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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악플문화(?)'에 대한 토론회가 있었고, 여기에 패널로 참석했었다.
나 는 '악플' 개념 자체가 상대적이고 맥락적인 개념이어서 사실상 객관적으로 규정하기 힘들다는 점, 가장 좋은 해결책은 인터넷 상 개별 공동체의 자율적인 정책적, 기술적 해결이라는 점, 그리고 현재 시민사회단체에서 준비하고 있는 망법 개정안에 대한 소개 등을 얘기하였다.
인터넷 실명제와 사이버 모욕죄를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인터넷의 자율성, 자정능력에 맡겨야 한다는 얘기가 많이 등장하는데, 구체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호하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그저 '공자님 말씀'처럼 뜬구름 잡는 얘기로 들릴지 모르겠다.
자율성, 자정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 네티즌들이 점차 네티켓을 지킬 것이라거나, 문화적으로 성숙할 것이라는 믿음은 아니라고 본다. 악플을 객관적으로 규정하기 힘들지언정, 악플 현상(상대방으로 하여금 적대감을 느끼게 하는 댓글)은 분명 인터넷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이 갖고 있는 소외나 증오의 감정의 표출일 것이고, 무한경쟁 신자유주의 체제가 심화되는 한 그러한 감정이 완화될 것이라고는 오히려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중요한 것은 네티즌들의(운영자나 이용자나) 인터넷 경험이 축적되면서, 인터넷의 특성에 대한 이해(예를 들어 자신의 글이 미치는 사회적 파장과 같은)가 깊어지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문제에 대한 대응력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악플에 대해서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게 된다든가, 사적인 내용을 공개하는 것을 조심하게 된다든가하는 문화적인 적응 혹은 커뮤니티를 위한 적절한 정책적인 지침이나 기술 시스템을 채택하는 것 등이다.
인터넷에는 정말 다양한 공간이 있고, 개별 공간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저마다 다르다. 그리고 개별 공간(커뮤니티)들은 나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들을 찾아나가고 있다. 네이버나 다음만 운영자가 아니라, 포털 내의 커뮤니티, 개별 홈페이지, 혹은 미니홈피나 블로그의 주체도 저마다의 영역의 운영자고, 자신의 공간을 기획한다. 어떤 홈페이지는 익명 게시판을 운영하다가 쓰레기글들의 범람으로 인증 게시판으로 바꿔보기도 한다. 실명 게시판을 운영하다가 게시판이 썰렁해져서 다시 익명성을 강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 덧글 기능을 폐쇄할 수도 있고, 트랙백을 통한 소통을 선호할 수도 있다. 진중권씨처럼 악플들을 모았다가 일시에 날려버리는 장난을 칠 수도 있다. 나 같이 악플이라도 환영하는 블로그 운영자도 있을 수 있다. 포털과 같은 사이트는 '평판 (reputation) 시스템'을 도입하여, 양질의 글에 대한 접근도를 높이고, 악플에 대한 접근은 제약할 수도 있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자율성, 자정능력은 공문구가 아니라, 인터넷 초창기부터 이루어져왔던 자율적인 문제해결 과정의 진화를 표현한 것일 따름이다. 인터넷 상의 각각의 공간은 다 다르다. 그러나 법은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악플을 막는 단일한 기술 시스템을 주장한다면 마찬가지의 문제를 갖게 된다. 개별 공간마다 특성과 문제가 다 다른데, 그리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는데, 왜 단일한 해결책을 외부에서 강제하려고 하나. 자율성, 자정능력은 공허한 얘기가 아니라, 가장 적절한 해결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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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늘 패널로 참석하신 분 중에서 강장묵 교수의 발언이 인상깊었다. 공대 교수 중에서 그러한 사회학적 인식과 좋은 마인드를 가지신 분은 거의 본 적이 없는 듯 하다. 토론 내용의 취지는 내 것과 거의 같은데, 다양한 사례를 들면서 훨씬 풍부하고 유려하게 말을 잘 하시더라.
김보라미 변호사의 토론도 재밌었다. 사채를 준 것이 최진실일 가능성 어쩌구 하는 기사에 대해 최진실씨에 대한 비난 덧글이 달리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데, 왜 언론의 무책임성에 대한 질타는 없고 악플만 문제삼는 현실에 대한 지적.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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