상호 보완적인 이데올로기를 형성시켰다 : 한쪽은 매력적인 “룩셈부르크주의” 그리고 다른 쪽은 혐오스러운 "맑스-레닌주의". 정말 동전의 양면 또는 오히려 같은 결과를 가져올 함정으로 향하는 두 입구 : "피에 굶주린" 볼셰비키를 거부하고 "평화주의자" 로자로 묘사되는 인물을 존경하는 것은 철창 안의 사자를 존경하는 것과 같다.

     

    1974년 서독(FRG)에서, 그들은 심지어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미지를 담은 우표를 발행했다!

    official_postage_stamp_luxemburg_and_liebknecht.jpg

     

     

    프롤레타리아트와 혁명 조직에 반대하는 새로운 캠페인

     

    동유럽의 붕괴와 소련이 사라진 후, 이 광대한 이데올로기적 캠페인은 다시 발굴되었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함께 부르주아지가 열광적으로 선언한 이른바 “공산주의의 죽음”을 부양하기 위해 확대되었다. 여기에서 공식 이데올로기는 역사의 가장 큰 거짓말로, 공산주의와 스탈린주의를 같은 것으로 여기는 사기를 목표로 했다. 그것은 지배 계급의 손에 있을 때 특히 효과적인 이데올로기적 무기이다. 왜냐하면, 1990년대 이후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 여기고 그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키는데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는데, 이제 그 자신의 과거로부터 단절되어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어디서부터 왔는지 또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공산주의가 스탈린주의라면, 결국 실패한 공포였다면, 왜 그것을 위해 투쟁할까? 결국, 스탈린주의의 재앙으로 귀결될 뿐이라면 왜 노동자 운동의 역사를 공부하는가? 부르주아지가 우리의 머릿속에 집어넣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이 논리이며 독이다!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를 평화주의자,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독재", "스탈린의 정신적 아버지"인 레닌의 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이 비열한 선전에서 가장 악질적인 부분 중 하나이다. 그들이 그것을 의식하든 안하든, 이 가짜 싸움에 참여하는 사람은 노동계급에 반대하여 싸우는 것이다.

     

    오늘날 유럽 전역과 세계 도처에 걸쳐 서점 및 가판대와 블로그, 포럼에서는 전투적인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미지를 다시 왜곡시키기 위해 새로운 구역질이 나는 선전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그리하여, TV 프로그램에서부터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시 "여성"과 "평화"의 특성만을 가진 사람으로 등장한다. 아주 유명하고 명성 있는 신문 르몽드는 2013년 9월, ESCP 유럽의 교수인 장-마크 다니엘(Jean-Marc Daniel)이 쓴 글을 다음과 같이 잘 연상되는 제목으로 게재했다 : “로자 룩셈부르크, 맑스주의자-평화주의자” “맑스주의자”와 “평화주의자”라는 단어의 결합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 지배 계급에 대항한 “진짜 맑스주의자”가 봉기와 자본주의의 전복을 포기하고 계급 전쟁으로부터 이탈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동문학을 포함하여 수많은 책이 지금 로자 룩셈부르크를 다시 볼셰비키와 “독재자” 레닌의 완고한 적으로 묘사하면서 출판되고 있다. 사회비판그룹의 “룩셈부르크주의자”인 민주적 역사학자들의 후원 아래 파리에서 있었던 것처럼, 회의와 토론들이 여기저기서 조직되었다. 예술계에서조차 2014 MAIF 상은 "로자 룩셈부르크"를 기획한 조각가 니콜라스 밀헤(Nicolas Milhe)가 수상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 그녀가 혁명의 반대자로서 러시아 혁명, 볼셰비키에 대한 투쟁에서 그녀의 동지에게 반대했다는 조건으로 로자 룩셈부르크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천진스러운 우상"으로 그녀를 변환시키기 위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재조명은 거대한 이데올로기 중독 사업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는 세계적인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더욱더 "민주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주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산주의 흑서(Black Book of Communism)의 가증스러운 선전 후에는 매우 진지하고 공식적으로 학교 프로그램에서 배운 볼셰비키의 적으로서 여기는 것이 이제부터는  룩셈부르크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부르주아지를 위한 이해관계는 민주적인 부르주아지를 방어하는 것 외에 다른 미래가 없다는 것으로 가장 비판적이고 반항적인 구성원을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왜곡 배후에 불신과 혁명 조직을 악마화하는 또 하나의 말 하지 않는 목적과 함께 모든 종류의 민주주의자들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재조명하는 캠페인이 있다.

     

    2014년11월 7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1] “사회주의 조직의 문제”(1904), “대중과 지도자”(1903), “비판의 자유와 과학의 자유”(1899).

     

    <원문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icconline/201505/13055/rosa-luxemburg-belongs-proletarian-revolution-not-social-democrats

     

    rozam.jp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5호] 로자 룩셈부르크의 복원을 위하여

  • 로자 룩셈부르크의 복원을 위하여

     

     

     

    올해는 러시아에서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고, 2년 뒤에는 로자 룩셈부르크가 내부의 적들에게 살해된 지 100년이 된다.

     

    우리는 100년이 지난 지금 로자 룩셈부르크를 '평화주의자', '페미니스트 민주주의자'로 왜곡시켜 다시 한 번 살해한 세력에 맞서 싸워야 한다. 그들은 바로 부르주아와 노동자 운동 내의 기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자들과 함께 로자 룩셈부르크를 '민주주의의 성인'으로 둔갑시키는 더러운 선전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시도에 맞서 로자 룩셈부르크가 그 시대에 싸웠던 것보다 더 본질적이고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그것은 로자 룩셈부르크를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는 일이며, 이 시대의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일이다.

     

    우리는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작업을 지지하며, 이 위대한 투사를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소개하는 작업에 동참할 것이다. 그 일환으로 국제코뮤니스트흐름에서 작성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독일사회민주당의 위기 “유니우스 팸플릿” 한국어판 서문'을 소개한다. "유니우스 팸플릿”은 사회실천연구소의 '실천'에 처음 한국어 번역본을 실었고, 국제코뮤니스트흐름에서 독일어 원본을 번역하여 웹사이트에 게시했다. 원래는 출판을 통해 이 팸플릿을 한국에 소개하려고 했으나 우리의 문제로 계속 미루어졌고, 결국 온라인에 먼저 공개하기로 했다. 이 번역본이 독자들의 참여와 교정 제안을 통해 원본의 느낌에 가깝게 개선되기를 바라며,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소개될 수 있도록 출판 작업을 서두를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차 세계대전 발발 이듬해인 1915년 4월 옥중에서 쓴 이 글을 썼다. 그 후 이글은 국제사회민주당의 임무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부록으로 하여 1916년 1월 유니우스라는 가명으로 스위스 취리히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이 번역의 원본은 베를린 디이츠 출판사가 1974년 펴낸 로자 룩셈부르크 저작선집 제4권(1914년 8월부터 1919년 1월까지), 51쪽부터 164쪽이다. 역자의 번역 의도는 되도록 많은 이들이 로자 룩셈부르크의 통찰이 빛나는 이 글을 한국어로 접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흡한 점이 많은 상태지만 지금 이렇게 공개하게 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독일어 원본의 맛이 완전히 전달되기는 불가능하더라도, 앞으로 독자들의 많은 충고와 교정제안을 통해 이 한국어 번역본이 차츰 더 다듬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메일: http://ko.internationalism.org/contact)

     

    이 글은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단지 퍼갈 때는 가능하면 출처를 밝혀, 원한다면 모든 읽는 이들이 번역본의 개선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또 개선된 번역본을 접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사회민주당의 위기(유니우스팜플렛) - 로자 룩셈부르크, 역자 노트, 국제코뮤니스트흐름, 2017년)

     

    rozas.jpg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