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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회

노조 활동을 시작하면서 느낀 것은 정말 수련회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어느 방 하나에서 회의만 줄창 하다가 열두시간짜리 마라톤회의 끝나고 술을 먹기 시작한다. 연속으로 두 번의 수련회를 소화해냈다. 비정규활동수련회, 그리고 학교비정규직 수련회. 비정규활동수련회는 사실 별로 머리에 남는 게 없다. 그냥 노조 미비실 활동가들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고, 반면에 또 지역지부가 도대체 무엇을 하란 말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 비정규직들은 투쟁 조차 하기 힘들다는 것 정도? 그러나 어차피 그 자리에 온 사람들은 선수들이고, 비정규 활동에 대해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활동가들이다. 전략조직화 사업이 중요하다고 다들 말한다. 토대를 만들기 위해서 발로 뛰어야 하고, 사람도 더 필요하고, 투쟁이 더 필요하기도 하고 그렇다. 무엇보다 턱없이 부족한 조직률이다. 공공노조의 미조직 대상자는 400만에 육박하고 있고, 지금 조직률은 1%나 되는 지 알 수 없다. 지부 역시도, 지금보다 더욱 확대되면서 더욱 강화되지 못한다면. 근본적으로 자기 혁신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그렇다면 지부 역시도 조금씩 사멸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단 한 칼에 조직이 뭉개질 수도 있다. 턱없이 부족한 경험으로, 너무나 중요한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부담스럽지만 어쨌든 그 부족함 채우면서 계속 갈 수 밖에 없다. 비정규활동총화 수련회에서 내가 처음 들어왔을 때와는 많이 달라졌고, 예전보다 확실히 고민이 조금은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간은 성장했다는 뜻일까.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학교비정규직수련회는 다르다. 한 학교에서 한 명밖에는 조합원이 없는, 그래서 교섭을 하고 싸움을 하자고 하면 도대체가 답이 안 보이는 노동자들. 거기에 대고 회의할 때 지부장은 지금 시점에서는 교섭을 중단하고 내부 조직을 강화시킬 때라고 말한다. 동의한다. 이 모양으로 되지도 않을 교섭을 밀어붙이는 것은 앞으로 선례만 더 나쁘게 만들고, 거기에 회의 시간이 투여되고, 그러다 보면 무언가를 하기는 점점 요원해질 것이다. 조합원들은 교섭을 원하고, 싸움을 원하지만, 현장 노동자가 아닌 외부 활동가의 시선으로 보면 지금은 이루어지지도 않는 교섭을 해서 힘을 소진시킬 때는 아니다 싶은 것이지만. 그러나 과연 그게 옳은 것일지도 많은 고민이 든다. 그나마 조합원들이 활동할 수 있는 유인이 교섭이라면- 어쨌든 그것을 무시하고 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교섭이 현장투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다. 다만 그 현장투쟁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학교비정규분회라는 조직에 가입된 조합원들은 각자 다른 현장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함께 하면서 자기 현장을 뛰어넘지 못하면 학비분회라는 조직은 결코 하나의 노동조합으로서 단결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조직인 것이다. 그런데 현장투쟁이 오히려 그 조합원을 그 학교에 갇히는 역할을 하게 만든다면? 연대투쟁을 결의하고, 자기 현장을 넘어서는 수준의 조합원이 이토록 부족하고, 이토록 힘겹게 다들 자기 일자리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그 조합원은 자기 힘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절감하고, 그나마 전임자와 상급단체 활동가만을 찾게 된다. 그것도 안 되면 이제는 법률로 돌파하고자 한다. 한 학교에서 자기 혼자 싸우는 것이 사실 큰 타격을 입힐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동료들을 설득해서 싸우기도 힘들다는 것도 아는 것이다. 유일하게 정직한 대답은 어쨌든 학교비정규직분회의 조합원들이 그 투쟁에 함께하는 것만이 정답이다. 그러나 그게 안 되는 것이다. 조직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무리한 조건이 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실망한 조합원은 법률로 가던 어찌 되었건 사실 이제 조합원으로서, 노동조합으로서 단결하자는 생각을 만들기는 힘들게 되었따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직을 해야 한다. 다른 업종과 같이 조직하는 방식이 힘들다면 그에 맞는 방식을 찾아내서 조직을 해야 한다. 자기 현장을 넘어서 함께 투쟁할 수 있는 조합원들을 만들어 내야 한다. 투쟁이 없이 그런 것이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그렇다면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투쟁의 양식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조건에서 한계는 너무나 명확하고, 다들 지쳐 있다. 무엇을 하나 한계는 있다. 한데 어떻게 그 한계를 넘어설 것인가? 어떻게 그런 투쟁을 만들고, 조직하면서 다시 시작할 것인가? 그것은 나의 고민이다. 학비 조합원 동지들은 벌써 몇 년을 버텨왔다. 이미 힘든 과정을 많이 겪었고, 싸움도 많이 했고, 이골이 날 만큼 나 있는 동지들이다. 나에게 말한다. 왜 우리 담당자인데, 지부의 입장에서만 우리를 바라보는 것이냐고. 현장 노동자들은 힘들어 죽을 거 같고, 교섭이라도 해서 행정실장이라도 치지 않으면 너무 힘들다고. 현장투쟁이 일어나지 않는데 조합원들이 움직이겠냐고,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나는 말한다. 지부의 입장과 학비의 입장이라고 분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게 맞고, 나은 방향인가가 중요한 것이라고. 지부의 활동가들은 학비에게 가장 나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지부장님 역시 마찬가지라고. 그러나 내가 말하면서도 사실 내 말이 맞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학비 현장 조합원이었다면 어떻게 말했을까? 나는 똑같은 말이나, 똑같은 고민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 것이었을까? 내 말은 현장 조합원들의 힘을 빼는 말이 된 것은 아닐까? 이번 수련회, 이제까지 쌓여왔던 고민들. 어찌되었건 포기할 수는 없고, 단시간에 무언가가 이루어지는것도 아니다. 힘을 내고 칼을 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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