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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_곰탱이님과함께~

리우스// 2006.12.8.12:50

 

<계급의식의 형성과 보편화에 관하여 - 맑스주의를 중심으로>를 논제로 한 곰탱이님의 논문을 놓고 어제 그야말로 맛뵈기 토론을 좀 벌였다.


내가 저 엄청난 주제를 놓고 벌어진 엄청난 중구난방토론을 제대로 정리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으... 저 주제가 주는 가공할 압박이라니... 계급의식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형성'에 '보편화'까지... ㅎㅎ 중구난방토론이 아니라면 어디서도 그 압박을 견디기는 어려울 터다.

 

그러나, 우리는 무게를 잡을 필요도 없고, 긴장할 필요도 없고, 다만 생각을 나누고 서로 배우려는 소박하지만 야무진 열망만 있으면 되니까 그런 압박 따윈... 하하... 적수가 못된다. 이들에게 말이다. 곰탱이, 초보좌파, 스머프, 똘망샘(앞으로 저는 이렇게 불러드리고 싶은데... 괜챦으시면 그렇게 부릅시다), 그리고 나 리우스.

 

곰탱이님이 쓰는 용어들이나 개념들이 내가/우리각자들이 쓰는 용어나 개념들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또한 곰탱이님 생각을 이 맛뵈기 토론이나 논문 한권으로 모두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는/우리들각자들은 나/우리각자의 맥락에서 내식으로/우리각자들의방식으로 읽고 이해하는 것이 기본이니까, 아래에 내가 적어두는 생각들은 그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야만 된다.

 

 

곰탱이의 논지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지만 그냥 아주 단순화시켜서 말하자면...) 이렇게 읽힌다.

 

1. 곰탱이님은, 노동자 계급의식이 형성되(고 강화될 수 있)는 공간을....'가족'이라고 설정하고 있다. 노동자는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존재인데, 자본종속적인 (사회적) 노동을 하는 '임금노동자측면...'과 '노동력을 재생산/충전하고 인간임을 확증하는... 비임금노동자측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비임금노동자측면이 이를테면 자본과 독립하여 주체적으로 노동자가 자기재생산을 할 수 있는 측면이고, 그것은 (사회적)생산현장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의 공간(특히 가족/가족관계)에서 만들어지고 가꾸어나가야 되는 것이라는 문제인식이다.

 

2. 노동자계급운동은 지금까지 자본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점점 더 어려워져오고 있는데, 그 원흉은 말하자면 노동자의 삶의 공간, 노동자의 주체적 계급의식을 형성하는 그 공간에 대한 계급적 장악력은 커녕 문제설정도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다.

 

3. 특히 곰탱이의 문제의식 속에서는, 노동자의 '삶의 공간'(가족/가정/가족관계들) 속에서 이루어지는 노동.... '여성노동'('가사노동')이 없다면 노동자의 '비임금노동자로서의 주체적인 측면'이 형성될 공간은 유실되고, '노동자 계급의식'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에, '가사노동'('여성노동')이 매우매우매우 중요하며,

 

4. 게다가 거기에서 형성되는 '노동자계급의식'이 (부르주아지의 의도대로) 개별화/파편화되는 것이 아니라 조직되어 '사회적으로 보편화'되어야 하는데(그래야 자본과의 대결에서 노동자계급운동이 이길 힘을 확보하게 되는데), 그러려면 그 '가사노동의 사회화/조직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5. 따라서 '가사노동(여성노동)의 사회화'야말로 노동자계급운동에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것이 결론이다. 너무 간단하게 해버렸나...?

 

6. 좀 더 덧붙이자면, 그러니깐, 지금까지 노동자계급운동은 노동자의 주체적 계급의식이 형성되는 '삶의 공간'과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가사노동'('여성노동')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깊이 인식하고 하여튼 '(사회적)/성별 분업' 및 '개별화/사적파편화' 등등 부르주아계급이 유포하고 공고화시키는 현실을 끊어내는 운동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양식'을 만들어내는 운동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거다.

 

 

드는 생각은... (좀 있다가 다음 페이지에서 계속)

 

(예서는 생략함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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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_대안교육과대안운동

'대안'이 무엇일까?
 초청포럼 중구난방: 대안교육과 대안운동

이정현

‘대안’이 무엇일까?
- 대안교육과 대안운동: 이치열 선생 초청 중구난방


이정현



의왕에서 중등과정 6년제 ‘대안학교'인 <배움터 길>을 운영하시는 이치열 선생님은 ‘탈주냐 전복이냐’에서부터 대안교육 얘기를 풀어나가려는 거 같았다. 학교바깥 대안학교운동은 '탈주 쪽 가닥이다...' 라고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그 흐름은 끝까지 이어졌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머리 속에는 ‘대안’이라는 것에 대한 어떤 동경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전에는 이런 ‘대안’ 짜를 붙인 움직임들에 대하여 나는 약간 심드렁한 편이었다. 특히 ‘대안학교’는 뭔가 그럴 형편이 되어야만 애들을 진학시킬 수 있는, 약간 못마땅한 느낌으로 쳐다보고 있었기도 하거니와, 얼마 전에는 중등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거나 아무튼 ‘부적응’ 학생들만 따로 모아서 가르치는 학교의 파트타임 교사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는 바람에 그것도 ‘대안학교'라고 불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정도로 관심이 없던 터였는데, 이번 토론을 통해서 그 속내들과 고민들을 다소나마 알고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1.
1990년대에 한국사회의 트랜드에 배경을 이루는 두 가지를 이치열 선생은 ‘현실 사회주의 붕괴’와 ‘서태지의 등장’으로 꼽았다. 이 두 가지 배경 속에서 ‘대안교육’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산청의 간디학교로부터 본격화되어 빠른 속도로 ‘대안학교'가 설립되기 시작해서 현재 전국에는 70여개의 대안학교가 있다고 한다. 인가된 학교와 비인가 학교가 약 절반의 비중이란다.
대안학교에 대해 일반의 인식은 대개 두 가지로 퍼져 있는데, 하나는 "비정상적인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라는 것과, 다른 하나는 "중산층 이상의 ‘그들만의 리그’ "라는 비판이다.
대안교육/대안학교에 대한 문제의식은 근대의 학교교육과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에 연루되어 있었다. 200년 전에 피히테가 ‘독일국민에게 고함’에서 구국강병 인재육성을 위한 체계적 교육이 필요함을 설파한 데서 학교교육의 보편화를 가져온 진보적 측면... ‘적과 흑’ 같은 데서 보여지는 중세의 전형적 특권층 교육을 탈피하고 평민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추려내고,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근대교육의 보편화가 자본주의 시스템 구축과 함께 탄력을 받아 숙련된 노동력 양성과 자본주의 체제 순응형 인간형 육성의 유용한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 측면에 대한 문제인식이 ‘대안교육'에 대한 이를테면 철학적 바탕이 되는 셈이다. 개성보다는 획일성, 비판보다는 순종..... 들에 대한 반정립이랄까...
 
2.
한국 사회에서 교육현실은 2006년초 OECD통계연보에 따르면, 공교육은 23위, 사교육은 1위이다. 한국사회는 "신자유주의 경쟁사회이고 학벌사회"라는 데 토를 달 사람들은 누구일까? 여하튼 이런 맥락에서 사회를 볼 때, 요즘엔 ‘10대 결정론’이라는 게 있단다. 10대에 준비해서 어느 대학에 가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이 ‘10대 결정론'은 한국사회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교육 신화 중 하나란다.
1980년대까지는 ‘계층상층의 기회로서의 교육’이라는 교육의 위상이 그래도 유지되었지만, 요즘은 그런 생각자체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요새는 부모의 자본력과 문화자본에 의해 계급계층이 결정되고 대물림되며, 교육 자체가 그런 계급의 대물림 기제이자 계급재생산의 도구라는 얘기다.
서울에 있는 어느 중학교 선생님 얘기가 소개되었다. 흔치 않은 미담 정도 됨직한 얘기지만 이제는 미담 축에도 끼지 못할 세태가 담긴 사례다. 얘긴 즉, 때가 되면 어떤 학부모가 돈봉투를 싸들고 오셔서 내밀며 하시는 얘기... "가정형편 어려운데 공부는 잘하는 애한테 장학금으로 주라"는 분이 계셨다 한다. 그걸 보면서 그 선생님은, "인제는 가난하면서도 공부 잘하는 애들은 이미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
인제는 더이상 '개천에서 난 용'은 없는 게 현실이란다.

아무튼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들이 교육계에서 일어났는데, 1989년에 창립한 전교조운동이 그 하나다. 교육현실에 대해, 공교육 틀 속에서부터 바꾸려는 운동. 그리고 다른 운동도 있었다. 바로 대안학교운동. 왜 애들을 학교라는 제도권 기관에 반드시 보내야만 하는가? 왜 국가공인 교사들에게만 교육을 맡겨야만 되는가. 그래서 학교 바깥에서 새로운 대안교육을 모색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자가 전복이요, 후자가 탈주라고 하시나 보다....
양쪽이 서로를 배척하는 건 아니지만, 서로 집중점을 달리 잡은 것일 터.... 하나의 흐름은 공교육 개혁운동. 물론 사립학교까지 포함해서 국가공인이라는 면에서 볼 때는 그게 다 공교육일테고, 그 안에서 운동한다는 점에서 전복적 가치가 우선하겠다.
그리고 그와는 달리, 그런 공교육 체계나 틀 바깥으로 ‘탈주’하여, ‘대안교육'을 새로 만들어내려는 운동으로서 대안학교운동은 탈주적 가치를 우선한다고 봄직하다. 이치열 선생은 그 둘이 아무튼 같은 뿌리라고 널찍이 아우른다.
대안교육(운동)의 세계사적 측면은 68혁명으로, 당연시했던 학교 교육에 파열구를 내면서 자본주의 시스템에 반기를 드는 맥락이란다. 섬머힐이니 발도로프니 몬테소리니 알바니스쿨이니,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그런 학교들을 위시해서 수천개씩 생겨나기도 했다는데, 출발은 노동자 자녀교육을 위한 것이었다는 소개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는 자본의 지원도 있어 2,500개 정도의 대안학교가 생겼다는데, 반자본 맥락을 유지하려는 곳에 미쳤다고 자본이 지원을 하였을까....? 자본의 지원이 없어지면서 많은 '대안학교'들이 소멸해갔다니, 시스템 전복이건 탈주건 자본의 품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걸 넘어서 대안교육/대안학교 운동을 펼쳐 나갈 수 있을까....? 아마 실험은 계속되고 있고, 이치열선생도 그 실험대에 서 있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은, ‘교육’이 갖는 통념과 관계된다. 교육으로 인간을 또는 인간의 생각을 제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환상 내지는 착각. 대안학교/대안교육은 거기서 자유로운가....? 자유롭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내고있는 인간형에 대한 ‘대안적 인간형'을 결국엔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학교에서는 보통 학생 수십명에 선생 하나... 식이지만, 대안학교에서는 학생 하나에 선생이 11명이 필요하단다. 획일에 반대하고 다양한 생각들이 넘쳐날 수 있게 하는 최대한의 교육여건을 마련하겠다며 차리는 대안학교라서 그렇다는 거다.
그럼, 자연 엄청난 학교운영비가 들어갈 텐데, ‘중산층의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이 헛소리가 될 수 없는 처지다. 학생들이 내는 월사금도 비쌀 뿐 아니라 그걸로도 충당이 안돼 후원금을 조직해야 한다니까, 이게 취지가 아무리 좋아도 돈에 발목을 걸고 들어가는 사업인거라..... 주객이 야금야금 전도되기도 하고 한꺼번에 홀라당 뒤집어지기도 할 법하지 않은가....
하긴 요즘 입시교육의 현실을 보면, 학원비랑 과외비랑 뭐 학교 월사금으로는 초등부터 중등까지 애시당초 택도 없으므로, 대안학교 월사금이 ‘비싸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어불성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미 교육수혜의 불평등 구조는 사회의 양극화 현상이 심화된 최근 수년 동안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심각하게 구조화되어 있어서 사교육비 과대화를 일반화시키는 것 또한 어렵다.

이치열 선생이 강조하는 ‘대안학교’는 그 취지와 지향점이 자본주의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저와 같은 교육불평등구조를 해소하고 지양하는 데 있는 만큼 고민도 또한 많아 보인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월사금을 받지 않을 예정이고, 대안학교라면 이미 그렇게 운영되는 곳도 더러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대안학교 운동의 취지가 아무리 곱다한들 그것이 ‘자선사업’이 아닌 이상 학교운영 재정은 빤한 것이다. 결국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것이 지금은 현실이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중세특권층 교육을 탈피해서 보통교육을 역설했다는 피히테를 경유한 자본주의 형 인간양성 교육을 넘어서 대안교육을 창출한다는 대안학교는 중세 교육현실과 시대가 다르다는 것 외에 어떤 변별점이 있다는 것인가.
 
4.
1980년대 말, 전교조운동이 부상하면서 대안학교에 대한 논란도 함께 일어나게 되었다. 제도적 틀을 변혁하는 차원과 제도 바깥에서의 대안을 모색하는 차원이 같이 만나게 된 것이 80년대 말부터였고 90년대에는 거기에 포스트적 흐름들이 떠오르면서, 평화, 인권, 자율 등등을 기치로 한 세력화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안교육운동 내에서도 오로지 학교 바깥에서 생태, 평화를 축으로 하는 운동이 있는가 하면 학교중심은 문제긴 하지만 그렇다고 학교를 백안시할 수는 없다는 문제인식도 있어서 이 두 관점이 대립되어 있다는 소개다. 현재 대안교육운동의 주류는 전자= 학교 바깥에서의 생태, 평화 운동 쪽이라 한다.
대안교육과 대안학교 운동을 둘러싸고도 수없는 고민들과 새로운 실험들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학교교육 내에 있는 전교조운동, 공교육운동과 대안교육운동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운동, 학교교육 바깥에서 생태와 평화를 축으로 하는 운동.... 이렇게 펼쳐지고 있는 중이란다.

대안교육체 현황은,
 
1) 인가: 초등은 없음. 교육부에서 인가를 절대 안내준단다. 이유는 ‘국민의무불이행’과 ‘초등교육이 좋아져서 대안필요 없음’이고, 중등은 교육관료들도 문제인식을 하고 있어서, ‘특성화 학교’로 인가를 내주고 있다. 특성화학교는 입시에 초점을 두고 있고 공교육에 대한 사회구조적인 문제의식이 아니라 공교육을 개선하는 형태라 ‘대안학교’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이치열 선생의 생각이다.
 
2) 비인가: 전제는 대학입시로부터는 자유롭고, ‘인간교육’을 기치로 한단다. 아이들을 실험대상화 하는 것이 조심스러우나 ‘교육적 실험’이라고 덧붙인다.
하여튼 (1) 농촌에 기숙학교 방식의 전원학교, (2) 도시형 학교 가 있는데, 초등학교는 이런 도시형 대안학교가 많다고 한다. 그리고 그 기반은 ‘공동육아운동’이다. ‘공동육아’를 바탕으로 보육협동조합운동이 일고 있고, 그 아이들이 진학을 하기도 하지만 대안학교로 가기도 한다.
그 흐름이 만만챦아 대안학교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서 학교교육체계에는 ‘정원 외 관리’라는 게 생겼다고 한다. 대안학교 진학생과 조기유학생들이 늘어나니까, 이들에 대하여 제도학교에 학적을 두게 하여 학생들을 관리하는 교육부의 정책제도란다.
 
3) 홈스쿨: 라다크(티벳) 지역의 여성 미래학자 말마따나, 교육에서 ‘오래된 미래’는 홈스쿨링이란다. 생활 속에서의 가정교육.... 가정은 참 많은 숙제들이 들어있는 공간이다.... 전통적으로 여자/마누라들의 공간이면서도 그들이 주인이 아닌 공간.... 동시에 이제는 그런 ‘전통’이 무너지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또한 그 ‘무너짐’을 예방하고 가부장제를 이어나가기 위해 사회적으로 더 많은 강제를 부여해주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부의 ‘진보적 교육 학자’ 중에서 학교불용론을 주장하기도 하면서 홈스쿨링을 내세운다는데, 예로 이반일리치가 거론된다. 가톨릭 신부이자 교육학자라는데, ‘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단다. "교육은 얽매이고 순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라는데.... 결국 ‘가정’이 문제가 되고, 가족과 가부장제 질서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인류사상의 난제로 연결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5.
세간의 ‘대안교육에 대한 비판’과 관련하여, 이치열 선생은 앞서 얘기했던 ‘학교교육부적응학생 대상’이라는 것과 ‘중산층의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 그리고 ‘작은 학교’에서 과연 아이들의 사회성과 인간성이 제대로 길러지겠느냐는, 세 가지 비판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폈다.
 
1) 학교제도교육 부정응 아동과 청소년 대상이라는 비판은, 현실이기도 했지만, ‘교육적 부적응’이라는 딱지가 의미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문제는 결국 교육현실이 갖고 있는 구조적 모순의 발현체다.... 앞으로도 제도교육이 이를 수용하지 못하면 여전히 대안교육에서 이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라는 논지.
 
2) ‘중산층의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 이것은 사실이다. 비인가 학교의 경우, 국가로부터의 지원은 한푼도 없다.... 본인이 운영하고 있는 배움터 길 역시 그러해서, 기본운영비용에서부터 일체를 자립해야 하는.... 재원 중 가장 큰 비중은 학부모의 기증, 후원회, 재정사업.... 자본력 없는 부모의 자식들이 공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대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는데, 이런 지향이 이후 대안교육의 성패를 가늠하는 변곡점이라고 풀어놓는다...
 
3) ‘작은 학교’에서 과연 아이들이 제대로 사회성과 인간성을 체득할 수 있겠는가 하는 비판에 대해서는, 관계성/사회성이 수량적인 게 아니라 질적인 것이라는 것을 일축한다. 기존 지배질서에의 ‘적응’을 사회성이라고 하는 게 맞는 거냐...라는 얘기다. 학교부적응이라느니, 사회부적응이라느니.... 역시 누가 어디에서 쓰느냐에 따라 논법이 겨누는 곳이 달라지는 법....

6.
 국가권력과 대안학교의 긴장은 팽팽하단다. 국가로부터의 재정자립 문제가 있고, 학력을 인정하네마네 하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로 걸려 있다. 내 생각엔 자본으로부터의 재정자립 문제도 자연 거기에 들어있고, 그것은 결국 사회와 가족관계까지 작동하고 있는 착취관계로까지 문제설정이 나갈 필요가 커 보인다.
이치열 선생은 ‘대안’의 스펙트럼은 대단히 넓다고 강조한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양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 대안운동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향하는 대안운동에서 자본이 가장 굳건하게 터하고 있는 게 있다. 가부장제. 그게 빠진 대안이라면 절반의 또는 절반도 안되는 대안운동, 그래서 이 세상 절반의 사람들, 여성들에게는 대안도 아닌 운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멋져 보이는 얘기가 소개되었다: 프레이리의 "검증되지 않은 가능성" -- 그걸 향해 대안학교운동을 펼쳐나간다는 것이다. 교육은 심층과 무의식까지 미치는 거고, 교육운동은 분명히 지배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이라 한다... 지배이데올로기와의 투쟁.... 그렇다면 자본의 지배, 그리고 성별 지배관계까지 확대되어야 하지 않을까? 문제는 결국 ‘교육 철학’이 되겠다..... 또한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계급은 또 어떻게 보는지, 계급재생산과 대물림은 어떻게 가능해지는지.... 등등의 문제인식과 함께 또는 더욱 더 중요하게 가부장제에 대한 문제인식과 ‘대안’이 모색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넓은 의미로 볼 때 ‘대안교육'은 "학교교육 밖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교육"이라는 이치열 선생이다. 대안교육운동은 "대안적 측면을 스스로 소멸시켜가는 운동"이라고도 강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엄격한 가부장제 지배이데올로기를 깨지 않고는 어렵다"는 선생의 문제인식이 소중해 보인다. 가부장제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해 대안교육운동이 장차 어떤 방향을 취할지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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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_문화연구시월 신병현님과의 중구난방

신병현 선생님은 자본이 노동자들의 자생적 노동자 문화를 깨어버렸다고 하며, 그 결과로 생긴 노동자문화의 장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노동물신주의(전문가주의), 둘째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그리고 셋째가 유사가족주의. 이 세가지 형태로 작업장 문화의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철//


제 3차 열린포럼 중구난방은 지난 9월 23일 문화 연구 시월의 신병현 선생님과 함께 했다. 가을이 온 듯 해가 머리위에서 쨍쨍대는 가운데 길을 잘 못 들어선 신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여기가 어디죠?” 시장 골목에 있는 연구소이기에 아마, 이 길이 그 길이고, 그 길이 이길 같았을 것이다. 매번 헤매는 발제자와 발제자를 찾는 ‘나’다.


여전히 자유로운 포럼 참가자들. 조금씩 늦은 참가자들과 발제자까지 모두 10명이 모였다. 이번엔 참석한 분들이 더 다양해졌다. 노동문화 활동가, 지역 공부방 선생님, 지역 문화운동가, 학원 교사, 학생 등 중구난방의 위상이 혹시 강화된 게 아닐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신병현 선생님의 ‘노동자 운동과 문화운동’ 이라는 주제가 분명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나는 이 분야에 대한 선 이해가 부족한 가운데 어떠한 내용을 듣는다는 것이 모두 생소했다. 그리고 문화운동이라는 것을 잘 못 이해한 부분도 있지 않았나 싶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이 ‘문화운동론’ 이라고 하는 것을 ‘문예운동’과 착각하는 경우이다. 그 범주에 나또한 있었다. 당황했던 서두였다.


신병현 선생님은 현 시기를 ‘주체성의 관리 통제 통치 시기’라고 이야기하며, 자본가들은 ‘수동적 노동자’로 만들기 위해 문화와 정치로 노동자들을 교육, 세뇌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러한 교육과 세뇌는 노동자의 생활과 가장 밀접하게 접해있는 작업장에서 가장 많이 행해지고 있는데 이 때문에 신병현 선생님께서는 작업장 문화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국가와 자본가는 ‘국가의 시민으로서의 재생산’을 끊임없이 진행한다며, 이에 대한 투쟁이 필수적이라고 이야기했다. 이런 직접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삶을 바꾸어내는 투쟁이 필요하다 주장했다. 그리고 이 노동자들의 삶을 결정짓는 공간 또한 작업장이라고 이야기하며, 작업장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최근 나는 만도의 ‘경영전략 분석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처음으로 노동자들의 작업장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을 해 보았다. 이들의 작업장에서의 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생활’ 그 자체였다. 10시간 노동에 생각보다 안 좋은 작업환경은 처음 대공장을 찾아간 나로서는 놀라웠다. 그들과의 인터뷰 과정에서는 작업장에서의 생활과 작업장이 자신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가를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겐 생활이자, 삶일 수밖에 없는 조건들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곧 가부장적인 태도와 군사주의적 문화의 잔재들과 직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신병현 선생님은 자본이 노동자들의 자생적 노동자 문화를 깨어버렸다고 하며, 그 결과로 생긴 노동자문화의 장애를 세 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노동물신주의(전문가주의), 둘째는 가부장적 권위주의, 그리고 셋째가 유사가족주의. 이 세가지 형태로 작업장 문화의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첫 번째의 노동물신주의(전문가 주의)는 ‘자부심’에 기초한다고 설명되었다. 숙련은 노조와 자본이 교섭을 통해 유지하는데 이에 따라 위계가 형성되어 이것들을 노동자들이 향유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동료 간의 차별 배타를 생산해 나간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또 사회적으로 규정해 나가는데, 그것이 인사고과와 성과급이다.

두 번째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남성들 사이의 위계와 남, 여 사이의 위계를 바탕을 둔 권력관계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서 신병현 선생님은 한국적 특수성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면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어쨌든 이러한 가부장적 권위주의는 노동자에게 차별적 형태로 대입되며 이는 곧바로 인사제도에 도입되어 작업장에서의 가장 극적인 순간인 구조조정에서 극렬하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유사가족주의는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난다. 소위, ‘우리 편’ 문화인데 이는 곧 따라서 ‘다른 편’에 대한 배타적 형식을 전제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노동조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나는 이러한 작업장 내의 문화를 직접적으로 느꼈다. 특히, 노동물신주의(전문가주의)는 군대문화와 섞여 강력한 유사가족주의와 가부장적 권위주의적 형태로 극렬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근속년수에 따른 권위주의적 문화와 작업 부서별 유사가족주의는 분명히 큰 공장 단위의 단결과 투쟁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군대문화는 위계와 권위의 상징으로 존재함과 동시에 기형화된 운동문화로 까지 자리매김하고 있지 않은가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신병현 선생님은 최근 민주노조 운동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소위 민주노조 운동 방식인 87년 노동체제는 96, 97년으로 포화, 종료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IMF 체제 이후 노동자 문화 실태에서 드러나는데, 노조에 대한 몰입이 높아진 반면, 실리주의적 경향을 띄고 있는 조합원들 즉, 노동자들의 태도에서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과거 고유한 민주노조운동의 흐름 속에 저절로 흘러 들어온 특수한 이 흐름은 시효 만료가 되고 97년 IMF를 기점으로 바뀐 체제로 인해 진보운동에 장애로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과거는 탄압과 착취의 범주였던 반면, 96,97년 이 후는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 다양성, 창의성의 대중적 몰입으로 나타나고 기존의 대응 방식으로는 대응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곧 신자유주의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과 대응은 글쓰기 운동과 토론하기. 즉, 대화를 통해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상호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들 간에 소통, 그리고 이러한 소통을 통한 발전. 이것이 최근 노동운동이 직면한 상황에 돌파구를 마련해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87년 노동체제는 96, 97년 이 후로 이미 포화되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는 이미 확인되었다. 이미 사회는 변화되어진 패러다임에 있고 현재 노동운동의 주체는 과거 패러다임에 갇혀 과학혁명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신병현 선생님은 이러한 한국 노동운동의 현실에 대해 크리스테바라고 하는 페미니스트 이론가의 개념어를 빌려 ‘Abjection’이라고 정의한다. ‘Abjection’이란 비열, 더러운 상태의, 분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구토를 통해 새로운 무언가로 나아가려고 하는 상태 혹은 나아가려고 하는 가능성을 뜻한다.

우리들에겐 무언가를 끊어내고 새로운 운동을 모색해 나아가야 할 시기라는 인식은 있지만 아직도 과거의 지배적 패러다임에 갇혀 허우적대는 상황에서 ‘소통’이라는 기제로 운동의 대전환의 계기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더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데에 한계가 있어 풍부하게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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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_돌속말(2)

우리가 잠시 만난 그 순간


나루/


너와 내가 나눈 표정과 말이

각자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내가 촬영하고 구성하고 편집한 영화를,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출연하고 함께 작업하고 후원해준 영화를

낯선 사람들 앞에서 같이 본다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불편함이 있다

 

관객으로서도 연출자로서도 만족할 수 없는 기술적인 숱한 헛점과

내가 고민했던 것이 지금도 앞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는 것과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 덜 익어서 의도한 만큼 누군가에게 닿지 못하는 것과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또' 봐야하는 것과

쏟아부을 곳을 찾지 못해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 맴돌던 분노를 응시해야하는 것을 견디며

아직 말이 되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이 우웅우웅 떠도는 머리를 비우면서

어서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된다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에서 마련한 '중구난방 토론회' 가 두번째 열리는 자리였다

 

빔프로젝터를 빌리고 스피커도 잘 싸서 들고 갔는데

DV 데크에 필요한 리모컨을 안챙겼더니 화면에 타임코드가 뜬다

00:00:00  부터 70분 동안 계속 화면 오른쪽 상담에 프레임, 초, 분단위의 숫자가 표기된다

노트북을 급구해서 디비디로 틀어봤지만 중간에 멈추더니 꼼짝도 않는다

식은 땀을 흘리면서 하는 수 없이 타임코드가 뜨는 채로 상영을 했다

죄송해서 할 말이 없다 (그걸 70분 동안 암말없이 지켜보신 관객들, 감솨!)

 

한 십 분, 별다른 문제없이 진행되는 걸 보다가 옆방에 가서 맥없이 앉아있었다

부끄럽고 속상하고 한심하고...오늘은 불편한 감정이 몇 배로 늘어난다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빵집에서 빵을 몇 개 사들고 들어와 우적우적 삼켜보지만

별다른 진정효과는 없다

 

드디어 영화가 끝나고 토론회가 시작되었는데

'오늘은 좀...영화에 대한 질의응답보다

 각자 자기 이야기를 해주었으면...'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 마음이 서로 통했는지

중구난방 토론회라는 자리가 원래 그런 취지여서 그랬는지

 간단한 질문과 답변 이후에

모인 분들이 저마다 자기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분위기가 그렇게 흘러가서 좋았다

슬슬 불편했던 마음이 펴졌다

다리미같은 사람들, 다시 한번 감사!

 

초보좌파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해서 3개월 정직을 당했다

이 사건으로 한겨레 21에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리우스는 운동을 하다가 어느날 잠적(?)하고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은 적이 있다

그러다 지금은 강의도 하고 책도 만들고 연구도 하고 싸움도 한다

한노정연의 한 연구원은 인천에서 문화운동을 조직하고 있다

토론회를 진행한 다른 연구원은 한때 다큐멘터리를 만들다가 지금은 접어두고 있다

그 연구원의 학교후배들 중 하나는 현재 학내 한 건물에서 점거농성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점거농성을 취재하거나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제일 나중에 온 분은 얼마전에 석사논문을 마쳤다

 

그들이 각자 영화를 보고 나서, 혹은 늦게 와서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영화의 제목이나 내용에서 연상되는 어떤 이야기를 한다

나는 그들이 말하는 모습, 내가 말하는 모습, 그들과 내가 누군가의 말에 반응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처음 만났거나 겨우 두 세번 만난 사람들이지만

지금 이 순간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고

그래서 긴장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즐거운 거라고

 

'나'라는 한 개인이

'돌 속에 갇힌 말'이라는 영화로, 혹은 그 영화의 연출자로

주목받거나 대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모인 사람들 중의 하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자리여서 좋았다

영화는 그저 동기를 제공한 다음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멀찌기 떨어져있고

'감독 나루'였다가 스무살 학생이었다가 철없이 나이만 먹은 선배였다가

그렇게 오락가락하면서 털어내고 뒤집고 내지르고 수용하는

다양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손님, 혹은 초대한 자

조직, 혹은 개인

진실, 혹은 거짓

옳거나 그르거나

이분법의 경계에서 이쪽과 저쪽을 가르는 것에 익숙했던 시간을 넘어가서

저마다 나름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구나

할 이야기를 좀 더 꼼꼼하게 준비할 걸 그랬나, 후회도 하면서 다시 그 시간을 돌아본다

 

두 시간 전에 미리 차를 몰고와서 짐을 실어주고 점심을 먹이고 데려다 주고

마음쓰고 돈까지 쓰면서 모임을 준비하신

리우스와 진행자에게도 감사를

 

또 놀러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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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_다큐나루와 돌속말 (1)

초보좌파/

 

8월 19일. 토요일. 오후 3시.

  한국노동정책이론연구소(한노정연)에서 '열린포럼 중구난방' 두 번 째를 연다기에 땡볕을 뚫고 혈혈단신으로 찾아 갔다.


  왜 갔냐구? 중구난방이라길래....

  참고로 아는 척하면^^

  중구난방 (衆 : 무리 중  口 : 입 구  難 : 어려울 난  防 : 막을 방)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소공(召公)이 주여왕(周勵王)의 탄압 정책에 반대하며 이렇게 충언(衷言)하였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개천을 막는 것보다 어렵습니다[防民之口 甚於防川]. 개천이 막혔다가 터지면 사람이 많이 상하게 되는데, 백성들 역시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를 막는 사람은 물이 흘러내리도록 해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말을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왕은 소공의 이 같은 충언을 따르지 않았다. 결국 백성들은 난을 일으켰고, 여왕은 도망하여 평생을 갇혀 살게 되었다고 한다. 즉 대중의 말길[言路]과 자유로운 생각은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자면, 맘껏 떠들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없는, 거침없는 상상력이 이야기될 수 있는 자리라길래 갔던 것이다. 난 그동안 '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처럼 입에 걸치고 다녔다. 난 '남'의 이야기가 마치 '나'의 이야기인 양 또 다른 '남'들에게 떠들고 있었다.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 사이의 깊은 골은 그다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왜냐면 '남'의 이야기가 온전히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점점 '나'의 이야기는 자취를 감추고 '남'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스스로 착각하며 지내왔다. 그것은 편했다. '남'의 이야기를 내 것으로 편집하는 것도 쉬웠고, 내 속의 나를 끊임없이 되돌아 보며 힘들어 할 필요도 없었다. '남'의 이야기가 맞으면 그냥 내 속으로 집어 넣으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내 이야기를 하려고 갔다기 보다는 그러한 상상력과 이야기들이 흘러 넘치는 소리에 목이 말라서 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게다. '나'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기에 '나'를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고 어딘지 모자라고 자신없었다. '자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래서 더욱 듣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다른 자리들보다 더 큰 기대를 가지고 갔던 것도 사실이다.

 

  이번 중구난방에 초청된 사람은 다큐영화 '돌 속에 갇힌 말(87년 구로구청 부정투표함 항의 농성 사건)'의 감독인 '나루'님이다. 이 다큐영화는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구로구청에서 발각된 부정투표함에 시민, 학생 등이 항의하며 시작된 농성이 국가의 폭력으로 짓밟히게 된 사건을 다룬 것이다. 당시 상황을 찍었던, 유일하게 남아있는 영상과 당시 참여했던 사람들의 증언과 이야기로 구성되었다.

 

  민중의 열망에 대해 폭력으로 답하는 지배계급과 국가의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민중들에게 무차별 행해지는 폭력의 모습은 볼 때마나 울화가 치밀고 가슴은 먹먹하며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살인폭력 자행하는 국가권력 해체하자!! [고 하중근 열사를 추모하며]

 

  영화 상영을 끝내고 중구난방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으레 그렇듯이 처음에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이기에 무언가 말문을 연다는 것이 쉽지 않은 법이다. 나루감독에 대한 질문과 답변으로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중구난방으로 이어졌다. 그러면서도 내 마음 속에는 '아무리 중구난방이라지만 그래도 이야기 자리라고 하는 것은 무언가 중심을 잡고 이야기가 오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아직도 나는 내 이야기가 자유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 어색해서 무언가의 틀거리가 주어지고 그 속에서 그것에 맞게 이야기하는 것에 여지껏 익숙해져 있는 것이었다. 한 번 물이 들면 그 물이 빠지기는 무척 어려운가 보다.

 

  건방지지만 시건방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돌 속에 갇힌 말'이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좋았다. 그것도 역사로 불리우는 투쟁 속에 그 투쟁의 역사적 의미 등등에 대해 재조명 어쩌구저쩌구가 아니라 그 투쟁 과정과 이후의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다큐영화는 끝에 이런 말을 남긴다. "역사에 대한 예의 그러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다."

 

  감히 말하건대 우리는 인간을 위해 투쟁해야지 투쟁을 위해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돌 속에 갇힌 말'에 보면 당시 그 사건의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관망하고 지시하는 사람 부류'와 '직접 뛰어들어 행동하는 사람 부류'이다. 관망하고 지시하던 사람들은 공권력의 폭력이 자행되던 그 순간에 아무도 구로구청 현장에 남아 있지 않았다. 부정투표함의 사수가 민주주의의 사수라는 그 하나의 믿음으로 모여 들었던, 직접 뛰어들어 행동했던 시민, 학생 등 민중들만이 국가의 폭력 앞에 고스란히 노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건이 역사의 뒷 켠으로 밀려나 있는 동안, 그 투쟁과 폭력 그리고 그 이후를 오직 한 개인으로 감당해야 했던 그들은 역사의 그늘 속으로 배제되고 소외되어 있었다. 역사라고 할 것까지 없다. 바로 우리에 의해 배제되고 소외되어 있었다.

 

  '적과 싸우면서 적을 닮아 간다.'고 했던가. 역사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결의를 요구하지만, 결국 그것은 개인의 희생으로 정리될 뿐인 것 말이다. 우리의 투쟁 속에 명분과 당위가 아닌 '인간'은 있는가? 명분과 당위 속에 '인간'은 희생당하고 있지는 않은가? 투쟁과 조직의 이름 앞에 '인간'은 배제되어 있지는 않은가? 국가든, 민족이든, 학교든, 가정이든, 조직이든 그 명분과 당위 앞에서 '인간'은 고려되고 있는가? 나 역시 적을 닮아 가고 있지는 않은가?

 

  중구난방의 이야기가 자연스레 '우리'라는 속의 '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되었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아무도 '누가 틀렸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도 자신의 생각이 맞다고 강변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냐고 그 다음을 요구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자신의 덜익은 생각과 떨리는 가슴과 부끄러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드러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의 잣대를 갖고 듣지 않을 수 있었다. 그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하기 위해 내 스스로 노력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참여한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충분히 공감했다.(적어도 내 생각에^^;)

   그래서 그랬는지 세꼬시 집으로 옮겨서 계속된 뒷풀이 자리는 나머지 아쉬운 여운을 남길 만큼 즐거운 자리였다. 나만 그랬나?^^; 중구난방...담에도 꼭 가야지...ㅋㅋㅋ

 

   여전히 나의 머릿 속에는, 가슴 속에는 그 말이 남아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우선이다"

 

[덧붙여] 참, 마지막 진행자님의 '정리발언'은 중구난방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는디. 그 자리의 의미는 여러 가지일텐데 하나의 의미로 정리되는 것 같아서리. '하나'의 의미로 정리되는 것은 참여한 각자의 마음 속이면 충분할테니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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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_좌중모습후기

끝에 덧붙이는 끝으로서 진행과정, 좌중의 모습들...

1. 장소는 연구소 근방에 있는 음식점(퓨전주점)으로 휠체어가 오가는데 지장이 없는, 문턱이 없는 곳... 하지만 그런 곳들이라도 화장실에는 턱이 없는 곳이 없어서 걱정하고 있었는데, 박대표님은 화장실은 안가실 거라고 괜챦다고 했다.

 

2. 이런 음식점에서의 토론회는 처음이다.... 조금 이른 시간이라 다른 손님들은 없었고, 토론 중간에 두어팀 다른 손님들이 들왔지만 크게 문제는 없었다. 음악소리는 조금만 작게 해주시라고 두어번 얘기를 넣었다.

 

3. 음식을 앞에 놓고 먹어가면서 하는 토론회.... 다들 즐거워했다. 글치만 얘기를 해주시는 박대표는 얘기하는 동안에는 드실 수가 없어서 좌중은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박대표는 "저는 얘기 다 허고 나중에 맛있게 먹을께요..." 하고 미안해하는 우리들을 다독였다.

 

4. 우선 철이가 중구난방 토론회를 여는 취지를 간단하게 얘기허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박대표는 누가 누군지 꼼꼼이 하나하나 이름을 적으면서 반가와했다.

 

5. 박대표는 얘기를 시작하면서 우리들에게 물어보고 싶다고 질문을 했다. "<장애/여성>이라는 걸 언제부터 생각하시게 됐어요?"

 

두꺼비가 얼렁 대답하기를 "저는 '장애여성 공감' 소식지를 보고부터에여... 장애인도 성별구분을 하면서 운동하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나도 '장애여성 공감' 소식지를 보고 장애여성이라는 단어는 알았는데 두꺼비처럼 성별 구분을 하면서 운동하는구나란 생각까지는 못했는데....라고 실토를 했다.

지뇽이나 상드도 나보다는 훨씬 먼저 '장애/여성'을 알게 됐다고 허고,

철이는 좌중에서 젤 나이가 어리지만, 사회복지학과 학생 때부터 이미 장애인 운동과 연을 맺어오고 있었던 터라 좌중에서는 젤 앞선 경험을 가지고 있어 장애인에 대한 배려에서부터 장애인운동 판에 대한 고민도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노길이는 이 질문이 얘기되고 난 다음에 좌중에 들어오게 되어 노길이 생각은 못들었다.

 

6. 박대표는 따복따복 발제문 없이 얘기를 풀어나갔고, 좌중은 얘기를 듣느라 여념이 없었다. 중간중간에 좌중도 박대표 얘기 속에 짧은 의견들을 같이 내기도 했지만, 주로 얘기를 듣고 박대표 얘기가 마무리되었을 때 질문겸 의견들이 쏟아져나왔다.

 

7. 앞에 내가 정리한 얘기들 속에 빠진 내용들이 많이 있는데.... 박대표님 얘기와 버무려지는 질문과 토론들이 이어졌다. 두어 시간 중에 한 30-40분은 토론시간이었던 거 같다. 박대표님이 동생 생일이어서 저녁시간에 맞추어 가셔야 됐기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 쪼매 아쉬웠다... 더 많은 얘기는 좌중 인물들이 다들 쪼매씩 소감문을 적기로 했으니깐 나중에 보실 수 있을 거 같다...

 

8. 중구난방 토론회는 매달 한번씩 세번째 주 토요일 오후에 하기로 했고, 매달 현장에서미래를에 옮겨 적어서 널리 퍼트리기로 했다.

 

9. 이번엔 졸지에 음식점에서 토론회를 했지만, 꼭 연구소에서만 해야될 필요는 없고 노길이 말대로 투쟁농성장이나 아니면 방문해서 해도 좋을거라는 얘기도 다들 공감.... 발제문이 꼭 없어도 되고, 분야도 여러 분야들을 아우르기로 했다.

 

진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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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소감3

6. "장애인이니까 인정해줘야지....이 말속에 차별있다...."

 

1) 핑크펠리스 인가 허는 영화 얘기가 나왔다. 40대 중반의 장애남성이 한번도 총각 딱지를 떼본적이 없는데, 어렵사리 서울 와서 하는 일이 성매매 현장에 가는 것(으로 끝난다는).

 

박대표는 이 얘기를 하면서, "장애인이니까 인정해 줘야지..."라고 흔히들 생각하는데, 이 말 속에는 차별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대표는, 성매매는 성폭력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장애인이니까 성폭력을 해도 인정해야 된다는 것은 또다른 차별이고 잘못된 것이라는 얘기다.

"장애인도 사람이니까, 다른 사람 인권을 침해하면 안된다."

 

2) 또다른 예는 섹스자원봉사. 장애인이 무조건 베풂을 받아야만 되는 것인가? 인간으로서, 평등한 인격으로서의 만남이 그런 '자원봉사'로 가능할까? 1회성일 뿐이다... '자원봉사자'(주로 여성)의 인권은?

 

박대표의 생각이 신랄하다. 내가 느끼기에는 장애남성과 (비장애)여성 중에서 권력과 지배력은 장애남성에게 두어져 있는 사회현실에 대한 신랄한 지적이자 성찰의 결과를 얘기허신 거다....

 

박대표는 덧붙인다. 미국인가에 '성치료사'라는 게 있는데, 발기불능을 치료하는데 동원되는 여성이다. 의사는 진단만 하고(당신 발기불능이야), 치료는 가진 것 없는 유색인종 여자들이 동원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발기불능 치료의 결과로 선전되는 게 '그남자의 자신감을 찾고, 그래서 경제활동이 원활해졌다'는 것이라는데, '성 치료사'라고 할 때 '성'은 '남성의 성'일뿐 '여성의 성'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니까 성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치료를 받는다는 것은, 결국에는 여성들을 수단으로 해서 남성이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의 '정상인'이 되는 것이다.... 참 환장헐 일이고 우라질 세상이다....

 

3) 게다가 장애인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어떤 여성의 사례가 얘기 와중에 나왔다... 그녀는 장애남성에게 성폭력을 당했는데, 얘기도 못하고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런 빌어먹을! 남성과 여성의 지배-피지배 권력관계의 논리는 모든 사회의 구석구석에 마치 공기처럼 스며 있다.....

 

'장애인이니까 인정해 줘야지....' 하는 사회의 편견이란, 장애인에 대한 배려라기 보다는 장애남성에 대한 배려이고 그것은 결국은 가부장제/자본주의가 필요로 하는 지배권력논리의 일환일 뿐, 사실상 장애인에 대한 배려도 아니라는 점,

그리고, 사실상 장애/비장애 '여성'들을 영원한 식민지로 고착화시키는 남성중심의 사회지배수법이라는 점이 분명한 그런 이중의 비하/차별적 발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중의 차별.... 그러니께, 장애인에 대한 비하와 차별이자 여성에 대한 비하와 차별을 말함이다....

 

 

7. 장애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문제....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비친고죄'란다. 본인이 스스로 사건화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성의 전화 등과 함께 대책위를 꾸려서, 7년간에 걸친 정신지체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사건화되었는데(강릉 웅촌리사건), 가해자 7명 중 3명이 처벌되었다고 한다....

 

장애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정책이나 법은 각 장애여성의 개별성을 모두 다 고려하면서 존재해야 하는데, 그러한 점들은 모두 무시되고 있다는 것을 큰 문제로 지적한다.

 

 

8. "나는 언제나 피해자는 아니다...."

 

오랫동안 이성애 중심, 사회적 편견들 속에서 살아오면서 박대표는 '내가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박대표는 '장애인임에도 살아야 할 권리 문제'에 대해 생각할 계제가 되는 사례로서,

<엄마가 장애 아들을 죽였다>는 사건에 대해, 장애계쪽과 여성계쪽에서 입장이 갈려서,

장애계 쪽에서는, 장애인임에도 살아야 할 권리를 주장하여 장애아들을 죽인 엄마를 처벌하라는 입장을,

여성계쪽에서는, 여성처벌은 여성억압이라는 입장을,

각각 내면서 서로 싸웠는데,

박대표는 이렇게 싸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부를 향해서 같이 싸워야 될 일이지 이게 무신 양쪽이 대립할 문제냐는 거다.

참 공감되는 말씀들이다....

 

 

9. "내가 만약 비장애인이 된다면....?"

 

모든 관계나 환경이나 내가 사는 조건이, 그리고 나의 활동도 모든 것이 장애여성으로 만들어져 있다.... 장애인 아니게 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장애인은 없어져야 될까?.... 안 없어질 것 같다.....

미국인 어떤 사람은, 비장애인인 자신의 몸이 너무나 자기가 정체성으로 갖기에 불편해서 러시안가 어디로 가서 자기 신체의 일부를 절단했다고 하는데..... 장애를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장애를 선택할까? 비장애를 선택할까?

박대표는 어려운 얘기라고 했다.

 

장애가 무엇을 기준으로 판별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장애의 정도로서 얘기되는 중증이냐 경증이냐도 무엇을 기준으로 등급이 매겨지는지에 대해서도,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기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사안들이다.

 

장애/여성... 그녀들은 장애인이자 여성이다.

장애인으로서의 자기자신, 그리고 여성으로서의 자기자신.... 그녀들이 장애/여성으로서 '공감'하기를, '공감'에서 함께 스스로를 더 잘 알아나가기를, 그리고 그녀들이 서로간의 차이를 공감하고, 차이 속에서 또한 함께 사는 길을 더 많이 공감하기를....

그래서 나도 그러한 차이들의 일환으로서 차이를 더 잘 인지하고, 그녀들과 함께 사는 길을 더 많이 공감하고 찾아낼 수 있기를....

 

(더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영화 <오아시스>와 <조제와 호랑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한 박대표의 얘기도 중요하다... 둘의 공통점은 '장애여성이 세상을 만나는 데는 꼭 남성이 매개가 된다는 점'이고 차이점은 '오아시스에서는 성폭력이 있다'는 점이란다..... )

 

(나는 박대표 얘기를 들으면서 어느 순간에 그냥 울음이 나왔는데, 대성통곡헐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삐질삐질 남몰래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박대표는 시종일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들에게 담담하게 자기의 이야기와 장애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비까지 퍼붓는 길을 오시게 한 무지함을 나중엔 우리가 찾아가서 얘기를 듣고 토론하는 자리를 갖는 걸로 만회할 수 있기를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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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소감2

 

박김영희 '장애여성 공감' 대표님은 휠체어까지 합쳐져 있는 몸을 가지고 계신다.

전에 수동휠체어 몸일 때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었다. 전동휠체어 몸이 됐을 때는 스스로 이동할 수 있었다. 테크놀러지.... 사람의 가치와 정체성이 테크놀러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현하고 있는 분이다...

 

1995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안에 있던 '빗장을 여는 사람들'에서부터 박김영희 선생은 활동을 시작했다.... 한해 두해... 북경여성대회, 동아시아 여성포럼, 제1회 여성장애인대회, 워싱턴 장애여성포럼....등을 거치면서, 장애인으로서 그보다도 여성으로서... 그래서 '장애여성'으로서 자신을 정립해오기까지가 오늘에야 우리 일곱이 이렇게 어렵사리 만나는 것처럼 크고작은 빗장들이 즐비허게 채워져 있던 그 길을 헤쳐왔다.

 

 

1. 빗장들은 그 속에도 있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빗장을 여는 사람들'에서의 활동은 박대표에게 활동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 공간으로서, 그리고 장애인이자 여성이라는 생각을 벼려내게 할 수 있는 모멘트를 준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여러가지 프로그램들에 함께 할 수 있었고, 수동휠체어라서 움직일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참석하자고 대릴러오고는 했던 것을 아마도 박대표는 지금도 고마워하고 있을 것이다.

거기서 '빗장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장애인 수기모음도 같이 내고, 여러 장애/여성들을 만날 수 있었고, 장애/여성에 대한 문제의식도 날카롭게 벼릴 수 있었고, 장애/여성으로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야 할 필요성도 크게 인식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안에서의 '장애/여성' 박김영희 선생은 주로 이런 일을 했다고 한다.

- 장애인 행사에 '장애/여성'으로서 참가해 주는 거. 여기저기 불려다니는 거.

- 공부도 별로 안해서 연구나 뭐 그딴 건 할 수가 없고... 장애인 행사 때, 사람들에게 참석하라고 전화하는 거.

 

그리고 거기에서, 그렇게 활동하는 가운데서, 그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서 있는 생각들을 누가 지배하고 있는지,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연하게 알게 되었다...

 

 

2.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96년 10월에 제1회 여성장애인 대회를 서울 남부 종합복지관에서 열었을 때, 전화를 세번이나 하면서 나중에는 결국 대회에 참석한 한 장애/여성이, 그날 '박영희씨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찾아와 만나니까, 그분 왈,

 

"당신같은 사람이 운동을 해요?.....공부를 많이 했어요?" 하더란다.

휠체어없이는 꼼짝도 못하는 중증 장애인에다가, 수동휠체어 몸 시절이었다....

 

할 수 있는게 없었더란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전화하고, 여기저기 장애인 대회에 불려다니고, 참석하고....

무슨 발언을 해도 남자 장애인들을 보조하는 거로밖에는 듣지 않고....

 

이러면서, 여성장애인이 말하는 거, 스스로 행동하는 거,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 '빗장을 여는 사람들'이 독립해야 할 필요성이 날로날로 커져갔다.

 

"우리에게는 우리 스스로 말하고 행동할 우리들의 시간이 필요하다...."

"독자적 조직이 필요하다....."

 

 

3. "여기서는 장애여성 목소리가 스스로 나올 수 없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는 '빗장을 여는 사람들' 담당자를 97년에 해고했다. 연구소 일보다 빗장일에 너무 많이 신경을 쓴다는 이유였단다. '여기서는 장애여성 목소리가 스스로 나올 수 없다'는 생각에 확신을 준 사건이었다....

 

이 일에 반대 항의하고 철회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한일장애인 교류대회' 장으로 달려가, 부당해고를 철회하라고 요구해서 싸인을 받아내고, '빗장' 운영위원 9명 전원이 연구소를 탈퇴했다....

그리고 고덕동에 공간을 얻어 독립했다.... 

 

장애인 운동에서도 운동권 일반과 마찬가지로 몰성적 그럼으로써 남성중심적 사고와 논리가 그대로 통용되고 있는 것 같다. '장애인 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혹은 '장애인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은 누락되고 하위배치되는 것 말이다. 그럼으로써 가부장제의 남성중심사회의 근간을 타고 여성차별과 배제 그리고 여성을 영원한 식민지로서 지배하고자 하는 지배권력적 탐욕과 비민주가 횡행하는 판 말이다.

 

남성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그 판에서 권력을 휘두르고 거기에 여성들이 꼼짝없이 순응해야 한다면 그게 무신 운동인가?

 

'빗장을 여는 사람들' 9명이 독립하고, 98년 2월에 장애여성 '공감'을 창립한 것에 나는(벌써 10년 가까이나 지난 일이지만 지금이라도) 전적으로 공감하고 지지한다.

 

 

4. 왜 장애인으로서, 왜 여성으로서...

 

9명이 매주 1회 세미나를 했다. 왜 장애인으로서, 장애 몸을 가지고, 그것도 여성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

 

- 몸에 대하여,

- 비장애중심의 힘에 의한 운동에 대하여,

- 우리(장애/여성)이 할 수 있는 운동은?

 

수많은 고민거리들 앞에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길을 찾아나갔다.

 

'비장애 중심의 힘에 의한 운동'을 얘기하실 때, 나는 '비장애/힘 중심 운동' 속에서 장애인에게, 그리고 '남성중심 운동' 속에서 여성에게 가해자였음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나의 운동은, 근본적으로 새로 만들어져야 하는 게 맞다는 것이 이렇게 절실할 수가 없다....

 

'장애/여성'으로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나와 우리들을 이렇게 각성시킨다.... 그녀는 벌써 이렇게 나를 조직하고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를 촉구하고 있다...

 

 

5. "우리의 경험이 힘이 되는 운동을 하자...."

 

- 글을 쓰는 작업을 하자

- 우리의 경험이 힘이 되는 운동을 하자

- 그리고, 우리 이외의 다른 소수자들 얘기를 듣고 같이 하자

 

우리가 말하는 운동을 하자. 우리는 우리들 스스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다.

우리는 장애인이고 여성이다.

 

장애여성들에게는, 착하다... 밝다.... 천사 같다... 소녀같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많은 억압인지 모를 것이다....

장애여성은 착한 척 해야 생존할 수 있다....

착하고, 순수하고, 남자에게 의존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 여성/장애인

이런 굴레들이 장애여성을 짓누르고 있다....

 

공감은 장애여성이 처한 현실들, 사회의 장애여성 차별문제와 몰인식에 맞서고 있다. 장애인 화장실 성별구분 문제에서부터, 장애인 시설에서의 단골메뉴인 성폭력 문제, 장애여성의 임신출산에 대한 문제, 장애/여성의 독립 문제...... 장애여성의 성문제.....

 

내가 보기에... 각자가 스스로를 잘 알고, 스스로를 거부하지 않고 인정하고 아끼고 사랑할 때, 그녀들은 서로 자기가 서 있는 자리와 함께 서 있을 자리를 확보한다.... 빗장을 연 사람들의 모습.... 바로 해방된 사람들의 모습이 여기에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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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_장애여성공감 박김영희님과 만나다

2006년 7월15일. 박김영희 '장애여성 공감' 대표님을 초청해서 당시 한노정연 사무실에서 첫번째로 중구난방 토론회를 드뎌 열었다.

 

리우스/ 2006.7.16.17:10

1. 운동의 주체, 나-우리를 만나고 싶다.

 

내가 여기 있었지만, 나는 어디에 있었을까? 나를 절실히 찾고 싶어졌을 때,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됐을 때, 이제까지와는 달리 사람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그전에 사람들을 보았던 눈은 한쪽 눈이었고, 한쪽 눈으로 백가지 이상을 보려다가 눈이 멀어버렸다. 지금은 백개 이상의 눈으로 찬찬이 사람들을 하나하나 볼 수도 있고, 다른 한쪽 눈으로 백가지 이상을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멀었던 눈도 시력을 회복하는 중이다.

 

생동하는 주체들로서의 사람들, 그들은 운동권이 아니라도 이미 운동가들이다. 이런 사람들과는 언제든지 만나게 될 수 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찾아 만나는 것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런 만남들은 새록새록 연쇄고리처럼 이어지고 있다.

<중구난방> 토론회를 통해서 나는 그런 생동하는 주체들로서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2. 재밌고, 상상력이 만빵으로 펼쳐지고, 젊은 문제의식들이 기를 쫙쫙 펼 수 있는 토론회...

 

내가 하는 모든 일을 새로이 조직해야만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나에게 제일 큰 문제는 눈앞에 펼쳐져 있는 그전해 해오던 일에 대하여 모든 흥미가 다 사라지고 있는 사태였다. 사람들 글이나 말이 도시 재미가 없고 짜증을 부추겼다.

 

그럴 때 너부리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재밌고 젊은 좌파들이 기를 쫙쫙 펼 수 있고, 다양한 문제의식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토론회가 필요하다는 데 쿵짝이 맞아서 그런 토론회를 얼렁 차려야 되겠다고 생각허게 됐다. 첨에 '장애여성 공감' 분들을 초청하려는 생각도 너부리님한테서 나온 힌트다. 

 

그래서 나는 그 힌트들을 이리저리 버무려서 힌트가 생긴 날 당장에 이름을 '젊은 좌파의 중구난방 토론회'로 허는 이런 토론회를 차리자고, 구태의연하지만 그래도 배짱은 맞는 어떤 나와는 동시대 남자 인물에게 제안했고, 그 인물이 그러자고 선뜻 받아서 그 인물 주관으로 토론회를 꾸려나가기로 했다.

이것은 2004년에 연구소에서 해보려고 제안했다가 구태의연수호신들에게 밀려 무산된 연구원토론회를 뒤늦게나마 이제라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을 뜻한다.

 

3. 모든 것을 중구난방으로 하자.

 

하지만 중구난방 토론회를 주관하겠다던 이 인물이 워낙이 바쁜 데다가, 토론회 제안 문제의식은 좋아보이긴 했던 모양인데 실지로 그걸 어떻게 꾸릴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구태를 벗지 못한 채 지 바쁜 일정 속에서 도시 일이 진척이 안되는 것이었다. 제안문 초를 잡아 왔는데, 무겁기 그지없고 판에 밖힌 형식허며 도시 한글자도 챙겨낼 게 없는 우라질놈의 제안문이어서 복장터지기 일보직전에, "내가 수정해서 올릴테니 그렇게 허자"고 갈무리를 지어서 제안문을 올린 것이 4월9일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것을 중구난방으로" 허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약간의 형식들은 표시 거의 안나게 허는 것이 목표다....

하여튼 그렇게 하고 나서도 또다시 석달이 지났다....

형식으로만 진행되니 일이 진척될 리가 없다....

7월7일 집행위원회에서 나는 중구난방 토론회 주관자를 젊은 연구원 철이로 변경시켜줄 것을 제안했다. 철이와는 이미 토론을 거친 상태이고, 변경전 주관자는 앞으로의 일정 등으로 볼 때 변경이 오히려 무리가 안될 것이라는 데서 이견들은 없었으니, 철이가 자신감을 갖고 이 토론회를 엮어나가겠다면 문제는 없다고 결정이 됐다.

.... 잘 헐 수 있지?

.... 예....

모든 것을 될 수 있는 최대한 중구난방으로 허자!

 

4. 첫날인데...

 

날짜가 7월15일 3시로 잽힌 제1회 중구난방....

나는 새벽에 집에 갔다가 점심 때쯤에 다시 사무실로 나왔다.

철이보고, "니 맘대로-맘껏 이 토론회를 엮어나가 봐라..."고만 주문을 하던 터라,

"처음이라 어떻게 진행을 해야 될지 좀 걱정된다"는 철이가 걱정되기도 허고, 그래서 좀 더 쉬고 싶은 걸 뿌리치고 사무실로 향하는데, 집에서 한 5키로쯤까지 올 때는 비가 잠깐 멎어있고 아스팔트 길이 허옇게 말라 있다. 오늘은 비가 안왔으면 좋겠는데.... 이동이 불편하신 분을 초청하게 되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좀 더 나가니까 빗낱이 뜨기 시작허더니 사무실 가차이 오면서는 바가지로 물을 퍼붓는 것처럼 내리는 비.... 클났다....

 

시작시간을 한시간여 앞두고 철이가 나타난다.... 간단하게만 준비할 사항들을 같이 얘기허고, 앞으로는 어떻게 이 토론회를 꾸려나갈까에 대해 생각도 좀 보태고, 이런저런 이약을 나누고 있었다.

 

얘기 와중에 철이 왈, "실은 오늘 우리가 이쪽으로 초청하는 것이 반장애인적 발상이에요..." 한다. "계단에다가, 화장실이며, 모든 것이 장애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조건이거든요...."

 

반성반성 왕반성....

 

철이가 또 왈, "아까 오다가 토론회 장소로 더 적합한 곳이 있는지를 찾아봤는데요, 별로 없더라고요.... **호프가 젤 나을 거 같은데...."

 

철이랑 나는 "오늘 토론회가 우리둘만 달랑 앉아있는 게 아닌지 몰것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가, "그렇더라도 진행은 하는 거야"....

 

그러면서 철이랑, "사람들이 더 많이 오더라도 바깥에서, 초청자가 접근하기 편한 곳을 찾아서 거기서 토론회를 하자"고 해서 철이가 또 장소를 찾으러 한번 더 나갔다 오기로 했다.

"아무래도 이 근방은 너무 오래된 동네라 마땅한 장소가 없네요.... **호프나, **집 정도가 그나마 괜챦은 거 같애요..."

 

그래서 장소는 박김영희 대표님 오시고 난 다음에 정하기로 하고, 이제는 누가 올지가 관심이 되었는데, 두인물이 전화를 걸어오고 나중에는 무려 네인물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어찌나 이 인물들이 새로 뵈는지, 나는 백만명은 같이 만난 것처럼 반가워서 그만 다 한번씩 껴안아주고 싶었다.

 

5. 일곱명이 연 '장애/여성'의 세계에 대한 공감...

 

빗장을 연 여성, 박김영희 선생님과 상드 지뇽 두꺼비 노길이 철이 나.

두어시간에 걸친 짧은 만남치고는 퍼트릴 내용이 너무 많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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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만들었습니다!!!

중구난방.....

 

매월 한 번씩,

매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수다 떨면서,

즐건 이야기를 하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소통과 연대를 위한 모임입니다.....

 

1. 비회원제입니다. 그 때 그 때 주제에 관심이 있으시거나, 알음알음해서 함 와 보시거나, 그냥 심심해서 한 번 오셔도 됩니다...

2. 자기 이야기를 합니다. 그 때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주제와 관련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 상관없이 수다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입니다.

3. 술은 한 손으로 따릅니다. 단 강제조항은 아니구요^^;  참가하신 분들 사이에서 그 어떤 권위와 위계도 거부합니다.

 

어제(2월 7일)는 인권운동사랑방을 찾아가서 "HIV/AIDS 감염인 인권"에 대해 얘기 듣고, 얘기 나누고, 즐건 뒷풀이 자리를 가졌습니다...

 

이제 진보넷에 블로그방을 만들어서, 많은 분들과 더 많이 자리를 함께 하는 기회를 가지고 싶습니다....중구난방 후기, 다음 중구난방 주제와 장소 그리고 시간, 알림 사항 등등을 여기에 올려 놓으려구요....

종종 들려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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