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논쟁과 언론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09/11/19 22:22
  • 수정일
    2009/11/19 22:22
  • 글쓴이
    진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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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많은 인권 논쟁은 기술 논쟁이다. 특히 범죄 예방이나 수사를 위해 도입되는 첨단 기술 논쟁이 그렇다. 몇 달간 언론지상을 오르내린 주제만 해도 그렇다. 인터넷 패킷 감청, CCTV, 택시 블랙박스, 위치정보, 전자 팔찌, 그리고 DNA 데이터베이스에서 인권 문제는 기술적 쟁점들을 비켜갈 수 없다. 

이 주제들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은 매우 복잡하다. 해당 기술의 고유한 특성, 실제 범죄 예방과 수사를 위한 효과성과 이해당사자와 집단적 인권에 미치는 영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를 아울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논쟁은 그렇게 다차원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아니, 논쟁은 오히려 지나치리만큼 단순하다. 기술은 범죄 예방과 수사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단지 ‘믿어진다’. 어떤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때 첨단 기술은 지금까지와 다를뿐더러 가장 진보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게다가 빠른 처방책이기도 하다. 공공 영역을 둘러싼 기술시장은 이미 상당한 규모로 형성되어 있어 업계는 언제든지 이러한 부름에 부응할 수 있도록 준비된 상태이다. 

그러나 묻지 않고 믿는 것은 ‘신화’의 영역이다. 신화에 대해서는 합리적 논쟁이 이루어질 수 없다. 기술 논쟁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실용적인 검증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당 기술이 현실 문제 해결을 위한 적합성을 실제로 갖추고 있는지 진지하게 논박되지 않는다. 예컨대 실종아동을 찾는데 도움을 준다며 2005년부터 국가가 전국 시설 아동들의 유전자를 채취해 보관 관리해 왔지만 그것이 다른 치안 수단과 사회정책적 대안들에 비해 정말 효과가 있는지 검증되지 않는다. 검증되지 않는 기술은 단지 잠정적이고 막연한 기대의 대상일 뿐이다.

기술 논쟁만큼 인권 논쟁도 단순한 구도를 갖는다. 범죄 예방과 수사를 위해 도입하는 기술에 반대하는 측은 곧 범죄자 편, 혹은 가해자 편으로 정형화되기 일쑤다. 혹은 막연한 사생활 보호론자들로 치부된다. 그에 비해 범죄 예방과 수사는 매우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이점으로 부각된다.

이러한 논쟁 구도의 단순화는 언론의 필터를 거치며 극대화된다. 언론은 서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지만 지극히 ‘자기 준거적’이다. 언론계 내에서 형성된 담론 프레임을 벗어난 의제는 등장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19일 국회 공청회를 앞둔 범죄자 디엔에이 데이터베이스의 문제를 보자. 몇몇 언론은 이 법이 통과되면 “강호순·조두순 DNA 보관된다”고 표제를 뽑았다. 이 법이 통과되면 강호순, 조두순과 같은 흉악한 사건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암시를 담았다. 이것이 이 문제를 바라보는 대부분 언론의 프레임이다.

그러나 이 법이 사실 범죄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어느 언론도 지적하지 않는다. 범죄자뿐 아니라 비슷한 유전자형을 가진 가족에 관련된 문제라는 점은 거론되지 않는다. 

이 법이 형이 확정된 성인 기결수 외에도 소년범과 피의자, 수형인에게까지 소급 적용된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지 않다. 무엇보다 범행 현장에 머물렀던 일반 시민이나 피해자도 DNA 데이터베이스의 입력 대상이 되어 평생 검색될 수 있다는 점은 결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문제의 이해관계인은 범죄자와 그 밖의 시민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문제라는 점은, 적어도 우리 언론에서는 관심 분야가 아니다. 

언론은 인권과 국가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행위자이다. 특히 지금의 시점에서 국가의 일방주의를 견제하지 않는 언론은 이를 거드는 존재일 뿐이다. 지금까지와 다른 문제제기, 기술적 쟁점까지 파고드는 치열함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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