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감시와 경찰

  • 분류
    잡기장
  • 등록일
    2008/04/18 16:01
  • 수정일
    2008/04/18 16:01
  • 글쓴이
    진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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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넷 팀블로그http://blog.jinbo.net/jinbonet
가 개통했습니다. 공식적인 성명-논평이 아니라 진보넷 활동가들이 그때그때의 사안에 대해 자유롭게 소회를 밝히는 공간이 될 것 같습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경찰의 소위 "아동 보호 대책" 때문에 심란하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혜진-예슬의 소식을 뉴스로 접하며 눈물도 났고, 평범한 다른 부모들처럼 일산의 여자아이 납치 시도에 경찰이 태만하게 대응한 것에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경찰의 대책 대부분이 내게 이미 낯익거나 뜨악한 것들이라서 그렇다.

경찰의 '총력대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각종 첨단감시 체제의 도입이다.

  • 모든 휴대전화에 GPS 칩 장착을 의무화하고, 
  • ‘위치정보의 보호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여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으로 한정되어 있는 위치정보 이용기관을 자신들에게까지 확대하겠단다.

하지만 GPS 칩은 위성과 일직선으로 연결되지 않는 실내에서는 위치추적이 어렵다는 점에서 실효성 논란도 있고GPS 칩 장착 비용은 휴대전화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오롯이 소비자 몫이 된다는 점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꾸준히 GPS 의무화를 요구해온 LBS산업(Location Based Service, 위치기반서비스, 한마디로 '사람 위치'를 '돈버는 꺼리'로 연결시키려는 산업)이 있다. GPS 칩을 활용하여 L커머스를 활성화시키려는 업계는, GPS 보급이 더딘 것에 대해 속을 태워 왔다. 따라서 GPS 의무화를 주장해온 이들의 진짜 속셈이 사실 속편하게 시장을 확대하려는 데 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업계의 이해보다 사생활 침해 가능성을 더 옹호해온 국민정서상, 이 제도가 그간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경찰 발표로 관련주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하니 LBS업계가 소원성취할 날도 멀지 않았나 보다.

국회가 2005년에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경찰이 위치정보와 같은 '통신사실확인자료'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은(통신비밀보호법 제13조) 수사시관의 통신자료 오남용이 극심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민이 24시간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다니는 상태에서 위치정보는 국민의 사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공권력에 의한 심각한 감시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법원의 '허가'가 '영장'보다 낮은 수위라는 맹점 때문에 경찰이 혐의사실을 제대로 기입하지도 않고 사건과의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들을 수십명씩 추적하면서 남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심지어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은 경찰이 "급하다"고 하는 경우엔 이런 절차조차 생략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법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도 받아 왔다. 이런 상황에서 '위치정보 이용기관에 경찰청을 포함시켜 달라'는 요구를 2007년 정부가 받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다.

이렇게 여러 문제로 그간은 허용되지 않았던 제도들이, 이번엔 "아동 보호 대책"이란 명목으로 재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인권단체 활동가로서 허탈함을 감출수가 없다.

  • 또, 어린이 책가방에 신상정보가 내장된 RFID 전자태그를 부착하도록 하겠다니

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가.

최첨단 암호기법을 도입했다는 전자여권의 RFID 정보도 무선으로 줄줄 새는데, 거리에 널려 있는 무선인식기에서 아이들의 신상정보를 채가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 게다가, 전국200만대도 부족해 동네놀이터를 비롯한 곳곳에 폐쇄회로TV(CCTV)의 설치를 늘리겠다고 한다.

"법률적 근거없이 CCTV를 확대하는 것은 인권침해다"라는 국가인권위원회와 인권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와 경찰은 무법적으로 CCTV를 설치, 운영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국내에서 처음으로 CCTV가 법률로 규제되기 시작했지만(공공기관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채 6개월도 되지 않은 형국이다. 2백만 대 + 추가설치된 CCTV에서 쌓이는 CCTV 테이프들이 인터넷을 떠도는 끔찍한 사태가 벌어져야 이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질 것인가. 아니면 영국에서 벌어진 일처럼 경찰이 CCTV를 이용해 여성을 스토킹하는 스캔들이라도 터져야 할 것인가. CCTV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해외 법제도들을 분석하는 중이니 다음 기회에 좀더 자세히 논의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점은, 대한민국만큼 무법천지로 공공영역 CCTV가 확산되는 나라는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나도 경찰을 믿고 싶다. 하지만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최근 연달아 일어난 불행한 사건들을 자신들의 권한 강화에 이용하려 한다는 혐의를 감출 수 없다.

전자감시의 가장 큰 문제는, 디지털 장비의 객관성, 무결성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그 이외의 대안을 모두 배제해 버린다는 데 있다. 지하철 객차마다 2대씩 CCTV를 도배하는 것보다는, 지하철 1인 탑승이나 무인화를 재고하는 것이 안전하며, CCTV만 남겨놓고 보안인력이 철수하는 것보다는 사람이 순찰을 하는 것이 문화재를 더욱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다. 특히 CCTV와 같은 디지털 개인정보 수집장치는 그 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전용하고 유출하고 조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하긴 최근 경찰력의 강화는 국제적 추세인 듯 하다.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명분도 있지만, '신자유주의적 경찰국가의 도래'에 대한 학계의 고민이 그래서 계속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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