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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8호] 인간의 본성과 코뮤니즘

  • 인간의 본성과 코뮤니즘

     

     

    “노동은 우선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 사이의 한 과정, 다시 말하면 인간이 자기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매개하고 규제하며 통제하는 한 과정이다. 인간은 하나의 자연력으로서 자연소재와 대립한다. 그는 자연소재를 자신의 생활에 유용한 형태로 만들기 위하여 자신의 타고난 신체의 힘인 팔, 다리, 머리, 손 등을 움직인다. 그는 이런 움직임을 통해서 자기 외부의 자연에 작용을 가하고 그것을 변화시키며 또한 이를 통해서 자신의 본성까지도 변화시킨다.” (자본론 I-1, 강신준 역, p.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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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뮤니즘(공산주의)에 대한 논쟁에서 패배한 이들이 만든 오랜 주장은 결국 코뮤니즘은 내재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 본성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대체로 거만한 주장으로 요약된다.

     

     

    그것은 잘못된 주장이고 완전히 근거가 없으나, 또한 매우 끈질기게 제기되었다. 아마도 세상의 일반 상식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런 근거가 없는 주장 따위를 지지하고자 할 때 항상 쓰이는, 종종 들어보았을 “그게 상식이잖아”라는 말과 같이, ‘인간 본성’에 대해 주장한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것 외의 어떤 다른 주장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이란 원래 그러하기 때문이다.”를 의미한다. 라디오 토크쇼의 진행자 수준보다 수준이 훨씬 높은 사람들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그게 상식이잖아’ 와는 달리, ‘인간 본성’ 주장은 경제학자, 정치가, 그리고 심지어 사회과학자들이 사용할 정도로 충분한 권위를 갖고 있다. 보기를 들어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은 그가 보수당 런던 시장으로 있을 때, 불평등이 “질투의 정신”을 조장하고, 이에 덧붙여 탐욕이 “경제 활동의 가치 있는 박차”라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의 인문학 교수 마크 헌터(Mark Hunter)가 쓴 에세이에 따르면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은 ‘인간 본성’에 대한 공격과 같다.

     

     

    그런데도 ‘인간 본성’ 주장은 그럴듯한데, 그 이유의 일부는 그것이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 세기 동안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그리고 수백 년 동안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에 있는 관념을 포함하고 있다. 보기를 들어 기독교는 인간이 모두 ‘사악하게’ 태어난다고 가르치며, 이것이 사후 세계에 구원을 가져다줄 교회의 권력과 이번 생애에 질서를 가져다주는 국가의 권력을 모두 정당화했다. 또한, 그것은 역사적 경험, 자유와 평등의 사회를 이루고자 한 모든 시도가 실패했다는 단순한 사실과 더욱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 마지막 이유는, 함께 일하는 동료가 우리를 험하게 대하거나, 우리가 친구에게 실망할 때,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 그저 냉담하게 보일 때 느끼는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을 상당 부분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득력이 있다고 해서 그 주장이 적절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확실히 가장 마지막 근거,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점에서 이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증거가 가장 명백함을 알 수 있다. 그렇다. 일상적인 삶은 수많은 이기심, 냉담함, 그리고 공감의 부족 등등의 사례를 제공한다. 그러나 삶은 또한 친절함, 자기희생, 그리고 연대 - 작업장에서 서로를 돕고 지켜주는 사람들, 어려움에 부닥친 낯선 이를 도와주는 사람들, 목숨을 걸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는 사람들, 스스로 선한 대의에 자신의 삶을 바치는 사람들과 같은 수많은 반대의 사례들 또한 제공한다. 만약 이기적인 것이 정말 인간의 본성이라면, 만약 우리가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면, 그러한 이타적 행동은 존재하지 않거나 잘해봐야 극단적인 경우에 불과할 것이나, 그렇지 않다.

     

     

    인간의 본성 주장은 다양한 다른 형태가 있지만, 기본적인 주장은 전형적으로 다음과 같다. “코뮤니즘은 인간의 본성 때문에 작동할 리가 없다. 그리고 당신은 인간의 본성을 바꿀 수 없다!” 연설자는 인간 본성이 완전히 당신의 주장에 반대된다고 이야기하거나, 당신의 생각에 공감하는 척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인간이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결함이 너무 크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주장은 사회주의/코뮤니즘에 반대하거나 종종 자본주의가 인간의 사회적 발전의 정점이 아닐 수도 있으며 보다 우월한 생산 양식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하는 생각에 반대하는 데 이용된다. 많은 코뮤니스트가 바로 이 지점에서 함정에 빠진다.

     

     

     

     

    바로 그 출발점에서 인간의 본성 주장이 제기되면, 그 누구도 영원하고, 지속적이며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음을 지적해야 한다. 생존 본능, 또는 종족 보존의 욕구와 같은 진실로 보편적이고 지속적인 우리의 특질은 동물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인간 본성' 주장의 가장 크고 명백한 오류를 지적하지 않고 그러한 주장에 반대하는 것은 그럴 가치가 없는 당신의 적에게 쓸데없는 자비를 베푸는 것이다. 그러나 ‘함정’은 인간 본질은 이기적이라거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추동되므로 ‘자신의 능력에 따라 사는 사회로부터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는 사회’에 기초한 코뮤니스트 사회는 불가능하다는, 가장 흔한 형식의 '인간 본성' 주장에 코뮤니즘의 지지자들이 반대하고자 시도하는 과정이다.

     

     

    '인간 본성' 주장에 반대하는 데 경험이 부족한 코뮤니스트는 인간의 협력과 이타주의적 행위의 갖가지 예시를 인용하며 그 주장의 가장 명백하게 약한 측면을 공격하곤 한다. 이러한 종류의 역공은 많다. 그러나 우리는 핵심에 다가가야 한다. 인간 본성 주장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주장, 또는 부자로부터 가난한 자에게로 부의 ‘낙수 효과’가 있다는 이론에 대한 믿음만큼이나 과학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것은 반박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완전히 뿌리 뽑을 가치가 있다.

     

     

    그 주장이, 사람이 자연스럽게 그 모든 것보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우선한다는 주장임을 가정한다면, 우리는 '인간 본성' 주장이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드러날 때까지 점진적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짓눌러버릴 수 있다. 인간 본성 주장을 어떻게 반박하는지 살펴보기 위해, 그러한 주장의 현실적인 발표문부터 시작해 보자.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항상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기 때문에 코뮤니즘은 작동할 수 없다. 이것이 왜 항상 자본주의가 존재해 왔고, 자본주의보다 뛰어난 체제가 존재할 수 없는지의 이유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시장은 개인에게 개인의 이득을 추구하도록 하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사회 전체의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위의 문장은 인용이 아니지만, 코뮤니즘의 지지자들이 자주 대응해야 하는 전형적인 유형의 주장이다. 이 주장은 자본주의를 자기 이해 추구 행위를 사회적으로 긍정적 결과로 바꿀 수 있는 체제로 방어하면서 코뮤니즘을 불가능하다고 공격한다. 명백하게도 이 주장의 공식은 다양해질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하다. 그리고 이것이 허수아비 인형 같은 주장이라는 비난을 하기 전, 우리는 이것이 코뮤니즘에 반대하기 위해 사용된 인간 본성에 기반한 주장에 대한 것임을 기억하자. 반대가 반드시 주어진 반대 견해의 실제 주장에 의존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반박해야 할 것은 코뮤니즘이 '인간 본성'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주장과 그러므로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의 것, 바로 자본주의에 만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제 반대주장,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반대주장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우선, 그 주장은 논리적으로 잘못되어 있다. 그 주장은 본질에 대해 호소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주장과 비슷하다. 만약 당신이 아프다면, 당신은 현대적인 약을 먹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어쨌든 본성이 원래 가야 할 방향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 중요하게는, '인간 본성'의 존재를 지지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 이는 연금술사들이 수 세기 동안 찾아왔던 철학자의 돌과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사회학자들의 용어로 ‘사회적 상수’ - 모든 사회에서 똑같은 인간의 행동 특성 – 에 대한 모든 유의미한 연구들은 인간의 심리와 태도가 변수이며, 개인이 발전시킨 사회적인 틀에 연결되어있는 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끝났다. 사실, 우리가 이러한 '인간 본성'의 근본적인 성격,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그러한 특징들까지 지적하길 원했다면, 우리는 ‘선천적인’ 것에 반대되는 ‘후천적인’ 것의 엄청난 중요성에 대해 지적해야 한다. 교육과, 인간 존재가 성장한 사회적 환경의 결정적인 역할까지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 본성'이 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인간 본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장소에 따라 특정한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맑스가 「철학의 빈곤」에서 썼듯이, “모든 역사는 인간 본성의 지속적인 변혁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의 가장 오래된, 선사시대의 조상들이 자기의 이해와 탐욕이 주요한 동기였다면, 우리 종은 절대로 생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20세기 동안, 인류학자들은 세계의 다양한 외진 지역, 현대의 영향력이 거의 미치지 못한, 십수 개의 수렵-채취 사회를 발견하고 연구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남아메리카, 또는 다른 지역의 사막이든, 정글이든, 그 어떤 곳에서도 사회는 많은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포함하여 약 20명에서 50명 정도의 작은 무리를 짓고 살았으며, 이용 가능한 사냥감과 먹을 수 있는 식물을 따라 상대적으로 구획된 지역 내에서 캠프에서 캠프를 옮겨 다니며 생활했다. 이웃한 무리에 친구들과 친척들이 있었으며, 이웃한 무리는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 대부분의 이러한 사회들은 전쟁을 몰랐고, 전쟁을 아는 곳은 수렵-채취자들이 아닌 호전적인 그룹과 상호작용의 결과였다. 각각의 사회에서 지배적인 문화적 기풍은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육아에 있어서 비지시적이며, 비폭력적이고, 공유, 협력, 그리고 합의적 의사결정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핵심적인 가치, 나머지 모든 것의 기저에 있는 것은 바로 개인의 평등이었다.

     

    수렵-채취 사회의 고도로 발달한 평등 의식은 각각의 사람이 그 또는 그녀가 음식을 찾거나 획득할 수 있는 능력과 관계없이 평등하게 음식에 대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음식은 공유된다. 그것은 아무도 다른 이들보다 더 큰 부를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물질적인 재화는 공유된다. 그것은 아무도 다른 이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각의 사람은, 그 또는 그녀 자신의 고유한 결정을 한다. 그것은 심지어 부모조차도 그들의 자녀들에게 명령할 권리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비지시적인 육아가 있다. 그것은 그룹의 결정이 합의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사도 없고, “중요 인물”이나 두목도 없다.

     

     

    만약 단지 한 명의 인류학자가 이 모든 것을 보고했더라면, 우리는 그 또는 그녀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는 로맨틱한 몽상가이거나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정치적 색깔의 많은 인류학자는 많은 다양한 수렵-채취 문화에 대해 똑같은 보편적 이야기를 전한다. 물론 문화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으며 모든 문화가 평화롭고 매우 평등한 것만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같다. 인류학자들은 그들이 연구한 수렵-채취 문화의 평등, 개인의 자율성, 아이에 대한 관대한 대우, 협력, 그리고 공유하는 정도에 잇달아 놀라워했다. 혹시 당신이 ‘호전적인 원시 부족’ 또는 노예를 부리는 원주민의 이야기, 또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천박한 불평등이 존재하는 부족 문화에 대해 읽어보았다면, 당신은 수렵-채취 사회의 무리에 대해 읽은 것이 아니다. 이 평등주의적 수렵-채취 사회의 유형은 약 1만 년 전 농업과 유목이 등장하고 첫 국가가 나타나기 이전 대부분의 인류 역사에서 지배적인 존재 양식인 원시적 코뮤니즘을 설명한다. 이제 '인간 본성'이 불변의 것이 아니라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의 기본값이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모두 명확해졌음이 틀림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무리나 부족에게 탐욕과 이기심이라는 것이 낯선 사회에서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살아왔다.

     

     

    탐욕과 이기심이 우리 본성의 일부로,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점, 반대로 협력과 상호 협조가 대부분의 우리 역사에서, 많은 사회에서의 지배적인 특징이었다는 점이 명확히 한다면, 이제 자본주의 아래에서의 '인간 본성'에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자본주의 체계는 착취에 기반한다. 잉여가치는 자본가들이 노동계급으로부터 뽑아내며 모든 이윤의 원천이다. 그것은 말 못 할 정도로 인간의 비참함과 고통의 원인이었으며, 현재에도 그렇다. 자본주의는 확실히 승자독식의 체제이다.(1) 탐욕과 이기심은 덕목으로서 적극적으로 권장된다. 그러나 과연 자본주의에 사는 모든 사람이 탐욕스러움과 이기적인 것이 사실인가? 위에서 이미 언급한 대로,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도 이타적인 행위의 수많은 예시가 있다. 사실, 그것이 없었다면, 자본주의는 체계로서 유지될 수 없다. 그저 하나의 보기만 들어보자. ‘2015년 간병인 가치 보고서’는 영국 경제를 지탱하는 간병인의 가치를 살펴보았는데, 2001년 이후 간병인의 가치가 놀라울 정도로 증가해, 6천8백만 파운드에서 거의 두 배인 1억3천2백만 파운드가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연구자들은 이러한 증가의 원인을 친척과 식구를 돌보는 데 사용하는 시간과 그에 동반하는 대체 돌봄(replacement care)의 증가로 보았다. 만약 사람 중 정말 극소수라도 그들의 사랑하는 이들을 포기한다면, 그것이 자본주의 국가에 미치는 경제적인 충격은 재앙적인 것이 될 것이다.

     

     

    세계 대부분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엘리트와 그들에게 빌붙어 사는 이들이 탐욕과 이기심으로 동기가 부여되는 것은 확실히 진실이다. 그러나 대다수 우리들은 ‘자연적으로’ 이기적이지 않다. 비록 우리 중 일부가 이기적일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하며, 이기적으로 되도록 교육받지만 말이다. 자본주의 체계 내에서 소수의 엘리트는, 그들 중 일부, 빌 게이츠와 같은 인물이 그의 ‘재단’으로 자신을 자애로운 것처럼 연기하려 할지라도 탐욕, 자기애, 그리고 이기심에 경도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재단’은 클린턴 재단이 잘 보여주듯이 종종 자기선전, 부패, 그리고 돈세탁을 위한 겉치레에 불과하다.

     

     

    엘리트 자본주의자들은 세계의 경제와 정부의 영광스러운 주인이다. 그들은 지속해서 찬양되고, 존경받으며, ‘지상의 법 위에’ 존재로 여겨지며, 인류의 하찮은 민중으로부터 완전히 격리되어 방해받지 않는 부(anabashed opulence)의 세계에 살도록 허락된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자본주의에서 세계에 대한 탐욕은 이상적인 정당한 변명을 찾은 것이다: 다시 말해 사악한 이기심을 인류가 획득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덕목으로 바꾸는 착취 체계를 선전하고 방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음의 사고(思考) 실험을 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울 것이다. 만약 우리가 지구상에 사는 75억의 사람에게 지금 당장 그들에게 아래의 경제 체제를 선택하고 싶은지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경제 체제는 필연적으로 막대한 부를 창출하고 소득 불평등을 일으키며, 동시에 평등한 기회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모든 사람이 영구적인 경제적 결핍 하에서 살아가는 데 대한 어떠한 의미 있는 정치적 변화를 거부하며, 수십의 나라들에 끝나지 않는 전쟁을 일으키고, 수억의 사람들이 기근, 질병, 기아에 허덕이고, 지구와 인류의 건강을 황폐화하는 동시에 그러한 파괴의 대가를 극소수의 특권을 가진 이들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이들에게 외부화시키는 사회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런 체제에서 살기를 실제로 선택할까? 솔직하게 대답해보자. 거의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 체제 아래에서 행복한 유일한 사람은 현재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특권적인 경제적 지위가 보호되고 강화되는, 몇 안 되는 자본주의자 그룹일 것이다. 사실은 자본주의의 논리는 언제나 똑같았다. 소수의 권력, 지위, 그리고 특권을 보호하고 영속화하면서 그 외의 모든 이들을 빈곤에 빠뜨린다.

     

     

    이상적인 “자수성가형 인간”을 잘 나타내는 이기심, 질투, 그리고 탐욕은 그저 자본주의 경제적 실체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일 뿐이며, '인간 본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원시 코뮤니즘 사회 이후, 또는 심지어 촌락 공동체가 있는 중세 이후 '인간 본성'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이야기해야 했을 것이다. 사실 개인주의는 작은 독립 소유자들이 마을과 시골에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세계의 관념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종종 경쟁자들을 파산시킴으로써 성공해 온 이러한 신출내기 부르주아지, 작은 소유자들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에 광신도 같은 지지자였고, 개인주의를 일종의 자연의 법칙으로 여겼다. 심지어 다윈의 진화론을 사회적 “생존을 위한 투쟁”,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을 정당화하는데 가져다 쓰면서도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자본의 약탈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연대와 단결, 상호 지원을 학습한, 따라서 개인주의의 지배적인 이념에 반격을 날릴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트를 등장시켰다. 노동계급에 연대란 그들의 물질적 이해를 방어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이것이 오늘날 인간 존재가 “자연적으로 이기적이다.”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다. 만약 노동계급이 이기적이라면, 그것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필연의 산물이다. 자기방어를 위해 사회적 조건이 허락되는 한 노동자들은 연합하고 연대할 수밖에 없다. 파업한 이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그들의 남편, 아내, 그리고 가족들 등 일자리뿐만 아니라 전체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모든 이들 사이의 연대와 지원의 수많은 사례를 과거 파업은 보여준다.  

     

     

    이것은 연대와 이타주의가 하나 이상의 다양한 방식으로 필요함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다른 이의 연대를 필요로 하지만, 다른 이에 대한 연대를 보여줄 필요도 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회에서조차 발견되는 것이며, 모든 사람은 사회에 유용하다고 느낄 필요가 있다는 일견 진부한 생각으로 표현된다. 어떤 이들은 이타주의는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이 어쨌든 그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이기 때문에 이기심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코뮤니스트들이 방어하는 아이디어, 개인의 이해와 집단의 이해 사이에 어떠한 필연적인 대립은 없으며 오히려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견해를 제시하는 또 다른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개인과 사회의 대립은 착취와 사적 소유에 기반한 사회의 표현이다. 억압과 착취로 고통받는 사람과 이러한 억압과 착취를 보장하고 영속화하는 당사자 기관 사이에 조화가 어떻게 있을 수 있겠느냐는 점에서 완전히 논리적이다. 그러한 사회에서 이타주의는 오직 자선 또는 희생의 형식으로만 존재할 수 있으며, 타인에 대한 부정 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의 형태를 띤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긍정, 공유, 그리고 서로가 보완하며 꽃피는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부르주아지가 우리에게 믿기를 바라는 것과는 반대로, 코뮤니즘은 개인에 대한 부정이 아니다. 그/그녀가 만들어 낸 것으로부터 생산자를 분리하고, 개인을 부정하는 것은 자본주의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에 대한 부정은 후기 자본주의의 독특한 형식, 제국주의 단계에서 극한에 달했다. 코뮤니스트 사회에서는 어떤 착취의 형식도 없어 사회를 지배하는 국가도 없고, 계급도 없으며, 모든 것은 이윤이 아니라 순전히 인간의 필요로 생산되고, 사회의 구성원들은 진정한 자유를 누리며 살게 될 것이다. 인류는 오직 사회적인 방식으로만 그 측정할 수 없는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어서, 그리고 개인의 이해와 집단의 이해 사이의 대립은 사라질 것이므로, 각 개인이 번영하기 위한 새롭고 굉장한 전망이 열릴 것이다.

     

     

    자본주의 아래에서 규범이었던 지루한 획일성을 지속시키는 것과는 달리, 코뮤니즘은 무엇보다 다양성의 사회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코뮤니즘은 대부분 사람을 전 생애에 걸쳐 제한하고 제약하는 규칙인 노동의 분리를 무너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코뮤니즘에서는 모든 새로운 기술적 돌파구로, 더 심화한 수준의 전문화가 아니라, 대신 각각의 개인이 개발할 수 있는 활동 범위의 확장이 있을 것이다. 맑스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코뮤니스트 사회는 어떤 사람도 배타적인 활동 영역을 갖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그가 원하는 부문에서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사회이며, 사회가 전반적인 생산을 규제하므로 한 사람이 오늘은 이 일을 하고, 다음 날 아침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낚시하며, 저녁에는 소를 치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하는, 사냥꾼, 낚시꾼, 소몰이꾼, 목동, 그리고 비평가가 되지 않더라도 내가 마음먹은 대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리는 이제 인간 본성에 근본적인 것,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단계에서 두드러진 무절제함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사실은 코뮤니즘을 지향하는 경향임을 알 수 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리의 대다수는 어느 정도는 코뮤니스트이다. 코뮤니즘이 맑스가 정의한 것처럼, “그의 능력에 비례하는 (무언가)에서 그의 필요에 따른 (무언가로)”를 의미한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그저 공유하고, 돕고, 그리고 협력하는 것을 의미한다. 필요한 이들에게 당신이 줄 수 있는 것, 그것이 그저 조언, 어떤 일에 대한 보조, 공감, 또는 감정적 지원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친구, 함께 일하는 동료, 친척, 연인, 심지어 완전히 모르는 사람조차도 종종 그렇게 행동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코뮤니즘은 모든 인간 사회성의 기반이다.” 그것은 “사회성의 원재료이며 사회적 평화의 궁극적인 내용인 궁극적인 상호 의존성에 대한 인정”으로 간주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지와 모든 회의론자, 반대만 할 뿐인 사람들이 뭐라고 주장하든지 간에, 코뮤니즘은 인류를 위해 만들어진다. 인간 존재는 단언컨대 코뮤니스트 사회에서 살 수 있고, 그러한 사회가 살아 숨 쉴 수 있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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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rgosum

    2018년 6월 15일

     

    역주

     

    (1) 약자는 악마에게 잡혀 죽는다는 의미로,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판치는 경쟁’을 강조하는 문구

     

     

    국제코뮤니스트경향(ICT)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8-06-15/human-nature-and-commu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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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8호] 자본의 좌파 : 사회주의와 무관한 정치세력

  • 자본의 좌파 : 사회주의와 무관한 정치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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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사회민주주주의’ 정당들은 제1차 세계대전 시기 "민족(조국)의 수호"를 외치면서 프롤레타리아계급으로부터 이탈했다. 사회민주주의는 1918년과 1923년 사이에 혁명적인 노동자 봉기를 분쇄하고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포함하여 수천 명의 코뮤니스트를 살해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사회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강력한 계급투쟁의 시기에는 ‘노동자당’을 표방하면서 자본주의의 방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고, 계급평화의 시기에는 노동자들에게 의회주의, 선거주의 환상을 확산시킨다. 오늘날,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버팀목으로 현실에서는 개량이 없는 개량주의의 옹호자로 행동한다.

     

     이러한 제2 인터내셔널의 사회민주주의와 단절하면서 출발한 ‘코뮤니스트’ 정당들은 코민테른의 타락과 스탈린주의 반혁명으로 국제주의를 포기함으로써 다시 자본주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코뮤니스트 정당의 ‘일국사회주의’ 이론 수용은 부르주아의 재무장화에 참여, 인민전선에 참여, 그리고 전후 국가재건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어졌고, 결국 민족자본의 진정한 협력자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사회주의자’ 또는 ‘코뮤니스트’를 자임하며, 노동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수많은 그룹과 조직이 있다. 그들의 오류는 대부분 앞서 말한 ‘사회민주주의’를 재창조하려 하거나 ‘스탈린주의’를 부활시키려는 희극적인 시도라서 더욱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맑스주의’의 아름으로 계급운동 전반에 끼진 악영향과 혼란은 운동의 퇴보에 막대한 역할을 했다. 이들 대부분은 사회주의를 생산수단의 ‘국유화’와 동일시하면서 강령까지 만드는데, 이것은 혁명적 맑스주의와 무관하다. 그리고 이것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이미 맹렬히 비난했던 반동적인 입장일 뿐이다.

     

    “근대 국가는, 그 형태가 무엇이든,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의 기구이다; 그것은 자본가, 모든 자본가의 이상적인 공동 기구이다. 그것이 생산력을 장악할수록, 자본가의 진정한 공동 기구가 될수록, 점점 더 시민을 착취한다. 노동자들은 임노동자, 프롤레타리아로 남게 된다. 자본주의 관계는 폐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극단으로 더욱 밀어붙인다.”

     

     중국, 베트남, 북한, 쿠바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이 단 한 차례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 국가에서 노동자계급이 주도한 사회적 변혁은 한 번도 없었으며, 생산수단의 사회화와 정치〮경제적 권력을 직접 통제할 수 있는 노동자평의회(소비에트)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도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러한 착취체제를 ‘진보적’이거나, ‘반자본주의적’이거나, 심지어 ‘사회주의적’ 성격으로 규정하는 가짜 세력과 우리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진영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노동자계급을 지속해서 공격하고 혁명적 코뮤니스트를 살해한 스탈린주의는 진정한 반공주의(반코뮤니즘)이다. 또한 마오주의자와 게바라주의자들도 스탈린주의자들과 같은 이데올로기(인민전선, 단계론, 국가 미화, 민족주의 등)를 갖고 있기에 반코뮤니즘 경향에 속한다.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사회를 코뮤니즘으로 바꾸는 혁명은 경제의 '자주 관리'나 '국유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코뮤니즘은 노동자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즉 임노동, 상품생산, 국가의 의식적인 폐지가 필수적이다. 이는 코뮤니스트 혁명이 인간 필요의 충분한 만족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세계 공동체 건설의 과정임을 의미한다. 이와 무관한 일국사회주의, 민족주의, 국가주의의 모든 형태는 반코뮤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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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이나 중국을 노동자 국가로 규정하는 세력과 이른바 ‘입당주의’ 노선을 옹호하는 세력 또한 스탈린주의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봉기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사회민주주의 세력과 협력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을 부정했다. 그들은 제국주의와 이른바 ‘민족자결권’ 문제에 대한 잘못된 판단으로 여러 지역에서 제국주의적 충돌 (스페인 내전, 아비시니아, 중일전쟁)을 지지했고 결정적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조국의 방어자로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다. 이에 대한 반성과 교정 없이 국제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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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다양한 스탈린주의, 정통 트로츠키주의 자임세력, 그리고 마오주의 경향은 서로 대립하면서 일치하지 않는 정치세력이지만, 우리는 이들 모두를 자본주의의 좌파라 부른다. 역사적으로 그들의 잘못된 강령, 전술 또는 개념은 수없이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타락시키고 붕괴시켜왔다. 여전히 ‘좌파통합’ 또는 ‘좌파 공동전선’을 내세우며 반성과 교정 없는 낡은 것들을 지속시키려는 시도는 그들의 전통이자 전부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세력에 맞선 오늘날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는 오직 국경과 지역을 넘어, 국가와 민족을 넘어, 세계 계급투쟁과 세계혁명을 향한 전망을 함께 세우고 국제적 코뮤니스트 강령에 따라 단결하고 투쟁하는 세력이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이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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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8호] 세계의 계급투쟁 : 국제주의 노동자들의 목소리

  • 세계의 계급투쟁 : 국제주의 노동자들의 목소리

     

    “현재의 노동자 계급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아래에서 심각한 경제적 고통에 짓눌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아직 이에 맞서 대대적 투쟁에 나서지 못하는 계급 역관계의 커다란 불균형 상태에 머물러 있다. 생산과 분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전체 사회정치적 관계로 넓어져 총체적 지배를 심화시키고 있다.

    자본주의 모순은 코뮤니스트 혁명 이전에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 모순이 사라지지 않은 한 억압받는 계급의 저항과 투쟁의 물결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자본에 맞선 모든 투쟁은 코뮤니스트 강령이 계급 속에 깊이 뿌리내릴 때만 비로소 혁명을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국제코뮤니스트전망)

     

    세계자본주의의 끝 모를 경제위기와 제국주의 전쟁 위협, 극단적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그들과 동전의 양면인 테러리즘, 파시즘과 닮아 있는 포퓰리즘.. 이 모든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 수준을 하락시키고 생존 조건을 위협하고 있지만, 그에 맞선 투쟁은 아직 방어적이고 소극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다. 더욱이 현재의 자본가 권력은 자신이 만든 위기를 노동자계급에 전가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저항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싹부터 잘라내기 위해 세계적으로 우파, 좌파 정권을 가리지 않고 선제공격을 가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 노동자계급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절망적인 현실이지만, 반대로 쇠퇴하는 자본주의 절체절명의 위기, 즉 자본가계급의 총체적 위기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위기는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에게는 다시 한번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깨고 혁명적 투쟁에 나설 가능성을 열어준다. 문제는 계급투쟁의 부활만으로는 안 되고, 그와 동시에 계급투쟁의 최종목표를 분명히 밝히는 의식적 투쟁이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 아프리카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에서 유럽과 남미의 노동자투쟁, 북미와 아시아의 노동자투쟁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던 투쟁의 물결은 대부분의 성과를 또 다른 지배계급에 빼앗긴 채, (질적으로도)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2년 전 한국의 촛불 투쟁도 마찬가지였다. 대대적인 투쟁, 사상 초유의 분출이 질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퇴색해버린 원인은 모든 위기와 고통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를 넘어서려는 투쟁과 코뮤니즘을 목표로 나아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후퇴 속에서도 지금은 비록 소수이지만, 노동자계급의 미래를 밝혀줄 분명한 흐름에 주목한다. 바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을 지키고 코뮤니즘이 계급투쟁의 최종목표임을 밝히며 “혁명을 향한 출발점”이 되려는 흐름이다. 「코뮤니스트」 8호에서는 끊임없이 계급투쟁에 참여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코뮤니즘을 위해 투쟁하는 국제주의 노동자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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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연금 "개악"에 맞선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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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27일 국가두마는 세 번째 독회에서 정년 연장을 위한 법안을 승인했다. (여름 이후 러시아 전역에서 이 법안에 반대하는 수백 건의 시위가 있었다. 7월에만 225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이 시위의 대부분은 옛 공산당이 조직하거나 지배했지만, 많은 시위대는 공산당과 다른 구호를 외쳤다. 러시아에서 이러한 항의 시위에 참여하려면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시위는 결국 정부의 탄압과 자율적 운동의 결합으로 정부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정부와 두마는 감히 올리가히르(러시아의 신흥재벌)에 세금을 부과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방안을 고안해 낼 수 없었다. 러시아의 자본은 누진소득세 도입을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은 경제와 정치적인 지배를 포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앙상하게 재분배되는 소득의 작은 부분(세금)조차도 희생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올리가히르는 비대해져서, 고급빌라와 요트를 사고, 세련된 스타일로 그들만의 부유층 향락을 즐기기 위해 그 지위를 보존하고 싶어 한다.

     

    현재의 자본에 비해 세계는 너무 작아졌기 때문에 자본은 모든 국가에서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따라서 자본은 정년연장을 포함하여 극단적으로 노동자를 착취해야 한다. 낡은 권력인 부르주아지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한다: 자본 간의 국제적 경쟁은 심화되고 있고, 인구 한파(감소)는 점점 격화되고, 경쟁력 싸움에서 주요 강대국은 사회적 지출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쇠퇴와 함께 인류는 자신을 손상하면서 끊임없는 파괴의 대가로만 살아남게 되었다. 자본주의 아래 인류에 대한 전망을 완전히 상실한 사회관계의 유례없는 비인간화가 러시아를 괴롭히는 생리적 빈곤에 더해졌다.

     

    오늘날의 대안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무서운 거짓과 허상에 맞서 조직화한 노동자계급이 앞장서서 끊임없이 광범위하게 투쟁하는 것이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과학적 코뮤니스트 의식을 위한 투쟁, 그리고 노동계급의 조직화 원칙을 확립하기 위한 투쟁이다.

     

    지금의 상황은 모든 노동자와 학생의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의 노동과 시민권을 위해 투쟁하자! 함께 투쟁하기 위해 일터에서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동료들과 노동자 그룹을 조직하자! 여러 노동자 그룹과 공동행동을 준비하자! 국제주의 노동자 운동에 참여하자!

     

    계급투쟁의 자기 조직화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행사만이 피할 수 없는 파괴로부터 사회를 구하는 유일한 길이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동참하자! 지금 시작하자!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 이 문서는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yarsk) 맑스주의 노동자 그룹, 국제 프롤레타리아 연합이 작성했다.

     

    2018년 10월 6일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8-10-07/against-pension-%E2%80%9Creform-in-russia

     

     

    그라나다 지하철 노동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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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길(Nuevo Curso)

     

    그라나다 지하철 노동자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라나다 지하철 동지들은 현재 수용할 수 없는 노동 조건을 거부하기 위해 오늘 24시간 파업에 들어간다고 발표했다. 사용자와 지하철 시스템 운영자 그리고 안달루시아 평의회의 부르주아 정치인들 모두의 태도는 지하철 노동자의 요구를 무시하는 것이다. 이번 월요일, 지하철 노동자들의 대규모 집회가 투쟁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고, 파업을 계속하기로 결정하면, 해방연맹은 지하철 노동자 투쟁을 지원할 것이다. 아래는 오늘 열린 집회에서 해방연맹이 배포한 유인물이다.

     

    그라나다 지하철 파업은 왜 “이기적인” 투쟁이 아닌가?

     

    우리가 일하는 회사에서 노동자의 처지에서 바라보면 두 개의 상반된 세력과 마주친다. 우리는 일상의 기본적인 필요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받기 위해 투쟁한다. 사측에서 뭐라 떠들든 간에, 우리의 요구는 ‘이기적 요구’가 아니라 - 보기를 들어 적절한 노동 조건과 생활임금같이 - 모든 노동자들이 바라는 기본적인 요구이다. 하지만 회사는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불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 그것은 노동자들이 지불하는 배당금이다.

     

    사용자들은 우리에게 회사를 도우라고 요청하는 뻔뻔함이 있는데, 이는 실제로 더 많은 배당금 지불을 위해 우리의 생활 수준이 악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우리의 임금과 노동조건의 수준이 이윤 창출에 달려있고,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지불할 수 없다면 우리의 요구는 ‘공정”한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뻔뻔함이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윤의 일부가 더 많은 자본으로 전환되어 이윤을 창출해야 한다고 떠든다. 이렇게 재투자된 자본에 대한 수익은 실제로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노동자에게 훨씬 적다. 사회에서 소비하는 모든 것을 만드는 생산자를 더욱 심하게 착취하고 억압하는 이런 사회는 거꾸로 된 세상이다. 그리고 이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이곳에서 전 세계의 모든 전쟁, 지구 파괴, 수억 명의 소외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런 사회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이윤보다 인간의 필요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사업장에서 파업투쟁을 통해 생활 수준을 지켜낼 때, 그들은 새롭고 정당한 세계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 사용자와 주주들에게 지불할 이윤 창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조직된 세계를.

     

    “각자의 능력에 따라 (생산하고) 각자의 필요에 따라 (배분하는)” 조직된 사회를 ”코뮤니즘“이라고 부른다. 코뮤니즘은 전체주의 독재, 군국주의 그리고 민족주의와는 정반대이다. 코뮤니즘은 우리에게 진정한 미래를 제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이며, 해방연맹은 그것을 위해 싸우고 있다.

     

    해방연맹(Liga Emancipación/Emancipation League)

    2018년 9월 21일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8-10-01/the-struggle-of-the-metro-workers-of-granada

     

     

     

    새로운 세계의 열쇠를 쥔 노동자계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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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민주주의"

     

    노동자들은 노동을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집단행동을 결정할 때마다 새로운 사회의 씨앗을 뿌린다. 우리는 진정한 자주적 노동자 투쟁을 아래로부터 조직한다. 대중총회에서 파업위원회를 선출하여 파업을 조직하고, 같은 처지에 있는 노동자들과 연결시킨다. 파업위원회는 대중총회에 책임이 있으며 즉시 소환할 수 있다. 대중의 필요에 따라 파업위원회의 위원을 교체할 수 있다. 이러한 직접민주주의와 수십억의 자본가 자금을 배경으로 선거에 나온 하나 또는 다른 정당에 5년마다 투표하는 자본주의의 선거제도와 비교해보라.

     

    우리 제도는 지역 차원의 평의회(위원회)를 기반으로 하고 중앙의 상위조직에 파견할 위원을 선출한다. 평의회 위원은 누군가의 ‘대표자’인 국회의원들과는 다르다. 실제로 국회의원들은 그들을 선출한 유권자를 대표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나 정당만을 대표한다. 그리고 한 번 선출되면 그들을 수년간 소환할 수 없다. 하지만 평의회(위원회) 제도는 완전히 다르다. 모든 수준에서 평의회가 임무를 수행하지 않을 경우 신속하게 소환할 수 있다.

     

    인간의 필요 충족을 위한 생산

     

    평의회는 현재 실행되는 부르주아 제도보다 훨씬 "민주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의 통제 없이는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 새로운 풀뿌리 기반의 직접민주주의 정치 구조에 머물지 말고, 이윤을 위해 상품을 생산하는 제도를 폐지하고, 개인과 지역 사회의 필요를 직접 충족시키기 위한 생산으로 대체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자본과 돈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해야 하고, 노동과 자원의 배분 그리고 공동의 합의로 정한 우선순위에 따른 새로운 회계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것은 노동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힘든 노동과 임금 노예 생활을 폐지하고 모든 사람이 의미 있는 노동을 할 수 있도록 균등하게 나눈다는 것을 의미한다.

     

    코뮤니즘 세계는 칼 맑스의 본래 주장처럼 조직될 것이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자신의 필요에 따라 각각," 코뮤니즘은 소련에 등장한 국가 자본주의의 악몽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특히 그 모델은 중국에서 가장 많이 복제되었다. 중국에서는 '코뮤니스트(공산주의자)'라는 이름을 훔쳐서 그것을 완전히 왜곡한 장본인들이 국가자본주의를 진두지휘했다. 이 괴물 같은 왜곡은 코뮤니즘에 대한 맑스의 전망인 계급, 민족, 그리고 국가 없는 세계, 다시 말해 세계적인 인간공동체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어떤 운동에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본성’이 코뮤니즘 사회에 도달하는 것을 막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인간의 본성이 정적 인자가 아니라는 것을 망각한 주장이다. 인간의 본성은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종류에 따라 형성된다. 우리는 300년간 자본주의의 경쟁, 전쟁, 탐욕을 겪었지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다. 혁명은 항상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켰다. 혁명은 사람들에게 “낡은 오물을 치워 버리도록”(칼 맑스) 할 것이다. 미래는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쟁이 아니라 계급전쟁!

    자본주의 고통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자!

    노동자의 가짜 친구를 경계하자!

     

    2018년 9월 18일 오로라(Aurora)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8-09-13/the-working-class-holds-the-key-to-a-new-world

     

    정리 : 국제코뮤니스트전망 ┃ 신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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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8호+]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더 깊은 생각

  • 노란 조끼 운동에 대한 더 깊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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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 2019년 1월 초 – 노란 조끼 운동이 퇴조기에 접어들었는지 아니면 한 달 이상의 격렬한 활동과 국가와의 심각한 충돌 이후, 잠시 숨 고르기에 접어들었는지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아마도 프랑스 사회의 - 일부 과장된 논평이 묘사하듯이 - 다양한 계층의, 그러나 주로 하위 계층으로 이루어진 이 “봉기”의 몇몇 특징은 파악할 수 있다. 실제로, 저항을 촉발시켰으며, 우회로 근처에 모여 가장 “전략적으로” 민감한 지점의 도로를 막고, 그 외 투쟁의 새로운 계획을 세운 프롤레타리아에 속하는 이들과, 일부 빈곤에 빠진 소부르주아지는 자본주의 존재 양식의 충돌하는 메커니즘이라는 똑같은 과정 - 그러나 다른 방식으로 - 에 의해 뭉쳤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 비참함의 원인인 경제위기는 자본가들을 가능한 더욱 냉혹하게 만들었다. 이번에 봉기가 일어난 곳은, 파리를 중심으로 한 프롤레타리아가 밀집된 대도시의 “교외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특정한 사회서비스 삭감(병원, 학교, 대중교통, 공공 기관)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정부가 수십 년간 유예 없이 추진해온 임금삭감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프랑스 작은 마을(Deep France/La France profonde) “사람들” - 프롤레타리아 그리고 낙후되거나 쇠퇴한 계급으로 이해되는 - 이다.

     

    어느 곳에서나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임금이 너무 낮은 탓에, 또는 대형마트의 개점으로 지역 상점의 고객이 극적으로 감소한 탓에 겨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조차 힘들어진 “평범한” 사람들이 생긴다. 그들은, 많은 지역 버스와 철도 서비스가 축소되었기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직접 돌아다녀야 하고, 소형 병원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가장 가까운 병원에 가기 위해서는 수 킬로미터를 더 가야만 한다. 모든 것이 예산 제약, 긴축재정의 결과인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긴축 재정에 대해 더 말해보자. 그것은 일반적인 ‘유럽에 의해 우리에게 부과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완성이고 불안정한) 초국가적인, 유럽연합을 통해 유럽의 부르주아지가 합의하여 부과한 것이다. 이 “사람들”은 평범한 노동조합이나 정치적 시위에 참여한 경험이 드물거나 없으며, 부르주아 세력과 직접 대립한 경험은 더 적은 이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곳에서 지적했듯이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새롭지 않은 패턴을 따라, 사회 하층부에 축적된 분노는 갑자기 폭발했다.

     

    더욱이, 대부분의 노동조합과 “좌파”의 몇몇 분파, 그리고 다소 “급진적인” 좌파가 이야기하는 것과는 반대로, 그리고 또한 노란 조끼를 지도하는 위치에 있기를 원하는, 르 펜[1]으로 대표되는 준-파시스트 “포퓰리즘”의 주장과는 또 반대로, 이 운동이 시작하고 발전한 장소도 국민전선이 선거에서 가장 표를 많이 받은 지역이 아니고, 최근 여론조사에서 내무부 장관과 가까운 동맹이 인기가 높아진 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요컨대, 지금까지는 “포퓰리스트”나 민족주의 우파가 이 운동을 지지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 운동은 모든 제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구조(formations)에 대한 건강한 불신을 표현하고 있으며, 따라서 정치적인 지도자들은 이들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다.

     

    물론, 형태가 없는 개방된 성격을 감안할 때, 운동의 계급 간 특성은 누구나 쉽게 안쪽으로 진입하려고 시도할 수 있다는 것, 극우파들은 이를 망설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일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작은 마을의 현을 불태우려는 시도는 정확히는 신-파시스트 호전파의 행동이다. 거리에서 피켓에 인종차별주의자와 외국인 혐오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며, 종종 라 마르세예즈를 동반한 삼색기의 거대한 물결을 목격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빼도 박도 못하게) 우익이라고, “포퓰리스트”라고, 또는 “정체성”에 기반해 있다고 환원시키는 것은 실제 흔적과 거리가 멀다. 사실, 당신이 노란 조끼들이 언론과 의회에 보낸 주장을 살펴본다면[3], 그 주장에는 “포퓰리스트”가 정부에 있을 때[4], 그들의 실제 정책을 거부하는 노란 조끼의 여러 가지 “요점”이 있다. 그리고 포퓰리스트들은 선거 운동에서 한 공약(텅 빈 약속)을 강제에 의해 철회해야만 했다.

     

    “요점”을 간추려보면, 진보적 소득세[5], 고된 직업을 가진 이들에 대한 55세와 60세부터의 연금[6], 그리고 생활비에 연동된 한 달 최소 2,000유로의 연금 요구이다. 이를 제쳐두더라도, 이것은 이탈리아 마테오 살비니에 의해 통과된 ‘월 1,520유로 이상의 연금 연동’ 거부 조치와 반대되는 것이다. “요점”으로 돌아가서, 그것은 최저임금과 임금 일반의 인상, 물가상승과의 연동, 그리고 (권리보장 측면에서) 외국에서 체결된 계약에 대해서도 프랑스에서 일한다면 이들에 대해 “프랑스의” 임금을 지불할 것에 대한 요구이다.[7](역자 주 :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차별 철폐) 그리고 다시 불안정한 일자리 규제, 상대적으로 저렴한 에너지 가격으로 에너지 서비스를 재구성하는 것, 사회 서비스 삭감을 철회하고 노인·장애인·아동을 위한 향상된 돌봄서비스를 통한 사회 서비스 확충, 주택 혜택 및 학생을 위한 복지 등도 모두 요구한다. 또한 기후 변화에 따른 환경 보호 요구 [8] 그리고 “심지어” 망명 신청자가 잘 대우받고 통합이 촉진되도록 이민자를 위한 프랑스어[9], 프랑스 역사 강좌에 대한 요구도 있다 : 물론 이것은 민족주의의 길을 여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거대하고 명백하게 반동적인 자본에 의해 무너진 소부르주아지의 요구로서, 자본주의적 존재 방식이 중소영세기업을 보호하는 법률에 의해 결코 중단된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10]이라는 점에서, 전형적인 것이 사실이나, 본질적으로 사회적으로 다양한 “사람”의 운동에서 이는 보통이다.

     

    그러나 그러한 "불만"의 일부분은, 10년이 넘는 자본주의 경기 침체를 관리하려는 부르주아지에 의해 부서지고 거절당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의 이러한 자발적 주장은 모든 즉자성과 자발성으로 표현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경제학적 지평을 나타내며, 그렇지 않을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프롤레타리아에게는 자본의 공격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반응으로서, 생존의 필요에 대한 자발적 표현이며, 계급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반-자본주의 관점의 피할 수 없는 출발점이지만, 급진적 개량주의에게 이러한 요구는 단지 계급의 반응 정도에 상관없이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레시피)에 불과하다. 그것은 깊은 위기에 빠진 체제 내부의 경제-사회적 공간을 정복하자(이것이 그들의 환상이다)는 슬로건이며, 따라서 그 공간은 그들을 수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체제가 슬로건을 받아들이더라도, 상황을 다시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만, 부분적이고 일시적으로 그러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지금까지 주어진 것을 되돌리기 전에.

     

    어쨌든 “불만”은 요구이다. 그 요구는 소위 평조합원 노동조합주의가 주도하는 급진적-개량주의에 있어서는 정치적인 짐의 일부이다. 이들은 적은 수로 이뤄진 혁명가들보다 프롤레타리아에 더 가까워 보이는데, 이 혁명가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물질적 필요를 개량주의로 치부하며 경멸하고 거부하는 추상적인(형이상학적인) 이데올로기적 수단을 취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어리석은 혁명가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 말고, 중요한 점은 실질적인 임금 인상을 경시하거나 55세에 은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 누가 그렇게 어리석은가? - 중요한 점은 적절한 방식으로 노동 계급의 요구와 부르주아 계급의 요구를 대비시키는 것이다. 즉, 즉자적 요구에서 시작하여 이를 계속해서 거부하는 체제의 혁명적 전복을 목표로 하는 전망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회성 파업이 아닌 몇 달 전부터 선포된 봉기의 흐름 속에서, 마크롱은 한계가 있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에 동의했다. 또한, 그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불가피한 반발을 고려하면서도, 적자를 증가시킨(그는 단지 올해뿐이라고 말한다) 유류·연금에 대한 세금 인상을 철회했다. 그러나 실제로 프랑스 부르주아지(그리고 그들뿐만 아니라)를 타격하기 위해, 노란 조끼 프롤레타리아 부문의 주장은 단지 공감이나 도덕적 지지만이 아니라, 계급의 적극적 지원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충분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당연히 '포퓰리스트'를 포함하여, 국가와 모든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대표자들과 정면충돌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면이 요구된다. 그것은 계급 소요를 질적으로 도약하게 할 도구이며, 계급 소요에 전략과 반자본주의 전술을 제공하며, 계급투쟁으로부터 활성화된 에너지를 부르주아 체제의 공격으로 향하도록 해 준다; 이외에 앞으로 나아갈 다른 방법은 없다. 요약하자면, 코뮤니스트 당, 국제적인 국제주의자 당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이다. 당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프롤레타리아트와 쇠퇴한 소부르주아지의 분노는 붕괴되어 흩어지고 말 것이다; 필요에 따라 잔인하게, 또는 거짓된 약속과 함께. 노란 조끼들로 표현되는 그 어떤 정부에 대한 환상도 그저 막다른 골목일 뿐이다. 그곳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희망도 끝날 것이다. 거리 시위에서 한 참여자는 개량주의의 범위를 벗어나는 질문을 했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의식적인 활동만이, 이 단순한 질문에 답할 수 있다. : «만약 (마크롱이) 물러난다면, 누가 그의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11]

     

    2019년 1월 8일

    CB

     

    <주>

     

    [1] 마린 르 펜은 국민연합의 최고 경영자, 지도자이며, 국민연합이라는 이름은 2018년 국민전선에서 바뀌었다.

     

    [2] 출처는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레가(Lega)의 수장이며 르 펜의 동맹이다. 레가는 다른 “포퓰리스트” 당인 디 마이오(Di Maio)의 오성운동(Five Star Movement)와 연합하고 있다.

     

    [3] 이러한 확실성이 가리키는 것은 경험 부족, 대단한 교묘함, 그리고 정치적 미성숙이며, 운동 그 자체에서 비롯된,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적 단계의 주어진, 불가피한 요인들이다. 프랑스에서 그 목록은 “노란 조끼”의 “불만 호소문(Les “cahiers de doleances”)”, France-debat인 로버트 듀고(Robert Dugot)의 글에서 보고되었다. 이탈리아 번역판은 Sinistrainrete 웹사이트에 있다. 불만 호소문(cahiers de doleances) 는 1789년 5월 5일, 프랑스 대혁명의 첫 번째 행동을 열었던 삼부회 준비를 위해 모든 사회적 계층의 불만을 모은 문서이다.

     

    [4] 이에 더해, 우리는 이러한 “자치 지역” 뿐만 아니라 어떠한 종류의 정부 프로그램 또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5] 트럼프와 살비니의 일률과세뿐만 아니라 몇십 년 동안 정부가 지속적인 방식으로 자본과 거대 자산에 대해 세금을 가볍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집행한 재정 정책에 직면해,

     

    [6] 그 예로 석공과 정육업자들이 언급된다.

     

    [7] 그것은 이민 노동자들이 속한 부문과 또한 결과적으로 자국의 노동력이 속한 부분 모두에서의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훨씬 급진적인 주장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얼마 전 몬팔코네의 조선소에 일하는 동유럽 또는 극동지역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나라에서 받는 정도와 유사한 수준의 임금, 당연히 이탈리아의 임금보다 훨씬 낮은 수준의 임금을 지불하는 관행이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나쁜 관행이 없어졌는지는 알지 못하나, 그럴 것이라는 데에는 회의적이다.

     

    [8] 저항 초기의, 노란 조끼는 환경에 대해 “조롱한다”고 이야기한 이들과는 반대로

     

    [9] 우리가 자본주의 아래에서 살고 있지 않았다면, 매우 상식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10] 이런 것 가운데는 소규모 거래와 거대한 대형마켓의 개점의 중지, 프랑스 산업의 보호 및 이전의 금지 또는 중지, 중소사업에 대한, 그리고 운송업자와 농업인에게 영향을 주는 연료에 대한 세금의 감면이 있다. 경찰과의 충돌에도 불구하고, 경찰, 사법부, 군대에 대한 자원의 확충 요구는 없었다.

     

    [11] 2019년 1월, 르 몽드 리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tique) 사건기록

     

     

    출처┃국제코뮤니스트경향(Internationalist Communist Tendency)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19-01-18/some-further-thoughts-on-the-yellow-vests-movement

     

    번역┃dong 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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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8호+] 다가오는 이스라엘 총선 : 계급의 전망

다가오는 이스라엘 총선 : 계급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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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서문

  

2018년 12월 말 이스라엘의 소설가 아모스 오즈(Amos Oz)가 79세로 별세했다. 그는 근대 이스라엘 국가의 지난한 역사를 연대기로 기록한 탁월한 소설가였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점증하는 군사적 정책에 대한 지속적인 비판자였다. 1967년, 6일 전쟁의 열광의 한가운데에서 오즈는 그 점령이 이스라엘 사회에 가져올 도덕적으로 부패한 영향력을 경고한 드문 몇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점령의 즉각 종결과 이스라엘과 나란히 팔레스타인 국가의 건설을 옹호했다. 이 견지는 그 당시 과격하게 보였을지 모르지만, 곧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2000년 캠프 데이비드 합의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그런데, 무제한적 포퓰리즘의 시대에는 심지어 이렇게 온건한 제안조차도 극도로 공상적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의 우익 네타냐후 정권은, 팔레스타인 국가의 건설을 향한 그 어떤 진전도 말살시키려 모든 가능한 노력을 다 해오고 있는 와중에,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의 대대적인 국외 추방을 초래하게 될 한 국가 해법인 ‘더 위대한 이스라엘’을 공공연하게 요구하는 보다 더 우파에 속하는 이들로부터 점점 더 커지는 압력에 직면해 있다. 한편 팔레스타인 민족주의 운동은 그 시온주의 국가의 군사적 파괴를 결정하게 될 이슬람주의 분파들에 의해 점점 더 지배되고 있는데, 이 해법은 의심의 여지 없이 또 다른 대대적 국외 추방, 즉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추방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점점 더 험악해지는 분위기에서 이스라엘 내부로부터 나오는 진정으로 국제주의적인 입장의 흔치 않은 표현의 하나인 한 기고문의 출현을 우리는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고문의 저자는,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에 모든 국가의 투쟁과 슬로건은 반동적으로 되어 버렸다는 맑스주의의 입장을 취하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 제국주의가 만든 함정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은 계급에 기반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의 단결이고 모든 부르주아 국가에 대항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향해 나아가는 것임을 거침없이 주장한다.

  

상당히 올바르게도 이 동지는 이러한 전망을 대표할 혁명 정당의 건설을 요구한다. 우리는 이것은 무엇보다도 세계 자본의 주요 중심지에서 노동자계급이 그 역사적인 기획인 코뮤니즘을 다시 활용할 수 있는 국제적인 발전의 일부로서만 오직 가능하다는 점을 주장하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 사이에 어떤 지속적인 단결도 오직 계급투쟁의 전 세계적인 재생의 일부분으로서, 최근 모든 곳에서 점점 더 강해지고 있지만, 특히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서는 그 특별한 역사 때문에 더 증가한 힘을 방출하는 민족주의와 외국인 혐오의 물결을 물리칠 수 있는 운동의 한 일부로서만 오직 가능할 것임이 거의 확실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롤레타리아적인 대안을 중동에서 옹호하는 극소수의 출현은, 그것이 아무리 작을지라도, 이러한 혁명적 미래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연결 고리이고, 이 혁명적 미래는 여전히 가능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하다. 

  

ICC

  

2019년 4월에 예정된 이스라엘의 조기 총선에서는 이 시온주의 국가의 불안정성이 주목될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조기 총선 요청을 선택한 것은 텔아비브 정권이 직면한 곤경을 나타내고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 검찰이 네타냐후를 뇌물 수수 및 사기 혐의로 고소하려는 결정이 예상되는 것 또한 조기 총선을 발의하려는 그의 결심에 한 요소로서 작용하면서 시온주의 체제는 극심한 경제적 정치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노동자계급은 생활 조건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의 군사 점령 대가를 계속 지불할 가능성의 측면에서 지독한 악화를 느낀다. 보건과 교육 체계의 재정 지원은 미흡하고 소비 재화와 용역의 가격은 상승하여, 빈곤에 처하게 된 국내 노동자 사이의 여러 계층은 그들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헤쳐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민의 20%가 빈곤하게 사는 이 나라는 서방에서 가장 불평등한 사회 중의 하나이다.

  

정치적 측면에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점령군에 저항하는 웨스트뱅크(요르단 강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파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 그 남쪽 국경은 분단 장벽 근처로 무장된 저항을 진행해가려는 하마스의 계속된 시도 때문에 불안정하다. 이슬람 투사들은 남쪽의 이스라엘인들에 대항해 미사일을 발사한다. 북쪽 국경에서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있는 이란 혁명군의 기지들을 계속 군사적으로 공격하느라 바쁘다. 게다가, 이스라엘군과 헤즈볼라는 전쟁 가능성에 그 어느 때보다도 근접해 있다. 미국 행정부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 있는 이슬람주의자들을 항복시키기 위해 국경에서 공격적인 정책(가자 지구는 이스라엘의 봉쇄정책으로 인해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혹독한 상황에 처해 있다)을 펼치고 있고 이란의 민병대를 (이들이 장래의 전쟁에서 헤즈볼라를 돕게 될까 두려워하며) 시리아에서 몰아내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이러한 상황은 그 불안정성과 위기를 표시한다. 차별주의 국가로서 이스라엘은 노동자계급이 점령과 국가의 군사적 공격성의 대가를 치르면서 그와 동시에 정부가 경제를 운영하는 자본주의적 방식을 수용하게 될 조건을 유지하려 모색한다. 해외의 우익-포퓰리스트와 파시스트 지도자들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 지배 계급은 민족주의적 보이콧과 박탈과 처벌(BDS) 운동에 대항해 싸우면서 시온주의적 식민화 계획을 생생히 유지하기 위해서 대중들을 억압한다.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젊은이들은 민족적 억압과 자본주의의 잔혹한 착취라는 이스라엘의 조건을 더는 순순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일부는 네타냐후 정부에 대항하는 이스라엘 야당이 이스라엘의 부르주아 엘리트에 봉사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당에 의해 이미 동원된다.

  

정치적 대안의 부재

  

이스라엘의 정치체계는 파편화되어 있고 허약하다. 정치적으로 우파 정당들은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리쿠드(Likud)당을 위주로 전통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그런데, 현재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우파 정당 사이에서도 분열과 위기가 있다. 크네셋(Knesset) 안에는 1973년 창당된 극히 배타주의적인 신자유주의 형태인 리쿠드가 가장 큰 정치 분파이지만, 리쿠드보다 작은 다른 정당도 있는데, 이들의 정책은 더 극심하게 민족주의적이고 배타주의적이다. 이러한 정당은 팔레스타인인을 내쫓게 될 더 위대한 이스라엘(The Greater Israel)을 만들려는 목표를 추진한다. 네타냐후의 연정에 참여한 유일하게 ‘중도적’ 분파는 이전의 리쿠드 당원 몇몇에 의해 구성되었다. 그렇지만, 이 분파는 네타냐후와 정치적 우파들이 국가의 경제를 자본주의적 극단으로 내몰아 가는데 협력했다.

  

네타냐후에 대해 반대파를 형성하는 정당은 정책과 이념에 있어서 균일하지 않다. 그들 중의 하나는 노동당인데, 그 기회주의적이고 사회배타적인 정책을 대부분의 이스라엘인은 불신한다. 다른 하나는 작은 사회민주주의적 시온주의 당, 메레츠(Meretz)인데, 그 정치적 선거 영향력은 협소하다. 이스라엘 내의 팔레스타인사람들은 민족주의적 정치정당에 의해 대표되는데, 이 안에서 스탈린주의적인 이스라엘 코뮤니스트당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좌파-중심 뒤죽박죽 집합체의 문제는 정치적 측면에서 그들의 이질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 중 그 어느 하나도 이스라엘과 아랍 노동자들에게 전망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유사-좌파 시온주의자 분파들도 반시온주의 아랍 코뮤니스트 당들도 수십 년간의 점령, 잔인한 자본주의, 긴축 정책과 계속되는 사회적 위기로부터의 탈출구를 제시하지 않는다.

  

이 상황은 이스라엘이 정착민-국가로서 팔레스타인 민중을 계속해서 식민화하는 한 유감스럽긴 하지만 이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의 점령 문제는 이 나라의 정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정치적 우파가 점령과 식민화의 강화를 갈망한다면 정치적 유사-좌파는 이미 사멸한 두 나라(Two-States) 해법을 추진하는데, 그 해법 상으로는 작은 팔레스타인 반투스탄(Bantustan)국가가 이스라엘과 나란히 창건될 것이다. 민중들은 이 유혈 충돌의 종결을 보게 되기를 열렬히 갈망하는 반면, 우파는 노동자계급을 민족주의의 대열로 분열시키려고 과격한 배타주의와 해악한 민족주의를 퍼뜨리면서 번창한다. 유사-좌파는 자본주의 체제가 계속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게 될 제국주의적 질서에 기반한 해법 밖에는 제시하지 않는다. 100년 이상의 유혈 충돌에 대해 진정한 대안 없이 민족주의는 번창하고 배타주의는 이스라엘 노동자들과 팔레스타인 노동자들 사이의 진정한 화해로의 그 어떤 변화도 좌절시키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한 나라 해법(The one-state solution)

  

몇몇 좌파 써클 사이의 새로운 유행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두 민족 단일 국가 개념인데, 이 국가는 그 두 민족에게 ‘자결(self-determination)’을 제공할 것이라는 개념이다. 이 생각은 팔레스타인에 두 개의 독립국가를 건설한다는 전망에 대해 절망하는 과격파 진영에서 점점 더 유행하고 있다. 그런데, ’자결’이라는 슬로건은 기만적이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에 자결에 대한 요구는 부르주아 체제의 확립을 의미한다. 노동자계급의 시점에서 볼 때 부르주아 국가의 건설은 계급투쟁의 측면에서 궁지에 몰리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안에서 자결을 요구하는 것은 부르주아 질서에 대한 위험한 환상을 구성하고 노동자계급이 민족 부르주아계급과 구별되지 않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족 대열을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존재하고 혁명 행동을 수행할 수 있는 그러한 나라에서의 혁명가들은 ‘자결’의 요구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한층 더, ‘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은 바로 이 권리가 민족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와 상충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이 입장은 팔레스타인에서의 현실과 모순되는데, 부르주아지는 한 나라로 단일화된 자본주의 경제 상황에서 이득을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는 그들이 계급 대열을 따라서 통합되는 것이다. 민족주의와 자결에 대한 반동적 요구는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를 성취하는 것을 저지하길 원하는 민족 부르주아지가 손에 쥔 무기이다. 이점에 우리는 제국주의의 시기에 자본주의는 민족 국가와 경제를 파괴하고 식민화 과정을 통해 세계시장을 건설하려 모색하기 때문에 이 시기에 민족 독립을 위한 투쟁은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덧붙인다. 진정으로 독립적인 민족 국가의 건설이 가능하던 시대로 회귀하려는 과격한 충동은 공상적이고 심지어 반동적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질서 내에 하나의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요구는 사실상 부르주아지에게 또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를 건설하라는 요구와 마찬가지이고, 이렇게 건설된 나라에서 노동자계급은 억압받고 자본주의 지배 계급에 대항해 자체의 권리를 방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트로츠키주의 그룹이 주를 이루는 극소수는 하나의 팔레스타인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 즉, ‘억압받는’ 민중들, 즉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결권에 기반을 둔, 사회주의 성격을 지닌 민족 국가의 건설을 주창한다. 이렇게, ‘억압받는 자’와 ‘억압자’ 사이를 구분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권력 쟁취를 목표하는 혁명 기획에 모순되며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계급 차이를 흐리게 만든다. 민중의 통합성은 오직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기반 위에서만 성취될 수 있다.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이런저런 좌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파시즘에 의해 분쇄되는 것으로부터 이스라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구해내기 위해서 다양한 정당 - 자유주의자, 개량주의자, 스탈린주의자 또는 트로츠키주의자 - 에 투표하라는 요구가 있다. 그런데, 이 요구는 제국주의 시기에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적 체제이고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는 믿음을 반영한다. 민중은 민주주의를 보게 되기를 진정으로 원하고 파시스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잔재를 파괴하기를 진정으로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부르주아-민주주의/자유주의 정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 파시즘이 승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혁명적 행위자로서 노동자계급의 힘을 위축시키는 정치적 전략이다. 파시즘은 민중들의 직접적이고 독립적인 혁명적 행동을 통해 패배할 뿐이지 자본주의를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자들에 의해서 패배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정치 체계 안에 존재하는 현재의 ‘좌파’정당은 자본주의 질서를 옹호하고 자본주의 내에서 민족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에 대한 환상을 유포하는 점에 있어서 유럽과 미국의 다른 정당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부패되어 가는 질서를 옹호한다, 그 죽음의 마지막 고통을 겪고 있는 질서를. 이러한 정당은 민중을 자신들 주위로 끌어모을 수 없는데,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을 경멸하고 그들의 지도력도 그들의 강령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코뮤니스트 강령을 추진할 자신의 혁명당이 필요하다. 그런데 개량주의자와 스탈린주의자에 의해 제안된 게임, 즉 부르주아 의회에 참여하고 그래서 혁명이 허공에서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잘 못 된 것이고 기만적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신비화는 ‘시민권(citizenship)’과 같은 개념을 확고하게 믿는 자들이 행한 잘못된 분석에서 유래한다. 사실상, 계급 사회 안에서 유일한 진정한 민주주의,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배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 성취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혁명이 근접해 있거나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혁명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인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부르주아 의회 안에서 활동한다는 환상을 가지고는 노동자들은 해방되지 않을 것이다.

  

이 분석이 목표한 것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내의 노동자계급에게 그들의 투표용지를 망쳐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코뮤니스트 강령에 근거한 단일한 혁명 정당 안에 조직하라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민족주의와 전쟁을 일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혁명을 통해서이다. 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고 그래서 노동자들은 그들의 미래를 코뮤니스트 사회 안에 건설하기 위해 단결해야만 한다. 

  

DS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원문 출처>

http://en.internationalism.org/content/16618/coming-elections-israel-class-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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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 창설 100주년] 1919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창설

  • 1919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창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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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919년 3월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창립 총회의 대표들

     

    •  

       우리가 기념해야 할 수많은 기념일 가운데 매체와 역사가들이 짧게 언급하고 그 의미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면서 제대로 다루지 않는 기념일이 있다. 1919년 3월 열린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하 코민테른)>의 창립대회가 그것이다.

       

      코민테른 창설의 기념은 계급투쟁이 오늘날 위기로 고통받는 자본주의의 현실이며, 프롤레타리아트가 착취 받는 계급일 뿐 아니라 혁명계급으로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부르주아지 자체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을 현재의 부르주아지에게 상기시키고 있다.

       

       

      1. 1919년 국제적인 혁명 물결

       

       코민테른의 창설은 전체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열광적 하수인들에게는 불쾌한 기억을 일깨우고 있다. 특히 그들에게는 국제적인 혁명 물결의 솟구치고 피할 수 없는 조류에 직면한 1차 세계대전 말의 공포를 상기시키고 있다. 그것은 1917년 10월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승리, 참호에서의 반란, 독일에서 빌헬름 황제의 퇴위와 노동계급의 반란과 폭동에 직면한 휴전 서명, 그리고 독일 노동자들의 봉기, 러시아 노선에 따른 바바리아와 헝가리에서의 노동자평의회 공화국 건설,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노동자 대중 사이의 파업,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적대적 개입을 거부한 몇몇 영국 군대뿐만 아니라 프랑스 함대와 군대의 반란 등이었다.

       

      그 당시 영국 정부의 수상인 로이드 조지는 만일 그가 러시아 정복을 돕기 위해 천 명의 영국 군대를 파견한다면 그 군대는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만약 영국의 군사점령이 볼셰비키에 맞서 이루어진다면 영국은 볼셰비키가 되고 런던에 소비에트가 건설될 것이라고 1919년 1월 선언했다. 그것은 러시아 노동자평의회 권력에 대한 국제 부르주아지의 경악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었다.

       

      “유럽 전체는 혁명정신으로 가득 찼다. 노동자들 사이에는 전쟁 조건에 반대하는 불만감뿐만 아니라 분노와 반항감이 깊이 쌓여 있다. 정치적·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모든 기존 질서에 대해 유럽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모든 인민대중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E. H. 카의 「볼셰비키 혁명」 3권, 135쪽에서 인용)

       

       우리는 오늘날 코민테른의 창설이 1917년으로부터 적어도 1923년 말까지, 유럽으로부터 아시아(중국)로, 그리고 캐나다(위니페그)와 미국(시애틀)의 ‘신’세계로부터 라틴아메리카에 이르는 전 세계의 혁명 물결에서 정점이었다고 알고 있다. 이러한 혁명 물결은 세계를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분할로 이끈 1차 세계대전, 4년간의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응답이었다. 1914년 전쟁이 꿀꺽 삼킨 제2 인터내셔널 사회민주주의의당들과 개별 투사들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해 취한 태도는 그들이 혁명과 코민테른을 맞아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를 결정했다.

       

      “코민테른은 각기 다른 나라의 제국주의 부르주아지가 2천만 명을 희생시킨 1914~18년의 제국주의 전쟁이 끝난 후 만들어졌다. ‘제국주의 전쟁을 기억하라’ 이 말은 코민테른이 모든 남성 노동자와 모든 여성 노동자에게 한 첫 번째 말이다. 그들이 어디에 살건 어떤 언어로 말하든지 그들에게 한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에 한 줌의 제국주의자들이 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각기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이 서로의 목을 베도록 강제했다는 점을 기억하라. 부르주아지의 전쟁이 유럽과 전 세계에서 가장 가공할 기근과 가장 소름 끼치는 참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기억하라. 자본주의를 전복하지 않고는 이러한 강도 같은 전쟁의 반복이 가능할 뿐 아니라 불가피함을 기억하라” (2차 대회에서 채택한 코민테른의 문건, 제인 데그라스, 「코민테른 1919-43: 문헌집」)

       

       

      2. 코민테른의 제2 인터내셔널과의 연속성

       

      (1) 제2 인터내셔널과 제국주의 전쟁

       

       1848년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칼 맑스는 “노동자는 조국이 없다”라고 자본주의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근본적 원칙 하나를 정립했다. 이 원칙은 노동자들이 민족 국가의 문제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반대로 민족문제와 그들 역사적 투쟁 하나의 기능으로서 민족 전쟁 문제에 대해 노동자의 입장과 태도를 규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쟁의 문제와 프롤레타리아트의 태도는 제1 인터내셔널(1864~73)과 제2 인터내셔널(1889~1914)에서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19세기 동안 프롤레타리아트는 특히 러시아 차르 체제와 같은 봉건적이고 군주적 반동에 맞서는 민족해방 전쟁에 무관심할 수 없었다.

       

      제2 인터내셔널 내에서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는 선두에 서서 20세기 벽두에 발생한 자본주의의 시기 변화를 인식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정점에 다다랐으며 전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제 레닌이 말한 것처럼 “자본주의의 가장 높은 단계인 제국주의”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다가올 유럽전쟁은 식민지의 분할과 그 영향력을 둘러싼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제국주의 세계 전쟁일 것이었다. 날이 갈수록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원칙을 저버렸던 기회주의 진영에 맞서서,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서 인터내셔널과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장하는 전투로 이끈 것은 제2 인터내셔널의 좌익이었다. 이 투쟁의 중대한 순간에 러시아 1905년 대대적파업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이끌어낸 로자 룩셈부르크가 제국주의 전쟁을 대대적파업과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연결시킨 1907년 슈투트가르트의 인터내셔널 대회가 있었다.

       

      “나는 이 문제[러시아에서의 대대적파업과 전쟁(편집자)]에 대해서 우리가 위대한 러시아 혁명[1905년(편집자)]의 교훈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여러 동지들에게 상기시키는 것을 러시아와 폴란드 대표들의 이름으로 말하라고 요청받았습니다. … 러시아 혁명은 전쟁의 결과로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 전쟁을 끝내려고 일어났습니다. 혁명이 없었다면 차르 체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전쟁을 지속시켰을 것입니다.” (로자 룩셈부르크, BD 울프 「레닌, 트로츠키, 스탈린」에서 인용)

       

      좌파는 룩셈부르크와 레닌이 제출한 대회의 중대한 수정결의안을 채택했다.

       

      “그래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사회주의자들은 가능한 한 빨리 그 전쟁을 끝내고 전쟁이 촉발한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인민에게 일깨우고, 그럼으로써 자본주의 지배의 몰락을 서두를 의무가 있다.” (코민테른 1차 대회에서 채택한 「사회주의 경향들과 그들의 베른대회에 대한 결의문」에서 인용)

       

      1912년 제2 인터내셔널의 바젤 대회는 유럽에서 점증하는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맞서는 위와 같은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이 코뮨의 혁명적 반란을 탄생시켰고, 러일전쟁이 러시아에서 혁명세력을 움직였다는 것을 부르주아 정부들이 잊지 않게 하자. 노동자계급의 눈으로 볼 때, 자본가들의 이익, 왕조의 경쟁, 그리고 외교 협정의 남발을 위해 노동계급이 자신을 학살하는 것은 범죄다.” (앞글)

       

      (2) 제2 인터내셔널의 배반과 죽음

       

       1914년 8월 4일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기회주의 때문에 구멍이 숭숭 뚫리고 애국주의 홍수와 전쟁열에 쓸려 제2 인터내셔널은 깨어져 부끄럽게 목숨을 다했다. 주요 당들은 (특히 누구보다 기회주의자들 수중에 있었던 프랑스와 독일 사민당과 영국의 노동당은) ‘조국 방어’와 ‘외세침략’에 맞서기 위한 부르주아지와의 ‘신성한 동맹’을 요구하며 전쟁채권에 찬성표를 던졌다. 프랑스에서는 계급투쟁을 포기하면서 장관직을 보상으로 받기까지 했다. 그들은 '맑스주의의 황제'라고 불렸던 카우츠키가 계급투쟁은 '평화 시기'에만 가능하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는' 불가능하다고 선언하면서 전쟁과 계급투쟁을 구분했을 때, '중도주의'(인터내셔널의 좌파와 우파 사이의 중간)로부터 이론적 지원을 받았다.

       

      “계급의식이 있는 노동자들은 인터내셔널 붕괴에 대해 슈투트가르트와 바젤에서 열린 인터내셔널 대회의 발언과 결의문 속에 담긴 가장 거룩한 선언, 그리고 그들의 신념을 공식 사민당의 다수가 명백하게 배신한 것으로 이해한다.” (레닌, 「제2 인터내셔널의 몰락」)

       

       소수의 당만이 이러한 폭풍 속에서 우뚝 섰다. 특히 이탈리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고 러시아의 당이 그랬다. 다른 곳에서는 고립된 혁명가들과 혁명 그룹이 있었는데, 로자 룩셈부르크와 호르터와 판네쿡 주위의 네덜란드 '트리뷴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와 계급투쟁에 충실했으며 재조직화를 시도했다.

      제2 인터내셔널의 죽음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심대한 패배였다. 이는 그들이 참호 속에서 피를 흘리게 했다. 수많은 혁명적 노동자들이 살육당했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그들의 국제 조직을 잃어버렸다. 그것은 재건해야 했다.

       

      “제2 인터내셔널은 기회주의에 패배해 죽었다. 기회주의자를 타도하자. 변절자뿐 아니라 기회주의로부터 해방된 제3 인터내셔널 만세!” (레닌,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의 정세와 임무」, 1914. 1. 10)

       

      (3) 침머발트와 키엔탈 대회 :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건설을 향한 발걸음

       

       1915년 9월 '국제사회주의자들의 침머발트 대회'가 열렸다. 이어서 스위스의 키엔탈에서 1916년 4월 2차 대회가 열렸다. 전쟁과 억압이라는 어려운 조건에도 불구하고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를 포함한 11개국의 대표들이 참여했다. 침머발트 대회는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식했다. 대회의 다수파는 ‘거룩한 동맹’의 진영으로 넘어갔거나 그들과 분리되어 관망하는 사민당들의 기회주의 우파를 비난하기를 거부했다. 이러한 중도주의 다수파는 '평화'라는 표어를 방어하는 평화주의자였다.

       

      볼셰비키 분파의 대표인 레닌과 지노비예프의 주도 아래 통일된 '침머발트 좌파'는 분립의 필요성과 제3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주창했다. 평화주의에 맞서 그들은 "혁명적 행동 없는 평화 투쟁은 공허하고 기만적인 문구”(레닌)라고 선언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자”는 슬로건으로 중도주의를 반대했다. “이 슬로건은 구체적으로 슈투트가르트와 바젤대회의 결의문으로 나타난다.”(레닌)

       

      이들 대회를 통해 '좌파'는 힘을 얻었지만, 다른 대표들을 깨닫게 할 수 없어 소수파로 남았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두 번째 침머발트 대회(키엔탈)는 의심할 여지 없이 한 걸음 진전이다. (…) 그러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앞으로 우리는 우리의 결의와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제3 인터내셔널을 위한 투쟁을 지속해야 한다. 침머발트와 키엔탈 대회는 우리의 길이 올바르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지노비예프, 1916. 10. 6)

       

      지노비예프가 1918년 3월에 말했듯이, 각기 다른 나라 좌파 사이의 회의와 그들 사이의 공동투쟁을 통해 “형성 중인 제3 인터내셔널의 첫 번째 핵”을 만들 수 있었다.

       

      (4) 프롤레타리아트가 슈투트가르트와 바젤 대회의 결의문을 수행하다

       

       1917년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유럽 전역에 혁명적 물결을 열어젖혔다. 프롤레타리아의 위협은 제국주의 대학살이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을 국제 부르주아지에게 확인시켰다. 레닌의 슬로건은 현실이 되었다. 러시아 그리고 국제 프롤레타리아트가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시켰다. 이처럼 프롤레타리아트는 유명한 슈투트가르트 결의를 적용함으로써 제2 인터내셔널 좌파의 명예를 드높였다.

       

      1차 세계대전은 사회민주당의 의회주의적 우파를 부르주아지 진영으로 결정적으로 몰아넣었다. 혁명적 물결은 중도주의의 평화주의자들이 부르주아지에 맞서 싸우도록 했지만 그들의 다수는 특히 카우츠키 같은 지도자들은 부르주아지 진영으로 뛰어들었다. 더 이상 인터내셔널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분리된 분리파들이 만든 새로운 당은 '코뮤니스트'당 이라는 이름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혁명적 물결은 고무되었으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당, 제3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요구했다.

       

      (5) 코민테른의 건설 : 제2 인터내셔널의 정치와 원칙과의 연속성

       

       코민테른[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을 채택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이미 죽은 제2 인터내셔널 당의 우파로부터 조직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기반으로 1919년 3월에 건설되었다. 그러나 제2 인터내셔널의 원칙과 그 공헌을 거부하지 않았다.

       

      “이에 생명을 다한 공식적 사회주의당의 냉담, 거짓 그리고 부패를 쓸어버리면서, 우리 코뮤니스트들은 제3 인터내셔널에서 하나가 되어 바베프로부터 칼 리프크네히트, 그리고 로자 룩셈부르크로 기다랗게 이어지는 혁명 세대들의 영웅적 노력과 순교의 직접적 계승자라고 우리를 생각한다.

      제1 인터내셔널이 발전의 미래 경로를 미리 비추고 그 도정을 가리켰다면, 그리고 제2 인터내셔널이 수백만의 노동자들을 모으고 조직했다면, 제3 인터내셔널은 열린 대중행동의 인터내셔널이고 혁명적 실현의 인터내셔널이며, 행위[실천]의 인터내셔널이다.” (코민테른의 선언)

       

      코민테른의 기반을 이룬 흐름, 분파, 전통 그리고 입장은 제2 인터내셔널의 좌파가 발전시키고 방어한 것들이었다.

       

      “1차 대전 이전에 프롤레타리아트가 발전시킨 제2 인터내셔널이라는 역사적 대열로부터 선발해 재편한 그룹을 통해서만,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 투쟁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음을 우리의 경험은 증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그룹만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선진적 강령을 만들 수 있고 그래서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기초를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빌랑 [코뮤니스트 좌파의 이탈리아 분파의 이론지], 1936년 8월, 34호, 1128쪽)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 안톤 판네쿡 같은 개인은 물론이고 볼셰비키, 독일, 네덜란드, 이탈리아 좌파 같은 사회민주당의 그룹과 분파를 보더라도, 제2 인터내셔널과 침머발트의 좌파와 제3 인터내셔널의 좌파 사이에는 정치적이고 유기적인 연속성이 있다. 코민테른의 첫 번째 대회는 제2 인터내셔널의 부분이었던 러시아 코뮤니스트당(볼셰비키)(이전의 러시아 노동자 사회민주주의당[볼셰비키])과 독일 코뮤니스트당(이전의 스파르타쿠스)의 주도로 소집되었다. 볼셰비키는 침머발트 좌파의 주도 세력이었다. 침머발트 좌파는 제2 인터내셔널과 제3 인터내셔널 사이의 진정한 유기적·정치적 연결고리였는데, 그들은 제2 인터내셔널의 좌익으로서 과거에 벌였던 투쟁을 평가하면서 그 시대의 요구를 다음과 같이 정립했다.

       

      “침머발트와 키엔탈 대회는 제국주의 살육에 항의하기 위해, 결의가 있는 모든 프롤레타리아 세력을 이런저런 방식으로 통일시키는 것이 필요했던 상황에서 열린 매우 중요한 대회였다. (…) 침머발트 그룹은 자기 전성기를 가졌다. 침머발트에 모인 진실로 혁명적인 세력은 모두 더 전진해 코민테른에 합류한다.” (침머발트 대회 참가자 선언)

       

       우리는 두 인터내셔널 사이의 연속성을 강력히 주장한다. 우리가 계통적 측면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코민테른은 느닷없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 강령과 정치적 원칙도 마찬가지다. 두 인터내셔널 사이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역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나키스트에 굴복하는 것이다. 또한 코민테른을 단지 노동자 대중의 혁명운동 산물로만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연속성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코민테른이 왜 그리고 어떻게 제2 인터내셔널과 결별했는지를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슈투트가르트 결의에 표현된 두 인터내셔널 사이의 연속성이 있지만, 두 인터내셔널 사이에는 단절도 있기 때문이다. 그 단절은 코민테른의 정치 강령 속에, 그 정치적 입장에, 그리고 '세계 코뮤니스트당'으로서의 조직적이고 전투적인 실천 속에 구체화되었다. 사실 단절은 물리적인 유혈 탄압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것은 제2 인터내셔널의 성원인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참여한 케렌스키 정부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와 볼셰비키를 억압하고, 독일에서는 노스케-샤히드만 사민주의 정부가 프롤레타리아트와 코뮤니스트당을 억압해서 단절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연속성 속의 단절'을 인식하지 않으면, 1920년대의 코민테른의 퇴행, 그리고 그 내부의 투쟁, 그리고 1930년대 ‘이탈리아’, ‘독일’ 및 ‘네덜란드’ 코뮤니스트 좌파의 외부투쟁 및 그들 세력의 배제를 이해할 수 없다. 오늘날 코뮤니스트 그룹과 그들이 방어하는 입장은 이런 좌파들이 코뮤니스트 원칙을 지키고, 코민테른 및 1917~23년의 혁명적 물결을 비판적으로 재평가했던 그들의 노력의 산물이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유산인 제2 인터내셔널의 유산을 인식하지 않으면, 코민테른의 기반, 오늘날까지 중요한 몇몇 기반의 타당성, 1930년대 코뮤니스트 좌파의 공헌을 이해할 수 없다. 다른 말로 그것은 오늘날 혁명적 입장을 지속해서, 확신과 결단을 가지고 방어할 수 없음을 뜻한다.

       

       

      3. 코민테른의 제2 인터내셔널과의 단절

       

      (1) 코민테른의 정치 강령

       

       1919년 1월 말 트로츠키는 코민테른 창립대회의 초대장을 썼다. 그 대회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이 채택할 정치 강령의 원칙을 결정했다. 사실 이 편지는 제안된 ‘코민테른 강령’이고 그를 잘 요약하고 있다. 그것은 두 개의 주요 코뮤니스트당의 강령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 의견으로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여기서 강령으로 제시했고, 독일 스파르타쿠스 동맹과 러시아 코뮤니스트당(볼셰비키)의 강령에 기초해서 구성된 다음의 제안에 기초해야만 한다.” (데그라스, 앞글)

       

       사실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1918년 12월 29일 독일 코뮤니스트당이 창설된 이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1919년 1월 베를린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끔찍한 탄압기 동안에, 사민주의 세력이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리프크네히트를 죽여 독일 코뮤니스트당은 두 명의 주요 지도자를 잃었다. 이처럼 바로 창립 순간에 코민테른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첫 번째 패배의 고통을 겪었다. 창립 두 달 전 코민테른은 그의 명성, 힘 그리고 이론적 능력에서 레닌과 트로츠키에 필적할 두 명의 지도자를 잃었다. 지난 세기말 자신의 저작에서 코민테른의 정치 강령의 기초가 될 핵심을 가장 많이 발전시킨 사람은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2) 돌이킬 수 없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쇠퇴

       

       로자 룩셈부르크에게는 1914년 전쟁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쇠퇴기를 열어 놓았다는 점이 명백했다. 제국주의 살육 이후 이러한 입장은 더는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오늘날 인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 혼돈 속에서 멸망하느냐 아니면 사회주의에서 구원을 발견하느냐” (독일 코뮤니스트당 창립대회에서 강령에 대한 연설)

       

      이러한 입장은 코민테른에서 강력하게 재확인되었다.

       

      “1. 현시대는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지닌 자본주의가 파괴되지 않는다면, 그와 함께 유럽 문명의 전체를 끌어내릴, 전체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몰락과 해체의 시대이다.” (「초청장」, 데그라스, 앞글)

       

      “새로운 시대가 태어난다! 자본주의 소멸과 내부 해체의 시대가! 프롤레타리아트의 코뮤니스트 혁명의 시대가!” (코민테른 강령, 앞글)

       

      (3) 자본주의 쇠퇴 시대의 정치적 함의

       

       코민테른의 지형 위에 서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자본주의의 쇠퇴는 삶의 조건과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에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다. 보기를 들어 카우츠키와 같은 중도주의 평화주의의 사상과는 반대로 전쟁의 끝은 전쟁 전 시기의 삶과 강령으로 회귀하는 걸 의미할 수 없었다. 이는 죽은 제2 인터내셔널과 코민테른 사이의 단절의 한 지점이었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세계대전은 세상의 전환점이다. (…) 우리의 투쟁을 위한 조건과 우리 자신은 세계대전으로 발본적으로 변화되었다.” (룩셈부르크, 「유니우스 팜플렛」으로 알려진 「사회민주주의의 위기」, 1915)

       

      제국주의 전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쇠퇴기가 열렸다는 것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삶과 투쟁의 새로운 조건을 의미했다. 1905년 러시아 대대적파업, 그리고 노동대중 단일 조직의 새로운 형태인 소비에트가 최초로 등장한 것이 자본주의 쇠퇴기의 개막을 예고했다. 룩셈부르크(「대대적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 1906)와 트로츠키(1905년 그의 책)는 이러한 대중운동의 본질적 교훈을 끌어냈다. 룩셈부르크와 함께 모든 좌파는 제2 인터내셔널 내에서 대대적파업에 대한 논쟁을 이끌었으며 노동조합과 사민당 지도부의 기회주의에 맞서서 그리고 사회주의로의 평화적이고 점진적 진화라는 그들의 전망에 맞서서 정치 투쟁을 전개할 수 있었다. 사민주의적 실천과 결별하면서 코민테른은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기본적인 투쟁방법은 자본의 정치 권력에 맞서 공개적인 무장투쟁으로 나아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중행동이다” (「초청장」, 데그라스, 윗글)

       

      (4)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노동대중의 행동은 부르주아 국가와의 충돌로 나아간다. 코민테른의 가장 소중한 공헌은 국가에 대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태도에 대한 것이다. 사민주의의 '개량주의'와 결별하고 파리코뮨과 1905년 러시아 그리고 무엇보다 자본주의 국가를 파괴하고 노동자평의회로 권력을 행사한 1917년 10월 혁명의 역사적 경험의 교훈과 맑스주의 방법을 새롭게 함으로써, 코민테른은 스스로 명쾌하게 그리고 어떠한 모호함도 없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노동자평의회 안에 조직된 노동대중의 독재를 선언했다.

       

      “2.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는 지금 즉각 권력을 장악하는 것이다. 국가권력의 장악은 부르주아지의 국가기구의 파괴와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권력 기구의 조직을 의미한다.

       

      3. 이러한 새로운 권력 기구는 노동계급의 독재를 구현해야 하고 몇몇 곳에서는 농촌의 반(半)프롤레타리아트, 빈민의 독재를 구현해야 한다. (…) 소비에트 및 그와 비슷한 기구의 권력을 통해 그 구체적 형식을 확인할 수 있다.

       

      4.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자본의 즉각적 전유와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의 폐지와 국가 재산으로의 전환을 위한 지렛대여야 한다.” (윗글)

       

      이 문제는 레닌이 제안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테제'를 채택했던 창립대회에서 본질적인 문제였다.

       

      (5)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에 대한 테제

       

       이 테제는 민주주의와 독재 사이의 그릇된 대립을 비난하면서 시작한다.

       

      “어떤 문명화된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추상 속의 민주주의’는 없다. 오직 부르주아 민주주의만 있을 뿐이다” (윗글)

       

      파리코뮨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독재적 성격을 드러냈다. 자본주의에서 ‘순수한’ 민주주의를 방어하는 것은 사실 기껏해야 자본의 독재의 형식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방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회의 자유나 출판의 자유는 노동자들에게 무엇인가?

       

      “‘출판의 자유’는 ‘순수 민주주의’의 또 다른 대표적 슬로건이다. 여기에서도 또 가장 좋은 인쇄소와 막대한 종이 더미를 자본가가 장악하고 있는 한, 또 자본이 신문·잡지에 대한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한, 그리고 이 권력은 세계에서, 예를 들어 미국처럼 민주주의와 공화제도가 발전하면 할수록, 더 명확하게, 더 첨예하게, 더 냉소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조건이 계속되는 한 이 자유가 기만이라는 것을 … 노동자는 알고 있다. 노동자를 위한,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참된 평등과 진정한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문필가를 고용하거나 출판소를 사들이거나 신문을 매수할 가능성을 자본으로부터 박탈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의 멍에를 뒤집어버리고, 착취자를 타도하고 그들의 반항을 분쇄할 필요가 있다.” (「테제」, 윗글)

       

       전쟁과 혁명을 경험한 후 카우츠키주의자들이 한 것처럼 순수한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방어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는 범죄라고 「테제」는 계속 말하고 있다. 각기 다른 제국주의와 소수 자본가들의 이해 때문에 수백만의 인민이 참호에서 학살당했고 ‘부르주아지의 군사독재’는 민주적이건 아니건 간에 모든 나라에 세워졌다. 사민주의 정부가 칼 리프크네히트와 로자 룩셈부르크를 체포하고 투옥한 것처럼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그들을 학살했다.

       

      “이러한 사태 아래에서는 프롤레타리아의 독재가 착취자를 압도하고, 그들의 저항을 극복하는 수단으로서 완전히 정당할 뿐만 아니라, 전쟁을 일으켰고 지금도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부르주아 독재에 대한 유일한 방위수단으로서 노동대중 전체에게 절대로 필요하다.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다른 계급의 독재 사이의 근본적 차이는 (…) 이를 포함한다. 즉 (…)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는 착취자 즉 주민 중에서 극소수인 대지주와 자본가의 반항을 무력으로 억누르는 것이다. (…)

       

      사실, 이미 실제로 창출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여러 형태, 즉 러시아 소비에트 권력, 독일의 노동자평의회, 직장위원회, 이와 유사한 다른 나라의 또 다른 소비에트적 제도, 이 모두는 다름 아닌 노동계급, 즉 주민 대다수에게 민주적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한다. 그것은 가장 민주적인 부르주아 공화국조차 전혀 보장할 수 없었던 또 그와 유사한 것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민주적 권리와 자유가 실제로 가능해진다는 것을 뜻한다.” (윗글)

       

       오직 세계적 차원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만이 자본주의를 파괴하고, 계급을 폐지하며 코뮤니즘으로 가는 길을 보증할 수 있다.

       

      “국가권력의 폐지는 맑스를 포함해서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목표다. 이러한 목표가 달성되지 않으면 자유와 평등의 진정한 민주주의는 달성될 수 없다. 그러나 오직 소비에트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만이 실제로 이 목표로 나아가게 한다. 왜냐하면 노동인민의 대중조직을 국가행정에 지속적이고 제한 없이 참여하게 함으로써 어떤 종류의 국가도 완전히 소멸시킬 준비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윗글)

       

      국가의 문제는 혁명적 물결이 유럽을 휩쓸고 모든 나라의 부르주아지가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맞서 내전을 벌일 때, 그리고 자본과 노동,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적대감이 극에 달할 때 중요한 문제였다.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와 혁명의 확장, 즉 소비에트 권력을 유럽에 국제적으로 확장할 필요성은 혁명가들에게 구체적으로 제기되었다. 그것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국가와 혁명적 물결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그에 맞설 것인가의 문제였다. ‘[프롤레타리아 독재]편에 선다는 것’은 코민테른에 가입해 사회민주주의와는 체계적으로 정치적으로 단절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맞선다는 것’은 부르주아 국가를 방어하고 결정적으로 반혁명 진영을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둘 사이에서 머뭇거렸던 중도주의 흐름에게는 그것이 단절과 소멸을 뜻했다. 혁명 시기는 ‘중도 기반’의 멍청한 정책을 가질 어떤 틈도 남겨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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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1차 총회에서의 레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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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오늘과 내일 : 코민테른의 과업을 지속하기

       

       1914~18년 전쟁이 결정적으로 보여준 시기 변화는 제2 인터내셔널과 제3 인터내셔널 사이의 단절을 결정짓는다. 우리는 이를 국가의 문제에서 살펴보았다. 자본주의의 쇠퇴, 그것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투쟁 조건에 미친 결과는 일련의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즉, 아직도 선거 참여와 의회의 활용이 가능한가, 노동자평의회가 출현했는데도, 자본가들과 ‘성스러운 동맹’에 참여했던 노동조합이 아직도 노동계급의 조직인가, 제국주의 전쟁의 시대에 민족해방투쟁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가 그런 문제들이었다.

       

      코민테른은 이러한 새로운 문제에 응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1917년 10월 혁명 1년여 뒤, 그리고 베를린 프롤레타리아트가 겪은 첫 번째 패배로부터 두 달 뒤에 창설되었다. 그 뒤를 이은 여러 해 동안 국제 혁명의 물결은 패배하고 쇠퇴했으며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점점 고립되었다. 이러한 고립은 프롤레타리아 독재 국가의 퇴행에서 결정적 요인이었다. 이러한 사태들 때문에 코민테른은 기회주의의 성장에 저항할 수 없었다. 반대로 코민테른은 죽었다.

       

       

       코민테른을 평가할 때, 우리는 그것이 <국제코뮤니스트당>이었다고 명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그것의 실질적 퇴행 때문에 그것을 부르주아 조직으로만 보려는 사람은 그걸 제대로 평가할 수 없고, 그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끌어낼 수도 없다. 트로츠키주의는 초기 4차 대회를 계승해야 한다고 무비판적으로 주장한다. 창립대회가 제2 인터내셔널과 단절했던 지점에서, 그 후속 대회는 퇴행했다는 점을 그들은 결코 보지 못했다. 1차 대회는 사회민주주의로부터 분리했다. 그런데 3차 대회는 그에 반대해 ‘통일전선’ 속에서 사회민주주의와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 사회민주주의가 부르주아 진영으로 결정적으로 넘어갔다는 것을 인식한 후인데도, 코민테른은 3차 대회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부활시켰다. 사민주의당과의 동맹정책은 1930년대에 트로츠키주의가 ‘입당주의’ 정책을 채택하게 했다. 입당주의란 곧 코민테른 1차 대회의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하면서, 사민주의당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레닌이 말한 것처럼 이러한 동맹 또는 항복의 정책은 스페인 내전에서 부르주아 공화 정부를 지지하고, 침머발트와 인터내셔널을 배신하고 제국주의 2차 세계대전에 참여하는 반혁명으로 트로츠키 흐름을 빠져들게 만들었다.

       

       이미 1920년대에 코민테른 내부에서 이러한 퇴행에 맞서 투쟁하려는 새로운 좌파가 만들어졌다. 그들은 특히 이탈리아, 네덜란드 그리고 독일 좌파였다. 1920년대 동안 배제된 이러한 좌익 분파들은 코민테른과 혁명적 물결을 비판적으로 재평가함으로써 죽어가는 코민테른과 ‘미래의 당’ 사이에서 연속성을 보증할 정치투쟁을 지속했다. 1930년대에 코뮤니스트 좌파의 이탈리아 분파의 잡지가 「빌랑(Bilan)」('평가')이었다는 것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인터내셔널의 원칙과 연속성을 갖고, 이들 그룹은 제2 인터내셔널과 단절하는 데에서 나타난 약점을 비판했다. 1930년대 동안의 반혁명과 2차 제국주의 전쟁의 암흑기 속에서 그들이 펼쳤던 이름 없는 노력 덕분에 오늘날 코뮤니스트 그룹이 부활해서 존재할 수 있게 됐다. 그들은 코민테른과 조직적 연속성을 지니지 않지만, 정치적 연속성은 지니고 있다. 이들 그룹이 만들어내고 방어한 입장들은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시기를 맞아 코민테른 안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답을 주고 있다.

       

      따라서 ‘코뮤니스트 좌파 분파들’이 이루어낸 비판적 재평가의 기초 위에서 코민테른은 오늘날 살아 있고, 미래의 <세계코뮤니스트당>에서 살아있게 될 것이다.

       

      오늘날 점증하는 착취와 가난에 직면해 프롤레타리아트는 다음과 같은 <침머발트 좌파>의 입장과 같은 입장을 채택해야 한다.

       

      경제 전쟁에서 부르주아지와는 어떠한 신성한 동맹도 없다!

      민족 경제를 구하기 위한 어떤 희생도 반대한다!

      계급투쟁 만세!

      경제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라!

       

      경제적 파국, 사회적 해체 그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전망에 직면해 1919년처럼 오늘날도 역사적 대안은 똑같다. 그것은 자본주의 파괴와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수립인가 아니면 인간성의 파괴인가, 사회주의인가 아니면 야만인가다.

       

      미래는 코뮤니즘의 것이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RL (IR57 2nd quarter 1989로부터 재발행)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창설 100주년을 맞은 2019년 3월 재발행

       

    • <원문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3066/1919-foundation-communist-international

       

      번역┃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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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Communist International was formed in order to provide a clear political orientation to this massive upsurge of the class struggle, to point the way to the world-wide conquest of power by the working class. At this point in history, it was a very different organisation from what it later became with the isolation, degeneration and defeat of the revolution in Russia – a simple agency for the foreign policy of a Russian state in the process of integrating itself into the global imperialist system. Revolutionaries today must therefore recognise that the history of the CI is a vital part of their own history. But we are also faced with the task of understanding the weaknesses and failures of the International in order to construct the future world party on the clearest possible programmatic and organisational princip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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