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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8/28
    [안톤 판네쿡 - 노동자평의회] 현장점거
    자유로운 영혼
  2. 2019/08/28
    [코뮤니스트 9호] 쿠바 : 국가자본주의 개혁
    자유로운 영혼

[안톤 판네쿡 - 노동자평의회] 현장점거

현장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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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의 새로운 조건으로 더 향상된 노동조건을 위한 새로운 형태의 투쟁이 출현했다그것은 바로 현장점거이다이는 대체로 연좌파업이라고 불리는데 이때 노동자들은 작업을 멈추기는 하지만 공장을 떠나지는 않는다연좌파업은 이론에 의해 발명된 것이 아니라 실천적 필요에 의해 자생적으로 발생했다이론은 단지 후에 그것의 원인과 결과를 설명해줄 수 있을 뿐이다.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에서 실업은 너무 일반화되었고 지속적이었기에 직장을 가진 일부의 특권자들과 실업 대중 간의 일종의 계급 적대로 전개될 정도가 되었다그리고 임금삭감에 대항한 정규적인 파업은 불가능해졌다왜냐하면 파업노동자에 의해 텅 빈 작업장은 작업장 밖에 있는 대중으로 즉시 채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러한 이유로 더 나쁜 노동조건 하에서 일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작업장을 점거함으로써 노동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붙박여 있는 것과 결합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일단 이러한 특수한 환경에서 현장점거가 벌어지자 연좌파업은 보다 발전된 투쟁 형태의 표현으로서 더 자세히 고찰해볼 가치가 있는 특성을 보여주었다그것은 더욱 견고한 단결의 형태를 증명했다이전의 파업 형태에서 노동 공동체는 작업장을 떠나면 해체되어버렸다즉 노동자들은 거리와 집으로 흩어져버렸고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은 느슨한 개개인으로 분리되었다하나의 몸체로서 토론하고 결정하기 위해서는 그들은 거리와 광장 같은 회의 장소에 집결해야 했다그러나 종종 경찰과 당국은 이를 방해하고 심지어는 금지하려고 애를 썼다이에 노동자들은 법률적 목적을 위한 합법적 수단을 통해 싸우려는 의식을 통해 자신이 그러한 공간을 사용할 권리를 요구했다노동조합 활동의 합법성은 대중 의견에 의해서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었다.

 

  커져가는 대자본의 권력이 국가 당국을 능가함으로써 모든 공회장과 광장마저도 자신들이 점유하려고 할 때 이러한 합법성은 인정받지 못했으며만약 노동자들이 싸우려면 그러한 공간을 점하고 그들의 권리를 주장해야 했다미국에서 모든 대규모 파업은 일반적으로 거리와 회의실을 둘러싸고 이루어진 경찰과의 계속된 투쟁을 동반했다작업장이라는 적당한 장소에 모일 수 있는 권리를 얻음으로써 연좌파업은 앞서와 같이 노동자들이 집회 장소를 두고 골치를 썩을 필요로부터 해방시켜줬다동시에 이러한 파업은 파업파괴자들이 파업노동자의 장소에 침입하기가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참으로 효율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이는 완강한 투쟁을 필요로 하였다작업장의 소유자로서의 자본가들은 파업노동자에 의한 현장점거를 그들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그리고 이러한 법률적 판단을 통해 그들은 경찰에 노동자들을 밖으로 내보낼 것을 요청했다마치 파업이 형식적 법률과 충돌하는 것처럼실제로 엄격한 법률적 관점에서 볼 때현장점거는 형식적 법률과 충돌한다그리고 사실 고용자들은 규칙적으로 자신의 투쟁 무기로 이러한 공식적 법률에 호소했고 법률은 파업노동자들을 계약 위반자라는 오명을 씌우고 고용주에게는 작업장에 새로운 노동자를 고용할 권리를 부여했다하지만 파업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러한 법률적 논리에 맞서 파업은 투쟁 형태로 지속되었고 발전해갔다.

 

  실제로 형식적 법률은 자본주의의 내적 현실을 표현해주지 않으며 단지 중간계급과 법률적 견해의 유착이라는 자본주의 외적 형식만을 표현해줄 뿐이다자본주의 실제는 평등하게 계약하는 개개인들의 세계가 아니라 투쟁하는 계급으로 이루어진 세계이다노동자의 권력이 너무 작아 공식적 법률에 대한 중간계급의 견해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계약 파괴자로서의 파업노동자들은 해고되어 다른 사람들로 대체되었다그러나 노동조합의 투쟁을 통해 그러한 장소를 획득하게 되자새롭고 진실한 법률적 착상이 나타났다예컨대 파업은 위반이나 중지가 아니라 단지 노동조건을 둘러싼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노동계약을 일시적으로 보류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법률가들은 이러한 관점을 이론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으나 사회는 이를 실천적으로 받아들였다.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현장점거가 필요하거나 노동자들이 이를 수행 할 수 있는 곳에서는 투쟁에서 하나의 방법으로 주장되었다자본가들과 법률가들은 현장점거를 소유권의 침해라고 떠들어댔다그러나 노동자에게 현장점거는 재산권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시적으로 그들의 소유권의 효과를 보류시키는 것일 뿐이었다즉 현장점거는 현장을 탈취한 것이 아니었다그것은 단지 자본가에 의한 처분권을 순간적으로 보류시킨 것일 뿐이었다싸움이 해결된 이후에는 자본가는 주인이 될 것이고 예전처럼 논의의 여지가 없는 소유자로 남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동시에현장점거는 그 자체 이상의 무엇이다즉 지평선에서 비치기 시작하는 여명처럼 희미한 미래의 발전 모습이 떠올랐다현장점거를 통해 노동자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투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점을 증명해줬다그들은 현장조직으로써 견고한 상호결속이 나타났고자연적인 통일체는 단일 개별자로 용해되지 않았다여기서 노동자들은 작업장과 자신의 친밀한 연관을 의식하게 되었다노동자에게 작업장은 이제 그들이 해고될 때까지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명령하는 그러한 사람의 건물이 아니었다노동자에게 기계가 있는 작업장은 그들이 운용하는 생산적 기구이자 단지 그들의 노동에 의해 사회가 생존할 수 있도록 하는 부분을 만들어내는 기관이었다노동자에게 작업장은 낯선 것이 아니었다즉 작업장은 작업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작업장의 법적 소유자들주주들에게보다는 노동자에게 집처럼 편안한 공간이었다공장에서 노동자는 그곳이 그들의 삶그들의 생산적 노동의 중심이자 공장을 살아있는 기관사회의 총체의 요소로 만들어주는 집합체로서의 노동 공동체의 중심이라는 의식을 키워갔다이때 현장점거를 통해 노동자가 전적으로 생산의 주인이 되어야 하며인류의 부를 소비하고 남용하며 전 지구를 황폐화시키면서 명령만 하는 자본가 같은 무가치한 외부인을 추방해야 한다는 막연한 감각이 생겨났다. 그리고 힘든 투쟁을 거치면서 그것은 필연적으로 작업장이 조직화 및 공동행동의 단위로서그리고 아마도 그 기반이자 본거지 및 힘의 중심이자 투쟁의 목표로서 일차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노동자와 작업장의 자연적인 관계와 비교할 때 자본의 명령은 인위적이고 외적인 지배로서 나타나며아직은 강력하기는 하지만허공으로 사라져버릴 그런 것일 뿐이었다반면 성장하는 노동자의 장악력은 땅에 확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이처럼 현장점거에서 작업장이 노동자의 소유가 되고작업장 모두가 조화로운 단위를 형성하며작업장을 통해 해방을 위한 투쟁이 벌어질 것이라는 의식의 성장 속에서 미래에 대한 예측의 단서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안톤 판네쿡노동자평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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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9호] 쿠바 : 국가자본주의 개혁

쿠바 국가자본주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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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쿠바 국회에 사유재산 존중토지 상속권 유지외국인 투자 인정 등이 포함된 새로운 헌법 개정안이 제출되었고 같은 해 12월 통과 되었다처음 개정안에는 공산주의가 삭제되었지만 마지막에 공산주의를 향해 전진한다는 목표가 추가되었다.

 

개헌 국민투표는 2019년 2월 24일에 실시되었으며투표 참가자 784만여 명 중 681만여 명에 해당하는 86.85%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물론 이 개헌은 쿠바 혁명이 결코 사회주의가 아니었고쿠바가 초국적 투자의 장소가 아니었기 때문에 헌법적 표현에 불과하다그동안 쿠바의 고립은 미국이 유지하는 경제 블록의 지정학적 전략으로 증폭되어 왔다.

 

쿠바는 최근 주요 고객 중 하나인 베네수엘라 정부 위기로 보건서비스 및 문맹 퇴치 활동 수출이 영향을 받고 있다. 80년대 소련 위기와 마찬가지로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도 쿠바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이에 쿠바 정부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쿠바 헌법 개정은 새로운 걸 가져오지 않는다자본 투자자 집단 모집과 국제 시장 진출을 위한 과정 또는 조치만을 조정할 뿐이다호메로 아코스타 국가평의회 서기는 기회주의자나 거짓 사회주의자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사회주의를 확립하는 원칙의 틀 안에서 전면적인 개혁에 직면해 있다"라면서 쿠바가 "사회주의국가"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며헌법 개정에 따라 앞으로 예정된 변화를 의원들에게 먼저 보여 주겠다고 발표했다그러나 그들이 "시장 법칙의 객관적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쿠바의 국가 자본주의는 민간 기업가에 대한 과세로 재정 수입을 늘릴 필요가 있다그것은 민간 기업(국가 또는 초국가적투자 상품 수요를 활성화하고 외국인 투자 유입을 증가시키기 위해 필요하다이는 상품 및 서비스 가격에 대한 보조금 삭감과 화폐 재통일 및 통화 평가 절하를 위한 배급 카드를 제거하는 경로를 설명해준다쿠바 경제에 숨겨져 있거나 묻혀있는 민간 상업 활동은 점점 더 강력하게 번창하고 있다이것은 쿠바의 일부 기회주의자들이 "더 새롭고 기능적인 유형의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라고 부르던 것이다국가는 수십 년 동안 "애물단지(white elephants)"였던 기술적으로 뒤떨어지고 국제 시장 모든 경쟁력에서 벗어난 제품으로 인해 파산한 성장가능성 없는 회사들을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이른바 "좌파"의 일부 기회주의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두고 "쿠바의 자본주의로 복귀"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그러나 사실 자본주의가 결코 쿠바를 떠난 적이 없다자본 축적은 국가에 의해 중앙 집중화되었고 그 이상도 아니었다하지만 그것은 국제무대에서 쿠바가 그렇게 많이 선전한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오늘날 쿠바 부르주아 정부는 국가자본주의를 개혁할 뿐이며경제 정책은 자본주의 세계 위기 영향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월 20달러월 10달러의 연금에 맞닥뜨린 봉급생활자들의 요구는 구체화되고머지않아 정치 투쟁으로 변할 것이다쿠바에서도 세계의 다른 나라들처럼 프롤레타리아트가 역사적 혁명 목표를 재발견하고 계급투쟁을 재개해야 한다.

 

코뮤니스트당(The Communist Party)」 12호,  국제코뮤니스트당(international communist party)

 

 

 

<참고자료>

 

쿠바카스트로체 게바라그리고 억압

 

1931-33년 임시 대통령 쎄스페데스에 쿠데타를 일으킨 바티스타는 1940년 선거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1952년 다시 쿠데타로 집권한 뒤지방 인민사회당의 지지를 받았다쿠바 경제는 급성장했으나 도시와 농촌 사이에 빈부 격차가 벌어졌다. 1958년 하바나에는 성매매 여성이 11,500명에 달했으며 부패가 극심했다.

 

멕시코에서 7월 26일 운동(M-26)이라는 게릴라를 결성한 카스트로는 1958년 11월 7일 체 게바라와 함께 하바나로 진군하여 1959년 1월 8일 수도에 입성한다. 5개월 동안 바티스타 지지자 6백여 명이 처형되었는데광장에서 로마식 공개 처형으로 이루어져 전체주의적 테러의 양상을 띠었다혁명 직후 카스트로는 뉴욕 타임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권력에 관심이 없다승리 후에 고향 마을로 가서 변호사를 하고 싶다고 했지만, 1976년까지 대통령령으로 지배했으며 정적에 대한 탄압이 지속되었고혁명 동지들을 교체했고, 1976년 소련 모델의 헌법을 제정했다.

 

노동자는 억압받는 또 다른 대상이었다. 1962년 8월 설탕 노조 지도자인 살바도르가 체포되고, 12년 동안 수감되었다교육과 예술 분야의 민주인사들에 대한 탄압도 지속되었는데, 1961년 9월 17일 131명의 신부가 국외로 추방되었다산업부 장관과 중앙은행장을 역임한 체 게바라는 쿠바에 소련 모델을 이식하려 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의 문화 혁명의 숭앙자였다. 1960년 쿠바에 노동수용소를 창설한 사람은 카스트로가 아니라 체 게바라였으며 새로운 인간의 숭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쿠바 청년을 군사화한 기술자였다.

 

여기서 우리는 쿠바 혁명의 주력부대인 게릴라와 그 지도자인 카스트로와 게바라의 신화를 벗겨볼 필요가 있다게릴라 부대의 기본적인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이며 그들이 내건 맑스주의는 그들이 스스로 맑스주의자라고 부른다고 하더라도 반()양키저항의 편리한 덮개에 불과하다이 게릴라 그룹은 결코 농민 봉기의 표현이 아니었고노동계급의 봉기는 더더욱 아니었다그것은 부르주아지의 한 분파가 다른 분파를 전복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군사적 표현이었다카스트로의 게릴라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어떤 민중봉기도 없었다피착취계급과 빈민은 권력을 쥔 새로운 주인에게 환호할 뿐 주요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바티스타 군대의 약한 저항에 대항하여 게바라는 결단력과 카리스마로 카스트로를 무색하게 할 만큼의 용맹스러운 게릴라처럼 보였다. ‘혁명 법정을 통해 이른바 민중적 정의를 실현하면서 체는 우리는 총살했고아직도 총살시키고 있으며 필요한 한 계속해서 총살할 것이다라고 말했다이는 무력에 의해 다른 분파를 제압하는 부르주아지 분파의 전형적인 방법일 뿐이다.

 

카스트로 민족주의 정권은 재빨리 자격을 갖춘 공산주의로 치장했다다른 말로 하면 카스트로 정권은 소련이 이끄는 제국주의 진영으로 나아갔다주요 군사요원과 민간인이 있고 동구 블록 국가의 비밀 활동이 있는 섬 쿠바의 스탈린주의화는 1962년 미사일 위기로 그 정점에 달했다이 과정에서 체 게바라는 사회주의 진영과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이들 국가를 방문하는데 여기서 그는 아낌없이 소련을 찬양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나라”, “사상의 자유가 지배하는 곳”, “자유의 모국이라고그는 또한 모든 사람이 열정에 차 있고 모든 사람이 근무시간을 넘어 일하는특별한’ 북한과 마오의 중국을 찬양하고 이어서 동구의 모든 나라에 대해서는 사회주의 국가의 성취가 특별하다그들의 삶의 체제발전의 체제와 자본주의 국가의 삶과 발전 체제를 비교할 수가 없다라고 추켜세웠다.

 

체 게바라에게서 소련과 그 블록은 사회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진영이었고, ‘하나여러 개의 베트남을 만들자는 슬로건은 국제주의적” 표어가 아니라 러시아 블록에 우호적인 민족주의적 슬로건일 뿐이었으며미국에 대한 증오였다. “민족해방은 인민의 군사적 동원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이념적 신비화였다노동계급이나 다른 피착취계급 어느 것도 이러한 전쟁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었다워싱턴의 비밀활동과 각종 마피아가 통제하는 부패한 바티스타 독재로부터 스탈린주의 블록으로 넘어간 쿠바는 민족해방투쟁의 비극적인 축약되었다. ‘사회주의 조국을 방어하는 국제주의 정도를 벗어난 쿠바의 길은 부르주아 방법인 테러와 국가 자본주의다시 말해 자본주의 착취의 가장 잔인하고 전체주의적인 표현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스탈린주의와 다른 변동(마오주의로부터 카스트로주의까지)의 공통적 특징 중의 하나는 대중의 뇌 속에 의식을 주입하는 지식인이 이끄는 혁명의 주체를 신화적 빈농으로 만들면서 노동계급을 불신하고 경멸하는 것이다이러한 사이비 혁명가들의 저술 속에서 누구도 계급 권력기관인 소비에트를 스스로 조직하는 노동계급에 대한 어떠한 참조도 발견할 수 없다.

 

체 게바라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대중은 주장하는 것처럼 양떼처럼 행동하는 … 같은 유형의 요소의 합이 아니다지도자들기본적으로 피델 카스트로를 주저하지 않고 따르는 것은 옳다.” 피상적으로 보면 국가에 대한 개인의 복종을 말하는 사람이 옳은 것 같다대중은 비길 데 없는 열정과 규율로 정부가 정한 과업을경제문화국방스포츠 분야에서 수행한다 … 일반적으로는 주도권은 피델로부터혁명적 지도부로부터 나온다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인민에게 설명된다. (쿠바에서의 사회주의와 인간, 1965)

 

쿠바에서 노동계급을 통제하는 주요기관 중의 하나는 놀랍게도 노동조합이다쿠바노동조합총연맹(CTC)은 이미 미국식의 노동조합이었으며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그 부패로 완전히 통합되어 있었다쿠바 지도부는 이들은 1960년에 관료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 모형에 기반을 둔 스탈린주의 노동조합으로 재빨리 전환시켰다카스트로 정권의 첫 번째 결정은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에게 규칙을 철저하게 지키게 하는 책임을 지게하고 회사에서 파업 금지를 강제하는 것이었다노동계급에 대한 이러한 공격은 미제국주의 반대와 쿠바 인민의 방어로 정당화되었다쿠바에 있는 미국회사에서 임금 삭감에 대항하는 파업 시 이득을 취하기 위해 카스트로 정권의 지도자들은 파업 노동자를 파괴자로 낙인찍었다.

 

게바라는 다른 누구보다 더 과감한 민족주의적이고 스탈린주의적인 지도자 중 하나일 뿐이지만아직도 카스트로주의라는 스탈린주의 반혁명의 열대지역 변종의 대표이기도 하다.

 

볼리바르 혁명의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노동자계급에 대한 억압오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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