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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코뮤니스트 김수행을 기리는 열 가지 기억

영원한 코뮤니스트 김수행을 기리는 열 가지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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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수행은 나의 친구이면서 마르크스주의자 동지이자 코뮤니스트 동지다. 우리 모두가 같이 이루어야 할 역사적 과제와 실천을 남겨두고 먼저 간 동지를 기억하며, 소중한 그와의 만남을 남기고 싶다. 그와 얽힌 10가지 기억을 정리한다.
 

 

 

하나. 첫 만남.
 
 
 

 

 

김수행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한신대에서 해직당한 후 기고하던 학술계간지 <현상과 인식>(1977년 창간) 필자들과의 만나는 자리였다. 우리 둘은 40대 초반이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엇물림을 줄곧 시도한 <현상과 인식>에는 우리나라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필자로 참여했는데, 그가 실은 글은 ‘현대 학문의 새 경향’(1983년 여름호), ‘상업자본과 상업이윤’(1986년 봄호),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동향들’(1983년 봄호) 등이다. 연구 논문과 토론 그리고 뒷풀이에서의 이야기로 30년을 넘는 동지 관계를 시작했다.

 

 
둘.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

 

 

2004년부터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을 위한 모임을 가졌다. 몇 차례 토론과 외국 사례 발표회를 거쳐 2015년 10월 김수행과 나는 다른 동지들과 함께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을 제안한다. 우리는 설립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역사 진보의 과정, 즉, 계급 없는 사회, 모든 억압과 착취가 사라진 인간 해방의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인류의 미래는 역사주체로서의 노동계급과 민중과 유기적 지식인의 변증법적 결합·통일을 통해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의 근본적 위기를 더욱 가혹한 억압·착취를 통하여 모면하려는 21세기 자본주의 체제의 시대에 노동과정을 포함한 인간의 총체적 삶의 과정이 비인간적으로 파괴되고 변혁주체로서의 노동계급과 민중이 철저하게 분권화될 뿐 아니라 지식이 시장에서 상품화되고 교육이 지배 이데올로기화되고 있음을 인식한다.”

 

 

자본주의에 맞설 수 있는 유기적 지식인을 양성할 고등교육기관으로서 부르주아 체제에 포섭되지 않는 대안학교의 건설이 시급하다고 우리는 보았다. 이렇게 시작한 사회과학 대학원의 실험은 2008년 봄학기부터 세 학기 정도 시험운영을 하고 그 후 김수행이 대표로 전념했다. 나는 2008년 2월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을 만들면서 역할분담을 했다.

 

 

 

10년이 지나 다시 한 번 새롭게 마르크스주의 학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이 때 그가 먼저 떠났다. 안타까울 뿐이다.

 

 

 
셋. 사회실천연구소 설립

 

 

2006년 11월 사회실천연구소 설립 제안이 있기 전 종합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 연구소를 향한 주제를 놓고 김수행과 나, 그리고 최규진이 토론했다. 이 토론이 사회과학 대학원 설립과 맞물려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 제안에 김수행은 흔쾌히 함께 만들어 가자고 했고, 그 날 우리는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셨다. 김수행은 나처럼 자주 많은 양의 술을 마시지는 않지만 애주가다. 술맛 나는 자리에서는 대주가가 된다. 특별히 막걸리를 좋아했다. 정년퇴임 후 주로 집에서 글을 쓰고 밖으로 나오지 않아 연구소에 가끔 들렀지만 마르크스주의 종합 연구소와 마르크스주의 학교를 향한 그의 꿈과 열정은 젊은 회원 연구자들보다 훨씬 컸다. 연구소 설립 취지에 “사회실천 연구소는 사회주의 운동 종합연구소를 지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밑바닥을 다지면서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노동계급 해방을 위한 사상을 곧추세우는 일에 나서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우리가 말한대로 김수행과 함께 했던 일들을 이루어 갈 것이다.

 

 

 
넷. 정년퇴임

 

 

한신대에서 해직된 후 시간강사로 지내다 서울대 교수가 된 것은 김수행 개인에게는 행운이었다. 개인의 행운을 넘어 그것은 서울대를 포함한 여러 대학 학생들의 교과과정 개혁 투쟁의 성과였다. 1984년은 전두환 체제 밑에서 억압받아 숨죽여왔던 학생운동이 한꺼번에 분출한 해였다. 학생회장을 스스로 뽑고 군사훈련을 반대하고 학원 자율화를 주장하는 대자보가 곳곳에 나붙고 집회가 열렸다. <자본론>을 가르치는 마르크스 경제학자를 채용하고 그들이 담당할 교과목을 개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김수행은 서울대에서 24년을 원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자리를 굳게 지켰다. 재직기간이 25년이 채 안된다고 그는 명예교수가 되지 못했다. 더구나 자신을 이을 후임교수를 선택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2008년 정년퇴임을 기념하는 자리에 나는 친구이자 동지 대표로 축사를 했다. 나는 2004년에 이미 명예퇴직을 했기 때문에 선배라고 농담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앞에 이야기한 마르스크주의 학교와 마르크스 연구소를 만드는 데 앞장섰던 김수행이 정년퇴임을 하더라도 지금부터 다시 마르크스주의 운동이 시작되는데 발벗고 나설 것이고, 그 대열에 우리 모두가 같이 서자고 했다. 마르크스주의자 김수행에게 정년은 없다. 그 후 성공회대에서 그를 석좌교수로 초빙한 것은 그가 다시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징표였다. 아, 그런데 몇 걸음 떼어놓다가 가다니!

 

 

 
다섯.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 재판 투쟁

 

 

2008년 8월 26일 나를 포함한 일곱 명의 동지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긴급체포되어 서울 종로구 옥인동 공안분실에 잡혀있을 때 김수행은 ‘참세상’에 가장 먼저 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는 이명박 정권을 규탄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그 글에서 “이명박 정권은 오세철 교수와 동료들의 구속을 빨리 풀고 ‘새로운 한국사회의 미래’를 고민하는데 동참하기 바란다. 이 벌집, 저 벌집을 자꾸 쑤시다가는 벌들의 반격을 받아 자기의 수명을 다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재판과정에서는 변호인 측 증인으로 참석해 판사와 검사에게 마르크스주의와 사상·학문의 자유,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과 그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에 대해 호통치며 일갈하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법원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과 집회에 참석해 힘차게 발언하던 김수행의 모습은 많은 사회주의자들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서슴지 않고 “나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도 잡아가야지”라며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친, 행동하는 마르크스주의자였다.

 

 
여섯. 단호하고 간결한 성품

 

 

김수행은 경상도 사나이라 말수가 적지만 한마디 하면 그 뜻이 확실하다. 여기서 처음 밝히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사회과학 대학원의 대표를 맡고 내가 사회주의 노동자 연합에 참여했을 때다. 조직 운동을 할 때에는 늘 사무실 공간이 필요하다. 그 때 그 때 돈을 모은다. 교수직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동지들보다 여유가 있어 십일조를 냈다. ‘사노련’ 사무실을 얻어야 하는데 목돈이 없었다.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사무실 보증금에 돈을 보탠 적이 있는데, 그 일부를 차용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김수행을 만났다. 얼마를 빼 갈테니 그 부분을 메꿔달라고 했다. “그래 알았어.” 단 한 마디였다. 여러 말이 필요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이른바 ‘진보적’인 사람들이 보이는 약삭빠름과 여기저기를 살피는 못된 버릇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이가 들수록 단순명쾌하고 낙관적이 되는 마르크스주의자의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준 사람이 김수행이다.

 

 

 
일곱. 절제하는 술

 

 

술 문제에 대하여 김수행은 그야말로 모범생이다. 애주가이며 가끔 대주가이지만 모임 뒷풀이는 밤 10시를 넘기지 않는다. 집이 멀어서가 아니라 그 다음날 일을 위해 절제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2012년 11월 내 고희 출판기념회에서 김수행은 여러 사람 앞에서 나의 술 문제를 비판했다. 내가 술을 너무 좋아해서 건강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일을 못한다는 지적이었다. 나의 가장 큰 약점을 호되게 나무라는 진정한 동지요 벗이었다. 그와 함께 한 잔 하면서 나도 밤 10시를 넘기지 않겠다고 약속하려고 했는데 술 동무가 우리 곁에 없다. 이 자리를 빌어 그에게 약속한다. 술에 빠지지 않고 즐기는 진정한 술꾼이 되겠노라고.

 

 
여덟.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생각

 

 

김수행은 2012년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한울)라는 책을 쉽게 풀어 출간했다. 그는 지금까지 러시아 혁명 이후 존재했던 이른바 ‘현실 사회주의’ 성격 규정을 한 적이 없다. 마르크수주의자들 사이의 토론과 논쟁에서도 그들 국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앞으로 올 세계 혁명에 대한 실천적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거나 언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름방학 동안 ‘사회실천연구소’가 개설한 ‘자본’ 강의가 끝난 후 수강생들과 함께 종강 뒤풀이를 하는 시간에 함께 하면서, ‘현실 사회주의’와 미래사회에 대한 입장을 같이 하게 됐다. 그의 책의 한 단락을 옮겨보자.

 

 

“노동자가 해방되고 자본가도 해방되어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사회’가 공산주의이고 사회주의라고 가르쳤습니다. 사실상 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은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당과 정부의 관료들이 점점 더 인민 대중을 옥죄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을 조금만 읽었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소련식 자본주의’가 내부의 위기 때문에 ‘일반적 자본주의’로 성장·전화한 것이 바로 1990년의 소련사회의 붕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그의 책, 4쪽). 얼마나 명쾌한가?

 

 

 
아홉. 코뮤니스트 김수행과 못다한 과제

 

 

김수행은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코뮤니스트임을 여러 동지들 앞에서 밝혔다. 젊었을 때의 관념으로서의 사상이 아니라 70 평생 마르크스주의 연구자와 코뮤니스트로서의 실천을 통한 귀결점이었다.

 

우리는 그 후 그가 이론적으로 정립하려는 ‘새로운 사회’의 구체적 모습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 모습을 책에 담아 그 내용과 세계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 속에서 검증되고 비판된 실천적 강령을 비교토론하는 논쟁을 하자고 약속했다. 우리가 마르크스주의자이며 코뮤니스트임을 대중과 함께 확인하고 실천하자고 다짐했다. 그것이 내가 진정으로 아쉬운 점이다. 김수행 동지, 우리가 못다한 과제를 다른 코뮤니스트와 함께 풀어갈 것을 약속하네.
 

 

 

열. 그의 마지막 강의 - 재능 농성장 거리 강연

 

 

김수행과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현장도 대학 강단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과 거리라고. 2011년부터 김수행과 나는 시청 앞 환구단 재능농상장에서 거리 강연을 했다. 그 해 11월 15일 김수행이 한 말이다.

 

 

“모든 공장이나 생산수단이나 기계나 토지나 모든 것은 모든 사람들이 소유해서 모든 사람을 위해 사용하는, 이런 사회를 만들자고 자꾸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재능 투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사회를 만들면 여러분이 재능교육의 주인이 되는 겁니다. 그렇게 만듭시다.”

 

 

잠시 중단했던 거리 강연을 금년 6월부터 혜화동 농성장에서 다시 시작했다. 1회는 내가, 2회는 김수행이 맡았다. 2015년 6월 26일 오후 6시, “세계 공황, 어디로 갈 것인가”였다. “좋은 자본주의는 있을 수 없다. 오직 자본주의를 폐절하고 넘어서는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코뮤니즘 만이 우리의 대안입니다”라고 김수행은 생애 마지막 강의를 했다. 이런 말이 있다. 배우는 무대에서 쓰러지고 선생을 실천의 현장에서 쓰러지는 거라고. 김수행은 재능투쟁 농성장의 거리에서 단호하고 힘찬 노동자의 세상을 외친 것이다.

2015년 8월 18일

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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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에 의한 테러와 민중당

노동자에 의한 테러와 민중당

플랜트노조 충남지부, 2·24 조합원 폭력사태
- 임성용

 

 

 
지난 2018년 2월 24일,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충남지부의 조합원 정기모임에서 충남지부 유승철 조직국장과 조합원들이 집단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자들은 충남지부에 소속된 같은 조합원들이었다. 
민주노총의 주요 노조인 플랜트노조는 조합원이 8만 명에 이르며, 그 중 충남지부는 조합원 1만여 명으로 조합비 분담금 2위의 대규모 지부다. 그런데 이번 폭력 사태에 관련된 플랜트노조와 민중당의 행동은 민주노조의 근본정신을 훼손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번 집단 폭행으로 대의원인 표건희는 손목 골절, 뇌진탕, 목과 허리 근육 손상으로 입원했으며, 조직국장 유승철은 안구 손상, 코뼈 골절, 안면 함몰 등으로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긴급 이송되는 중상을 입었다. 또한 ‘폭력반대’를 외치던 전영철 조합원도 뇌진탕과 목 근육 및 뇌혈관 손상을 입는 등 여러 조합원이 부상을 당했다.
충남지부에서는 1년 전인 2017년 임금 및 단체협약 투쟁 때도 일부 조합원들 간에 물리적 충돌이 빚어진 바 있었는데 여러 가지 복잡한 사정들이 얽힌 채 ‘분열과 대립’을 반복해온 끝에 결국 집행부 반대세력들이 회의 단상을 점거하고 조합원들을 집단폭행하는 살인적인 테러가 벌어진 것이다.
이 충돌 사건들은 겉으로는 노조운영과 주도권을 둘러싼 세력다툼으로 보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갈등의 요인은 노동조합 내의 ‘비공개 조직’ 문제에 있다. 이른바 ‘철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임’ 약칭 ‘철노회’라고 하는 현장조직과 2017년에 선출된 신임집행부 간의 뿌리 깊은 불신이 적대적 관계를 형성해 왔다. 
이번 테러에 대해 피해자인 충남지부와 가해자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지부는 철노회가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주도한 ‘노조파괴 책동’이라고 규정했다. 철노회에 소속된 폭행가담자들은 발언권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벌어진 ‘우발적인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입장은 명백하다. 회의 중에 갑자기 단상 뒷문을 통해 몰려나온 20명 이상이 회의 진행자의 마이크를 빼앗고 바닥에 쓰러뜨린 뒤, 쓰러진 사람을 에워싼 채 작업화로 짓밟고 집단폭행을 했다는 것이다. 
충남지부 조합원들은 사건 직후인 3월 10일에 비상총회를 열어 '노조파괴에 대한 전 조합원과 함께 하는 집단대응 대책의 건'을 압도적인 찬성으로(90.69%) 통과시켰다. 사건의 엄중함을 고려하여 개인적 보복행위를 금지하고, 폭력 피해자와 조합원,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조합원을 폭행한 자는 조합원들과 함께 일할 수 없다! 2월 24일 집단폭력 가담자와 회계부정에 관여된 자는 상벌규정에 따른 징계완료시까지 기타 분회로 편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민주노총의 입장도 명백하다. 충남지부는 민주노총 규율위원회에 폭력행위자들을 제소했으며 민주노총 규율위원회는 해당 사건의 진상조사가 실시될 때까지 가해자들에 대한 사전조치를 명령했다.
 

 

갈등의 원인

 

 

그렇다면 충남지부 사태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먼저, 갈등의 중심이었던 ‘철노회’와 충남지부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충남지부에서는 철노회가 ‘비공개 언더조직’이라고 말한다. 반면 철노회에서는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사조직’이라고 말한다. 
철노회의 성격은 그 운영구조와 활동방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철노회는 창립총회를 갖고 발족하였으며 회칙을 제정했다. 회칙에는 ‘노동조합의 합리적 운영을 위한 견제와 비판활동, 노동조합의 발전적 대안 마련을 위한 공론형성 활동을 목표로 한다’고 되에 있다. 대표자회의와 실행위원회를 두고 월 1회 이상 회의를 가졌다. 대표자회의는 직종별 단위모임 대표자와 회장, 실행위원장으로 구성되고, 실행위원회는 각 직종별 단위모임 실행위원과 실행위원장으로 구성되었다. 실행위원회의 회의는 실행위원장이 주재하였다. 이와 함께 회원용 소식지를 발간하였다. 모든 면에서 사조직, 또는 단순한 현장조직과는 다른,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치밀한 조직체계를 갖추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민주노조에는 다양한 의견 그룹들이 존재한다. 그것은 노동조합의 발전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한 모임들이다. 만일 철노회가 현장조직이라면 민주노조에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세력들이 그들의 정치적 성격에 치우친 활동기조와 목적을 바탕으로 노조를 장악하려 한다거나 반대 세력들을 배척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노조 내에 분열과 갈등의 핵심이 된다. 
충남지부 집행부는 철노회가 ‘비공개적이고 음모적인 활동 속에서 운영위원회나 대의원회의를 장악하여 자신들만의 독립된 이해와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활동들을 주요 목적으로 삼았다’고 본다. 곧 조합원 전체의 이해와 함께하기 보다는 철노회 자신들만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분파적이고 종파적인 활동으로 현장과 조합원들을 교란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철노회 소속 간부들이 충남지부 김준수 집행부가 출발할 때부터 조직적으로 충남지부 흔들기에 매진했고 이를 멈춘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충남지부의 다수 조합원들도 ‘지난 6년 동안 충남지부를 장악했던 사람들이 철노회이고 전대 간부들이 그 세력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들이 집행부를 장악하지 못하자 자신들이 집행부로부터 탄압 받고 있는 민주세력이라면서 역공을 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철노회에서는 지부의 공세를 철노회에 대한 ‘정치공작’이며 ‘조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부에도 ‘씨앗 동지회(현재 해산한 상태)’라는 현장조직과 연관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철노회’와 뭐가 다른 것이냐, 한마디로 ‘내로남불’이라는 것이다. 철노회가 가장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자신들을 ‘외부정치세력’이라는 프레임에 가두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양측의 주장이 부딪치는 상황에서 어느 한 쪽을 비호하고자 공정하지 못한 접근을 하면, 갈등이 해결되기는커녕 서로가 서로를 더욱 불신하고 적대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사건 경과부터 객관적으로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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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경과

 

충남지부 노동조합 블로그에 게시된 폭력사태의 경과를 ‘주요 쟁점’ 중심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2017년 >

 

- 1월 14일 : 충남지부 노조 임원 선거에서 2차 투표 끝에 단독출마 한 김준수 지부장 당선.
- 6월 ~ 7월 : 임단투 쟁의, 파업과정에서 1차 잠정합의안 부결, 철노회 측 노동자들의 폭력으로 조합원 내 대립 격화.
- 7월 31일 : 2차 잠정합의안 찬반투표 결과 찬성 72.5% 로 가결됨
- 8월 26일 : 철노회 측에서 지부장 불신임 총회 열었으나 불신임 반대가 65.97% 로 재신임 됨. 
- 10월 24일 : 전임 집행부 회계에 대한 특별외부회계감사 1차 회의 시작 (장석우 변호사·회계사, 이장희 공무원노조, 박인기 대학노조, 유영주 금속노조, 조지영 충남세종본부 외)
- 10월 31일 : 지부 운영위에서 일부 분회장 등 간부를 파업 파괴를 이유로 제명 및 정권 등 징계 의결함
- 12월 13일 : 철노회 38명이 지부장을 상대로 4,800만원의 명예훼손 민형사 손배소 제기함

 

< 2018년 >

 

- 1월 17일 : 플랜트노조 중앙 재심 징계위에서 절차적 문제를 들어 분회장 등에 대한 징계조치를 무효로 결정함.
- 1월 22일 : 민중당 김창한 대표, 충남지부장을 상대로 3,100만원의 명예훼손 손배소 제기
- 1월 30일 : 충남지부 조합원들, 플랜트노조에 ‘충남지부 갈등 문제 해소를 위한 진상조사위원회 공개조사(조합원 공개토론회)' 요청. 
- 2월 24일 : 충남지부 2월 정기모임 중 비계, 제관, 계전, 보온분회 간부들에 의해 집단 폭행이 발생해 표건희, 유승철, 전영철 등 간부와 조합원 다수가 입원하는 사태가 벌어짐. 
- 3월 5일 : 충남지부 구집행부에 대한 외부특별회계감사 결과가 발표됨. 조합비에 대한 횡령 및 유용 의심 환수금 297,613,412원. 조합비 반환에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횡령 및 유용 의심 부분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기로 함.
- 3월 10일 : 충남지부 비상총회, 특별외부회계감사 결과 보고. ‘노조파괴에 대한 전 조합원과 함께 하는 집단대응 대책’ 통과.
- 3월 12일 : 철노회 소속 4개 분회장,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에 ‘총회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서’를 제출. 
- 3월 23일 : 충남지부 비상지도부, '특별외부회계감사 결과보고'에 따른 회계부정 의심자 2명을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에 '업무상 횡령죄'로 고소장 제출. 
- 3월 27일 : 플랜트노조 5차 운영위, 충남지부 징계 회부 결정.
- 4월 3일 : 충남지부장 김준수, 민중당 대표에게 ‘2.24 집단폭력 가담자들과 조합비 공금횡령 피고소인들 중에 핵심 주동자들이 민중당 충남도당 위원장 및 민중당 충남도당 소속임을 밝히고, 집단폭력가담 당원들과 노조 공금횡령 회계부정 당원들에 대한 민중당의 징계와 탈당 처리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
- 4월 26일 : ‘충남지부 회계부정, 폭력사태에 가담한 민중당원을 민중당은 신속히 징계하라’는 입장을 발표하고 민중당 대표단과의 면담 요청.
- 4월 26일 : 충남지부 3가지의 요구 사항을 가지고 여의도 민중당사에서 항의집회.
1. 민중당은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는 공당의 책임을 다하라!
2. 건설노동자에게 제기한 손배소 당장 철회하라!
3. 집단폭력 및 회계비리 관련 당원 즉시 징계하고 출당시켜라!
강성철 노동안전국장, 요구사항 해결을 촉구하며 민중당사 앞에서 항의농성 돌입. 충남지부, 길거리 농성과 점심 항의집회를 이어감.
- 5월 7일 : 민중당 측에서 충남지부에 ‘비방행위 등의 금지에 대한 가처분 소송’을 제기.
- 5월 9일 : 여의도 민중당 중앙당사에서 충남지부와 민중당 중앙당 사이에 면담 진행, 면담 결과를 듣고 민중당 중앙당사 농성장 철수.
1. 충남지부의 사과를 전제로 손배소 철회한다.
2. 집단폭력과 조합비 공금횡령에 관여한 민중당원에 대해서는 노조에서 민중당 중앙당으로 제소장을 올리고 중앙당 차원에서 징계를 진행한다.
- 5월 11일 : 부당한 상벌규정 개정 철회 및 징계절차 진행 중단 촉구 플랜트노조 전·현직 간부 연서명. 본조 및 여수, 울산, 전북, 경인, 강원, 전동경서, 충남지부 등 189명 서명.
- 5월 11일 : 민중당 측에서 충남지부의 후속조치 요청.
1. ‘사실관계 정정 및 사과문’을 노조 홈페이지,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즉시 게시
2. 조합원 모임에서 ‘사실관계 정정 및 사과문’을 유인물로 배포
3. 이전 시기 인터넷 등에 게시한 민중연합당(민중당) 비방과 공격의 내용물 일체를 즉시 삭제
- 5월 21일 : 충남지부장, 민중당 대표에게 민중당이 보내온 5월 9일 면담결과에 따른 후속조치 요청에 대한 답변 전달.
- 5월 24일 : 민주노총법률원,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운영위에서 결정한 충남지부 김준수 지부장에 대한 제명은 ‘노동조합 규약 위반, 현행 노동조합법 위반, 노동부 행정해석 위반’ 등으로 무효이며, 개정된 상벌규정 또한 규약에 위반되어 '무효'라는 답변.
- 5월 29일 : 민중당, 충남지부의 후속조치 요청에 대한 답변에 대한 재답변. 5월 11일에 민중당이 충남지부에게 보내온 후속조치와 동일.
- 5월 29일 : 플랜트노조 이종화 위원장, 2018년 충남지부 충남지부 단체교섭권 철회 공문을 지부와 사측에 발송, 임금교섭 무산.
- 6월 4일 : 충남지부 최종입장을 민중당 상임대표에게 전달.
‘민중당은 또 다른 가처분 소송(5월 7일 비방행위 등 금지 가처분 소송제기함)은 5월 9일 공식면담 일정을 잡은 놓은 상태에서 그 2일 전에, 지부 상대로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또한 민중당에서 협의진행 공문 형태를 보면 지부가 협의조정을 제시하였지만, 이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는 첫 번째 공문과 똑같은 공문을 재차 보내므로 더 이상 민중당과 협의가 ‘의미없음’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누구를 위한 민주노조인가?

 

 

충남지부 폭력사태의 경과를 보면, 플랜트노조에 관한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조합원 폭행이 발생하기 전인 2018년 1월 30일, 충남지부에서는 본조인 플랜트노조에 ‘충남지부 갈등 문제 해소를 위한 진상조사위원회 공개조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플랜트노조에서는 지부의 입장보다 철노회 입장의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받아들였다. 당시에라도 노조 중앙이 지부의 요청대로 갈등 해결을 위한 조사 및 조합원 토론회를 열고 보다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했지만 그러한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2018년 2월 24일, 끝내 폭력사태가 터졌다. 그러나 피해자인 지부는 더 곤경에 빠졌다. 플랜트노조가 이해할 수 없는 대응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특히 조사위 구성과 절차에서 플랜트노조는 충남지부 조합원들의 공분을 샀다. ‘부정’과 ‘폭력’에 대한 처리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위해 진행’하는 것으로 전도되었다는 것이다. ‘2017년도 임단협 투쟁에서 자행된 철노회의 쟁의행위 파괴 행위에 대해 징계’하고자 했던 충남지부의 의지를 본조가 막아서고, 오히려 폭력사태를 일으킨 가해자들을 비호하는 자세를 취한다고 분노했다. 
이 과정에서 눈에 띠는 대목이 있다. 플랜트노조 중앙에서 충남지부의 사태를 바라보는 관점이 지부와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플랜트노조 이종화 위원장은 2018년 2월 27일 입장문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1. “충남지부 2/24 정기모임 테러에 대해” 노동조합 조합원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로 인하여 부상자가 생긴 사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2. 취업 제한에 관련한 이해관계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플랜트노조 위원장이 “충남지부 2/24 정기모임 ‘테러’에 대해”라는 표현을 썼다시피, 당일 사태를 물리적 충돌 이상의 것으로 보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폭력이 일어난 원인을 ‘취업 제한에 관련한 이해관계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인식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는 있다. 건설 노동자들은 일반기업체나 정규 상용직과 달리 고용불안이 항상적으로 존재한다. 조합 내에서 세력 간의 갈등은 곧바로 실업과 취업기회 배제로 이어지는 상황이 많았다. 2·24 폭력 가해자들 역시 ‘취업제한을 당했다.’라는 피해의식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노조의 주도세력으로 있을 때에는 반대로 다른 조합원들이 그들로부터 양질의 일자리 획득 기회를 배제 당했다고 여겼다. 충남지부에서는 ‘철노회가 집행부를 장악했을 때 취업제한을 하고 업체에게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공문으로 보낸 바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것만 봐도 노동조합의 권력을 가진 세력이 자신들과 대립하는 조합원들을 취업기회에서 부당하게 배제시켰다는 의심을 갖게 한다. 그렇다면 플랜트노조는 취업, 회계, 운영, 폭력까지 과거와 현재의 문제점을 조사해야 하는 게 당연하다. 노조 차원에서 객관적이고 철저한 조사를 하면 충남지부와 철노회 문제도 그 허위와 진실이 무엇인지를 가릴 수가 있다. 
더구나 폭력사건이 ‘테러’라고 인정한다면, 노조의 즉각 조치가 필요하고 단호한 징계가 요구된다. 그 요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충남지부는 플랜트노조에 조합원 폭력사건을 신속하고 엄중히 처리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지부의 요청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플랜트노조 운영위원회는 노조상벌규정까지 변경하면서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충남지부장, 수석부지부장, 사무장 등 지부 임원에 대한 역징계를 내렸다. 이것이야말로 조합원 폭행사건으로 한층 격화된 충남지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민주노조에서 조합원들에게 가하는 내부적인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전체 조합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회의 진행을 방해하고 특정인을 지목하여 집단적으로 ‘무자비한 린치’를 가했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왜냐하면 폭력 자체가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이고 반노동자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폭력은 노동조합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그 어떤 변명이나 이유가 통용될 수 없다. 폭력 앞에서는 사과와 반성이 먼저다.
우리가 이성적인 눈으로 바라봐야할 문제의 본질은 ‘부정’과 ‘폭력’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에 전에, 폭력의 경위와는 상관없이, 무엇보다 명백한 것은 민주노조 역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끔찍한 ‘폭력’이 저질러졌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을 징계해야할 1차적 책무가 있는 플랜트노조에서는 손을 놓았다.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위한 정상적인 조치와 처리과정을 밟지 않았다. 
폭력은 민주노조의 정신이 아니다. 폭력은 상대적 배제를 전제로 행해진다. 폭력은 굴복을 강요하고 선택을 가로막는 것이므로 상호조정의 방식이 될 수도 없다. 전국플랜트건설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민주노조의 원칙과 정의는 무엇인지, 그 질문을 노동자 스스로에게 되묻게 해야 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뜻에 반하는 모든 결정은 반민주적인 폭력이다. 그것은 노동조합의 주인인 노동자를 주체가 아닌 객체로 전락시킨다. 비민주적인 노조는 노동자 전체의 권리와 자유로운 의지, 투쟁보다는 특정 집단의 목적과 이익에 부합하는 ‘노동자 정치’에 몰입한다. 그것을 우리는 민주노조의 근간인 ‘노동자 민주주의’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한 조직은 어디나 통제적 지위를 점유한 상부가 있다. 상부가 지시하고 명령한다. 그것을 우리는 관료주의라고 한다.
누가 보더라도 충남지부 폭력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플랜트노조 위원장과 노조간부들은 즉시 충남지부를 방문하고 조합원들 곁으로 달려갔어야 했다. 노조는 조합원들을 보호해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플랜트노조는 충남지부 조합원들과 면담이나 토론, 간담회를 한 번이라도 열었던 적이 있는가? 폭행 피해를 당한 조합원들을 찾아보고 위로를 한 적이 있는가? 사태 해결을 위해서 과연 얼마만큼의 노력을 기울였는가? 정말로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들보다도 먼저 지부 임원들을 제명시키는 게 옳은 일이었는가?
 

 

누구를 위한 진보정당인가?

 

 

충남지부는 현재 2018년 임금교섭을 앞두고 사측과의 투쟁에 모든 힘을 모아야 할 시기에 내부적으로는 조합 내의 폭력, 그리고 플랜트노조 중앙, 밖으로는 민중당과 싸워야할 처지에 놓였다. 지부의 내부갈등이 노조 외부로까지 옮겨져 ‘민중당’과 충돌하기에 이르렀다. 
충남지부는 철노회의 간부들이 특정 정치세력인 ‘민중당 당원’이라는 이유로 철노회와 민중당의 연계성을 문제 삼았다. 2017년, 지부와 철노회가 부딪친 것도 회계부정과 같은 노조 운영문제도 있었지만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민중당과 관련된 철노회의 ‘정치성’ 논란이었다. 즉 철노회는 민중당의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조직이라는 것이었다. 철노회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인물이 일반 당원이 아닌 ‘민중당(전 민중연합당-이하 민중당) 충남도당 공동대표’였으며, 철노회의 구성원 다수가 당원이라는 동일성이 작용했다. 충남지부는 철노회에 대한 그런 혐의를 민중당에게 두고 공개적으로 민중당을 비판했다. 그러자 2018년 1월 22일, 민중당 김창한 대표는 충남지부장을 상대로 민중당에 대한 명예훼손, 허위사실유포 등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런 갈등과정에서 발생한 2·24폭력사태는 충남지부와 민중당이 결정적으로 대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충남지부는 민중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모인 철노회에서 조합원 폭행사건을 주동한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그들의 소속 정당인 민중당 대표에게 "회계부정, 폭력가담 당원에 대한 징계요청"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민중당은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는 공당의 책무를 다하라!”면서, 민중당 대표단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폭력 당원’ 문제는 엄중하게 처리되지 않았다. 민중당에서는 다시금 충남지부에 비방금지가처분신청을 냈다. 
철노회는 이미 2017년 12월 중순 경에 충남지부장에게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철노회 텔레그램방 문자를 공개하고 철노회의 민중당 당원 명단을 공개한 것은 개인의 사생활보호를 침해한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철노회와 민중당의 소장에는 ‘토씨 한 글자 빼지 않고 동일한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충남지부는 철노회와 민중당의 관계를 개인이 아닌 조직적 관계로 보았다.
충남지부에서 민중당에게 문제제기를 한 부분은 처음부터 첨예하게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흔히 노조에서 조합원들은 ‘외부정치세력’이라고 하면 자신들을 기만하고 노동조합을 그들의 정치활동 수단으로 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충남지부에서도 그랬다. ‘민중당이 노동조합 내 철노회를 사주하고 있는 세력이며 민중당원들은 전체 조합원의 이익과 무관하게 권력을 탐하는 부정한 사람들이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선전물이 배포되었다. 현장에서 수년 간 헌신적으로 현장투쟁을 벌여온 조합원들은 점차 ‘철노회’와 ‘민중당’에 대한 불만을 갖기 시작했다. 지부에서는 ‘민중연합당이 지역노동조합에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노사관계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중당에서는 ‘민중당은 노동자를 비롯한 서민과 민중들의 권리를 대변하고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정당을 목표로 지지자들의 신뢰와 믿음을 얻기 위해 노력해 왔다. 철노회 회원이 민중당 당원과 일부 중복된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근거 없이 민중당을 비방하고 공격하는 것은 민중당 지지자들과 구성원들에게 씻을 수 없는 불신과 오해를 사게 되었다.’고 반박했다. 
또한 여기서 끝나지 않고 충남지부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충남지부 김준수 지부장은 민중연합당이 민중당으로 바뀌기 전, 현장통신 유인물을 통해 ‘민중연합당 관련 유감표명’을 했다. 충남지부 내 당원 일부의 행위가 아니라 민중연합당 전체가 충남지부에 개입하는 것처럼 오해를 살 여지가 있었다. 이에 대해 충남지부는 해당 사항을 전혀 알지 못했던 민중연합당 당원들에게 유감을 표한다’는 내용의 사과문이었다. 그러나 민중당은 손배를 철회하지 않았다. 민중연합당의 소송을 계속 이어받아 그대로 유지한 채, 다시 비방금지가처분신청을 내면서 충남지부를 압박했다. 
민중당이 노동자민중을 위하는 진보정당이라면 묻고 싶은 게 있다. 여야 보수 정치판에서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에게 서로가 무수한 비난과 공격을 퍼붓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인터넷과 SNS에서 행해지는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은 거의가 합리적 비판을 뛰어넘는 비방 수준이다. 비판이든 비방이든 그것은 대중들의 감정과 정서가 담겨 있고 여론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일베와 같은 악질적인 언어폭력, 불순하고 악의적인 유언비어, 특정인의 신상과 명예에 관한 인신공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비판과 표현의 자유가 허용된다.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충남지부에서 민중당에게 ‘회계부정과 폭력당원에 대한 징계’를 처리해달라고 바라는 것은 당연한 요청이다. 만일 당원의 징계에 관한 제소 규정과 절차를 중앙당에서 진행하기 곤란하다면 도당과의 협의를 통해서라도 분명한 입장을 취하는 게 옳지 않은가?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치정당에서 일개 노조의 지부와 노동자를 상대로 단지 ‘비방을 했다’는 이유로 수천만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보수 정당들에서조차 유래가 없는 일이다. 극우보수정당인 자유한국당에서도 그런 일로 소송을 걸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박근혜의 국정농단 시국에서 새누리당을 공격하는 시민단체와 국민들에게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비방금지신청을 냈다면, 이 나라의 국민들은 아마 수백만 명이 법적인 분쟁에 휘말리고 걷잡을 수 없는 소송을 당했을 것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대응은 어떠했는가? 진상조사나 소명도 없이 그 즉시 제명 조치했다. 성폭력과 집단폭력은 다른 문제인가? 똑같이 ‘인권’을 짓밟는 문제이고 똑같은 ‘폭력’의 문제이다. 폭력문제에 있어서는 ‘폭력을 당한 자’가 억울함이 있어서는 안 된다. 폭력은 ‘폭력행위자’를 반드시 처벌하고 폭력에 대한 죄를 묻는다. 즉 폭력은 응징의 대상일 뿐이다. 그게 상식이고 법이다. 
그럼에도 민중당에서 노조 지부장과 노동자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것은 진보정당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민중당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와 노동자들이 추구하는 민주주의가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민주주의의 개념에는 필수적으로 '비판의 자유'가 있다. 진보정당과 노동조합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비방'과 ‘명예훼손'으로 단정 짓고 법으로 보상을 강제하고, 소송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다. 사실관계 정정, 반론과 토론, 대중적 검증을 통해 좀 더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방안을 찾고 좀 더 직접적인 노력을 쏟았어야 했다. 그것이 운동적 해결방법이다. 그것이 자본가계급과 다른 노동자민중의 정치적 해결방식이다. 민중당이 지배계급과 똑같은 방식으로 노동자를 대해서야 되겠는가? 
하물며 충남지부에서 사과 의사를 밝히고 사과를 했음에도 또다시 재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마치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전제적 사고와 다를 바 없다. 피소를 당한 노동자들의 심경은 참으로 참담할 것이다. 노동자와 함께, 민중과 함께 하는 민중당이라면, 노동자를 꼭 법정에 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자본가들이 만들어놓은 법전을 뒤적거리는 것은 결국, 드높은 명예를 가진 자와 손해를 보지 않고 이득을 얻겠다는 힘 있는 자를 위한 판결로 마무리 된다. 노동자와 민중들을 다스리기 위해 법관들의 손아귀에 움켜쥔 ‘법의 심판’에 어찌 민중당이 기대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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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는 노동자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위기와 파국은 자본과 권력에 의한 파괴가 아니라면, 보통 노조 주도세력들 간의 분열에서 기인한다. 플랜트노조도 마찬가지다. 액면 그대로 보자면 충남지부 조합원 폭력사태는 노조 주도세력과 지부 주도세력의 대립으로 변했다. 
이런 경우엔 둘 중 하나의 누군가는 조합원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한다. 패권적이고 관료적인 행보를 취한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패권주의를 버려야만 한다. 더구나 피해자를 가해자로 둔갑시켜 부당한 징계를 고수한다면, 플랜트노조와 충남지부는 노동조합 주도세력 간의 끝없는 쟁투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은 2018년 6월 18일, 플랜트노조 제11차 운영위원회에서는 중앙 징계위를 통해 충남지부 비상지도부 8명에 대한 제명을 결정했다. “노동조합을 지키자!”는 조합원들의 총의를 담은 총회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과연 민주노조가 무엇인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부 비대위에 대한 징계를 요청한 자들은 2·24집단폭력가담자들이었다. 노조 중앙 운영위는 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조합원 총회의결사항을 집행했다는 이유로 지부 임원 3명을 전원 제명 조치한 이후, 또다시 조합원들이 구성한 비대위원들까지 제명시키는 폭거를 저질렀다. 
또한 플랜트노조를 대표하는 위원장은 충남지부의 2018년 교섭권마저도 회수했다. 조합원들은 임금인상 투쟁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조합원들이 무슨 죄가 있기에 이 같은 곤경에 처해도 되는 것인지, 어찌하여 노조가 노동자에게 희망이 아니고 절망이 되는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교섭권 회수는 만 명이 넘는 충남지부 조합원들 전체의 이해와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독단의 결과이다. 조합원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노조와 노조 위원장은 노동자에게 버림받는다. 누가 뭐래도 분명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플랜트노조 충남지부는 조합원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노조 주도세력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수만 명의 조합원들 모두가 인정하는 합리적인 결정이 반드시 내려져야할 일이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노조 주도세력과 민중당의 관계’이다. 충남지부는 ‘노조의 임원 및 운영위 다수를 민중당 당원으로 의심’하고 있다. ‘노조와 민중당’이 뗄 수 없이 관계된 지점이 있다고 여전히 우려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그것은 2차례에 걸친 노조 상벌규정 개정을 보면서 더욱 심각해졌다. 
노조 운영위는 8대 지부 지부장, 수석부지부장, 사무국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더불어 사무국장의 조합원 선출은 지부마다 다르다고 한다. 즉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된 지부 임원이 비선출된 사람들에 의해 징계되고, 나아가 노조 주도세력의 눈 밖에 나면 어떤 지부이든지 날릴 수 있는 관례가 상벌규정 개정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충남지부에서는 노조가 분회 임원에 대한 징계는 어렵게 하고 지부 임원에 대한 징계는 쉽게 했다면서 노조 주도세력이 지부 임원들을 징계의 표적으로 삼았다고 반발했다. 결국 철노회와 노조 운영위 임원과 민중당은 한 몸 아니냐는 것이었다.
설령 철노회가 민중당과 관계가 있는 조직라고 하든 노조 임원들이 민중당 당원이라고 하든, 사실상 충남지부의 문제에 민중당이 현실적으로 개입할 여지는 없다. 폭력 당원 문제는 민중당에서 의지가 있다면 절차나 규정에 따라 처리하면 된다. 다시 말해서 민중당 당원이라고 해서 하등의 문제가 될 건 없다. 민주노조의 기본과 도덕을 지키고 조합원 전체를 방어하는 조직, 자신들의 활동에 책임을 지는 사람들이라면 그들의 ‘현장정치’는 조합원들의 지지를 받고 더욱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기본도 상식도 지키지 않고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면 조합원들로부터 외면당할 건 뻔한 일이다. 노조는 노동자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진보정당은 노동자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의 기본은 노동자조직의 주인은 노동자라는 상식을 지키는 일이다.
 

 

* 필자 : 임성용 시인. 화물운수노동자. 시집으로 <하늘공장> <풀타임> 산문집 <뜨거운 휴식>이 있다.

 

* 월간 '시대' / 201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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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7호]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에서의 집단이성과 관료주의의 대결

  •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에서의 집단이성과 관료주의의 대결

    -충남지부 조합원들의 노동자민주주의를 지지하며-

     

    1.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운영위원회의 관료적 결정

     

    지난 2월 24일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충남지부(이하 충남지부) 2월 정기모임에서는 민주노조에서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집단테러'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모든 증거와 정황이 계획적인 집단테러임을 증명하고 있고, 노동조합(충남지부)의 존립 자체를 흔드는 사건이라서 신속하고 엄중한 처리가 필요했다. 이에 충남지부 조합원들은 3월 10일 비상총회를 열어 '노조파괴에 대한 전 조합원과 함께 하는 집단대응 대책의 건'을 압도적인 찬성으로(90.69%) 통과시켰다. 또한, 충남지부는 사건의 엄중함을 고려하여 민주노총 규율위원회(이하 규율위원회)에 제소했고, 규율위원회는 가해자에 다한 사전조치를 명령했다. 즉, 충남지부는 테러 피해자와 조합원, 그리고 노동조합을 2차 가해로부터 지키기 위해 민주적인 절차와 규약에 따라 "정당한 조치"를 했다.

    이러한 조치는 조합원들을 보호할 임무가 있는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이하 플랜트노조)에서 먼저 해야 한다. 하지만, 플랜트노조 운영위원회에서는 충남지부의 정당한 조치를 방어하고 더욱 엄격히 적용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오히려 조합원들의 뜻을 거스르는 결정을 했다. 운영위원회는 테러 사건이 "명백한 범죄행위", "사전에 계획된 노조파괴 행위"이었음에도 총회 결정사항 집행을 유보하라는 결정을 했다.

    민주노조운동의 상식에서 충남지부의 총회 결정사항은 조합원들의 안전하고 민주적인 노동조합 활동 보장을 위해 가해자들에게 해야 하는 필수적인 조치였다. 따라서 이러한 최소한의 조치마저도 무력화시키는 운영위원회의 결정은 충남지부 조합원들의 민주적 의사결정을 부정하는 반민주적 행위이자, 조합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반인권적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플랜트노조 운영위원회의 관료적 행태는 그 뒤에도 계속되었다. 운영위원회는 회계부정, 집단테러 세력에게 신속하고 단호한 징계를 내리는 대신 그들에 맞서 싸우면서 노동조합을 지켜낸 충남지부장을 징계하겠다고 나섰다. 노동조합 안의 부패-폭력세력을 조합원의 힘으로 몰아내는 일은 민주노조 운동에서 존경받고 교훈으로 삼을 일이다. 더욱이 충남지부 조합원들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집단이성과 노동자 민주주의"로 대응했다.

    그런데, 플랜트노조 운영위는 이러한 충남지부를 지원해주기는커녕, 사사건건 방해하면서 부패-세력을 방어하더니, 급기야 "조합원들이 직접 선출한 지부장"을 징계하겠다고 나섰다. 게다가 “부당한 징계”를 위해 노동조합규정마저 일방적으로 바꿔가면서 조합원들의 뜻에 정면으로 거스르는 결정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노조 조합원은 이 정도의 부당한 압력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농성장에서 현장에서 자본의 부당한 압력과 탄압에 맞서 싸우고 있다. 독재정권의 엄혹한 시기에도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워온 것이 노동자들이었고, 그것이 민주노조의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한 전통을 가진 민주노조 조합원들에게 "노조 권력"을 악용해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야말로 민주노조에 대한 모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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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집단이성과 관료주의의 대결

     

    노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며, 총회는 조합원 전체로 구성되는 노동조합 최고의 의사결정기구이다. 총회는 조합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구이며, 노동자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모든 조합원은 노동조합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정보에 대해 알 권리가 있으며, 총회는 노동조합 관련된 현안 보고와 정확한 정보제공, 그리고 민주적인 토론을 통해 조합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곳이다.

    노동조합에서의 "집단이성"이란 부당한 지시나 명령에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고, 특정세력의 사적 이익에 이용당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의 기준을 세워 주체적으로 결정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결정에 대한 책임을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집단이성이다. 이것이 노동자 민주주의의 기반이 된다. 충남지부 조합원들이 비상총회에서 결정하고 집행한 것은 바로 집단이성이자, 노동자 민주주의의 기반이었다.

     

    그런데 지금 플랜트노조에서는 집단이성과 노동자민주주의의 기반을 무너뜨리려는 불순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운영위원회의 관료적 결정이 그것이다. 그들은 충남지부 조합원들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 하자, 관료적으로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특정세력의 사익(私益)을 위해 노동조합 조직질서를 악용해 조합원들을 분열시키고 있다. 그래서 충남지부 조합원들의 투쟁은 패권적 관료주의, 부패한 노동조합 조직질서와 전면적으로 싸우는 "노동운동 바로 세우기" 투쟁이기도 하다. 전선은 분명하고 단순하다. 집단이성 대 반민주적 관료주의 세력, 민주노조 세력 대 부패세력의 전선이 그것이다. 충남지부 통지들의 투쟁에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적극적으로 연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노동자민주주의를 지지하며

     

    ‘노동자 민주주의'는 투쟁하는 노동자의, 토론하는 노동자의 발전하는 계급의식이다. 대의제-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 투쟁하는 노동자의 원칙이 존중받고 토론과 논쟁과 실천적 검증을 통해 언제든 소수가 다수가 되고, 다수와 소수 모두 왜 다수와 소수가 되었는지 인식하고 더욱 깊게 연대하고 단결하면서 투쟁을 확산하고 발전시키는 민주주의다.

    노동조합 안에서 집행부(간부)와 조합원들의 판단이 다를 때, 위로부터의 조직질서와 상층부 회의체계를 통해 조합원 위에 군림하며 통제하려는 것이 관료주의이고, 조합원들과 직접 토론하고 설득하고 자신도 설득당하면서 공개적으로 검증받고, 결정한 것을 직접 실천하면서 조합원 스스로 행동이게 하는 것이 노동자민주주의이다.

     

    조합원 다수가 이러한 민주주의에 익숙해졌을 때, 노동조합의 민주주의는 다른 조직보다 훨씬 우월한 의식수준과 조직력을 갖게 되고, 자본과의 싸움에서도 강력한 무기가 된다. 또한, 조합원들의 의식적이고 민주적인 토론 능력과 집단이성만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는 노동조합 내부의 오류를 스스로 교정할 수 있다. 이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노동조합은 반민주적 요소와 관료주의에 의해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금 충남지부 조합원들은 관료주의에 맞서 싸우면서 집단이성을 지켜내고 있다. 어떠한 오류도 집단이성으로 교정하면서 노동자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동지들은 승리할 것이다. 누구보다 제대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이형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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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6호] 프롤레타리아 조직 - 당과 평의회에 대한 문제의식 (남궁원, 윤웅태)

  • 프롤레타리아 조직 - 당과 평의회에 대한 문제의식

     

    <편집자 주> 코뮤니스트 운동의 역사에서 현재까지도 토론될 만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당과 평의회>에 대한 문제를 먼저 가신 남궁원, 윤웅태 동지의 운동을 평가하는 차원에서 주요 내용을 발췌하여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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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주의운동의 좌초와 평의회의 복권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의 역사를 끝내기 위해 계급해체, 인간해방을 향한 매우 힘든 투쟁을 벌여왔다. 이론적 사회주의로부터 러시아 혁명에 이르기까지 사회주의 운동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평등한 생산양식을 창조해 나가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과 투쟁의 역사였다. 영국, 독일, 프랑스에서 혁명의 좌절 등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패배를 딛고 선 러시아에서의 혁명의 승리, 그리고 뒤이은 중국 혁명의 승리는 사회주의운동에서 ‘광범위한 노동조합과 이를 토대로 하는 사회민주주의당’의 종말을 선언한 것에 다름없었다.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시도된 ‘노조-당’과 이후 ‘산별노조-사회민주주의당’의 형태는 오래지 않아 개량주의로 경도돼 그 역할이 급진적 개혁당 수준으로 떨어졌고 당의 관료화와 비대화는 ‘당 위기론’을 불러왔다. 바로 그때 러시아 혁명이 대안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러시아조차 곧바로 반혁명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결국 러시아 사회주의는 결과론적 국유화, 노동자민중에 대한 독재, 야만적 국가 패권주의 등을 생채기로 남긴 채 노동대중의 희망과 기대를 물거품으로 만들며 몰락해갔다. 역사적 사회주의는 전체주의와 노동자민중을 억압, 통제하는 당 권력화 문제를 여전한 숙제로 남겼다. 이제 당 위기론은 사회주의운동 내부에서 절박한 화두가 되었다. 나아가 자본주의와 역사적 사회주의 모두에게서 나타난 당의 오류는 당 무용론을 강화했다. 특히 68년으로 대표되는 좌절한 사회혁명은 당 무용론을 더욱 심화시켰다. 68혁명은 자본에 포섭된 자본주의 내의 ‘노조-사회민주주의당’과 역사적 사회주의의 ‘당 독재’로 확인된 배신에 대한 투쟁이었다. 노동자 민중은 자본주의와 역사적 사회주의 체제 모두를 반대하고 국가와 모든 권위에 대해 투쟁했으며 이후 일상으로부터 제기되는 미시 조건에 대한 집착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 68년의 경험은 무정부적 자율주의 경향과 민중주의, 그리고 비판적 정치 분파로서 ‘좌파’ 개념을 강화했다.

     

     이러한 사회주의운동의 역사는 오늘날 비판적 정치 분파로서 ‘좌파’가 자본주의 체제 위기극복의 보조단위로 기능하고 있는 것을 용인하게 하였다. 이제 사회주의운동과 사회주의자는 설 곳을 잃고 비판적 정치 분파로서의 ‘좌파’만이 남게 되어 사회주의운동은 좌파운동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사회주의운동은 혁명적 사회주의니 변혁적 노동계급운동이니 하는 갖가지 수사가 붙게 되었다.

     

     이처럼 20세기 사회주의운동의 역사는 국가주의와 민족주의의 하위파트너로 종속됐던 노동조합운동과 사회민주주의당, 그리고 이의 반대 관념인 무정부주의에 의해 주도됐다. 이러한 가운데 전투적 노동조합운동이 특수한 지위를 부여받아 오기는 하였으나 오늘날 자본주의의 개량적 조치와 자본의 유연화 전략으로 인해 그조차 위기를 맞고 있다. 경험한 대로 전투적 노동조합운동과 전투적 노동운동이 사회주의운동의 주체세력으로서 전화/발전되지 못하고 자본주의 내에 포섭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제기되는 ‘평의회-사회주의당 운동’의 복원은 이미 자본주의에 포섭된 노동조합운동과 사회민주주의당 파트너쉽 극복을 의미한다. 즉 노동조합의 한계를 넘어서는 노동자 평의회건설은 20세기 사회주의운동의 좌초와 분화 위에서 제기되고 있는 역사적 사회주의의 한계와 오류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사상으로 현대적으로(탈근대주의 운운의 역편향이 아니라) 복권하는 것이다.
     

    현 한국사회주의운동에 대한 부분적 비판

     

     한국사회에서 맑스주의 운동진영은 현장실천가(활동가)들,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 그리고 노동자민중의 뇌리에 대안 세력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세를 놓치지 않는 계급투쟁의 전위를 자임한다면 다음의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먼저-, 현실적인 역량을 넘어서는 선도적 투쟁의 길을 열어감에 있어 다양한 수준의 투쟁과 조직, 나아가 운동미래에 대한 전략수립의 문제. 이어-, 현실 변혁운동단계와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민중주의와 중도주의를 근절시키고 맑스주의를 발전시키는 문제이다. 중도주의는 '급진적 민주주의 운동'이라 봐도 무방하며 그 실체는 자유주의와 스탈린주의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이러한 중도주의는 변혁전략과 이행문제, 그리고 주체형성에 있어 변혁운동의 수준 높은 발전을 현실내부로 가두려는 그야말로 당면투쟁의 급진성만으로 변혁운동의 장래를 제한하려는 경향을 띤다. 현실에서 중도주의는 대기주의, 전위적 질서와 역할의 신비화, 그리고 현실 변혁운동에서의 무기력과 자기 보존의 패권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민중주의는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요구를 절대화하여 대중추수주의와 무정부성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민중주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각성을 제한하여 변혁운동의 주체적 성과를 유실시키고 노동자민중의 이익집단화를 용인하여 결국 자본가 권력에 모든 것을 갖다 바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노동자민중에 대한 그들의 따뜻한 시선과는 하등 관계없는 것이다. 여기에다 ‘사회주의’라는 개념을‘자유주의적 사회성 강화’로 사용하는 흐름이 노골화되면서 사회주의 자체가 희화화되기까지 한다. 이처럼 한국사회주의운동은 한편 과거 유물로서 자유주의와 스탈린주의의 경계, 또 한편의 경제투쟁과 무정부성의 경계에서 새로운 모색을 힘겹게 진전시키고 있다.

     

     오늘날 한국사회주의운동의 중요한 과제는 비판적 정치분파로서의 ‘좌파’의 색채를 걷고 자본주의의 하위파트너로 자리하고 있는 ‘노조-사회민주주의당’의 개량논리를 걷어치우고 사회주의운동을 다시 세워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를 돌파하기 위한 새로운 주체형성-재조직화를 위한 노력은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맑스-꼬뮤날레도 그러한 노력일 것이며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주체형성 논의도 그러한 노력의 일부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한국사회주의운동은 계급해방, 인간해방이라는 목표가 가지는 내용과 형식의 측면에서, 이행전략의 측면에서 전면적인 논의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이러한 논의를 책임있게 시작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와 평의회운동>>, 윤웅태,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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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레타리아 조직 - 당, 평의회 조직문제를 중심으로

     

      나는 이 글에서 레닌의 1902년「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보여준, 외부로부터 계급의식 도입을 통한 당 이론이 1905년 소비에트 투쟁 경험 속에서 변화했다고 본다. 즉 당은 계급의 일부이며, 대중의 계급투쟁 속에서 변화된 것이다. 당은 대중의 혁명적 투쟁기구로 나타난 평의회 내에 활동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혁명 이후 레닌은 당과 새로운 국가기구 사이에 관계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관료화와 프롤레타리아 반혁명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국가의 위험성을 보지 못했다. 레닌은 내란의 위기가 가속화되고, 도시에서 경제가 완전히 붕괴되자, 당기구의 중앙집권화를 가속화시켰다. 아울러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정의는 노동대중에서 나온 계급적 성분보다 혁명에 대한 헌신성, 당성에 의해 내려질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혁명 이후 레닌의 당론은 결국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당의 독재로 변질됐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룩셈부르크가 지적한 대중의 자발성에 기초한 투쟁에 근거하는 당의 역할은 유의미한 노력이었다. 그러나 룩셈부르크는 독일 좌익공산주의자와의 논쟁에서 드러나듯이, 혁명적 대중투쟁 기관으로서, 사회주의 사회의 재조직화 기구인 평의회에 대한 동요를 보였다. 이것은 룩셈부르크가 독일공산당내 논쟁 지형에서, 자신이 그렇게 반대했던 국민의회 개입을 선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1905년과 1917년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쇠퇴하는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시기에 자본주의 질서의 전복을 위한 새로운 조직인 노동자평의회를 창조했다. 독일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의회의 이용불가능성, 사회민주주의의 배반과 반동적 본질,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국가의 옹호자이자 제국주의 전쟁의 신병모집관으로 전락해 버렸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새로운 시기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소비에트와 동일한 원칙에 근거한 새로운 형태의 조직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들은 이후 공장안에 갇힌 노동자 투쟁을 강조함으로써, 정치조직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반면 이탈리아 좌익공산주의자들은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통일전선, 민족해방 투쟁을 지지하는 코민테른 입장에 반대하고 국제주의 원칙에 입각한 투쟁을 전개했다. 이탈리아 좌익공산주의 그룹은 당을 계급의식의 능동적 인자이자 동시에 계급 전체 내에서의 의식 발전의 표현으로서 파악했다.

     

    계급투쟁의 역사적 조건의 변화는 계급조직의 형태에도 상당한 변화를 초래한다. 통합된 세계자본주의 체제, 자본의 세계화에 따른 ‘위기의 세계화’는 노동계급운동을 전지구적 투쟁이라는 새로운 지평으로 끌어올리고 있고 노동계급의 국제주의 관점은 더욱 요구되고 있다. 맑스주의는 세계노동자의 혁명적 연대를 통해서 자본주의 전복을 의도한다. 따라서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독일혁명 (1918-23) 중심으로 한, 레닌과 유럽 맑스주의 내부논쟁을 되새기는 것은, 우리 사회 혁명적 맑스주의 실천운동 복원과도 연관돼 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 운동은 1997년 역사적인 총파업투쟁 이후 점차 자본과 국가기구에 포섭되고 있다. 진보정당-산별노조의 낡은 구도를 벗어나 이제 노동자평의회, 혁명당 문제가 새로이 제기되어야 한다. 당과 평의회 관계는 지속해서 연구해야 할 주제다. 여기서는 앞에서의 논쟁에서 시사점을 받아 한국 사회에서의 당과 평의회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을 정리해본다.

     

    첫째, 부르주아당과 달리 프롤레타리아 당은 국가를 접수하거나 국가 운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 원칙은 전체로서의 계급이 이행국가를 통하여 그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계급이 당 없이 존재한 시기도 있었지만, 계급 없는 당은 존재하지 않았다.

     

    둘째, 모든 노동자에게 열려있는 대중조직과 정치조직인 당 사이에는 진화의 차이가 있다. 자본주의 상승기에는 당면 경제이해를 방어함으로써 영구조직인 노동조합이 존재한다. 하지만 당은 그렇지 않다. 당의 존재는 계급투쟁의 상태에 의존하는데, 상승기에는 나타나고 후퇴기에 사라진다.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영구조직인 노조가 프롤레타리아 내용을 상실하고 국가기구의 부분이 된다. 그리하여 이때는 대중파업, 와일드캣 파업이 일어난다.

     

    셋째, 노동자평의회에 의한 투쟁이 절정에 이르기 전에 당은 나타난다. 왜냐하면, 당의 존재는 부상하는 계급투쟁의 시기 때문에 조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의 역사적 진화와 함께 당 기능은 변한다.

     

    넷째, 당은 계급의식의 유일한 담지자라고 주장할 수 없다. 계급의식은 전체로서의 계급 속에 있다. 당의 활동은 계급의 방향을 제시하고 투쟁에 비료를 주는 것이지, 계급대신에 결정을 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계급에 여러 개의 일관된 혁명 경향이 존재하는 것처럼 강령 틀 내에 차이와 경향의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공산당은 일괴암적 관념을 거부한다. 당은 투쟁이 제기하는 모든 문제에 구체적으로 답하는 처방을 낼 수 없다. 그것은 계급의 기술적 행정기관도 아니고 집행기관도 아니다. 당의 역할은 봉기의 “참모부”가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조직 – 당, 평의회 조직문제를 중심으로>>, 남궁원,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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