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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6 : 자본주의 모순과 역사적 쇠퇴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6

 

자본주의 모순과 역사적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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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생산 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 때문에 고통받는다이것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본가계급과 생산수단에 노동력을 지불하는 노동자계급 사이의 모순이다노동자계급은 생산수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자기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상품으로 팔아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모든 인류를 풍요롭게 할 만큼의 수준에 도달했다하지만 소수의 자본가계급이 모든 이윤을 독점하여 막대한 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절대다수의 노동자계급은 어려운 처지에 내몰려 자신들이 필요한 상품을 구매할 능력이 없다그런데 전체사회를 고려하지 않고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생산되는 상품은자본주의 고유의 경쟁으로 인해 판매할 시장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과잉생산을 불러온다과잉생산은 경제 위기와 공황을 심화시키고 넓히면서 사회의 물적인적 자원을 낭비하게 만든다.

 

 노동자계급은 생산과정에서 사회적 부를 집단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생산의 사회화를 이루었지만생산과정에서 결합된 생산수단은 자본가들이 사적으로 전유하고 있다이러한 생산의 사회화는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사적 전유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노동자로부터 더욱더 많은 잉여가치를 전취하기 위한 자본의 시도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착취 관계를 나타내주며이것은 계급투쟁을 위한 기반이다따라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자신을 방어할 어떤 특권도 갖지 않는 노동자계급은 모든 특권모든 사적 소유를 폐지함으로써 자본주의 족쇄로부터 생산력을 해방시키고전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생산양식인 코뮤니스트(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계급이다.

 

 코뮤니스트 사회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자본주의가 더는 진보적인 생산양식이기를 멈춘 채 퇴행하는 사회체제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되는 쇠퇴의 시기에 진입해야 한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최고최후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시대쇠퇴하는 자본주의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의 전야라는 역사적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었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은 자본주의의 역사뿐만 아니라 노동자운동 모두에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볼셰비키 그룹스파르타쿠스 그룹브레멘 좌익 그룹 등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현시기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해체와 몰락의 시기임과 부르주아(자본주의국가기구 파괴와 노동자계급에 의한 즉각적인 권력 장악의 필요를 강조하며 전쟁과 혁명의 시대임을 천명했다.

 

 자본주의는 1914년 이후 1945년의 파괴의 시기를 거쳐, 1945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의 더 높은 생산 수준으로의 재건의 시기가 있었다. 1914년 이후의 시기는 이전 시기와는 대조적으로자본이 팽창하고 사회적 재생산이 수축했다전후 붐(1945-1970)과 같은 회복은 그러한 재구성을 수반했는데이를 가능케 한 것은 초기 대량 파괴(두 번의 세계대전불황의 10파시즘 그리고 스탈린주의), 세계체계의 재편성(마셜 플랜, IMF 세계은행그리고 신기술-주로 자동차나 가전제품과 같은 내구성 소비재)에 근거한 새로운 가치 기준의 강제 등이다이러한 재구성은 1966년 경기후퇴, 1968년 달러 위기와 브레턴 우즈 체계의 재정적 붕괴(1971-73)와 함께 동력을 다 소모해버렸다실제로 전후의 상승은 1960년대 중반에 끝났지만, 1970년대의 악성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신용 팽창 때문에 1970년대까지 지속하였다하지만 전후 붐을 이용한 역동성은 여기서 끝나게 된다자본주의 시스템은 1970년대 초반 이후에는 세계적인 규모로 역동적인 균형을 회복하려고 애썼지만만성적인 위기 상태에 들어갔다.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에서 나타나는 이윤율 하락 경향과 잉여가치 실현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장포화의 한계 법칙이 결합되어 자본주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만성화시킨다. 1970년대 초반 이후의 만성적인 위기 상태는 해소되지 못했고 이 위기의 근원인 자본의 과잉축적 모순이 1980년대-2007년까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기 동안 누적가중되면서 마침내 오늘날 세계공황으로 폭발하였다또한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과정은 국지적지역적 갈등강대국들에 의한 경찰 행위기근과 생태적 파괴 등으로 인류의 생존에 파멸적 위협과 재앙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살아있는 한인류는 그 생존을 위협당하면서 이 죽어가는 체제가 부과하는 파국의 증대를 감수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다이것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파국 속에서 전쟁이냐혁명이냐의 선택이 오로지 노동자계급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코뮤니즘을 실현할 물질적 조건은 이미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았다코뮤니즘은 오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혁명의 결과로서 탄생할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역사적 쇠퇴의 새로운 국면이 코뮤니스트 혁명의 물질적 조건을 충족시킨 것을 넘어혁명의 주체를 공격하고 새로운 사회의 기반을 파괴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인식하고 있다이렇게 역사는 코뮤니즘을 절실하게 요구하지만단지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코뮤니스트 혁명이 모든 순간에 구체적인 가능성을 갖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오랜 기간의 반혁명과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 속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수차례 패배했고계급의식과 조직화 모든 면에서 부르주아계급에 대적하기에는 너무 약해져 버렸다수많은 패배와 후퇴파괴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제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부활이냐더 깊은 침체냐의 기로에 서 있다쇠퇴하는 자본주의 새로운 국면은 노동자 투쟁을 고조시키기도 하지만노동자계급의 정체성과 계급의식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와 파국의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스스로 무장 없이계급의식과 전투력을 발전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조급한 대응으로 준비되지 않은 적대 계급과의 격전을 벌인다면또다시 처참한 패배와 나아가 계급 분쇄의 기나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이것은 잃어버린 시간의 압박 속에서 투쟁과 조직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오히려 계급투쟁의 최종목표인 코뮤니즘을 전망하지 않고서는 운동을 한 걸음도 발전시킬 수 없으며새로운 가능성 또한 코뮤니스트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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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민테른과 러시아 ‘좌파’ 분파

코민테른 창설 100주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코민테른과 러시아 ‘좌파’ 분파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1919년 3월에 창설되었다그 당시 아주 극소수의 코뮤니스트당이 이미 존재했다(러시아네덜란드독일폴란드그리고 몇몇 주목받지 않던 다른 나라에서의 코뮤니스트당). 하지만 그 당시 최초의 (그리고 그렇게 선언한) ‘좌파’ 분파가 주요한 당 내부에서즉 러시아 코뮤니스트당(1918년 3월 RSDLP 제 7차 대회에서 코뮤니스트라는 이름을 채택했음내부에서 출현했다. 1918년 초 이 경향은 코뮤니스트(Kommunist)라는 신문을 중심으로 결집했고 오신스키(Ossinsky), 부하린(Bukharin), 라덱(Radek) 및 스미르노프(Smirnov)가 주도했다이 분파가 당의 공식적인 방향과는 달리 가진 주요한 불일치점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Bresk-Litovsk)에서의 협상을 두고서였다. ‘좌파코뮤니스트는 그 협상에 반대하고 다른 나라로 혁명을 무력적으로 수출하는 혁명전쟁을 권고했다그러나 동시에이 분파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권위적인 방법을 비판했고 노동자 대중이 광범위하게 권력에 참여할 것을 주장했다이러한 비판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행한 비판과 유사하다(그의 팸플릿을 참조 바람).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평화협정의 승인은 이 분파의 종말을 선언했다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하린은 당의 우익의 대표자가 되었지만오신스키와 같은 이 분파의 몇몇 인자들은 그 뒤에 출현한 좌파 분파에 가담하게 된다그래서 서유럽에서는 앞으로 코뮤니스트당을 출현시키게 될사회당 내부의 몇몇 분파들이 아직 형성되기 전에 (보르디가가 주도한 기권분파는 1918년 12월에 가서 형성된다이미 러시아혁명가들은 자국의 코뮤니스트당에 영향을 미치는 일탈에 대항해 (분명히 매우 혼란스러운 방식이긴 하지만투쟁을 개시했다여기서 (이 현상을 지금 여기서 분석할 필요는 없지만주목할 만한 점은 20세기 초 수 년 동안 러시아혁명가들이 다음과 같이 일련의 모든 주요한 문제에 있어서 선봉에 있었다는 것이다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LP)의 제 2차 대회에서 볼셰비키 분파의 형성, 1914년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한 선명한 입장침머발트에서 좌파를 주도한 것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창립 필요성의 인식, 1918년 3월 최초의 코뮤니스트당의 건설그리고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제1차 대회에 대한 자극과 정치적 방향설정 등에서.

 

 

  그리고 이러한 조숙함은 코뮤니스트당 내부에서의 분파의 형성에서도 발견된다사실상권력을 잡게 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코뮤니스트당으로서 그것의 특별한 역할로 인해서러시아당은 (명백히전 세계적인 혁명 물결의 패배와 더불어당이 부패하면서 주요 인자에 대한 압력을즉 당의 국가로의 융합을 겪는 최초의 당이기도 했다그렇게 프롤레타리아당의 이러한 퇴행 과정에 직면해서 비록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그 어느 곳보다 훨씬 더 일찍 저항의 형식을 시작했다.

 

 

  그때 이후 러시아당에서 상당수의 다른 좌파” 경향이 출현했다.

 

 

  - 1919년 오신스키와 사프로노프(Sapronov)를 중심으로 형성된 민주중앙집중주의그룹은 산업에서 개인적 권위에 대항해 싸웠고 국가기구의 부문화와 관료주의적 억압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서 집합적 또는 우의적인 원칙을 옹호했다.(우의의 원칙과 개인적 권위에 관한 테제).

 

 

  - 또한 1919년에 많은 수의 민주중앙집중주의그룹 구성원이 군사적 반대파에 참여했는데이 파는 적군(Red Army)을 전통적인 부르주아 군대의 범주에 따라 변형시키려는 경향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 1919년 3월에 잠시 구성되었었다.

 

 

  내전 동안 당 정책에 관한 비판은 새로운 체제에 대한 백군(White Armies)의 위협 때문에 그 빈도가 더 낮게 표면화되었지만내전이 백군에 대한 적군의 승리로 끝나자마자 그러한 비판의 강도는 배가되었다.

 

 

  - 1921년 초10회 전당대회와 노동조합문제를 놓고 벌인 논쟁을 계기로, ‘노동자 반대파가 형성되었고철강노동자인 쉴리아프니코프(Shliapnikov)와 메드베데프(Medvedev), 그리고 특히강령을 작성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Kollontai)가 주도했다혁명적 생디칼리스트처럼 이 반대파는 국가의 관료제 대신에 노동조합에 경제의 관리를 맡기기를 원했다(7). 바로 이 전당대회(크론슈타트봉기 동안에 개최된)에서 채택된 결정으로 분파가 금지된 이후 노동자 반대파는 해체되고 콜론타이는 나중에 스탈린(Stalin)의 충실한 추종자가 된다.

 

 

  - 1921년 가을에 노동자의 진리그룹이 결성되었는데주요 구성원은 지식인 그리고 주요 조직가인 보그다노프(Bogdanov)처럼 프롤레타리아문화(Proletkult)’의 추종자들이었다다른 반대파 경향과 함께 이 그룹은 당과 국가의 관료화를 비난했지만동시에 반()-멘셰비키적 입장을 취했는데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조건이 러시아에서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점 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근대 자본주의의 기초 위에 만들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 점(이러한 입장은 나중에 평의회주의 경향의 입장이 된다)에서 그러했다.

 

 

  - 1922~23년에 노동자그룹이 결성되었는데주도자는 우랄지방의 노동자 미아스니코프(Miasnikov)였다그는 10차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 왕당파에서 아나키스트까지 언론의 자유를 요구함으로써 1921년 볼셰비키당 안에서 두각을 드러냈었다이 문제에 관해 논쟁하려던 레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아스니코프는 요구의 철회를 거부했고 결국 1922년초 당에서 축출되었다그는 노동자계급 출신의 다른 투쟁가들과 함께 러시아 코뮤니스트당(RCP; 볼세비키)의 노동자그룹을 창설했고 러시아 코뮤니스트당(RCP)의 12차 대회에서 그룹의 선언문이 배포되었다이 그룹은 당의 노동자 사이에서 불법 활동을 시작했고, 1923년 여름의 파업 물결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 같다당시 이 그룹은 대대적인 시위를 요구했고 일차적으로 방어적인 계급 운동의 정치화를 시도했다이 시위에서 그룹의 활동으로 인해 게페우(GPU, 국가정치보안부)는 위협이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미아스니코프를 포함한 그룹의 주도자들은 수감되었다하지만 그룹의 활동은 (망명 중 뿐만 아니라러시아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192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다이때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를 탈출하는데 성공해서 파리로 망명했고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의 입장에 가까운 입장을 옹호하는 코뮤니스트노동자(L´Ouvrière Communiste)의 간행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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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미아스니코프(사진 중앙), 「노동자그룹」은 가장 유명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종종 “미아스니코프 그룹”으로 불린다.

 

  볼셰비키당의 퇴행에 맞서 투쟁을 벌인 모든 경향 중에서 확실히 노동자그룹(Workers´ Group:WG)이 가장 정치적으로 명확했다그것은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에 매우 가까웠고(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은 이 그룹의 문건을 출판하고 그들과 접촉을 유지했다.) 특히당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혁명의 국제적인 전망에 기반하고 있었다이점에서 그들은 (당과 노동자계급 내부에서민주주의의 문제에 그리고 경제의 관리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었던 다른 그룹의 경우와는 상반되었다그들은 계속해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CI)의 첫 4번의 대회를 참조점으로 삼는 트로츠키주의 경향과는 달리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제3차 및 4차 대회의 통일전선(United Front) 정책을 거부했다하지만 트로츠키주의 경향의 좌익과 노동자그룹(WG)의 인자 사이에 (특히 망명 중에토론이 있었다

 

 

 

  노동자그룹(WG)은 일관되게 하나의 분파처럼 활동했던볼셰비키당 내부에서 출현한 아마도 유일한 경향이었을 것이다그러나 스탈린이 혁명가에 대해 시작한 (그리고 차르의 탄압보다 훨씬 더했던혹독한 탄압은 이들의 경로를 따라 발전할 가능성을 없애버렸다2차 세계대전 이후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로 돌아갈 것을 결정했다예상대로 그는 즉시 실종되었고코뮤니스트좌파의 미약한 역량은 가장 용감한 투사를 잃고 말았다.

 

정리 ㅣ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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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칼 리프크네히트 기억하기 (1871년 8월 13일 ~ 1919년 1월 15일)

칼 리프크네히트, 사회주의 외교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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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칼 리프크네히트의 사회주의 외교 정책에 대한 소개는 코뮤니스트」 9호에 실려 있다.

 

칼 리프크네히트는 위대한 이론가가 아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달리 그는 정치 경제에 관한 주요 논문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리프크네히트는 원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그의 글 사회주의 외교 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프크네히트는 1918년 4월에 루카우(Luckau) 감옥에서 이 글을 썼다.

때로는 장황하고 급하게 쓰기도 했지만,

내부와 외부 변증법주제와 대상의식과 조건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

따라서 그것은 오늘날에도 관련이 있다.

오늘날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진압하고 지도자들을 살해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살해당한 혁명가들이 남긴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칼 리프크네히트 기억하기코뮤니스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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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외교 정책

 

국제 사회주의는그 사회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특성 때문에(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이면서 국제주의이므로),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 사이의 모순을 전혀 알 수도 없고용인하지도 않는다국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의 동질성과 연속성은 다른 부가적인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것을 위한 선결 조건이다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국제 사회주의는 아주 동일한 사회주의적국제주의적혁명적 정신을 요구한다.

사회주의 정치의 과업은계급의식을 지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다음과 같다프롤레타리아 계급 운동의 도움을 받아서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것등등시민 기동대를 통하여 사태가 급변하는(peripety)(1) 순간에 이 운동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사회 혁명의 특성을 띤다하지만 사회 혁명은 인류의 결정적인 부분이 무르익어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때에만 가능하다그런데 이 무르익어 원숙해진다는 말은 자본주의 체제가 너무 익어 썩어간다는 것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사회 발전과 관련한 자신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혹 피상적인 도식이 상정하듯이사회 혁명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더 빨리 출현하도록 만들기 위하여사회주의 정치가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가?

[혁명을 위한사회의 무르익음은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경제적·기술적 측면에서조차 그러하다사회가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정도로 무르익었는지 아닌지는 그것의 경제적 발전 정도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가장 넓은 의미에서 그것의 전반적인 사회적 발전에도 달려있다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통찰력의지그리고 적극적인 결단력이 [발전한정도에 달려있다다시 말해서 노동 대중의 정신적도덕적심리적 수준에 달렸다.

이 심리적 요소가 저 맑고 푸른 하늘에서 임의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각각의 생활 여건 전체의 결과로 생기는 것인 한그것의 척도는 초인적인 힘이나 초사회적인 힘에 의해 거의 결정되지 않는다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적 재능도 어떤 한도 안에서 자기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즉 이러한 한도 안에서 체계적인 행동을 통하여 타고난 재능을 증대시킬 능력을 포함한다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교육을 비교해보라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러한 능력이 존재하는 한그들이 객관적으로 조건 지워지거나 결정될지라도인간이 어떤 한도 안에서 그 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다양한 인간 집단이 자신들이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조사하고 해결하고 행동할 자유가 사회 심리의 관점에서는 가상의 것으로 보이는 것처럼개인 심리의 관점에서는 개인의 자유의지 관념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인간의 심리적·정신적 특성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고려할 때인간 정신이 지닌 힘의 효과는 개인들과 집단들이 함께 일하고서로 대응하고상호 작용하면서 객관적으로 서로 뒤엉켜 있다는 것(그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자기기만전체적인 사회 심리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물질적인 사회적 활동은 이 안에서 완전히 표현된다이 넘쳐나는 이 대단히 복잡한 과정에서는누구나 그들이 스스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갖출 수 있는 모든 물리력과 추진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회 전체를 위하여 객관적으로 요구되고 결정된 삶의 과정을 실현하는 데에 자신들의 몫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가능성을 앞당기기 위하여그 심리적 요소를 북돋우는 일은 사회주의 정치의 명확한 임무즉 혁명적 과업이다이 과업을 수행함으로써사회주의 정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특히 정치적·경제적 조건에서사회주의 사회의 싹과 조건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조건을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그러므로 변증법적으로그것은 사회의 무르익는 시점을 가능한 한 가깝게 끌어당기는 효과를 지닌다.

종종 자본주의에 대하여그것이 승리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처지가 된다고들 이야기한다이 파국 이론의 핵심이 올바른 것은 오직 그에 대한 반작용이 그것과 동일한 비율로뿐만 아니라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파울 렌쉬(Paul Lensch)에 따르면그러한 반작용은 자본주의 승리를 옹호하지도 그것의 떠들썩한 부산물도 옹호하지 않는다오히려 반작용은 우리의 임무다시 말해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자본주의의 전개(자본주의적 본질 안에서)와 관련한 문제에서사회주의 정치는 전적으로 비판적이다하지만 이 비판은 또한 그것이 [이 전개를여전히 제어하고 있는 재능을 개척하고 육성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데사회주의 운동은 그 재능을 사회주의 운동 발전의 잠재적 요소로써 이용할 수 있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은 단순히 그 내부 정치를 국경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이것은 우연적이다을 넘어서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그 어떤 사회 원리보다 더그것은 이념과 실천 양쪽 모두에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동일하다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뿐 아니라 외부 정치도 똑같이 국제적인 사회적 모순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사회주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이익을 표현하는바여기서 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립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국제적인 계급투쟁의 맥락에서모든 국가에서 일어나는 계급들 사이의 다툼은 의존적인 하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이는 그것들이 단지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사회주의 원칙을 (계급 적대가 계급투쟁개별 국가의 내부에서 특별하게 나타나거나 국가의 국경을 넘어 전체적으로 나타난다의 구체적인 조건에서지역적으로든 전반적으로든세부적이고 총체적으로 나타나는구체적인 형태에 특별하게 적용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국가의 관점보다 국제적 관점이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원칙상 내부 정치보다 외부 정치가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뒤따른다따라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는 외부 정치의 특별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그러므로 제국주의가 말해주는 것은비록 반대의 의미에서이지만필연적으로 사회주의에도 적용된다. “내적 승리와 외적 승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목표는 그 수단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려고 하는데그것은 [범위에서국제적이어야 한다이러한 발전을 촉진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적합한 모든 재능노동 계급의 사회주의적 재능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 위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립한다을 통해서 발생한다하지만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하는 힘의 영향을 통해서도 발생한다사회주의적 변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지역들의 무르익음을 가능한 한 동시에 확보하기 위하여사회주의 운동이 (그와 대립하는 제국주의적 힘의 세기와 그것의 반사회주의적 위험 정도에 반발하는힘의 유형과 에너지를 측정하는 한에서는 말이다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방식은 혁명적 계급투쟁의 다양한 형태와 방법이다.

계급투쟁 외부에 있을 수 있는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사회주의적 도구가 존재하는데그것은 내부 정책의 하나일 뿐이다.

1918년 4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

 

옮긴이 ㅣ 김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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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peteia 또는 peripety는 운명의 급변(사태의 격변)을 말하며문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교이다.

 

<출처비타협(INTRANSIGENCE)」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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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당대 가장 탁월하고 열렬한 코뮤니스트였던 칼 리프크네히트가 암살되자많은 사람들이 케테 콜비츠에게 추모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케테 콜비츠는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보고 마음을 바꿔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Gedenkblatt fur Karl Liebknecht)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뛰어난 혁명가를 잃은 슬픔이 노동자들에게는 커다란 분노로 다가왔지만평화주의자인 예술가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아래는 당시의 심정을 담은 그의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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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0

 

  부끄럽다나는 아직껏 당파를 취하지 않고 있다아무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그 이유는 내가 비겁하기 때문이다본래 나는 혁명론자가 아니라 발전론자다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예술가로 간주하고 칭송하면서 내게 그런 일들을 떠맡겨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들을 계속하기가 꺼려진다

  한때는 혁명론자였다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에는 혁명과 바리케이드를 꿈꾸었었다지금 내가 젊다면 틀림없이 코뮤니스트였을 텐데아직도 그 꿈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가 벌써 50대다그리고 전쟁을 겪었고 페터(1차 대전 때 전사한 둘째 아들)와 마찬가지로 수천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세상에 퍼져 있는 증오에 이제는 몸서리가 난다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사회주의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거짓말부패왜곡 즉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이 지구상에 세워질 코뮤니즘 사회는 신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그러나 내 입장은 소심하기 짝이 없고 마음속으로도 늘 회의한다나는 평화주의자임을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 동요하고 있다어쩌다가 사람들이 페테르스부르크 거리에 전시된 내 작품을 보고서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젊은 노동자들이 만나자고 하는 것도 거절하기 일쑤다그들이 내가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제발 사람들이 나를 좀 조용히 내버려 두었으면 한다사람들은 나 같은 예술가가 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똑바로 제 갈 길을 찾아가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감동을 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그러므로 나는 리프크네히트의 정치 노선을 추종하지는 않지만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하고 또 그 그림을 노동자들에게 증정할 권리가 있다그렇지 않은가?    

 (1920케테 콜비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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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ethe Kollwitz German school. Portrait of Karl Liebknecht, Engra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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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애폴리스에서의 경찰 만행과 계급투쟁

미니애폴리스에서의 경찰 만행과 계급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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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5년 와츠, 1992년 LA, 2014년 퍼거슨로드니 킹마이클 브라운샌드라 블랜드타밀 라이스.

 

미니애폴리스에서의 사건은 역사적체계적 문제에 또 하나의 추가 사항이다흑인 프롤레타리아트는 백인보다 2배의 실업률(1950년대 이후 이 수치가 유지되고 있다)로 고통받는 데 더해불공평하게 경찰 폭력의 대상이 되었고그로 인한 사망자 수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그러나 계급은 다시 한번이 엄혹한 시기에도 투쟁성을 보여준다미국의 흑인 노동자들은 연대하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거리로 나와 국가 탄압에 맞서 저항했다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2020년과 마찬가지로 1965년에도경찰의 살인과살인을 유발한 왜곡된 사회적 질서에 대항한 계급의 저항이 있었다투쟁은 계속된다.

 

2. 미국에서 흑인 노동계급은 경찰 만행에 불공평하게 영향을 받지만그들의 억압은 궁극적으로 계급 지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는 매년 경찰에 잔인하게 살해되는 수백 명의 흑인 중 한 명일뿐이다비록 이러한 제도적 폭력 행위들은 인종주의적 동기에서 비롯되지만경찰력이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방어하는 국가의 도구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노동계급 내의 다른 하부집단들 안에서 인종적 역동성과 각 집단이 직면한 고유의 투쟁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자본가계급에게 착취당하는 노동자로서 공유하는 이해관계를 인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인종을 넘어 모든 노동자들은 미니애폴리스와 미국 전역의 여러 도시에서 흑인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저항해야 한다모든 인종의 노동자들은 해방을 위한 자신의 투쟁에서 계급의 전선을 따라 조직해야 한다이는 노동계급의 한 부분에 대한 공격이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3. “이것이 자본가 계급이 그 권력을 유지하는 비밀이다” - 칼 맑스, 1870

 

노동계급 내의 인종주의적국수주의적 사상들에 대해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자본가 계급이 그 권력을 유지하는 비밀이다.” 사실, 1870년 영국또는 2020년 미국의 사업주들에게 인종주의는 근본적으로 분할지배 전략이다자본가들은 그들의 반동적인 선동가들이 백인 노동자들의 귀를 동료 노동자들을 지배하는 사업주와 정부와 동일시하라고 말하는 국수주의적 사상으로 가득 채우며 즐거워한다. “마지막 고용첫 번째 해고라는 주제 아래흑인 노동계급은 극단적인 불안정으로 내몰려왔다그동안 백인 노동자들은 사업주들의 함정에 속아왔다그들 계급의 일부가 극단적으로 공격받는 상황에서그들은 이제 자본가들이 제안할 수 있는 삭감된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일자리를 찾는다.

 

4. 크든 작든사업은 사업이다.

 

지난 세기소부르주아지는 공동체 의식을 자극하는 부부 경영”(영세 자영업개념을 이용해왔다이것은 특히 경제 위기 시기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었다소기업은 언제나 착취의 측면에서 대기업과 거리를 두려고 시도하는 동시에 부르주아적 이상을 열망해왔다소수민 소유의 사업체들은 특히 미국에 와 새 출발을 하는 근면 성실한 이민자들로 묘사되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상을 대표한다이 성공적인 신데렐라”(자수성가이야기는 그들의 노동자 착취를 정당화하는 무기다미니애폴리스 시위 동안의 소상공인들이 보인 폭력적인 반응은 소부르주아지들이 항상 자신의 계급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배신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 준다소수민들이 소유한 사업을 지지하는 “POC 연대를 빙자해 시위하면서 경찰을 비판하기만 하는 것은 자본주의 착취의 핵심을 흐리게 만드는 계급 부역자들의 시도이다그 대신 노동자들은 계급을 중심으로 조직해야 한다.

 

5. 자본가계급과 국가에 저항하는 과거 투쟁에서노동자들은 더 큰 운동과 연대하는 파업을 벌였다.

 

미니애폴리스의 버스 기사들은 체포된 시위대를 이송하는 경찰을 돕기를 거부했다도시 전역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력 제공을 거부함으로써 시위대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조치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기 시작했다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우리는 미니애폴리스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노동의 거부를 촉진하고시위대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려는 국가의 모든 책동에 저항해야 한다아마존(Amazon)과 인스타카트(Instacart)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 필수업무 종사 노동자들은 시위대와 연대하는 파업을 요구함으로써 그들의 힘을 더욱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심각한 위기의 시기에 모든 산업과 부문에서의 조직화는 실현가능한 범위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노동계급이 갖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6. 경찰의 만행은 오직 경찰의 폐지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경찰이 파렴치한 살인을 저질렀을 때이러한 살인을 멈추기 위한 다양한 개혁이 제안되곤 한다바디캠이 되었든추가적인 훈련또는 공동체 감시가 되었든그 목표는 경찰을 보호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여기는 시민들을 위협하고 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이러한 접근법의 문제는 경찰력은 자본을 대신하여 위협하고 살해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경찰이 더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을 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상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자본주의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뿐이다.

 

7. 도시 반란은 세계혁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계급의 몇몇 부분들이 맞서 싸우는 것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 동안질서가 회복되고 억압 구조가 재건됨에 따라 몇 주 후에는 점점 이 시위가 잠잠해져 갈 것이다자본가와 그들 용병들의 권력에 진정으로 도전하고 그것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세계혁명당이 필요하다노동계급 손에 있는 그러한 당은 인종주의 국가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억압된 분노를 노동자 권력과 코뮤니즘의 건설로 이끄는 도구가 될 것이다.

 

 

비타협 국제주의자 노동자 그룹 계급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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