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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6/15
    [코뮤니스트 10호] 칼 리프크네히트 기억하기 (1871년 8월 13일 ~ 1919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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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0/06/15
    [코뮤니스트 10호]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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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칼 리프크네히트 기억하기 (1871년 8월 13일 ~ 1919년 1월 15일)

칼 리프크네히트, 「사회주의 외교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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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칼 리프크네히트의 「사회주의 외교 정책」에 대한 소개는 「코뮤니스트」 9호에 실려 있다.

 

“칼 리프크네히트는 위대한 이론가가 아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달리 그는 정치 경제에 관한 주요 ‘논문’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리프크네히트는 원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그의 글 「사회주의 외교 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프크네히트는 1918년 4월에 루카우(Luckau) 감옥에서 이 글을 썼다.

때로는 장황하고 급하게 쓰기도 했지만,

내부와 외부 변증법, 주제와 대상, 의식과 조건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

따라서 그것은 오늘날에도 관련이 있다.

오늘날,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진압하고 지도자들을 살해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살해당한 혁명가들이 남긴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칼 리프크네히트 기억하기, 「코뮤니스트」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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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외교 정책

 

국제 사회주의는, 그 사회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특성 때문에(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이면서 국제주의이므로),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 사이의 모순을 전혀 알 수도 없고, 용인하지도 않는다. 국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의 동질성과 연속성은 다른 부가적인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것을 위한 선결 조건이다.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국제 사회주의는 아주 동일한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적, 혁명적 정신을 요구한다.

사회주의 정치의 과업은, 계급의식을 지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운동의 도움을 받아서,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것, 등등. 시민 기동대를 통하여 사태가 급변하는(peripety)(주1) 순간에 이 운동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사회 혁명의 특성을 띤다. 하지만 사회 혁명은 인류의 결정적인 부분이 무르익어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무르익어 원숙해진다는 말은 자본주의 체제가 너무 익어 썩어간다는 것,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사회 발전과 관련한 자신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혹 피상적인 도식이 상정하듯이, 사회 혁명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더 빨리 출현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사회주의 정치가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가?

[혁명을 위한] 사회의 무르익음은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경제적·기술적 측면에서조차 그러하다. 사회가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정도로 무르익었는지 아닌지는 그것의 경제적 발전 정도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 가장 넓은 의미에서 그것의 전반적인 사회적 발전에도 달려있다.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 통찰력, 의지, 그리고 적극적인 결단력이 [발전한] 정도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 대중의 정신적, 도덕적, 심리적 수준에 달렸다.

이 심리적 요소가 저 맑고 푸른 하늘에서 임의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각각의 생활 여건 전체의 결과로 생기는 것인 한, 그것의 척도는 초인적인 힘이나 초사회적인 힘에 의해 거의 결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적 재능도 어떤 한도 안에서 자기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이러한 한도 안에서 체계적인 행동을 통하여 타고난 재능을 증대시킬 능력을 포함한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 교육을 비교해보라.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러한 능력이 존재하는 한, 그들이 객관적으로 조건 지워지거나 결정될지라도, 인간이 어떤 한도 안에서 그 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다양한 인간 집단이 자신들이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조사하고 해결하고 행동할 자유가 사회 심리의 관점에서는 가상의 것으로 보이는 것처럼, 개인 심리의 관점에서는 개인의 자유의지 관념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인간의 심리적·정신적 특성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고려할 때, 인간 정신이 지닌 힘의 효과는 개인들과 집단들이 함께 일하고, 서로 대응하고, 상호 작용하면서 객관적으로 서로 뒤엉켜 있다는 것(그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자기기만―전체적인 사회 심리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물질적인 사회적 활동은 이 안에서 완전히 표현된다―이 넘쳐나는 이 대단히 복잡한 과정에서는, 누구나 그들이 스스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갖출 수 있는 모든 물리력과 추진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회 전체를 위하여 객관적으로 요구되고 결정된 삶의 과정을 실현하는 데에 자신들의 몫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가능성을 앞당기기 위하여, 그 심리적 요소를 북돋우는 일은 사회주의 정치의 명확한 임무, 즉 혁명적 과업이다. 이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사회주의 정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특히 정치적·경제적 조건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싹과 조건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조건을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변증법적으로, 그것은 사회의 무르익는 시점을 가능한 한 가깝게 끌어당기는 효과를 지닌다.

종종 자본주의에 대하여, 그것이 승리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처지가 된다고들 이야기한다. 이 “파국 이론”의 핵심이 올바른 것은 오직 그에 대한 반작용이 그것과 동일한 비율로뿐만 아니라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파울 렌쉬(Paul Lensch)에 따르면, 그러한 반작용은 자본주의 승리를 옹호하지도 그것의 떠들썩한 부산물도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작용은 우리의 임무, 다시 말해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자본주의의 전개(자본주의적 본질 안에서)와 관련한 문제에서, 사회주의 정치는 전적으로 비판적이다. 하지만 이 비판은 또한 그것이 [이 전개를] 여전히 제어하고 있는 재능을 개척하고 육성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데, 사회주의 운동은 그 재능을 사회주의 운동 발전의 잠재적 요소로써 이용할 수 있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은 단순히 그 내부 정치를 국경―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이것은 우연적이다―을 넘어서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사회 원리보다 더, 그것은 이념과 실천 양쪽 모두에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동일하다.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뿐 아니라 외부 정치도 똑같이 국제적인 사회적 모순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이익을 표현하는바, 여기서 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립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적인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모든 국가에서 일어나는 계급들 사이의 다툼은 의존적인 하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그것들이 단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사회주의 원칙을 (계급 적대가 계급투쟁―개별 국가의 내부에서 특별하게 나타나거나 국가의 국경을 넘어 전체적으로 나타난다―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지역적으로든 전반적으로든, 세부적이고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형태에 특별하게 적용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국가의 관점보다 국제적 관점이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원칙상 내부 정치보다 외부 정치가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뒤따른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는 외부 정치의 특별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국주의가 말해주는 것은, 비록 반대의 의미에서이지만,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에도 적용된다. “내적 승리와 외적 승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목표는 그 수단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범위에서] 국제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발전을 촉진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적합한 모든 재능―노동 계급의 사회주의적 재능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 위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립한다―을 통해서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하는 힘의 영향을 통해서도 발생한다. 사회주의적 변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지역들의 무르익음을 가능한 한 동시에 확보하기 위하여, 사회주의 운동이 (그와 대립하는 제국주의적 힘의 세기와 그것의 반사회주의적 위험 정도에 반발하는) 힘의 유형과 에너지를 측정하는 한에서는 말이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방식은 혁명적 계급투쟁의 다양한 형태와 방법이다.

계급투쟁 외부에 있을 수 있는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사회주의적 도구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내부 정책의 하나일 뿐이다.

1918년 4월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

 

옮긴이 ㅣ 김종원

 

<주>

Peripeteia 또는 peripety는 운명의 급변(사태의 격변)을 말하며, 문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교이다.

 

<출처> 「비타협(INTRANSIGENCE)」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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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당대 가장 탁월하고 열렬한 코뮤니스트였던 칼 리프크네히트가 암살되자, 많은 사람들이 케테 콜비츠에게 추모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 케테 콜비츠는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보고 마음을 바꿔,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Gedenkblatt fur Karl Liebknecht)」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뛰어난 혁명가를 잃은 슬픔이 노동자들에게는 커다란 분노로 다가왔지만, 평화주의자인 예술가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아래는 당시의 심정을 담은 그의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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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0월

 

  부끄럽다. 나는 아직껏 당파를 취하지 않고 있다. 아무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내가 비겁하기 때문이다. 본래 나는 혁명론자가 아니라 발전론자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예술가로 간주하고 칭송하면서 내게 그런 일들을 떠맡겨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들을 계속하기가 꺼려진다. 

  한때는 혁명론자였다. 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에는 혁명과 바리케이드를 꿈꾸었었다. 지금 내가 젊다면 틀림없이 코뮤니스트였을 텐데. 아직도 그 꿈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가 벌써 50대다. 그리고 전쟁을 겪었고 페터(1차 대전 때 전사한 둘째 아들)와 마찬가지로 수천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퍼져 있는 증오에 이제는 몸서리가 난다.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사회주의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이 지구상에 세워질 코뮤니즘 사회는 신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소심하기 짝이 없고 마음속으로도 늘 회의한다. 나는 평화주의자임을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 동요하고 있다. 어쩌다가 사람들이 페테르스부르크 거리에 전시된 내 작품을 보고서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젊은 노동자들이 만나자고 하는 것도 거절하기 일쑤다. 그들이 내가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제발 사람들이 나를 좀 조용히 내버려 두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나 같은 예술가가 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똑바로 제 갈 길을 찾아가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감동을 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리프크네히트의 정치 노선을 추종하지는 않지만, 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하고 또 그 그림을 노동자들에게 증정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1920년, 「케테 콜비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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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ethe Kollwitz German school. Portrait of Karl Liebknecht, Engra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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