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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6 : 자본주의 모순과 역사적 쇠퇴

코뮤니스트 정치원칙 소개 6

 

자본주의 모순과 역사적 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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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생산 관계와 생산력 사이의 모순 때문에 고통받는다. 이것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자본가계급과 생산수단에 노동력을 지불하는 노동자계급 사이의 모순이다. 노동자계급은 생산수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상품으로 팔아 그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할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모든 인류를 풍요롭게 할 만큼의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소수의 자본가계급이 모든 이윤을 독점하여 막대한 부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절대다수의 노동자계급은 어려운 처지에 내몰려 자신들이 필요한 상품을 구매할 능력이 없다. 그런데 전체사회를 고려하지 않고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생산되는 상품은, 자본주의 고유의 경쟁으로 인해 판매할 시장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과잉생산을 불러온다. 과잉생산은 경제 위기와 공황을 심화시키고 넓히면서 사회의 물적, 인적 자원을 낭비하게 만든다.

 

 노동자계급은 생산과정에서 사회적 부를 집단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생산의 사회화를 이루었지만, 생산과정에서 결합된 생산수단은 자본가들이 사적으로 전유하고 있다. 이러한 생산의 사회화는 생산력의 발전과 함께 사적 전유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노동자로부터 더욱더 많은 잉여가치를 전취하기 위한 자본의 시도는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착취 관계를 나타내주며, 이것은 계급투쟁을 위한 기반이다. 따라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자신을 방어할 어떤 특권도 갖지 않는 노동자계급은 모든 특권, 모든 사적 소유를 폐지함으로써 자본주의 족쇄로부터 생산력을 해방시키고, 전체 인류를 위한 새로운 생산양식인 코뮤니스트(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유일한 사회계급이다.

 

 코뮤니스트 사회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더는 진보적인 생산양식이기를 멈춘 채 퇴행하는 사회체제, 생산력 발전의 족쇄가 되는 쇠퇴의 시기에 진입해야 한다.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최고, 최후 단계로서의 제국주의 시대, 쇠퇴하는 자본주의, 프롤레타리아 사회혁명의 전야라는 역사적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었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의 발발은 자본주의의 역사뿐만 아니라 노동자운동 모두에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다. 볼셰비키 그룹, 스파르타쿠스 그룹, 브레멘 좌익 그룹 등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현시기가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해체와 몰락의 시기임과 부르주아(자본주의) 국가기구 파괴와 노동자계급에 의한 즉각적인 권력 장악의 필요”를 강조하며 전쟁과 혁명의 시대임을 천명했다.

 

 자본주의는 1914년 이후 1945년의 파괴의 시기를 거쳐, 1945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의 더 높은 생산 수준으로의 재건의 시기가 있었다. 1914년 이후의 시기는 이전 시기와는 대조적으로, 자본이 팽창하고 사회적 재생산이 수축했다. 전후 붐(1945-1970)과 같은 회복은 그러한 재구성을 수반했는데,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초기 대량 파괴(두 번의 세계대전, 불황의 10년, 파시즘 그리고 스탈린주의), 세계체계의 재편성(마셜 플랜, IMF 세계은행, 그리고 신기술-주로 자동차나 가전제품과 같은 내구성 소비재)에 근거한 새로운 ‘가치 기준’의 강제 등이다. 이러한 재구성은 1966년 경기후퇴, 1968년 달러 위기와 브레턴 우즈 체계의 재정적 붕괴(1971-73)와 함께 동력을 다 소모해버렸다. 실제로 전후의 상승은 1960년대 중반에 끝났지만, 1970년대의 악성 인플레이션을 유발한 신용 팽창 때문에 1970년대까지 지속하였다. 하지만 전후 붐을 이용한 역동성은 여기서 끝나게 된다. 자본주의 시스템은 1970년대 초반 이후에는 세계적인 규모로 역동적인 균형을 회복하려고 애썼지만, 만성적인 위기 상태에 들어갔다.

 

 자본주의 쇠퇴기에는 잉여가치의 생산과정에서 나타나는 이윤율 하락 경향과 잉여가치 실현과정에서 나타나는 시장포화의 한계 법칙이 결합되어 자본주의 위기를 심화시키고 만성화시킨다. 1970년대 초반 이후의 만성적인 위기 상태는 해소되지 못했고 이 위기의 근원인 자본의 과잉축적 모순이 1980년대-2007년까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기 동안 누적, 가중되면서 마침내 오늘날 세계공황으로 폭발하였다. 또한 자본주의 쇠퇴의 새로운 과정은 국지적, 지역적 갈등, 강대국들에 의한 경찰 행위, 기근과 생태적 파괴 등으로 인류의 생존에 파멸적 위협과 재앙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살아있는 한, 인류는 그 생존을 위협당하면서 이 죽어가는 체제가 부과하는 파국의 증대를 감수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있다. 이것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파국 속에서 전쟁이냐? 혁명이냐? 의 선택이 오로지 노동자계급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코뮤니즘을 실현할 물질적 조건은 이미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았다. 코뮤니즘은 오직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전체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혁명의 결과로서 탄생할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역사적 쇠퇴의 새로운 국면이 코뮤니스트 혁명의 물질적 조건을 충족시킨 것을 넘어, 혁명의 주체를 공격하고 새로운 사회의 기반을 파괴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역사는 코뮤니즘을 절실하게 요구하지만, 단지 자본주의 쇠퇴의 시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코뮤니스트 혁명이 모든 순간에 구체적인 가능성을 갖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기간의 반혁명과 사회주의에 대한 왜곡 속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은 수차례 패배했고, 계급의식과 조직화 모든 면에서 부르주아계급에 대적하기에는 너무 약해져 버렸다. 수많은 패배와 후퇴, 파괴의 과정을 겪으면서 이제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부활이냐? 더 깊은 침체냐? 의 기로에 서 있다. 쇠퇴하는 자본주의 새로운 국면은 노동자 투쟁을 고조시키기도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정체성과 계급의식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와 파국의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스스로 무장 없이, 계급의식과 전투력을 발전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조급한 대응으로 준비되지 않은 적대 계급과의 격전을 벌인다면, 또다시 처참한 패배와 나아가 계급 분쇄의 기나긴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잃어버린 시간의 압박 속에서 투쟁과 조직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계급투쟁의 최종목표인 ‘코뮤니즘’을 전망하지 않고서는 운동을 한 걸음도 발전시킬 수 없으며, 새로운 가능성 또한 코뮤니스트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주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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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코민테른과 러시아 ‘좌파’ 분파

코민테른 창설 100주년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과 코뮤니스트좌파 Ⅲ

 

「코민테른과 러시아 ‘좌파’ 분파」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1919년 3월에 창설되었다. 그 당시 아주 극소수의 코뮤니스트당이 이미 존재했다(러시아, 네덜란드, 독일, 폴란드, 그리고 몇몇 주목받지 않던 다른 나라에서의 코뮤니스트당). 하지만 그 당시 최초의 (그리고 그렇게 선언한) ‘좌파’ 분파가 주요한 당 내부에서, 즉 러시아 코뮤니스트당(1918년 3월 RSDLP 제 7차 대회에서 코뮤니스트라는 이름을 채택했음) 내부에서 출현했다. 1918년 초 이 경향은 코뮤니스트(Kommunist)라는 신문을 중심으로 결집했고 오신스키(Ossinsky), 부하린(Bukharin), 라덱(Radek) 및 스미르노프(Smirnov)가 주도했다. 이 분파가 당의 공식적인 방향과는 달리 가진 주요한 불일치점은 브레스트-리토프스크(Bresk-Litovsk)에서의 협상을 두고서였다. ‘좌파코뮤니스트’는 그 협상에 반대하고 다른 나라로 혁명을 무력적으로 “수출하는 혁명전쟁”을 권고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분파는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권위적인 방법을 비판했고 노동자 대중이 광범위하게 권력에 참여할 것을 주장했다. 이러한 비판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행한 비판과 유사하다(그의 팸플릿을 참조 바람).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평화협정의 승인은 이 분파의 종말을 선언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부하린은 당의 우익의 대표자가 되었지만, 오신스키와 같은 이 분파의 몇몇 인자들은 그 뒤에 출현한 좌파 분파에 가담하게 된다. 그래서 서유럽에서는 앞으로 코뮤니스트당을 출현시키게 될, 사회당 내부의 몇몇 분파들이 아직 형성되기 전에 (보르디가가 주도한 기권분파는 1918년 12월에 가서 형성된다) 이미 러시아혁명가들은 자국의 코뮤니스트당에 영향을 미치는 일탈에 대항해 (분명히 매우 혼란스러운 방식이긴 하지만) 투쟁을 개시했다. 여기서 (이 현상을 지금 여기서 분석할 필요는 없지만) 주목할 만한 점은 20세기 초 수 년 동안 러시아혁명가들이 다음과 같이 일련의 모든 주요한 문제에 있어서 선봉에 있었다는 것이다. 즉,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DLP)의 제 2차 대회에서 볼셰비키 분파의 형성, 1914년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한 선명한 입장, 침머발트에서 좌파를 주도한 것,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창립 필요성의 인식, 1918년 3월 최초의 코뮤니스트당의 건설, 그리고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 제1차 대회에 대한 자극과 정치적 방향설정 등에서.

 

 

  그리고 이러한 “조숙함”은 코뮤니스트당 내부에서의 분파의 형성에서도 발견된다. 사실상, 권력을 잡게 된 최초의 그리고 (유일한) 코뮤니스트당으로서 그것의 특별한 역할로 인해서, 러시아당은 (명백히, 전 세계적인 혁명 물결의 패배와 더불어) 당이 부패하면서 주요 인자에 대한 압력을, 즉 당의 국가로의 융합을 겪는 최초의 당이기도 했다. 그렇게 프롤레타리아당의 이러한 퇴행 과정에 직면해서 비록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그 어느 곳보다 훨씬 더 일찍 저항의 형식을 시작했다.

 

 

  그때 이후 러시아당에서 상당수의 다른 “좌파” 경향이 출현했다.

 

 

  - 1919년 오신스키와 사프로노프(Sapronov)를 중심으로 형성된 ‘민주중앙집중주의’그룹은 산업에서 ‘개인적 권위’에 대항해 싸웠고 “국가기구의 부문화와 관료주의적 억압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서 집합적 또는 우의적인 원칙을 옹호했다.(우의의 원칙과 개인적 권위에 관한 테제).

 

 

  - 또한 1919년에 많은 수의 ‘민주중앙집중주의’그룹 구성원이 ‘군사적 반대파’에 참여했는데, 이 파는 적군(Red Army)을 전통적인 부르주아 군대의 범주에 따라 변형시키려는 경향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 1919년 3월에 잠시 구성되었었다.

 

 

  내전 동안 당 정책에 관한 비판은 새로운 체제에 대한 백군(White Armies)의 위협 때문에 그 빈도가 더 낮게 표면화되었지만, 내전이 백군에 대한 적군의 승리로 끝나자마자 그러한 비판의 강도는 배가되었다.

 

 

  - 1921년 초, 제10회 전당대회와 노동조합문제를 놓고 벌인 논쟁을 계기로, ‘노동자 반대파’가 형성되었고, 철강노동자인 쉴리아프니코프(Shliapnikov)와 메드베데프(Medvedev), 그리고 특히, 강령을 작성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Kollontai)가 주도했다. 혁명적 생디칼리스트처럼 이 반대파는 국가의 관료제 대신에 노동조합에 경제의 관리를 맡기기를 원했다(7). 바로 이 전당대회(크론슈타트봉기 동안에 개최된)에서 채택된 결정으로 분파가 금지된 이후 노동자 반대파는 해체되고 콜론타이는 나중에 스탈린(Stalin)의 충실한 추종자가 된다.

 

 

  - 1921년 가을에 ‘노동자의 진리’그룹이 결성되었는데, 주요 구성원은 지식인 그리고 주요 조직가인 보그다노프(Bogdanov)처럼 ‘프롤레타리아문화(Proletkult)’의 추종자들이었다. 다른 반대파 경향과 함께 이 그룹은 당과 국가의 관료화를 비난했지만, 동시에 반(半)-멘셰비키적 입장을 취했는데,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조건이 러시아에서는 아직 성숙하지 않았다고 생각한 점 그리고 이러한 조건은 근대 자본주의의 기초 위에 만들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한 점(이러한 입장은 나중에 ‘평의회주의 경향’의 입장이 된다)에서 그러했다.

 

 

  - 1922~23년에 ‘노동자그룹’이 결성되었는데, 주도자는 우랄지방의 노동자 미아스니코프(Miasnikov)였다. 그는 10차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 “왕당파에서 아나키스트까지 언론의 자유”를 요구함으로써 1921년 볼셰비키당 안에서 두각을 드러냈었다. 이 문제에 관해 논쟁하려던 레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아스니코프는 요구의 철회를 거부했고 결국 1922년초 당에서 축출되었다. 그는 노동자계급 출신의 다른 투쟁가들과 함께 ‘러시아 코뮤니스트당(RCP; 볼세비키)의 노동자그룹’을 창설했고 러시아 코뮤니스트당(RCP)의 12차 대회에서 그룹의 선언문이 배포되었다. 이 그룹은 당의 노동자 사이에서 불법 활동을 시작했고, 1923년 여름의 파업 물결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 같다. 당시 이 그룹은 대대적인 시위를 요구했고 일차적으로 방어적인 계급 운동의 정치화를 시도했다. 이 시위에서 그룹의 활동으로 인해 게페우(GPU, 국가정치보안부)는 위협이 된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미아스니코프를 포함한 그룹의 주도자들은 수감되었다. 하지만 그룹의 활동은 (망명 중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서 불법적인 방법으로 1920년대 말까지 계속되었다. 이때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를 탈출하는데 성공해서 파리로 망명했고,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KAPD)의 입장에 가까운 입장을 옹호하는 코뮤니스트노동자(L´Ouvrière Communiste)의 간행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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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미아스니코프(사진 중앙), 「노동자그룹」은 가장 유명한 지도자 중 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종종 “미아스니코프 그룹”으로 불린다.

 

  볼셰비키당의 퇴행에 맞서 투쟁을 벌인 모든 경향 중에서 확실히 노동자그룹(Workers´ Group:WG)이 가장 정치적으로 명확했다. 그것은 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에 매우 가까웠고(독일코뮤니스트노동자당은 이 그룹의 문건을 출판하고 그들과 접촉을 유지했다.) 특히, 당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한 그들의 비판은 혁명의 국제적인 전망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점에서 그들은 (당과 노동자계급 내부에서) 민주주의의 문제에 그리고 경제의 관리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었던 다른 그룹의 경우와는 상반되었다. 그들은 계속해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CI)의 첫 4번의 대회를 참조점으로 삼는 트로츠키주의 경향과는 달리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제3차 및 4차 대회의 통일전선(United Front) 정책을 거부했다. 하지만 트로츠키주의 경향의 좌익과 노동자그룹(WG)의 인자 사이에 (특히 망명 중에) 토론이 있었다. 

 

 

 

  노동자그룹(WG)은 일관되게 하나의 분파처럼 활동했던, 볼셰비키당 내부에서 출현한 아마도 유일한 경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이 혁명가에 대해 시작한 (그리고 차르의 탄압보다 훨씬 더했던) 혹독한 탄압은 이들의 경로를 따라 발전할 가능성을 없애버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아스니코프는 러시아로 돌아갈 것을 결정했다. 예상대로 그는 즉시 실종되었고, 코뮤니스트좌파의 미약한 역량은 가장 용감한 투사를 잃고 말았다.

 

정리 ㅣ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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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칼 리프크네히트 기억하기 (1871년 8월 13일 ~ 1919년 1월 15일)

칼 리프크네히트, 「사회주의 외교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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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칼 리프크네히트의 「사회주의 외교 정책」에 대한 소개는 「코뮤니스트」 9호에 실려 있다.

 

“칼 리프크네히트는 위대한 이론가가 아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달리 그는 정치 경제에 관한 주요 ‘논문’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리프크네히트는 원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느 날 갑작스러운 통찰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그의 글 「사회주의 외교 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리프크네히트는 1918년 4월에 루카우(Luckau) 감옥에서 이 글을 썼다.

때로는 장황하고 급하게 쓰기도 했지만,

내부와 외부 변증법, 주제와 대상, 의식과 조건 같은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

따라서 그것은 오늘날에도 관련이 있다.

오늘날,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진압하고 지도자들을 살해한 지 100년이 지난 지금,

이 살해당한 혁명가들이 남긴 작품을 다시 읽어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칼 리프크네히트 기억하기, 「코뮤니스트」 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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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외교 정책

 

국제 사회주의는, 그 사회주의적이고 국제주의적인 특성 때문에(다시 말해서 사회주의이면서 국제주의이므로),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 사이의 모순을 전혀 알 수도 없고, 용인하지도 않는다. 국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외부 정치의 동질성과 연속성은 다른 부가적인 조건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것을 위한 선결 조건이다. 내부와 외부 양쪽에서 국제 사회주의는 아주 동일한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적, 혁명적 정신을 요구한다.

사회주의 정치의 과업은, 계급의식을 지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프롤레타리아 계급 운동의 도움을 받아서,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는 것, 등등. 시민 기동대를 통하여 사태가 급변하는(peripety)(주1) 순간에 이 운동은 아주 좁은 의미에서 사회 혁명의 특성을 띤다. 하지만 사회 혁명은 인류의 결정적인 부분이 무르익어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때에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무르익어 원숙해진다는 말은 자본주의 체제가 너무 익어 썩어간다는 것, 다시 말해 자본주의가 사회 발전과 관련한 자신의 과업을 완수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혹 피상적인 도식이 상정하듯이, 사회 혁명에 필요한 전제 조건이 더 빨리 출현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사회주의 정치가 자본주의적 발전을 촉진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는가?

[혁명을 위한] 사회의 무르익음은 절대적인 척도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경제적·기술적 측면에서조차 그러하다. 사회가 사회주의 체제에 적합할 정도로 무르익었는지 아닌지는 그것의 경제적 발전 정도에 달려있을 뿐 아니라, 가장 넓은 의미에서 그것의 전반적인 사회적 발전에도 달려있다.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 통찰력, 의지, 그리고 적극적인 결단력이 [발전한] 정도에 달려있다. 다시 말해서 노동 대중의 정신적, 도덕적, 심리적 수준에 달렸다.

이 심리적 요소가 저 맑고 푸른 하늘에서 임의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중 각각의 생활 여건 전체의 결과로 생기는 것인 한, 그것의 척도는 초인적인 힘이나 초사회적인 힘에 의해 거의 결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심리적 재능도 어떤 한도 안에서 자기 운동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이러한 한도 안에서 체계적인 행동을 통하여 타고난 재능을 증대시킬 능력을 포함한다. 이것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도 적용된다. 교육을 비교해보라.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이러한 능력이 존재하는 한, 그들이 객관적으로 조건 지워지거나 결정될지라도, 인간이 어떤 한도 안에서 그 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다양한 인간 집단이 자신들이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조사하고 해결하고 행동할 자유가 사회 심리의 관점에서는 가상의 것으로 보이는 것처럼, 개인 심리의 관점에서는 개인의 자유의지 관념도 그렇게 보일 것이다. 인간의 심리적·정신적 특성을 가장 넓은 의미에서 고려할 때, 인간 정신이 지닌 힘의 효과는 개인들과 집단들이 함께 일하고, 서로 대응하고, 상호 작용하면서 객관적으로 서로 뒤엉켜 있다는 것(그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자기기만―전체적인 사회 심리와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물질적인 사회적 활동은 이 안에서 완전히 표현된다―이 넘쳐나는 이 대단히 복잡한 과정에서는, 누구나 그들이 스스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관계 속에서 갖출 수 있는 모든 물리력과 추진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사회 전체를 위하여 객관적으로 요구되고 결정된 삶의 과정을 실현하는 데에 자신들의 몫을 기여하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사회의 가능성을 앞당기기 위하여, 그 심리적 요소를 북돋우는 일은 사회주의 정치의 명확한 임무, 즉 혁명적 과업이다. 이 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사회주의 정치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특히 정치적·경제적 조건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싹과 조건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기 위한 조건을 창조하는 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변증법적으로, 그것은 사회의 무르익는 시점을 가능한 한 가깝게 끌어당기는 효과를 지닌다.

종종 자본주의에 대하여, 그것이 승리하면 할수록 그것은 점점 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처지가 된다고들 이야기한다. 이 “파국 이론”의 핵심이 올바른 것은 오직 그에 대한 반작용이 그것과 동일한 비율로뿐만 아니라 훨씬 더 높은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파울 렌쉬(Paul Lensch)에 따르면, 그러한 반작용은 자본주의 승리를 옹호하지도 그것의 떠들썩한 부산물도 옹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작용은 우리의 임무, 다시 말해 투쟁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이다.

자본주의의 전개(자본주의적 본질 안에서)와 관련한 문제에서, 사회주의 정치는 전적으로 비판적이다. 하지만 이 비판은 또한 그것이 [이 전개를] 여전히 제어하고 있는 재능을 개척하고 육성한다는 점에서 창조적인데, 사회주의 운동은 그 재능을 사회주의 운동 발전의 잠재적 요소로써 이용할 수 있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은 단순히 그 내부 정치를 국경―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이것은 우연적이다―을 넘어서 확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사회 원리보다 더, 그것은 이념과 실천 양쪽 모두에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와 동일하다.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뿐 아니라 외부 정치도 똑같이 국제적인 사회적 모순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이익을 표현하는바, 여기서 각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고립된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적인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모든 국가에서 일어나는 계급들 사이의 다툼은 의존적인 하위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그것들이 단지, 본질적으로 국제적인 사회주의 원칙을 (계급 적대가 계급투쟁―개별 국가의 내부에서 특별하게 나타나거나 국가의 국경을 넘어 전체적으로 나타난다―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지역적으로든 전반적으로든, 세부적이고 총체적으로 나타나는) 구체적인 형태에 특별하게 적용하는 것임을 말해준다.

국가의 관점보다 국제적 관점이 우위에 있다는 점에서, 원칙상 내부 정치보다 외부 정치가 우위에 있다는 사실이 뒤따른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내부 정치는 외부 정치의 특별한 경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제국주의가 말해주는 것은, 비록 반대의 의미에서이지만,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에도 적용된다. “내적 승리와 외적 승리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목표는 그 수단이 그래야 하는 것처럼 사회주의적이어야 한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 체제의 방향으로 사회 발전을 촉진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범위에서] 국제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발전을 촉진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적합한 모든 재능―노동 계급의 사회주의적 재능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초 위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립한다―을 통해서 발생한다. 하지만 그것은 또한 자본주의 자체의 발전하는 힘의 영향을 통해서도 발생한다. 사회주의적 변형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자본주의 지역들의 무르익음을 가능한 한 동시에 확보하기 위하여, 사회주의 운동이 (그와 대립하는 제국주의적 힘의 세기와 그것의 반사회주의적 위험 정도에 반발하는) 힘의 유형과 에너지를 측정하는 한에서는 말이다.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방식은 혁명적 계급투쟁의 다양한 형태와 방법이다.

계급투쟁 외부에 있을 수 있는 사회주의 외교 정책의 사회주의적 도구가 존재하는데, 그것은 내부 정책의 하나일 뿐이다.

1918년 4월

칼 리프크네히트(Karl Liebknecht)

 

옮긴이 ㅣ 김종원

 

<주>

Peripeteia 또는 peripety는 운명의 급변(사태의 격변)을 말하며, 문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기교이다.

 

<출처> 「비타협(INTRANSIGENCE)」 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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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0호]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

 

  당대 가장 탁월하고 열렬한 코뮤니스트였던 칼 리프크네히트가 암살되자, 많은 사람들이 케테 콜비츠에게 추모 작품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다. 케테 콜비츠는 처음에는 거절했다가 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보고 마음을 바꿔, 「칼 리프크네히트를 추모하며(Gedenkblatt fur Karl Liebknecht)」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뛰어난 혁명가를 잃은 슬픔이 노동자들에게는 커다란 분노로 다가왔지만, 평화주의자인 예술가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아래는 당시의 심정을 담은 그의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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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10월

 

  부끄럽다. 나는 아직껏 당파를 취하지 않고 있다. 아무 당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내가 비겁하기 때문이다. 본래 나는 혁명론자가 아니라 발전론자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프롤레타리아와 혁명의 예술가로 간주하고 칭송하면서 내게 그런 일들을 떠맡겨버렸기 때문에 나는 이런 일들을 계속하기가 꺼려진다. 

  한때는 혁명론자였다. 어린 시절과 소녀 시절에는 혁명과 바리케이드를 꿈꾸었었다. 지금 내가 젊다면 틀림없이 코뮤니스트였을 텐데. 아직도 그 꿈이 완전히 사그라든 것은 아니지만 내 나이가 벌써 50대다. 그리고 전쟁을 겪었고 페터(1차 대전 때 전사한 둘째 아들)와 마찬가지로 수천의 젊은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 퍼져 있는 증오에 이제는 몸서리가 난다.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사회주의 사회가 어서 왔으면 좋겠다.

  이 지구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살인, 거짓말, 부패, 왜곡 즉, 모든 악마적인 것들에 이제는 질려버렸다. 이 지구상에 세워질 코뮤니즘 사회는 신의 작품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 입장은 소심하기 짝이 없고 마음속으로도 늘 회의한다. 나는 평화주의자임을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그 주변에서 동요하고 있다. 어쩌다가 사람들이 페테르스부르크 거리에 전시된 내 작품을 보고서 나를 칭찬하는 말을 들으면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젊은 노동자들이 만나자고 하는 것도 거절하기 일쑤다. 그들이 내가 확고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제발 사람들이 나를 좀 조용히 내버려 두었으면 한다. 사람들은 나 같은 예술가가 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 속에서 똑바로 제 갈 길을 찾아가길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나는 예술가로서 이 모든 것들을 감각하고 감동을 하고 밖으로 표출할 권리를 가질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리프크네히트의 정치 노선을 추종하지는 않지만, 리프크네히트를 애도하는 노동자들을 묘사하고 또 그 그림을 노동자들에게 증정할 권리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1920년, 「케테 콜비츠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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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aethe Kollwitz German school. Portrait of Karl Liebknecht, Engra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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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애폴리스에서의 경찰 만행과 계급투쟁

미니애폴리스에서의 경찰 만행과 계급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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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5년 와츠, 1992년 LA, 2014년 퍼거슨. 로드니 킹, 마이클 브라운, 샌드라 블랜드, 타밀 라이스.

 

미니애폴리스에서의 사건은 역사적, 체계적 문제에 또 하나의 추가 사항이다. 흑인 프롤레타리아트는 백인보다 2배의 실업률(1950년대 이후 이 수치가 유지되고 있다)로 고통받는 데 더해, 불공평하게 경찰 폭력의 대상이 되었고, 그로 인한 사망자 수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계급은 다시 한번, 이 엄혹한 시기에도 투쟁성을 보여준다. 미국의 흑인 노동자들은 연대하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거리로 나와 국가 탄압에 맞서 저항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2020년과 마찬가지로 1965년에도, 경찰의 살인과, 살인을 유발한 왜곡된 사회적 질서에 대항한 계급의 저항이 있었다. 투쟁은 계속된다.

 

2. 미국에서 흑인 노동계급은 경찰 만행에 불공평하게 영향을 받지만, 그들의 억압은 궁극적으로 계급 지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는 매년 경찰에 잔인하게 살해되는 수백 명의 흑인 중 한 명일뿐이다. 비록 이러한 제도적 폭력 행위들은 인종주의적 동기에서 비롯되지만, 경찰력이 부르주아지의 이해를 방어하는 국가의 도구로서 존재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노동계급 내의 다른 하부집단들 안에서 인종적 역동성과 각 집단이 직면한 고유의 투쟁에 주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본가계급에게 착취당하는 노동자로서 공유하는 이해관계를 인정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인종을 넘어 모든 노동자들은 미니애폴리스와 미국 전역의 여러 도시에서 흑인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저항해야 한다. 모든 인종의 노동자들은 해방을 위한 자신의 투쟁에서 계급의 전선을 따라 조직해야 한다. 이는 노동계급의 한 부분에 대한 공격이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3. “이것이 자본가 계급이 그 권력을 유지하는 비밀이다” - 칼 맑스, 1870

 

노동계급 내의 인종주의적, 국수주의적 사상들에 대해,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것이 자본가 계급이 그 권력을 유지하는 비밀이다.” 사실, 1870년 영국, 또는 2020년 미국의 사업주들에게 인종주의는 근본적으로 분할지배 전략이다. 자본가들은 그들의 반동적인 선동가들이 백인 노동자들의 귀를 동료 노동자들을 지배하는 사업주와 정부와 동일시하라고 말하는 국수주의적 사상으로 가득 채우며 즐거워한다. “마지막 고용, 첫 번째 해고”라는 주제 아래, 흑인 노동계급은 극단적인 불안정으로 내몰려왔다. 그동안 백인 노동자들은 사업주들의 함정에 속아왔다. 그들 계급의 일부가 극단적으로 공격받는 상황에서, 그들은 이제 자본가들이 제안할 수 있는 삭감된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일자리를 찾는다.

 

4. 크든 작든, 사업은 사업이다.

 

지난 세기, 소부르주아지는 공동체 의식을 자극하는 “부부 경영”(영세 자영업) 개념을 이용해왔다. 이것은 특히 경제 위기 시기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었다. 소기업은 언제나 착취의 측면에서 대기업과 거리를 두려고 시도하는 동시에 부르주아적 이상을 열망해왔다. 소수민 소유의 사업체들은 특히 미국에 와 새 출발을 하는 근면 성실한 이민자들로 묘사되는 아메리칸 드림의 이상을 대표한다. 이 성공적인 “신데렐라”(자수성가) 이야기는 그들의 노동자 착취를 정당화하는 무기다. 미니애폴리스 시위 동안의 소상공인들이 보인 폭력적인 반응은 소부르주아지들이 항상 자신의 계급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배신할 것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해 준다. 소수민들이 소유한 사업을 지지하는 “POC 연대”를 빙자해 시위하면서 경찰을 비판하기만 하는 것은 자본주의 착취의 핵심을 흐리게 만드는 계급 부역자들의 시도이다. 그 대신 노동자들은 계급을 중심으로 조직해야 한다.

 

5. 자본가계급과 국가에 저항하는 과거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더 큰 운동과 연대하는 파업을 벌였다.

 

미니애폴리스의 버스 기사들은 체포된 시위대를 이송하는 경찰을 돕기를 거부했다. 도시 전역의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력 제공을 거부함으로써 시위대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조치에 대한 저항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우리는 미니애폴리스에서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에서 노동의 거부를 촉진하고, 시위대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려는 국가의 모든 책동에 저항해야 한다. 아마존(Amazon)과 인스타카트(Instacart)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 필수업무 종사 노동자들은 시위대와 연대하는 파업을 요구함으로써 그들의 힘을 더욱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심각한 위기의 시기에 모든 산업과 부문에서의 조직화는 실현가능한 범위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노동계급이 갖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6. 경찰의 만행은 오직 경찰의 폐지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경찰이 파렴치한 살인을 저질렀을 때, 이러한 살인을 멈추기 위한 다양한 개혁이 제안되곤 한다. 바디캠이 되었든, 추가적인 훈련, 또는 공동체 감시가 되었든, 그 목표는 경찰을 “보호하고 봉사하는” 것으로 여기는 시민들을 위협하고 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의 문제는 경찰력은 자본을 대신하여 위협하고 살해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는 점이다. 경찰이 더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을 살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세상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은 자본주의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뿐이다.

 

7. 도시 반란은 세계혁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계급의 몇몇 부분들이 맞서 싸우는 것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 동안, 질서가 회복되고 억압 구조가 재건됨에 따라 몇 주 후에는 점점 이 시위가 잠잠해져 갈 것이다. 자본가와 그들 용병들의 권력에 진정으로 도전하고 그것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세계혁명당이 필요하다. 노동계급 손에 있는 그러한 당은 인종주의 국가를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억압된 분노를 노동자 권력과 코뮤니즘의 건설로 이끄는 도구가 될 것이다.

 

 

비타협 / 국제주의자 노동자 그룹 / 계급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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