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당신의 표현의 자유는 어떻습니까? 저는 집회가 아닌 기자회견을 참가하기만 해도 연행되면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을 안고 밖을 나섭니다. 언젠가부터 나의 의사를 표현하는데 두려움도 함께 따라옵니다. 주변 아시아 국가에 비해 한국의 표현의 자유 상황은 괜찮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가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낫다고 하여 위안 삼을 수 있는 것일까요? 지금 우리는 광장에 모여 의사를 표현하고, 뜻 맞는 사람들끼리 인터넷에서 의견을 개진하고 행동하며, 잘못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을 비판할 수 있는 자유가 충분히 있습니까? 표현의 자유는 아주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하지만 비판을 하였다는 이유로 연행되고, 구속되고, 처벌받고, 국가로부터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 현실입니다.
현 정부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거나, 알고는 있지만 의도적으로 파괴하려고 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최근 일어난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많은 사건들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친절하게도 이번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아래 특별보고관)의 한국방문에 정부는 그 단적인 예를 직접 보여줍니다. 특별보고관은 정부에 대통령과 총리 등 주요인사와의 면담을 요청하였으나 성사되지 않아 실망을 안고 떠났습니다. 기자회견에서 특별보고관은 “정부 고위 관료들과 만남으로서 인권의 관심과 의지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는데 이번 한국 정부의 태도는 인권에 관한 의지가 없다고 보여 진다”며 “손님을 초대하면 직접 대접을 하지 대신해 다른 사람을 보내지는 않지 않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몹시 낯 뜨거운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외부에서는 한국의 '표현의 자유' 상황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요?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5월 6일부터 열흘간 한국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지난 5월 17일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한국을 떠났습니다. 특별보고관이 기자회견에서 한 발표는 우리나라의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정치적인 이유로 침해당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줍니다. 언론에 일부 내용이 보도되기도 하였지만, 무려 A4 9장에 담겨 있었던 특별보고관의 발표 내용을 여기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표현의 광장인 인터넷에서의 표현의 자유
'회피 연아', '미네르바', '발암 시멘트' 이런 사건들 이후로 혹시 당신도 공적인 비판 글을 인터넷에 게시할 때 주춤하게 되지는 않나요? 혹은 당신이 게시한 글이 유해하거나 권리를 침해한다고 해서 어느 날 삭제처분이 내려진 경험은 없나요? 특별보고관은 허위통신, 즉 정확하게 명시되지 않고 사실이 아니라고 해서 기소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이를 금지하는 것은 과도한 정보의 제한이라고 지적하며 전기통신기본법상 허위의 통신 조항을 삭제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또한 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 카페가 조중동 광고주 불매운동을 한 것에 대해 업무방해라는 근거를 사용하여 처벌하는 것은 잘못되었으며 국가의 의무는 특정한 기업을 보호하는 것보다 공익과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설립된 이 후로 그 역할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제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별보고관 역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나봅니다. 인터넷에 게시된 정보를 자의적으로 삭제하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했는데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스스로 민간기구임을 주장하지만 위원장이나 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는데다 위원장의 지위가 장관급인 점은 이해 할 수 없고 예산도 독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검열이 아니라 삭제를 권고하고 있다지만 이러한 권고가 인터넷 서비스 제공 업체나 운영자에게 반 강제적으로 이행된다는 것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운영에 관한 지적과 함께 인터넷 콘텐츠를 규제할 수 있는 기관은 반드시 독립적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다시 인터넷 실명제 논란이 계속 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정치적 의사표현을 침해하는 것이고 ‘사전검열’이라고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악용되는 명예훼손죄
표현의 자유보다 국가의 명예가 더 중요한가요? 말도 안 되는 질문이라구요? 한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보다 명예가 우선시 되고 있습니다. 최근 명예훼손을 이유로 기소된 사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요. 특별보고관은 국가정보원에 의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등의 사건에 대해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였다고 기소된 사례는 어느 곳에서도 유례가 없고 정부기관과 제 3자에 의한 명예훼손은 성립될 수 없다고 말하며 국가는 형법에서 명예훼손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권고하였습니다. 명예훼손을 이유로 형사 기소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표현의 자유에 심각한 ‘위축효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2008 촛불 집회 이후 탄압받는 집회 시위의 자유
지난 5월 6일 서울광장에서 표현의 자유 관련 집회가 열렸습니다. 이상하게도 도통 허가를 해주지 않던 서울광장에 특별보고관의 방문에 맞춰 집회 허가가 내려진 것입니다. 이에 특별보고관도 “2008년 촛불 집회 이후로 서울 광장에서 단 1번만 집회 허가를 했는데 그것이 제가 방문한 기간과 일치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특별보고관은 집시법이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되고 있음을 정확히 지적했습니다. 또한 표현의 자유에는 집단적으로 의사표현 할 권리가 있으며, 집회시위 진압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잉폭력행사에 대해 법 집행 공무원들은 자신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폭력진압은 확실히 처벌 받을 수 있도록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선거전 표현의 자유
선거 전에는 정책 토론할 자유는 없나요? 국민들은 정책에 관심 갖지 말고 농담 따먹기나 해야 합니까? 특별보고관은 선거전의 표현의 자유와 관련하여 공직선거법 조항을 확대함에 있어서 무상급식, 4대강 등 선거 주요 쟁점에 관해 토론이 제약된다는 우려를 표했습니다. 선거 6개월 전 사전선거운동 금지조항은 만약 한국에 선거가 2번이 있다면 일 년 내내 주요이슈에 대한 토론이 금지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이에 관한 지침은 삭제되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현재까지 존재하는 국가보안법
15년 전 한국을 방문했던 아비드 후싸인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였으나 현재까지 계속하여 국가보안법은 강력하게 효력을 발휘하고 있고 폐지되고 있지 않습니다. 이에 관해 특별보고관은 국가보안법 7조는 여전히 모호하고 확대 해석 되고 있으며 이는 반드시 개정해야한다고 다시 한 번 언급하였고 국방부가 불온서적을 지정한 것에 대해 한 사람이 특정 정보를 접근할 수 있는 자유에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읽을 자유도 포함되는 것이며 한 인간으로서의 지위는 군인으로서의 지위보다 앞서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언론의 자유와 공공성의 파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피디수첩 사건, 미디어 법 날치기 통과, 기존 공영방송 사장 몰아내기 등 언론계에 커다란 파장이 일었습니다. 특별보고관은 공영방송사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사장이나 경영진의 임기는 보장되어야 하고 임명절차가 개정되어야 하며 표현의 자유, 정보 접근의 자유는 미디어의 다양성과 다원성이 중요한데 특정 기업에 의해 독점 된다면 이것은 명백히 다양성과 공공성에 위배되는 일이라며 큰 우려를 표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지 않는 국가인권위원회
특별보고관의 요청에 응하지 않은 것은 정부만이 아닙니다.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게 상임위원들과 면담을 요청했지만 위원장은 이를 끝내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특별보고관은 이러한 것은 위원들 간에 커다란 의견차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다며 인권위의 태도에 유감을 표했습니다. 2010년 인권위 새 위원장이 선임된 이후 한국의 표현의 자유에 관련한 주요한 사건들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것에 실망했고, 인권 증진을 위해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며 인권위 위원선정절차도 개선되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공무원, 교사의 표현의 자유
또한, 공무원, 교사들의 의사 표현에 있어서 모든 공직자는 동등하게 표현의 자유를 누려야 하고 근무시간 이외의 의사표현은 보장되어야 하며 그것이 교사들이 특정 노조의 일원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표명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개개인들이 누리는 권리이기도 하지만 집단적 권리도 포함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 강력히 요청한다!
정부는 특별보고관의 권고대로 허위의 통신 조항 폐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개정, 명예훼손죄 폐지, 집시법 10조 개정, 선거법 93조 개정, 국가보안법 폐지, 미디어 관련법 무효, 공무원 의사표현의 자유 보장 등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 조항을 폐지해야하며 정치적 의사표현을 폭 넓게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사상, 문화, 철학 등 모든 영역에서 다양하게 표현할 자유가 필요하고 이것을 국가가 제약하면 안 될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필수 조건입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희생 속에서 민주화 과정을 거쳐 왔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은 어렵게 일구어 낸 민주주의가 얼마나 쉽고 빠르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경계해야하고 끊임없이 표현의 자유를 외쳐야 할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말하지 못하고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정신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방문은 한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 상황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우고 표현의 자유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반면 이 고귀한 권리에 대해 무관심을 넘어서 회피하고자하는 정부의 태도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본문
진보넷님의 [유엔 표현의자유 특별보고관 조사결과] 에 관련된 글.
인권오름 제 203 호 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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