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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4/15
    오늘 처음 만난 후배의 눈물
    이스
  2. 2007/04/15
    책, 영화, 그리고 생각
    이스

오늘 처음 만난 후배의 눈물

장애인 차별철폐 문화제를 갔다오면서 그 때 처음 만난 장애인권 동아리의 후배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장애우와 장애인의 언어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는 모든 사회적인 명칭은 1인칭 2인칭 3인칭으로 호칭이 가능해야만 한다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단지 호칭의 문제를 논하면서 나오는 눈물이 아닐 것이었다.

 

그는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것때문에 그가 느꼈던 수많은 아픔들이 있었다. 내가 감히 그 아픔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야기 해야 했다. 바로 그래서 맞싸워야 할 것이라고. 그것이 어쩌면 너무나 가벼운 이야기가 아닐까 라고,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느꼈던 고통, 외로움, 아픔은 지극히 현실인 것이다. '현실이 이래' 라고 함부로 떠들면서 이래서 안 된다고 떠들 성질의 것이 아닌 것이었다. 적어도 효율의 논리로 세상을 가르는 신자유주의자들, 지배계급들이 함부로 떠들 수는 있어도, 지배계급이 아닌 이들이 떠들 말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자신은 '정상인' 이라고 착각하고 사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배계급의 말이 자기 말인줄 알고 떠들어대는 것이다.

 

5년전 6년전 떠들었던 이 말이 여전히 새롭지 않은 이유는 현실이 새롭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후배의 눈물과 5년 전 함께 장애인권문화제를 준비하면서 흘렸던 내 친구의 눈물을 보면서 여전히 똑같이 뜨거워진 눈시울을 훔칠 수 밖에 없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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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영화, 그리고 생각

1. 책 - 아내가 결혼했다.

 

어제 우연찮게 생도에 누군가가 책을 기증했다고 했는데 마침 있는 책이 '아내가 결혼했다' 였다. 아내가 결혼한다. 아내가 결혼한다? 아내라고 하면 결혼이라는 계약을 이미 맺은 사람인데 어떻게 또 결혼할 수 있지? 의구심을 갖고 읽었는데 한 두 세시간 만에 쫘악 완독을 해 버리고 말았다. 간만에 즐겁게 소설을 읽었다는 느낌?

 

내 아내는, 나와 이혼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와 결혼했다. 속칭 일처다부? 한국의 법으로는 용납되지 않는 현실이지만 그녀는 참으로 영리하고 능숙하게 모든 사태를 해결해 가고 있다. 뭐 중요한 건 그녀의 엄청난 요령과 삶의 지혜와 말빨이 아니다. 중요한 건 결혼제도, 이성애와 일부일처의 가족제도 전반에 대한 논쟁적 물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좀 더 들어갔을 때, '질투' 라는 감정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자신이 '사랑한다고 믿는' (개인적으로 이성에게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건 오직 자신이 믿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이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을 때에 느끼는 감정, 그 감정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관계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타인과 타인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연애관계라 해도 똑같다. 생각해 보건대 내 여자친구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면 솔직히 기분 좋지는 않다. 하지만 도대체 왜 기분이 나쁜 것일까? 그건 그녀의 권리이지 않을까? 물론 감정적으로는 아주 짜증이 난다. 정념이다. 그냥 만나는 거면 모르겠는데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면. 하지만 양다리건 세다리건 간에 나 역시도 그녀와 하나의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의 타인일 뿐이다.

 

물론 이건 생각이다. 생각에 다름 아닌 것인데 감정적으로는 나도 이러한 생각과는 별개로 아주 기분이 나빴던 경험, 슬퍼하기도 했고 절망하기도 했던 경험이 있는 관계로 무어라 말하긴 힘들지만 도대체 이런 기분이 그냥 가부장제적인 이성애 및 일 대 일의 어떠한 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만 생기는 걸까? 사실 그런 게 없는 게 가장 올바른 사랑의 형태가 아닐까 하는데, 뭐 여튼 폴리뭐시기인가 소설에서도 제시하는 방향성이 있기는 있다. 다만, 그런 것보다도 나는 왜 도대체 내 여자친구가(참고로 나는 여자친구가 없다.) 나 말고 다른 애인을 만난다면 기분이 좋지 않은 걸까?? (상황을 가정하고)  

 

그런 작은 의문 하나.

 

2. 영화 - 밴디트 퀸

 

수업 시간 내내 영화 하나를 풀로 틀어주는 수업 형식 덕분에 한 영화를 다 보게 되었다. 웬지 배우들의 쏼라가 영어가 아니고 뭔가 아시아틱한 데다가 분위기도 딱 그런게 '인도 영화' 구나 싶었긴 했다. 하지만 당장 나에게 의무적으로 부과되어야 할 발표수업이 존재함에 따라서 나는 이 영화를 아주 주의깊게 보게 되었다. 어쨌든 발표수업도 레포트이고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졸업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밴디트 퀸은 몇년 전 암살당한 풀란 데비라는 여성의 삶을 영화화 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서술되는 풀란 데비의 삶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얼마나 끔찍한지는 영화를 한 번 직접 보시기 바란다. 보고 나서 신문기사나 여러 가지를 검색했는데 거기서 글로 나오는 내용은 아주 쉽게 몇 개의 문장으로 간추려져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 과정은 정말로 참혹하기 이를 데가 없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영상물을 보면서 눈시울을 붉히지 않았던 적이 없는 나로서는 참으로 불편하기 이를 데 없는 영화였다.

 

인도에는 카스트 제도가 있고 다우리 제도가 있으며 각각 신분계급과 성차의 차별을 상징한다. 그것은 고착화되어 있고 폭력으로 유지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 속에서 억압과 착취는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고 민중은 대안적인 삶을 고민할 여지조차 없다. 그곳은 혹자가 말하듯이 고차원적 정신세계와 여유로운 삶과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족이 가득한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착취받는 민중이 있고 억압이 존재하는 한 사회일 뿐이다.

 

환상이란 필요하지 않다. 민중의 삶의 비참함은 그대로 현실이며, 그것은 그 어디를 막론하고도 존재하는 구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흘렸던 눈물은 풀란 데비를 대중이 환영하는 그  순간 때문이 아니라 풀란 데비의 삶이 바로 인도의 민중의 삶이며 동시에 그 굴레에서 해방되고자 했던 삶이라는 생각, 정확히는 생각 이전에 그런 느낌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해방되고자 하는 그 노력 앞에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이 밀려올 수 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아픈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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